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창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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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담임교원의 의미 댓글:  조회:1927  추천:30  2011-03-08
담임교원의 의미 학교에서 담임교원은 실로 부모의 맞잡이 입니다. 애들의 구석구석들을 알뜰히 보살피면서 무사한 하루의 일정을 완성해야 하는 담임교원. 뭐니뭐니 해도 학교에서는 그래도 담임교원의 임무가 상당히 큰줄로 압니다. 또한 담임교원의 매력정도에 따라 그 학교의 인지도로 어느 정도 올라간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말해서 담임교원의 사업은 힘들고 복잡하고 부담스러운 사업입니다. 글쎄 대충대충 할라치면 뭐 그런것도 아니겠지만 남보다 뛰여나게 하려면 아마도 힘과 마음을 얼마나 쏟아야할지 모릅니다. 얼핏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그속에 내포된 함금량은 상당한 수치로 자리매김을 할것입니다. 담임교원의 어깨우에 맡겨진 임무는 교수뿐만 아니라 할일들은 많고도 많습니다. 해도해도 끝이 없는 사업이 바로 담임교원사업입니다. 어찌보면 담임교원은 지식의 바다를 넘나드는 항행가입니다. 수시로 걸려오는 도전을  해결해야 할뿐만 아니라 모든 일에서 실수가 있어서는 절대 안됩니다. 그래야만 합격된 담임교원이라는 인정을 받을수 있습니다. 지식의 바다와 생활의 바다라는 두 바다를 자유스럽게 넘나들면서 민족의 기둥감을 건실하게 키워야 하는 힘겹고 성스러운 임무를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면서 때로는 자신을 희생시켜야 하는것이 담임교원입니다. 웃음은 항상 마음의 겉면에 걸어두고 수시로 사랑의 선률을 타고 애들의 가슴속에 파아란 생기를 주어야 하고 아픔이나 울음은 늘 마음속에 감추고 다니면서 종래로 겉으로의 흐름에 실수가 없는것이 담임교원이라 할수있습니다. 담임교원은 애들이 언제 어디서든 시름놓고 아픔이나 슬픔을 시원스레 쏟을수 있는 큼직한 그릇입니다. 그 어떤 부끄러움도 모르고 오직 믿음이라는 신성한 존재앞에서 자신의 모든것을 털어놓습니다. 담임교원은 여름날 큰 강에서 빨래를 헹구듯이 마음의 빨래를 마음껏 헹굴수 있는 오염없는 깨끗한 강물입니다. 그저 말없이 받아만 줄뿐 그 무슨 요구나 잔소리 같은것은 아예 모르는 그런 천사같은 존재입니다. 하지만 모르는것은 항상 조용한 눈의 우물속에 담고있으면서 애들로 하여금 스스로 우물을 파고 우물속의 의미를 터득하게 됩니다. 절대로 애들에게 시간적인 억압니다 재촉이 없이 마음껏 헤여다닐수있는 공간을 마련해줍니다. 항상 조용한 존재여서 존재의 의미를 요란스레 나타내지 않습니다. 하지만 가장 매력적인 존재를하지만 가장 매력적인 존재를 만들기위해 자신의 몸과 마음을 아끼지 않습니다. 그래서 부존재속에 존재하는것이 담임교원이기도 합니다. 꼭 마치 옆에서 조용히 지켜보는 그런 존재여서 애들은 얼마나 편한지 모릅니다. 담임교원은 또 흩어진 머리들을 곱게 빗겨주는 년세많은 할머니입니다. 한오리의 머리카락이라도 흩어질세라 열심히 빗고 또 빗는 재주많은 미용사입니다. 깔끔한 형상은 자신도 기쁘지만 만남들이 더 기뻐한다면서 너저분한 옷견지들을 알뜰하게 다림질하는 현대식 다리미입니다. 구겨진 주름은 삶의 주름이 되기 싶다면서 정성스레 다리고 또 다립니다. 건강은 삶의 전부라면서 무엇보다 애들의 건강에 힘혈을 아끼지 않습니다. 가난이 건강을 절대 해쳐서는 안된다면서 자신의 물질적재부를 아낌없이 내놓습니다. 그리고 애들이 건강하면 자신이 건강한것보다 기뻐하고 만족합니다. 하지만 늘 자신의 건강에 대해서는 언제나 양보를 하군 합니다. 한번 쓰러지면 이악스레 다시 일어나도 두번쓰러지면 재차 일어섭니다. 그러다가 일어서지 못하면 자신도 모르게 타인의 도움으로 건강을 돌보군 합니다. 그렇지만 늘 마음속에는 애들의 근심이 가득차있습니다. 그래서 저도 몰래 누구먼저 어굴에 주름이 자리를 잡습니다. 애들은 그걸 보면서 가슴아파하고 속으로 눈물을 삼킴니다. 하지만 겉으로 내놓지 않고 마음속에 간직해 기쁨을 만들어 선물합니다. 그 순간마다 얼굴에 잡힌 주름들이 선명하게 쭈욱 펴집니다. 너무도 행복해 또 웃음이 머리를 쳐들고 일어섭니다. 당금 쓰러질것같던 몸도 놀랍게도 변합니다. 하지만 감추는 재주가 너무도 뛰여나 애들은 얼리우기가 일쑤입니다. 그리도 마음이 너무나 기쁘답니다. 애들은 하루만 못봐도 보고싶어진답니다. 그리고 자신도 애들이 보고파 저도 몰래 전화랑 한답니다. 애들은 주말이면 아예  집으로 갈념을 하지 않고 옆에 있고 싶어합니다. 부모도 보고 싶은 곳이 없는데 담임교원이 더 보고싶어 진답니다. 색다른 음식이랑 생기면 애들생각에 넘어가질 않는답니다. 다음날에 꼭 챙겨가지고 가난한 애들에게 꼭같이 나누어 준답니다. 그러면 자신이 먹은것보다 더 기뻐한답니다. 그걸 받아먹는 애들은 속으로 눈물을 삼킨답니다. 그것이 소나기나 우박이돼 기쁨을 더 크게 만들어 선물합니다. 애들이 별문제 없이 잘 크는걸 보면 만족해합니다. 그 무슨 물질적재부를 얻은것보다 더 행복하게 느낍니다. 이분이 바로 담임교원입니다. 항상 무거운 책임으로 늘 그렇게 분망하게 돌면서 애들이 어두운 밤에 정확하게 걷도록 최선을 다 하시는 분입니다.                                         녕안시조선족소학교 리창현
64    내 마음속에도 하늘이 있단다 댓글:  조회:1539  추천:51  2011-03-02
   작은 내 가슴속에도 넓은 하늘이 있습니다 알쏭달쏭 고운 생각들이 꽃구름되여 둥둥 떠가면 멋진 꿈날개 활짝 펼치고 히히—호호— 깨끗한 메아리 마음속을 넘칩니다   작은 내 가슴속에도 넓은 하늘이있습니다 슬픔과 그리움이 한데 엉키면 먹장구름 사납게 떠돌아다니면서 번쩍 우르릉 꽝— 번개치고 우뢰 울면 두줄금의 소나기 무지개타고 내립니다
63    빨래(외1수) 댓글:  조회:1449  추천:33  2011-02-26
빨래(외1수)   싹---싹--- 울 엄마가  빨래를 시작한다   더러운 때물이  손가락사이를 흘러내린다   내 마음도 깨끗이 씻기운다   엄마의 빨래는 내 맘을 헹구는 깨끗한 시작이다   엄마는 빨래로 나에게 인생을 가르쳐준다.   눈내리는 날이면 엄마가 보고 싶다   하아얀 눈송이가 머리우에 살며시 내려앉는 날이면 나는 그리움에 묻힌다 눈송이들도 내 마음을 아는지 쭈루륵— 눈물을 만든다   하아얀 그리움에 엄마얼굴 그려보면 하늘에서 엄마가 미소를 지으며 사랑의 메시지 끊임없이 쏟아진다 포근한 땅우에 살포시 내려앉으면 수없는 그리움들이 눈꽃으로 피여난다 눈내리는 날이면 나는 엄마와 만나는 너무너무 행복한 날이다. 그래서 눈내리는 겨울에는 엄마가 무척 보고프다. 녕안시조선족소학교 리창현  
62    슬픈 리유 댓글:  조회:1457  추천:40  2011-02-23
