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창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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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5    도장 댓글:  조회:2786  추천:1  2014-05-03
인생은 도장찍기 빨간 도장 파란 도장 노란 도장 수없이 찍는다 찍을 땐 몰라도 돌아서면 보이는 그런 도장 둥근 도장 각이 난 도장 수많은 도장 앞에서 커가는 우리네 인생 우리는 도장 이름없는 그런 도장 각이 없이 둥근 그런 도장을 찍을 때라야 도장답게 다가서는 우리네 가슴을 열고 진한 피로 도장을 찍어보자 지우지 못하는 그런 도장을 내 도장을 말끔히 닦으면서.
304    댓글:  조회:3132  추천:0  2014-04-22
문이 생기면서부터 굴이 운명을 달리하게 되였다 그때부턴 굴을 굴이라 하지 않고 다르게 뭐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래도 그냥 굴이 좋아서 굴을 기다리는 존재가 많았다 이젠 굴이 완전히 달라졌다 들어가는 방식부터 다르고 굴앞에 번호가 붙어있고 굴안은 비김에 다망하다 니굴 내굴 하면서 엿보는 세상 그냥 굴이건만 싱거운 세상 문이 사라지면 우리들의 세상도 그냥 어제처럼 편하겠는데 요놈의 문때문에 가슴을 허비는 사람들 요놈의 문때문에 세상을 잃어가는 사람들 문을 부시면 그냥 편한 굴이 되건만.
303    빈잔 댓글:  조회:2701  추천:1  2014-04-14
세월의 콩밭엔 잡풀도 많았습니다 그저 크는 콩에 만족을 하면서 살아왔습니다 크는 콩대에 기쁨을 몰았고 넓어지는 콩잎에 웃음주머니만 흔들거렸을뿐입니다 퍼그나 엷어진 내 인생의 달력앞에서 주렁진 콩꼬투리를 조심스레 뜯고보니 텅 빈 내 인생 맥없이 무너집니다 불어오는 바람에 정처없이 날려가는 인생의 껍데기들이여.
302    준것만큼 기대하라 댓글:  조회:2074  추천:0  2014-04-09
    준것만큼 기대하는것이 삶의 참된 리치이건만 우리들은 늘 그것을 소홀히 여기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아서 후회라는 포물선이 마음의 둔덕을 가리울 때가 한두번이 아님을 절감하군한다. 그럴즈음이면 스스로의 안위를 먼저 치켜들기에 분망한것도 우리가 아님을 부정할수 없어서 그냥 그런 처절한 모습을 지우기에 다망하군한다. 대자연의 품속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그 품을 몰라도 전혀 모르고 있으니 어찌 머리를 쳐들고 가슴을 내밀수 있으랴만 그래도 그런 우리를 따스한 품으로 포옹해주는 자체가 너무도 자랑스럽다. 자연이 항상 주기에 분망한 모습이여서 되려 안으로 뭔가 채워지는것이 아닐가 하는 부러운 마음도 부채살처럼 활짝 펴지건만 그냥 고집을 물고 늘어지는 우리가 구경 얼마나 걸어갈수 있을지 늘 궁금증은 봄날의 옷깃을 당긴다. 가끔은 별도 캄캄한 어느 구석에서 반성이라는 자그마한 마음의 지퍼를 열어보지만 끝내는 열지 못하고 되려 잠그려고 성급해진다. 잠그고난후의 기분은 되려 슴슴하기 그지없다. 세상은 보이지 않는 어떤 구석들이 가장 잘 보이는 곳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우리는 그것들을 늘 외면하려고 모지름을 쓰면서 별스레 다정다감이라는 어색한 장면을 붙들고 서성거리군한다. 그래서 인간이라는 이름자를 달고 오늘도 옅은 물우를 걷고 있는지 모른다. 물의 깊이도 전혀 모르건만 장하게 걸을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준 고마운 사람들의 존재가 나의 존재를 연장시켜주는지도 모르게 고마웁다.     여직 구경 주기에 얼마나 너그러운지 마음의 천평을 드리우느라면 되려 부끄러움에 눈금들은 하나 둘 지워지군한다. 뭐든지 다 줄수 있다고 큰소리 뻥뻥 치면서 장모님앞에서 곱게 키운 딸을 빼앗아 왔건만 오늘까지도 승낙은 미지수로 다가서고 있으니 어찌 내 마음의 지퍼를 마음대로 열어갈수 있으랴? 그래도 마누라는 아무런 투정도 모르고 되려 나에게 뭔가를 더 주려고 아픈 마음을 차곡차곡 접는 모습을 지켜보느라니 얼굴이 얼굴이 아님을 이불깃을 살며시 들면서 알게 되였다. 고생같은건 아예 나의 사전에 없듯이 큰소리는 쏟아났건만 여직 만들어준 고생 또한 얼마였던지 셈에 약해지군 한다. 그래도 마누라는 무던한 마음의 뚜껑을 시원스레 열어놓고 어떤 기대가 생생하게 머리를 내밀고 있다. 그런 모습을 목격할적마다 나는 속으로 백번이고 다짐을 하면서 쉽지 않게 이룬 우리네 터전에 될수록이면 잡초들이 사라지고 향기로운 꽃들만이 뿌리를 내릴수 있도록 정성을 다 하려고 주먹을 움켜쥐기도 한다. 언젠가는 내 마음의 지퍼도 당당하게 열어갈수 있는 그런 순간을 만들기에 오늘 아침도 나는 집안 청소를 열심히 해간다. 잠간이나마 편하게 존재를 만들수 있게금 마누라의 옷깃에 채색무지개를 걸어준다.     부모님께도 정말 해드린것이 너무 헐망하다. 마음은 태산같으나  생각처럼 되여주지 않아서 안타까움은 뿌리를 깊이 내린다. 그래도 부모님들께서 건강하나 좋으셔서 내 마음은 안위를 만들기도 한다. 드린다는것은 실천임을 번연히 알면서도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으니 아픈 마음은 뭐라 형언이 두렵고. 오늘도 만년을 편히 쉬지 못하고 외국땅에서 고생을 밥처럼 드시는 부모님보기에 자식으로서 불효를 절감해본다. 