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창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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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    불공평 댓글:  조회:2483  추천:0  2013-01-09
미녀의 얼굴은 기미마저 이쁘다고 다사스럽다 못난 내얼굴은 기미마저 흉하다고 코웃음을 흘린다 어떤 원망 비슷한 하소연이 어둑진 내 마음의 구석을 아프게 허빈다.
144    남자와 담배 그리고 녀자 댓글:  조회:2618  추천:0  2013-01-08
   희미한 탁상등 아래서 안해 모르게 슬그머니 해보는 생각이다. 그도 그럴것이 자꾸만 담배때문에 바가지를 긁는 형편이다. 그런데 그 잔소리가 조금도 싫지 않다. 그녀가 앵앵거릴 때마다 슬쩍 웃어 넘기는 그 이 참으로 힘겹다. 하여 오늘 마음속에 가두었던 아픔을 툭 털어보련다. 그럼 남자에 대하여 이야기하련다.     남자란 광의적인 의미에서 해석한다면 지구밖의 주인이고 협의적인 의미에서 해석한다면 집밖의 주인이다. 이처럼 남자의 관심범위가 넓다는 말이다. 즉 해야 할 일이 끝이 없고 할 일이 태산같다. 일부 녀성들은 남자를 아주 헐값으로 친다. 주제넘게 하는 소리, 라고 하는 말을 들을적마다 속으로 (그럼 이제라도 당장 수술을 하여 남자노릇할거지)하고 툭 쏘고 싶다.     남자들은 모든 일을 절대로 조르지 않는다. 아무리 힘든 일도 그 넓은 마음에 척 가두어넣고 하나하나 정리하면서 일을 해나간다. 서영빈선생님께서 말씀한바와 같이 는것이다. 그래서 남자들의 사유는 언제나 믿은직한것이다. 이밖에도 남자의 우점이 부지기수이지만 녀성들이 슬퍼할가봐 근심이 앞서기에 다음 화제로 넘어간다. 담배하면 백에 구십의 남자들은 찬성이다. 슬플때 , 고독할때, 아플때, 언제든지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그 담배가 떨어지면 참으로 슬프기 그지없다. 당장 사려고 해도 하던 일이 차단될가봐 참고 있노라면 정말 애가 탈 때가 많다.     담배가 인체에 해롭다는것을 모르는것도 아니지만 정말 딱 필요할때 적당하게 가까이하는것도 참 기가 차게 멋지다. 또한 담배도 시름놓고 피우는것보다 안해의 눈치를 피하면서 슬그머니 피우는 담배가 더 맛좋다. 그래서 안해의 그 잔소리가 싫지 않은지도 모른다. 련애도 가만가만 피해서 하는것이 더 재미있는것이나 같다. 담배는 언제나 군소리 하나 없이 아픔을 덜어주고 슬픔을 녹여주고 고통을 씻어준다. 참으로 고마운 존재이다. 하여 나는 담배를 사랑한다. 담배와 헤여질수 없으리만큼 영원히 신변에 항상 두고 싶은 마음이다.     담배와 인연이 없는 사람은 별소리 다 한다는 생각이 들가 근심되여 다음 화제로 녀자이야기로 넘어간다.     남편앞에서 아양을 떠는 녀자는 거개가 참말로 귀엽다 헌데 남편아닌 남편같은 사람앞에서 아양을 떠는 여자는 참으로 얄밉다. 어찌보면 녀자는 담배와 같다.  남자는 항상 담배를 불태우는 그 자체이다. 그 미묘함에 아름다움에 인자함에 못이겨 항상 가까이에 두는것이다. 하여 슬프고, 고통스럽고, 고독할 때 한마음이 되는것이다. 아픈 곳을 소리없이 만져주는 그 자체가 고맙고 사랑스러워 영원한 그 사랑이 존재하는것이다.     남자가 담배를 즐기는데 꼭 필요한것이 있으니 즉 한가지 담배만 피우라는것이다. 소부분의 남자들은 호주머니에 돈이 좀 생기면 우선 고급담배부터 태울 생각을 한다. 그래서 담배를 자꾸 바꾸는 남자는 녀자도 바꾸고 싶은 생긱이 있는 남자이다. 혹간 명절이 되면 안해가 별다른 고급담배를 사다주는데 그 뜻인즉 자신을 더 아껴 사랑해달라는 부탁이다. 참으로 귀엽고 사랑스러운 녀자의 상징이다. 헌데 요즘 가짜 담배가 많아서 참 골치 아프다. 이러고 보면 남자는 평생에 두가지 담배를 피우는셈이다. 기하학에서 한 평면우에 두 점이 한직선을 결정한다. 그럼 세점이 결정한 직선이 두 점이 결정한 직선보다 더 믿음직하고 영원하지 않을가?
143    너를 사랑하기에는 자격이 없었다 댓글:  조회:2732  추천:5  2013-01-07
너와 내가 처음 만난것은 어느 시골길을 달리는 삼륜차에서였다 하늘의 세례를 받은듯이 우리 둘만이 손님이 였었다 그래도 흡족해하며 운전에 최선을 다하던 그 운전수의 모습이 ' 아직도 나의 눈시울에 드리운다 서로가 눈길을 피하느라 무진 애를 써가지만 이상하게 눈길은 너를 피할길 없었다 슬금슬금 너를 훔쳐보느라니 뛰는 가슴 속일수가 없었고 무너지는 마음을 달랠길 없었다 가벼운 미소로 얼굴을 더듬으면서 기분좋은 시골길에 추억의 씨앗을 뿌렸다 우리의 인연은 이렇게 막을 열었다 3원이라는 적은 차비가 너와 나의 마음을 동여주었다 처음으로 남자라는 이유를 만들기도 하였다 이렇게 너와 나는 3원에 묶이워 사랑의 우물을 파기 시작하였다 보고 또 쳐다봐도 늘 보고 싶던 너 우리는 시원한 운동장의 가운데서 달과 별과 만남을 이어가면서 떨어질수 없는 추억의 쪽문을 꽁꽁 잠그었다 그러던 우리가 부득불 헤여져야 하는 리유앞에서 나는 아픔마저 잃어버렸다 나를 버리고 떠나는 네 앞에서 나는 할말을 찾지 못했다 근본 할 말이 없었다 말의 주머니는 텅 비여있었다 나를 붙잡고 하염없이 우는 너를 보면서도 나는 그냥 벙어리로 되여버렸다 그게 되려 너에게는 편한것같았다 이렇게 우리는 헤여지고 말았다 오리오리 찢기는 사랑의 지게앞에서 나는 나를 잊어야만 했었다 나는 나를 버리고 말았다 그 리유를 구태여 더 묻고 싶지 않았다 그 누구도 묻는 사람이 없었다 이렇게 우리는 하늘 향해 가슴을 찢었다 아무런 아픔도 감안하지 못한채 썩어가는 가슴앞에서 나는 나를 작은 무덤앞에 세웠다 비석도 없는 그런 무덤앞에는 노오란 민들레 한송이가 나를 향해 미소 짓는다 나의 몸체가 서서히 빠져들어간다 유난히도 밝은 한쪽각의 령혼이 남쪽하늘을 향해 날개를 접는다 너를 사랑하기에는 진정 자격이 없었다 아니 그런 자격을 나는 찾지 못했었다  
142    고독의 그릇위에는 내 설자리가 없었다 댓글:  조회:2318  추천:2  2013-01-05
꿈같은 어떤 현실의 구석을 파헤치느라 수많은 인정의 무덤을 깊이 파놓았다 무덤우에 어설피게 피여난 유혹의 꽃다발 그걸 향해 게걸스레 어떤 질투의 피발이 갈기갈기 찢기는 보기 흉한 도살장 그런 페허속에서 나는 고독을 묻었다 웃음속에는 예리한 칼날이 서있었고 그 칼날에 말라붙은 어떤 령혼들이 넋을 풀어헤치고 살판치는데 한줄금의 고독이 세척을 비명한다 사처에 걸려있는 꽃다발들이 질투의 그릇위에서 침을 토한다 어둡고 침침한 어떤 구석에서 가련한 령혼이 아침을 노크한다 고운 인정이 머리태를 풀어가면서 야윈 마음에 산소를 선물한다 굉장히 큰 어떤 그릇위에서는 이상한 모습들이 혀를 씹는다.  
