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창현
http://www.zoglo.net/blog/lichangxian 블로그홈 | 로그인
<< 11월 2024 >>
     12
3456789
10111213141516
17181920212223
24252627282930

방문자

홈 > 공지사항/활동소식

전체 [ 22 ]

   지난 1월 24일 오후 2013년 새봄맞이 목단강시조선족예술관 문화하향위문연출이 녕안시민정국과 손을 잡고 녕안시예술쎈터에서 막을 열었다.   목단강시조선족예술관과 녕안시에서 정성들여 준비한 정채로운 절목이 관중들의 한결같은 찬사를 자아냈다. 새해를 맞이하면서 조선족들에게 드리는 가장 아름다운 선물로 자리매김을 하였다.  
21    제8회 중국조선족《좋은 선생님》수상명단 댓글:  조회:1844  추천:0  2013-11-02
 제8회 중국조선족《좋은 선생님》수상명단 편집/기자: [ 유경봉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3-11-01 13:09:26 ] 클릭: [ ]   상장, 상패, 상금을 받아안은 《좋은 선생님상》수상자 대표들. 상장, 상패, 상금을 받아안은《좋은 선생님상》 수상자대표들. 《특별상》수상자: 김상화 (길림성 화룡시 남평진 용화소학교 교장) 김혜영 (흑룡강성 학강지구 라북현조선족학교 교원)   《공로상》수상자: 최성남(길림성 장백현조선족중학교 교장)   《좋은 선생님상》수상자: (이하 명단은 《길림신문》에 발표된 시간순서에 따라 배렬하였음.) 손선희 (길림성 연길시 연신소학교 교원) 리창현 (흑룡강성 녕안시조선족소학교 교원) 송은주 (산동성 청도정양학교 교원) 최종화 (길림성 연길시 하남소학교 교원) 리미선 (길림성 장춘시제2중학교 교장) 황춘화 (길림성 도문시 석현제2중학교 교원) 태동화 (길림성 화룡시고급중학교 교원) 석동오 (길림성 훈춘시6제중학교 교장) 김신옥 (길림성 화룡시제3중학교 교원) 리송춘 (길림성 교하시조선족중학교 교장) 현 희 (흑룡강성 가목사시조선족기초교육쎈터 교원) 김옥란 (길림성 매하구시조선족중학교 교원) 조금숙 (료녕성 심양시 소가툰구조선족중심소학교 교원) 김금녀 (흑룡강성 가목사시조선족중학교 교원) 주복자 (길림성 연길시속산기지유치원 원장) 정옥향 (료녕성 료양시조선족학교 교원) 남춘매 (료녕성 개원시조선족중심소학교 교원) 리춘선 (흑룡강성 가목사시탕원현조선족중학교 교원) 박영림 (료녕성 영구시조선족고급중학교 교장) 백정숙 (길림성 장춘시록원조선족소학교 교장) 김영실 (료녕성 대련시조선족학교 부교장) 김명선 (길림성 통화현조선족학교 교장)  
20    녕안시조선족로년협회 제1회 사랑 조학금 조달식 댓글:  조회:1317  추천:0  2013-09-07
사랑으로 가는 길엔 바람마저 싱그럽다      녕안시조선족로년협회에 의해 발기된 사랑의 손길 조학금 모금활동이 지난 4월  7일에 열린 시조선족로년협회 기금설립대회에서 통과되였고 그번 회의에서 생활형편이 어려워 학업을 견지해나가기 어려운 10명 이내의 조선족중소학교의 학생들에게 조학금을 전달할것을 결정하였다. 8월 11일에 시 로년협회 반공실회의에서 재삼 토론을 거쳤고 8월 19일에 각 학교에서 추천한 학생에 한해서 일차성 결정을 지은것이 아니라 로년협회 령도기구에서 직접 가정을 방문하고 실정을 료해한 상황에서 재삼 토론을 거쳐 최종 선정을 하였다. 녕안시조선족소학교에 3명 학생, 조선족중학교에 3명, 발해진조선족소학교에 2명 학생, 강남향총회에서 한명의 대학생을 선정하여 도합 9명 학생들에게 매 학생당 2000원씩 사랑의 조학금을 전달하는 가슴을 울리는 아름다운 멜로디가 지난 9월 6일 오전 녕안시조선족로년협회총회회의실에서 막을 열었다. 시 민정국 유관령도와 후대사랑협회 유관령도 그리고 녕안시 교육국, 녕안시조선족로년협회 부분 령도와 회원, 조선족중소학교 학생과 가장 그리고 령도분들이 근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서 막을 열었다.    시로년협회 총회 한성수 부회장의 사회하에 진행되였는데 조학금 조달식에 앞서 시로년협회 총회 최순복 부회장으로부터 조학금 전달 결의에 관한 설명이 있었고 임으일 비서장으로부터 이번 조학금을 받게 된 학생에 관한 관한 구체적인 소개가 있었다. 이번의 조달식은 공부성적이 우수한 학생을 상대로 한것이 아니라 가정형편이 어려운 조선족어린이들을 상대로 한것이 색다른 일면을 보여주었다. 9명의 학생들의 상황을 보면 거개가 부모가 리혼한 아이들이 아니면 중한 병과 가정형편이 너무도 어려운 학생들이였다. 조선족중학교 박영 학생의 대표발언은 말 그대로 눈물의 장으로 넘어갔다. 박영 학생은 고마움에 목이 메였고 금후 보다 훌륭하게 크는 모습으로 로인님들의 은덕에 보답련다고 절절한 다짐을 보여주었다. 가장대표발언에서 최동철씨는 로인님들의 고마움에 머리숙여 감사를 드리면서 금후 자식을 꼭 훌륭하게 키우는것으로 로인님들의 은정에 보답하련다고 절절한 마음을 담았다.    특히 이번의 모금에 전 녕안시조선족로인들이 하나같이 호주머니를 털어 불쌍한 애들에게 뜨거운 사랑의 손길, 희망의 손길을 보내주었다. 마지막에 각 분회의 령도분들께서 소감을 말씀하였는데 처음에는 썩 믿음이 가지 않았는데 오늘의 활동을 보고나서 감개가 무량하다고 입을 모았다. 그리고 일부 로인들은 다음에는 보다 큰 성의를 전달하련다고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이번의 활동은 진정 의의있고 가치있고 희망이 있는 너무도 자랑찬 일이며 교육에 대한 조선민족의 드높은 열정과 희망을 열어가는 아름다운 무지개로 녕고탑에 깊이 뿌리를 내릴것이다. 
19    녕안--강서 류두절행사 댓글:  조회:1705  추천:0  2013-07-23
지난 7월 22일 녕안시 발해진 강서촌에서 제6회 두류절행사가 열렸다.
18    사랑으로 가는 길엔 꽃잎마저 미소 짓느니라 댓글:  조회:1218  추천:0  2013-03-21
 ----어린 정이를 위한 사랑의 의연금, 행복의 불꽃     “사랑으로 가는 길”이 주선률로 곱게 주름을 잡으면서 어린 정이를 위한 의연금 의식이 지난 3월 20일 오후 녕안시조선족소학교 전교 사생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가운데서 열리였다. “거결장”이라는 무서운 병으로 앓고 있는 어린 정이에게 뜨거운 사랑으로 희망을 심어주려는 취지에서 이번 활동을 가지게 되였다. 활동에서 먼저 전교 사생이 목전 정이의 현상태에 관한 동영상을 관람하였고 이어 김련희 교장선생님으로부터 “서로의 베품은 가장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어려운 사람에게 도움을 줄수있다는것은 얼마나 큰 행복인지 모릅니다.”라는 주제로 감명깊은 강화가 있었다. 김교장은 하나같이 어린 정이에게 사랑을 전달하는 활동에 적극 참여할것을 기대하였다. 이어 의연금 의식이 시작되였다. 교원들의 의연금에 이어 전교학생들이 질서정연하게 정이에 대한 사랑의 마음을 전하였다. 학생마다 평소에 아껴쓰면서 모은 용돈을 서슴없이 기부하는 모습은 실로 서로의 베품은 그 무엇보다 아름답고 자랑스러운 풍경임을 다시금 절실히 느낄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4학년의 리한빈 학생이 활동에 대한 자신의 소감을 절절히 토로하면서 금후 자신의 소행에 대한 다짐도 엿보였다. 이번의 활동을 통하여 학생들은 도움을 바라는 사람에게 자신의 자그마한 힘을 전달할수있다는 그 자체가 바로 행복이며 보다 보람있는 삶임을 깊이 깨칠수 있는 좋은 계기로 자리매김을 할것이다./ 사진 오림록  
17    촌민을 향한 따뜻한 마음 댓글:  조회:2049  추천:0  2013-02-20
     명절의 분위기가 물씬거리는 지난 2월 7일 녕안시 동경성진 동강촌(지부서기 지경수) 촌지도부에서는 촌민을 위한 뜨거운 열기를 만들었다. 가족들이 모여서 즐거운 분위기를 만들고 있을 때 타곳 양로원에서 외롭게 지낼 동시을(94세) 로인을 위문하기로 마음을 모았다. 이른 아침 동강촌지도부성원 일행이 지경수 지부서기의 운전하에 목단강시 서안구 순희양로원을 찾았다. 자식들이 모두 외지로 나가고 외롭게 양로원에서 하루하루를 보내시던 동로인은 촌간부들을 부여잡고 눈물을 흘리셨다. 지서기는 양로원의 생활에 대하여 하나하나 알아보고나서 어려움이나 곤난이 있으시면 말씀을 드리라고 간곡히 당부하였다. 이날 600원의 위문금을 동로인의 손에 쥐여주었고 원 동강총지부서기 사업을 하시던 동일청씨가 자신의 호주머니를 털어 200원을 동로인의 손에 쥐여주었다. 곁에서 지켜보던 로인들은 하나같이 혀를 끌끌 차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양로원에서 나와 촌간부 일행은 어린나이에 부모를 잃고 고아원에서 불쌍하게 자라고 있는 동신촌 정성국 어린이를 찾았다. 부녀주임 진옥희씨는 연길에서 동생네애들이 입던 옷견지를 (거의가 새옷)을 성국이의 손에 쥐여주었다.  그리고 동강촌지도부에서 성국이에게 학습에 필요한 물품들을 사라면서 400원의 위문금을 쥐여주었다. 옷과 돈을 받아쥔 성국어린이는 눈물이 글썽하여 꼭 공부를 잘하여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하였다. 겨울을 녹이는 따뜻한 마음은 오래오래 촌민들의 가슴속에 향기로 가득 차넘칠것이다. 사진1. 동강촌지도부에서 동시을 로인에게 위문금 600원을 전달. 사진2. 고아원에서 자라는 정성국어린이에게 옷과 돈을 전달.
