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창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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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과의 소통 어떻게 이룰것인가?
2012년 10월 25일 13시 08분  조회:1978  추천:1  작성자: 리창현
           들어가는 말: 목전 조선족 교육의 속성을 두루 살펴보느라면 일면의 소홀함으로 국면이 영향을 받고 있으며 심지어 돌려 세우기 어려운 현실을 만들어가고 있는것이다. 그 주되는 근원은 바로 결손자녀가 늘어나고 교육의 본질을 잃어가고 있으며 서로의 물욕으로는 부유하지만 정신적으로 날로 야위여가는 심성에 끼치는 해를 바르게 돌려세우기 위해서는 부득이 조취를 취하여 최소한 영향을 줄이는것이 목전 우리 조선족교육의 급선무라고 인정한다. –사랑이 결핍하면 모든것이 망가진다. 물질은 임시일뿐 영구한것이 아니다.”
화제에 대한 재사고:
   “좋은 교류는 모든것을 한순간에 개변시킨다

 교류의 핵심: 사랑은 교류의 가장 믿음직한 포장돌이다.

  물질적인 만족은 절대로 사랑이 아니다. 그건 오직 일종의 만족에 그칠뿐이다. 절대로 사랑이라는 매개물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 요즘 우리 조선족들의 삶의 현장을 두루 살펴 보느라면 “소경의 막대질”이 너무 보편적이다. 엄중하게 말하면 교육이 아니라 눈먼 사랑이다. 오직 애들의 만족에 신경을 도사리고 있을뿐이지 애들의 부족점이나 진정으로 바라는것이 구경 무엇인지를 깜깜 모르고 있는 현실이다. 교육에서 금물이 “눈먼 사랑이다”하지만 요즘 애들은 거개가 부모와 함께 생활하는것이 아니라 할머니나 친적집에 얹혀 살거나 아니면 남의 집에 얹혀 생활과 학습을 이어가고 있는 현황이다. 이러다보니 자연 후견인들은 애들이 무엇보다 잘 먹고 무사하면 최고의 교육으로 간주하게 된다. 물질적으로는 근심없이 흘러내리깐 자연 애들의 진정한 교육을 홀시하고 순간의 기분에 의해 좌우지 되고 있으니 이것을 어찌 교육이라고 론할수 있으랴! 이것을 어찌 후견인으로서의 책임을 원만하게 감당했다고 자부할수 있으랴!
사랑을 떠난 교육은 소경의 막대질이나 다름이 없다. 그리고 사랑을 구립시킨다해도 그건 서로의 숨박꼭질이뿐이지 아무런 효득도 없으며 더 나아가서 서로의 기편으로밖에 남지 않는 무서운 장난이나 다름이 없음을 그들은 자각하지 못하고 있으니 안타깝고 답답하기만 하다.
그러다보니 자연 애들의 세계관이나 인생관은 무형의 영향속에서 실속을 잃고 방황하게 되며 때늦은 후회만 저 멀지 않은 언덕위에서 물질의 도가니를 뒤집어 쓴 채 신음을 토하고 있음을 자각해야 한다. 교육은 정말 장난이 아니다. 더우기 물질적인 만족이 아님을 후견인으로서는 자아의식이 급선무라는 깨침이 무엇보다 바람직하다.
여기서 반드시 하나만을 꼭 짚고 넘어가야 겠다. 안 짚고 넘어가면 또 다른 놀라운 결실을 초래할가 걱정스럽다. 바로 애들을 무작정 보도반에 보내는 문제이다. 보도반에 다니는 애들을 두루 살펴보면 학습이나 생활에서 별로 큰 진보를 보이지 않는다. 진보라면 예전보다 숙제의 질이 좀 제고 되였을 뿐이다. 그외에는 남는것이 별로 없다. 글쎄 그 어떤 무형의 제고가 있을런지는 몰라도 현미경이 아니고서는 찾아보기가 어려우니 벙어리 랭가슴 앓는 격이 아닐수 없다. 애들 보도반에 보내는 목적이 명확하지 못하다. 그저 오직 숙제 완성을 위해 보낸다면 그건 되려 애들에게 해가 될뿐 도움이 별로 있는것 같지 않다. 숙제란 자기의 힘으로 능히 할수 있을 때라야 진정으로 지식으로 남는데 말이다. 좀은 부질없는 화제 같아서 할말은 많지만 요만큼만 제기하고 생략하련다.

교류의 징검다리: 믿음은 교류의 징검다리이다.

