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창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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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5    누구 마음 울리려고?! 댓글:  조회:2705  추천:2  2013-08-11
누구 마음 울리려고 너는 아직도 존재하는거니 누구 마음 울리려고 그냥 거기에 서있는거니 누구 마음 울리려고 그냥 그렇게 행동하는거니 누구 마음 울리려고 옷을 몽땅 벗어버리는거니 누구 마음 울리려고 가면의 탈을 만드는거니 누구 마음 울리려고 함부로  손가락질 하는거니 누구 마음 울리려고 입에 침을 튕기는거니 누구 마음 울리려고 머리를 함부로 쳐드는거니 누구 마음 울리려고 억센 고집 만드는거니 누구 마음 울리려고 함부로 꼬리는 흔드는거니 왜서 일가? 그리구 또 왜서일가? 텅빈 집안에는 질투만 어지럽게 깔려있다. 퍼어런 칼날이 가슴을 향할 때 하늘이 눈물을 흘린다.
224    글감선택에서 가치성의 추구에 대하여 댓글:  조회:1085  추천:1  2013-08-10
     제목의 다각도 분석을 통하여 자신이 쓸 글의 총체가 기본상 륜곽을 이루었다면 다음은 글짓기에서 가장 중요한 환절의 하나인 글감선택으로 넘아가야 합니다. 한편의 작문이 잘되냐 못되냐는 글짓는이의 글감선택과정이 기본상 결정하게 됩니다. 다시말하면 한부의 영화가 독자들의 흥미와 주의를 불러일으키냐 못일으키냐와 마찬가지 인것입니다. 아무리 제목의 다각도 분석을 잘 하였다할지라도 글감을 제대로 선택하지 못하고 시시껄껄하고 슴슴한 내용을 선택했다면 역시 글은 좋은 글로 올라서지 못하게 됩니다. 이로말미암아 글을 짓는 사람들은 글감선택과정을 자못 중요하게 생각하며 많은 힘을 기울이게 되는것입니다. 많은 경우에 이과정에 시간을 많이 소모하게 되는데 그것은 어디까지나 바람직한 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부 학생들은 책임감이 부족하여 그저 생각나는대로 무턱대고 글감을 선택하는데 이런 행위는 자신에 대한 무책임이지만 글을 읽는 독자들에 대한 무관심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글감을 선택함에 있어서 각별히 생각과 마음을 몰부어야 하며 그런 몸부림을 거쳐야만 좋은 글감을 선택하게 되고 좋은 글을 완성하게 됩니다. 부모를 관심할줄 모르는 사람은 친구도 관심할줄 모르듯이 우리는 우선 먼저 자신을 참다운 자세로 관심의 대상으로 만들어야 하고 그러는 과정에 점차 성숙의 이미지를 형성하여 독자들에 대한 보다 큰 존경과 기대를 지니게 되는것입니다. 그럼 글감선택에서 구경 어떤 점에 각별히 중시를 돌려야 하는가? 아래 몇가지로 갈라서 이야기 하려니 귀담아 듣고 자신의 글짓기에서 실천해보도록 합시다. 중점의 첫째: 글감선택에서 가치성에 중시를 돌려야 한다. 한편의 글을 짓는다는것은 헐망한 노릇이 아니며 더우기는 장난이 아니며 더더우기는 우연을 기대하는 그런 행운이 아닙니다. 일부 학생들이 이런 현상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시험이나 경색에서 자신이 쓴 작문이 생가밖으로 좋은 결실을 가져왔을 때 하는 첫마디 말이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 내 그저 아무렇게 썼는데 금상을 받았구나. 허참!” 제딴에서는 시뚝해하는 그런 모습을 만든다고 하지만 실상은 너무도 불쌍한 모습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에 대한 무관심과 독자에 대한 멸시가 결국은 자신을 불쌍하게 만드는 위험한 신호이기도 한것입니다. 기실 이 동무가 말은 이렇게 했지만 실상은 글감을 선택하고 쓰는 과정에 보다 큰 심혈을 몰부었음을 알수 있는것입니다. 독자들의 마음의 세계는 그 무엇보다 밝고 깨끗하고 공정한것입니다. 이로보아 글짓기는 실상 자신의 인격에 대한 보장이며 독자에 대한 존경인것입니다. 더우기 글은 그 사람의 마음을 그대로 보여주는 아주 깨끗한 거울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거짓으로 쓰려고 해도 쓸수 없는것이 글이기도 한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글감을 선택함에 있어서 반드시 가치성에 중시를 돌려야 합니다. 내가 이 글을 통하여 독자들에게 구경 어떤 가르침이나 깨우침 나아가서 도움을 주는가가 매우 중요한것입니다. 여기서 가치성이란 다시 말하면 독자들이 동무의 글을 읽고 아래와 같은 경향을 일으켜야 한다는것입니다. 한편의 글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는 관건적인 뉴대이기도 합니다. 경향1: 부모에 효성이란 근본 모르고 매일을 헐망하게 지내고 더우기는 부모의 불쌍한 그런 마음을 볼줄도 모르는 학생이 동무의 글을 읽고 너무도 큰 충격을 받아 스스로 부모에 효성하려는 다짐을 만들어줄 때 그 글은 가치성을 충분히 발휘했다고 볼수 있습니다. 경향2: 한 사람이 높은 층집 꼭대기에서 자살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것에 이젠 관심을 잃고 죽어야 겠다는 고집으로 자살을 선택했습니다. 아래에서는 행인들이 말리고 부모들이 통곡을 하면서 만류하지만 아무런 효과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때 바람에 종이장 한장이 날려와서 그 사람의 앞에 놓입니다. 그 사람은 무심결에 종이게 씌여진 글을 읽습니다. 