살아 계실적에 효도하라는 말을 모르는건 아니지만 여직 실천에 가난해서 아픈 가슴 쥐여 짜본다. 그래도 부모님은 언제 한번 부러움을 투정한적이 없이 점잖게 한생을 너무도 아름답게 장식해가신다. 부모님께 진 빚낟가리는 점점 높아가고 갚음은 늘 머언 안개속에서 서성거린다.  친구들에게도 무엇을 얼마나 주었는지 마음으로는 퍽 편하지가 못하다. 여하튼 친구가 도움을 청하면 최선을 다하여 능력을 발휘해보았지만 그래도 어딘가는 기대치가 더 높다는생각이다. 그래도 친구들은 아무런 불평도 없이 그냥 그렇게 옛날처럼 따스하게 자리를 만들어주고 길을 열어주고 마음에 드레박을 드리우니 얼마나 편한지 모르겠다. 그래서 항상 친구자랑에 움직임도 바쁠 때가 많다. 한점의 긍정으로도 만족해하는 친구앞에서 자신이 각별히 왜소해짐을 어찌할길이 없다. 그냥 그렇게 편한 친구가 되여주기에 마음의 부자가 되려는 생각을 꼬옥 잠근다. 마누라에게도 얼마나 미안한지 모른다. 하늘도 따줄것처럼 용감하던 자신이 언제부턴가 조용해 지기 시작하였고 고마움의 우물은 점점 깊어만감을 절실히 느끼기 시작하였다. 남들 마누라처럼 심술이라도 부리거나 욕심이라도 왈라당 하고 쏟아놓는다면 정말 너무너무 아픈 일이 아닐수 없다. 그런것을 모르는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이 못난 남편의 허줄한 자존이라도 굳게 세워주는 자세에 얼마나 큰 고마움이 물씬거리는지 모른다. 이제 하나 하나 차곡차곡 장부책에 접어두면서 언젠가는 꼭 가진것만큼 더 주려는 다짐을 만들어본다. 겉으로의 미소가 아니라 안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안온한 그런 미소를 기대하면서 삶의 또 다른 언덕을 향해 새로운 낚시를 드리운다…
301    결혼증에는 유효기가 없다 댓글:  조회:2150  추천:1  2014-03-12
 빠알간 뚜껑부터 마음의 상징이다 정성과 사랑으로 보듬어낸 수정체이다 아픔과 행복이 길을 만들어간다 근심과 걱정을 녹여주는 용광로이다 믿음과 용기를 다져넣은 장독이다 기인긴 령행의 아름다운 통행증이다 그릇은 작아도 하늘도 담는다 두께는 얇아도 땅도 껴안는다 마음과 마음이 페이지를 열어가는 사랑의 징검다리이다 그래서 결혼증에는 되려 유효기가 필요없다.
300    나의 뿌리는 지금 어떤 조각품으로 자라고 있는걸가? 댓글:  조회:1705  추천:0  2014-03-12
     보이는것이 다 좋은것처럼 억지로 움직이는 요즘 세월을 두루 살펴보느라면 저으기 말못할 걱정들이 합수목에서 타래치는 순간을 만들기가 일쑤이다.     뿌리는 쉬이 보여지질 않는다. 매 사람마다 나름대로의 뿌리를 조각해가고 있으나 그 뿌리의 실정은 오직 자신만이 잘 알고 있는것이다. 곁사람들은 그 뿌리에 대하여 이렇다 저렇다 평가할 권리가 없다. 그저 뿌리의 어떤 결실에 대하여 지켜볼뿐이다. 뿌리가 깊든 옅든 상관없이 스스로의 삶의 뿌리를 든든히 내리면서 자신의 울타리를 잘 가꾸면 최고인것이다. 내 용기안의 뿌리는 어디까지 뻗을수 있다는것도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다. 그릇이 커야 뿌리도 깊게 그리고 넓게 뻗어갈수 있지만 어떤 용기들은 차림새가 보기 싫커나 공간이 너무 좁아서 뿌리의 삶에 큰 장애를 만들어가는 페단들도 없는것은 아니다. 하지만 세상은 우리들에게 그만큼 공정한 지구의 공간을 만들어주고 있어서 오늘의 뿌리가 귀찮으면 수시로 새로운 뿌리를 내리기에 바쁜 일면들도 보여지고 있는데 이는 찬성할바가 못된다. 절대로 뿌리에 귀찮음을 만들것이 아니라 그 그릇이 중요하다는말이다. 다시말하면 뿌리가 믿음직하게 내릴수있는 그런 그릇을 만들어야 하건만 쉽게 자신이 내린 뿌리를 탓하는 현상들이 존재하여서 뿌리는 본뜻을 잃어가고 어떤 어두운 구석에서 설음을 당하기도 한다. 하지만 걱정은 그제나마 그 뿌리의 진통을 감안하고 돌아서는 풍경이라면 다소 보기라도 좋으련만 그냥 고집스레 어떤 새로운 뿌리에 도전하려고 혹은 어떤 새로운 뿌리에 매달려보려고 자신의 뿌리와 그릇을 팽개치는 현상이 언제부턴가 일종의 멋으로 다가서기도 하였다. 글쎄 자신의 뿌리가 약하면 가히 어떤 믿음직한 뿌리에 매달려 삶의 충전을 열어가는건 나쁘다고 말할수가 없지만 문제는 그런 단순한 생각이 아니라 그 뒤끝이 너무도 어지럽게 다가선다는 말이다. 오늘은 이 뿌리에 매달려 원래를 뿌리를 조소하거나 비난하는 현상들이 아프게 다가선다. 우리가 어찌 자신이 정성들여 고생과 함께 행복을 꿰매던 그 뿌리를 비웃을수 있으랴!     뿌리는 일종의 조각품이다. 아무도 실물을 들여다볼수 없지만 그 실물의 맨끝에서 열리는 과일들의 모양과 냄새에서도 가히 뿌리의 속성을 어느정도 들여다볼수있는것이다.     이제 우리는 스스로의 뿌리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나의 뿌리에는 행복의 주머니가 얼마나 달려있는가? 나는 이 뿌리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고 있는지? 나의 이 뿌리가 혹시 지금 썩어가고 있는것은 아닌가? 나의 이 뿌리를 누가 지금 정성스레 가꾸고 있는가? 혹시 나의 이 뿌리는 어떤 버려진 뿌리는 아닌가? 남들이 한창 파내고 있는 그런 헐망한 뿌리는 아니가?  뿌리의 진실을 감안하고 뿌리의 맨 끝에 서보라. 어떤 들림이 우리들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줄것이다. 이름난 조각가의 신분으로 자리매김을 하게 될것이다.