141    무제 댓글:  조회:2447  추천:0  2013-01-03
먹는것은 음식이지만 분비되는것은 설음이다. 먹는것의 맨 끝에는 늘 아쉬움이 서리고 분비되는것의 맨 끝에는 눈물이 서린다. 까마귀 울어도 슬픈 날 따로 없고 까치가 울어도 기쁜 날 따로 없다. 넓은 운동장에는 내 자리가 없고 작은 사랑방에는 초불만 밝게 비친다.
140    녕안시조선족문학가협회 2012년 년말총화 댓글:  조회:2519  추천:1  2012-12-16
                                                         뿌리 깊은 나무는 쉽게 드놀지 않는다       고독의 뿌리를 파헤치고 줄기마저 잘근잘근 끊으면서 열심히 가꿔가는 그런 신성한 나무앞에서 우리는 가끔 머리를 깊이 숙이고 자신을 되돌아 보게 된다. 갈길은 구경 어디인지? 도대체 어디까지 가야 하는지? 내가 가는 리유는 무엇인지? 왜서 반드시 이 길로 가야하는지? 하필이면 다른 길도 아닌 이렇게 힘겨운 일을 선택해야만 했던지 하는 식의 가슴을 치는 물음앞에서 무너지는 자신을 가까스로 부추기면서 한걸음 한걸음 그 누구의 격언도 필요없었고 그 무슨 물질적인 만족도 바램이 없이 우리는 항상 성산의 곧은 나무처럼 먹은 마음 굽히지 않고 푸르게 푸르게 인생을 잘도 단장해왔습니다. 비록은 좀은 어려움이 묻어났다 할지라도 그것은 우리들의 걸음에는 아무런 장애로 다가서지 못했습니다. 가끔은 주책없이 날려오는 질투의 바오래기에 묶이우는 어려움도 삭여야만 했었고 때론 가면의 탈앞에서 자신의 진실을 벗기지 않으면 안되는 모진 아픔을 씹어야만 했었습니다. 그래도 세상은 아름다움이 무겁게 드리우다보니 저희들이 가는 길엔 그래도 박수소리가 비꼬는 소리들을 하나하나 삼켜버리군 였습니다. 그속에서 우리는 힘을 얻었고 용기를 심었고 감동을 만들었으며 진정을 감안하면서 해야 할 일들을 열심히 해나왔습니다. 가끔 어설프게 들려오는 말들도 없는것은 아니지만 어질고 착하고 너그러운 우리들의 마음가짐으로도 언녕 우리들의 만남은 그처럼 편하고 시원했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믿어주고 서로에게 힘을 주기위하여 물질보다는 진정이 담긴 그런 눈길하나 그런 말 한마디로도 저희들은 만족의 주머니를 풀어놓군 하였습니다. 마음에 무겁게 드리웠던 말못할 사연도 우리들의 밥상우에서는 소리없이 녹아버림을 절감하게 되였으며 오가는 정으로 날마다 쌓이는 감정의 분수는 하늘을 치닿는 그런 장한 모습을 만들군하였습니다. 물질문명이 살판치는 험한 세상앞에서도 우리들은 한낱 드팀없는 고목처럼 자리를 굳건히 지켜왔습니다. 어찌보면 물질에 대한 욕심은 령인지도 모른다고 비꼬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들은 우리들 앞에 세워놓으면 한낱 가련한 존재일지도 모른다고 당당하게 말하고 싶습니다. 어쩌면 늘 한집안 식구처럼 마음은 늘 조용하고 가슴은 늘 갓난 아기엄마의 젖가슴처럼 뭔가 끊임없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작은 성과라도 크게 인정해주고 꼭꼭 축하의 말을 정성의 가락지에 꿰매여 보내는 그런 모습은 실로 우리들만의 자랑이고 행복이 아닐수없습니다. 어찌보면 조소나 비웃음을 떠난 행위는 그 가치가 모자라다는 생각도 가져봅니다. 아무런 어려움도 없이 그저 생각대로 모든것이 잘 되여간다면 그건 근본 가치의 추구가 불필요한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들이 가는 길마다에 수시로 다가서는 그런 조소가 되려 우리에게는 힘이 되여주고 보다 성숙의 이미지를 형성시켜주는 고마운 존재라고 생각해보면 되려 그런 조소에 고마움을 간직함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타인이 우리라는 가족에 그 어떤 조소나 비웃음을 던지는건 우리가 받아들일줄 알아야지만 절대로 가족내에서는 그런 장난이 물론 존재하지 않지만 우리가 함께 걸어가는 날까지는  이런 일이 없기를 진심으로 기대합니다.    제집식구는 저들끼리 아끼고 사랑하고 보듬어주야 가정이 화목하고 하는 일들이 잘 되여가는법입니다. 남은 상관말고 우리 집 식구들만은 서로를 리해하고 포용해주고 밀어주는 그런 아름다운 소행으로 우리들의 집을 굳건히 지켜갑시다.    이처럼 저희들의 어려움을 자신의 어려움처럼 선뜻이 받아주고 헤아려주는 오늘의 만남을 위하여 로고를 아끼지 않으신 와룡향당위 부향장겸 영산촌 당지부서기이신 방일만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아울러 곁에서 많은 협조를 해주신 장세룡촌장님께도 진정한 사의를 표합니다. 이처럼 유서깊은 영산촌에서 만남의 장을 만든다는 소문을 듣고 얼마나 흥분했는지 모릅니다. 저의 동년이 묻혀있는 고장이여서 마음에는 언녕 무지개가 뿌리를 내리고 있었습니다.    저희 가족분들이 지난 한해동안 심혈을 아끼지 않으시면서 열심히 일한 보람으로 저들의 문학농사 역시 대 풍작을 안아왔습니다. 최화길 회장님은 각종 신문과 잡지에 시 46수, 수필 6편을 발표하는 놀라운 창작열을 보여주었습니다. 우리성에서 중견으로 뽑히는 최화길 회장님은 중국 조선족시단에서 인정하고 긍정하는 뿌리 깊은 나무입니다.   뿐만아니라 기원컵 압록강 문학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지니기도 하였습니다. 남영선 비서장은 수필 20편과 소설 3편을 발표하는 좋은 성과를 가져왔습니다. 정말로 창작에 얼마나 부지런하고 열념하는지 모릅니다. 눈코뜰새없이 바쁜 수업이건만 문학을 밀고나가는 그 자세만으로도 객관의 인정과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리창현선생님은 소설 4편과 수필 6편 그리고 시 18수를 발표하였습니다. 