그 글을 일고 생명의 중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부모가 나를 오늘 까지 키워주기에 너무도 힘이 들었다고 절감하게 됩니다. 그러면 이 사람은 스스로 자살을 포기하고 열심히 살아야 겠다고 다짐을 하면서 다시 새로운 삶을 시작합니다. 이때 이 한편의 글이 그 사람의 생명을 구해주는 너무도 중요한 역할을 한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글감선택에서 가치성의 중요성을 남김없이 보여준것입니다. 경향3: 아주 잘 사는 집아이가 공부는 뒤전으로 하고 전부 돌아다니면서 나쁜 노릇만 하고 있습니다. 못된 짓이란 못된 짓은 찾아하는 그런 아이랍니다. 그런데 이 아이가 어느날 글 한편을 읽고 놀랍게 다른 사람으로 변하기 시작합니다. 곁에서 보는 사람들도 놀랄만큼 말입니다. 실상 한편의 글이 이 사람의 인생을 개변시켜준것입니다. 이처럼 글은 얼마나 중요하고 숭고한것인지 모릅니다. 이런 숭고한 글을 우리가 무책임하게 쓴다는것은 너무도 부끄러운 일이기도 합니다. 역시 글감의 선택에서 가치성의 중요성을 충분히 체현시킨 글입니다. 때문에 글을 쓸 때 더우기는 글감을 선택할 때 우리는 하나같이 내가 이글을 써서 어떤 독자들에 무엇으로 다가설것이며 독자들에게 어떤 힘이나 용기 아니면 희망을 만들어주겠는를 고려하는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러므로 글을 쓸 때 매 한글자 나아가서 매 단어마다에 책임을 지고 깊은 사색을 거치면서 쓰는 사람이라야 진정한 독자들의 관심과 애대를 받는 그런 사람으로 자리매김을 하게되는것입니다. 특히 글감 선택에서 여러개의 글감가운데서 가장 가치가 있는 그런 글감을 선택하여 마음으로 써야 합니다. 다시말하면 독자들을 얼려넘기려는 그런 노릇 즉 가면의 소리는 피면하고 진정 마음에서 울려나오는 그런 글을 써야만 자신도 흡족하고 독자들도 만족하는 그런 좋은 글이 되는것입니다. 남의 것이 좋다고 무작정 따라하는것은 주장이 없는 갈대의 모습이며 이런 사람은 앞으로 커서도 어떤 일이든 멋지게 해내지 못할것입니다. 그러니깐 자신의 개성을 살려서 그 개성이 돋보이게 써야만 진정 나의 글이 되고 독자들의 심금을 울릴수 있고 독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킬수 있으며 독자들의 높은 평가를 받게 되는것입니다. 가치성 글감의 선택에서 가장 중요한것이 내가 선택한 글감가운데서 진정 내 마음을 울렸고 독자들의 마음에 어떤 뭔가를 줄수 있어야 하고 이 사회에 어떤 리로운 영향을 불러일으킬수 있어야 하며 많은 사람들이 새롭게 깨치고 배우고 느끼고 시작하게 하는것에 각별히 초점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눈사람, 오누이”등을 례로 들수있다. 중점의 둘째: 진실성을 추구하면서 개성을 살린다.   적지 않은 학생들이 진실성을 상실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다시 말하면 거짓마로 꾸민다는 말입니다. 글짓기가 태여날 때 진실성도 동시에 태여나게 됩니다. 그러니 진실성을 상실하면 독자들의 감화력을 잃게 됩니다. 이로보아 글짓기에서 진실성을 확보하는것이 무엇보다 중요한것입니다. 많은 동무들은 진실성을 그냥 회피하면서 쓸데없는 허영으로 완미함을 추구하려고 듭니다. 이런 자세로 글을 쓴다면 절대로 훌륭한 글을 써낼수 없습니다. 여기서 특히 말하고 싶은것은 일부 학생들의 부끄러움을 감추려고 하는것이 보편적입니다. 나이가 어린이깐 잘 모르지만 이제 점차 크면서 절실힘 느끼게 되는게 오늘의 그 부끄러움은 래일에 아주 자랑스러운 일로 자리를 남게 됩니다. 이면은 선생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이제 나이가 들면서 거짓은 피하고 될수록이면 부끄러운 일면을 대담하게 말하고 싶은충동이 생깁니다. 여기서 우리는 절대로 거짓으로 꾸며 쓰려고 들지 말고 사실 그대로를 써야만 독자들의 심금을 제대로 울려줄수 있고 독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마음의 어느구석인가 아주 시원하다는 느낌이 들게 돕니다. 그런데 일부 학생들은 나에게는 그런 글감이 없습니다. 방법이 없이 그렇게 꾸며 씁니다. 이런 말은 어디까지나 얄팍한 허영에 가리운 핑게일뿐입니다. 이를테면 나의 동생이 다른 아이의 동생들처럼 그렇게 잘 생기지도 못했고 행동도 약삭빠르지 못하고 어딘가 좀 모자라는 편입니다. 그런데 그냥 고집스레 다르게 보여주려고 하니 나쁜것입니다. 사실 그대로 쓴다면 다른 아이들이 동무를 조소하는것이 아니라 더욱 높이 보게 되고 동무의 부모들에 대하여 더욱 존경하는 마음을 지니게 됩니다. 그러니 글짓기는 절대로 요란스러운 화장이나 포장이 필요없이 사실 그대로 진실하게 쓰면 좋은 글이 되는것입니다. 엄마가 키가 작고 가마잡잡하고 못생겼으면 그대로 써야 동무의 엄마라는 개성이 보여지는것인데 그냥 고집스레 이쁘게 포장하려고하니 결국은 써놓고 보아도 동무의 엄마도 아니고 옆집 엄마도 아닌 어떤 괴물로 밖에 보여지지 않는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절대로 쓸데없는 허영심을 버리고 사실대로 진실하게 쓰려는 그런 깨끗한 마음을 그대로 쏟아놓는 용기와 신심을 가져야 합니다. 진실성은 한편의 글에서 생명과도 같이 중요한 존재입니다. 이제라도 거짓을 버리고 진실하게 마음을 열고 쓰는 자세를 갖춰야 합니다. 진실하게 쓰지 못하는 사람은 마음의 창을 닫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창이 닫겼으니 어둠밖에 만들수 없는것입니다. 마음을 열고 용감하게 그리고 대담하게 그리고 씩씩하게 글짓기의 발걸음을 옮겨봅시다.
