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창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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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    아픔을 딛고 일어서는 "누님"을 보면서 댓글:  조회:1921  추천:0  2012-07-24
       옹근 16년을 함께 머리를 맞대고 허물없이 사업해온 누님같은 동료선생이 중병으로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는 소문을 접하고 한참은 얼마나 슬프고 아팠는지 모른다. 그것도 그저 스쳐지나는 병으로 수술을 받았다면 다소 안위라도 되련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았다. 한 사람의 정신세계를 무너뜨리는 유선암이라는 청천벽력의 진단앞에서 아마도 사람이라면 거개가 무너지는수밖에 없을것이다. 제 아무리 강한 사람일지라도 이처럼 무서운 진단앞에서는 지탱이란 너무도 어려운 일일것이다. 요즘에는 글쎄 병으로 죽는 사람보다 놀라서 죽는 사람이 더 많다고들 하지 않는가! 다행히도 초기에 발견을 하였기에 병세는 생각처럼 엄중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의사의 말을 접하면서 무너지던 마음도 다소 온정을 취할수가 있었다. 하지만 소리없이 다가서는 설음과 아픔은 금할길이 없었다. 나와 마누라는 부랴부랴 병원으로 향했다. 차안에서 내내 "누님"을 만나서 뭐라고 안위를 해야 할지 두서가 잡히지 않았다. 우리는 아무 말도 없이 그저 어서 뻐스가 병원에 도착하길 기다리고 있을뿐이였다. 애타는 마음을 하나하나 풀어가면서 어느새 우리는 병원에 이르렀다. 이리저리 물어보고나서 마침 병실로 들어서려는데 뒤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머리를 돌리는 순간 병을 손에 들고 힘들게 걸어오시는 "누님"을 발견하였다. 순간 아픔이 가슴을 여미면서 울컥 치밀어올랐다. 며칠전까지만 하여도 펀펀하던 사람이 오늘 내 앞에 선 모습이 너무도 안타깝고 불쌍하였다. 우리는 손을 부여잡고 병실로 모셨다. 해쓱해진 얼굴에는 그래도 억지로 웃음을 띄우느라 애쓰는 "누님"을 지켜보면서 속으로는 언녕 비물이 흐르고 있었다. 우리는 그런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억지로 웃는 모습으로 신심과 용기를 선물하기에 바삐 보냈다. 텅빈 병실에는 슬픔과 그리움이 언녕 물씬거리고 있었다. 그래도 초기에 발견을 하였기에 병세가 생각보다 많이 괜찮다면서 자기로 안위를 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처음으로 하나님께 너무 무정하다는 집념을 가져보기도 하였다. 누구에게 싫은 소리 한번 해본적도 없이 언제나 시원시원하게 주변의 사람들을 보살펴주는 그런 "누님"이 아니였던가! 법이 없이도 살아갈수있으리만큼 그처럼 선량하고 착하던 "누님"이 아니였던가! 누구네 집이 일이 있으면 제일 먼저 발을 벗고 나서던 "누님"이 아니였던가! 애들을 자기의 친자식처럼 아끼고 사랑하던 "누님"이 아니였던가! 남편을 외국에 보내놓고 혼자의 몸으로 두 딸을 모두 대학에 보내놓고 이제 향수라는 언덕을 좀 오를가 하니 하나님도 무정하게 이런 아픔을 만드시다니?! 지지리도 .나쁜 사람들에게 이런 벌을 선물하였다면 다소 마음의 평행이라도 잡을수 있으련만 평생을 이처럼 착하고 어질게 살아온 "누님"에게 이런 고통을 안긴다는것이 전혀 마음의 평행을 잡을수가 없었다. "누님"은 우리와 함께 많은 말을 하였다. 그러면서 우리더러 절대로 건강에 소홀히 하지 말고 제때에 병원을 찾아 보라고 몇번이고 당부를 해왔다. 그러는 "누님"을 바라보는 마음은 갈기갈기 찢기는듯하엿다. 그래도 "누님"의 정신상태가 엄청 좋아서 다행이였다. 모든 잡념을 버리고 이제는 더욱 건강하게 더욱 보람차게 매일을 살아갈 생각을 허물없이 내보였다. 아마도 사람은 앓고 보면 모든것이 더욱 소중히 여기게 되는법인가 싶었다. 우리는 수많은 걱정과 아픔을 묻어둔채 무거운 걸음으로 병원을 나섰다. 멀리서 손짓하는 "누님"의 안타까운 모습을 남겨둔채. 이제 "누님"의 건강이 회복되고 우리 모두가 웃으면서 새날을 맞이할 "누님"의 새 아침을 기대해본다. 매일 매일 "누님"의 건강을 기도하면서.  
104    3각형교육 댓글:  조회:2746  추천:3  2012-07-23
     3각형은 고정성을 가지고 있어서 일반적인 상황에서 쉽게 변형하지 않는다. 이것이 3각형의 특징이기도하다. 이런 특징을 우리의 교육과 련계시켜본다면 어딘가 많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이렇게 필을 들었다.  3각형에는 점이 3개 있다. 그 3개의 점으로 인하여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우리의 교육에도 3개의 점이 공동으로 자신의 역할을 참답게 발휘한다면 보다 든실한 교육의 결실을 가져오게 될것이 아닐가?  한 점은 한낱 중요한 가정교육이다. 어찌보면 가정교육은 한 사람의 성장에 있어서 자못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게 된다. 제1의 “스승”이신 부모님의 옳바른 교육이 자식의 성장의 자욱마다에 믿음이라는 매개물을 정성스레 묻어둔다. “자식은 부모의 얼굴이다”는 말이 있다. 이는 가정교육의 중요성과 실천성의 결합산물이다. 집에서 부모의 어떤 교육이 존재하면 애가 받은 그대로 옮긴다는 말이겠다. 그러니 가정교육은 학교교육에 앞서 그 어떤 신성한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가정에서 교육을 훌륭하게 받은 애들을 가만히 살펴보느라면 어딘가 참으로 많이 다르다는 찬탄을 해본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언행이나 움직임을 보면 그 애의 가정교육에 대하여 손금보듯 알수 있으며 부모들의 상황도 어느 정도 맞춰볼수가 있어서 참으로 재밌다. 가정교육은 자식의 성장에 있어서 영원한 주제이며 원동력이다. 옳바른 언행으로 가정교육을 운전하는것이 백만장자의 꿈을 이루는것보다 어찌보면 더 보람찬 일일지도 모른다.  다른 하나의 점은 학교교육이다. 애가 학교에 들어서면서부터 가정교육이 조금은 느슨하게 된다. 교원을 진정으로 믿어주는 부모의 소행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본다. 하지만 이 순간에는 반드시 서로의 합작이 무엇보다 중요한것이다. 부모와 교원의 빈틈없는 합작이야말로 진정 좋은 결실을 가져오게 되는것이다. 그래서 교원과 밀접하게 련계를 달성하는 부모가 진정 훌륭한 부모라는 말도 생기게 되는법이다. 이로보아 가정교육은 항상 기타의 모든 교육과 배합이 잘 되여야 한다. 일단은 믿음을 핵으로 삼고 한걸음 한걸음 실속있게 걷는 자세가 무엇보다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다. 부모와 선생님을 잘 만난 학생만큼 행복한 존재는 더 없을것이다.   다른 하나의 점은 바로 사회교육이다. 울타리를 벗어난 보다 큰 활무대를 상대로 받는 교육이다. 이때에는 자신 스스로의 교육이 매우 중요하다. 애가 홀로서기에 도움을 주는것이 바로 학교교육과 가정교육이다. 이때에는 너무 지나치게 가정교육이 앞서도 안좋고 학교교육이 너무 울타리를 만들어도 애들에게는 큰 도움이 없는것이다. 그러므로 이때의 교육은 꼭 마치 보일듯말듯한 그런 교육의 매개물이 되여 그저 도움이 될 때 성근히 나서서 손을 잡아주고 바르게 인도해주는 역할을 하면 최고로 다가서는것이다. 부질없는 근심이나 걱정은 버리면서 보다 믿어주는 자세로 넓은 교육의 장을 만드는것이 무엇보다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3각형교육에서 관건은 애들이 부담없이 이 세개의 점을 자유스레 넘나들수 있어야 하는것이다. 어느 한 점에 너무 머물러있어도 안되고 수시로 넘나들면서 자신을 비춰보는 자세가 매우 중요하다. 어느 한 점에 너무 미련을 갖지도 말고 어느 한 점을 너무 소홀히 하지도 말고 항상 이 세점을 착실하게 밟으면서 평생교육이라는 신성한 울타리에 자신을 곧게 세우기에 항상 노력이 필요한것이다.