연변작가협회에서 주관하는 인터넷 문학상인“가야하” 문학상을 수상하였으며 두만강여울소리 시탐구 우수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지니기도 하였습니다. 김애순 선생님은 항상 게으름없이 알찬 문학의 결실을 만들기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몸이 안좋은 상황임에도 알쭌한 수필 6편을 발표하였습니다.  최영란 비서장님은 항상 인자하고 너그러운 큰 누님같은 존재로 늘 문학창작에 열성을 올리고 있습니다. 항상 바쁘신 와중에도 늘 깔끔하고 매력적인 수필을 창작하여왔습니다. 10편의 질높은 수필을각종 신문과 잡지 그리고 한국 KBS방송에 나가는 영예를 지니기도 하였습니다. 황향숙선생님은 몸이 안좋아 늘 약을 달고 사는 현편임에도 꾸준한 마음가짐으로 수필 3편과 소설 “기로”를 송화강 잡지에 발표하였습니다. 특히 소설 “기로”는 그 구상이 새롭고 이야기의 흐름이 감칠맛을 돋구면서 시대의 현황을 여실히 보여주는 좋은 작품이라고 송화강 잡지 편집진으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제 새해에는 보다 좋은 소설로 녀류소설가의 행렬에 당당하게 발을 굳히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김영희선생님은 바쁘신 담임사업에도 불구하고 여실히 문학창작에 심혈을 몰부어 왔습니다. 산문시 2수, 수필 4편을 발표하였는데 개성이 돋보이고 마음에 와닫는 좋은 수필이라는 인정을 받아왔습니다. 이제 한 명의 녀류시인이 우리 녕고탑을 울리면서 머리태를 풀어헤칠 그 순간을 기대해봅니다. 이태백의 후손은아니지만 그 재질만은 놀라운 정문씨는 늘 부지런히 문학창작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시 8수, 산문 4편 , 가사 2수를 창작하는 기꺼운 결실을 안아왔습니다. 예리한 필치로 시를 구상하는 그 개성도 참으로 긍정을자아내고 있습니다. 이제 진정 리태백의 형상으로 멋진 시의 세계를 열어갈 그날을 기대합니다.  현순복선생님은 항상 조용한 모습으로 말없이 문학창작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가끔 사람들을 놀래우는 기발한 생각의 글들을 재미나게 엮어가기도 하였습니다. 철리성이 강한 무게있는 수필 3편을 발표하는 영예를 지니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늘 존경스럽고 자랑스러운 녕안시전임문련주석이셨던 원로시인량명석 선생님은 늘 저희들의 본보기로 다가서고 있습니다. 모두가 컴퓨터로 타자를 할때 량명석선생님은 육필로 알알이 잘 여문 산문시 근 20여수편을 창작하는 놀라운 성과를 이룩하기도 하였습니다. 언제 한번 저희들의 활동에 빠진적이 없이 발벗고 지지해주시는 고마운 마음에서 우리들은 진정한 문인의 형상을 따라배우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녕안시조선족문학회는 금년에만 하여도 송화강 잡지에 2기의 특집을 묶어내는 좋은 결실을 안아왔습니다. 알알이 여문 풍작마다에는 눈물과 땀방울들이 얼마나 슴배여있는지는 오직 우리들만이 알고있을것입니다. 새해에도 하냥 변함없는 마음가짐으로 문학이라는 신성한 이름앞에서 수시로 자신을 비춰가면서 또 하나의 대 풍작을 기원합니다. 회원여러분의 건강과 건필을 기원하면서 다시한번 오늘의 만남을 만들어주신 령도여러분들께 문학의 신성한 사명감으로 진정을 담은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고맙습니다! 오늘의 만남이 저희들에게 또 하나의 응집력을 고집하는 당당한  비석으로 세워지리라 굳게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139    낡은것은 버릴줄 아는 교원이 되자 댓글:  조회:2268  추천:4  2012-12-11
     조선어가 지구촌에서 점차 인기를 가지게 된지도 어언 몇년이 잘 된다. 이처럼 몸값이 바야흐로 오르는 우리 조선어가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모른다. 일부 한족들은 조선어를 자신의 생존을 위한 한낱 중요한 위치에 올려놓고 있는 현실이다. 여기저기에서 우리 조선어가 인기를 가지고 자랑스레 울리는 장면들을 목격하느라면 자연 긍지감에 흐렸던 기분도 삽시간에 사라지고 행복이 조용히 마음의 골짜기를 메운다. 동시에 조선민족의 밝은 미래가  서서히 막을 내리며 안겨온다. 이와 동시에 근심도 조용히 자리를 잡는다. 이처럼 우리 조선어의 위망이 점차 높아감에 따라 위기감도 없는것은 아니다. 많은 위기감들이 슬그머니 도전을 걸어온다 할지라도 우리가 정성스레 가르치고 깨우친다면 두려울것이 없다. 지금 조선어문은 개편을 거쳐 낡은 울타리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을 쳐대지만 아직도 구석구석들에서는 옛날의 그림자들이 나름대로 허둥대고 있는 현실이다. 문제는 버려야 할것들을 마음대로 버리지 못하고 망설이는 것이다. 요즘 우리 조선어문 교원들은 실로 량손에 쥔 떡이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감히 자신의 생각대로 엄두도 못내고 그냥 그대로 소를 몰며 밭을 갈고 있는 상황이다. 이젠 버릴것들을 마음대로 버리며 나름대로의 인격을 살려 조선어문 교수를 진행해야한다. 문제는 교원자체가 도대체 무엇을 가르쳐야할지 몽롱한것이다. 교수대강대로 교수를 한다해도 어쩐지 늘 시름이 놓이지 않고 걱정스럽고 불안한 정서를 피할길없어한다. 