슬픈 리유   앞집 사람도 카텐을 쳤습니다. 뒤집 사람도 카텐을 쳤습니다. 옆집 사람도 카텐을 쳤습니다. 온 마을 사람들이 카텐속에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앞 마을도 카텐을 쳤습니다. 뒤 마을도 카텐을 쳤습니다. 옆 마을도 카텐을 쳤습니다. 온 공사가 모두 카텐속에 흐느낍니다. 남쪽 나라도 카텐을 쳤습니다. 서쪽 나라도 카텐을 쳤습니다. 북쪽 나라도 카텐을 쳤습니다. 동쪽 나라도 카텐을 쳤습니다. 온 지구가 카텐속에 휩싸였습니다. 슬픔의 초롱들이 똘랑똘랑 맑은 이슬방울을 휘뿌립니다 슬픔이 다가서는 이유를 오늘에야 카텐속에서 조용히 느껴봅니다 시원스레 열려질 카텐들에 슬픔의 씨앗을 조용히 걸어둡니다. 해뜨는 아침이면 카텐밖에 대롱대롱 매달린 수많은 슬픔들이 하나 둘 떨어져 나가길 조용히 빌고 또 빕니다  
61    슬픔의 뒤안길은 어수선하기만 하였다 (외4수) 댓글:  조회:1339  추천:25  2011-02-23
슬픔의 뒤안길은 어수선하기만 하였다(외4수)      할머니네 살던 골목은 어수선하기만 하였습니다.    삼촌네 살던 골목도 어수선하기만 하였습니다    이모네 살던골목도 어수선하기만 하였습니다    우리네 살던 골목도 어수선하기만 하였습니다    정답던  그 골목들이 모두 어수선하기만 하였습니다.        영수네 살던 골목은 쓸쓸함뿐이 였습니다    철만이네 살던골목도 쓸쓸함뿐이 였습니다    옥이네 살던 골목도 쓸쓸함뿐이 였습니다    선생님네 살던 골목도 쓸쓸함뿐이 였습니다    그립던 그 골목들이 모두 쓸쓸하기만 하였습니다       이 골목에서    저 골목에서    추억을 주어보려고 몸부림을 쳤건만    수많은 아픔들이 흩날리는 단풍에 매달려    처절한 울음소리 찢으며 날아내립니다       이 골목도    저 골목도    어느 골목도    낯설게 다가서는 슬픔앞에서    말라버린 추억의 껍질들이    야위여진 모습으로 허울만 벗습니다       동년이 춤추던 이 골목    청춘이 약동하던 저 골목    꿈도 많던 어느 골목엔    아픔과 그리움들이 함정을 파놓고    슬픔의 눈물로 우물을 둔갑하네.       낯설은 골목길에서 방황하는 나그네    사랑도 눈물도 깡그리 말라버린    삶의 뒤안길은 슬픔의 파도소리만 높아갑니다. 홀로 뜨락에 앉아서 달밝은 이 밤에 홀로 뜨락에 앉아서 흘러가는 매화나무 그림자와 손을 잡으니 술생각에 내 맘도 흐르는구나 찰찰 넘치는 술잔을 조용히 들고보니 잔마다에 매화꽃이 이슬에 젖었구나 물감 인간에 대한 괘씸한 우롱 진리는 버리고 허위를 감싸는 요사한 존재 세월앞에서 옷을 벗는 비루한 음모. 남의 말 하지 맙시다남의 말을 하는것도 아마 버릇이 되는가 봅니다처음에는 생각없이 그저 내뱉은 말같지만그것이 약담배처럼 인이 백인답니다. 한번 하면 다음에 또 하고 싶어 지는것처럼 말입니다남의 말에도 좋은 말이 많고도 많지만하필이며 나쁜말만 골라 하십니까 남의 나쁜 말을 하고나면그렇게도 속이 시원한겁니까당신이 남의 나쁜말을하고있는 순간에다른사람도 당신의나쁜말을 하고 있다는걸 생각하십니까 그런 당신하고 마주 앉으면믿음보다 얄미움이 앞선답니다그러는 당신의 눈속에는질투같은것이  용암처럼 끓어번집니다그러는 당신의 입은입이 아니라꼭 마치 그 무슨구멍만 같았습니다 그 순간마다에는두려움, 근심, 걱정, 아픔들이줄줄이 꿰여지면서내 마음을 너무도 괴롭힙니다가문에서 물려받은끔직한 선물인지는 몰라도여하튼 그것들이언젠가는 당신의 마음에화살이 박힐것으로 생각해보았습니까 말속에는 정령이 숨쉰다고들 하는데너무 험한 말들은제발 삼가해 주십시오 이 세상 한번오기가 그렇게 쉬운일도 아닌데하필이면 자신에게무서운 락인을 찍습니까모두가 그렇게 열심히살아보려고 애를 쓰는데왜 자꾸남의 삶에 칼질을 하는겁니까 남의 마음에 어느 만큼 칼질을 해놓으면당신의 마음에도 그만큼칼자국이 남는다는걸 알고 있습니까앉아 있는 사람에게 무슨 죄가 있다고또부질없는 말을 꿰매려합니까걸어가는 사람에게 무슨 잘못이 있다고그냥더러운 혀를 꼽니까누워있는 사람에게무슨 결점이 있다고계속 그러십니까 가는귀가 먼 사람에게무슨 고집이 있다고자꾸만 질투를 거는겁니까그냥자꾸만또계속그러지 말고이젠 그만하시고마음에 씌워진 감투를 훌쩍 벗어던지고착한 마음알뜰하게 가꾸면서자기 말이나 해봅시다 내가 한 말들에 반성을 풀어놓고이젠 그만 남의 말을 하지 맙시다 제발 이젠그만합시다어떤 사람은 어떤 사람은 좋은 말만 귀에 들리고나쁜 말들은 아예 듣지 못한다.어떤 사람은 나쁜 말만 귀에 들리고좋은 말은 그냥 듣지 못한다.어떤 사람은 올리춰주는 말만 들릴뿐비웃는 말은 티끌만도 듣지 못한다.어떤 사람은 비웃는 말은 잘 듣지만올리춰주는 말은 듣지 못한다.어떤 사람은 거짓말만 잘 듣지정말은 한마디도 듣지 않는다.어떤 사람은 욕만 잘 알아듣지칭찬은 한점도 알아 못 듣는다.어떤 사람은 헛소리는 잘 들리는데참말은 하나도 들리지 않는단다.어떤 사람은 녀자의 말은 잘 들리는데남자의 말은 한마디도 듣기 싫단다.어떤 사람은 남자의 말은 잘 듣는데녀자의 말은 전혀 듣지 못한다.어떤 사람은 부자의 말만 잘 듣지거지의 말은 좀처럼 들리지 않는단다.어떤 사람은 소리높은 말은 잘 들리는데낮은 소리로 하는 말들은 듣기도 싫단다.어떤 사람은 제집사람의 말은 듣지 않지만남의 말들은 모두가 그렇게 잘 들린단다.어떤 사람은 핸드폰의 말은 잘 들리지만마주 서서 하는 말은 아예 들리지 않는단다.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은 잘 듣지만부모님의 말씀은 한마디도 듣지 못한다.어떤 사람은 세월의 흐느낌소리는 잘 듣지만자신의 흐느낌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는단다.어떤 사람은 금전의 움직임 소리는 잘 듣지만자신이 땀흘리는 소리는 아예 듣지도 못한다.어떤 사람은 교활한 말은 잘 듣지만소박한 권고는 한마디도 못 듣는다.어떤 사람은 복무원의 말소리는 잘 듣지만마누라의 부탁같은것은 좀처럼 듣지 못한다.어떤 사람은 죽음의 소리는 잘 듣지만삶의 소리는 조금도 듣지 못한다.어떤 사람은 삶의 소리는 잘 듣지만죽음의 신음소리는 전혀 듣지 못한다.어떤 사람은 웃음소리는 잘 듣지만울음소리는 티끌만도 들리지 않는단다.어떤 사람은 울음소리는 잘 듣지만웃음소리는 까맣게 안 들린다나다.어떤 사람은 한국소리는 잘 알아듣지만중국소리는 한마디도 듣지 못한다.어떤 사람은 자신의 신음소리는 잘 듣지만민족의 신음소리는 조금도 들리지 않는단다.어떤 사람은 민족의 신음소리는 잘 듣지만자신의 신음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는단다.어떤 사람은 령도의 말소리는 잘 듣지만백성의 한숨소리는 아예 듣기도 싫단다.어떤 사람은 백성의 한숨소리는 잘 듣지만령도의 말소리는 가끔씩 들린단다.어떤 사람은 남을 욕하는 소리는 잘 듣지만남을 자랑하는 소리는 정말 안 들린단다.어떤 사람은 남을 자랑하는 말은 잘 듣지만남을 욕하는 말은 하나도 들리지 않는단다.어떤 사람은 미신의 말소리는 잘 듣지만과학의 웨침소리는 티끌만도 듣지 못한다.어떤 사람은 어떤 말은 잘 듣지만어떤 말들은 조금도 못 듣는다.이렇게 이렇게 사람이란영원히 고집을 붙잡고 죽는거다.                             