103    我的葬礼 댓글:  조회:3571  추천:0  2012-07-21
 我的葬礼   宁安市朝鲜族小学---李昌贤   从凌晨开始天上飘着细雨 灵车缓缓移动步履 送我的人沉浸在悲哀中 我的征程并不孤寂   送葬人群里有曾经亵渎我的人 他们默默的望着天空 抛下莫名的笑容 有一个人在极力躲避我的视线 突然我看到他的眼里滚动着红色的泪珠 我并不讨厌此举 反而感到欣慰和感动   也看到讨厌我的人 他在向我丢下无名的媚笑 我为了躲避他的注视闭下双眼 冰冷的浑泪灌注我的第三只耳 沉重的空灵化为花蕾 我的历程并不孤寂
102    커피(외2수) 댓글:  조회:2652  추천:0  2012-07-21
 커피(외2수)   마음과 정서의 잔잔한 쉼터 쓴맛 단맛 긴 여운 만들고 사랑이 쪽배로 나루터 닦는다 얼굴에 얼굴이 비끼면 어줍은 주름사이엔 배길이 열린다 하늘이 땅을 묻어버리면 땅은 아예 커피향으로 세상을 갉아먹는다 커다란 피덩이로 세상은 눈을 감는다.   별나라   별이 없어서 별이 그리운 별나라 내 세계에 네가 없어서 별이 그리운 별나라 별이 있는곳엔 별이 안보이고 별이 없는 곳엔 별이 춤추네 별미로 나를 가꾸고 나비는 날개를 접고 라이라크 가지 접는다.   개판   큰 마음이 낚아올린 개판 하나에 벗겨지고 찢어지고 아프고 개판에 개판이 걸리고 개판에 술판이 생겨서 한판은 한판이 아니고 한판이 외판이 되여 내판 네판 모두가 개판이네.  
101    향기 나는 사람 향기 나는 일 댓글:  조회:1979  추천:0  2012-05-23
     지극한 사랑과 정성으로 교정에 향기를 심고 빛을 뿌려가면서 지나가던 구름마저 잠시 머무는   곳을 만들어가는 사람이 있다. 빈틈없는 실력으로 , 정확한 운영리념으로 , 굽힐줄 모르는 젊은 패기로 학교의 면모를 새롭게 탈바꿈시키는 이분이 바로 녕안시조선족소학교 김련희 교장이다.  31세의 젊은 나이에 교장으로 부임된지 이제 불과 4년밖에 안되지만 해놓은 일은 보통사람으로서는 상상마저 두려울 정도로 기꺼운 업적을 쌓아가고 있다. “나무는 열매에 의해 알려지고 사람은 일에 의해 평가받는다” 이처럼 좋은 말은 김교장의 사업에 가장 지당한 말로 자리를 굳히게 된다. 계통적인 관리방식과 탄탄한 엄무실력은 전반 사회의 의심할바없는 긍정을 받고 있다. 날로 새롭게 밝은 전망을 열어가는 모습은 실로 민족의 자랑이자 긍지이기도 하였다. 민족교육이 위기라는 도전을 겪고있는 안타까운 그 순간에 김교장의 부임은 혼자만의 자랑이 아니라 민족교육의 희망이기도 하였다.  교원과 학생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은 봄날의 아지랑이마냥 곱게 피여오르면서 마음속에 아름다운 희망의 씨앗을 뿌려주기도 하였다. 머물면 사라진다는 명석한 철리로 학생들의 티끌만한 발전에도 큰 중시를 돌리면서 항상 발전하는 학생으로 성장할것을 간곡히 기대하는 모습이 너무도 아름다왔다. 동시에 보다 탄탄한 업무실력으로 창신성이 강하고 개성이 돋보이는 시대적인 요구에 부합되는 실천하는 교원으로 변할것을 요구하는 엄격함에도 희망은 무지개처럼 곱게 걸려있었다.  “산은 나무에 의해 알려지고 사람은 공헌에 의해 평가된다” 이처럼 무거운 말은 김교장의 사업에 대한 가장 좋은 평판으로 다가선다. 맡은 사업을 자신의 눈동자처럼 아끼고 사랑하면서 한점 한점의 밝은 빛으로 어둠을 몰아내고 희망의 씨앗을 열심히 가꾸는 그 모습은 실로 아름다운 풍경이 아닐수 없었다. 여기저기에 믿음과 정성으로 풀어놓은 인맥의 실마디는 가는곳마다 박수소리로 가득차군 하였다. 항상 보다 넓은 안광으로 멀리 내다보면서 눈앞의 자그마한 실수도 용서없는 자신에 대한 엄격함은 한결 질서정연한 자신을 수립시키기에 좋은 밑거름이 되였다. 학교의 전반 사업을 손금보듯한 관심에는 새로운 이미지가 말없이 자리를 만들군 하였다. 특히 사업에서 한점의 허위엔 전혀 용서를 모르는 그 철저함은 보다 높은 존경과 긍정을 몰아오기도 하였다. 사업에서 남다른 창신력은 젊음의 또 다른 매력을 높이높이 띄워가기도 하였다. 무슨 일이든 시작을 하면 꼭 끝을 보고야마는 끈질긴탐구자의 신분으로 어려움도 즐거움으로 바꿔가는 그 자세에는 산의 고상함과 자연의 너그러움이 실실히 드리우고 있었다. 2011년도에는 녕안시 “3.8” 붉은기수로 당선되였고 녕안시당대표로 당선되기도 하였으며 2012년에는 목단강시당대표로,  녕안시 10대 걸출한 “5.4” 청년메달상을 수여받았는데 유일한 조선족으로 자리매김을 하였다. 이외에도 흑룡강성 바깥황동선진공작자로, 미육공작선진공작자로 당선되였으며 목단강시 선진공작자, 우수교원으로 당선되였으며 녕안시 우수공산당원으로 당선되는 아름찬 영예를 안아오기까지에는 보다 많은 공헌이 아름답게 주름을 잡고있다. 오늘도 김교장은 거의 주말도 없이 학교의 희망찬 래일을 위해 자신의 젊음을 열심히 쏟고 있다。
100    거꾸로 보는 인생그라프 댓글:  조회:2793  추천:2  2012-05-20
1.   비내리는 날이면 아예 우산을 버려라 우산은 비를 막는것이 아니라 비를 만들고 있는것이다.   눈내리는 날이면 아예 옷을 벗어라 옷은 추위를 막는것이 아니라 더큰 추위를 불러오는것이다.   2.   슬픈이 쌓이는 날이면 아예 술병을 부셔라 술병은 슬픔을 삭이는것이 아니라 슬픔을 쌓아가고 있는것이다.   그리움이 쌓이는 날이면 아예 전등을 꺼버려라 밝은 전등은 그리움을 몰아내는것이 아니라 더 많은 그리움을 불러들인다.   3.   안개가 자욱한 날에는 아예 안경을 버려라 안경은 더 잘보기위한것이 아니라 보기싫은것들을 더 많이 불러들이는것이다.   바람이 부는 날에는 아예 숨통을 열어라 숨통은 호흡을 위한것이 아니라 오염된 공기를 저장하고 있는것이다.   4. 구름없이 맑은 날에는 아예 마음을 꽁꽁 잠그라 마음은 기쁨의 저금통이 아니라 요사한 구석의 간사한 가리움인것이다.   엄청 두렵게 흐린날에는 아예 마음의 창을 활짝 열어라 우울함은 두려움의 시작이 아니라 기쁨의 나루터를 만들기위한것이다.   5. 보기만해도 싫은 사람을 만난 날에는 저울추가 스스로 높아가거늘 저울대를 부셔버리면 무거운 저울추도 어쩌지 못하고 물앉는다   꿈에마저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난 날에는 아예 정맥의 뿌리를 뽑아버려라 피속의 모든 물질들이 하아얀 날개짓으로 새롭게 다가선다. 6.   바르게 보면 역거운 인생 거꾸로 보면 볼만한 인생 어제도 래일도 아닌 인생 꿈꾸는 다락방이 흘린 몇줄기의 이름모를 존재.  
