량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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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푸른강은 흘러라
2008년 11월 11일 10시 17분  조회:3451  추천:51  작성자: 량춘식
[단편소설]
푸른강은 흘러라

량춘식 (연변)


    컴퓨터를 꺼버렸다. 제길! 그는 씨벌였다… 푸른강이 출렁이는 화면속이다.

    숙이: 푸르름은 랑만이야.
    철이: 푸르름은 광대무변이지.
    숙이: 그것은 숙원의 약속이고.
    철이: 그것은 옥같은 고백이며.

    그러나 지금 철이앞의 컴퓨터대화는 꺼져버린지 오래다.
    철이는 책상우에 흩어져있는 서류뭉치들을 추슬러 서랍안으로 밀어놓고 컴퓨터대화 덱스트를 적어둔 서류를 몰아서 바스켓에 담는다. 그럴 때 촉감이 빳빳한 팜플렛 한장이 손끝에 잡혀졌다. 연두빛 표지에 푸르게 흐르는 푸른강이였다. 아니, 두만강일것이다. 그것은 몇달전의 잉크빛 저녁에 교정의 저녁자습때 숙이가 건네준것이였다. 달게 미소를 발라 넘겨준것이지만 보면 볼수록 의미가 깃든것이였다. 푸르른 두만강, 혼탁하지 않고 영원히 푸르게 흘러라! 이런 뜻일거라고 확신했을적에 철이는 얼마나 흥분했던가.
    숙이, 숙이는 모델이나 연예계의 스타처럼 황홀한 스타일은 아니지만 총명하고 명랑하며 아련한 느낌을 주는 애다. 학습위원인 숙이가 반급 남자애들의 우상이나 다를바없는 녀자애란걸 누가 모르던가. 그런 도고한 녀자애가 철이, 자기의 뭘 보고 우정의 다리를 놓은것일가? 하긴 1.78cm의 키에 영준한 얼굴을 갖춘 자신이 《백마왕자》라고 해도 무안할건 없지만… 하여튼 모두 좋은 쪽으로 생각했다. 중점대학을 바라고 저녁자습에 혼신을 태우는 철이였지만 이것이 숙이의 은근한 중시를 불러일으켰다고는 말할수 없을것 같았다. 숙이의 믿음으로부터 기운을 더 가지게 되였던것은 더 말할것도 없다.
    《숙아, 우리 인터넷세계속에서 서로 배우고 도울순 없을가?》
    《그 방법이 좋겠어. 그렇게 해?》
    《시간은?》
    《초저녁 6시 좌우, 그담은 밤자습이 끝난후 9시 좌우, 어때?》
    《암호는 뭘로?》
    《푸른강!》
    《무슨 뜻이지? 오, 그래, 오염이 없는 령혼?》
    이렇게 그들 사이의 인터넷세계를 펼쳐가기로 약속한 날은 유난히 별들이 반짝이던 저녁이였다. 그들의 인터넷화면에는 언제나 짙푸른색으로 충만되였다. 켜진 컴퓨터화면으로 하얀 초서체의 글이 상대방의 마음으로 한글자한글자씩 나타날 때만큼 심정이 설레일 때는 없었다. 낮에 배운 지식, 의문, 래일에 대한 타산, 계획, 리상을 설계할적마다 그들 서로의 가슴에 푸른강이 흘러들어 출렁출렁 꿈이 일렁이였다.
    그런데 언제나 있던 암호- 하학무렵의 《푸른강!》, 저녁자습후의 《푸른강!》은 언제부턴가 차츰씩 그 약속의 힘을 퇴색시켜가고있었다. 교정에서의 암호도, 전화로의 암호도 지켜지지 않았다. 대체 무슨 원인에서일가? 어느 댄스에서던가 녀자의 마음은 뜬구름같다던데 혹여 숙이가 다른 우정의 남자친구를 정한것이란 말인가?… 철이는 갈피를 잡을수 없었고 그럴수록 더욱 당황하기만 했다. 갈수록 수미산이라더니 요사이 인터넷을 도무지 켜주지 않는 숙이의 랭철해진 인상에 골이 나고 고민이 쌓여가는 판인데 며칠전에는 한국측으로부터 홍두깨같은 소식이 덜컥 왔다. 어머니가 랭동어창에서 일하다가 심한 동상을 입어 왼손을 절제당할 가능성이 있다는것이였다. 