16    녕안시조선족유치원 가장개방일 활발히 전개 댓글:  조회:1279  추천:0  2013-02-07
   “학생래원이 날로 줄어드는 비참한 현실에 아무리 탄탄한 실력을 갖춘 교원대오인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학교의 명맥을 이어가는 유치원교육은 학교교육의 한낱 중요한 대목이 아닐수 없습니다. 유치원교육이 흥성해야만 우리 학교의 미래가 열리는것이 아니겠습니까?!”    녕안시조선족소학교 김련희 교장선생님의 감명깊은 말씀이다. 그렇다, 민족교육이 흥성의 시대를 열어갈수있는 가장 관건적인 대목이 바로 유치원교육이다. 다시 말하면 뿌리 깊은 나무라야 믿음이 크고 흔들림이 없다는 색다른 철리가 담긴 말씀이기도하다. 진정 민족교육의 전망을 고민하는 한 령도의 질적인 일면을 모색하는 좋은 진리이기도 하다. 학교의 학생래원은 다름아닌 유치원에서 전적인 일면을 감당하고 있는것이다. 그러니깐 유치원의 학생수가 줄어든다는것은 학교의 운명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것이나 다름이 없는것이다. 이처럼 엄연한 민족교육의 현실을 누구 먼저 감안하고 그 해결책에 심혈을 기울이신 김련희 교장선생님은 학교교육과 유치원교육에 심혈을 몰뭇고 하나하나 실속있게 사업의 층계를 모색하고 있다.    학기마다 어김없이 유치원가장개방일을 활발히 전개하여 가장들에게 보다 좋은 영향을 전파하고 있다. 알심들여 준비한 다양한 절목들을 감상하면서 가장들은 감개무량하였다. 자식을 진정으로 료해할수있는 너무도 좋은 배움의 장이며 감동의 장이며 행복의 장이라고 감격하여 말씀하는 가장들의 눈시울은 언녕 뜨거워진듯하였다. 사랑과 정성이 물씬거리는 행복한 환경속에서 애들이 보다 건강하고 씩씩하게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가장들은 이보다 더 좋은 만족을 어데서 찾아볼수 있겠는가고 자랑스럽게 말씀하셨다.   금년도에는 중반과 대반을 갈라서 이틀에 가장개방일을 활발히 전개하였다. 지난 2월 2일에는 중반어린이들을 상대로 활동을 전개하였는데 주제는 “귀염둥이 재롱잔치”로 정하고 활동내용은 두가지로 정하였는데 하나는 부모들이 제일 관심하는 어문, 수학, 한어 공부를 놀이속에서 배우는 쾌락교수를 보여주었고 다른 하나는 마음껏 장기를 자랑하는 즐거운 잔치마당으로 열리였다. 이야기, 무용, 노래, 과문극 등 다양한 절목을 통하여 애들의 활발성, 대담성, 창신성을 키워주는것을 활동의 핵심으로 정하고 모든 애들이 전면발전할수있는 좋은 무대를 제공해주었으며 보다 씩씩하고 건강한 민족의 당당한 후대로 성장하도록 문을 열어주었다. 2월 5일에는 근 40여명 대반 어린이들을 상대로 활동을 전개하였는데 주제는 “동시 이야기 발표회”로 정하고 3중언어(조선어, 한어, 영어)를 배경으로 하면서 우리 말 표달능력배양을 이번 활동의 주제로 정하였다. 활동에 먼저 담임교원으로부터 인사의 말씀과 더불어 이번 활동의 목적을 명확히 말씀드렸다. 이어 대반어린이들이 알심들여 준비한 동시읊기, 무용, 노래, 이야기, 결심발표, 과문극, 대합창 등 다채로운 절목들은 가장들의 한결같은 찬성을 자아냈다. 특히 어린이들의 우리 말 표달능력이 상당한 실력을 보여주었다. 더우기 한족어린이들이 우리 말 표달에서 그처럼 재치있고 능란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사랑과 정성이 슴배인 이번 활동을 통하여 유치원어린이들의 우리 말 표달능력, 활달성, 대담성표현능력에서 보다 큰 실질적인 제고를 가져왔을뿐만아니라 나아가서 민족교육의 발전과 전망에 보다 좋은 포장돌로 다가서기도 하였다./사진 오림록     
15    녕안시조선족문학가협회 2012년 년말총화 댓글:  조회:2519  추천:1  2012-12-16
                                                         뿌리 깊은 나무는 쉽게 드놀지 않는다       고독의 뿌리를 파헤치고 줄기마저 잘근잘근 끊으면서 열심히 가꿔가는 그런 신성한 나무앞에서 우리는 가끔 머리를 깊이 숙이고 자신을 되돌아 보게 된다. 갈길은 구경 어디인지? 도대체 어디까지 가야 하는지? 내가 가는 리유는 무엇인지? 왜서 반드시 이 길로 가야하는지? 하필이면 다른 길도 아닌 이렇게 힘겨운 일을 선택해야만 했던지 하는 식의 가슴을 치는 물음앞에서 무너지는 자신을 가까스로 부추기면서 한걸음 한걸음 그 누구의 격언도 필요없었고 그 무슨 물질적인 만족도 바램이 없이 우리는 항상 성산의 곧은 나무처럼 먹은 마음 굽히지 않고 푸르게 푸르게 인생을 잘도 단장해왔습니다. 비록은 좀은 어려움이 묻어났다 할지라도 그것은 우리들의 걸음에는 아무런 장애로 다가서지 못했습니다. 가끔은 주책없이 날려오는 질투의 바오래기에 묶이우는 어려움도 삭여야만 했었고 때론 가면의 탈앞에서 자신의 진실을 벗기지 않으면 안되는 모진 아픔을 씹어야만 했었습니다. 그래도 세상은 아름다움이 무겁게 드리우다보니 저희들이 가는 길엔 그래도 박수소리가 비꼬는 소리들을 하나하나 삼켜버리군 였습니다. 그속에서 우리는 힘을 얻었고 용기를 심었고 감동을 만들었으며 진정을 감안하면서 해야 할 일들을 열심히 해나왔습니다. 가끔 어설프게 들려오는 말들도 없는것은 아니지만 어질고 착하고 너그러운 우리들의 마음가짐으로도 언녕 우리들의 만남은 그처럼 편하고 시원했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믿어주고 서로에게 힘을 주기위하여 물질보다는 진정이 담긴 그런 눈길하나 그런 말 한마디로도 저희들은 만족의 주머니를 풀어놓군 하였습니다. 마음에 무겁게 드리웠던 말못할 사연도 우리들의 밥상우에서는 소리없이 녹아버림을 절감하게 되였으며 오가는 정으로 날마다 쌓이는 감정의 분수는 하늘을 치닿는 그런 장한 모습을 만들군하였습니다. 물질문명이 살판치는 험한 세상앞에서도 우리들은 한낱 드팀없는 고목처럼 자리를 굳건히 지켜왔습니다. 어찌보면 물질에 대한 욕심은 령인지도 모른다고 비꼬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들은 우리들 앞에 세워놓으면 한낱 가련한 존재일지도 모른다고 당당하게 말하고 싶습니다. 어쩌면 늘 한집안 식구처럼 마음은 늘 조용하고 가슴은 늘 갓난 아기엄마의 젖가슴처럼 뭔가 끊임없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작은 성과라도 크게 인정해주고 꼭꼭 축하의 말을 정성의 가락지에 꿰매여 보내는 그런 모습은 실로 우리들만의 자랑이고 행복이 아닐수없습니다. 어찌보면 조소나 비웃음을 떠난 행위는 그 가치가 모자라다는 생각도 가져봅니다. 아무런 어려움도 없이 그저 생각대로 모든것이 잘 되여간다면 그건 근본 가치의 추구가 불필요한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들이 가는 길마다에 수시로 다가서는 그런 조소가 되려 우리에게는 힘이 되여주고 보다 성숙의 이미지를 형성시켜주는 고마운 존재라고 생각해보면 되려 그런 조소에 고마움을 간직함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타인이 우리라는 가족에 그 어떤 조소나 비웃음을 던지는건 우리가 받아들일줄 알아야지만 절대로 가족내에서는 그런 장난이 물론 존재하지 않지만 우리가 함께 걸어가는 날까지는  이런 일이 없기를 진심으로 기대합니다.    제집식구는 저들끼리 아끼고 사랑하고 보듬어주야 가정이 화목하고 하는 일들이 잘 되여가는법입니다. 남은 상관말고 우리 집 식구들만은 서로를 리해하고 포용해주고 밀어주는 그런 아름다운 소행으로 우리들의 집을 굳건히 지켜갑시다.    이처럼 저희들의 어려움을 자신의 어려움처럼 선뜻이 받아주고 헤아려주는 오늘의 만남을 위하여 로고를 아끼지 않으신 와룡향당위 부향장겸 영산촌 당지부서기이신 방일만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아울러 곁에서 많은 협조를 해주신 장세룡촌장님께도 진정한 사의를 표합니다. 이처럼 유서깊은 영산촌에서 만남의 장을 만든다는 소문을 듣고 얼마나 흥분했는지 모릅니다. 저의 동년이 묻혀있는 고장이여서 마음에는 언녕 무지개가 뿌리를 내리고 있었습니다.    저희 가족분들이 지난 한해동안 심혈을 아끼지 않으시면서 열심히 일한 보람으로 저들의 문학농사 역시 대 풍작을 안아왔습니다. 최화길 회장님은 각종 신문과 잡지에 시 46수, 수필 6편을 발표하는 놀라운 창작열을 보여주었습니다. 우리성에서 중견으로 뽑히는 최화길 회장님은 중국 조선족시단에서 인정하고 긍정하는 뿌리 깊은 나무입니다.   뿐만아니라 기원컵 압록강 문학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지니기도 하였습니다. 남영선 비서장은 수필 20편과 소설 3편을 발표하는 좋은 성과를 가져왔습니다. 정말로 창작에 얼마나 부지런하고 열념하는지 모릅니다. 눈코뜰새없이 바쁜 수업이건만 문학을 밀고나가는 그 자세만으로도 객관의 인정과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리창현선생님은 소설 4편과 수필 6편 그리고 시 18수를 발표하였습니다. 연변작가협회에서 주관하는 인터넷 문학상인“가야하” 문학상을 수상하였으며 두만강여울소리 시탐구 우수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지니기도 하였습니다. 김애순 선생님은 항상 게으름없이 알찬 문학의 결실을 만들기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몸이 안좋은 상황임에도 알쭌한 수필 6편을 발표하였습니다.  최영란 비서장님은 항상 인자하고 너그러운 큰 누님같은 존재로 늘 문학창작에 열성을 올리고 있습니다. 항상 바쁘신 와중에도 늘 깔끔하고 매력적인 수필을 창작하여왔습니다. 10편의 질높은 수필을각종 신문과 잡지 그리고 한국 KBS방송에 나가는 영예를 지니기도 하였습니다. 