99    약속(외1수) 댓글:  조회:2836  추천:0  2012-05-09
   친구와의 약속은   까아만  씨앗의   파아란 기다립입니다.   엄마와의 약속은   빠알간 마음의   노오란 풍선입니다.      자신과의 약속은   허어연 겨울의   매서운 칼바람입니다.   거미줄   기는 놈이   나는 놈을   붙잡는   무서운 장난입니다.   부모가   자식에 대한   무형의   아리숭한 기억입니다.   내가   나에 대한   일종의   무서운 모험입니다.   거미줄에는   약한 벌레만   잡히는것이 아닙니다   세월의 쪼각들도   대롱대롱   잡히여 있습니다.
98    물장난(외1수) 댓글:  조회:2503  추천:0  2012-04-30
 물장난 (외1수)   좋은 물 같아서 주저없이 발을 들여놓았습니다 질서없는 재미에 나는 나를 잃어버리고말았습니다 모든 권고를 물리치고 고집을 붙잡고 들어섰습니다 물이 항상 뜨거운 줄로만 알고있었습니다 물이 항상 깨끗한 줄로만 착각하고말았습니다 이상이 꿈틀거리는 마음을 되찾았을 땐 이미 물이 아닌 또 다른 불이였습니다.   남자21   남자는 수층의 껍질을 휘감은 마음이 비여있는 일종의 특수한 남새이다.  
97    ?...! 댓글:  조회:2568  추천:3  2012-04-25
가짜가 진짜 대접을 받는다. 진짜가 가짜 대접을 받는다. 진짜와 가짜를 분별하기가 별스레 어려운 어떤 구 석.
96    꽃잎의 미소 댓글:  조회:3493  추천:0  2012-04-02
     둥근 달님이 너그러운 마음을 한껏 풀어놓고 쥐위의 만물을 조용히 지켜보면서 근심어린 눈길로 어딘가를 무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지나가던 바람이 승겁게 달님을 물끄러미 쳐다보면서 가벼운 입을 풀어놓는다. “여보세요, 달님 무엇을 그렇게 넋을 잃은듯이 보고 계십니까? 저도 함께 흔상하면 안되요?” “허허, 너 이놈은 아직도 자지 않고 이렇게 늦은 밤까지 쏘다니면서 무엇을 하는거냐? 나 걱정이랑은말구 어서 집으로 돌아가서 할일이나 하려무나.”  좋은 일보다 못된 일을 퍼그나 찾아하는 바람을 별로 달가와하지 않는 달님은 두눈을 감고 아예 바람을 등지고 서있었다.  아무래도 별 좋은 대접을 받지 못할것같다고 생각한 바람은 갑볍게 몸을 일구며 어딘가로 날아가버렸다. 바람의 뒤모습을 지켜보는 달님은 가늘게 한숨을 짓고는 그냥 어딘가에 귀를 기울이고있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 누군가의 말소리가 점점 더 크게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두눈을 크게 뜨고 내려다보던 달님은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정말 걱정이네. 저 놈들은 언제까지 저렇게 옥신각신 다툴건지.) 달님은 저으기 걱정스러운 표정이였어도 입을 꾹 다물고 그들의 대화에 그냥 귀를 열고 있었다.  아웅다웅 다투는 언성은 점점 높아만 갔다. 고요하던 밤하늘에 차츰 바람이 일기 시작하였다.  “야, 넌 정말 사는게 한심하구나. 평생 그저 내 몸이나 받쳐주는 그런 노예 노릇을 하면서 뭐가 그리 대단하다구 그냥 얼싸하게 노는거니?”  멀지 않은 어느 고원의 부근에서 들려오는 꽃의 말이였다. 하지만 꽃잎은 아무말도 없이 그저 가는 몸을 바르게 세우고 자신의 자리를 굳게 지키고 있었다. 그런 꽃잎의 꼴이 더 눈에 나는지 꽃은 한발 더 다가섰다. “야, 이 등신같은 놈아. 대꾸질이라도 좀 해봐라. 귀가 먹었냐? 아니면 혼이 나간거냐?” 곱게 핀 분홍색꽃이 생긴 모습과는 달리 흘러나오는 말은 듣기 마저 무참할 지경이였다. 꽃잎은 흥분에 들떠서 어쩔바를 모르는 꽃을 보면서 가볍게 웃고 말았다. 그럴수록 꽃은 더 화가 치미는지 이번에는 참 한심하게 입을 열었다. “야, 이 등신짝같은 놈아. 당장 내 곁에서 사라지거라. 너의 이런 꼴을 보느라니 고운 내 얼굴이 얼마나 상하는지 모른다. 내가 더 화를 내기전에 당장 사라져라.”  꽃은 무슨 약이라도 잘못먹은듯이 꽃잎을 더욱 못살게 굴었다. 그래도 꽃잎은 아무런 말도 없이 그저 꽃을 열심히 받쳐주고 있었다. 조용히 그들의 말을 듣고 있던 달님은 길게 한숨을 몰아쉬였다.   어느덧 무더운 여름이 지나가고 서늘한 가을이 찾아왔다. 그렇게 매일을 옥신각신 다투던 꽃도 이젠 맥이 진했는지 퍼그나 말이 적어졌다. 꽃잎은 여전히 꽃에 대하여 아무런 불만도 모르고 열심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꽃이 갑자기 자신의 몸이 점점 싸늘해남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이전보다 생기도 많이 약해지고 몸도 점점 허약해짐을 놀랍게 발견하였다. 눈을 가슴츠레 뜬채 잎을 내려다보던 꽃은 그만 깜짝 놀랐다. 글세 그렇게 파아랗게 자신을 바쳐주던 잎이 누렇게 스러져가고 있었던것이다. 그러면서도 얼굴하나 찡그리지 않고 그냥 그렇게 열심히 마직막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어딘가 이상한 느낌이 든 꽃은 점점 당황해나는 자신을 달랠수없었다. 이때 말없이 꽃을 지켜보던 달님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쁜 꽃아, 너도 이젠 어느 정도 알아야 한텐데. 평생 꽃잎을 보면서 불만을 털어놓은 자신이 어딘가 부끄럽지 않느냐?” 달님의 말에 꽃은 뭔가를 깨칠듯한데 여전히 몽롱하기만 하였다. “달님, 저 잘 모르겠는데요. 잘 가르쳐주실수 없습니까?”  많이 성근해지는 꽃을 보면서 달님은 입을 열었다. “글쎄 네가 아름다운것도 사실이지만 실상은 너의 아름다움에 꽃잎이 없다면 구경 얼마나 아름다울지 너 스스로 곰곰히 생각해보렴.” 그제야 달님의 말뜻을 알듯한 꽃은 꽃잎보기에 미안한 마음을 달랠길이 없었다. 평생 못살게 굴면서 깔보고 없신여기면서 온갖 우롱을 다 보낸 꽃잎보기에 너무도 미안했다. 더우기 그렇게 서러운 봉변을 당해도 운명인듯 받아들이는 꽃잎앞에서 부끄러움은 점점 커만갔었다.  “야, 정말 미안하구나. 평생 너를 그렇게 못살게 군 내가 얼마나 얄미운지 모르겠다. 죽을 죄를 진 나를 용서해줄수 있겠니?” 꽃은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의 잘못을 절실히 반성하였다. “너무 자신을 그렇게 슬프게 만들필요까지는 없다. 가끔 좀은 슬프고 애타기도 하였지만 그래도 난 너를 그냥 받아줄수 있었어.” “그건 왜?!” “필경 우리는 한가족이니깐. 우리가 서로 양보하고 물러서지 않는다면 남들은 아마 우리를 더욱 깔보았을거야. 난 네가 있어서 늘 행복했어.”  꽃잎의 말에 꽃은 더는 참지 못하고 떨리는 손으로 꽃잎을 받쳐들었다. 때는 이미 꽃잎은 눈을 감고 있었다… 둥근 달님이 너그러운 마음을 한껏 풀어놓고 쥐위의 만물을 조용히 지켜보면서 근심어린 눈길로 어딘가를 무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지나가던 바람이 승겁게 달님을 물끄러미 쳐다보면서 가벼운 입을 풀어놓는다. “여보세요, 달님 무엇을 그렇게 넋을 잃은듯이 보고 계십니까? 저도 함께 흔상하면 안되요?” “허허, 너 이놈은 아직도 자지 않고 이렇게 늦은 밤까지 쏘다니면서 무엇을 하는거냐? 나 걱정이랑은말구 어서 집으로 돌아가서 할일이나 하려무나.”  좋은 일보다 못된 일을 퍼그나 찾아하는 바람을 별로 달가와하지 않는 달님은 두눈을 감고 아예 바람을 등지고 서있었다.  