223    글짓기에서 제목의 다각도 분석에 대하여 댓글:  조회:986  추천:1  2013-08-09
    제목의 다각도를 분석할 때 우리는 꼭 제목의 표면상태에 대하여 분석할것이 아니라 그 제목이 내포하고있는 속성의 이미지를 파악하는것이 자못 중요한것이다. 그저 제목의 표면에 머물고 그 표면으로부터 무엇인가를 찾으려하지 말고 그 제목의 깊은 곳을 파헤치고 그 제목이 가지고 있는 또 다른 이미지를 파내는것이 곧 제목의 다각도 분석인것이다. 하기에 우리는 제목을 받은뒤 너무 성급하게 글을 시작하지 말고 좀은 사색의 여유를 가지고 보다 넓은 공간의 울타리를 만들어야 한다. 걸핏 보기에는 제목이 간단한것 같지만 보다 깊은 사색의 여운을 가지고 찾아본다면 생각못한 놀라운 구석들이 퍼그나 많다는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때문에 우리는 글을 지을 때 제목을 보고 천천히 씹으면서 음미하는과정에 보다 참맛을 찾아야 합니다. 이를테면 아주 평범한 한그릇의 채소일지라도 너무 쉽게 채소의 그 맛에 대하여 평가를 내리지 말고 이 채소가 우리에게 주는 어떤 색다른 이미지가 무엇인가를 파악하는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어찌보면 글짓기에서 제목의 다각도 분석이란 글의 성공여부를 결정짓는 매우 중요한 도경이기도 합니다. 례를 들면 하얀 구름들이 온종이 하늘을 떠돌면서 어지럽게 행동하는것이라고 쉽게 평가하지 말고 더우기 구름이 꽉 덮인 하늘에서 비가 내리는 현상을 우리는 그저 얼굴을 찡그리면 짜증으로 다가설것이 아니라 그속에 숨겨진 색다른 이미지를 찾아낸다면 흐렸던 우리의 마음도 금시 밝아오게 됩니다. 이렇게 생각해봅시다. 맑던 하늘에 갑자기 많은 구름이 끼여옵니다. 처음에 구름은 모두가 그렇게 하얀 색갈이였습니다. 어느 정도 하늘의 구석들을 열심히 드나들고 난후에는 모두가 검은색으로 변합니다. 왜서 일가? 그것은 온종이 더러워진 하늘을 말끔히 닦았기 때문입니다. 이제 말끔히 닦았으니 구름들의 몸도 어지러워질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하늘은 그 고마움에 구름들의 더러워진 몸을 씻어주려는 착한 마음에서 한줄금의 비를 뿌려 그들의 어지러운 몸을 말끔히 씻어주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그 구름이나 비에 대하여 다시금 자랑스럽고 고맙게까지 생각하게 되는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글짓기에서 보기에는 한낱 평범한 어떤 순간일지라도 그것들의 어떤 놀라운 구석을 파본다면 우리들의 마음의 세계는 금시 또 다른 세계를 만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니 우리는 사물도 좋고 어떤 현상도 좋고 자연의 어떤 순간도 좋고 모두를 마음으로 다시말하면 심안(心眼)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을 가졌을 때라야 우리들의 세계는 그처럼 깨끗하고 그처럼 자랑스럽고 그처럼 행복하고 그처럼 놀랍고 그처럼 아름다운것으로 다가서는것입니다.  만약 제목 “무지개”를 쓸 때도 마찬가지로 그저 자연현상의 무지개를 떠올리는 고만큼의 높이에 밖에 이르지 못했다면 그 작문은 별로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써놓고도 마음에 썩 들지 않을수도 있게 됩니다. 이런 현상을 피면하는것이 글짓기에서 일종의 재주이기도 합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제목의 다각도로 분석할것인가? 여기서 무지개를 일종의 “징검다리”로 본다면 그 의미가 많이 달라지게 됩니다. 이를테면 반급에서 친구간의 우정의 다리, 가정에서 가족간의 행복의 다리, 사회에서 민족과 민족의 우정을 이어주는 가장 아름다운 징검다리 등으로 분석해본다면 글감이 완전히 달라지고 주제도 훨씬 무게를 가지게 되는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제목을 그저 표면보다는 그것의 속성을 깊이 파고 또 파는 그런 끈질긴 사유정신과 능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생각도 그저 무턱대로 하는것이 아니라 더우기는 어찌는척하는 생각은 아무런 가치도 없는것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수시로 생각의 방향과 깊이를 바꿔야 한다는것을 명기해야 합니다. 례를 들면 “가족사진”이라는 제목을 분석할 때 우리는 근근히 집에서 행복하게 찍은 어떤 가족사진을 글감으로 하여 쓸수도 있지만 생각의 각도를 바꾸어 좀은 놀라운 구상을 가져보는것이 매우 바람직한 일입니다. 이를테면 집에서 찍은 가족사진으로부터 어떤 아픔같은것을 구상해도 좋은 글이 될수있는것입니다. 점점 줄어드는 가족에 대한 갈구나 안타까움을 그려도 좋은 글이 될수 있습니다. 혹은 우리 반급을 가족으로 보고 이 가족을 떠나간 친구들에 대한 어떤 그리움이나 안타까움 혹은 아픔같은것을 그려놓을수도 있는것입니다. 