이것이 바로 버려야할것을 과감히 버리지 못하고 그냥 낡은것에 미련을 두고 자신을 정지시켜 괴롭히는것이다. 낡은것을 버리지 못하면 새것을 마련하지 못한다. 그러니 일단은 먼저 낡은것을 미련없이 확 버려야한다. 무작정 낡은것이라면 아까움이 없이 눈에 보이지 않는 먼곳에 버려야한다. 그러느라면 자연 새것이 생기는 법이 아닐가?! 문제는 적잖은 교원들이 시험에만 응하다보니 죽은것에만 늘 치우치게된다. 그러느라니 너무도 많은 산것을 죽이기가 일쑤이다. 토하나 받침하나에 이르기까지 미주알 고주알 캐다보니 힘든것은 교원뿐이다. 글쎄 기초지식에 중시를 돌리는것은 부정할수없는 중요한 과업이지만 일정한 기초지식이 자리를 잡은 상황에서는 반드시 생활과 교수를 밀접히 결부하면서 살아가는데 힘이 될수있는 지식점에 초점을 맞추고 교수를 조직하는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가! 생존에는 수많은 방법과 수단이 필요한것처럼 교수도 항상 서면지식에만 치우치지말고 생활의 각양각이한 정서속에서 지식을 줏는것도 해볼만한 수업이다. 실상 사람이 살아가는데서 서면지식이 절대적인 영향을 일으키는것이 아니다. 관건은 그 사람의 잠재력이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다. 잠재력은 너무도 놀라운 힘이 되는것이다. 언제가 갑작스레 자신의 삶에 큰 기둥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삶의 질을 크게 변화시키기도 한다. 그러니 우리는 조선어문 교수에서 아래와같은 몇개 을 반드시 버려야 한다. 버려서 없는것이 절대 거지가 아니다. 소유하고 있는 낡은 것을 버리지 못하고 새것에 두려워하는 사람이 진정한 거지인것이다. 어찌보면 조선어문 교원만큼 구차한 사람은 너무도 드물다는 생각이다. 늘 에 몸과 신경을 쏟다보니 그냥 그 그늘밑에서 세상을 보내기가 일쑤이다.  그냥 소로만 밭가리를 해야만 시름을 놓는 그런 생각을 버려야 할때가 되였다. 부동한 시대에는 부동한 방법과 수단으로 자신을 개변할줄 알아야 한다. 소가 없으면 그 무엇으로도 밭을 갈아야하는 새로운 수단과 방법을 부단히 탐구하면서 기다리지만 말고 공을 들여야 한다. 그래서 조선어문 교원은 생각할줄아는 사람이 먼저 되여야 한다. 그 무엇인가를 위하여 늘 생각하는 사람이 되여야한다. 어느 한 골짜기로만 무작정 자신을 몰아넣지말고 보다 넓은 대지로 자신을 몰아봄도 너무도 바람직하다. 첫째; 교수를 기계처럼 몰아보려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   우선 애들을 내가 다루는 일종의 기계로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무작정 자신이 지휘관이 되여가지고 기계를 다루려는 헐망한 욕심을 버리고 모든 기계의 설명서랑을 잘 읽어보면서 나름대로의 우세를 발휘하도록 공간을 주어야 한다. 공간을 잃은 기계는 페물에 불과하다. 그런 페물을 운전하는 기사는 구경무엇에 불과할가? 애들의 모든 생각과 사유를 존중하면서 그들로 하여금 자신을 나타낼수 있는 공간을 주어야 한다. 무작정 자신의 생각과 사유를 주장하면서 힘들게 하지말고 가끔은 부질없는 욕심들을 버려보는것도 해볼만한 장사이다. 욕심이 너무 지나치면 삶의 공간이 자연 졻아지게 되는법이다. 그러니 애들에게 나름대로의 사유의 공간과 활동의 공간을 주어 그들로 하여금 배움의 진미를 느끼게 하고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면서 열심히 배우려는 자리를 마련해주어야 한다. 둘째; 애들을 먹여주려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    일부 교원들은 늘 문제의 정답에 욕심이 형편없다. 무조건 자신의 생각대로 답안을 작성해주어야만 시름을 놓고 교단을 떠난다. 실상은 애들을 믿어봄도 교원의 매력이 아닐수 없다. 일부 문제는 애들이 자체로 얼마든지 해결할수 있건만 무조건 자신의 존재를 따르게 하면서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교수를 진행하느라니 애들도 힘들고 자신도 얼마나 힘든지 모른다. 글쎄 먹여주려는 마음가짐만은 고마운 일이지만 그것도 때와 시가 따로 정해지는것이다. 언제 어디서든 장소도 모르고 무작정 먹이려는 생각은 어딘가 실리에 어긋나는 어리석은 노릇이 되기도 쉽다. 하물며 그 많은 애들에게 골고루 먹여주려는 욕심에 얼마나 큰 기력이 필요할가? 어찌보면 조선어문 교원은 밭을가는 농부의 형상에 너무도 가깝다. 한번 갈고는 어디가 잘 갈리지 않았는가 꼭 다시한번 돌아보고야 시름을 놓는 그런 형상에 너무도 잘 어울린다는 말이다. 필자도 조선어문 교원이지만 부정할수없는 현실임을 자인하는 바이다. 이젠 애들을 믿어보면서 꼭 쥐였던 스케줄을 가끔은 느슨하게 풀어볼때가 된것같다는 생각이다. 과감하게 애들을 인정하면서 가끔은 그늘밑에 앉아서 지켜보는것도 조선어문 교원의 고급적인 향수가 아닐가? 셋째; 자아만족의 욕심을 버려야 한다.   교수는 자신의 만족을 위해 진행하는 노릇이 아니다. 관건은 애들이 만족하는 그런 수업이여야만이 가장 완미한 수업이라고 인정할수가 있다. 가끔은 교원의 만족끝에 애들에게는 수많은 아쉬움이 잠자고 있을지 모른다. 조선어문 자체가 다방면의 해결을 요구하듯이 애들로 하여금 나름대로의 인식과 견해를 피력할수 있도록 해야지 절대로 자신의 만족에 올가미를 걸지 말아야 한다. 아무튼 얄팍한 대답일지라도 부정은 절대로 내세우지 말고 항상 애들로 하여금 자아만족의 순간을 만들게 해야 한다. 그러는 속에서 배움의 향수를 감각하면서 조선어문 신선함도 느끼게 되는것이다. 너무도 의미심장한 말들은 될수록이면 적게 하고 애들이 쉽게 받아 들일수있는 언어공간을 마련해야 한다. 