아무래도 별 좋은 대접을 받지 못할것같다고 생각한 바람은 갑볍게 몸을 일구며 어딘가로 날아가버렸다. 바람의 뒤모습을 지켜보는 달님은 가늘게 한숨을 짓고는 그냥 어딘가에 귀를 기울이고있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 누군가의 말소리가 점점 더 크게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두눈을 크게 뜨고 내려다보던 달님은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정말 걱정이네. 저 놈들은 언제까지 저렇게 옥신각신 다툴건지.) 달님은 저으기 걱정스러운 표정이였어도 입을 꾹 다물고 그들의 대화에 그냥 귀를 열고 있었다.  아웅다웅 다투는 언성은 점점 높아만 갔다. 고요하던 밤하늘에 차츰 바람이 일기 시작하였다.  “야, 넌 정말 사는게 한심하구나. 평생 그저 내 몸이나 받쳐주는 그런 노예 노릇을 하면서 뭐가 그리 대단하다구 그냥 얼싸하게 노는거니?”  멀지 않은 어느 고원의 부근에서 들려오는 꽃의 말이였다. 하지만 꽃잎은 아무말도 없이 그저 가는 몸을 바르게 세우고 자신의 자리를 굳게 지키고 있었다. 그런 꽃잎의 꼴이 더 눈에 나는지 꽃은 한발 더 다가섰다. “야, 이 등신같은 놈아. 대꾸질이라도 좀 해봐라. 귀가 먹었냐? 아니면 혼이 나간거냐?” 곱게 핀 분홍색꽃이 생긴 모습과는 달리 흘러나오는 말은 듣기 마저 무참할 지경이였다. 꽃잎은 흥분에 들떠서 어쩔바를 모르는 꽃을 보면서 가볍게 웃고 말았다. 그럴수록 꽃은 더 화가 치미는지 이번에는 참 한심하게 입을 열었다. “야, 이 등신짝같은 놈아. 당장 내 곁에서 사라지거라. 너의 이런 꼴을 보느라니 고운 내 얼굴이 얼마나 상하는지 모른다. 내가 더 화를 내기전에 당장 사라져라.”  꽃은 무슨 약이라도 잘못먹은듯이 꽃잎을 더욱 못살게 굴었다. 그래도 꽃잎은 아무런 말도 없이 그저 꽃을 열심히 받쳐주고 있었다. 조용히 그들의 말을 듣고 있던 달님은 길게 한숨을 몰아쉬였다.   어느덧 무더운 여름이 지나가고 서늘한 가을이 찾아왔다. 그렇게 매일을 옥신각신 다투던 꽃도 이젠 맥이 진했는지 퍼그나 말이 적어졌다. 꽃잎은 여전히 꽃에 대하여 아무런 불만도 모르고 열심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꽃이 갑자기 자신의 몸이 점점 싸늘해남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이전보다 생기도 많이 약해지고 몸도 점점 허약해짐을 놀랍게 발견하였다. 눈을 가슴츠레 뜬채 잎을 내려다보던 꽃은 그만 깜짝 놀랐다. 글세 그렇게 파아랗게 자신을 바쳐주던 잎이 누렇게 스러져가고 있었던것이다. 그러면서도 얼굴하나 찡그리지 않고 그냥 그렇게 열심히 마직막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어딘가 이상한 느낌이 든 꽃은 점점 당황해나는 자신을 달랠수없었다. 이때 말없이 꽃을 지켜보던 달님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쁜 꽃아, 너도 이젠 어느 정도 알아야 한텐데. 평생 꽃잎을 보면서 불만을 털어놓은 자신이 어딘가 부끄럽지 않느냐?” 달님의 말에 꽃은 뭔가를 깨칠듯한데 여전히 몽롱하기만 하였다. “달님, 저 잘 모르겠는데요. 잘 가르쳐주실수 없습니까?”  많이 성근해지는 꽃을 보면서 달님은 입을 열었다. “글쎄 네가 아름다운것도 사실이지만 실상은 너의 아름다움에 꽃잎이 없다면 구경 얼마나 아름다울지 너 스스로 곰곰히 생각해보렴.” 그제야 달님의 말뜻을 알듯한 꽃은 꽃잎보기에 미안한 마음을 달랠길이 없었다. 평생 못살게 굴면서 깔보고 없신여기면서 온갖 우롱을 다 보낸 꽃잎보기에 너무도 미안했다. 더우기 그렇게 서러운 봉변을 당해도 운명인듯 받아들이는 꽃잎앞에서 부끄러움은 점점 커만갔었다.  “야, 정말 미안하구나. 평생 너를 그렇게 못살게 군 내가 얼마나 얄미운지 모르겠다. 죽을 죄를 진 나를 용서해줄수 있겠니?” 꽃은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의 잘못을 절실히 반성하였다. “너무 자신을 그렇게 슬프게 만들필요까지는 없다. 가끔 좀은 슬프고 애타기도 하였지만 그래도 난 너를 그냥 받아줄수 있었어.” “그건 왜?!” “필경 우리는 한가족이니깐. 우리가 서로 양보하고 물러서지 않는다면 남들은 아마 우리를 더욱 깔보았을거야. 난 네가 있어서 늘 행복했어.”  꽃잎의 말에 꽃은 더는 참지 못하고 떨리는 손으로 꽃잎을 받쳐들었다. 때는 이미 꽃잎은 눈을 감고 있었다…
95    심령의 계곡에서 울리는 메아리 댓글:  조회:2871  추천:0  2012-03-15
  못살아도 항상 깨끗하던 엄마였습니다.    잘못앞에서는 한점의 용서도 없으시던 엄마였습니다. 항상 가정을 위하여 언제나 자신을 희생하시며 살아오시던 엄마였습니다. 한점의 고기라도 남겼다가 자식들에게 주시던 엄마였습니다. 속옷도 헤질대로 다 헤질때까지 입으시던 엄마였습니다.   자식의 손을 꼬옥잡고 인생의 진리를 가르치시던 엄마였습니다. 가족이라는 기념비를 세우기에 자신을 한생을 다 바치신 엄마였습니다. 항상 밤중이면 이불속에서 눈물을 흘리시며 불쌍하게 살아오신 엄마였습니다. 온종일 밭에서 땀을 흘리시면서 일전일전 모은 돈으로 우리들을 너무도 힘겹게 키우신 엄마였습니다.    그것은 돈뿐이 아니였습니다. 엄마의 하얀 넋이 였습니다. 그것은 엄마의 깨끗한 희망이였습니다. 하지만 못난자식들은 그것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저 엄마면 꼭 그래야만 하는가고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엄마는 힘차게 살아오셨습니다. 그것은 삶이 아니였습니다. 죽음보다 더 어려운 삶이였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엄마는 병상에 누우셨습니다. 날로 수척해가는 엄마의 그 모습을 지켜보는 자식들의 마음은 아파나기 시작하였습니다. 하지만 때늦은 아픔은 엄마를 남겨둘수 없었습니다. 엄마는 떠나가셨습니다.    하늘과 땅이 맞붙던 그런 아픔을 남겨두시고 엄마는 영영 떠나가셨습니다. 이제는 엄마라고 부를수없었습니다. 그런 자격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자식으로서 너무도 큰 아픔을 느껴야만 햇습니다. 하지만 때늦은 그때는 아픔이 아니라 후회였습니다. 뼈속을 찾아드는 그런 후회엿습니다.  마음에서 울려오는 그메아리는 자식들의 삶의 한길에 밝은 등대가 되여줍니다.   수많은 세월이 흘러지났습니다.     그러던 그 어느날 자식이 엄마가 되여봅니다. 모진 진통을 이겨내고 위대한 엄마로 세상에 알려질때 진정으로 엄마가 그리워납니다. 엄마가 보고파 집니다. 엄마를 사랑하게 됩니다. 저 세상에서도 엄마가 기뻐하실걸 생각하느라니 눈물만 가슴을 적셔줍니다. 이제는 엄마가 되여 엄마처럼 살아가리라 다짐합니다. 꼭 할수있으리라 생각하니 미안함이 적어집니다. 하지만 아픔은 점점 커만갑니다.  때로는 두려움도 생겨나지만 그럴즈음에는 엄마를 생각합니다. 순간 보라색여운이 엄마의 하아얀 넋을 타고 내 가슴에 조용히 내려앉습니다.    엄마의 인자한 모습이 내 삶의 갈림길에 낡고도 낡은 하나의 보따리로 남겨집니다. 엄마처럼 항상 깨끗하게 인생의 한길에서 열심히 살면서 깨끗한 인정을 엄마가 남겨준 보따리에 차곡차곡 담아넣으면서 살아가렵니다. 엄마에게 미안함이 없는 그날까지 .