60    확실하게 주자 댓글:  조회:1310  추천:33  2011-02-21
확실하게 주라   매양 한시간의 수업을 마치고 조용히 되돌아보느라면 어쩐지 어딘가 많이 슴슴하고 어색하다는 생각을 가질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꼭 마치도 그 누구에게 큰 죄라도 진듯이 허전하고 안타깝기만하다. 여하튼 이상야릇한 그 심정은 뭐라고 말해도 시원치가 않을정도이다. 그래서 여러번이고 자신을 붙잡고 두루두루 반성의 이랑을 뒤집어보지만 시원한 답변의 저쪽은 그냥 흐리터분하기만 하였다.  타인의 부족점에 대하여서는 그처럼 밝은 눈동자가 되지만 왠지 자신의 문제점에 대한 반성에는 늘 소경의 막대질이나 다름이 없는지 참으로 리해가 안될때가 많기도 하다. 그래서 자신에 대한 옳바른 충고는 평생을 만든다고 했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우리는 리론에 대하여서는 그 누구 못지않게 입을 풀어놓을수 있지만 실천은 그냥 개운치가 않아서 걱정스럽다. 그러던 어느날 이상하게 다가서는 생각하나가 자신을 놀랍게 세워주었다. 그것이 바로 애들에게 늘 린색하였다는 느낌이였다. 애들에게 주기에 그처럼 두려움만 가득 담고 있었으니 날로 무거워지는 자신을 홀가분한 언덕으로 밀어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였다. 새로운 과정개혁의 세파속에서 우리들은 많이는 자신을 전변하느라 모지름을 써왔지만 아직도 어두운 일면은 마음의 어느 구석에 무섭게 쭈크리고 앉아서 낡아빠진 자신의 견해를 설음과 걱정이라는 매개물에 꿰매여 우리들의 실천에 큰 장애로 다가서고 있는것이였다. 늘 무거운 걱정으로 우리들의 마음을 짓누르면서 고집스레 몸부림을 치는 그 모습에는 자랑보다는 부끄러움이 어지럽게 매달려 있기도 하였다. 낡은것에 매달려 미련을 버리지 못하면 새로운것에 대한 발굴은 어려운 움직임이다. 한시간의 수업이 40분인데 그 시간을 혼자서 독차지하려는 교원도 참으로 우둔하기만 하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이 시간은 교원 한사람의 소유가 아님을 새로운 과정개혁이 이미 우리들에게 정답을 제시하고 있지만 그렇게 실천하는 사람들이 극히 적다는 말이다. 여하튼 혼자서 수업을 만들어가려는 교원은 시대에 어긋나는 교원일뿐만아니라 애들에게도 큰 손해로 다가서는 위험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줄것이면 확실하게 주는 그런 자세를 갖춤이 요즘 교원으로서의 급선무이자 시대의 호소이기도하다. 이제라도 확실하게 줘보는 그런 넓은 아량을 키우는 자세도 얼마나 바람직한지 모른다. 다시말하면 지식전수에서 오직 교원이 일일이 다 가르쳐야만 애들이 알고 지나간다는 어리석은 사유의 지팡이를 이젠 버리고 애들이 스스로도 해볼수 있도록 확실하게 시간과 공간을 주는 교원이라야 시대의 앞을 내달리는 현명한 교원이기도 한것이다. 이젠 40분이라는 수업시간을 교원 혼자서 좌우지하려는 얼뜰한 생각을 확실하게 버리고 어느 정도 합리하게 애들에게 나눠주려는 자세를 갖춰야 한다. 이를테면 한 십분은 전날에 배운 지식을 애들과 함께 공고히 하는 단계에 통크게 내주고 다음 10분정도는 애들 자체로 새로운 지식에 대한 탐구나 발굴에 너그럽게 내주어 애들 자체로 얼마든지 해결이 가능한 시공간을 주어야 하며 다음 10분은 사생의 호동속에서 존재하는 문제를 발견하고 깨끗이 해결하는데 쏟아놓고 다음 10분 정도는 배운 지식에 대한 응용에 투자한다면 그 가치가 교원 혼자서의 움직임보다 더 보람이 있을것이다. 그리고 교원의 존재란 전반의 지식을 가르치기 위한것이아니라 애들의 저절로 해결이 안되여 반드시 필요할때만 무조건 달려가는 그런 신성한 존재인것이다. 시엄마처럼 요기조기 다 간섭하려는 마음가짐을 버리고 좀은 너그럽고 통크고 대담한 존재로 다가서야만이 멋진 한시간의 수업으로 깊은 여운을 남길것이다.  한마디로 확실하게 애들에게 자체로 배울수있는 공간과 시간을 주자는 생각이다. 그리고 부질없는 걱정같은것은 봄눈이 녹듯이 녹여버리고 좀 대담하게 새로운것에 과감히 맞서는 그런 창신적인 자신을 만들어보자는 것이 자신의 간절한 소원이기도하다. 주라, 확실하게 주자! 여하튼 먼저 주고 보자는것이다. 준 다음에 어떤 문제가 생기냐는 또 다른 문제이니 우선은 먼저 시원하게 줘보자!
59    세배돈을 바르게 알고 쓰자 댓글:  조회:1586  추천:33  2011-02-13
      해마다 설날이 다가오면 우리들은 웃어른들로부터 세배돈을 받아쥐고 기뻐한다. 하지만 적지않은 어린이들은 그 세배돈의 의미를 잘 모르고 있고 그저 많이 주면 좋은걸로 생각하는데 이는 찬성할바가 못된다. 그럼 우선 세배돈이란 무엇인가를 바르게 아는것이 무엇보다 중요한것이다.    아주 오래전에는 근본 세배돈이란 없었습니다. “세배”라는것이 본래는 웃어른께 “올 한해동안 아무런 근심없이 평안하게 지내십시요.” 라는 의미에서 절을 드리는것이였고 이에 대해 웃어른들은 세배돈 대신 “덕담”을 해주시곤 했답니다. 세배돈은 사실 웃어른들께서 덕담과 함께 여러 과일이나 음식을 대접하던데로부터 유래된것입니다. 어른들께서 손자 손녀들에게 과일이나 음식대신 “용돈”으로 주시던것이 점차 세배돈으로 굳어진것입니다. 새해 첫날 세배돈을 주는 풍습은 중국에서 시작돼 점차 한국, 일본, 베트남 등으로 퍼져나간것입니다. 참고로 바른 세배법을 알려드리자면 어른들게 세배할때는 “건강하세요” 나 “만수무강하세요”등의 인사말을 드리는것은 옳바르지 않답니다. 이 말도 하나의 덕담이고 이 말은 반드시 웃어른들만이 손아래 사람들에게 해주는 인사례절이 였던것입니다.    이로보아 세배돈은 단순한 “용돈”의 의미가 아니라 보다 큰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것입니다. 요즘 적지않은 어린들은 자신이 가진 세배돈을 서로 비기길 좋아하는데 그건 잘못된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세배돈은 그 량보다는 주시는 분들의 의미가 더 큰것이랍니다. 그러니 우리들은 세배돈이 많고 적음을 이야기하기 전에 우리 전통에 맞는 바른 세배법을 익히고 세배돈을 얼마만큼 의미있는 일에 사용할것인가를 더 많이 생각하는 자세가 무엇보다 바람직한 노릇인것입니다.    웃어른들의 깨끗한 마음을 바르게 인식하고 그 마음에 담긴 보다 깊은 의미를 마음으로 깨치는 자세가 얼마나 바람직한 일인지 모릅니다. 받은 량이 많다고 아무렇게나 쓰지말고 꼭 필요한데만 보다 가치있게 쓰려는 그런 마음가짐을 가꾸는것이 또 한해의 멋진 시작이 아닐수 없습니다.    그리고 일부 가정들에서는 자식이 받은 세배돈을 부모들이 무작정 건사한다고 하는데 이것도 찬성할바는 안된다. 애들이 진정 웃어른들의 그런 깊은 성의를 깨치기에는 그래도 자기절로 계획을 세우고 세배돈을 쓰도록 인도하고 가르쳐주는것이 더 바람직한것이다.     신묘년에는 우리 어린이들이 모두가 하나같이 세배돈의 의미를 보다 정확히 파악하고 옳바른 마음가짐으로 웃어른들의 깨끗한 마음을 바르게 받아드리는 자세로 세배돈을 바르게 알고 쓰는 그런 장한 모습을 보고 싶다.                                 