    집요한 고민과 방황속에 철이는 눈에 띄게 수척해졌다. 한동안 얼마만큼의 풍류객 철이였던가. 세상에 부러운게 없어보였고 여느 애들이나 자기를 쳐다보게끔 살리라 시도해보았다. 그는 통이 크게 어머니가 벌어보낸 돈으로 오천원을 주고 오토바이를 사서 타고 다녔고 천원을 주고 핸드폰까지 사서 찼다. 오늘 우리 생활의 응당한 리듬이 뭐야? 황토길에 옥수수떡이야 아니겠지. 오토바이를 타고 학교 다니고 컴퓨터로 아르바이트하는게 제격이야. 철이는 오토바이에 숙이를 앉히고 두만강으로 낚시질다니는 꿈도 여러번 꾸었다. 
    철이가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게 되자 어중이떠중이 애들이 오구구 모여들군 했다.
    《철이, 오늘 나 급한 일 있는데 좀 태워다주겠어?》
    멋쟁이 미옥이의 속살대는 말이였다.
    《날 태워. 난 너와 함께 절벽이라도 날아내리고파.》
    톱가요가수 선화의 고백.
    《히야- 오토바이를 척 타고서 핸드폰을 받는 모습이야말루 진짜 총경리의 스타일이거든.》
    그럴 때마다 어깨가 으쓱해났지만 숙이가 담담한 표정으로 아무 말이 없는게 유감이였다. 저 애가 왜 저러지? 다른 애들 앞이라 나타내기 저어해 그러는거겠지.
    어느날 아침은 숙이를 태우고 함께 학교가리라 큰 맘 먹고 숙이네 집으로 갔는데 숙이 엄마가 《오, 철이구나. 숙이가 금방 자전걸 타고 갔지.》 라고 해서 헛방을 치고 또 어느날은 숙이의 자전거를 감추어놓고 하학길에서 기다렸는데 숙이가 《얘, 사람 웃겨. 나 삼륜차 타고 간다.》 해서 무안해난 나머지 오토바이를 쥐여박았다. 참, 리해할수 없는 애야. 까다롭긴 생앙쥐야. 녀자란 참 사탕알 쥐고 《요것 봤쭁!》하고 보이고 감추는 한치보기거든. 이렇게 나무라고 듣지 못할 공갈을 하군 하지만 그럴수록 마음은 비여오고 까닭모르게 방황했었다.
    철이는 그날도 전날 밤의 사이키 음악소리가 머리를 빠개는 느낌을 술냄새로 삼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독하다.》와 《뜻대로 안된다.》는 고민을 조건으로 어느 으슥한 골목술집에 들어가 술을 기껏 들이켜고 미친듯이 댄스를 춰댔던것이다. 골목과 포장도로에서 질풍같이 오토바이를 짓쳐댔지만 첫시간이 끝나는 종소리가 녀선생님의 꼬집는 소리처럼 빼대대하게 들려왔다. 대수롭지 않게 교실문에 들어서는 순간, 첫눈에 속이 철렁 내려앉으면서 대번에 눈길이 곤두섰다. 숙이가 박씨같이 하얀 이를 드러내고 앞에 앉은 반장, 룡호와 생글거리고있었다.
    철이는 한껏 마음을 눅잦히려 했고 아무렇지도 않은듯 태도를 수습하고있었지만 그 어떤 소중한것을 앗기고있고 끊어진 분필처럼 높은 교탁에서 굴러떨어지는 처절함이 되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눈에 불이 일고 불끈 쥔 주먹에서 으득으득 소리가 나고있었다.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몰랐다. 배운게 아무것도 없는것 같았다.
    저녁 어스름이 도적처럼 기여들자 철이는 시도한대로 엔징소리를 아츠럽게 내며 시야로 가로등들을 휙휙 날려보냈다. 학교에 거의 이르러 어둑시구레한 곳에서 붙어있는 한쌍의 련인을 향해 주저없이 달려가 머리가 맞대일 지경으로 쏘아보았다. 그쪽에서 볼성사나운 욕설이 나왔다. 
    《누구야? 뭘 볼게 있다구. 미친개눈을 해가지고…》
    룡호와 숙이가 아니였다. 공연히 욕만 뒤통수를 때렸다. 재수없이. 
    교실에 이르니 저녁자습에 온 학생들이 복습준비로 한창이였다. 그런데 암만 봐도 숙이와 룡호만은 눈에 띄지 않았다. 복도를 나와보니 턴넬처럼 캄캄하기만 할뿐 아무런 동정도 없었다.