심각한 말 한마디로 애들의 사유에 서리발을 쳐놓을 우려도 생길수있으니 부동한 단계에서 부동한 언어수단이 필요한것이다. 그저 자아감각에만 만족되지말고 가끔은 애들의 만족에 마음을 쏟는것도 교원으로서의 긍지가 아닐가? 넷째; 너무 자신을 자랑하려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  글쎄 애들에게 교원의 신성한 존재를 가르치는것은 나쁜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자랑에 너무 지나치다보면 오히려 인기가 폭락할 우려도 있는것이다. 그러느라면 저도몰래 애들의 마음속에서 자신의 무게가 가벼워지게 되는것이다. 항상 애들앞에서 겸손해야지 입을 열면 자신의 자랑부터 늘여놓는 교원이 되여서는 안된다. 가끔 자랑도 할수 있겠지만 순간과 기회에 맞게 간단하면서도 애들이 마음에 파문을 일으킬수있는 그런 순간을 만들어야한다. 실상 애들은 말은 없지만 너무도 잘 알고 있는것이다. 알고 있는것에 대한 긍정은 오히려 부정이 될 가능성도 없는것은 아니다. 애들로 하여금 스스로 말하고 느끼게 해야지 절대로 자신을 거쳐서 알게 하고 느끼게 하려는 부질없는 욕심을 버려야한다. 한번 알면 마음에 그대로 남고 자꾸 알게되면 스스로 가치를 잃게 되는것이다.  이젠 작은 강에서 개발헤염을 치는 시대가 지난것같다. 보다 넓은 강에서 남들이 모르는 자세를 부단히 탐구하면서 어려움도 두려움도 모두 버리고 새로운 헤염방식을 탐구하는것이 현대 교원들의 신성한 의무가 아닐가?!    조선어가 지구촌에서 점차 인기를 가지게 된지도 어언 몇년이 잘 된다. 이처럼 몸값이 바야흐로 오르는 우리 조선어가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모른다. 일부 한족들은 조선어를 자신의 생존을 위한 한낱 중요한 위치에 올려놓고 있는 현실이다. 여기저기에서 우리 조선어가 인기를 가지고 자랑스레 울리는 장면들을 목격하느라면 자연 긍지감에 흐렸던 기분도 삽시간에 사라지고 행복이 조용히 마음의 골짜기를 메운다. 동시에 조선민족의 밝은 미래가  서서히 막을 내리며 안겨온다. 이와 동시에 근심도 조용히 자리를 잡는다. 이처럼 우리 조선어의 위망이 점차 높아감에 따라 위기감도 없는것은 아니다. 많은 위기감들이 슬그머니 도전을 걸어온다 할지라도 우리가 정성스레 가르치고 깨우친다면 두려울것이 없다. 지금 조선어문은 개편을 거쳐 낡은 울타리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을 쳐대지만 아직도 구석구석들에서는 옛날의 그림자들이 나름대로 허둥대고 있는 현실이다. 문제는 버려야 할것들을 마음대로 버리지 못하고 망설이는 것이다. 요즘 우리 조선어문 교원들은 실로 량손에 쥔 떡이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감히 자신의 생각대로 엄두도 못내고 그냥 그대로 소를 몰며 밭을 갈고 있는 상황이다. 이젠 버릴것들을 마음대로 버리며 나름대로의 인격을 살려 조선어문 교수를 진행해야한다. 문제는 교원자체가 도대체 무엇을 가르쳐야할지 몽롱한것이다. 교수대강대로 교수를 한다해도 어쩐지 늘 시름이 놓이지 않고 걱정스럽고 불안한 정서를 피할길없어한다. 이것이 바로 버려야할것을 과감히 버리지 못하고 그냥 낡은것에 미련을 두고 자신을 정지시켜 괴롭히는것이다. 낡은것을 버리지 못하면 새것을 마련하지 못한다. 그러니 일단은 먼저 낡은것을 미련없이 확 버려야한다. 무작정 낡은것이라면 아까움이 없이 눈에 보이지 않는 먼곳에 버려야한다. 그러느라면 자연 새것이 생기는 법이 아닐가?! 문제는 적잖은 교원들이 시험에만 응하다보니 죽은것에만 늘 치우치게된다. 그러느라니 너무도 많은 산것을 죽이기가 일쑤이다. 토하나 받침하나에 이르기까지 미주알 고주알 캐다보니 힘든것은 교원뿐이다. 글쎄 기초지식에 중시를 돌리는것은 부정할수없는 중요한 과업이지만 일정한 기초지식이 자리를 잡은 상황에서는 반드시 생활과 교수를 밀접히 결부하면서 살아가는데 힘이 될수있는 지식점에 초점을 맞추고 교수를 조직하는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가! 생존에는 수많은 방법과 수단이 필요한것처럼 교수도 항상 서면지식에만 치우치지말고 생활의 각양각이한 정서속에서 지식을 줏는것도 해볼만한 수업이다. 실상 사람이 살아가는데서 서면지식이 절대적인 영향을 일으키는것이 아니다. 관건은 그 사람의 잠재력이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다. 잠재력은 너무도 놀라운 힘이 되는것이다. 언제가 갑작스레 자신의 삶에 큰 기둥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삶의 질을 크게 변화시키기도 한다. 그러니 우리는 조선어문 교수에서 아래와같은 몇개 을 반드시 버려야 한다. 버려서 없는것이 절대 거지가 아니다. 소유하고 있는 낡은 것을 버리지 못하고 새것에 두려워하는 사람이 진정한 거지인것이다. 어찌보면 조선어문 교원만큼 구차한 사람은 너무도 드물다는 생각이다. 늘 에 몸과 신경을 쏟다보니 그냥 그 그늘밑에서 세상을 보내기가 일쑤이다.  그냥 소로만 밭가리를 해야만 시름을 놓는 그런 생각을 버려야 할때가 되였다. 부동한 시대에는 부동한 방법과 수단으로 자신을 개변할줄 알아야 한다. 소가 없으면 그 무엇으로도 밭을 갈아야하는 새로운 수단과 방법을 부단히 탐구하면서 기다리지만 말고 공을 들여야 한다. 그래서 조선어문 교원은 생각할줄아는 사람이 먼저 되여야 한다. 그 무엇인가를 위하여 늘 생각하는 사람이 되여야한다. 어느 한 골짜기로만 무작정 자신을 몰아넣지말고 보다 넓은 대지로 자신을 몰아봄도 너무도 바람직하다. 