94    안으로 크는 사랑 댓글:  조회:2849  추천:0  2012-03-15
  길 잃은 제비 한마리가 남방을 포기하고 북방에서 겨울을 나기로 작심하였다. 수많은 조롱의 눈길들이 비발처럼 쏟아져내렸어도 그해 겨울 제비는 장하게 살아남았다. 따스한 봄바람이 불어오자 제비는 아예 이름을 고쳐버렸다. 최신기술의 미용을 거쳐 용모마저도 변형시켰다 지어 울음소리마저 바꿔버렸다. 이제 다시 나는 제비가 아니라구 그러면서 하는말이 가는곳마다 고향인데 고향을 택해서 뭘하랴구. 사랑은 안으로 커가는 나름대로의 선택이라면서 자랑스레 별스런 울음소리로 온 겨울 어느쪽을 향해 목청껏 웨쳐댔다. 그해 겨울은 별로 춥지가 않았다. 제비들도 아니 제비가 아닌 제비들이 이상하게 많아졌다.
93    눈칫밥 댓글:  조회:3661  추천:3  2012-02-20
     며칠전 친구들과 함께 술상을 같이하다가 우연하게 눈칫밥이 화제가 되여 서로의 주견을 내세우느라 연간 복잡하지 않았다. 어떤 친구들은 애들이 눈칫밥을 먹어야 셈이 든다고 하였고 반면에 어떤 친구들은 애들이 눈칫밥을 먹지 말고 자라야 심신이 건강하게 자랄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자신이 직접 겪은 사실을 실례로 들어가면서 너무도 실감나게 풀어나가는 장면을 말없이 지켜보느라니 갑자기 설레이는 마음을 누를길이 없었다. 자꾸만 어수선해나는 마음을 억지로 누르면서 친구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 무슨 인생철학에 대한 해부학도 아니다보니 얼굴을 붉힐필요가 없어서 너무 편했고 그저 듣는 그 멋도 참 좋았다. 친구들의 회제는 매우 단순했는데 애들이 눈칫밥을 먹으면 빨리 셈이 들고 눈칫밥을 먹지 않구 자라는 아이들은 철이 드는데 좀 늦다는것이였다. 하지만 서로의 주견은 굽힐줄을 몰랐다. 여하튼 그날 술상에서 그 화제는 확실한 결론을 보지 못하고 미지근하게 끝나고 말았다. 어찌보면 이 화제는 결론이 근본 필요가 없다고 본다. 나더러 이야기하라고 한다면 결론부터 말하면 이다. 사전에서 그 풀이를 옮겨보면 이라고 풀이해주고 있다. 그러니 눈칫밥은 좋은 밥이 아니라는 말이다. 누가 밥먹고 할 일이 없어서 눈칫밥을 먹으면서 살자구 할가? 나는 학교시절에 몇년동안 눈칫밥을 먹으면서 살아왔다. 비록은 친척집이라 할지라도 그것만은 피면할수 없는것이다. 어쩐지 그 당시는 남의 집의 밥이나 반찬이 그렇게 맛있을수가 없었다. 어쩌다가 방학이 되여 집으로 돌아오면 어머님께서 꼭같은 반찬을 할때가 많다. 하지만 친척집에서 먹던 그때와 맛이 전혀 다른것이 참 이상할 정도였다. 어머님의 생각과는 달리 밥을 맛나게 먹지않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어머니께서 하시던 그 한마디 말씀은 아직도 내 마음에 동여있다. 하면서 어딘가 섭섭해하는 기색이였다. 금시 눈시울이 뜨거워남을 억지로 참으면서 부지런히 수저를 놀렸다. 그제야 어머니께서는 많이 기뻐하시는것이였다. 그날 실상 어머님께 큰 불효를 지른거나 다름이 없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눈칫밥은 정말 먹기가 어려운 일이다. 다른 애들처럼 덜렁거리면서 마음도 강했으면 그 무슨 눈친들 물리치고 먹을것을 다 찾아먹었으련만 어려서부터 가난하게 자라다보니 마음가짐이 어지기로는 짝이 없는 나로서는 정말 고역이 아닐수 없다. 아무리 가까운 친척일지라도 그 눈치를 안본다는것은 병신 내놓고는 다 할수 없는 일이다. 솔직하게 말해서 20여년동안 종래로 이런 회제를 내놓고 말해본적이 없다. 혹시 친척의 흉이라도 될는지 아니면 꼭 마치도 친척집에서 눈치만 보면서 제대로 크지 못한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당시 친척들은 최선을 다하여 나를 아끼고 관심해주셨다. 그 은공은 절대로 부정할수 없는 일이다. 절대적으로 나 자신이 마음이 넘 어진탓이라는 생각이다.     한번은 금방 하학하고 집으로 돌아오니 마침 이모께서 저녁밥을 짓고 계셨다. 새밥을 지으면 래일에 또 묵은 밥을 먹어야 한다면서 좀은 밥이 모자라는것같은데 그냥 면같은것으로 지내자는것이였다. 면이라면 질색하는 나로서는 근심이 태산같았다. 그 당시 농촌에는 다른건 귀해도 쌀은 흔한 편이여서 밥이 모자라면 인츰 새밥을 짓는데 시내에서는 사는 방식이 많이 달랐다. 또 그렇게 살아야만 생활을 할수 있는것이다. 그날 저녁 나는 자그마한 공기밥을 먹고 저녁자습하러 나갔다. 한 여덟시쯤이 되여서부터 배가 고프기 시작하였다. 그때는 한창 크는 나이다보니 먹는것도 엄청 말이 아니였다. 지금 애들은 그렇게 먹지 않지만. 저녁자습을 마치고 돌아오니 아홉시 반정도였다. 친척들은 이미 쉬고 있었다. 그날 저녁 나는 너무 배가 고파서 애매한 랭수를 얼마나 들이 마셨는지 모른다. 아침부터 배탈이 나가지고 약을 먹어야 할 신세였다. 하지만 그 당시 내가 비위를 쓰고 이모보고 배가 고프니 밥을 좀 지어달라면 이모는 두말없이 해주었을것이다. 하지만 마음이 어진 나로서는 그럴수가 없는것이다. 그 어진 마음은 지금도 매 한가지이다. 고치고 싶지도 않다. 그냥 그런 내가 마음에 드니 편하다. 좀은 어진것이 악한것보다는 훨씬 좋은 존재이니깐. 눈칫밥은 할수 없이 먹는것이다. 