299    누굴 탓하랴! 댓글:  조회:2147  추천:1  2014-03-08
힘들다 그리고 아프다 그다음 슬프다 그그다음 멀쩡하다 하늘은 그냥 파랗다 그게 이상하게 싫어진다 땅은 색갈을 잃었다 나는 나를 모른다
298    구경 무엇이 우리 애들을 이모양으로 만들어놓았을가?! 댓글:  조회:2499  추천:3  2014-03-08
    우리 말을 잃어가는 애들의 비참한 모습을 격감한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하지만 교원으로서 진정 그 모습을 가슴으로 받아들이지 못했기에 오늘같은 두려움을 몰아오게 된것이다. 애들에게는 절대로 잘못이 없다. 그럼 그 잘못은 구경 어데서 막을 열었을가?!     우리 애들이 우리 말을 멀리하고 한어를 밥먹듯하는일이 언녕 고질로 되여버렸다. 아마도 이런 현상을 제일 먼저 발견하게 된것도 우리 교원들일것이다. 하지만 산사태처럼 쏟아지는 현실을 오직 교원의 힘으로는 돌려세우기가 엄청 힘에 부치는 일이였다. 여러모로 고민하면서 대책을 강구하였지만 별로 좋은 효과를 가져오지 못했을뿐만아니라 되려 어떤 역풍이 되였는지도 모를일이다. 보기마저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구경 이제와서 그 해결책은 어디에 있는지 모두가 방황하는 모습이다. 모든 병은 시간이 엄중하게 만들어가듯이 우리 애들의 “병”도 어언 오래시간이 만들어낸 악현상이 아닐수 없다. 감각에 둔한 인간의 반응이라할가?     요즘 조선족학교 학생들은 태반이 우리 말을 하는것이 고질로 되여버렸다. 억지로라도 시켜보면 정말 엉망이다. 말을 한다해도 순서가 없고 토가 틀리고 상대방이 알아듣기마저 어려운 표현이다. 교원들은 알심들여 교수를 연구하고 실행하고 있었지만 오늘에 와보면 모두가 헛수고였다. 가끔 중학교 교원들의 하소연을 들으면서 설마 그럴수까지 있을가 하는 의문이 였지만 현실은 이미 증명에 든든하게 다가서고 있다. 입만 벌리만 한족말이다. 그 누가 시키지 않아도 술술 한족말은 그처럼 표달이 잘 된다. 하지만 우리 말에 대한 리해와 장악은 한심하기 그지없다. 한번은 조선어문 교수에서 “호텔”이라는 단어를 제기하고 누가 아는가고 물었더니 백분의 70정도는 두눈만 슴벅이였다. 그래도 올똘한 한 학생이 알고 그것을 인차 한어로 말하니 어쩌면 그처럼 이구동성으로 “아, 그거 !.”하면서 인차 리해하는것이였다. 그 순간은 자랑이 아니라 비감이 앞섰다. 그럼 우리 애들이 오늘의 이 모양은 구경 무엇이 끌고 온것일가?     필자의 옅은 견해라면 우선은 주위의 환경이 초래한 엄중한 후과라고 말하고 싶다.   이런 환경이 우리 애들로 하여금 무의식간에 오늘의 현실을 만들어오게 되였다. 교정만 나서면 모두가 한어로 교제가 가능하니 혼자서 아무리 언어를 고집한다해도 어려운 일이니 아예 한어가 습관화로 다가선것이다. 요즘은 이상하게도 우리 가장들이 별로 잘 안되는 한어로 가정에서 어색하게 대화를 진행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자연 애들은 비위에 맞추느라고 한어를 선택하게 되는것이다. 그리고 텔레비도 그렇고 접촉하는 모든 물건들이 거개가 한어를 위주로 하고있으니 별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필자는 애들더러 가정형편이 괜찮으면 될수록 한국위성을 설치하고 보라고 권장하기도 하였지만 별로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다음은 시험제도의 불완전함이 초래한 후과라고 생각한다. 어느 분야든 상관없이 빈구석이 많으면 그 자리에는 반드시 악현상이 존재하는 법이다. 우리의 시험제도에도 빈구석이 너무도 많다. 이런 현상은 시험을 만드는 전문가들의 실수라고 해도 관언이 아니다. 서면시험이 우세인 중국을 놓고 봐도 능력을 홀시하고있는면이 빈구석이 아닐수 없다. 그리고 한어와 조선어의 시제를 한 초점에 맞춰놓고 생각한다면 그건 오산이다. 한어는 글자공부이고 조선어는 단어공부이다. 한어는 글자를 많이 읽고 쓰면 잘 되여간다. 한어를 잘한다는것이 바로 글자를 많이 장악한것으로 가히 판정을 내릴수있다. 하지만 조선어문은 글자공부가 아니고 단어공부이기에 많이 읽고 외워야 한다. 조선어문의 글자는 아마도 소학교 3학년정도를 다니면 문제없이 다 읽을수 있다. 그러니 글자공부보다는 단어공부에 핵심을 두어야 하는데 현실은 글자공부에 심혈을 엄청 많이 몰붓고 있다. 이런 현상은 불완전한 시험이 초래한 엄중한 후과가 아닐수 없다. 한 교원의 공작에 대한 평가가 학생들의 능력이 아니고 서면시험성적이다보니 자연 이렇게 될수밖에 없는것이다. 이것이 바로 조선족교육의 빈구석이다. 그런 빈구석이 많을수록 그 자리에는 이름못할 슬픔들이 자리를 잡게 되는것이다. 요즘 우리 조선족애들은 정말 많이 쓰고 읽는다. 하지만 그것은 별로 조선어문을 제고하는 가장 바람직한 길이 아님을 잘 모르는 자체가 참으로 안타깝다. 조선어문공부의 핵심을 우리는 단어공부에 두어야 하는데 시험이 그렇지가 아니하니 교원들도 울며겨자먹기로 거기에 응해야하는것이다. 