첫째; 교수를 기계처럼 몰아보려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   우선 애들을 내가 다루는 일종의 기계로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무작정 자신이 지휘관이 되여가지고 기계를 다루려는 헐망한 욕심을 버리고 모든 기계의 설명서랑을 잘 읽어보면서 나름대로의 우세를 발휘하도록 공간을 주어야 한다. 공간을 잃은 기계는 페물에 불과하다. 그런 페물을 운전하는 기사는 구경무엇에 불과할가? 애들의 모든 생각과 사유를 존중하면서 그들로 하여금 자신을 나타낼수 있는 공간을 주어야 한다. 무작정 자신의 생각과 사유를 주장하면서 힘들게 하지말고 가끔은 부질없는 욕심들을 버려보는것도 해볼만한 장사이다. 욕심이 너무 지나치면 삶의 공간이 자연 졻아지게 되는법이다. 그러니 애들에게 나름대로의 사유의 공간과 활동의 공간을 주어 그들로 하여금 배움의 진미를 느끼게 하고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면서 열심히 배우려는 자리를 마련해주어야 한다. 둘째; 애들을 먹여주려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    일부 교원들은 늘 문제의 정답에 욕심이 형편없다. 무조건 자신의 생각대로 답안을 작성해주어야만 시름을 놓고 교단을 떠난다. 실상은 애들을 믿어봄도 교원의 매력이 아닐수 없다. 일부 문제는 애들이 자체로 얼마든지 해결할수 있건만 무조건 자신의 존재를 따르게 하면서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교수를 진행하느라니 애들도 힘들고 자신도 얼마나 힘든지 모른다. 글쎄 먹여주려는 마음가짐만은 고마운 일이지만 그것도 때와 시가 따로 정해지는것이다. 언제 어디서든 장소도 모르고 무작정 먹이려는 생각은 어딘가 실리에 어긋나는 어리석은 노릇이 되기도 쉽다. 하물며 그 많은 애들에게 골고루 먹여주려는 욕심에 얼마나 큰 기력이 필요할가? 어찌보면 조선어문 교원은 밭을가는 농부의 형상에 너무도 가깝다. 한번 갈고는 어디가 잘 갈리지 않았는가 꼭 다시한번 돌아보고야 시름을 놓는 그런 형상에 너무도 잘 어울린다는 말이다. 필자도 조선어문 교원이지만 부정할수없는 현실임을 자인하는 바이다. 이젠 애들을 믿어보면서 꼭 쥐였던 스케줄을 가끔은 느슨하게 풀어볼때가 된것같다는 생각이다. 과감하게 애들을 인정하면서 가끔은 그늘밑에 앉아서 지켜보는것도 조선어문 교원의 고급적인 향수가 아닐가? 셋째; 자아만족의 욕심을 버려야 한다.   교수는 자신의 만족을 위해 진행하는 노릇이 아니다. 관건은 애들이 만족하는 그런 수업이여야만이 가장 완미한 수업이라고 인정할수가 있다. 가끔은 교원의 만족끝에 애들에게는 수많은 아쉬움이 잠자고 있을지 모른다. 조선어문 자체가 다방면의 해결을 요구하듯이 애들로 하여금 나름대로의 인식과 견해를 피력할수 있도록 해야지 절대로 자신의 만족에 올가미를 걸지 말아야 한다. 아무튼 얄팍한 대답일지라도 부정은 절대로 내세우지 말고 항상 애들로 하여금 자아만족의 순간을 만들게 해야 한다. 그러는 속에서 배움의 향수를 감각하면서 조선어문 신선함도 느끼게 되는것이다. 너무도 의미심장한 말들은 될수록이면 적게 하고 애들이 쉽게 받아 들일수있는 언어공간을 마련해야 한다. 심각한 말 한마디로 애들의 사유에 서리발을 쳐놓을 우려도 생길수있으니 부동한 단계에서 부동한 언어수단이 필요한것이다. 그저 자아감각에만 만족되지말고 가끔은 애들의 만족에 마음을 쏟는것도 교원으로서의 긍지가 아닐가? 넷째; 너무 자신을 자랑하려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  글쎄 애들에게 교원의 신성한 존재를 가르치는것은 나쁜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자랑에 너무 지나치다보면 오히려 인기가 폭락할 우려도 있는것이다. 그러느라면 저도몰래 애들의 마음속에서 자신의 무게가 가벼워지게 되는것이다. 항상 애들앞에서 겸손해야지 입을 열면 자신의 자랑부터 늘여놓는 교원이 되여서는 안된다. 가끔 자랑도 할수 있겠지만 순간과 기회에 맞게 간단하면서도 애들이 마음에 파문을 일으킬수있는 그런 순간을 만들어야한다. 실상 애들은 말은 없지만 너무도 잘 알고 있는것이다. 알고 있는것에 대한 긍정은 오히려 부정이 될 가능성도 없는것은 아니다. 애들로 하여금 스스로 말하고 느끼게 해야지 절대로 자신을 거쳐서 알게 하고 느끼게 하려는 부질없는 욕심을 버려야한다. 한번 알면 마음에 그대로 남고 자꾸 알게되면 스스로 가치를 잃게 되는것이다.  이젠 작은 강에서 개발헤염을 치는 시대가 지난것같다. 보다 넓은 강에서 남들이 모르는 자세를 부단히 탐구하면서 어려움도 두려움도 모두 버리고 새로운 헤염방식을 탐구하는것이 현대 교원들의 신성한 의무가 아닐가?!  
138    인생 댓글:  조회:2639  추천:2  2012-12-09
존재의 리유를 만들기 시작한다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면서 자격증을 검증받는다. 그러다가 먼저 보기를 시작한다 다음 듣기를 시작한다 이상한 세상에 호기심을 갖구 인생의 쪽문을 노크한다 아무것도 모른다 좀은 알기 시작한다 어느정도 알듯하다 그러다가 아무것도 모르기 시작한다 이상하게 좀은 아는것같다 묘하게 좀은 알듯하다 그러다가 또 아무것도 모른다 그러다가 또 뭔가를 알듯하다 하지만 실상은 아무것도 아니다 알아도 모른다 몰라도 안다 그러다가 그러다가 또 그러다가 아무것도 모르고 지워지는 모든것을 정리한다 오던 날 처럼 먼저 좀은 보이고 다음에 조금 들리고 그러다가 모르게 모르게 또 모르게 아무것도 모르게 어디론가 급히 가야한다 실상 인생이란 아무도 모르는 거뿐한 지겨움이다 알다가도 모르고 모르면서도 알것같은 인생 저어기 서쪽나라엔 유혹의 기발이 어설프게 우리를 향해 팔을 벌린다.