여기서 비록 친구들은 가족사진에서 자리를 비웠지만 그들의 빈자리는 그냥 나의 마음속에 아름다운 비석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고 멋지게 상상할수도 있고 그러는 과정에 정감이 제대로 포착이될 가능성도 큰것입니다. 더아나가서 멋지게 글을 구상한다면 우리 전반 조선족사회를 하나의 가족사진으로 구상하고 날로 줄어드는 가족의 성원에 대한 아픔과 민족사회에 대한 걱정같은 큰 생각을 작은 그릇에 쏟아놓는다면 그 이상 더 좋은 글은 없는줄로 알고있습니다. 또 다르게 전 중국을 하나의 대 가족으로 구상하고 56개 민족을 가족성원으로 본다면 그들의 서로 관심과 사랑을 멋지게 그려놓으면 아주 좋은 글이 될수도 있습니다. 이외에도 더 좋은 구상이 있을것이니 자신의 힘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알다싶이 제목은 이미 글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을 암시하고 있는 매개물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흔히 제목을 보고 이 글에서 무엇을 썼을것이라고 가히 추측을 하게 되는것입니다. 이전의 작문들은 제목을 보고 거의 내용을 맞출수있는데 이런 글들은 상대적으로 낡은 틀에 억매인 글들이여서 각항 경색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기가 어려운것입니다. 이를테면 이런 글들은 대부분이 그저 제목의 표면상태를 분석하고 생각의 깊이가 옅은 상황에서 정성이 부족하고 사색이 결핍한것이 큰 흠입니다. 다시 말하면 제목은 그 글의 령혼이기도 하고 그 글의 이미지 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제목을 대함에 있어서 그저 눈으로 보고 머리로 대충 분석할것이 아니라 그 제목에 포함된 다른 이색적인 일면을 보아내야 합니다. 한그루의 나무를 제목으로 한다고 할 때 우리는 그 나무가 어떻게 생겼고  어떻게 자라는가에 대하여 분석할것이 아니라 이 나무가 외롭게 이 자리에서 말없이 자라는 그 리유는 구경무엇인지? 왜서 옆으로 자라는것이 아니라 항상 곧게 하늘을 향해 자라는 리유는 또 무엇인지? 매일 어떤 마음가짐으로 어떤 생각을 하면서 구경 어디로 가는것인지? 하는 등등의 의문을 가지고 분석에 다가선다면 다른 사람들이 발견하지 못했거나 생각하지못한 어떤 놀라운 구석을 발견하게 되는것입니다. 그러면서 저절로 순간적으로 감탄같은것을 자아내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이 제목의 가장 순결하고 깨끗한 령혼이며 우리가 그것을 틀어쥐고 쓴다면 타인을 놀래우는 그런 기가막힌 모습을 만들게 되는것입니다. 각항 백일장에서 대상을 수상한 아이들의 작문을 읽어보면 대부분이 제목을 놀랍게 분석하였다는것이 공동한 특점으로 다가서고 있습니다. 한 녀학생이 동쪽하늘에 곱게 물든 아침노을을 보면서 구상을 하였는데 순간적으로 붉은 노을을 보고 어느 장난꾸러기 하이가 서쪽하늘에 붉은 주단을 펼쳐놓았다고 놀라운 발견을 합니다. 사람의 힘과 지혜로서는 가능성이 어려운 그런 주단을 말입니다. 그러다가 마지막련에서 학생은 “욕심쟁이 해님이 다 걷어간다”라고 시를 승화시키고 있습니다.  물론 아침에 해가 떠오르면 자연 노을은 사라지게 되는데 자연현상과도 너무도 잘 맞물리는 현상이니 이 학생의 글재주가 정말로 대단한것이라는 평가를 내리게 됩니다. 이 외에서 작년 전국 태환컵글짓기에서 대상을 수상한 최령령어린이 글은 읽는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같이 눈물로 적셔주었습니다. 엄마가 4살에 아버지와 자신을 버리고 떠났다는 설음으로부터 시작하여 엄마에 대한 한점의 증오나 불만이 없이 언젠가는 내가 가장 훌륭한 사람으로 자라날 때 엄마는 꼭 나의 곁으로 다가선다고 자신있게 믿음을 만들어가고있었습니다. 진정 감동이 없이는 읽을수 없는 글이였습니다. 이외에도 많은 훌륭한 글들이 많은데 평소에 스스로 책을 찾아 읽는 습관이야말로 글짓기에서 가장 좋은 밑거름으로 다가서는것입니다. 책은 글짓기를 잘할수 있는 가장 바람직한 존재입니다. 이처럼 제목의 다각도를 바르게 분석한다면 최소한 글은 다른 사람을 초과할수있을뿐만아니라 나아가서 세상을 놀래우는 그런 유명한 작가로 성장할 가능성도 상당히 크다고 봅니다. 그러니 글짓기에서 제목을 본뒤 너무 성급하게 쓸것이 아니라 좀은 사색을 거친뒤 남들이 미처 생각못한 그런 각도를 보아내고 글감을 선정하고 쓴다면 반드시 좋은 글을 쓸수있다고 믿어야 합니다. 제목은 다시말하면 요즘의 화려한 가게의 간판과도 너무 흡사합니다. 가게의 간판이 남달리 새롭고 눈에 띄여야 손님들의 발길을 묶어두게 되는것입니다./녕안시조선족소학교 리창현  
222    인생 댓글:  조회:3352  추천:2  2013-08-08
이성으로 열려진 기나긴  레루 녀자는 샘물 남자는 석탄 늘 쉬지않고 솟아오르는 그런 샘물 오랜 세월 무한한 욕망의 바다 하늘과 땅이 맞절을 시작한다.