58    스키가 나를 타다 댓글:  조회:934  추천:23  2011-02-01
스키가 나를 타다     얼마전 동료선생님들과 함께 스키장으로 놀러 갈 절호의 기회를 갖게 되였다. 텔레비에서는 많이 보아왔지만 실천은 생전에 처음이다보니 부푸는 마음을 달랠수 없었다. 어린애처럼 전날저녁에 잠을 설치기까지 하였다. 마누라는 모자를 사온다, 장갑을 사온다하면서 수다를 떨었다. 마누라의 정성으로 제법 스키선수를 방불케하는 그런 모습으로 뻐스에 몸을 실었다.  달리는 뻐스에서 나는 남이 모르게 슬그머니 예전에 보아왔던 스키선수들의 동작을 떠올리면서 모방해보기도 하였다. 몸과 마음은 언녕 스키장에서 날고 있었다. 얼마안되여 뻐스가 스키장에 도착하였다. 시원하게 확 트인 스키장을 보느라니 한학기동안 몰래 쌓였던 스트레스가 하나 둘 자리를 비우면서 풀려나갔다. 호기심과 들뜬 마음을 붙안고 준비실로 들어가니 어느새 사람들이 퍼그나 모여있었다. 우리들은 시키는대로 먼저 신발을 바꿔 신고 다음에 스키를 받아가지고 스키장으로 들어갔다. 안전문제를 고려해서인지 교련원이 먼저 스키를 타는 간단한 요령과 함께 급한 상황에서 탈신하는 상식들을 하나하나 열심히 가르쳐주었다. 슬그머니 동료선생님들의 모습을 훔쳐보느라니 거개가 나같은 햇내기인것같았다. 인테리의 얄팍한 허영이랄가? 마음속에서는 그래도 얄팍한 자존이 꿈틀거리며 나의 등을 밀어주는것같기도 하였다. 먼저 나는 별로 높지 않은 낮은 언덕에서 간단한 연습을 마치고 제법 선수처럼 삭도를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막대기모양으로 만들어진 간단한 삭도는 두 다리사이에 걸고 올라가는데 자신이 예견한 목적지에 도착하면 슬쩍 뽑아서 놓으면 되는 그런 설비였다. 하지만 처음이다보니 어딘가 두려움이 몰려오면서 두다리가 별스레 말을 잘 들어주질 않았다. 그래도 모르쇠를 놓고 그냥 올랐다. 바로 내 앞에  체육선생님이 아주 숙련된 자세로 흥분된 모습을 보이면서 오르고 있었다. 이상하게 꼭 가다잡은 다리가 말을 들어줄것같지 않았다. 그리고 그 삭도에서 내리는 방법을 한번도 실천해보지 못하다보니 그냥 따라 오르기로 작심하고 용기를 몰아왔다. 하지만 두려움은 어느새 내 몸을 어렵게 만들고 있었다. 두눈을 똑바로 뜨고 그 선생님이 하는 동작을 눈여겨 보았다. 아주 간단한 동작으로 삭도에서 내리는것이였다. 모방력이 강한 나도 별 어려움이 없이 삭도에서 몸을 내렸다. 하지만 뒤에서 본 사람은 아마도 나의 두려움으로 흔들거리는 모습을 보고서 속으로 웃었을것이다. 먼저 금방전에 교련원의 가르침대로 몸을 바로 세우고 아래를 내려다보니 자신이 없었다. 그러면서 자신을 질책비슷하게 꾸짖기도 하였다. 이때 체육선생님이 간단한 화양까지 하면서 내려가는것이 였다. 나는 크게 마음을 먹고 아래로 살짝 밀어붙이니 스키가 무섭게 밀려나가는것이였다. 아무리생각해도 자신이 없던지라 나는 모든것을 포기하고 넘어지기로 작심하였다. 다행히도 금방 시작이다보니 다친데도 없이 두려움에서 자신을 구해냈다. 스키를 몸에서 리탈시키고 그자리에 앉아서 한참 쉬였다. 실천도 좋지만 감상도 꽤나 별미이기도 하였다. 아무리 자신에게 용기를 부여하고 신심을 심어주었지만 별로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얄팍한 자존을 버리고 아예 스키를 메고 걸어서 내려오기로 비장한 결심을 내렸다. 별생각없이 걸어내려오는데 동료녀선생님께서 그 무슨 큰 발견이나 한듯이 웃음보를 터뜨리면서 물어왔다.   <<리선생님은 왜서 스키를 타지 않고 메고 내려오십니까? 어머…>> 나는 별생각없이 그저 웃고 말았다. 아마 그 동료선생님은 그날 스키를 타고 내려가면서도 금방전에 나의 모습을 생각하느라니 웃음이 저절로 쏟아져나왔을것이다. 그래도 웃음을 선물했다는 자체만으로도 나는 흡족하였다.   나의 기억에서 그 일은 거의 희미해지고 있는데 가끔 동료선생님들은 술상에 앉아서 나를 보면 인물이라면서 폭소를 터뜨린다.  <<리선생님은 스키를 타는것이 아니라 스키가 리선생님을 타고 내려온다이. 하하…>> 또 하나의 폭소가 술상의 기분을 고조로 끌어간다. 그래도 나는 기쁘기만하다.     그날 우리들은 아무런 사고도 없이 무사히 즐거운 추억을 목단강의 어느 산골짜기에 깊이 남겨두었다. 스키를 메고 내려온 나의 아름다운 이야기도 그냥 한점의 추억으로 남아있을것이다. 우리는 자신이 없을 때엔 과감히 버릴줄아는 지혜도 갖춰야 한다. 자존을 버리는 자세에도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한지 모른다. 그 얄팍한 허영으로 만약 그날 내가 고집스레 자신을 속이면서 내려온다해도 가차없이 안전사고 발생할건 더 말할나위도 없는것이다. 그러느라면 즐거운 추억에 먹칠이 되기도 할것이다. 다행히도 그 순간에 명석한 자신을 만들었다는것만으로도 나는 자신을 더욱 사랑하게 된다. 가끔 살다보면 우리는 얄팍한 자존으로 서로가 다치고 상하고 재미가 없게 될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그리고 자존도 세워야 할때 세워야 그 가치가 빛나는것이 아닐가? 부질없는 순간에 자존을 세우다보면 후회의 바줄을 당겨오기가 일쑤이다. 때문에 얄팍한 허영에 우리는 넘 자신을 매둘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꼭 필요할때만 바르게 세워두면서 살아가는 인생길에 보다 작은 아픔이나 상처를 만들어가는것도 요즘세월에 급선무가 아닐수 없다. 자신이 없을 땐 자존을 과감히 버리것도 삶의 지혜인것만큼 우리는 수시로 유머가 농후한 아름다운 삶의 현장을 열심히 가꿔가는 그 자세가 바로 또 하나의 삶의 재주가 아닐가?  아름다운 인연은 곱게 되돌려보내는 그 모습엔 그냥 자랑만 그득하다.                                          
57    문학의 자세와 삶의 자세의 동일성에 대하여 댓글:  조회:1234  추천:28  2011-01-24