137    신발 찾아 떠나기 댓글:  조회:3186  추천:3  2012-12-04
    나는 나의 아름다운 인생의 려정으로 나의 신발 찾아 떠났다. 모든 부담 다 털어버리고 홀가분한 몸을 맨발 하나에 의지했다. 이르는 곳마다에는 아름다운 신발들이 나를 향해 손짓했다. 하지만 세척된 마음의 그릇은 나 자신을 접어버렸다.   나는 얄미운 눈길을 던지는 요란한 신발들을 등에 두고 내처 걸었다. 알맞은 두께에 보기 좋은 양식, 그리고 맞춤한 깊이에 또 적당한 밑바닥, 그다음 뒤축은 전혀 없는 그런 허심하고도 조용한 신발을 찾아 사방을 살펴보았다. 눈길이 머무는 곳마다에 신발이지만 마음엔 그냥 텅 빈 그릇만 댕그라니 남았다.   빗물에 젖어 후줄근히 늘어진 신발들이 있는가 하면, 주책없이 불어오는 바람에 먼지투성이인 신발도 보이고, 저 소담한 진달래나무아래에는 멀겋게 매달린 국방색 신발도 어설프게 내 시야에 다가섰다. 신발  찾기가 이토록 어려운 줄을 오늘 이 순간에야 절감했다. 내 신발은 구경 어디에 있을까?!   신으면 편하고, 벗으면 시원하고, 걸으면 가볍고, 디디면 믿음직하고, 뛰면 솟구치는 감정에 날 것 같은 그런 싱그러움에 젖는 그런 신발을 열심히 찾는 나그네의 속 구멍은 점점 밝아만 갔다. 쏟아지는 소나기도 두렵지 않고, 불어치는 폭풍우도 무섭지 않으며, 눈비가 함께 들이닥쳐도 꿈쩍 않는 그런 자세로 하늘을 향해 질문하고, 땅을 향해 가르침을 받으면서 나의 신발을 찾아 오늘도 나그네는 정처 없이 떠나간다.   별로 가볍지도 않은 둔덕에 어설프게 서있는 굽은 나무아래에 몸을 풀고 땀을 들이면서 무한한 가르침의 여운 속에서 뭔가 이상하게 다가서는 순간이다. 풀잎 물고 뱅그르르 다가서는 이슬에 귀도 기울여보고 아물아물 피여오르는 아지랑이의 귀속말에도 마음을  풀어주고 강남 갔던 제비의 그리움이 진한 이야기에도 가슴을 열어둔다. 저기 서쪽하늘에 곱게 비낀 무지개아가씨의 깨끗한 권고에 령혼을 묻어도 본다.   그대의 신발은 그대의 발밑에 있다는 땅속 깊이에서 울려오는 어느 샘물의 가르침에 마음을 싣는다. 눈을 크게 뜨고 귀를 번쩍 열어젖히고 코와 입 그리고 목까지 모두 총동원하여 신발을 찾는 나그네의 모습은 그토록 멋지기만 하였다. 수많은 선녀들의 눈길고 마다하고 열심히 떠나는 모습에는 자랑도 엄청 크다. “신발 찾기가 이렇게 어려울까?!” 나는 혼자말로 중얼거리면서 힘을 불어넣었고 신심을 재우고 믿음을 부린다. 가벼워지는 마음을 처녀가 동이를 이듯이 하며 길을 찾아 열심히 떠난다. 새들의 지저귐 소리에 걸음을 맞추고 시내물의 노래소리에 몸을 둔다. 날 것 같은 자세에는 어느덧 빛이 내리고 자랑이 쏟아지고 부러움이 튕긴다. 믿음이 폭발하기도 한다. 출렁이는 물결 따라 내 신발은 나를 따르고 있었다.  유혹에는 린색하고 오직 먹은 마음 하나만을 초지일관 지켜가는 자세이다. 엄마의 숨소리를 가장 좋은 덕으로 삼고 아버지의 걸음소리를 가장 멋진 시행으로 비석에 새기면서 여기저기 맑은 눈길 던져본다. 돌인들 어쩔쏘냐? 흙인들 어쩔쏘냐? 가는 걸음마다에는 갈채의 박수소리만 정겨운 음악처럼 들려온다. 순간 모든 자연의 율동이 시작된다. 꼭 마치 약속이나 한것같이 그처럼 눈부신 율동이고 만물이 하나처럼 움직이는 인간세상에서는 보기 드문 그런 신성한 율동이다. 착한 마음주머니를 만들고 바른 소행의 무늬를 새기면서 고운 언어로 들메끈을 만들어 열심히 포개간다. 믿음이 진작 신바닥으로 다가섰고 효가 어느새 신등을 만든다…   문득 가슴을 터치며 다가서는 놀라움! 나그네가 걸어가는 그 걸음마다에는 진작 신발이 탄생을 기다리고 있었다. 고된 아픔의 맨 끝에서 신발은 나그네를 향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신발 찾아 떠나는 모든 나그네들의 모습은 눈부시게 황홀한 야경이였다.
136    약속 댓글:  조회:2552  추천:1  2012-11-28
벗기면 빠알간 아픔들이 실실히 드리운다 보듬으면 노오란 행복들이 찰랑찰랑 물결친다
135    용서 댓글:  조회:2118  추천:2  2012-11-28
   가꾸면    배로 아름답고    버리면    배로 썩는다    마음의 화분통에    가꾸는    까아만    여운.
134    만남의 소중함 댓글:  조회:1918  추천:1  2012-11-28
만남의 소중함 리창현 싸늘한 가을이지만 늘 포근하고 따스한 그런 만남이 너무 좋았다. 허물은 언녕 묻어버렸고 믿음과 정성으로 가꾸는 그런 만남이여서 너무너무 편하다 호상간의 존중과 배려 가면이 아닌 진정어린 소중하고 아름다운 만남 그래서 앉는 장소마다에는 웃음이 그칠줄 모른다 누이같은 너그러운 마음으로 형님같은 푸근한 마음으로 우리의 만남엔 래일이 늘 포근하다.
133    오해와 리해(외1수) 댓글:  조회:2194  추천:0  2012-11-25
병풍으로 둘러싸인 어느 골짜기속에 오늘도 해님과 속마음을 뒤집는다 가득 한것 같으나 아무리 털고 털어도 보이는게 없네 리모콘으로 해님을 조종하련다 배터리 없이도 조종이 잘 된다 오는 길을 리해하니 가는 길은 걱정이 없구려. 무제 가는 길도 미지수인데 오는 길을 생각해선 뭐하랴 인생은 그냥 가는 길 오는 길은 바람길뿐 물위를 걷는 녀자가 신발을 잃어버렸다. 마음에는 구멍들이 송 송 송
132    호주머니(외2수) 댓글:  조회:2429  추천:1  2012-11-23
 날따라 자리를 비워가는 호주머니 날따라 커만 가는 호주머니 털고 털어도 뭔가 자꾸만 생기기에 두손으로 새를 잡듯이 꽈악 잡아보니 손에 잡히는건 근심 하나가 똘랑--- 동그라미 동년의 꿈이 숨쉬고 그리움이 날따라 짙어만 가고 라면으로 끼니를 에우는 미래의 그림자가 꼬옥  들어찬 동그라미. 사탕 홀랑 입에 넣으면 달콤한 사랑이 사르르 녹아내립니다 성급한 그 마음 못이겨 이는 깨물고 혀는 빨고.
131    동그라미 댓글:  조회:2635  추천:0  2012-11-23
오구작작 모여앉은 우리 동네 깨끗한 동심이 그려낸 귀여운 동네 하아얀 마음에 노란꽃 빨간꽃 고옵게 물든다.