황향숙선생님은 몸이 안좋아 늘 약을 달고 사는 현편임에도 꾸준한 마음가짐으로 수필 3편과 소설 “기로”를 송화강 잡지에 발표하였습니다. 특히 소설 “기로”는 그 구상이 새롭고 이야기의 흐름이 감칠맛을 돋구면서 시대의 현황을 여실히 보여주는 좋은 작품이라고 송화강 잡지 편집진으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제 새해에는 보다 좋은 소설로 녀류소설가의 행렬에 당당하게 발을 굳히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김영희선생님은 바쁘신 담임사업에도 불구하고 여실히 문학창작에 심혈을 몰부어 왔습니다. 산문시 2수, 수필 4편을 발표하였는데 개성이 돋보이고 마음에 와닫는 좋은 수필이라는 인정을 받아왔습니다. 이제 한 명의 녀류시인이 우리 녕고탑을 울리면서 머리태를 풀어헤칠 그 순간을 기대해봅니다. 이태백의 후손은아니지만 그 재질만은 놀라운 정문씨는 늘 부지런히 문학창작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시 8수, 산문 4편 , 가사 2수를 창작하는 기꺼운 결실을 안아왔습니다. 예리한 필치로 시를 구상하는 그 개성도 참으로 긍정을자아내고 있습니다. 이제 진정 리태백의 형상으로 멋진 시의 세계를 열어갈 그날을 기대합니다.  현순복선생님은 항상 조용한 모습으로 말없이 문학창작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가끔 사람들을 놀래우는 기발한 생각의 글들을 재미나게 엮어가기도 하였습니다. 철리성이 강한 무게있는 수필 3편을 발표하는 영예를 지니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늘 존경스럽고 자랑스러운 녕안시전임문련주석이셨던 원로시인량명석 선생님은 늘 저희들의 본보기로 다가서고 있습니다. 모두가 컴퓨터로 타자를 할때 량명석선생님은 육필로 알알이 잘 여문 산문시 근 20여수편을 창작하는 놀라운 성과를 이룩하기도 하였습니다. 언제 한번 저희들의 활동에 빠진적이 없이 발벗고 지지해주시는 고마운 마음에서 우리들은 진정한 문인의 형상을 따라배우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녕안시조선족문학회는 금년에만 하여도 송화강 잡지에 2기의 특집을 묶어내는 좋은 결실을 안아왔습니다. 알알이 여문 풍작마다에는 눈물과 땀방울들이 얼마나 슴배여있는지는 오직 우리들만이 알고있을것입니다. 새해에도 하냥 변함없는 마음가짐으로 문학이라는 신성한 이름앞에서 수시로 자신을 비춰가면서 또 하나의 대 풍작을 기원합니다. 회원여러분의 건강과 건필을 기원하면서 다시한번 오늘의 만남을 만들어주신 령도여러분들께 문학의 신성한 사명감으로 진정을 담은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고맙습니다! 오늘의 만남이 저희들에게 또 하나의 응집력을 고집하는 당당한  비석으로 세워지리라 굳게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14    기축년에 부치는 생각 (리창현) 댓글:  조회:2035  추천:18  2009-02-15
   얄팍한 허영 하나로 늘 자신을 감추면서 살아가는것만큼 어색하고 슴슴한 순간은 더 이상 없다는 생각이 기축년의 종소리와 함께 내 마음에 잔잔한 파문을 몰아왔다. 여느때와 달리 조용히 구겨진 마음을 다림질하면서 고마움도 함께 몰고 왔다. 여직 그렇게 자신을 감추면서 살아온 뒤마당을 빗질하여 보느라면 자신에게도 미안하고 타인에게도 얼마나 미안한지 모르겠다. 솔직하지 못한 자신의 일면도 부끄러움을 머금은채 처녀의 얼굴처럼 발그스레 상기되여 있었다. 실상 사람의 인식이란 시간의 차이에 있을뿐이다. 그래서 아마 사람들은 예로부터 세월을 가장 공정한 재판관으로 인정하고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여하튼 세월앞에 자신을 세우고 보면 래면을 속이지 못하게 되는것이다. 사람들이 가장 쉬이 하고 있는 말도 역시 세월에 대한 두터운 믿음이라는 생각이다. 어떤 불리 앞에서 사람들은 흔히들 하는 말  \'하늘이 다 알고 있으니 걱정 말아라.\' 도 역시 세월에 대한 공정한 평판을 갈망하는 순간이 아닐수 없다. 이로보아 부득불 자신의 허영을 뒤집고 그속에 갖힌 크고 작은 감춤들을 아마도 하나하나 정리하면서 살아가는 자체가 바로 가장 정확한 인생이 아닐가 하는 생각과 함께 닫혀진 마음의 지퍼를 열어본다.   유난히 밝게 다가서는 감춤 하나가 어색하게 어두운 구석에서 신음을 하고 있었다. 하루이틀도 아니고 몇년은 잘 되였으니 자신의 감추는 수준도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생각도 무섭게 다가선다. 그만큼 미안함도 커가는 자신을 발견하였다.  그 무슨 악의적인 감춤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얄팍한 편견이자 타인에 대한 얄팍한 기편이다. 이 감춤은 제가 문학이라는 신성한 울타리에 발을 들여놓은 얼마후였다는 생각만은 새삼스럽다. 이럭저럭 졸작들을 신문이나 잡지에 발표를 하기 시작하면서 어느날엔가 자신에 대한 감춤이 아프게 갈마드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였다. 비록 그 순간에 자신을 달래지 않은것은 아니지만 그럴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서 그냥 그렇게 고집을 붙잡고 무자년을 지나 기축년까지 몰고 온것이다.  문학을 하면서 이런저런 회의들이 점차 많아지기 시작하였다. 만남의 장은 그야말로 너무도 아름다운 순간들이였다. 나는 정말 자신이 문학에 발을 들여놓은것에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적지않은 글들을 쓴것도 기쁘지만 그보다도 많은 문학선배들을 알게 된것이 저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큰 재부로 되여 얼마나 행운스러운지 모른다. 저는 이런 인연들을 늘 마음속에 간직하면서 열심히 자신의 문학에 대한 열정을 한시도 늦추지 않고 날마다 부지런히 뛰고 뛰면서 자신을 갈고 갈았다. 문학인들은 비록 처음의 만남일지라도 그처럼 편하고 가까운것이다. 아마도 사람을 보기전에 언녕 그 사람의 글을 통하여 마음이 한자리에 모였는지도 모른다.   한번은 할빈에 교원수필상을 타러 갔던 일이다. 그날도 너무 일찍 도착하다보니 주최측의 안배대로 호텔에 누워서 시상식의 시간을 기다리게 되였다. 얼마쯤 지났을가 하였는데 문을 노크하는 소리와 함께 50대의 남자가 들어왔다. 서로 인사를 나누면서 간단한 소개를 하였는데 글쎄 그 남자가 저의 손을 꼬옥 잡아주면서 너무도 반갑게 맞아주는것이였다.  \'아니 나이가 어린 분이구만  당신의 글들을 많이 보았소. 어린 나이에 정말 대단하오. \" 하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나도 선배님의 글제목을 들어가면서 참 좋은 수필이라고 이야기를 하였더니 제목까지 다 기억했는가 하시면서 저으기 기뻐하시는것이였다. 후에 알고 보니 그 분은 해림중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리복철 선생님이였다. 비록은 짧은 상봉이였건만 선배로서 후배에 대한 관심과 격려는 얼마나 컸는지 모른다. 그날 자신의 소개에서 나는 녕안의 모 중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고 하였다. 그 후에도 많은 문학인들을 알게 되였는데 그냥 소개는 중학교의 교원으로 자신을 포장하였던것이다. 어쩐지 소학교 교원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았다. 소학교 교원이라고 하면 꼭 마치도 자신의 인격이 떨어져가는듯한 기분이 여서 그냥 후에도 나는 자신을 중학교 교원으로 소개하기에 변함이 없었다. 그리고 거기에 대해 그 누구도 조사를 하지도 않았거니와 캐여 묻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 하지만 마음은 늘 개운치가 않았고  늘 무겁기만 하였다.  하여 한번은 마음을 크게 먹고 솔직하게 소개를 하려고 작심하였다. 무엇보다도 후에 그것이 탈로날가봐 근심이 앞서군 하였다. 그래서 한번은 인사를 나누면서 제가 녕안의 모 소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고 하였더니 상대방이 되려 믿지 않는것이였다. 아무리 내가 소학교 교원이라고 하여도 결국은 그날도 역시 중학교 교원으로 대접을 받게 되였다. 그날 나는 술도 많이 마이고 말도 꽤나 많이 하였다. 무엇보다 솔직한 자신앞에서 모든것이 그토록 편하고 즐거웠기 때문이다. 실상 우리 문인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정말 소학교 교원이 몇이 안된다. 태반이 중학교의 교원들이며 일부는 행정부문에서 퇴작한 분들이다.  소학교 교원인 제가 그속에서 자리를 잡고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부터 흐뭇해진다. 그후부터 여러회의에서 저는 모든 허영을 훌훌 털어버리고 소학교 교원이라고 소리높이 소개를 하군 하였다. 생각과는 달리 보다 기분좋은 일들이 많이 생기군 하였다. 그리고 칭찬의 농도도 전보다 더 높아가는 모습이여서 너무도 즐거웠다. 실상 소학교 교원이든 중학교 교원이든 문학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것이다. 그저 얄팍한 체면을 세우느라고 허영을 붙잡는 노릇에 불과한것이다. 이제 기축년에는 모든 허영을 털어버리고 보다 솔직한 자세로 신성한 문학에 자신의 힘을 다하려는 생각이다. 보다 좋은 작품들을 창작하여 소학교 교원인 자신을 보다 솔직하고 훌륭한 문인으로 가꿔가기에 몸과 마음을 다 하려는 결심을 기축년의 첫날에 날려본다.