일부러 그런 밥을 먹으라면 지금 애들은 아마 하루도 견디지 못할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조건이 되면 누가 부질없이 눈칫밥을 선택하겠냐 말이다. 밥상에 앉아서 그처럼 좋아하는 반찬이 있어도 자기 집처럼 젖가락을 마음대로 움직일수 없는것이다. 어쩌다가 고기 반찬이라도 생기면 그날은 실로 잘먹는다는것보다는 되려 많이 굶는 날이라 함이 더 바람직할것같다. 왜냐하면 먹고 싶은 그 충동에 다소 먹은 음식이 소화가 얼마나 빨리 되는지 모른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그날도 아침부터 배가 고프다보니 매일 먹는 량의 밥으로는 배가 부르지 않았다. 그래서 밥을 더 떠먹으려고 숟가락을 놓으려는데 평소에 나하구 롱담을 하기 좋아하는 이모부가 하는 바람에 그만 숟가락을 놓고 밥상을 물러날수밖에 없었다. 어찌보면 나더러 같은 녀석이라구 핀잔할지도 모르지만 자신이 직접 겪어보느라면 그 누구의 가르침이 없이도 절실히 느끼게 될것이다. 이렇게 마음이 어진 나를 두고 친구들은 장가는 어떻게 들었느냐 하면서 롱담을 걸어오기도 한다. 그래도 여직 어진 나를 바보로 취급을 해주지 않아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저그만치 5년동안 눈치밥을 먹었으니 그만하면 터득이 갈것이다. 눈칫밥은 우연하게 먹어보는것이지 그것을 먹으면서 보다 인간다운 인간이 되려는 생각은 어딘가 많이는 허무한 생각이라는것이다. 더우기 애들은 눈칫밥을 먹일 필요가 없다고본다. 될수록이면 눈칫밥과 멀리하고 부모와 함께 성장하는 그 과정에 보다 많은것을 얻게 되는것이다. 눈칫밥은 어디까지나 힘들고 어려운 노릇이지 그것을 통해서 애들이 보다 빨리 셈이 들기는 바란다면 그건 무서운 장난이 되기가 일쑤이다. 아래 몇년간 먹어온 눈칫밥에 대하여 시어로 귀결시켜본다. 먹는것은 음식이지만 분비되는것은 설음이다. 먹는것의 맨 끝에는 늘 아쉬움이 서리고 분비되는것의 맨 끝에는 눈물이 서린다. 까마귀 울어도 슬픈 날 따로 없고 까치가 울어도 기쁜 날 따로 없다. 넓은 운동장에는 내 자리가 없고 작은 사랑방에는 초불만 밝게 비친다. 흑룡강성 녕안시조선족소학교 리창현
92    가면의 늪에서 춤추는 인간들 댓글:  조회:2687  추천:0  2012-02-12
                       삶의 풍경을 두루 살펴보느라면 다가서는 서글픔으로 괴로워지는 자신을 발견할때가 한두번이 아니라는 진솔한 고백이 한점의 어설픈 빛으로 잠자던 내 사유의 끝자락을 희롱하면서 자못 몽롱한 골짜기로 자신을 넘어뜨리군 하는 순간만큼 슬픈 존재는 더 없는줄로 알고 있다. 저 허공에 보기마저 흉할정도로 축 드리운 가면의 바줄에 매달려 게걸스러운 욕심의 웃음을 질질 흘리는 인간들이 꼭 마치 눌부의 흉측한 내심세계를 숨김없이 드러내면서도 만족의 지퍼를 헤쳐놓고 비게덩이로 가득찬 자신의 넋을 입에 퍼런 침이 튕기도록 손과 팔 그리고 둔중한 몸집까지 총동원이 되여 춤추는 모습은 말 그대로 쓰레기 무지에서 나름대로 흩날리는 그들만의 어지러운 삶의 현장이 아닐수 없다. 불재의 마음을 서투른 솜씨로 포장까지 해나가면서 썩어빠진 사다리의 층계를 한층한층 밟으면서 요행이라는 간사한 매개물을 녹이 가득 쓴 낚시에 요사하게 꿰매여 툭 불거져나온 눈알을 이상하게 굴려가면서 썩은 물로 다가가는 자신의 령혼에 노를 젓는 그 존재는 이상이 아니고서는 믿음이 타버리는수밖에 없었다. 두려움이 발밑에서 설음하는 신음소리에 귀가 멀었고 밝은 세상에 눈이 먼지도 반세기가 넘어갔건만 낡아빠진 고집은 움겨쥔 손안에서 악취를 풍기면서 또 다른 령혼의 재생을 움직임에 지쳐버린 머얼건 눈안에서 탈피를 위해 뼈마디가 툭 불거져나온 손가락을 접으면서 귀찮은 절주에 움직임이 분주하다.    바람도 정착이 불편하고 시끄러워 에돌아 가건만 욕망의 주머니는 늘어만 나다보니 채워지는것보다 새여나오는 어지러운 령혼의 쪼각들이 부지런한 청결공의 손끝에서 비명의 여운을 남기면서 자리를 감춘다. 보기 흉하게 축 드리웠던 혀도 이젠 퍼그나 지쳤는지 움직임에 가뿐숨을 몰아쉬면서 휴식의 구석을 찾느라 분주하기만하다. 이상하게 비뚤어진 어떤 구석들, 굳어진 혈관으로 몸마저 운전이 제대로 되지 않아버린 이상하게 흔들리는 모습에 부질없는 걱정의 코웃음이 시원스레 두갈래의 통로로 새길은 닦는다. 다 썩어 떨어진 사다리의 계단은 불어오는 바람에 분신을 맡기면서 갈곳을 찾는다. 오르지도 내리지도 못하고 허공에서 더럽게 말라붙은 눈곱을 뜯어 펑 뚫린 령혼의 구멍을 막는다. 멀지 않은 늪에서 그들만의 집합의 호각소리가 공요한 밤하늘을 가르며 울려온다. 별의별 움직임을 다 갖춘 특이한 군체들이 늪을 향해 보기 드문 행동을 시작한다.    가면의 늪은 이렇게 또 하나의 무덤으로 인간세상에 메아리로 다가선다.
91    빈잔 댓글:  조회:3383  추천:1  2012-02-01
세월의 콩밭엔 잡풀도 많았습니다 그저 크는 콩에 만족을 하면서 살아왔습니다 크는 콩대에 기쁨을 몰았고 넓어지는 콩잎에 웃음주머니만 흔들거렸을뿐입니다 퍼그나 엷어진 내 인생의 달력앞에서 주렁진 콩꼬투리를 조심스레 뜯고보니 텅빈 내 인생의 콩깎지들이 텅빈 내 인생의 콩깎지들이 맥없이 무너집니다 불어오는 바람에 정처없이 날려가는 내 인생의 콩꼬투리.