130    새끼 댓글:  조회:2701  추천:1  2012-11-10
눈에 티가 들면 눈물을 흘린다 새끼는 눈에 든 티
129    고백 댓글:  조회:2880  추천:1  2012-10-30
세월앞에서 우리는 눈과 마음 멀어가는것을 속일수 없었다 늘 남의 것이 좋아보이고 늘 나의 것은 싫어지는것을. 그러다가 그러다가 눈이 뜨이고 마음이 열리면 갈곳이 없어서 방황하는 우리네들 그래도 야속한 우리에겐 늘 무던한 손길이 무형의 가지를 뻗고 있었다.
128    같은 하늘 다른 마음 댓글:  조회:2471  추천:1  2012-10-28
같은 하늘아래 오손도손 모여앉은 색다른 마음들 안타까움 물고 온다. 하늘의 가르침 아로새긴 마음에 생각은 왜서 고집만 비틀가 내리는 비줄기에 가르침이 서렸건만 생각의 항아리는 밑굽부터 썩는구나 같은 하늘아래 꼭같이 생긴 마음이 불어오는 바람에 하소연 할줄금을 말없이 얹는구나.
127    인생 댓글:  조회:2931  추천:2  2012-10-28
마음으로 가꾸는 정성의 씨앗 고생의 자욱이 유표할수록 마음의 언저리는 풍요로운것 네것 내것 할것없이 모두가 소중한 고마움의 우물 하늘과 땅사이에 소리없이 커가는 우리네 이야기
126    교류의 창을 열어라! 댓글:  조회:2143  추천:12  2012-10-25
    무릇 교원이든 부모든지를 막론하고 아이들과의 교류를 떠나서는 신성한 교육의 목적에 도달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절실하게 안겨올 때가 많다. 이처럼 교류가 교육이라는 운전에서 너무도 중요한 위치에 처해있다는 말이겠다.       요즘 학부모들이 교원을 만나면 보편적으로 하는 첫마디가 바로 자식들이 말을 듣지 않아서 골머리를 앓고있다는것이다. 어려서는 그렇게 말을 곰상곰상 잘 듣던 아이들이 점차 크면서 말을 듣지 않는것도 역시 정상적인 현상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마 어떤 아이가 어려서부터 그냥 부모의 말씀이나 교원의 말씀을 하나도 빠짐없이 듣는다면 그것도 문제가 있는것이 아닐가? 아이들은 점차 커가면서 자신의 생각도 놀랍게 커간다. 그러면서 남의 말을 듣던데로부터 자신의 주장이 생기면서 한번쯤 자신의 생각대로 밀고나갈 준비가 되여있는것이다. 그저 시간의 차이가 좀 있을뿐이다. 이런 현상들은 실상 정상적인데 일부 부모들은 너무 크게 놀라면서 복잡하게 만들군 한다. 결국은 자신만 힘들뿐 아무런 성과도 없다. 날로 커가는 아이들의 생각에 관심을 가지고 서로의 교류만 따라간다면 가정교육이든 학교교육이든 잘 되여갈것이 아닐가.      이제라도 결핍했던 자식과의 교류에 힘을 써보자는 건의를 제기하는바이다. 학부모들은 마음이 너무 성급한것이 큰 흠이다. 자식의 생각들을 알아볼념은 않고 무작정 자식을 부모의 운전으로 밀고가려는 우둔한 생각들을 이제는 깡그리 집어치웠으면 한다. 우선 아이들의 생각을 들어보면서 미흡한 점들을 옳바르게 인도하는것이 진정 교육의 목적에 도달하는것이다. 시대가 다르고 생각이 다른 사람을 그냥 한사람으로 만들려는 우둔한 생각도 깔끔히 씻어버리고  이 순간에라도 새로운 부모의 형상을 가꾸어 자식의 곁으로 다가서는것이 무엇보다 먼저 해야 할 일들이 아닐가? 그리고 부질없는 짜증도 슬그머니 한쪽으로 밀쳐놓고 기회만 있으면 아이와 함께 서로 교류의 마당을 가져보는것이 얼마나 좋은 교육인지 모른다. 부모도 반드시 가면이라는 탈을 벗어던지고 아이와 진정 마음이 통하는 그런 생각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저 자신의 욕심은 어둡게 감춰두고 겉으로 아이들과 교류하는척 하는 헐망한 순간을 만들려다가 자칫하면 부모가 먼저 아이가 파놓은 함정에 빠지기가 일쑤이니 반드시 조심해야 한다. 아이를 얼리려는 부모는 영원히 교육이라는 자루를 쥘수 없다는 도리도 상식적으로 알아둠이 너무도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진정 아이를 위하고 아이의 미래를 위한다면 우선 아이의 생각을 존중하는 자세로 교류에 들어서야지 몇분도 안돼 음성이 높아가고 분위기가 깨여진다면 아예 시작도 말라는 권고도 함께 해보는 바이다.      실상 아이들의 마음속에는 부모들과 하고싶은 말들이 얼마나 많고 많은지 모른다. 문제는 부모가 아이들 자신의 마음속의 생각을 쏟기 전에 밀막아버리니 참으로 슬픈 일이 아닐수 없다. 그러면 아이들은 아예 부모와의 마음의 창을 꽁꽁 닫아버리고만다. 그 순간 가면이라는 무기를 만들어가지고 부모와 재미나는 숨박꼭질을 시작하게 되는것이다. 하지만 일부 부모들은 아이들의 숨박꼭질에 얼리워 세월 가는줄 모르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기도 하다.       부모는 자식을 믿어주는것이 자못 중요하다. 문제는 부모들이 자식을 믿어주지 않고 그냥 아무것도 모르는 코흘리개 아이로만 간주하고있으니 말이다. 부모가 자식을 믿어주지 않는데 부모를 믿어줄 자식도 아마 없는줄로 알고있다. 부모라면 반드시 자식을 굳게 믿어주어야 한다. 자신의 피줄도 믿지 못하면 이 세상에 누구를 믿어야 할지 마음만 무거워진다.       순간순간의 교류는 서로의 감정을 깊이 하고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시원한 길을 열어주는것이다. 우선은 길부터 통해야 교육이라는 무기를 세워둘 자리가 생기는것이 아닐가? 교육에서 교류는 너무너무도 좋은 무기이다. 서로간에 조용한 교류만 존재한다면 이 세상에 해결못할 문제가 또 있으랴?!       무작정 어른의 위치에서 자식을 몰아갈 생각들은 이제 접어두고 여직 교류가 결핍했다면 이제부터라도 자식과의 알뜰한 교류의 마당을 만들어야 한다. 처음에는 조금은 어색하고 힘들지라도 점차 시간이 감에 따라 교류가 제 자리를 찾는다면 부모로서의 또 하나의 보다 보람찬 성공이 아닐가 하는 권고이기도 하다. 조급한 마음도 차분히 가라앉히고 조용한 어조로 서로의 교류를 만들어보자. 사람은 세월을 먹고 크는 존재라면 아이들은 교류를 먹고 보다 훌륭하게 커가는 존재가 아닐가?!         교류의 창을 열어라! 그러면 아이의 미래도 열린다. 부모의 성공도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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