그래도 명석한 교원들은 애들의 능력배양을 초점에 두고 있는데 가져오는 결실은 별로 시원치가 못하니 아예 애들을 일종의 기계로 몰아가는편이 더 나을것같다는 오판이 오늘의 비참한 현실을 만들게 되였다. 할말은 많으나 이만하고 다음 화제로 넘어가련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면서.    그다음은 연극이 꾸면낸 가면의 교수연구활동이다.  우리 조선어문교수연구활동을 참관하면 그 감수가 자못 심각하다. 어쩌면 애들이 그처럼 말을 조리있게 잘하는가가 되려 의심스럽다. 학생마다 손을 들고 말하는걸보면 그 수준이 상당하다. 한국애들과 세워놓아도 별반 차이가 없을정도이다. 하지만 이것이 진정 현실을 보여주는가가 문제이다. 정말 우리애들이 사유가 그렇게 발달했고 언어조직능력이 그렇게 강하며 단어활용능력도 그렇게 우세를 가지고 있는것일가? 아니다. 이는 어느 한 일면을 돌보기 위한 가면술이나 다름이 없다. 그래도 일부 령도들은 웃음주머니를 흔들거리며 만족해하는 모습은 실로 비감이 아닐수 없다. 학생들의 진실은 가면에 들씌워 보이질 않고 보이는건 거개가 연극이니 말이다. 참으로 안타깝고 슬프다.     이외에도 학생과 교원에게도 어느 정도 문제가 있겠지만 우리는 그 누구를 탓할 문제가 아니다. 모두가 가슴으로 받아들이고 마음으로 움직이려는 모습을 만들어가야지 니밀쭉 내밀쭉한다면 우리 애들의 앞날이 저으기 걱정스럽다. 언어는 민족의 옷이건만 이젠 그 옷마저 색바랜 모습으로 다가서니 낯설음은 날로 커만간다. 병에 걸렸으면 전문가를 찾아서 잘 진단하고 그 치료방안에 심혈을 몰부을 때가 온것같다. 우리 모두 하나같이 똘똘 뭉쳐 우리라는 우리를 찾기에 피를 태우는 노력과 뼈를 깎는 움직임이 무엇보다 바람직한 움직임이다.     멀지 않은 래일에 기대여보면 그래도 희망의 탑은 희미하게 보인다.  
297    뒤를 돌아보면 앞길이 열린다 댓글:  조회:2736  추천:2  2014-03-02
    인간의 가장 큰 흠이 바로 고집이다. 옳든 그르든 상관없이 자신의 생각대로 나아가다보면 후회의 포물선에 사로잡히게 되군한다. 분명 이제 더 나아갈 공간이 없건만 그래도 악착스레 구멍을 찾느라고 고집을 놓지 않는다. 가끔 이런 현상을 두고 일부 사람들은 개성이 있다고 말한다. 실상 이런 노릇은 개성이 아니라 자멸이나 다름이 없는것이다.     우리는 가끔 살다보면 앞으로 나아가다가 너무 힘이 들면 잠시 휴식을 취하기도 하고 때로는 뒤를 돌아보는데 이것은 너무도 현명한 노릇이다. 뒤를 돌아본다는것은 부끄러운 일이 절대 아니며 앞으로 나아가는것에 무조건 도움으로 다가설것이다. 무지한 사람은 앞만 보고 달리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무시로 뒤를 돌아볼줄아는 그런 명석함을 지니고 있는것이다. 뒤를 돌아본다는것은 앞길을 더욱 멀리 더욱 넓게 열어가는 노릇이다. 다시말하면 뒤를 돌아보면 앞길이 스스로 열리는 법이다.    사람이 살다보면 어찌 실수라는 전선줄을 건드리지 않으련만 그런 실수를 어떻게 받아들이는가가 자못 중요한 노릇이다. 실수앞에서 앞만 쳐다보면 그것은 실수에 평방을 가하는 우둔한 노릇이지만 실수 앞에서 조용히 마음을 눅잦히고 뒤를 돌아보는것은 실수의 껍질을 바르는 좋은 움직임이 아닐수 없다. 가끔 우리는 자신이 살아온 길에서 말못할 후회의 돛을 올릴 때가 있는데 그 순간만큼 아프고 힘들수가 없다. 이맘 때면 우리들은 가슴을 열어놓고 다시금 걸어온 뒤안길을 열심히 헤쳐보게 된다. 그 순간만큼 세상이 바르게 보이는 순간은 더 없는줄로 알고 있다. 뒤를 돌아봄은 허심한 표현이지만 앞만 바라봄은 어리석음의 표현이다. 오늘의 자신이 어제의 어떤 순간앞에서 이미 무너졌음을 우리들은 자각하지 못했기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말이 나왔나보다.   “ 오늘의 나의 모습이 어제의 나의 행동이 였고 오늘의 나의 행동이 래일의 나의 모습을 만든다.” 참으로 일리가 있는 말이다. 왕왕 우리들은 순간에 빠져 순간을 모를 때가 많은것이다. 순간은 흥분을 만들기에 아주 두려운 존재임을 다시금 마음으로 새김이 너무도 바라직한 노릇이 아닐수 없다. 우리는 래일을 위해 사는것이 아니라 오늘을 위해 사는 가장 순진하고 깨끗한 자신을 세워야 한다. 오늘을 정시함은 래일의 희망에 돛으로 다가서지만 오늘을 무시하고 함부로 움직임은 래일의 희망에 함정을 파는 노릇이다. 이제 우리는 뒤를 돌아보는 지혜를 갖추는 혁명이 무엇보다 소중한 노릇이다. 오늘에 오늘을 깔끔히 정시하면서 오늘의 우리들의 움직임이 래일에 어떤 두려움이나 아픔 혹은 후회의 장단지를 만드는지 곰곰히 사색하는 자세가 너무도 필요하다. 오늘이 편한 삶은 래일의 정답이 아니다. 혹시 오늘의 어려운 삶이 래일에 어떤 놀라운 삶을 잉태하고 있는지를 그 누구도 모르고있다.     오늘의 삶의 논밭을 열심히 돌아보자. 겉만 돌아보는 그런 노릇이 아니라 곡식들의 포기사이에 보이지 않는 어떤 잡초들이 무서운 꿈을 만들고나 있지 않는지 사색이 필요한 계절 3월앞에서 우리 모두 지혜의 주막집을 정성들여 가꿔보자. 뒤를 돌아봄은  래일을 위한 아름다운 준비이다. 절대로 어떤 부끄러움이나 슴슴한 노릇이 아니다. 우리들의 뒤안길이 얼마나 깨끗했는지는 그 누구도 모르고 있다. 이제 우리는 오늘이라는 이 두려운 존재를 다독이면서 그것들이 래일의 삶에 모두 유리한 존재로 다가서도록 손과 발을 부지런히 놀려보자. 동시에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오늘을 배수가 높은 확대경으로 들여다보고 래일은 현미경으로 깊이 들여다보자.     뒤를 돌아보기 안성맞춤한 좋은 계절 3월앞에서 우리 모두 어제를 뒤돌아보면서 오늘의 아픔들을 하나하나 정시하고 한번밖에 차례지지 않는 인생이라는 이 큰 그릇안에 될수록이면 좋은 꿈들을 차곡차곡 접어두면서 수년이 지나도 변질함이 없도록 래일을 위한 정성의 바줄을 단단히 잡아보자.