      요즘 젊은 문인들이 문단에 서슴없이 등단하여 나름대로의 생각을 피력하는 모습들을 어렵잖게 볼수 있어서 자못 흥분을 자아내게 된다. 관건은 신성한 문학의 활무대에 자신을 세운다는 그 자세가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옛날에는 문학을 하는 사람이라면 뭇사람들이 하늘처럼 존경하고 우러러보는 존재였으며 한수의 시로도 얼마든지 처녀들의 가슴을 장밤 설레이게 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그처럼 청빈한 사람일지라도 얼마든지 장가를 들수 있는 값진 재산이기도 하였다. 한마디로 말하면 무릇 문학을 하는 사람이라면 전반사회의 존경과 믿음을 한몸에 지니고 어데 가든 높이 받들리는 존재로 다가서군 하였다. 이러다보니 문학을 대하는 그 자세가 자못 엄숙하고 자신에 대한 수련이 더없이 필요하군 하였다. 이러는 과정에 자신의 인격에 대한 요구나 사회에 향한 영향력에 자못 신경을 쓰군하였다. 하지만 요즘에 들어서서 그처럼 신성하던 문학의 자세에 그릇된 경향들이 여기저기에서 머리를 쳐들면서 어지러운 흔적들을 남기는 모습들을 어렵잖게 볼수 있어서 얼마나 가슴이 아픈지 모른다. 우선은 문학에 대한 자세에 좀벌레가 끼기시작한것이다. 별로 요란스러운 글을 쓴것도 아닌데 그저 흥분에 들떠서 자신을 잊고 주제넘는 행동을 널어놓는 모습들을 어렵잖게 볼수 있는것이다. 그래도 문인이라면 어느 정도 무게를 지녀야 할텐데 그렇지가 못하고 가볍게 행동하고 거만하에 움직이는 그 자세에 뭔가 이상스럽다는 말이다. 우리는 반드시 문학을 대하는 그 자세를 옳바르게 세워야 한다. 한 개인의 어지러운 소행으로 전반 사회 문인들의 깨끗한 형상에 어지러움을 더해서는 절대 허용하지 못한다. 그런대로 문학의 자세는 감출수 있다고 할지라도 그런 자세에서 만들어낸 문학작품을 읽어본다면 정말 의아해질때가 한두번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왜냐하면 그런 작품을 만들어낸 사람의 문학에 대한 자세와 삶의 자세가 어쩌면 그렇게도 판이할가 하는 의문들이 마음에 서글픔을 몰아올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정말 놀랍기도 하다는 생각이다. 글이란 곧 그 사람의 심경에서 울려나오는 깨끗한 메아리로 알고 있는데 그것이 너무 용납이 안되니 말이다. 문학이란 다름이 아니라 자그마한 글속에서 보다 큰 삶의 자세를 깨치고 더 바르게 살도록 다가서는 믿음직한 존재이다. 그리고 문학은 머리로 깨치기보다는 마음으로 깨치고 자신의 바른 삶의 자세로 깨칠때라야 그것이 진정 값진 문학으로 다가서는것이 아닐가?    하지만 일부 글깨나 쓴다는 사람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문학에 대한 자세와 삶의 자세가 너무 일치하지 못해서 걱정스럽다. 문학은 얄팍한 허영심에 의해 만들어지는것이 아니다. 더우기 문학은 자신을 내세우기 위해서 하는 그런 헐망한 노릇이 아니다는 말이다. 글쎄 세상을 놀래우는 그런 명작을 만들었다손 치더라도 항상 문인은 어데가든 겸손하고 조용한 존재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진정한 문인은 말이 적고 행동이 멋진것이다. 항상 자신을 바르게 알고 타인을 명확이 알고 세상을 보는 눈이 그 누구보다 밝은것이다. 우리는 문학을 대하는 자세나 자신의 삶을 대하는 자세를 반드시 동일화 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절대로 전반사회가 인정하는 그런 문학인으로 다가서기엔 아직도 거리가 먼줄로 알고 좀은 겸손하고 듬직한 인격을 먼저 갖추기에 최선을 다하는 그 자세가 바로 문학인으로 다가서는 지름길이기도 한것이 아닐가?    일단 문학의 자세와 삶의 동일성이 일치할때라야 독자들도 찬탄을 하면서 더 가까운 마음으로 글을 읽어주고 감동을 받을것인데 사람과 글이 완판 다르게 나설때 그것은 문학이 아니라 일종의 무서운 허영이고 더 나가아가서 문학에 대한 배반이기도 한것이다.    이제 우리는 문학을 바르게 알고 자신을 바르게 알고 보다 인격에 맞는 문학인으로 다가섬이 무엇보다 중요한 노릇이 아닐수 없다. 일단 독자들이 글을 읽고 공감이 설때라야 우리는 흡족하게 된다. 하지만 독자들이 나의 글을 읽고 어딘가 이상하게 여길때 그건 문학으로 타인을 우롱하는 헐망한 노릇으로밖에 될수 없다.    문학을 대하는 그 자세와 자신의 삶에 대한 그 자세가 반드시 동일화되여 보다 좋은 작품을 창작하기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자신의 겸손한 소행이 바로 한편의 보다 훌륭한 작품으로 다가서기도 하는것이다. 그러니 이젠 속에 없는 그런 허무한 말은 될수록이면 적게 하고 많이는 자신의 인격에 맞는 마음속으로부터 울려오는 그런 글을 쓰는것이 자신에게도 편하고 타인에게도 편한 존재가 아닐가?     문학의 자세와 삶의 자세는 반드시 동일화되여야 한다. 그래야만 진정한 문학인으로 다가설 자격을 가지게 되는것이다.
56    허물 댓글:  조회:1502  추천:22  2011-01-13
            허물      꽁꽁 얼어붙은 옷들을 한견지 한견지 조심스레 뜯고 있는데 전화소리가 들려왔다. 영숙이는 하던 일을 그만두고 인츰 전화기쪽을로 뛰다싶이 다가갔다. 찍혀진 번호를 보니 분명 국제전화였다. 영숙이는 한참 망설이다가 조심스레 전화기를 들었다.    <<여보, 뭐하는데 이제야 전화를 받소. 숨이 짜른 놈은 죽겠네. 허-허—그쪽은 이젠 제법 춥겠는데 옷이랑 많이 껴입소. 그래 어디 아픈데는 없소?>> 영숙이는 아무 말도 없이 그저 묵묵히 흘러오는 남편의 말을 듣기만 하였다.  << 왜서 또 울고있지않소? 내가 오늘 비행기표를 예약했으니깐 아마 이틀후이면 집으로 돌아갈거요. 당신이 뭐 필요한 물품들이 없는지 해서 이렇게 전화를 하오.>>   영숙이는 그저 눈물만 흘릴뿐 아무말도 없었다.   <<여보, 지금 내말을 듣고 있소? 어째서 말을 안하오. 필요한 물품들이 있으면 체면차리지 말고 어서 말하오. 요구대로 다 사다 드리지.>>    영숙이는 눈물을 닦으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싫어요. 아무것도 사지말고 당신만 어서 빨리 집으로 돌아오세요. 그럼 끊어요.>>  영숙이는 조용히 전화기를 놓았다.   가슴을 쥐여뜯는듯한 아픔에 영숙이는 얼굴을 싸쥐고 구슬피 울고 또 울었다. 아무리 자신을 깨끗한 반성의 울타리로 사정없이 몰아넣어도 좀처럼 자신을 받아주지 않았다. 영숙이는 실성한 사람처럼 여기저기를 두리번 두리번 살피기 시작하였다. 주방의 쟁기들을 넣은 식장 서럽도 열어보았고 가스가 놓여진 상자문도 열어보았다. 그리고는 땅바닥에 퍼더버리고 주저앉아서 초점없이 천정만 바라보았다. 한참후 영숙이는 더운 물을 떠서 머리를 감고 몸도 수건으로 깨끗이 닦았다.  그리고는 남편이 한국에서 보내준 고급 화장품을 꺼내놓고 고운 얼굴을 열심히 다듬고 있었다. 쏟아지는 일광등으로 거울에 비낀 영숙이의 모습은 실로 천하일색이라도 과언이 아니였다. 곱게 빗어넘긴 파도형 머리카락에서는 윤기가 흘러내렸다. 그러다가 영숙이의 눈길이 벽에 걸린 고급 털옷에 가 닿았다. 순간 얼굴이 별스럽게 일그러지더니 땅이 꺼지게 한숨을 쉬였다. 그리고는 벽에 걸린 털옷을 멀쩡하게 바라보다가 눈내리는 창밖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어느새 뜨거운 눈물이 영숙이의 부연 얼굴을 잡아 타고 아래로 방향없이 미끄러 떨어진다. 전에는 그렇게 윤기나던 털옷도 이젠 말짱 보기 싫을 정도이다. 뿌옇게 먼지가 들어붙은 털옷은 주인을 잘못 만난듯이 축 드리운채 벽에 보기 흉하게 걸려있다. 영숙이는 후닥닥 일어서더니 비자루를 쥐고 사정없이 털옷의 먼지를 털고 또 턴다. 한때는 영숙이의 마음을 한껏 사로잡았던 털옷이 였건만 오늘은 영숙이의 사정없는 비자루에 얻어 맞는다. 