221    선물 댓글:  조회:2755  추천:2  2013-08-06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선물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선물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선물입니다. 그 어느 곳에서 살수도 없는 그런 선물입니다. 봄이면 파아란 새싹처럼 해볕물고 뾰족뾰족 돋아나는 귀여운 모습입니다. 엄마의 따스한 손길이 그냥 감도는 자랑의 모습입니다. 아빠의 정성어린 사랑이 향기처럼 피여나는 즐거운 모습입니다. 할머니의 노오란 사랑이 곱게 흐르는 시원한 샘물의 모습입니다. 할아버지의 구수한 옛말처럼 재미나는 드라마입니다. 보고 또 봐도 늘 자랑스럽고 행복한 모습이여서 가는 곳마다에는 기쁨이 남실거리고 꽃들의 향기 새들의 속삭임도 그대로 다 들을수있습니다. 작은 꽃망울이 터치기 시작하여 파아란 잎이 곱게 다가서면 사람들의 손길은 꽃물결마냥 잔잔하게 흐릅니다. 어데가도 늘 활발하고 정다운 눈길이여서 구름마저 잠간 머무는 그런 순박한 모습입니다. 달도 별도 바람도 가끔 편안하게 다가와서 마음의 이야기를 수놓기도 합니다. 그러면 쑤욱 커가는 모습에 집안에는 또 다른 행복이 조용히 내려앉습니다. 꽃의 아름다운 이야기도, 산의 순박한 이야기도, 구름의 다정한 이야기도, 나무의 정겨운 이야기도, 파아란 하늘의 꿈노래 가슴에 피여오르면 서쪽하늘에 곱게 걸리는 무지개처럼 우리 집에도 행복의 징검다리 새롭게 세워집니다. 아, 나만의 가장 소중한 선물! 부모님께서 주신 그 생명이여라!
220    심술(心术) 댓글:  조회:2705  추천:4  2013-08-01
언제부턴가 그 어느날부턴가 어느 순간부턴가 슴슴하게 머리를 쳐든 이상한 존재 삶의 유기력한 존재로 둔갑을 하면서 다가섰다 퍼어런 피발이 선 누우런 두눈에는 푸른 등이 켜졌었다 그 주위에는 비슷한 쉬파리들이 어지럽게 날아옜다 바를 정(正)자는 갉아먹었고 바르지 못할 사(邪)가 성을 갈았다 주위의 공기는 오염에 신음하고 주변의 나무들은 신음을 토한다.
219    어떤 아픔 댓글:  조회:2706  추천:2  2013-08-01
헤여짐은 어떤 만남의 시작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당당하게 만날수있는 그런 헤여짐은 무지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어떤 헤여짐은 그것이 만남의 종지부호로 다가섭니다 어떤 만남을 위하여 우리는 우리를 우리답게 가꿔야 합니다 나무가 산을 지키듯이 우리속의 무엇을 열심히 가꿔갑시다.
218    녕안--강서 류두절행사 댓글:  조회:1705  추천:0  2013-07-23
지난 7월 22일 녕안시 발해진 강서촌에서 제6회 두류절행사가 열렸다.
217    무제속의 무제 댓글:  조회:2868  추천:1  2013-07-21
까아만 눈동자 노랗게 켜들고 어떤 구석을 찾았다 비안의 의미를 신청했을 때 우리는 우리가 아니였다 울렁이는 마음에 아하얀 면도칼이 존재를 휘두를 때 털없는 아픔에 칼날마저 무든다 손은 손이 아니고 눈도 눈이 아니였다 마음은 텅빈 허영을 누렇게 뒤집어썼다 내리는 비가 조금의 안위로 나를 부른다 어디론가 가고싶다 모든 눈길 피해서 내가 아닌 나를 위해 내안의 자물쇠는 속마저 잃어버린 허어연 속물이다 내가 나를 알기전에 나는 두눈을 잃어버린다.