296    어떤 이상 댓글:  조회:2384  추천:2  2014-03-01
중이 부자들과 불고기를 먹으면서 참이슬을 마신다 중이 생과부와 살을 섞으면서 념불을 외운다. 중이 양복을 입고 중고차를 몰면서 낚시질에 바쁘다 중이 가발을 쓰고 미모의 아낙네와 영상채팅에 밤을 팬다
295    칭찬과 비평 그리고 자랑 댓글:  조회:2539  추천:3  2014-02-26
칭찬, 한점의 해맑은 풀잎의 이슬 하늘이 하사한 사랑의 숨결 땅이 조각한 정열의 포옹.   비평, 한점의 짙푸른 욕망의 타이름 로자가 가르치는 삶의 도덕경 인간이 깎아낸 용서의 진실   자랑, 한점의 검푸른 파도의 실수 륙지가 부셔낸 고통의 메아리 화산이 토하는 다짐의 허물.   칭찬, 행복의 우물이다. 비평, 희망의 돌탑이다. 자랑, 파멸의 진실이다.
294    가까울수록 멀리해야 댓글:  조회:2571  추천:1  2014-02-26
 마음의 가까움은 거리를 산생하고 거리의 가까움은 마음을 열어준다 마음이 가까울수록 사람은 멀어가고 사람이 가까울수록 마음은 멀어가고 사람과 마음은 자석의 남극과 북극 지나친 가까움앞에서 우리는 가끔 뒤를 돌아본다 앞이 희미하기 땜에 뒤를 열어보는것 뒤가 훤한것 거리가 만든것 앞이 훤한것 사람과 마음의 황금분활점 가까울수록 좀은 멀리하면 길은 더 환히 열리고 가는 골목마다엔 지혜가 필요한것 요란한 움직임에는 위험이 들락거리지만 바람직한 운전에는 희망이 꿈꾼다. 사람이 멀어지면 마음은 가까워지는법 사람이 가까우면 마음은 되려 멀어지는것 세상을 산다는건 그 간격을 맞추는 수자가 필요없는 수학공부.
293    아름다운 마무리 댓글:  조회:2014  추천:2  2014-02-25
     서로의 가까움은 두말없이 좋은 결실이다. 더우기 믿음이 날로 박약해가는 요즘 세월에 가까움은 또 다른 별미로 인간세상을 후련하게 만들어간다. 서로 남남이지만 살아가면서 가깝게 지내는 모습들을 지켜보느라면 마음먼저 후더워난다. 사람이 그리운 요즘 세월에 가까운 이웃들이 존재함은 스스로의 행운이 아닐수 없다. 산보도 어깨 나란히 같이 다니고 희사도 좋고 액사도 좋고 모두가 한맘이 되여 서로 손잡고 세월을 주릅잡는 순간들은 고향의 풍경처럼 다가선다. 선조님들의 지혜를 남김없이 빛내여가는 그런 하얀 옹달샘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우기 어려운 일들이 생기면 제집 일처럼 발벗고 나서는 모습도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모른다. 별로 넉넉한 살림이 아닐지라도 서로의 주고받음에는 아무런 미련도 없이 그저 그렇게 행복하고 즐겁기만 한 그런 모습들이 너무도 보기가 좋다. 남들이 산해진물을 집을 때 뜨끈뜨끈한 구들에서 구수한 된장국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 인정을 쌓아가는 모습도 참말로 구수하게만 다가선다. 서로가 서로에게 그 어떤 바램이나 요구도 없이 가슴 시원히 열어놓고 그처럼 편하게 그처럼 다정하게 그처럼 즐겁게 움직이는 순간들도 너무너무 보기 좋다.    서로가 아프면 자신이 아픈것보다 더 걱정하고 슬퍼하는 그런 만남, 서로가 힘들어하면 서슴없이 몸을 내번지는 그런 만남, 서로가 어려워하면 아낌없이 얄팍한 자신의 호주머니를 털어내는 그런 만남, 서로가 서로를 서로라고 여기지 않고 서로가 서로를 서로답게 여기는 그런 존재앞에서 우리는 다시금 마음의 지퍼를 열어야 한다.     진정 마음으로 다가서는 그런 만남, 진정 사랑으로 다가서는 그런 만남, 진정 정성으로 다가서는 그런 만남, 진정 행복하게 다가서는 그런 만남, 진정 편하게 몰아가는 그런 만남, 만남이 만남같은 만남으로 자리를 만들면서 만남답게 만남을 장식하는 그런 만남앞에서 우리는 다시금 마음의 흉벽을 허물어야 한다,     리익을 위하여 만들어가는 어떤 헐망한 울타리가 아니다, 리익을 위하여 펴놓은 어떤 잔디밭이 아니다, 리익을 위하여 파놓은 어떤 두려운 함정이 아니다, 리익을 위하여 가면에 발리운 어떤 얄팍한 웃음이 아니다, 리익을 위하여 찧는 어떤 멀쩡한 방아질이 아니다, 리익을 위하여 흐르는 어떤 오염된 시내물이 아니다, 리익을 위하여 슴슴하게 심어놓은 어떤 농작물이 아니다, 리익을 위하여 세워 놓은 어떤 비석이 아니다…      너무도 평범한 한점의 만남엔 티끌만큼의 오염도 용서못한다. 오염의 빛마저 들어설 자리가 없는 그런 밝은 구석들이다. 만남이 귀하고 만남이 귀함을 만들고 귀함이 서로를 서로답게 만들 때 우리는 또 다른 삶의 지평을 열게 된다.  