13    이런 교원이 되고싶다 (리창현) 댓글:  조회:2045  추천:24  2009-02-09
애들에게 실망보다는 신심을 선물하는  그런 교사가 되고 싶다.   애들에게 아픔보다는 행복을 선물하는 그런 교사가 되고 싶다.   애들에게 불신보다는 믿음을 선물하는 그런 교사가 되고 싶다.   애들에게 미움보다는 사랑을 선물하는 그런 교사가 되고 싶다.   애들에게 질책보다는 고무를 선물하는 그런 교사가 되고 싶다.   애들에게 매보다는 쓰다듬을 선물하는 그런 교사가 되고 싶다.   애들에게 거짓보다는 솔직함을 선물하는 그런 교사가 되고 싶다.   애들에게 가면보다는 진심을 선물하는 그런 교사가 되고 싶다.   애들에게 비웃음보다는 칭찬을 선물하는 그런 교사가 되고 싶다.   애들에게 겉치레보다는 실속을 선물하는 그런 교사가 되고 싶다.   애들에게 설음보다는 포용을 선물하는 그런 교사가 되고 싶다.   애들에게 짜증보다는 너그러움을 선물하는 그런 교사가 되고 싶다.   애들에게 화려함보다는 평범함을 선물하는 그런 교사가 되고 싶다.   애들에게 오만함보다는 겸손함을 선물하는 그런 교사가 되고 싶다.   애들에게 두려움보다는 편안함을 선물하는  그런 교사가 되고 싶다.   애들에게 가르침보다는 배움을 선물하는  그런 교원이 되고 싶다. …… 애들이 어렵고 힘들 때 편안히 기댈수 있는 그런 나무가 되고 싶다.   애들이 아프고 쓸쓸할 때 편안히 누울수 있는  그런 구들이 되고 싶다.   애들이 목이 마를 때 시원히 마일수 있는 그런 샘물이 되고 싶다.   애들이 배고프고 추울 때 마음껏 먹을수 있는 풍성한 식탁이 되고 싶다.   나는 이런 교사가 되고 싶다. 나는 이런 교사가 되련다. 나는 이런 교사가 될것이다.
12    기쁨앞에서 너무 흥분하지 마라 댓글:  조회:2134  추천:25  2009-01-25
기쁨앞에서 너무 흥분하지 마라 (리창현)   오늘의 기쁨앞에서 너무 흥분하지 마라 오늘의 기쁨이 래일의 슬픔일지도 모른다 섭리를 속이려는 얼뜰한 생각은 접어놓고 기쁨도 하나하나 정리할 필요가 있는것이다 슬픔만이 정리가 필요한것이 아니라 기쁨도 정리가 더욱 필요한것이다 기쁨앞에서 너무 흔들리다보면 슬픔도 그만큼 커지는법이거늘   오늘의 기쁨앞에서 너무 뽐내지 마라 오늘의 뽐냄이 래일의 아픔일지 모른다 철리를 속이려는 마음은 깡그리 버리고 기쁨도 알뜰한 반성이 필요한것이다                                                                                                            아픔만이 반성이 필요한것이 아니라 기쁨도 깨끗한 반성이 따라야 한다 기쁨앞에서 너무 뽐내고보면 아픔도 배로 돌아오는 법이거늘.
11    실현못할 일은 말도 내지 맙시다 댓글:  조회:2194  추천:27  2009-01-24
실현못할 일은 말도 내지 맙시다 (리창현)    얄팍한 흥분에 쫓기여  부질없는 한마디로  고민을 만들지 맙시다    한잔의 술에 들떠서  뱉어낸 큰 소리로  근심을 세우지 맙시다    순간의 밸김에 눌리워  흘러나간 거북한 말에  장밤을 뒤척이지 맙시다    말속에는 정령이 숨쉬거늘  실현못할 말들은 아예 삼킴이 바람직합니다  부질없는 한마디로  늙음을 만들지 말고  즐거운   한마디로 젊음을 만들어 갑시다   해뜨는 아침이면 해빛같은 말로 달뜨는 저녁이면 달빛같은 말로 짧디짧은 우리네 인생을 믿음으로 채워갑시다   실현못할 일은 말도 내지 맙시다 실수의 쪽배에 오르고 보면 어렵고 힘든것은 우리네 삶인가 봅니다   실현못할 일은 말도 내지 맙시다 허영의 울타리에 발을 들여 놓고 보면 어둡고 침침한것은 우리네 인생인가 봅니다   실현못할 일은 말도 내지 맙시다 기분의 언덕에서 방황하다 보면 아프고 쓸쓸한것은 우리네 수치인가 봅니다.      
10    고향에 보내는 편지 댓글:  조회:2094  추천:25  2009-01-20
산문시  고향에 보내는 편지 고향에 보내는 편지 .산문시.   고향이 그리운줄 이제 나마 가슴치며 느껴봅니다. 타향살이 몇해동안 설음도 많았습니다. 타향의 구석구석은 그냥 그처럼 차겁게만 안겨오기도 하였습니다. 눈치가 모든것을 웃도는 인생살이에 많이도 힘이 들었습니다.  믿음보다도 항상 가면이 앞서야만 했습니다. 언제 어디서든 늘 눈치의 바줄을 꼭 틀어쥐고 놓지 말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가끔은 어리숙하게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자랑은 모두가 저희들 몫으로 남고 잘못은 늘 나에게로 활시위를 당기군 하였습니다. 수시로 꽂히는 아픔에는 피방울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상처는 그대로 그냥 다음의 상처를 물어오기도 하였습니다.  그래도 타향에는 그늘이 퍼그나 컸습니다. 어렵고 힘들때에 기댈수있는 그런 그늘이 한두개라도 있어서 얼마나 편안했는지 모릅니다. 비록 고향의 그늘처럼 그렇게 너그럽지는 못해도 마음만은 대충 기대일수가 있었습니다. 비바람도 피할수 있었고 눈보라도 피할수가 있었으며 폭풍우도 잠시나마 피할수가 있었습니다. 옷깃을 적시는 설음들이 싸늘한 가을바람에 날려오기도 하였습니다. 마음을 적시는 안타까움들이 봄바람에 실려 주책없이 마음의 언저리에 내려앉군 하였습니다. 녹아내릴줄도 모르고 그냥 오똑하게 앉아서 뭔가에 초점을 맞추고 신경을 도사리는 모습도 퍼그나 불쌍하기만 하였습니다. 그래도 타향에는 인정의 우물들이 가끔 보이기도 하였습니다. 비록은 낡아빠진 우물이긴 하지만 따스함으로 늘 얼어든 마음들도 달랠수가 있어서 발길은 그냥 우물가로 옮겨지군 하였습니다. 비록 찾는 사람들은 가물에 콩난격이지만 존재의 리유만으로도 사람들은 퍽 즐거워하는 모습들이기도 하였습니다.  타향의 하늘은 너무너무 낮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실수의 악취들은 좀처럼 증발을 거절하는 모습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냥 맴돌면서 떠날념을 않는 그 자체에 무엇인가 두려움도 커만갔습니다. 꿈자리도 그냥 시원치가 않고 어지럽기만 하였습니다. 그래도 해뜨는 아침이면 마음만은 뜨겁게 달아오르군 하였습니다. 빨리 달아오르고 빨리 식는 그런 뜨거움이라도 만족하며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런 만족으로 자신은 날마다 커가군 하였습니다. 울안의 백양나무처럼 가끔은 슬픔의 뼈다귀를 씹기는 하였어도 살찌는 마음만은 지울수가 없어서 늘 만족하군 하였습니다. 타향에는 고마움도 서러움도 함께 동행하군 합니다. 눈비가 주책없이 내리는것처럼.
9    사람은 (외1수) 댓글:  조회:2321  추천:23  2009-01-20
리창현 사람은 (외1수) 사람은   사람은 스스로의 교육에  만족이 앞설 때엔 타인의 교육에  부러움이 앞선다 사람은  스스로의 교육에 불만이 앞설 때엔 타인의 교육에 신경을 도사린다 사람은 이렇게 안과 밖의 선명한 대조속에서 늙음을 만들어간다   슬픔   가깝던 사람이 어느날엔가 간벽을 쌓을 때 설음은 마음에 거미줄을 쳐놓는다 멀던 사람이 어느날엔가 간벽을 허물고 다가서면 설음은 마음에 시퍼런 이끼를 씌운다 설음이 설음같은 설음으로 다가설 때라야 인간은 인간답게 바로 선다
8    우리의 교육 아직도 무엇이 결핍한가? 댓글:  조회:2038  추천:52  2008-09-12
우리의 교육 도대체 아직도 무엇이 결핍한가?     뿌리가 흔들리고 있는 나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한그루의 나무로서 뿌리가 흔들리고 있다는것은 삶과 죽음의 간격이 줄어들고 있다는것을 너무도 현명하게 의미하는것이다. 그것도 단순간에 삶의 결속을 보는것이 아니라 너무도 무서운 고통과 신음을 겪으면서 날로 야위여 가는 진통을 겪어야하는 가슴 아픈 일이다. 언제부턴가 우리의 민족교육의 뿌리가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다시말하면 민족교육이 위기라는 울타리에 발을 들여놓았다는 말이겠다. 날로 학생원천이 고갈되여가는 현실앞에서 부득불 마셔야 하는 고배이기도 한것이다. 역시 우리 민족에 대한 일종의 도전이나 다름이 없다. 그것은 순간이 아니라 민족의 생존과 전망에 대한 일종의 무서운 도전이기도 하다. 필경은 다가선 도전이니 그것을 회피하여서는 절대 안되겠다. 반드시 우리는 현실에 맞서야 한다. 하나같이 가슴 아파하고 하나같이 똘똘 뭉쳐야지 절대로 자신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어리석은 생각들은 깡그리 버려야 한다. 더우기 교원으로서는 이럴바가 못된다는 말이다. 교원 한사람의 어리석은 생각으로 해를 받는것은 오직 한사람뿐이 아니라 민족의 밝은 미래를 떠메고 나갈 우리 후대들이다. 반드시 민족이라는 사명감을 떠메고 나갈 기둥들에 좀벌레가 끼지 않도록 열심히 기름을 칠해야 한다는 말이다. 한마리의 좀벌레라도 끼지 말도록 자신의 눈동자처럼 아끼고 사랑해야 한다. 민족교육의 일선에서 로심초사 하시는 민족령도들의 다함없는 노력으로 우리의 민족교육은 여전히 빛을 잃지 않고 한층계 한층계 높은 차원으로 올라서고 있다. 얼마나 고맙고 자랑스러운 분들인지 모르겠다. 추호의 사리도 모르고 민족교육의 앞날을 위해 매일 매일 열심히 뛰고 있는 민족교육의 령도들이 있기에 우리의 교육은 앞날이 창창한 것이다. 하지만 옥에 티처럼 아직도 일부 문제들이 존재하고 있어서 가슴 아프고  근심이 일어서는것이다. 그럼 우리의 교육 구경 아직도 무엇이 결핍한가? 첫째: 사생 관계가 아직도 긴장한 상태에 처해있다. 사생의 관계에 대한 수많은 설들이 떠돌고 있지만 아직도 긴장한 매듭은 풀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과당에서나 생활에서나 나름대로 존재하고 있는 현실이다. 더욱이 학습성적이 뒤진 학생과 교원사이의 관계가 여전히 엄중한 긴장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말하자면 일부 학습성적이 차한 학생들은 교원을 만나면 회피하는 현상이 존재하고 있는것이다. 차한 학생일수록 응당 교원과의 관계가 밀접하고 친근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게 되지 못하고 있으니 걱정이 아닐수 없다. 한 중학생의 솔직한 고백에 의하면 교원은 학습성적이 차한 자신에게 던지는 눈길마저 그렇게 차갑다는것이다. 그리고 과당 시간에 자신에게 근본 기회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일부 교원들은 인물이 고운 학생들에 대하여서는 눈길도 밝고 웃음도 많지만 인물이 못났거나 언행이 좀 차한 학생에 대해서는 태도가 그처럼 다르다는 말이다. 정말 걱정이 아닐수 없다. 학교는 인물에 따라 사람을 평가하는 그런 헐망한 곳이 아니라 사람의 표준에 따라 사람을 육성해내는 신성한 곳이다. 이런 곳에서 이토록 험한 일들이 머리를 쳐들고 있다는 현실은 민족교육에 하나의 무서운 지뢰가 아닐수 없다. 교원이라면 반드시 위인사표 (为人师表)를 갖추고 언제 어디서든 공정하고 공평한 인격을 갖추어야 한다. 