216    슬픔의 한길에는 아픔만이 가득하다 댓글:  조회:1945  추천:1  2013-07-20
    ----  한춘 선생님의 령전에 올리는 말씀        선생님께서 돌아가셨다는 비보를 접하고 아픈 마음을 달랠길이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 무정하다는 원망도 만들어보았습니다.  부랴부랴  버스를 잡아타고 근 다섯시간의 로정을 거쳐 할빈에 도착하였습니다.  채복숙 누님이 신문사앞에서 마중을 하고 있었습니다. 대충 짐을 부려놓고 선생님네 댁으로 달려갔습니다. 많은 문인들이  한창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먼저 선생님께 인사를 올리고 같이 집식구들과 같이 저녁식사를 하였습니다. 크고 작은 설음들이 방안을 가득 메웠습니다.  설음은 내 마음을 모질게 흔들었습니다. 밤12시가 거의 될 무렵 밤제사를 지내는 행사가 시작되였습니다. 김성우 시인님의 주최로 우리들은 저마끔 선생님의 령전앞에 무릎을 꿇고  아픔을 풀어놓았습니다.  너무도 인자하신 선생님의 모습을 보느라니 가슴은 터지는듯하였습니다.  문학애숭이던 저를 그처럼 아끼고 사랑하면서  가르침에 너그러운 선생님의 그 은공 언제면 다 갚아드릴지  아픔만이 가슴을 쳐옵니다.  제가  첫 수필집을 출판하려는 의향을 말씀드렸더니 그처럼 시원스레 책머리말을 써주신지도 어언 몇년이 지났습니다.  이제와서 돌이켜보느라니 선생님께 얼마나 미안한지 모릅니다. 이런저런 경제여건으로 오늘까지 책을 펴내지 못한것이 또한 얼마나  안타까운지 모릅니다.  선생님께서 이처럼 총망히 가실줄을  알았더라면 언녕 방법을 대서라도 책을 출판하여 선생님께 손수 드리지 못한 그 아픔도 저으기 커만 갑니다.  선생님께서 매번다다 저의 원고를 보시고는 꼭꼭 의견을 메일로 보내주시군 하였습니다. 그러는 과정에 저는 얼마나 컸는지 모릅니다.  문학에서 이런저런 어려움에 부딪치면 서슴없이 선생님께 가르침을 청하시면 선생님은 언제나 그처럼 자상하게 도와주군 하셨습니다.  이제 저는 곱절 노력하는 모습으로, 문학의 신성한 길을 열심히 걸어가는 자세로 선생님의 은공에 보답하렵니다.    선생님,  제발 빕니다.  선생님께서 가시는 그 길 그처럼 평온하고 따스하고 행복하시고 건강하시고 즐거우시길 진심으로 기대합니다.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215    돌아서면 아무것도 아닌데?! 댓글:  조회:3252  추천:5  2013-07-15
잡아먹을듯이 달려들던 개들도 돌아서면 아무것도 아니듯한다. 하지만 어떤 구석들은 잡아먹고도 성차지 않은듯이 그냥 그렇게 허비고 뜯으면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서성거린다. 하늘보기 민망하지 않은지 얼굴은 그냥 얼굴이 아니다. 땅우에 서기가 부끄럽지 않은지 눈은 그냥 눈이 아니다. 돌아서면 아무것도 아닌데 하필이면 요지경을 만드는 어떤 구석에는 이상한 냄새가 공기를 흐린다.
214    시험의 이미지를 클릭해본다 댓글:  조회:2090  추천:5  2013-07-10
    국어사전에는 시험의 의미를 이렇게 해석했다.    "재능, 실력, 신앙 등을 실지로 경험하여 봄"    하지만 요즘의 시험은 그 의미를 너무 벗어나 나름대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필자는 소학교의 교원이니 소학교의 시험에 대하여 피력하련다. 응당은 시험이라면 준비된 사람들이 자신의 기능을 능력껏 발휘하는 좋은 겨룸의 장으로 다가서야 하는데 요즘의 시험은 정말 말이 아니다는 생각이 가슴을 칠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어찌보면 요즘의 시험은 너무 헐망하다는 느낌이다. 애들의 기능을 알아보는 좋은 만남이 아니라 애들을 골탕먹이는 일종의 장난이 아닌가 싶다. 특히 소학생들은 이제 금방 어느 정도 인식의 대문을 열가하고 망설이는데 만남이 너무 두려워서 애들은 겁을 먹고 있다. 그러니깐 시험문제를 설계하는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말이겠다.  솔직하게 말하면 복습을 잘하고 시험은 애들이 복습한 상황을 료해하고 거기에 비춰 출제를 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가 않고 어딘가 애들의 마음을 우롱하려는 일종의 목적도 슴배여있다는 생각이다. 그럼 구경 시험이란 어떤 존재로 다가서야 하는가?  애들은 한학기동안 정말 공부를 하느라고 고생을 엄청 한다. 하지만 종당에는 한장의 시험지로 모든것을 가늠하는 존재로 다가서는데 시험이 너무 애들을 힘들게 한다면 거기에서 우리는 무엇을 바라는걸가?      고생끝에는 응당 락이 물씬거려야 하건만 현실은 그게 아니고 두려움과 걱정이니 정말 안타깝기만 하다. 시험이란 진정 애들의 기능을 알아보는 일종의 수단으로 다가서야 하는데 요즘의 시험은 기능을 알아보는것이아니라 애들의 어떤 구석을 찾아보려고 애쓰는 경향이 너무 크게 다가서고 있다. 그리고 시험은 응당 교재를 기본으로 하면서 어느 정도 좀 연구를 거쳐 애들의 실정을 헤아리면서 만들어져야 하는데 생각보다 훨씬 다른것이 좀 이상하다. 필자의 생각에는 시제라면 응당은 백점을 공제하고 락제를 돌보는 현실을 감안해야만 최고의 효력을 보아낸다고 생각한다. 확실한 견해인지는 몰라도 그래도 비교적 과학적이라고 고집하련다.  특히 소학생들의 시제는 애들의 심리를 바르게 료해하고 그 심리특점에 맞게 시제를 만들어야 한다. 어디서 엉뚱하게 만들어놓고 제딴에서 만족하는 그런 모습은 정말 꼴볼견이다.  이제 우리애들의 시제가 탈바꿈을 하여야 한다. 두려움의 탈을 버리고 애들이 신심을 가지고 필을 들수있는 그런 시제로 탈바꿈을 하여야 한다. 어느 옛날의 교재를 보면서 시제를 내는 그런 헐망한 모습도 이젠 사라져야하고 출제하는 각도에서 반드시 그 누구보다 교재에 대하여 손금보듯하는 그런 존재라야 그 가능성이 크고 가치가 큰것이 아닐가?! 더우기 우리 조선족은 결손자녀가 어느 민족보다 우세를 차지하는 현실인데 힘든 로인님들의 고생에도 어느 정도 빛이 다가서면 보기좋은것이 아닐가? 그렇다해서 시험을 너무 쉽게 만들라는 말은 아니다. 반드시 좀 연구를 하고 과학적으로 시제를 만들어라는 권고뿐이다.   애들의 여린 심령을 건드리는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님을 명기하라!