292    대각선 댓글:  조회:2112  추천:2  2014-02-20
실수를 일종의 발광이라면 용서는 일종의 무덤이다 실수를 일종의 행위라면 용서는 일종의 그릇이다 실수를 일종의 순간이라면 용서는 일종의 가리움이다 실수를 일종의 매력이라면 용서는 일종의 주검이다 실수를 일종의 깨우침이라면 용서는 일종의 허울이다 실수를 일종의 비도덕이라면 용서는 일종의 둔갑이다 실수가 용서에 기댐은 세상에 근본 용서란 존재가 없기때문이다.
291    길을 말하다 댓글:  조회:2314  추천:2  2014-02-13
낮에 가는 길을 낮길이라하고 밤에 가는 길을 밤길이라하면 앉아서 가는 길은 세월이라하고 누워서 가는 길은 꿈길이니라 낮에 가는 길에는 볼것도 없지만 밤에 가는 길에는 눈풍년이여라 앉아서 가는 길에는 장난도 심하지만 누워서 가는 길에는 어둠만 가득하니라 걸어서 가는 길에는 즐거움이 뛰놀지만 뛰여서 가는 길에는 아픔들이 헤염치고 앞으로 가는 길에는 아침이 보이지만 뒤로 가는 길에는 저녁이 물들었구나. 눈뜨고 가는 길에는 희망이 차넘치지만 눈감고 가는 길에는 꿈이 부서지누나 혼자가는 길은 빠르고 가깝지만 같이가는 길은 즐겁고도 멀구려 뒤짐지고 가는 길은 게으름이 뛰놀지만 손벽치며 가는 길은 이슬이 반짝이누나 큰길에는 슴슴한 색갈이 뛰놀지만 오솔길에는 부모님의 생각이 펄떡이누나 도시의 길에는 분주한 생각이 펄럭이지만 고향의 길에는 아름다운 추억이 꿈틀거리누나. 길에 서서 길을 보면 길이 열리지만 길에 서서 길을 밟으면 길이 길이 아니다. 길은 내 마음에 시원스레 열려야 길이 되지만 마음이 닫기면 길도 벼랑으로밖에 안보이느니라.  
290    무제가 쪼아내 무제 댓글:  조회:2758  추천:1  2014-02-13
     정신적 욕구나 날로 비상하는 이 시기에 우리들의 마음도 퍼그나 커졌고 머리도 많이 뜨거워지고 있는 현실이다. 언제부터 우리들의 마음이 이처럼 놀랍게 탈변을 했는지 실로 궁금하다. 소중함이란 이미 색바랜 존재로 스스럼없이 다가서고 있고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아껴야 한다는 판단마저 두리뭉실하게 다가서고 있다. 이상하리만큼 서슴없이 움직이는 모습앞에서 기우는 마음을 바로잡기가 엄청 힘들었다. 어쩌면 저리도 대범할가하는 비슷한 생각도 가져보고 여러모로 자의 눈금을 의심하기도 하였지만 모든것은 현실임을 절감하면서 다시금 머리를 다독이지 않을수가 없었다. 쉽지 않은 인생길을 함께 하면서 추억도 아담하건만 하루아침에 아무런 미련도 없이 훌훌 집어던지고 홀가뿐하게 흔드는 몸체를 보면서 탄복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처럼 어렵게 키워온 자식이건만 무슨 대단한 마력에 끌리웠는지 한점의 아픔도 남기지 않은채 버리는 모습은 실로 살점을 오려내는 장난이건만 감각마저 둔감하니 래일이 어떨가 하늘마저 두려운 존재로 다가선다. 고생과 정성을 아픔이라는 장독에 차곡차곡 접어두면서 함께 해온 마누라의 존재도 하루아침에 재가 되여 바람마저 두려운 존재로 다가서니 마음의 안쪽에는 무엇이 둔갑하고 자리를 잡았을가 하는 생각에 눅거리 근심마저 파는곳이 없었다. 구멍이 펑 뚫린 비닐주머니는 바람의 성화에 몸부림을 쳐대건만 얄밉게 부푸는 한쪽은 그래도 만족이라는 뚜껑을 헐망하게 쓰고 있었다. 보기 흉하게 기울어진 뚜껑의 존재가 오늘을 말한다면 래일의 아침은 어떠할가 험한 근심이 길거리에 널려있다.     근심을 발로 차면서 노는 재미에 하루해가 짧을만큼 기막히게 다가서지만 초불마저 사라진 방의 구석에는 그처럼 사랑한다고 장담을 치던 안해의 모습이 석가모니처럼 앉아있는다. 말이 없이도 세상을 하나하나 접을줄아는 안해의 지혜마저 이젠 지겨운 존재여서 관심은 전혀 쓰레기만도 못하오니 거미줄로 동여맬 생각마저 텅 비였으니 이제 버림외에는 남는것이 금이간 장독뿐이다.      명랑했던 웃음소리도 이젠 지옥의 바위에 눌리워 신음마저 간간하고 처절했던 모습도 비물에 씻기여 짠웃음만 머얼겋게 머리태를 드리웠다. 손금마다에는 이랑이 깊건만 아픔들이 총랑거리고 한많은 사연들이 보기 흉하게 기여간 흔적마저 두려움에 가리웠다. 비만으로 출렁이는 어느 아낙년의 배살이 파도처럼 다가서고 욕망의 드레박은 쉴새없이 뭔가를 퍼내고 있었다. 아아햫게 말라가는 안해의 육체는 뒤산의 부엉이 울음소리에 숨소리가 가늘고 앞산의 노루새끼들이 먹이를 찾아 마을로 내려왔다. 강남을 포기한 멀쩡한 제비 한마리가 털빠진 날개를 어색하게 파닥거리며 운명의 뒤안길에서 소경의 막대질을 해댄다. 지겨운 술냄새와 담배냄새가 집안을 가득 채우고 침대위에는 네각을 벌리고 자빠진 사체가 욕망의 장독에 머리를 쳐박았다. 