인물이나 성적으로 한 사람을 평가해서는 절대 안된다는 말이겠다. 학생들이 가장 존경하고 우러르는 원인이 바로 공정한 마음을 지닌 그런 교원이다. 사생의 긴장한 관계를 지울수 있는 가장 유기력한 무기가 바로 매 학생들에 대한 공정심이 아닐수 없다. 어느 학생이든 교원과 가까운 친구처럼 지내고 싶은 생각은 모두 불같은것이니 교원의 생애에서 가장 갚진 재산인 학생들에 대한 공정한 평가를 지니는것이야말로 우리 민족교육이 보다 높은 자리에 발을 들여놓을수 있는 시작이 아닐가? 둘째: 교원과 학생의 배합이 잘되지 않는다.  상호 배합은 곧 바로 믿음에서야만 최고의 효과를 가져오게 된다. 하지만 믿음이 결여한 배합은 결국은 연극에 불과한것이다. 우리가 요구하는 배합이란 자연스러운 배합이지 어색하고 만들어놓은 배합이 아니다. 억지로 만들어 놓은 배합은 언제든 사람의 눈을 속일수가 없는것이다. 아무리 고명한 수단으로 배합을 만들었다 할지라도 종당에는 드러나고 마는법이다. 그러니 우리들은 교수에서 언제든 학생과의 자연스러운 배합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문제는 교원들의 너무 성급한 탓으로 가끔 사생의 배합이 부서지는 경우도 있다. 더우기 일부 교수연구활동가운데서 흔히 배합을 만드는 현상이 존재하는데 지어 어느 학생이 어느 말을 해야 한다는것까지 배합의 중점으로 틀을 만들어 놓았으니 그것을 어찌 한시간의 교수라고 말할수 있을가? 우리들의 교수는 반드시 사생의 부담없고 자연스러운 배합이여야 한다. 학생의 각도에서는 묻고 싶은것을 마음껏 물을수 있고 교원의 각도에서는 목이 마른 애들에게 얼마든지 샘물을 줄수 있는 준비가 되여야 한다. 각별히 애들에게 사유의 여유를 주어 그들이 마음껏 생각할 기회를 주어야 하는데 일부 교원들은 너무도 성급하여 학생들이 얼마든지 해낼수 있는 문제들도 결국에는 자신이 혼자서 해결하려고 드니 학생도 무미건조하고 자신도 힘들뿐 아무런 결실도 없게 된다. 그러니 교원은 너무 성급해 하지 말고 학생들에게 얼마든지 사유할수있는 공간을 주어 그들이 마음껏 시름놓고 생각할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 관건은 교원이 가르쳐야만 애들이 더 잘할수 있는 점과 교원이 가르치지 않고서는 애들이 할수 없는 문제들에 초점을 두고 교수를 이끌어가야 사생의 배합에서 또 다른 멋진 풍경이 아닐가? 셋째: 형식에 기우는 현상이 엄중하다. 삶도 그렇고 배움도 그렇고 형식에 머무는것은 어디까지나 찬성할바가 못된다. 형식은 어디까지 형식이지 그것이 현실에 도움이 안된다는 말이겠다. 더우기 학생들의 교육에서 형식이 나름대로 살판친다면 너무도 무서운 현실이 아닐수 없다. 과정개혁이래 과당에서 학생들에게 토론이라는 새로운 학습방법을 던지게 되였는데 여기에도 상당한 형식주의가 존재하고 있다는 말이다. 말이 토론이지 아마 일부 그 효과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을지 모른다. 그저 다른 사람들이 교수에서 다 하고 있으니 하지 않으면 말을 들을것같고 하여 억지로 형식이라도 보이는 경향이 존재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런 토론은 시간만 랑비하지 아무런 결실도 얻지 못한다. 정말 토론할 문제가 있으면 목적이 명확하게 그리고 학생들도 열성껏 토론에 참석하는 그런 토론이여야 하지 그저 형식에 머무는 그런 수단은 필요 없다는 말이다. 그리고 반급의 벽보도 형식에 많이 눌리여 있다. 실상 벽보는 학생들의 학습과 삶에 도움이 되는 무대로 되여야 하는데 일부 반급의 벽보는 그저 형식에만 국한되지 아무런 작용도 없다는 말이다. 벽보는 다양한 지식을 체현시켜 학생들의 실제 생활에 도움을 주는 교원의 알뜰한 손길이 가야 하는데 그저 학생들에게 맡겨놓고 자신은 감독만 하여서는 절대 안된다. 우리는 부질없는 형식을 버려야 한다. 항상 현실에 비추어 하고있는 일에 마음을 쏟으면서 보다 좋은 경험들을 탐구하여 민족교육의 발전과 전망에 다소 한점의 빛이라도 부여하는것이 더 바람직 하지 않을가? 넷째: 전업지식을 갖춘 교원이 부족하다. 우리 민족교육의 교원대오들을 살펴보면 전업지식을 갖춘 교원이 너무도 부족하다. 소학교에서는 그런대로 배운 지식으로 가르칠수 있지만 중학교는 어딘가 좀 어려운 것이다. 요즘 중학교들에서는 교원이 부족하면 소학교에서 우수한 교원을 초빙해가는데 그 자체에 문제가 있는것이다. 글쎄 소학교 교원이라서 못한다는 말은 아니지만 그래도 전업학교를 졸업한 교원과 비기자면 어딘가 좀 차이가 있다는 말이다. 다른건 제쳐놓고 학생들에게 지식을 가르치는 방법과 수단상에서 벌써 상당한 차별을 가지고 있다는것이다. 실상 한편으로 배우면서 한편으로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교원도 없는것은 아니다. 이렇게 하는 교수가 잘 되면 얼마나 잘 될가? 요즘에 우리 민족학교들에 전문적인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현재 사업에 참가한 교원이 극 소수이다. 각별히 금방 사범학교를 졸업한 젊은 교원들은 거의가 연해도시나 외국나들이에 몸을 휘두르고 있다. 우리의 교원대오가 건전하고 민족교육이 보다 높은 차원으로 진입하려면 우선 먼저 젊은 교원들을 붙잡아 두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너무도 비참한것이다. 지금은 대부분 교원이 그저 고중이나 (혹은 초중) 졸업하고 함수를 거쳐서 일정한 학력을 갖고 애들을 가르치고 있는 현실이다. 교육학이나 심리학적으로 너무도 동떨어져 있을뿐만 아니라 근본  연구가 령매김을 받고 있는것이다. 진정 교원이라는 차원에서 자신을 희생시키면서 하나라도 열심히 정성껏 가르치려는 태도가 겹핍한것이다. 일부 교원들은  그저 닥치는 대로 가르치는 경향도 없는것은 아니다. 이런 가르침을 받은 학생들이 공부를 잘하면 얼마나 잘 할가? 자신의 교육이나 교수방법에 대해 반성하는것이 아니라 무작정 학생들을 질책하는 교원들을 보느라면 걱정스러운 생각이 무겁게 걸려온다. 그러니 전업학교를 졸업하고 현재 민족교육사업에 종사하고 있는 교원들에 한해서 어느 정도 대오를 높여주어 그들의 류동을 막아야 한다. 교육에서 혁신은 이것도 두렵고 저것도 근심스럽게 생각하여 결단성이 없는 사람들로는 해결이 아주 힘든것이다. 반드시 담도 크고  감히 자신의 주관과 교육의 동태에 대하여 유의하면서 대담하게 발을 내 딛는 젊은 교원들이 주체가 되여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니 혁신이란 말뿐이지 운운은 상당히 어렵고도 어려운 일이 아닐수 없다.  물론 전업지식을 갖추지 못했다 할지라도 부단히 자신에 대한 충전을 홀시하지 않는다면 역시 훌륭한 교원으로 자리매김을 할수도 있는것이다. 관건은 자신에 대한 요구를 부단히 높이면서 실무능력 제고에 노력을 늦추지 않는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을가? 다섯째: ‘구멍 틀어막기’가 엄중하게 존재한다. 글쎄 구멍이 생겼으면 틀어 막는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관건은 무엇으로 어떤 구멍을 막느냐가 상당히 중요한것이다. 가만히 살펴보면 우리의 교육에 아직도 구멍을 틀어막는 현상이 존재하고 있다. 존재하는 만큼 방도가 있는것도 사실이지만 문제는 구멍과 틀어막는 재료가 합리해야만 후과에 아무런 영향이 없다는 말이다. 아무리 급한 사정일지라도 너무 성급하게 틀어막고 보면 너무도 놀라운 후과를 초래하게 되는것이다. 글쎄 아무리 림시라 할지라도 그것은 학생들로 말하면 림시가 아니라 한순간이라도 홀시해서는 안되는 과정인것이다. 그런줄 모르고 자신의 헐망한 처사에 만족하는 그런 현실이 존재하지 않는것도 아니다. 학생들의 배움은 한순간도 홀시해서는 절대 안되는 신성한 일인만큼 반드시 신중해야 한다. 우리들은 반드시 구멍이 뚫리기전에 해결책을 대는 알심을 갖추어 민족교육에 한점의 홀시라도 존재하지 않도록 하나같이 똘똘 뭉쳐야 하는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것이야말로 민족교육의 밝은전망에 가장 바람직한 자세가 아닐가? 여섯째: 교원자체가 먼저 흔들리는 경향이 엄중하게 존재한다. 자신의 보다 밝은 전망과 생존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는것은 나쁜 일이 아니지만 관건은 현실의 자신을 정시하는것이 무엇보다 값진것임을 인식해야 한다. 요즘 우리의 민족학교들이 학생 고갈로 하여 하나 둘 문을 닫고 있다. 이런 현실은 우리 교원들의 평온하던 마음에 파문을 던지기 시작하였다. 날로 줄어드는 학생원천앞에서 부득불 생기는 조건반사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부득불 떠나야만 해결이 좋다는 결론은 아직 너무 이르다는 생각이다. 농촌 학교들을 살펴보면 어느 정도 관계망도 있고 일정한 능력을 갖춘 교원들은 거개가 현성학교로 떠나려고 맴돌고 있다. (적잖은 교원들이 이미 떠났음) 그들의 리유라면 이러다가 학교가 갑자기 문을 닫게되면 어디로 가야할지 너무도 근심스럽다는 하나같은 대답이다. 글쎄 일리가 없는것은 아니지만 자신 한사람의 성급함으로 해를 받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지 않은가를 고려함이 바람직하다. 실상 우리의 사업은 곳이나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반드시 현성의 큰 학교에서 사업해야만 교원이고 교원대오를 받는다는 도리는 아직 성립이 되지 않는것이다. 아무리 작은 농촌학교일지라도 열심히 자신이 맡은 사업을 착실하게 해나간다면 역시 교원으로서의 가치는 빛을 잃지 않는다는것이다. 듣은 말에 의하면 한 농촌의 민족학교에 학생이 세명밖에 남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자 어느 교원인가 학생들을 보고 너희들도 빨리 다른 학교로 가라고 권고를 하더라는 실책도 민간에서 떠돌고 있다는것은 현실이다. 이는 교원으로서 할 처사가 아닌데 가끔은 자랑스럽게 말하는 경우를 본적도 있다는 비참한 현실에서 우리들은 자신을 각성해야 한다. 실상 마지막까지 현성의 학교로 가지 못하는 학생들은 거개가 생활형편이 구차하여 움직이지 못하고있는 현실인데 그것도 리해못하고 자신의 편리를 도모하기 위해 권고를 보내는 교원도 한심하다는 생각이다. 이런 교원들이 우리의 민족교육에 공헌을 했다면 구경 얼마나 했을가 의심이 다가선다. 일부 교원들은 지어 학부모들하고 하는 말이 학교가 곧 문을 닫게 될것이니 애를 빨리 다른 학교로 전학시켜라는 얼떨떨한 처사까지 곁들이고 있으니 참으로 슬픈 일이 아닐수 없다. 이러고서야 어찌 민족교육의 뿌리가 흔들리지 않을가? 실상 이런 교원들은 민족교육의 뿌리를 뽑는 우둔한 일을 하고 있음을 모르고 항상 머리를 쳐들고 제밖에 없노라고 흔들거리는 교원대오 중의 쓰레기가 아닐수 없다.  이상으로 자신의 소박한 견해를 적으면서 우리 민족교육이 날로 번영하고 창성하길 진심으로 기대한다. 또 그렇게 될것이라고 굳게 믿어본다.