    《야, 이거 미치겠다, 미치겠어!》
    하마트면 이런 고함이 박산나는 창유리와 함께 복도를 메아리칠번했다.
    그떄였다. 구두소리가 계단을 울리고있었다. 가까이 올수록 그 모습은 룡호였다. 그런데 그 뒤로 나타난 모습이 생각처럼 숙이일줄이야.
    《네 꼴은 밤처럼 거무칙칙하구나.》
    불쑥 튀여나간 첫마디였다. 룡호는 의아한 눈길로 철이를 바라보면서 물었다.
    《무슨 뜻이니? 넌…》
    《무슨 뜻? 네가 모르면 누가 아니? 두꺼비가 고니를 노려…》
    《너 술 마셨니?》
    《술? 네 눈에 내가 술망나니로 보인다 그 말이야? 에익!》
    철이가 날리는 주먹에 룡호는 대번에 낯이 터져 피칠갑이 되였다. 발길질을 해대려는데 숙이가 룡호를 막고 말렸다. 숙이가 철이를 정면으로 하고 입을 열었다.
    《왜 이러냐구, 응? 넌 지금 많이 변하구있어. 예전의 그 철이가 아니라구. 소박하고 열정적이구 뜨겁던 철이가 왜 이래? 무슨 원인이야? 갑자기 리기적이구 퇴페적이 되는건 무엇때문이야? 나 지금 널 연구하고있는중이야… 넌 날 실망시키구있어!》
    철이는 이러는 숙이가 뜻밖이였고 말마디마다 비수처럼 찌르는것 같아 백치처럼 서있었다. 숙이의 눈가에는 이슬이 가랑가랑 맺혀있었다.
    그날 밤, 철이는 밤깊도록 잠들수 없었다. 숙이의 목소리가 자꾸 귀청을 때린다… 철이의 고민은 하루 또 하루를 끈질기게 쫓고있었다. 하기는 그랬다. 실망되겠지. 술 먹고 저녁자습에 고추장 맛보기로 다녔고 거기다가 사람까지 치구. 에익, 이거 언제부터 이렇게 된거지? 내가 변하구있다? 그래 정말 내가 변하구있는거야? 왜 변하구있지? 변하게 된 원인이 뭐지?… 어머니가 출국하기전인 반년전만 해도 난 얼마나 성실하고 순박한 애였던가. 그래, 그때 매일 숙이의 눈길은 얼마나 부드러웠던가. 웃음도 방실, 말도 부드럽게. 엄마가 외국 가기전 부탁대로 지각 한번 없이 등교하고 공부에 열중했잖아. 체육반장이고 기운이 세다고 녀자애들은 나한테 무거운 일을 잘도 맡겼지. 그때마다 자랑처럼 꿍꿍 일을 하고나면 반급애들은 너도나도 부러워했지. 뒤수더기만 긁으며 부끄러워하던 나를 두고 숙이가 제일 즐거워하던 그날그날들. 번개치고 우뢰우는 날이면 무서워하는 애들은 나의 뒤를 따랐고 밤중에도 나를 방패처럼 믿고 따르던 애들, 축구경기때마다 《땅크》라고 응원하고 손벽에 물집까지 생겼다던 숙이네들… 아, 그런데 지금은 걔들 눈길이 왜 그리 차겁지? 평소에 녀자처럼 부끄럼 잘 타던 반장한테는 왜 손찌검했지? 원래의 철이는 도깨비가 물어갔나?… 이 저녁따라 고독하구나. 먹물처럼 흘러드는 저녁어둠속에 연분홍빛 봄바람은 어데로 갔나. 초롱초롱한 별빛은 왜 안보이는거야? 엄마 생각도 났다. 가슴에 손을 얹고 두눈 감고 엄마를 만나러 가보자. 어머니, 그간 얼마나 고생하세요. 손은 어떠세요. 너무 고달프게 지우시는군요. 이 아들의 마음이 마구 미여지고있어요. 뭐라구요? 어머니의 부탁을 저버리고있다구요? 출국하느라 꾼 리자돈도 다 못물었는데 누구의 허락도 없이 마구 돈을 탕진하고 돈으로 신용과 명예를 사려 했다구요? 이게 곧 실망이고 타락이라구요? 어머니의 왼손이 절제된다손 치더라도 오른손으로 이 악물고 벌어 자식의 뒤바라지를 할 어머니라고? 어머니, 미안합니다. 저의 머리가 일순 뜨거워졌나봅니다. 이제 한학기만 지나면 대학시험을 치러야 할 놈이 너무 이르게 자기를 떴다고은것 같군요. 이게 어디 어머니의 아드님다운 짓이겠습니까? 다 쓸모없는 허욕탓이지요. 허욕이 내 전도를 망칠번했어요. 어머니, 보세요. 저 창공에 달이 떴어요. 저 달빛아래서 허욕이 없는 참된 사람으로 걷고싶어요. 그래, 이 저녁부터 책가방 메고 배움의 전당으로 달려가 맘먹고 저녁자습 해야죠. 말하면 한대로 처사하는게 남자가 아닐가요…
    철이는 헛칸에 처박았던 자전거를 닦아서 탔다. 오토바이를 탄것보다 훨씬 마음이 가벼웠고 명랑했다.