말라빠진 두 다리가 허공을 향해 굳어지고 있었고 안해의 여린 두손이 비명을 지르며 마지막 운전에 힘을 쏟건만 고집은 그냥 그렇게 하늘을 삼키려고 발악을 풀어간다.     부뚜막에 옹크리고 누운 딸의 몸체가 운명을 시작한다. 설음과 원한으로 가득 찬 눈길은 동공마저 빛을 잃는다. 살이 빠진 두 발은 따스한 안식처를 찾느라고 발버둥을 쳐대건만 사방은 이미 서리발이 드리운지가 오래됨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딸의 심정이다. 꿈같은 현실은 령혼마저 빼먹지만 그래도 안해와 딸애는 마지막 운전이라도 잡아보려고 썰렁해가는 그 남자의 두다리를 부여잡는다. 랭기로 가득찬 몸체가 이젠 어떤 욕망의 도가니속에서 또 다른 세상을 향해 이발을 뽑아버린다.  허어연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 때 따스한 온기가 쥐구멍에서 뿜겨 나온다…      
289    가정 댓글:  조회:2110  추천:1  2014-02-12
연분이라는 매개물이 공기속에서 반응을 일으켜 스스로 하나가 생긴다 그 순간부터는 모든 매개물과 격리시키고 오직 산소와 이산화탄소의 공존속에서 잡물들이 하나둘 자리를 비우도록 기발을 올린다 하나가 모여 둘이 되고 둘이 다시 하나를 더 산생시키고 그다음 그냥 그렇게 직경은 늘어나고 반경은 다시 줄을 서고 나름대로 움직임을 만들지만 중심은 변함을 지운다 비도 내리고 눈도 날리고 바람도 드리우고 행복도 춤추고 슬픔도 들락거리고 운명의 낚시줄은 쉼을 포기한다 수시로 다가서는 모난곳들을 열심히 깎으면서 둥글게 그리고 또 둥글게 별스러운 원기둥이 원추의 중심을 깎으면서 무겁게 또 무겁게 삶의 저수지를 열어놓는다.
288    인류문명의 발원지는 가정이다 댓글:  조회:1767  추천:1  2014-02-11
     인류문명이 날로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는 이 때 우리는 새삼스레 느끼는 바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가정교육의 소중합입니다. 가정교육이 인류문명의 핵심임을 우리는 시간이 퍼그난 흘러간 오늘에야 다시금 절감하게 됩니다. 가정은 사회로 놓고 말하면 작은 세포에 지나지 않지만 그것이 일으키는 역할은 얼마나 큰지 오랜 세월이 지난 오늘에야 다시금 절감하게 됩니다.    무슨 사물이든 언젠가는 나름대로의 소중함을 드러내는 법이지만 우리들은 항상 뒤늦게야 깨달음을 가져오게 되다보니 아쉬움을 많이 묻어두기도 합니다. 가정이 많이 흔들리는 요즘 세월에 맞추어 사람마다 깨침을 얻게 되여서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릅니다. 모르고 살아온 세월의 자락들을 들춰보느라면 가정이 묵묵히 우리들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력을 끼쳤는지 모릅니다. 우리의 전반 사회가 어느 정도의 문명을 부를 때라야 비로소 느끼게 되는법입니다. 문명이라는 매개물이 우리들의 신변을 다독일 때 우리는 다시금 문명의 발원지를 향해 머리를 숙이게 되는법입니다. 숙여진 머리의 안쪽으로 곱게 드리운 오색의 늪들은 저마다 행복의 미소를 머금습니다. 그러면서 뼈저리게 가정에 고마움을 몰아오게 됩니다. 환한 가정이든 어두운 가정이든 상관없이 우리들에게 얼마나 큰 교육의 드레박을 드리웠는지 가늠이 어렵습니다. 이제야 절실히 느껴봅니다. 우리의 가정이 이처럼 우리들의 삶에 소중한 존재였음을 문명이라는 매개물앞에서 반성의 돛을 올려봅니다. 우리들의 가정이 살아있었기에 우리는 문명이라는 낱말앞에서 허리를 펼수 있었습니다. 그처럼 시원스레 허리를 펴고 세상을 바라볼수 있는 자격을 갖추게 되였습니다. 가정의 지평을 바르게 열어가는 부모와 자식만큼 지혜로운 사람은 따로 없습니다. 조상님들로부터 왜서 그처럼 어려운 여건에서도 가정을 굳건히 지켜왔음을 세월의 주름속에서 뼈속으로 느껴봅니다. 가정이야말로 인류문명의 대문을 열어젖힐수있는 가장 유력한 존재임을 가슴에 손을 얹고 절감합니다.     이제 가정을 지켜가는 부모야말로 하늘아래 가장 아름답고 가장 신성하고 가장 지혜로운 부모님이라는 자격증을 받게 될것입니다. 이 순간 우리 모두 하늘이 무너지는 한이 있더라도 가정만을 굳게 지켜가는 그런 모습을 만드는것이 너무도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청룡의 기상과 함께 높이 높이 울려갑니다.    가정, 인류문명의 발원지입니다. 우리가 인간다운 인간으로 당당하게 살아갈수 있는 그런 문턱을 다듬어주는 너무도 소중한 존재랍니다.