아마도 아무리 고급스러운 물건이라도 사람의 마음의 움직임에 따라 그 가치가 떨어지는 모양이다. 남들은 입지 못해서 침을 겔겔 흘릴 정도이건만 영숙이는 당장이라도 그놈을 없애 치우지 못하는것이 미칠것만 같은 심정이였다. 영숙이게도 한때는 황홀한 삶의 풍경이 있었던것이다. 원래 인물 체격이 일색이여서 어데 나서도 빠지는데가 없이 미인의 취급에는 티끌만한 흠집도 없다. 길가던 남자들은 백에 구십은 아마 영숙이의 뒤모습이라도 한번쯤은 돌아볼 정도이니 더 말할 필요가 없이 고급스러운  털옷도 영숙이로 말하면 천생배필이라도 과언이 아니다.  고운 옷이란 원래 미녀들을 위해 생겨나는 법이니 말이다. 영숙이는 천천히 일어서더니 밖으로가나 짚단을 한 아름 안고 들어왔다. 이글이글한 불길을 초점없이 바라보던 영숙이는 후----하고 길게 한숨을 쉬고는 전기 밥가마에 남은 밥에 물을 넣어서 죽을 썼다. 그리고는 점심에 먹다남은 만두를 죽속에 넣고 함께 끓였다.  저녁은 이것으로 에끼울 예산이였다. 어느새 흰김이 집안을 꽉 채우면서 찬기운을 몰아내고 있었다. 영숙이는 대충 저녁을 에때우고는 따스한 가마목에 팔베개를하고 누웠다. 조용히 눈을 감고 잠을 불러오고싶었지만 잠은 좀처럼 영숙이에게로 다가설념을 안했다. 한참후 영숙이는 문을 꽁꽁 잠그고 다시 그자리에 옹그리고 누웠다. 남편생각에 아들생각에 어느새 눈물이 소리없이 입술을 적시며 흘러내렸다. 그것은 오직 눈물이 아니라 피눈물이였다. 영숙이는 천천히 몸을 돌려누우면서 하얗게 쏟아지는 일광들을 초점없이 바라보았다. <<따르릉---따르릉-à> 갑자기 요란스레 울리는 전화소리에 영숙이는 화닥닥 놀라더니 반응좋게 전화기 쪽으로 뛰여갔다. <<어머니, 내 입니다. 뭐 합니까? 저녁식사를 하셨습니까? >> 아들의 전화소리에 영숙이는 눈물만 흘릴뿐 아무런 말도 없었다. 그러자 그쪽에서 급한 말소리가 들려왔다. <<어머니, 무슨 일이 있습니까? 빨리 말하시오. 예! >> 영숙이는 인차 흐느낌을 참으면서 <<오, 아니다. 엄마가 네가 보고파서 그런거지. 아무일도 없다. 그래 너는 어디 아픈데는 없니? 항상 몸건강에 좀심하거라. 알겠니?>> <<예! 어머니두 몸건강에 주의 하시오. 그리구 아프면 약이랑 사 먹으시오. 예.>> 외할머니 집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아들의 전화를 받고나니 서러움도 어딘가 좀 사그라지는듯한 느낌이였다. 영숙이는 어둠이 깔린 창밖을 바라보며 하염없는 생각에 잠겼다. 눈은 아직도 내리고 있었다. 내려서는 쌓이고 또 쌓인다. 꼭 마치도 자신의 생각을 쌓는것같은 감수였다. 어느덧 남편의 생각이 눈물을 타고 주르르 흘러내린다.     하루라도 헤여지면 못살것 같던 남편이 한국으로 간지도 어언 3년 철을 잡는다. 이제 이틀후이면 남편이 한국에서 돌아오게 된다. 어쩐지 영숙이는 기쁨보다도 두려움이 가슴을 메우면서 자신을 사정없이 어두운 구석으로 몰아넣었다.  영숙이는 일기책을 펼쳐들고 천천히 써내려가고 있었다. 실상 영숙이에게도 남부럽지않은 행복한 나날들이 깨알처럼 쏟아지던 아름다운 추억들도 적지않았다. 이제 보면 아마도 그것은 3년전의 일로 거슬러야 하겠다. 그날도 남편은 밖에 나가 친구들과 술을 거나하게 마시고 집으로 돌아왔다. 비칠거리면서 그래도 집을 찾아온 남편이 고맙기까지 하였다. 영숙이는 꿀물을 타준다. 우유를 푼다 하면서 바빠 돌아쳤다. 안해의 알뜰한 도움아래 남편의 속은 많이 편해졌다. 금방 잠자리에 누우려는데 남편이 영숙이를 불러 앉히며 입을 열었다. <<여보, 아무래도 내가 한국으로 가야겠소. 그래야 우리도 남들처럼 부럽잖게 잘 살수 있는거 아닌겠소.? 가자니 당신이 근심스럽고 안가자니 앞으로 살아갈 일들이 걱정스럽고. 참으로 속이 탄다는 말이오.>> 말없이 남편의 말을 듣고 있던 영숙이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난 싫어요. 나는 돈 보다 당신이 더 필요해요. 나는 아무것도 싫어요. 그저 당신과 함께 살아가는것이 저의 최고의 행복이라구요. 안돼요. 난 절대 당신을 한국에 보내지 않겠어요.>>  하며 견결히 남편의 의사에 흰기를 들고 일어섰다. <<허허, 글쎄 나도 당신과 함께 살면 좋은줄 아오. 누가 그렇게 고생스레 한국에서 일하는것을 좋아하겠소. 하지만 앞으로 아들의 공부랑을 생각해보면 아무래도 가서 돈을 좀 벌어야 하지 않겠소.>>  남편의 말에 도리가 없는것이 아니다. 하지만 영숙이도 남들의 입에서 들은 말들도 적지 않고 보니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던것이다. 실상 영숙이도 남편이 돈을 벌어오면 집에서 편하게 사는것을 싫어하는것이 아니다. 하지만 눈앞의 많은 일들을 눈여겨보느라면 생각처럼 그렇게 아름다운것이 아님을 영숙이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글쎄 나도 동무가 한국에 가서 돈을 많이 벌어오면 좋은건 물론이지요. 하지만 당신의 몸도 좋은 편이 아닌데 어떻게 가서 고생을 하겠습니까? 그러다가 앓기라도 하면 어쩔라구 그래요.>>   영숙이는 진정 남편을 시름이 안놓여서 그런것이 아니라 남편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였다. 하지만 남편도 그냥 집에 멀쩡하게 허송세월을 보내자니 어딘가 미안함도 컸던것이다. 그날밤 영숙이네는 남편을 한국으로 보내기로 합의를 보았다. 정작 결정을 내리고 보니 이상한 느낌이였다. 당장 남편을 잃는것같은 슬픔에 장밤 영숙이는 잠을 못이루고 새벽이 되여서야 눈을 붙이게 되였다. 달게 자고있는 안해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남편은 살며시 일어나서 밥을 짓고 채를 볶았다. 그런것도 모르고 영숙이는 아침 8시까지 평생 처음으로 잠같은 잠을 자보았다. 남편이 벌써 밥상을 차려놓고 자신을 기다리는 모습을 보느라니 고마움보다 설음이 울컥 솟아났다. 아침을 치르고 남편은 한국수속을 하려고 신분증이랑 호구책이랑 들고 려행사를 찾아갔다. 하지만 영숙이는 기쁨보다 슬픔이 가슴을 메우며 마음에 고랑을 만들었다. 그날부터 영숙이는 모든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저 늘 어수선한 마음이 였다. 마침 려행사에 좋은 자리가 있어서 남편의 수속은 남들처럼 애를 먹이지 않고 순리롭게 풀려 나갔다. 려행사측에서는 별다른 일이 없으면 아마 한 열흘정도면 한국으로 나갈수 있다고 하였다. 하지만 수속료가 남들보다 5천원을 더 내야 한다고 하였다. 영숙이는 남편 정구는 여하튼 하루라도 빨리 한국에 나가 돈을 벌고 돌아오고 싶은 생각에 스스로 동의 하였다. 려행사측에서도 아주 통쾌한 정구의 태도에 천원을 적게 받겠다고 고마움까지 베풀어 주었다. 정구는 연신 고맙다는 말을 하고는 집으로 돌아왔다. 열흘후이면 한국으로 갈수 있다는 생각에 정구는 당장이라도 집으로 날아가고 싶은 생각이였다. 