7    [시]설음 (리창현) 댓글:  조회:2468  추천:49  2008-08-21
설음 리창현 내안에 네가 있고 네안에 내가 있건만 내안의 네가 나를 모르고 네안의 내가 너를 모르니 이게 바로 비극인가 하노라 산산이 부서지는 설음쪼각들이 너와 나의 심장에 화살처럼 날려올적에 터치는 피방울들에 꽃잎처럼 다가서고싶다  <<연변문학>> 2008년 7월호
6    아늑한 둥지 잔잔한 행복 (수필) 댓글:  조회:2040  추천:63  2008-05-30
결혼의 문턱을 넘어선지도 어언 10여년 세월이 흘렀다. 한 사람의 인생에 10년 세월이 몇개 있으련만 그래도 잔잔한 행복에 만족하며 오늘까지 자신의 둥지를 아끼고 사랑하며 열심히 삶의 터전을 갈고 또 갈아왔다. 남들처럼 큰 성과는 없더라도 오늘까지 자신의 둥지를 아끼고 지켜왔다는 하나만으로도 스스로 만족을 느낀다. 그러면서 내 곁을 지켜주고 삶의 용기를 부여한 안해가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결혼 초기에 나도 남들 못지 않게 아름다운 꿈을 키웠었다. 멋진 인생의 그라프를 그리면서 행복의 물결우에 누워보기도 했다. 수시로 밀려오는 크고 작은 파도에도 두려움을 모르며 용케 삶의 터전을 가꿔왔다. 사랑하는 상대가 존재한다는 리유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행복하기만 했다. 안해에게 미안함 같은것이 없는것은 아니다. 그처럼 아름답던 꿈들이 10년 세월이 흐르도록 세월의 바위에 짓눌려 잠자고있다는 현실로 안해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어느 날 새벽에 꿈같이 머리를 쳐들었다. 그러나 안해는 아무런 티도 없이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고있다. 진실을 가늠하기 어렵지만 그래도 행복하다는 안해의 그 마음가짐으로 다소 위안이 된다. 사리에 밝고 흉금이 넓은 안해를 맞은것이 다행이다. 그런 안해가 아니였다면 나 자신도 인생의 뒤골목에서 방황했으리라. 사람이 살다보면 생각대로 되지 않는 일들이 너무나 많다. 동네 여느 녀자들이 멋진 옷차림으로 넉넉함을 자랑하는 모습을 엿보노라면 남편으로서 가슴이 아플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경제가 넉넉하면 욕망대로 안해에게 이것저것 해주고싶지만 로임에 매여사는 못난 인간이라 그렇게 할수도 없다. 마음뿐이고 행동에 옮기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로 때로는 모진 아픔을 느끼기도 한다. 그래서 더욱더 안해에게 자신의 사랑을 표하고싶다. 얼마전에 한국에 간 동생이 제 녀자친구에게 옷가지며 화장품을 선물로 보내왔다. 그것도 내가 몸을 담고있는 학교로 부쳐왔다. 형수 몫이라며 똑같은것을 두 몫으로 보내기는 했지만 개운한것은 아니였다. 옷가지며 화장품을 받아들고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안해의 모습을 지켜보노라니 저으기 서운한 감이 들기까지 했다. 필경은 내 선물이 아니니 말이다. 《동무도 언젠가 한국에 가면 저에게 멋진 옷을 사주세요.》 그날 밤, 잠자리에 든 안해가 조용히 하는 말이였다. 악의 없는, 순수한 말이였지만 나는 가슴이 짜릿해나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언젠가는 멋진 선물을 안겨주리라 다져온 결심을 여직 실현하지 못한 자신이 안타까왔다. 그래서 소리 없이 안해를 포옹했다. 내 체온을 통해 나의 심정이 안해에게 전해질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가 하는 기대뿐이였다. 그 후에도 안해는 내 앞에서 이런 저런 일로 투정하는 일이 없었다. 빈정거리거나 신경을 꼬집는 일도 없었다. 그런 안해가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욕망을 털어놓지 못하는 안해가 얼마나 슬플가 하는 생각이 이 가슴을 모질게 허빈다. 해준것이 없는 나로서는 안해앞에 서면 자책뿐이다. 생각이 없어서,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지갑이 엷으니 그렇게 지내온것이다. 그래도 항상 안해에게 큰 기쁨을 선사하려는 마음 하나만은 깊숙이 지니고 다닌다. 그런 내 소행으로 안해가 만족하는지도 모른다. 가끔은 몇푼 안되는 원고료를 받으면 안해 선물을 장만하곤 한다.  보잘것 없는 선물이지만 내 마음을 두배로, 세배로 담는다. 그래서인지 안해는 내가 주는 선물이라면 무작정 만족이란다. 그래서 선물은 가격보다도 마음이 더욱 가치있는줄로 믿고있다. 살아가노라면 하찮은, 작은 일로 안해와 옥신각신 다투는 때도 있다. 그러나 그 순간이 지나면 내 인생에서 더 없을 아픈 후회로 나를 몰아간다. 안해가 밉기에 앞서 못난 자신으로 채찍을 드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매번 다투고나면 나는 부엌을 드나들며 부산을 피운다. 안해의 여린 가슴에 상처를 남길가 두렵고 그 아픔을 달래주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 내 앞에서 안해는 눈물까지 찔끔 짜며 설음을 토하노라 여념이 없다. 그런 안해의 설음으로, 안해의 눈물로 나는 높아가는 사랑의 탑을 느끼고 잔잔한 행복이 가정 구석구석에 깃들고있음을 느낄수 있다. 가끔은 로임이 몇푼 안되는 교원직을 팽개치고 해외로, 도시로 떠나고싶은 생각이 굴뚝같이 치민다. 이래도 한생, 저래도 한생인데 남들처럼 큰소리 떵떵 치며 살아보자고 마음을 다진다. 그러나 내가 떠남으로 해 외롭게 살아갈 안해를 생각하면 모질게 먹었던 마음도 스르르 녹아내린다. 그리고 순간순간의 잔잔한 행복에 집념하며 내 둥지를 더욱 아끼고 사랑한다. 부모없이 거리를 헤매는 애들을 지켜보노라면 걱정과 아픔이 꾸역꾸역 괴여오른다. 부모들이 해외로, 도시로 진출해 경제상으로는 걱정이 없겠지만 정신상으로 체험하는 그 고통을 아는 사람은 적을것이다. 그래서 잘 살아보려는 그 욕망은 좋지만 자신의 둥지를 지키고 알뜰히 가꾸는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가 하는 생각도 가져본다. 우리는 서로에게 물질적인 행복을 주지는 못하지만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며 잔잔한 행복으로 살아가고있다. 여느 사람들의 눈에는 보잘것 없는, 하찮은 삶일지도 모르지만 우리 부부는 만족하며 살아왔다. 요즘 세월엔 삶의 방식과 수단이 다르겠지만 스스로의 삶에 만족할줄 아는것도 삶의 지혜임을 나는 자각하고있다. 물질적인 행복도 좋겠지만 서로의 믿음과 아낌이 진정한 행복임을 나는 고집하고있다. 오늘도 우리 부부는 얼마 안되는 로임으로 만족하며 살고있다. 없으면 없는대로, 있으면 있는대로 이웃들과 주고받으며 사는 나로서의 삶의 방식이 얼마나 편한지 모른다. 깨끗한 마음으로 진정을 주고받는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겠다. 삶이란 만족이라는 천평우에서 가늠돼야 할것이다. 모든것이 평행을 이룰 때만이 가장 보람차고 행복한것으로 알고있다. 그래서 나는 자신의 삶이야말로 오염없는 삶이라고 고집한다. 한국의 유명한 시인 이롯 선생님의 시 《삶의 바람소리》가 떠오른다. 어렵고 힘들다고또는 괴롭다고꼭 나쁜것만은 아니다세상이 그저 있는 그대로아름답고 우리 또한지금 있어야 하는 리유만으로존재할만한 가치가 있는것처럼그 속에도 우리가 살아가야 할분명한 진실이 있다애써 도망치려 한다면오히려그만큼 삶도 지쳐갈것이다구름이 흐르는 언덕에비도 오고억새도 무성하게 자란다행복은 위선적이지 않다…
5    길(리창현) 댓글:  조회:2414  추천:45  2008-02-24