90    생존의 근본---홀로서기 교육 댓글:  조회:2177  추천:2  2012-02-01
  교육은 삶의 질을 항상시키는 중요한 과정이다. 그가운데서 홀로서기 교육은 가장 홀시할 수 없는 환절이다. 요즘에 우리의 교육을 가만히 살펴보느라면 가장 절실히 느껴지는 바가 있는데 그게 바로 홀로서기 교육을 훌시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응당 홀로서기 교육이 전반교육의 핵심이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가 못하니 안타깝기만 하다.    실상 홀로서기 교육은 생존에 있어서 절대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다른 교육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교육인 것만큼 전반 사회가 중시하고 선호해야 한다. 홀로서기 교육이 대접을 받지 못하게 된 가장 주요한 근원은 가정교육의 영향이 학교교육에까지 뿌리를 뻗었기 때문이다. 특히 요즘에는 핵가족으로 자식들은 거의가 손바닥위의 명주취급을 받다보니 홀로서기가 몰래 자리를 감추게 된것이다. 항상 애들이 넘어질까 두려워서 벌벌 떨고 있는 요즘 가장들의 지나친 보호의식으로 말미암아 홀로서기 교육은 스스로 물러서게 되였고 그 대신 과보호교육이 어지럽게 발을 들여놓게 되였다. 넘이지면 다칠 것 같고 떨어지면 부상할할 것 같은 부모들의 안절부절 못하는 지나친 조심성으로 하여 아이들이 홀로서기 의식도 사라지고 무작정 다른 사람에게 의지해야만 설 수있다는 생각들이 아이들의 몸에 휘감겨 있는것이다.    실상 조금은 넘어져야만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그런 기회도 생길수 있으련만 애가 일어서기 전에 부모가 먼저 일으겨 세우는 그 자세에 문제가 존재하는것이다. 한번 엎어지면 다음에는 스스로도 엎어지지 않기 위한 홀로서기 교육이 진행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인데도 요즘 부모들은 너무 두려워하는 태도에서 어딘가 근심스럽기만 하다. 언제까지 그냥 옆에서 일으켜줄려는지 안타깝고 근심스럽다.    홀로서기 교육은 어려서부터 진행되어야 하는데 요즘 가장들의 지나친 보호의식의 영향으로 꽁꽁 막혀 있으니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한 유치원 교사가 아이가 넘어지자 바로 달려가서 일으켜준 것이 아니라 옆에서 고무를 하면서 애 스스로 일어서도록 교육을 진행하였는데 옆에서 지켜보던 부모가 달려와서 애를 일으키면서 교사에게 눈을 흘기더라는 아야기를 들으면서 어이없는 웃음이 나왔다. 참으로 그 애의 장래가 근심스럽고 그 부모의 내일도 걱정스럽기만 하였다.   아마 요즘에 아이들에게 홀로서기 교육을 잘못하였다가는 학부모들의 핀잔을 받기가 일쑤이니 안타깝기만 하다.    그렇다고 해서 교육자의 신분인 교사로서 학부모들과 동등한 위치에 서서는 절대로 안된다는 생각이다. 아이들으 학습이나 생활 가운데 어려움에 부딪쳤을 때 홀로설 수 있도록 고무와 칭찬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특히 애들에게 홀로설 수 있는 마음교육, 의지교육, 정신교육, 인내교육, 신심교육 등을 각양각색으로 진행하면서 아이들의 홀로서기 교육을 중시해야 한다. 홀로서 교육은 말보다는 실천 속에서 많이 진행하여 애들로 하여금 어려서부터 홀로서기 교육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자신을 훌륭한 사람으로 성장시키는 중요한 도경임을 인식하게 하면서 스스로 홀로서기 교육에 자신을 밀어붙이는 습관을 키우도록 고무하고 격려해야 한다.   손자를 부축하는 할머니의 모습보다는 할머니를 부축하는 손자들의 모습이 많이 보이는 그런 삶의 현상을 너무나 보고 싶다.    홀로서기 교육은 민족의 내일을 비춰주는 밝은 등불이다.
89    조선족과 허영심 댓글:  조회:2312  추천:6  2012-02-01
    역사는 영원히 깨어질 줄 모르는 거울이라는 어느 학자의 말씀을 떠올려 보느라니 요즘 우리들의 삶의 자세가 어딘가 많이   기울어져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기운다는 그 자체어 벌써 문제가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인간의 가장 큰 단점이 바로 그 문제점에 대한 발견이 항상 때늦은 것이다. 이점만 보더라도 인간은 자연의 법칙에 대한 접수나 감각이 너무도 무딘것 같다. 어찌보면 가장 흥분상태에 처하고 있는 그 순간이 바로 우리들이 가장 명석해야 할 순간일지도 모른다.   여기서 우리는 반드시 삶의 가치라는 신성한 존재에 대하여 사색할 필요가 있다. 어찌보면 삶의 가치란 얻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삶의 가치를 논하기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닐수 없다. 너무 높은 산을 바라보지도 말고 너무 낮은 언덕을 바라볼 필요까지는 없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그 가치의 위치를 아무렇게나 배열한다는 것은 찬성할 바가 못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삶의 가치란 그 무슨 허영의 울타리에서 못나게 생겨나는 부러움의 연속이 아님을 반드시 명기해야 한다.    부러움은 인간의 본농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감추는 존재여야 하지 절대로 노출은 허용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인간의 가장 큰 흠이 바로 쉽게 부러워하고 쉽게 허영에 들뜨는 것이다. 특히 우리 민족은 쉽게 흥분하고 쉽게 부러워하고 쉽게 헤어지고 쉽게 일어서고 쉽게 넘어지는 모습들을 보인다. 오죽했으면 우리 말 속담에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이름난 글귀까지 생겨날수 있었을까?!    부러움은 어디까지나 허상이지 절대로 실상으로 탈바꿈 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변형히 알면서도 부러움의 흔들림에 들뜨는 모습들은 너무도 안타까운 일이다. 다시 말하면 부러움은 그저 스치는 그런 바램처럼 허기진 마음의 어느 구석을 채워줄뿐 실제적인 존재에 대하여서는 도움이 크게 없다는 것이다. 사람이 너무 부러움에 짓눌리고 보면 남는 것은 우울함밖에 없는것이다.  타민족은 몰라도 우리 민족만은 부러움에 미련이 너무 크다는 점만은 그 누구도 아직은 변명할 재능을 갖추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걸으면서 부러워하고 누워서도 부러워하고 잠결에서마저 부러워한다면 그 삶의 가치는 어느 위치에 놓여져야 할까?!     이제 우리는 부러움과 헤어져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그저 부러워만 말고 한번쯤 실천의 바줄을 힘차게 당겨보는 것도 삶의 가치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모른다. 실천이라는 보람찬 자세로 우리들의 존재를 실감하고 우리들의 삶의 가치를 더 높여가는 그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실천이야 말로  현실을 정시하고 현실을 비출 수 있는 값진 거울이 아닐수 없다. 그 거울 속에서 우리는 커야 하고 바르게 걸어야 하고 삶의 가치를 판단하고 자신의 존재를 인식해야만 우리 민족의 삶의 현장이 된장같이 구수하고 고추장같이 얼얼한 모습으로 다가설 것이 아닐까?!
88    요즘 애들 구경 무엇을 잃어가고 있는것일가? 댓글:  조회:2505  추천:2  2012-01-18