213    어떤 아픔 댓글:  조회:2282  추천:1  2013-06-20
풀나는 인정에는 진한 그리움이 깃을 편다 뾰족뾰족 아픔이 돋아오르면 마음속엔 한줄기의 강물이 길게 흘러 흐른다 슴슴한 기억속에 아지랑이 물결치면 달님은 해님을 희롱한다 그 진한 여운의 맨끝엔 어떤 아픔이 지독하게 옷을 벗는다.
212    원점(原点) 댓글:  조회:2468  추천:2  2013-06-16
 까아만 점으로 존재하고 무점으로 물러서는 고달픔으로 가득한 어설픈 이야기들 점들은 질서없이 움직이고 점을 찾아 정처없이 헤매고 사방엔 점들이 욱실거리건만 낸 눈에 점이 보이질않네 점으로 시작하여 점을 찾는 그 과정 기나긴 세월 주름잡으며 점을 줏는 그런 인생 힘들고 지치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또 다시 원점에서 시작하고 그러다가 쓰러지면 또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수많은 후회와 부끄럼들이 원점의 주위를 곱게 장식한다.  
211    친구여, 꽃잎을 즈려밟고 가시라! 댓글:  조회:2012  추천:3  2013-06-15
   친구가 병으로 갑자기 돌아갔다는 비보의 소식을 접하고 나는 그만 그자리에 무너지고 말았다. 여직 살아오면서 이처럼 청천벽력의 소식을 접하기는 처음이다. 아픔이 그토록 사품치며 흘러보기도 처음이다. 나는 떨리는 가슴을 붙안고 부랴부랴 차를 잡아탔다. 차가 달리는 동안 쉴새없이 흐르는 눈물을 감출길 없었다. 전날 아침까지 전화통화를 한 친구가 이렇게 갑자기 돌아갔다는 자체가 좀처럼 믿어지질 않았다. 늘 인자하고 명랑하던 친구가 이렇게 총망히 가실줄은 정말 꿈에도 생각지 못할 일이다. 갈기갈기 찢기는듯한 마음을 달래면서 친구가 모질게 그리워났다. 한번 가면 돌아오질 못할 그 길을 택한 친구가 너무도 무정하다는 생각도 마음을 붙잡고 놓지를 않았다. 전혀 믿겨지지 않는 현실앞에서 나는 몇번이고 친구의 이름을 되뇌였다. 기어이 친구의 령구를 보고서야 정말 돌아가셨음을 확인하려는 고집이 그냥 마음을 붙잡고 아픔을 놓아주지 않았다.    진정 마음과 마음으로 인생을 풀어온 그런 가까운 친구이다. 언제 한번 얼굴을 붉힌적도 없이 그냥 그렇게 편하게 지내온 너무도 소중한 친구이다. 늘 서로를 관심하고 아끼면서 살아온 너무도 소중한 친구이다. 문학에 남다른 흥취를 가지고 있는 친구는 진정 손색이 없는 문인으로 당당하게 살아왔다. 문학에 남다른 천부적인 재주를 갖고있는 너무도 아까운 친구이다. 주옥같은 시들을 륙속 세상에 내놓으면서 조선족문단의 드높은 인정과 자랑 나아가서 민족의 긍지로 다가서기까지 하였다. 빈틈없이 깔끔하게 씌여진 수필들을 읽으면서 수많은 인생의 도리를 깨치게 되였고 친구의 깨끗한 마음의 세계를 편안하게 들여다볼수가 있어서 너무도 자랑스럽던 친구이다. 한편의 글을 완성하면 꼭꼭 나한테 보내와서 함께 즐기던 친구를 잃었다는 그 아픔만으로도 시간은 얼마나 흘려야 할지 생각은 캄캄하기만하다. 언제보나 조용하고 인자한 그런 너그러운 모습으로 자신의 일상을 충실하게 가꿔가던 자랑찬 친구이다. 흑룡강성 어학회에서 조직한 우리 말과 글에 대한 론문이 대상을 수여받았고 수상하는 그 자리에서 상금 3000원에서 1000원을 어학회에 내놓으면서 성의를 내비치던 그런 남자같은 친구이다. 이제 이런 친구를 더 찾을수가 있을지 가슴은 모질게 아파만 온다. 비여가는 친구의 그 자리엔 아픔만이 꼬올독이 들어선다. 남들과 언제 한번 싫은 소리 한마디 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그처럼 알뜰하게 가꿔가던 친구이다. 그래서 아픔은 더 크게 다가서는지도 모른다. 정말 친구에겐 아까운것이 너무도 많다. 40대라는 너무도 안타까운 나이, 문학에 남다른 천부적인 재주, 인간관계에 대한 해맑은 처사, 부모에 대한 지극한 효심, 친구들에 대한 다함없는 아낌과 사랑 그리고 믿음, 자식에 대한 뼈절인 사랑…  친구를 보내고나니 더 많은 아픔과 후회가 끊기질 않는다. 이렇게 당돌하게 가실줄을 알았더라면 생전에 좀이라도 더 관심하고 편하게 대해주질 못한것이 가슴에 걸려온다. 가끔은 수업시간에 전화가 걸려오면 아무런 주저도 없이 전화를 끊어버린 그 행위에 오늘은 아픔들이 후회의 깃을 물고 놓아주질 않는다…  정말 그립다, 친구야! 그리고 너무너무 미안하다! 못다한 그 정성 래세에 다시 만나 갚아드리련다. 힘들었던 모든 부담들을 깡그리 털어버리고 그쪽에서 보다 건강하고 행복하게 그리고 하고 싶던 일들을 더욱 빛나게 해나가길 진심으로 기대한다.  하늘 아래 둘도 없는 자랑스러운 친구야, 가시는 길에 꽃잎을 즈려밟고 가시라!                                               