길    달리던 버스가 고장이 생겨 잠시나마 처음으로 고속도로에서 휴식을 가지게 되였다. 날듯이 달리는 각양각색의 차량들이 아찔할정도로 옆을 스치며 신바람나게 달린다. 눈깜빡할사이에  희미한 꽁무니만 남기고 사라진다. 쏟아지는 무더위로  땀을 훔칠새가 없다. 길가에는 그늘이 될만한 나무하나도 찾아보기가 힘이 들다.  다소 거의 죽어가는 나무 한그루가 시선에 찾아들었다. 나무라해봤자 그늘도 거의 없는 그런 존재였다. 불어오는 더위는 가슴에  김을 뽑는다. 모두가 하나같이 허덕이는 모습을 지켜보느라니  저도몰래 고향의 길과 고향의 아름드리 나무가 사무치게 그리워난다. 아무리 가파로운 길이라도 오르다가 힘이 들면 시원한 그늘을 찾아 마음의 더위를 단김에 빼버리는 그 감각이 얼마나 그리운지 모른다. 그리고 가로세로 뻗어나간 비록 지금처럼 콩크리트로 만든 그런 고속도로는 아닐지라도 항상 마음에 생기를 심어주는 그런 길이 오늘따라 사무치게 그리워남을 막을길 없다.  그러면서 울퉁불퉁한 고향의 그  정든 길들이 포물선을 그리면서 마음의 오솔길에 수많은 여운을  물어온다.    철모르던 그때  고향에는 그래도 국도가 시원하게 뻗어있었다. 국도라야 기껏해야  흙으로 다져진  길이였다.  그 누구도 물론하고 마음껏뛸수있는 그런 자유의 길이였다. 가다가 힘들면 마음껏 휴식의 허리띠도 풀수가있는 그런 편한길이 였다. 당시 큰길은 우리들로 하여금 마음껏 휴식을 할수있는 유일한 공원이나 다름이 없었다. 거기에서 각양각색의 차들을 익혀왔고  얼굴은 몰라도 마음만은 항상 밝아야 함도 배워왔고  길은 각별히 위험한 장소이니 조심성도 절로 배워왔다. 항상 부모님들은 근심이 태산같았으나 고향의 큰길에서 어느 한사람이 사고로 돌아갔다는  력사는 기록에 없는 줄로 알고있다. 이제와서 새삼스레 안겨오는 그 점이 바로 고향의 그 길은 여직껏 숨을 쉬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 숨소리가 우리들에게 생기를 주었고  생명에 빛을 뿌려주었으며 어려서부터 마음에도  길을 닦아야 함을  너무도  편하게 가르쳐주었다. 그런 엄마의 가르침같은  무한한 가르침은  고향사람들에게  소중한 마음의 재부를 갖춰주었다. 그것은 비록 길뿐이 아니였다. 끊어지는 인정을 이어주는 그런 고마움의 뉴대이기도 한것이다.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이어지고 어른들은 어른들끼리 이어지는 그런 길의  순직한 마음하나로 고향은 항상 평화의 락원으로 탈바꿈을 하였다. 애들은 건강하게 자라나고 로인들은 장수하고  게다가 해마다 풍년이 들어 집집마다에서 기쁨의 노래가락이 문사이를 비집고 이집 저집에 아름다운 멜로디로 울려간다.   고향의 길은 너무너무도 많은 인생도리를 가르쳐주었다. 숨소리마저 심장의 박동과 같이하여 언제든 마음이 편한 그 고향의 길이 가슴을 적신다. 여하튼 인간이면 갖추어야 할 참도리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가르쳐주었다. 가장 기억에 새로운것이라면 너그러운 인품이다. 니것내것을 모르던 어린시절의 아름다운 추억들이 마음의 쪽문을 살며시 열고 향기를 뿜는다. 시원한 그 향기앞에서 자신이 갑작스레 너무도 왜소함을 느껴보기도 한다. 여직 길이 가르친 그런 참도리들을 진정 삶의 보람으로 간직해왔는지 아픔부터 앞선다. 여직 살아오면서 인품도 말리 삭막해졌다는 그 점은 부정할수 없지만 자신이 진정 그런 삭막함으로 오열을 느끼면서도 그런 한류속에 묻혀버렸는가가 너무도 근심스레 가슴에 돌멩이를 던진다. 색다른 음식이 나지면  먼저 이웃부터 걱정하여 량적으로도 더 준비하는 고향정에  메마른 마음의 강도 어느덧 젹셔온다. 여하튼 고향정은 지울수없는 락인이 되여 마음의 큰길에 아름다운 록색주단을 깔아준다. 그러면서 고향길에 보다 큰 고마움을 간직하면서 마음의 길도 열심히 닦아야 함을 절실히 느껴본다. 30여년의 삶에 연장선과 길을 닦아왔지만 구경 내 마음의 길은 어느정도로  만족을 주는지  그리고 고향길과 마주하면 또 그 어떤 부끄러움들이 사태처럼 쏟아지지 않을가 걱정스럽다. 아예 고향길에 가보고 싶다. 너그러운 고향길에 모을 맏기고 싶다. 실컷 고향길의 숨소리를 들으면서 삶을 열심히 진단하고  부끄러운같은것은  몰래 버리고 싶다. 그렇지만 반성만은 꼭 열심히 할것이다. 그러면 고향의 길도 보다 장수하고  자리잡힌 주름들도  쫘악- 하고 펴질것같은 그런 기쁨으로  비록은 고속도로에서 더위와 모지름을 쓰고 있지만 이상스럽게 마음속으로부터  뿜어오르는 시원한 향기가  구겨진 내 마음의 길우에서 나풀나풀 춤을 추면서  또다시 삶의 질을 승화시킨다. 하지만 반면에  아픔의 씨앗도 살며시 머리를 쳐든다. 즉 길의 외로움 때문에 마음이 아프다.  그 깨끗한 길이건만  인생의 참도리를 가르쳐주는 그런 신성한 존재이건만  가름침을 받으려고 찾아오는 그림자가 적어졌으니  마음은 모질게 아파만난다.   가끔 애들을 데리고 고향의 길에 몸을 실어야겠다. 자식들에게도 보다 아름다운 추억들을 심을수있는 그런 절호의 기회를 절대로 놓지지 않으련다. 그리고 성명절이면 꼭꼭 찾아뵙고 싶은 결심도 가슴에 새겨둔다. 고향의 그 길 영원히 내 삶의 등대가 되여주고  고향을 떠나 타향에서 외롭게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항상  사랑을 베풀면서  아프거나 쓸쓸할때에도 하냥 그 숨소리로  사랑의 향기를 뿌려줄것을 열심히 기도해본다. 항상 고향의 그 길에 깨끗한 고마움을 간직하면서  열심히 살아가리라고 굳게 맹세한다.          
4    안해와 남편 댓글:  조회:2382  추천:53  2008-02-22
안해와 남편(리창현) 때가 되면 서로가 짝을 무어  기인긴 세월을  서로 의지하면서 너무도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살아가는것이 인간인가 보다.  부모라는 이름자를 가지게 되는 그 순간부터 가련한 마음도 함께 마음의 중심에 그라프를 그리게 된다.  그 누가 이 세상을 오차도 없이  정확히 짚으랴고  늘 근심덩어리를 호주머니에 넣어가지고 다니면서  영원한 감독과 재판장노릇을 하는것도 역시 부모라야 겠다.  그래서 부모들은 언제나 덕을 쌓기에 힘을 아끼지 않는가싶다.  남의집 애가 불행을 겪으면 꼭 마치 자기집일처럼 그렇게 가슴아파하고 걱정하신다.  당시는 몰랐었는데 이제와서 생각하느라니  그 모두가  오직 자식을 위한 그토록 고마운 마음임을 때늦은 인식이 가슴에 파문을 일으킨다.  보모님들께서 얼마나 힘드셨을가하는 생각도 살며시 머리를 쳐든다.  여하튼 부모님께  항상 고마운 마음을 간직하면서 있는 정성 다하여 효성하리라 굳게 다짐해본다.  그러면서 이렇게 짝을 무어준 부모님들께  큰절을 올리고 싶다.   이렇게 짝을 무어 남자는 남편이라는  <<갑옷>>을 입게 되였고 녀자는 안해라는 면사포를 쓰게 되였다.  서로가 서로를 아끼고 사랑한다고 크게 약속을 해왔지만 현실은 그렇게 랑만적이 아니였다. 너무도 갑작스레 들이닥치는 생각밖의 일들로 서로가 얼굴을 붉히면서  그라프에 깜찍한 포물선들을 긋는다. 그것은 오직 하나의 포물선만이 아니였다.   안해는 비교적 개성이 강한 편이다. 최씨네 딸이니 더 말이없어도 알만한것이다. 하지만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개성이 너무 강한편이다보니  모순의 해결에서 무작정 내가 흰기를 내드는 비례가 많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안해를 무서워한다는 말은 아니겠다. 어느 선배님께서 오죽했으면  <<녀자들의 말을 들으라구. 절대 랑패가 없다니깐! >>라고  말씀했으랴!     이러고 보면 내가 비교적 명석한 편이라 할가? 아니면 남들이 말하는 치괄얜 이라고 할가? 여하튼 남들이사 어떻게 말하든간에 나로서는 그래도 맘이 퍼그나 편한 축이여서 그 어떤 평판도 받아들일만한 사상경계가 갗추어져있다.  현대사회에서  그래도 이런 무기쯤을 갖추자면  보다높은 의식이 필요한것이다.  때로는 나자신도 한번쯤은 큰 소리를 땅- 하고 쳐보지만  그러고나면 어쩐지 마음이 늘 개운치가 않고 꼭 마치 어느 물개에게라도 물리운듯한 그런 어색한 기분이여서 아예 져보는편이 더욱 매력이 아닐가고  나로서의 철학을 만들기도한다.   이렇게 말하면 일부 남자들이 무슨 개똥철학이냐하고  픽-하겠지만  그렇게 극단적으로 생각말고 어느정도 각도를 바꾸어 사고함이 너무도 필요하다는 말이다. 글쎄 년세가 많은 분들에게는 유치원아이의  견해나 다름이 없으련만 우리 젊은이들로서는 생각이 너무도 바람직하다고 생각된다.  매번마다 안해와 다투고 난 후에는  그저 아무일도 없었듯이 스치고 지난후면 안해로서도 어딘가 좀 부끄러운 생각이 드는지 누가 말도안했는데 제딴에서 스스로 잘못을 뉘우치면서 눈물까지 찔끔 짜는것을 보느라면 남편으로서의 매력이 쭈욱- 하고 펴지는것같은 기분이다.  아무리 명석한 인간이라 할지라도 살다보면 서로 얼굴을 붉히기가 일쑤이다. 