    깨끗이 빨고 다리미질한 교복을 입은 철이가 불밝은 교실에 들어서자 애들의 눈길이 달려와 멎는다. 그 눈길들은 차츰 봄물처럼 일렁이며 반짝거리고있었다. 그럴수록 철이는 몸둘바를 몰라 송구스럽고 안타까워났다. 그때 뭔가 연필로 정성껏 초고를 작성하고있던 학생의 책상에서 파란색 고무가 떨어지며 구을러와 철이의 발밑에 머물렀다. 반장 룡호의 고무였다. 철이는 주저없이 그 고무를 주어서 룡호의 손에 쥐여주었다. 마주치는 그들 서로의 눈길은 통쾌하고 서글서글함이 넘쳐나고있었다. 그때 그 장면을 지켜보고있던 숙이의 눈도 반짝 빛났다.
    《푸른강?》
    철이는 자기의 귀를 의심했다.
    《푸른강?》
    그 챙챙한 목소리의 임자는 분명 숙이였다. 사위를 둘러보았다. 교실은 언녕 텅 비여있었다. 골똘히 기하문제를 풀이하느라 동학들이 밤자습을 마치고 돌아가는것도 모르고있은것이였다. 오직 숙이만이 문밖에서 인터넷 암호를 부르고있엇다. 철이는 흐읍, 감동을 먹으면서 《푸른강!》 하고 우렁찬 화답을 뽑았다.
    밖은 유난히 밝았다. 한가슴 달빛을 안고 자전거페달을 힘있게 굴렸다. 집에 들어서자바람으로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을 열었다. 바다색에 비행운같이 흰 글이 또렷이 나타난다.  
    숙이: 철이야, 오랜만이구나. 그새 몇번이나 인터넷을 통하려고 했지만 시종 켜지 않았더구나. 더러 실망했고 뾰로통한 날도 있었지만.
    철이: 사람이란 욕심이 많은가봐. 엄마가 애써 번 돈이란것도 잊고 허욕에 둥둥 떴댔어… 귀신에게 앗겼던 리지를 도로 찾아왔다고 해야 할텐데.
    숙이: 그랬었구나. 되돌아섰으니 더 어엿해보인다. 우리 반급 일이라면 발벗고 나서던 네가 반급 일에 관계치 않으니 생활위원을 겸한 내가 바빴지 뭐야. 생활이 가난하여 중퇴하고저 하는 농촌마을에 사는 경일이 집도 가봐야 했고 차사고때문에 입원한 순이에게도 걱정도 하고 지원도 해야 했었어. 그간, 반장 룡호가 발이 닳게 뛰여다녔지 뭐야…
    철이: 아, 아무쪼록 부끄럽구나. 혼탁했던 내 령혼에 저주를 퍼붓는다…
    숙이: 흘러가버렸어. 이젠 푸르디푸른 두만강처럼 쉼없이 출렁출렁 흘러가야지. 우리는 어머니 대지에 흐르는 푸른 강이야. 대지는 맑고 푸르름을 원하는거 아니니?
    철이: 그래, 흐르자. 쉼없이 바다로 흘러들자!
    밖은 횅창 밝았다. 둥근 달님이 미소하고있는 밤, 그들의 가슴으로 푸른물이 흘러들고있는것이다. 출렁출렁 푸른강은 흐른다.


(연변문학 2002년 제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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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 1 ]

1   작성자 : 김명화
날자:2010-04-08 01:14:39
선생님의 이글이 한국에서 영화로 나왔다고 오늘 인터넷에서 봤어요 왜 일찍 몰랐을가요? 지금쯤 비디오나 CD로 나왔겠죠? 함 찾아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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