얼굴에는 흡족한 미소가 떠날줄 몰랐고 흥얼흥얼 코노래까지 부르며 집에 들어서는 남편을 기다리던 영숙이는 일의 자초지종을 듣고 나서 한편으로는 기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슬프기도 하여 마음이 엉망이였다. 아예 처음부터 가지 못한다고 말리지 못한 자신이 어딘가 후회되는것도 있었다. 하지만 일이 이처럼 순리롭게 풀려나가고 있으니 영숙이도 사실 기쁜것도 있었다. 그뒤 며칠동안은 한국갈 준비에 바삐 돌아쳤다. 이제 비자만 나오면 려권을 쥐고 떠나면 되였다. 그러던 어느날 아침 정구는 일찍 일어났다. 안해가 일어나려니 정구는 일어나지 못하게 하였다. <<여보, 이제 며칠이면 내가 한국으로 가겠는데 요며칠은 내가 화식을 도맡아 하지.당신은 푹 자라구. 내가 간다음 혼자서 고생도 많겠는데 …>>  영숙이는 남편의 품을 파고 들면서 애처럼 흐느끼기 까지 하였다. 실상 정구도 이렇게 고운 안해를 두고 한국으로 간다는것이 말은 없어도 심정은 말이 아니였다. 근심도 태산같이 요지음 정구의 마음을 억누르고 있었다. 하지만 슬퍼하는 안해에게 해가 될가싶어 말못하고 꾹 참고 있었다.  <<좀 더 쉬오. 내가 밥을 다 지은다음 당신을 깨울게.>>  정구는 불을 지피고 밥을 짓고 채를 볶기에 한참은 바삐 돌아쳤다.   남편의 알뜰한 밥상에 마주 앉은 영숙이는 눈물이 자꾸 앞을 가리워서 참을수가 없었다. 왜서인지 남편이 잘해줄수록 슬픔은 점점 커만갔다.  <<그리구 내가 한국에 가서 제일 먼저 돈을 보내면 그돈으로 다른건 몰라도 꼭 값진 털옷 한벌을 사입소. 당신이 그런 옷을 입으면 아마도 우리 마을에서는 최고일거야. 텔레비전에 나오는 연예인들도 왔다가 울고 갈거야. 안그렇소?>>  언젠가 웃마을에 사는 철구의 마누라가 입은 털옷이 참 좋더라고 한마디 하였는데 남편은 아직도 그걸 마음에 걸어두고 있었던것이다. <<싫어요. 내가 무슨 그런 옷을 입을 신세가 돼요? >>  <<아니지, 내가 당신에게 꼭 사주고 싶다니깐. 만약 당신이 여기서 사입지 않으면 내가 그곳에서 사보낼게. 그런데 그곳에는 옷이 엄청나게 비싸다던데.>>  <<알았어요. 그럼 내가 사입으면 안돼요. 그런데 내가 그옷을 입고 너무 멋지면 다른 남자들이 나한테 접어들면 어쩔라구요, 호호호…>> 그 며칠은 그들의 생활은 꼭 마치 신혼생활보다도 더 달콤한 느낌이였다. 서로가 아끼고 사랑하면서 시간들을 금싸락같이 여기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아침이였다. 금방 정구가 밥상을 차리려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정구는 쏜살같이 달려갈 전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여기는 려행사 입니다. 안녕하십니까? 박정구씨 맞지요? 비자가 나왔으니 인차 려행사로 오세요. 축하합니다.>>  그렇게 기다리던 전화였건만 정작 일이 그렇게 되고 보니 정구의 심정은 이상야릇하였다. 옆에서 소리없이 지켜보던 영숙이가 어딘가 놀라움이 섞인 어조로 물었다. <<아니? 왜서 일이 안된다구 했어요? 아예 잘됐어요. 그러지 않아도 당신이 간다니 요즘은 잠도 안온다구요.>>   정구는 물끄러미 마누라를 바라보며 품속에 꼬옥 껴안았다. 둘은 말없이 한참 동안 서있었다.  <<여보, 이제 전화가 왔는데 비자가 나왔다오. 그러니 와서 려권을 가져가라오. 정작 가게되니 나도 어쩐지 생각보다 많이 이상하구만. >> 정구는 영숙이를 더 으스러지게 껴안았다. 아침을 먹고 영숙이는 남편의 준비에 서둘렀고 정구는 려행사로 갔다. 어쩐지 발걸음이 그렇게 가볍지가 않았다. 그토록 가고 싶던 곳이 였건만 정작 가게되니 심정은 참을로 이상하게 변하였다. 차에서 이생각 저생각을 하는 사이에 차가 어느덧 려행사에 도착했다. 금방 문을 떼고 들어서는데 려행사의 경리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아저씨, 정말 일이 잘 풀립니다. 여직 수속을 많이 해봤지만 아저씨처럼 일이 잘 풀리는 사람을 못보았어요. 그리고 비행기표랑을 예약을 해놓았습니까? 마침 래일 떠나는 비행기표가 남은것이 한장 있다고 금방 공항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필요하면 제가 전화를 해서 남겨놓으라고 할가요?>> <<예, 고맙습니다. 그렇게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래일 몇시 인가요?.>> <<아마 오후 5시 비행기 일거예요. 그리고 그쪽에 친척들도 있겠지요? 없으면 제가 련계해서 마중을 나오라고 해드릴가요?>>  <<아니 그런 괜찮습니다. 전화를 하면 친척들이 나올것입니다. 그럼 이렇게 결정을 하고 돈은 제가 한국에 도착한다음 드리는걸로 합시다.>>   정구는 려권을 받아쥐고 고맙다는 인사말을 남기도 급히 집을로 돌아섰다. 이제 래일이면 한국으로 떠나야 한다는 생각이 오만가지 생각을 물고 마음의 골짜기를 꽈악 메우면서 다가섰다.  마누라는 한창 옷견지와 약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여보, 래일 비행기표를 예약해놓았소. 마침 비행기표가 한장 남았기에…>>  정구는 끝말을 맺지 못하고 영숙이는 쳐다보았다. 영숙이도 말없이 그저 남편을 물끄러미 바라만 보았다.   이제 하루밤반 지나면 남편이 한국으로 간다는 생각이 영숙이에게 모질게 큰 설음을 몰아왔다. 영숙이는 남편의 품을 꼬옥 파고 들었다. 눈물은 줄끊어진 구슬처럼 사방으로 흘러내렸다. 밝은 달빛에 정구에 눈가에 맺힌 이슬은 유난히도 빛났다. 남편을 보내는 아픔도 크련만 사랑하는 마누라를 혼자 두고 떠나는 정구의 마음도 말이 아니였다. 자꾸만 흘러내리는 눈물을 조용히 삼키면서 정구는 참고 참았다. 잠을 못이루고 이리뒤척 저리뒤척 하던 영숙이가 남편쪽을 바라보았다. 남편의 어깨가 가볍게 흔들리고 있는것이 기여든 달빛에 환히 보이였다.  그날밤 그들은 새벽두시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몇년동안 참아야 할 욕구를 하루밤새에 쏟아내려고 무진 애를 쓰다보니 날이 희붐이 밝아왔건만 둘은 그냥 꿈속에서 깨여나지 못했다. <<따르릉---따르릉-à> 전화소리에 벌떡 일어나보니 날은 퍼그나 밝아왔었다. <<야, 정구야 네가 오늘 한국으로 떠난다면서. 너도 너무하다야, 장밤 맥을 빼다보니 이제 일어난 모양이구나. 인차 일어나서 우리집으로 오너라. 우리 마누라가 네가 간다는 소리를 듣고 아침상을 차려준대. 굿말 말고 어서 빨리 오너라. 마누라도 데리고 같이 오라.>> 어려서부터 불알친구로 지내온 용길이였다. 정구는 마누라와 함께 용길이네 집으로 갔다. 친구들 몇몇이 눈을 비비며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하도 길을 떠나야 하기에 정구는 어느 정도 술을 마시고는 집으로 돌아와서 준비를 하였다.  