210    슬픔의 맨 끝엔 그리움이 아프다 댓글:  조회:1812  추천:1  2013-06-14
  그처럼 가깝게 지내던 친구가 수많은 아픔을 묻어둔채 영영 곁을 떠났다 머언 그때에 하나라도 더 챙겨주지 못한 그 아픔 내 마음의 언저리에 무겁게 걸려있다 아직은 너무 이른 그 길 가는마음도 아프련만 보내는 이 마음 어찌 언어로 형언이 될수 있으랴! 한생을 너무도 힘들게 살아온 친구 그 아픔 채 쏟기도 전에 이렇게 당돌하게... 우리는 아직도 할말이 넘도 많고 해야할 문학의 우물도 퍼그나 깊은데 아픔은 처마끝을 꽁꽁 동여매놓고 조용히 떠나간 친구가  너무너무 불쌍하고 안타깝다 전혀 믿겨지지 않는 그런 아픔이 내 마음을 슬프게 다독인다 친구야,  가시는 길에 꽃잎을 즈려밟고 가시라! 친구의 명복을 두손모아 빕니다!  
209    ?! 댓글:  조회:2371  추천:1  2013-06-04
자신을 알기란 헤염쳐서 바다 건너기 타인을 알기란 누워서 침 뱉기 안다는게 곧 모르는것 모르는게 때로는 아는것 알고 모름이 중요한게 아니라 모르면서 아는게 지혜로운걸 누가 누구를 안다는건 소경의 막대질 알기에 치우치면 자멸의 시작 모르기에 무던하면 행복의 시작
208    차이 댓글:  조회:2736  추천:1  2013-06-04
사람과 사람 생각과 생각 마음과 마음 귀와 귀 눈과 눈 입과 입 코와 코 손과 손 발과 발 가슴과 가슴 말과 말 행동과 행동 무슨 차이가 존재할가? 보이는건 믿음이 없구 믿음엔 실망이 동반하고 차이란 일종의 허영이 아니라 부질없는 일종의 감춤인가?!
207    아픔 댓글:  조회:2530  추천:1  2013-06-02
아침이 쪼아낸 한쪼각 추억 온 종일 내 마음 흐려진다 엄마의 구겨진 손끝은 눈물이 폭포를 만든다.
206    수박 잃고 깨알 줏기 댓글:  조회:2046  추천:2  2013-06-02
  가지고 잃는것은 자연의 섭리라고 쉽게 받아들이고 있지만 구경 무엇을 가지고 무엇을 잃는가에 따라 그 엄중성에 우리는 부득이 사색을 기울이지 않을수 없는것이 목전 우리 애들의 우리 말을 잃어가고 있는 가슴아픈 현실이다.  학년이 높아감에 따라 응당은 우리 말을 더욱 능란하게 리해하고 활용해야 함이 자연의 법칙이건만 그렇지가 못해서 늘 안타까운 마음 달랠길이 없다. 억지로는 절대 근본을 해결하지 못하기에 여러모로 방법을 구상해보지만 시원하지가 못해서 얼마나 걱정스러운지 모른다.  조선어문수업시간에도 억지로 조선말을 하도록 요구를 하건만 애들은 꿀먹은 벙어리처럼 어찌할 방도를 모르고있으니 도대체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생각은 캄캄하다.  이상하게도 조선말로 모르지만 한어로 슬쩍 쳐주면 인츰 알아듣는것이다. 자신의 가르침에서도 늘 반성을 하면서 문제를 찾아보건만 너무 어려운 작업이라는 생각이다. 꽤나 긴 시간동안 사색을 굴러보던차에 떠오르는 생각 하나에 믿음이 선다. 예전에는 한족말을 몰라서 걱정이 였건만 지금은 조선말을 몰라서 걱정인것이다. 그 주되는 원인은 바로 요즘 교육의 환경과 갈라놓을수 없다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농촌마을마다 학교가 있었고 거개가 조선족이다보니 한족말을 하는걸 보면 너무도 자랑스러웠지만 요즘은 완전히 달라지고 있다. 바로 애들이 생활하는 환경이 만들어낸 후과가 아닐수 없다. 요즘 농촌학교는 거의 문을 닫고 많은 아이들이 현성의 학교에 와서 공부를 하는데 대부분이 한족이 위주인 아빠트에서 생활하다보니 언어환경은 절대다수가 한족말이다. 이렇게  환경의 영향으로 말미암아 우리 애들은 조선말을 되려 외국어로 생각하고 한족말을 더 능하게 하고있으니 이제 그 후과를 어떻게 짐작할지 가늠마저 두렵다.     이제 애들이 능란하게 우리 말을 할수있는 가장  바람직한 자세는 구경 무엇인지?! 우리 모두가 하나같이 가슴아파하고 그 해결방안에 마음을 쏟아야 할 때가 된것같다.  이는 오직 소학교 조선어문시간으로 해결이 불가능한 일이기에 전반 사회가 관심을 모으고 바람직한 해결방안을 연구함이 무엇보다 기치있고 보람있는 일이 아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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