287    영원은 구경 얼마나 멀가? 댓글:  조회:2716  추천:3  2014-02-10
서로의 관계를 단단히 묶어주는 아름다운 낱말 한마디 영원은 구경 얼마나 먼거리를 말할가? 오늘의 영원이 래일일수도 있을거고 래일의 영원히 모레일수도 있을거고 알면서 하는 말인지 아니면 그저 하는 지나가는 소리인지 분명은 뭘 말하려고 하는데 구경 그 거리는 누가 알고나 있을가? 몇초? 1분? 1시간? 1년? 10년? 한세기? 무한기? 영원의 아득한 그 거리는 수자로서의 헤아림이 아니다 생각대로 되여주는 그런 존재도 아닌 마음밖의 어떤 아득한 모색 정성이야말로 영원의 믿음직한 깃털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따라 가는것이 영원을 향한 가장 아름다운 항행인것.
286    댓글과 인간 그리고 문명성 댓글:  조회:2830  추천:12  2014-02-08
    요즘 일부 사이트에 두루 들려보느라면 마음이 서글프게 다가설 때가 한두번이 아님을 절실히 느끼게 되 였다. 많은 한족사이트는 제외하고 우리 조선말 사이트를 놓고 보더라도 참으로 문명성을 잃은 일부 댓글들 이 머리를 쳐들고 있어서 참으로 안타깝다.   그럼 구경 댓글은 무엇을 의미하는 존재일가?   한마디로 말하면 자신의 소박한 견해를 진정어리 마음에 담아서 문명이라는 큰 그릇이 안받침이 되여야 하는데 일부 댓글들은 그 문명성을 잃었고 심지어 어떤 루추한 모습까지 드러내고 있어서 말이 아니다. 대 부분의 댓글들은 아주 문명하고 유식한 모습으로 필자에 대하여 좋은 인도나 가르침이 되고 있다. 하지만 일부 댓글들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그속에 다른 무슨 기미같은것이 보이고 있다는 말이다.    댓글은 그 사람의 마음을 남김없이 깔끔히 드러내는것이 특징적이다. 유식하고 문명한 사람의 댓글은 보 기만 하여도 마음이 후더워나고 신심이 생기고 희망이 열린다. 하지만 일부 소인들의 댓글은 고약한 마음이 기반으로 깔렸고 필자에 대한 어떤 인신공격같은 수단으로 다가서는듯한 느낌까지 주어서 참으로 안타까울 때가 많다. 실상은 아주 신성하고 문명하고 소중한 모습으로 다가서야 할 댓글이건만 일부 댓글들은 둔갑을 당하다보니 참으로 눈뜨고 보기마저 안타깝다.     글과 인간의 동일성이 어느 정도 갖추어진 사람이라면 댓글은 아마도 필자들의 심금을 바르게 울려줄것 이다. 그렇지가 않고 글은 그런대로 쓴다치고 인간의 소질이 저질이라면 댓글은 아마 볼품없는 몰골을 만들 게 될것이다.     우리 필자들은 태반이 글을 쓴 후에 자신의 댓글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 댓글을 통하여 독자 들의 바른 인도와 동감을 얻고 그속에서 보다 높은 차원의 자신을 수립시키려는 소박한 마음을 지니고 있 건만 그것마저 뭉개버리는 어떤 인간의 저질적인 소행은 실로 사이트에 먹칠을 하는거나 다름이 없다. 참으 로 이상하리만큼 리해가 안될 때가 많다는것이다.     가끔 글을 써놓고 들어가보면 기분이 붕붕 뜰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좋은 댓글이 곱게 걸려있기 때문이 다. 필자보다 훨씬 유식한 분이건만 그토록 겸손하게 댓글을 달아주었고 또한 보다 크게 성장할 길까지 시 원스레 인도해주어서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 이처럼 문명한 댓글들을 보면 대부분이 우선은 소질이 상당 한 분들이고 다음은 유지인사들이다. 이런 댓글은 아마 우리 필자들로 하여금 보다 좋은 글을 쓰는데 퍼그 나 큰 힘으로 다가설것이다.    하지만 일부 저질적인 인간들의 댓글을 보고나면 참으로 슬플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우선은 그 인간의 무지를 보여주고 다음은 사람 됨됨이의 차질을 보여준다. 써놓은걸 보면 어데서 봤는지는 몰라도 아주 점잖 은체하면서 아양을 떨기가 일쑤이고 다음은 필자들의 어떤 마음의 구석을 향해 활시위를 당기고 있는 그런 느낌을 만들고 있어서 한심하다. 어찌보면 타인의 인신공격을 그처럼 시원한 노릇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예 감이 들기도 한다. 이런 댓글은 필자들의 마음을 어지럽힐뿐만 아니라 독자들의 깨끗한 심령도 흐리게 될것 이다.    이제 댓글도 관리가 엄하게 다가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무 댓글이나 함부로 올리지 못하도록 단속을 해 야 한다. 인류의 문명이 어느 정도에 도달해야만이 관리가 필요없듯이 우리의 댓글도 언제면 필자들의 아픈 마음을 건드리지 않을가? 그리고 언제면 고차원의 소질을 갖춘 그런 댓글이 진정 필자에게 도움이 되는 그 런 댓글로 다가설가 마음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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