매번의  작은 일들이라해도 절대로 소홀히 여기지 말고 제때에 깨끗하게 씻어야지 그것들이 제때에 소독이 잘 안되면 언젠가 곪아서 무서운 후과를 초래하게 된다.   남편이라는 그런 존엄하나로 땅- 하다나면 언젠가는 여린 안해의 가슴에 대못을 박기가 너무도 쉬운일이다. 절대로 남자가 무서워서 떠나지 않고 살아가는 안해가 너무도 소수라는 말이겠다.   남편으로서  해야할일도 많지만 그가운데서 가장 큰 일이 바로 가정이라는 이 자그마한 사회를 열심히 이끌어가는것이다.  가정이 무너지면 모든것이 무너지는 그런 무형의 존재가 수시로 인간의 주위에 올가미로 놓여있는것이다.  아무리 훌륭한 남편이라도 가정이라는 이 자그마한 울타리도  이끌지못하면  다른 무슨 사업을 론할가?!   안해도 마찬가지다.  지금 적잖은 안해들은 돈에 눈이 아홉이다. 그저 그놈의 돈때문에 애매한 남편에게  아픈 상처를 남기고 있는것이다. 매일의 작은 상처들이  하나 둘 모여서 언젠가는 큰 후회를 가져오게 된다. 그러니 너무  눈 앞만 내다보지 말고 저 멀리 내다보면서 자신의 삶에 만족할줄아는 능력을 키워야한다. 매 한마디의 잔소리도 남편에게 힘이 될수있게 그렇게 좀 유머적으로 함이 너무도 바람직하다. 실상  지금 가정이 좀 구차하다 하더라도  만약 행복한 가정을 움직이고 있다면 그 이상 더 큰 재부가 이세상에 없는것이다.  항상 대방의 마음을 리해하여주고  대방에게 해줄말을 열심히 연습한후 해봄이 얼마나 중요한지모른다. 아무리 부부라 해도 아무말이나 훌훌 나오는대로 하는것이 말이 아니다.  이러고보면 대방의 자존심을 깨뜨리기가 일쑤이니 언제든 해줄말이라면  그 말이 힘이 되는가 아픔이 되는가에 충족한 고려가있은후 결정함이 바람직하다.   서로는 안해이고 남편이지만 자식에게는 또 부모라는 위대한 존재이니 서로에게 훌륭한 대방이 되여보고 자식에게는  훌륭하다는 론하지못하더라도 최저한   자식으로서 가정이라는  요람의 존재로 만족을 느낄수있게 해야한다.  딱 잘먹고 잘입어야 행복한 가정이 아니다. 못살아도 서로가 한마음이 되여 가난을 함께 이겨내느라면 언젠가는 행복의 신이 당신의 가정에 아름다운 무지개를 뿌리내려 줄것이다.   남편- 너무 낡아빠진 전통에만 자신을 담고 힘들게 살지말고  안해의 마음속도 가끔은 뒤져보면서 눅거리 선물이라도  슬그머니 챙겨주느라면   안해들은  눈물나게 고마워한다. 실상 녀자들을 만족시키기가 그렇게 힘든 일이 아니다. 항상 작은일에 초점을 두고 정성을 담아서 해준다면  쓸데없이 잔소리를 해댈 안해가 이 땅에 아직은 존재하지 않을것이다.   안해- 너무 자신이 불쌍하다고  본가집 부모들 앞에서 자신의 현실에 하소연말고 남편 흉도 적게 보면서  효과없는 잔소리같은것도 적게 하면서   남자들의 허줄한 자존심일지라도 높이 봐주면서  슬그머니 춰도 주면서 살다보면 남자들은 너무도 감격되여 눈물까지 찔끔 짤것이다.    그렇다! 남편이든 안해든 언제나 한마음이 되여 기인긴 인생로정에 서로가 서로를 위해 헌신하려는 위대한 마음을 지니고  함께 손잡고 달려보자! 힘들면 쉬여가더라도 절대 대방을 원하지 말면서  보람있는 삶을 위해 날마다 날마다  부지런히 달려보자!       
3    남자가 해보는 변명 댓글:  조회:2372  추천:49  2008-02-10
남자가 해보는 변명    요즘 어쩐지 마음 한구석이 뒤숭숭해나면서 늘 기력이 허망으로 빠져나가는듯한 심정이다.    그처럼 생기발랄하던 모습은 자리를 비우고 늘 머리가 무거워 남을 느끼게 된다. 여하튼 몸에 도움에 된다는  모건품도 챙겨먹었건만 별로 선명한 효과가 보이질 않았다. 때로는 사색의 변두리에서 몸부림도 쳐대면서 무거워진 머리를 홀가분하게 만들려고 떼질 비슷한 행동도 가졌건만 모두가 별다른 도움을 주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순간적으로 스쳐버리는 사색의 실마리를 찾아보았다. 그러다가 요즘은 가끔 녀자들이 나름대로 남자에 대하여 주말련속극을 선보이듯이 엮어가는 이야기에 정신을 가다듬고 듣다 보면 속으로 픽- 하고 웃음을 짓기가 일쑤이다. 그렇다고 자신도 한목 끼여앉아 제소리를 해댄다는것도 어찌 보면 너무도 가벼운 소행이 아닌가 싶어서 그저 두눈을 지그시 감고 침묵으로 들어주군 하였다. 헌데 언제부터 한마디 해보아야겠다는 야심이 생겨 그것이 나름대로 <<려행>> 한줄을 오늘에야 깨닫고 오랜 침묵끝에 필을 들게 되였다. 이제 내앞에는 녀자가 앉아있지 않으니 시름놓고 남자의 신분으로 한마디 변명을 해야겠다.    실상 남자나 녀자를 물론하고 모두가 빈몸으로 이 세상으로 힘겨웁게 왔다가 평생을 온몸의 이 구석 저 구석을 가리우면서 힘들게 살다가 지친 몸으로 다시 저 세상으로 가는것이다. 그러니 텅빈 이 세상으로 온다는 그 자체가 얼마나 행운인지도 모른다. 그 누가 이세상으로 오던 길로 다시 갈수도 없는 현실이다. 그러니 그 누구도 누구를 론할 필요가 없이 그저 호상 의지하고 믿어주고 보살피면서 종점까지 달릴수 있다면 그 이상 더 완미한 매듭을 어데서 찾을수 있을가?!    그런데 가슴아프게도 요즘은 남자들에 대한 질책이 그 무슨 도움이 없이도 여기저기에서 팍-팍- 불꽃이 일면서 튕겨나온다. 그만큼 남자노릇하기가 어려워지고있는 형편이다. 그리고 녀자들은 남자를 점점 모르고 있다. 말하자면 남자들의 마음속 깊이에 옹심좋게 들어앉은 생각을 전혀 모르는것 같기도 하다. 남자들은 그것을 그리 쉽게 꺼내보이지 않는다. 오직 남자의 정감에서 스스로 피여오르는 남자의 향기이다. 그 누가 말했듯이 남자는 칭찬에 약하다. 일단 칭찬만 해주면 무슨 일이라도 두려움없이 해나간다. 그러니 가끔 남자에게 얄팍한 칭찬을 주는것도 녀자로서는 승리의 기발을 내세운격이다. 녀자들은 거짓말인줄을 뻔히 알면서도 자기 흥분에 도취된다면 남자는 진실적인 칭찬에 스스로 취해버린다. 그래서 가무에서도 그러하다. 일반적으로 남자들은 녀자앞에서 가무일을 찾아하려는 생각이 거의 없다. 그러나 녀자가 없을때에는 집안이 어지러우면 그 누구의 시킴이 없이도 그 달콤한 칭찬 한알을 가지고 싶어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 해나간다.     하지만 일단 녀자가 어쨌으면 하는 기미가 약간이라도 보이면 가능하게 불가능한것이다. 이처럼 남자들은 녀자가 고생하는것을 겉으로 나타내기를 싫어하고 마음에 간직하는데 늘 언젠가는 한번쯤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마음속깊이에 자리를 잡고 있다. 그러니 자신이 가련하다고 생각 말고 천천히 기다려 보라!    다음 남자들은 아는것이 많은것처럼 하는 녀자를 제일 꺼려 한다. 무작정 자신이 안다고 떠들어대는 녀자들을 남자들은 아주 우습게 생각한다. 그런 녀자하고는 거리를 될수록이면 멀리하고 진정한 속심을 주지 않는다. 솔직히 말해서 이런 녀자만큼 고독한 존재가 더 없을것이다. 남자들은 녀자가 알면서도 모르는척하고 언제나 남자의 생각을 존중해주는 녀자를 가장 크게 믿어준다. 때로는 남자들도 자신의 주장이 무리함을 알면서도 견결히 밀고 나간다. 이때 얼핏 잘못하면 아마도 리혼이라는 판결서도 마구 날려들것이다. 이 순간에는 평소에 아무리 약한 남자라도 끝날같이 예리한 남자의 존엄을 고수하기 위하여 물 불을 가리지 않는다. 이쯤에 한번쯤 물러서는것도 녀자의 재주가 아닐가?    남자들은 녀자의 아릿다운 인물보다 고운 마음가짐과 얌전한 행동에 먼저 취한다. 아무리 천하 일색이라도 행동이 거칠거나 마음에 제밖에 모르는 생각이 깃들었다면 남자들은 서슴없이 버린다. 아무리 시대가 어떻게 탈바꿈할지라도 남자는 영원히 남자가 아닐가? 후- 가쁜 한숨이 목구멍을 메우며 튕겨 나온다. 남자노릇하기가 정말로 힘들구나 하는 생각이 가슴에 파문을 일으킨다.     그렇다. 실상은 남자나 녀자나 모두 가련하다. 모두가 하나의 공동한 꿈나무를 가꾸면서 언젠가 수확이 들기를 기다리면서 세월을 불태운다. 누가  누구에 대한 질책도 중요하지 않고 누가 누구에 대한 용서도 필요하지 않으며 제나름대로 자신이 가꾼 삶의 울타리에 진정으로 정성을 다 한다면 언젠가는 인생이란 결코 지구촌이란 너무도 작은 공간속에서 그리움에 젖은 노래를 몇수 부르고 나니 자신의 인생이 종점에서 렬차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음을 너무도 놀랍게 자각할것이다…  
‹처음  이전 1 2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