     언제부턴가 자신이 하고있는 일에 대하여 실망과 안타까움으로 뒤섞인 기분을 만들기가 일쑤였다. 그 느낌으로 자신을 그처럼 어설프게 만들어보기도 처음이였다. 솔직하게 말한다면 평범한 어느 한 교원의 힘으로는 해결이 어려운 현실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있지만 마음 한구석은 늘 슴슴하기만하여 안타까움은 그림자처럼 떠날줄을 모르고 있었다. 날로 자리가 비워지는 민족교육의 일선에서 최선을 다 하는 모습으로 열심히 사업을 하면서 애들의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느라니 별스러운 아픔이 자신을 힘들게 만들때가 한두번이 아니였다. 너무도 소중한것들을 하나하나 잃어가는 우리 애들을 지켜보면서 교원이라는 신성한 이름자를 지녔으면 최저한 으로는 다가서지 말아야지하는 근심을 붙안고 부득불 필을 들지 않을수 없었다. 요즘 우리 애들은 구경 무엇을 잃어가고 있는것일가? 첫째: 귀중한 우리 말의 참뜻을 잃어가고 있다. 는 말이 있다. 이처럼 한 민족으로 당당하게 살아갈수 있는 가장 바람직한 매개물이  바로 언어이다. 제 민족의 언어를 바르게 깨치고 빛내가려는 생각을 버린다면 그이상 더 큰 수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요즘 조선족학교들의 교정을 가만히 살펴보면 정말 가슴아픈 현실들을 밥먹듯이 목격하게 된다. 우리 애들이 우리 말보다 타민족의 언어가 더 류창하고 그 말에 대한 리해가 더 잘되여가고 있는것이다. 과당시간에도 어휘해석이거나 문장의 뜻을 해석할 때면 적지 않은 애들이 오리무중에 빠지는 경향이 매우 크다. 저는 될수록이면 우리 말로 해석을 하려고 애를 쓰건만 쉬도 때도 없이 그말을 한어로 번역해달라는 요구들이 사방에서 용수철튀듯하고있다. 그래도 저는 억지로 끝까지 알아듣건 말건 우리말로 해석을 하느라고 하지만 태반은 리해가 되지 않는것으로 신호를 보이군하였다. 그 순간이면 우리 말이 오늘에 애들에게 되려 외국어로 다가서고있다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심정은 엉망이되군하였다. 요즘 우리애들이 이렇게 될수있은 그 주요원인은 환경이라고 생각한다. 농촌에 있을 때엔 환경의 영향으로말미암아 우리 말이 제일 앞자리에서 자랑스레 자리를 지켜왔건만 현성의 학교로 온후부터는 환경의 영향으로 애들이 거개가 집이나 학교에서 한어를 일상용어로 하고 있으니 이렇게 밖에 될수없는 일이다. 이제라도 학교와 가정에서 손을 잡고 애들이 반드시 우리 말을 해야할 방법과 수단을 강구한다면 늦지 않다고 생각한다. 관건은 노력에 달려있는것이다. 이제 교정에 들어서면 구수한 우리 말로 대화하는 애들의 자랑스러운 모습을 보고 싶다. 둘째: 참된 례절의 속성을 잃어가고 있다. 는 말이 있다. 옳바른 례절을 아는것도 중요하지만 관건은 참다운 자세로 지켜가려는 그 자세이다. 요즘 애들은 교정에서 선생님을 만나면 인사하는 일면은 그래도 참 보기 좋은 모습들이다. 하지만 교정을 떠난 기타의 례절을 지켜보느라면 정말 엉망이기도 하다. 이로보아 학교의 례절교육은 실속있게 잘 되여가고 있는 편이지만 가정이나 사회의 례절교육이 실속있게 되지 못하고 있는 편이다. 반급의 애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간단히 해보았는데 식사를 하기전과 식사를 끝마친후 부모님께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는 학생이 얼마인가를 알아보았는데 30여명의 학생중 기껏해야 4명뿐이였다. 그래서 기타 동무들은 왜서 인사를 하지 않는가하는 물음에 애들의 대답이 걸작이였다. , 하는 식의 대답앞에서 부득불 자신의 교육에 대하여 반성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러니깐 애들은 몰라서 인사를 하지 않는다는 결론인것이다. 담임교원으로서 책임을 회피할수 없으리만큼 얼굴이 뜨거워나고 미안함을 감출수 없었다. 그래서 애들더러 음식을 준비하시느라 고생많으신 부모님께 식사를 하기전에는 , 식사를 한후에는 꼭 라고 인사를 해야한다고 알려주었고 일주일후에 선생님께서 부모님들께 전화로 확인을 할것이라고 약속까지 해놓았다. 몇명 가장들의 확인을 거쳐 애들이 처음에는 잊고 하지 않던것이 후에는 습관적으로 인사를 하니 기분이 참 좋다는 실말을 듣게 되였다. 이로보아 애들은 몰라서 그런것이니 애들에게는 착오가 없는것이고 그 책임은 우리의 몫으로 남겨야한다는 생각이다. 이외에도 여러모로 살펴보면 아직도 애들이 잘 몰라서 망설이고있는 현상이 존재하고 있다. 잘 먹이고 잘 입히고 하는것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것이 애들을 바르게 키우는것이 무엇보다 급선무가 아닐가?! 셋째: 넓은 도량을 잃어가고 있다. 요즘 애들의 교정생활에 대하여 조용히 지켜보느라면 자신을 너무도 놀랍게 발견할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그런 모습들을 지켜보느라면 근심, 걱정, 두려움, 지어느 공포감까지 들때가 적지 않다. 한 교실에서 30명의 서로 다른 성격의 사람들로 생활을 하는데 어찌 서로가 자그마한 실수를 하지 않을수 있으랴! 하지만 애들은 상대방의 티끌만한 실수에 대하여 꼬물만치도 리해하려 하지않고 눈에 불을 켜들고 접어드는 현상을 목격하면서 근심의 농도가 짙어만 갔다. 요즘 애들은 정말 자기밖에 모르고 상대의 실수에 대하여 용서하고 리해하는 그런 도량이 전혀 보이지 않는것이 너무도 안타깝기만하다. 애들이 이렇게 자신을 만들게 된 주되는 원인은 가정교육의 영향이 매우 큰것이다. 집집마다 애들을 하나씩 키우다보니 손바닥우의 진주취급을 받고 있다. 다치면 터질것같고 놓으면 부서질것같은 그런 존재여서 뭐든 애들의 의사를 좇는것을 최고로 간주하고 있다보니 애들은 집에서 뭐든 자기의 의사대로 가야하고 그대로 되지않을 경우에는 막무가내로 나가다보니 자신밖에 모르고 타인에 대한 리해심이나 용서심이 전혀 마음속에 비여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매일 머리를 맞대로 공부하는 친구들의 실수도 리해못하는 사람이 금후에 커거 넓은 사회라는 무대에 발을 들여놓고 어떻게 살아갈지 정말 근심스럽기만하다. 이제라도 애들에게 타인의 실수를 받아주고 리해해주는 그런 고운 심성을 키워주는것이 공부에서 높은 성적을 따내는것보다 더 바람직한 일이 아닐가?! 넷째: 웃사람에 대한 효성을 잃어가고 있다. 는 좋은 말이 있다. 효성은 사람을 상대로 하여 생긴 말이긴 하지만 가끔은 우리들은 텔레비나 책에서 동물들의 부모나 형제에 대한 효심을 목격하면서 찬탄하지 않을수 없을 때가 한두번이 아닌것은 부정할수 없는 일이다. 요즘 애들은 참으로 효성이 뭔지 몰라도 한심하게 모르고 있고 전혀 효성에 대한 마음이 없는것으로 보여진다. 집에서도 저나 잘 먹고 잘 입으면 최고인줄로 알지 언제 한번 부모님들이 자식을 위해 피땀을 흘린다는 생각을 가져본 학생이 얼마안되는줄로 인식이 앞선다. 그래도 가정에서 부모들의 옳바른 교육을 받은 학생들은 효성의 진의를 어느정도 알고 최저한 효성을 실천에 옮기려는 소행을 보여주고 있어서 참으로 대견스러웠다. 하지만 적지 않은 학생들은 부모의 고생에 대하여 근본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이런 후과를 초래하게 된 주되는 원인은 바로 요즘 애들이 너무도 호강하고 편하게 아무런 고생도 모르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모님들의 눈먼 사랑으로 초래되기도 하고 있다. 는 교육의 참뜻을 그대로 내포한 말이다. 애들이 너무 호강스레 살다보니 부모님들의 고생에 대하여 모르고 지어는 부모는 반드시 나를 위해 이렇게 해야 한다는 엉뚱한 자기 나름대로의 철학을 만들어가고있기때문이다. 이제라도 가정과 학교의 합심으로 애들이 잃어가는 너무도 소중한것들을 하나하나 손잡고 되찾아주는것이 급선무라는 생각이다. 필경은 애들은 때가 되면 부모곁을 떠나서 자립하게 된다. 우리는 애들에게 한순간의 즐거움을 줄것이 아니라 한평생을 지혜롭게 살아갈수 있는 재주를 키워주어야 한다. 공부만 잘해서 인생을 지혜롭게 산다고 긍정할수도 없는 일이고 공부를 못하더라도 홀로서는 재주와 지혜를 갖춘다면 평생을 그 누구보다 보람있고 가치있게 살아갈수 있을것이다. 이로보아 인재가 되기전에 먼저 인간으로 키워주는것이 바람직한 교육이 아닐가?! 는 말을 꼭 명기했으면 좋을듯하다.
87    그리움 댓글:  조회:3294  추천:0  2012-01-14
눈내리는 밤이면 엄마가 모질게 보고프다 열손가락 모자라도록 엄마자리가 비여있다 비여있는 자리마다에는 그리움들이 남실댄다 눈물이 촐랑댄다 가마목엔 먼지가 부옇다 엄마의 그리움이 그대로 쌓인다. 날로 비여가는 엄마의 자리를 꼭옥 지키려고 입술을 깨문다 무서움이 꿈틀거리며 일어선다 엄마의 자리가 진정 비워지면 나는 어쩔가? 눈물이 찔끔 가슴을 메운다 그리움이 무서움으로 다가선다 눈은 눈대로 그냥 내린다 그리움을 싣고 내린다 그리움을 싣고 날아오른다 눈내리는 밤이면 꿈에마저 엄마를 본다 아빠는 코를 곤다.  
86    오솔길 댓글:  조회:3189  추천:1  2012-01-14
숙제없는 날에는 오솔길을 만들고 싶다 노루랑 산토끼랑 마음껏 뛰놀게 별님 달님 내려와 손벽치며 즐겁게. 내 마음에도 고운 오솔길이 생긴다 엄마랑 아빠랑 동생이랑 손에 손잡고 히히—호호--- 노래하면 오솔길도 즐거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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