    믿음은 교류의 가장 믿음직한 조수이다. 믿음을 떠난 교육은 가면의 탈이나 다름이 없다. 진정한 믿음이 생길 때라야 교육이 스스로 탄생을 기하는것이다. 그러지 않고는 아예 부질없는 노릇에 불과하다. 그저 교육자와 비교육자의 언어 장난에 힘들 뿐 남는것은 허구함뿐이다. 여기서 한가지 질문하고 싶은 것은 가장으로서 자식을 구경 얼마나 믿어주는지 알고 싶다. 진정 자식을 믿어주는 부모라야 교육의 연줄을 잡아쥘 권리를 가졌다고 말할수 있다. 다시 말하면 교육의 자격증을 지녔다고 말할수 있는것이다. 하지만 믿음이라서 무작정 믿음은 역시 장님의 코끼리 만지기나 다름이 없다. 그러니 믿음은 그 이상도 아니고 그 이하도 아닌 또 다른 어떤 신성한 매개물일 때라야 진정으로 교육이 바르게 서게 되는것이다. 그러니 우선은 자식을 진정으로 믿어주는 그런 마음 준비가 무엇보다 소중한것이다. 여기서 믿음은 수박 겉할기격이 아니라 진정 마음으로 믿어주고 마음으로 다가서는 그런 믿음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마다 인격이 있는 한 우리는 믿어야 할 의무가 있는것이다. 세상에 자기 자식도 믿지 못하는 사람이 구경 무엇을 믿고 살아 갈가? 자식을 믿지 못한다는 그 자체가 바로 자신을 믿지 못한다는 말과 동위각이 아닐가 싶다. 이제 라도 자식을 믿어주고 진정으로 믿음으로 가득찬 그런 교육의 망을 열어가야 한다. 교류에서 믿음은 서로의 가장 밝고 깨끗한 뉴대로 다가서면서 보다 좋은 교육의 효과를 달성하게 된다. 관건은 누가 먼저 믿느냐에 따라 그 성공의 지수가 높아간다는 말이겠다.
   여기서 각별히 말하고 싶은것은 믿음은 애들의 잠재력 발굴에 그 무엇보다 놀라운 힘으로 다가선다는것이다. 일부 가장들은 너무 쉽게 자식에 대하여 실망의 연줄을 풀어놓는다. 열달이라는 긴긴 잉태도 이겨왔으련만 그 한순간의 어려움으로 자식에 대하여 실망한다는것은 너무도 어처구니없는 노릇이 아닐가하고 질문하고 싶은 충돌이 생긴다. 교육에서 가장 무서운것이 너무 쉬운 실망이다. 무릇 모든 사람들이 실망의 태줄을 풀어놓는다해도 부모로서는 절대로 풀어 놓아서는 안되는것이다. 그리고 부모로서 실망의 태줄을 풀어 놓을 자격이 없거니와 그런 권리도 없는것이다. 례를 들면 전 세계를 놀래운 발명의 왕인 에디슨도 그 당시 선생님들마저 에디슨에 대하여 완전히 실망의 끈을 놓았지만 엄마많은 그 끈을 굳게 잡고 있었다. 만약 그 당시 엄마마저 실망의 노끈을 풀어 놓았다면 아마도 위대한 발명왕이 그저 묻혀버리고 말았을것이다. 이로보아 가장으로서 반드시 자식을 굳게 믿으면서 또 하나의 아름다운 리상을 구상한다면 그보다도 더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은 없을것이라고 믿어보는것마저 너무도 행복하고 행운스러운 일이 아닐가?!
 
  교류의 잔디밭:   공간은 교류의 잔디밭이다.

  서로의 공간의 서로의 발전에 매우 좋은 게기이다. 다시말하면 공간은 서로가 제고하고 발전하는 편하고 포근한 잔디밭이다. 파아란 잔디의 속삭임같은 그런 교류라야 진정 좋을 결실을 물어오는것이다. 그 공간은 넓을수록 좋은것이고 높을수록 편한것이다. 서로의 교류도 중요하지만 그런 교류의 장을 장식해가는 마음가짐이 무엇보다 소중한것이다. 여기서 가장으로서 반드시 명기해야 할것은 애들은 성장하는 과정에 부단히 실수를 하게 되는데 그런 실수를 통하여 보다 훌륭하게 크는것이다.  일단 이런 마음가짐을 갖춘다면 교육은 실상 너무 힘든 일이 아님을 스스로 자각하게 될것이다. 우리는 서로가 제고하고 발전하려면 우선 넓은 공간을 주어야 한다. 그런 공간속에서 우리는 마음껏 호흡도 하고 생각도 하면서 자신을 돌아볼 편안한 기회를 만들게 된다. 실수한 사람에게 될수록이면 질책보다는 공간을 주어야 한다. 그것은 그가 스스로 반성하고 자신을 바르게 세울수 있는 기회를 주는거나 다름이 없는 자랑스러운 노릇이다. 어찌보면 많은 애들은 그런 공간의 부족함으로 자신을 바르게 세울 기회마저 잃게 되고 나중에는 막나가는 현상을 초래하게 되는것이다. 교육의 근본은 어디까지나 용서이지 꾸짖음이 아님을 한 교육자로서는 명실공히 자각해야 한다. 또한 애들의 실수는 더 크려는 욕망이 로출한 일종의 신호이기도 한것이다. 이로보아 성급함보다는 그들에게 자신을 바르게 세울 공간을 충분히 마련해주는것이 교육자의 몫이 아닐수 없다.
이런 공간은 우선 깨끗하고 밝고 명랑하고 신선해야 한다. 더럽고 슴슴한 그런 공간은 절대로 불허이다. 일단 공간의 분위기가 어지러우면 그 교류도 결곡은 아무런 결실을 가져 오지 못할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다.
그러니 교육자는 반드시 보다 넓은 공간을 보다 편한 공간을 보다 높은 공간을 보다 포근한 공간을 보다 배려하는 공간을 만들기에 서둘러야 하고 비교육자는 반드시 교육자의 건전한 구미에 맞게 스스로 다가서도록 연줄을 풀어 놓고 기회를 기다려야 한다. 기회는 수시로 다가서는 것이 아님으로 반드시 순간을 잘 기다렸다가 낚아야 한다. 그래야만 생각과 같은 결실을 가져올수 있고 그 결실로 만족과 행복을 맛보게 될것이다.
나오는 말: 인간이 존재하는 교육은 영원한 주제이다. 이런 주제는 마치 대기층처럼 지구를 둘러싸고 부단히 자전하면서 진정 자신이 해야 몫을 참답게 감당하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모습이 무엇보다 바람직하고 자랑스럽고 행복한것이다. 오늘의 모습에 너무 많은 주름을 만들지 말고 주름이 스스로 펴지면서 주름마다에 뭔가 남실거릴 때를 기다려보자! 기다림도 역시 하나의 멋지고 자랑찬 교육이 아닐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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