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의 문턱을 넘어선지도 어언 10여년 세월이 흘렀다. 한 사람의 인생에 10년 세월이 몇개 있으련만 그래도 잔잔한 행복에 만족하며 오늘까지 자신의 둥지를 아끼고 사랑하며 열심히 삶의 터전을 갈고 또 갈아왔다. 남들처럼 큰 성과는 없더라도 오늘까지 자신의 둥지를 아끼고 지켜왔다는 하나만으로도 스스로 만족을 느낀다. 그러면서 내 곁을 지켜주고 삶의 용기를 부여한 안해가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결혼 초기에 나도 남들 못지 않게 아름다운 꿈을 키웠었다. 멋진 인생의 그라프를 그리면서 행복의 물결우에 누워보기도 했다. 수시로 밀려오는 크고 작은 파도에도 두려움을 모르며 용케 삶의 터전을 가꿔왔다. 사랑하는 상대가 존재한다는 리유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행복하기만 했다. 안해에게 미안함 같은것이 없는것은 아니다. 그처럼 아름답던 꿈들이 10년 세월이 흐르도록 세월의 바위에 짓눌려 잠자고있다는 현실로 안해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어느 날 새벽에 꿈같이 머리를 쳐들었다. 그러나 안해는 아무런 티도 없이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고있다. 진실을 가늠하기 어렵지만 그래도 행복하다는 안해의 그 마음가짐으로 다소 위안이 된다. 사리에 밝고 흉금이 넓은 안해를 맞은것이 다행이다. 그런 안해가 아니였다면 나 자신도 인생의 뒤골목에서 방황했으리라. 사람이 살다보면 생각대로 되지 않는 일들이 너무나 많다. 동네 여느 녀자들이 멋진 옷차림으로 넉넉함을 자랑하는 모습을 엿보노라면 남편으로서 가슴이 아플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경제가 넉넉하면 욕망대로 안해에게 이것저것 해주고싶지만 로임에 매여사는 못난 인간이라 그렇게 할수도 없다. 마음뿐이고 행동에 옮기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로 때로는 모진 아픔을 느끼기도 한다. 그래서 더욱더 안해에게 자신의 사랑을 표하고싶다. 얼마전에 한국에 간 동생이 제 녀자친구에게 옷가지며 화장품을 선물로 보내왔다. 그것도 내가 몸을 담고있는 학교로 부쳐왔다. 형수 몫이라며 똑같은것을 두 몫으로 보내기는 했지만 개운한것은 아니였다. 옷가지며 화장품을 받아들고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안해의 모습을 지켜보노라니 저으기 서운한 감이 들기까지 했다. 필경은 내 선물이 아니니 말이다.
《동무도 언젠가 한국에 가면 저에게 멋진 옷을 사주세요.》
그날 밤, 잠자리에 든 안해가 조용히 하는 말이였다. 악의 없는, 순수한 말이였지만 나는 가슴이 짜릿해나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언젠가는 멋진 선물을 안겨주리라 다져온 결심을 여직 실현하지 못한 자신이 안타까왔다. 그래서 소리 없이 안해를 포옹했다. 내 체온을 통해 나의 심정이 안해에게 전해질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가 하는 기대뿐이였다. 그 후에도 안해는 내 앞에서 이런 저런 일로 투정하는 일이 없었다. 빈정거리거나 신경을 꼬집는 일도 없었다. 그런 안해가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욕망을 털어놓지 못하는 안해가 얼마나 슬플가 하는 생각이 이 가슴을 모질게 허빈다. 해준것이 없는 나로서는 안해앞에 서면 자책뿐이다. 생각이 없어서,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지갑이 엷으니 그렇게 지내온것이다. 그래도 항상 안해에게 큰 기쁨을 선사하려는 마음 하나만은 깊숙이 지니고 다닌다. 그런 내 소행으로 안해가 만족하는지도 모른다. 가끔은 몇푼 안되는 원고료를 받으면 안해 선물을 장만하곤 한다. 보잘것 없는 선물이지만 내 마음을 두배로, 세배로 담는다. 그래서인지 안해는 내가 주는 선물이라면 무작정 만족이란다. 그래서 선물은 가격보다도 마음이 더욱 가치있는줄로 믿고있다. 살아가노라면 하찮은, 작은 일로 안해와 옥신각신 다투는 때도 있다. 그러나 그 순간이 지나면 내 인생에서 더 없을 아픈 후회로 나를 몰아간다. 안해가 밉기에 앞서 못난 자신으로 채찍을 드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매번 다투고나면 나는 부엌을 드나들며 부산을 피운다. 안해의 여린 가슴에 상처를 남길가 두렵고 그 아픔을 달래주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 내 앞에서 안해는 눈물까지 찔끔 짜며 설음을 토하노라 여념이 없다. 그런 안해의 설음으로, 안해의 눈물로 나는 높아가는 사랑의 탑을 느끼고 잔잔한 행복이 가정 구석구석에 깃들고있음을 느낄수 있다. 가끔은 로임이 몇푼 안되는 교원직을 팽개치고 해외로, 도시로 떠나고싶은 생각이 굴뚝같이 치민다. 이래도 한생, 저래도 한생인데 남들처럼 큰소리 떵떵 치며 살아보자고 마음을 다진다. 그러나 내가 떠남으로 해 외롭게 살아갈 안해를 생각하면 모질게 먹었던 마음도 스르르 녹아내린다. 그리고 순간순간의 잔잔한 행복에 집념하며 내 둥지를 더욱 아끼고 사랑한다. 부모없이 거리를 헤매는 애들을 지켜보노라면 걱정과 아픔이 꾸역꾸역 괴여오른다. 부모들이 해외로, 도시로 진출해 경제상으로는 걱정이 없겠지만 정신상으로 체험하는 그 고통을 아는 사람은 적을것이다. 그래서 잘 살아보려는 그 욕망은 좋지만 자신의 둥지를 지키고 알뜰히 가꾸는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가 하는 생각도 가져본다. 우리는 서로에게 물질적인 행복을 주지는 못하지만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며 잔잔한 행복으로 살아가고있다. 여느 사람들의 눈에는 보잘것 없는, 하찮은 삶일지도 모르지만 우리 부부는 만족하며 살아왔다. 요즘 세월엔 삶의 방식과 수단이 다르겠지만 스스로의 삶에 만족할줄 아는것도 삶의 지혜임을 나는 자각하고있다. 물질적인 행복도 좋겠지만 서로의 믿음과 아낌이 진정한 행복임을 나는 고집하고있다. 오늘도 우리 부부는 얼마 안되는 로임으로 만족하며 살고있다. 없으면 없는대로, 있으면 있는대로 이웃들과 주고받으며 사는 나로서의 삶의 방식이 얼마나 편한지 모른다. 깨끗한 마음으로 진정을 주고받는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겠다. 삶이란 만족이라는 천평우에서 가늠돼야 할것이다. 모든것이 평행을 이룰 때만이 가장 보람차고 행복한것으로 알고있다. 그래서 나는 자신의 삶이야말로 오염없는 삶이라고 고집한다. 한국의 유명한 시인 이롯 선생님의 시 《삶의 바람소리》가 떠오른다.
어렵고 힘들다고또는 괴롭다고꼭 나쁜것만은 아니다세상이 그저 있는 그대로아름답고 우리 또한지금 있어야 하는 리유만으로존재할만한 가치가 있는것처럼그 속에도 우리가 살아가야 할분명한 진실이 있다애써 도망치려 한다면오히려그만큼 삶도 지쳐갈것이다구름이 흐르는 언덕에비도 오고억새도 무성하게 자란다행복은 위선적이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