수많은 근심들이 정구의 머리속을 꽈악 채우면서 주마등같이 일어섰다. 평소에는 생각도 못했던 근심들이 어데 숨었다가 나오는지 참으로 이상할 정도였다. 그가운데서도 남편없이 불쌍하게 살아갈 안해가 너무도 근심스러웠다. 젊은 나이에 혼자서 밤을 외롭게 지낸다는것이 너무도 가슴에 맞혀왔다. 정구는 말없이 가마목에 팔베개를 하고 누웠다. 어느새 뜨거운 눈물이 두볼을 적시며 조요히 흘러내렸다. 실상 정구도 안해곁을 떠나기가 싫었다. 결혼해서 여직 고생밖에 모르면서 살아온 안해에게 미안함은 커만갔다. 호랑이같은 시어머니를 만나 언제 한번 시름놓고 멋대로 살아온적도 없는 안해였다. 항상 시어머니앞에서 조심스레 살아가는 안해를 말없이 지켜보는 정구는 속으로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 이제 다소 마음놓고 살아보자하니 당금 남편이 한국으로 덜렁 떠나게 되였으니 영숙이의 신세도 참으로 고달프기도 하였다. 정구는 언제부터 꼭 안해에게 모든것을 갚아 주려고 굳게 마음을 먹고 있었다. 다른 집 녀자들이 남편이 한국에서 보내온 옷견지들을 들고 와서 수다를 떨대면 안해는 그저 말없이 들어주기만 하였다. 실상 그 모습을 지켜보는 정구는 언녕 속으로 피눈물을 쏟았다. 그래도 언제 한번 남편하고 주제넘는 요구를 한번도 비치지 않고 늘 남편에게 공대를 하는 안해에게 미안함은 점점 커만 갔던것이다. 이번에 이제 정구가 한국에 나가 돈을 벌면 안해도 남들부럽지 않게 살아갈것이라고 생각하니 슬픔도 다소 가라앉는것같았다. 영숙이도 옆에 누워서 아무 말도 없이 눈물을 삼키고 있었다. 하지만 좋은 길로 떠나는 남편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를 썼건만 어찌 속일수 있으랴! 정구는 흐느끼는 안해를 껴안았다. 영숙이는 끝내 참지 못하고 어린애처럼 슬프게 울었다. 이제 곧 남편이 머나먼 타국으로 떠난다고 생각하니 당장 죽을것만 같은 생각에 영숙이는 슬프게 울고 또 울었다...  공항에는 영숙이처럼 남편을 배웅하러 온 사람들이 많았다. 실로 그 광경은 눈물의 마당이 였다. 젊은이. 늙은이들까지 모두 서로 부여잡고 리별의 눈물을 휘뿌리는 그 장면은 눈물이 아니고서는 볼수가 없었다. 영숙이도 억지로 길떠나는 남편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모질게 마음을 먹었다. 억지로 미소를 띄우면서 남편을 안위하는 영숙이의 마음속에서는 언녕 소나기가 내리고 있었다. 그 심정은 정구도 마찬가지 였다. 멀리 사라져가는 남편의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던 영숙이는 실성한 사람처럼 눈물을 쏟으며 밖으로 뛰여나갔다. 저 멀리로 날아가는 비행기를 한점으로 사라질때까지 영숙이는 굳어진듯이 서있었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듯한 심정이였다. 날이 저물어서야 집으로 돌아온 영숙이는 가마목에 쪼그리고 누웠다. 가볍게 흔들리는 영숙이의 어깨는 그칠념을 몰랐다.  화창한 봄날이 만물을 간지럽히며 찾아왔다. 겨우내 스려졌던 생멸명들이 봄기운에 다시 약동한다. 삼라만상은 다시금 힘찬 세상을 열어간다. 남편이 한국으로 간지도 어언 1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주일마다 꼭 꼭 날아오는 남편의 전화를 받을적마다 영숙이는 이젠 슬픔보다는 기쁨도 가끔은 찾아 들군 하였다. 오늘도 주일인지라 영숙이는 일찌기 저녁을 먹고 전화기옆에서 남편의 말소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따르릉---따르릉--->>   기다렸다는듯이 영숙이는 전화를 받으면서 <<여보세요, 정구씨 전데요.>> 하고 아양을 떨었다. <<허허, 이젠 제법 한국아가씨의 맛이 나는구만. 그 말씨가 참으로 듣기 좋구만. 그래 어디 아픈데는 없소. 아프면 인차인차 병원으로 가보오. 그리구 전번에 내가 보낸 돈으로 입고 싶어하던 털옷을 사입었소?>>  <<아니요, 이제는 욕심이 안나요. 이제 당신이 오면 함께가서 더 멋진 옷을 사입을 예산인데요. >>   <<아니 그러지 말고 래일 당장 가서 사입소. 아마 한 만원정도면 좋은걸 사입을수있겠는데. 그돈은 당신더러 그 옷을 사입으라고 보낸거니 다른 생각말고 꼭 사입소. 그리고 컴퓨터도 당금 인터넷에 가입하오. 그래야 내가 당신의 얼굴도 볼수 있는거아니요. 아마 1년에 600원정도의 비용이 든다고 하던데. 전화료금도 절약하고 매일 얼굴도 볼수 있으니 얼마나 좋소.>> <<네, 제가 인차 수속을 밟을게요. 당신도 몸을 조심하세요. 힘이 들면 쉬운 일들을 골라 하세요. 너무 힘을 다 빼고 돌아오면 안된다구요.>> 매양 전화가 올적마다 이렇게 아기자기 이야기를 나누면서 시간이 가는줄을 모른다. 그런날이면 꿈속에서도 서로 만나 하고 싶은 일들을 마음껏 하는것같은 환각에 사로잡히기도 하였다. 남편이 한국으로 간후 영숙이는 종래로 밖으로 놀러 다니지 않았다. 아예 바깥세상과는 발길을 끊어버렸다. 그러다보니 기껏 밖으로 나간다해봤자 옆집 로인네 집으로 놀러 가군 하였다. 바로 이웃집에 늙은 량주가 살고 계시는데 자식도 없이 살아가고 있었다. 두 로인은 정이 얼마나 좋으면 여직 살아오면서 다투는것을 보지 못했다. 가끔은 로친네가 잔소리를 하면 령감은 허허 웃으면서 다 받아주군 하였다. 언제 한번 로친네를 질책하는 소리도 들어보지 못하고 살아왔다. 하여 영숙이네 부부간도 로인들을 거울로 삶고 화목하게 살아가자고 언녕 약속을 하였던것이다. 영숙이는 색다른 음식이 생기면 언제나 먼저 로인들에게 대접하군 하였다. 그러다보니 남남이 였건만 이젠 로인들이 제 자식처럼 아껴주고 보살펴주군 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영숙이는 남편의 분부대로 털옷을 사입으로 시내로 갔다. 상점마다에 멋지게 걸려있는 각양각색의 고급 털옷들은 영숙이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다사스러운 판매원들이 귀찮을 정도로 말주머니를 풀어 놓았다. 마음에 쏙옥 들어오는것들은 값이 거개가 만원정도였다. 돈이 아까워서 안 사입으려하니 남편의 분부가 걱정되였다. 생각끝에 영숙이는 큰 마음먹고 깎고 또 깎아서야 겨우 8900원을 주고 보기만 해도 너털웃음이 나갈 현대식 고급 털옷을 사입었다. 무겁던 마음은 어데로 날아가고 기쁨으로 마음은 둥둥 뜨는것만 같았다. 집으로 돌아온 영숙이는 거울앞에서 아마 한시간정도는 모델을 하였을것이다. 자다가도 일어나서 입어보군 하였다. 실상 그토록 사입고 싶던 옷이 였다. 요즘 귀부인의 행세를 하려는 사람들은 거개가 그런 옷들을 입고 다녔는데 듣는 말에 의하며 가짜를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였다. 영숙이는 종래로 옷을 입고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기껏 해봤자 해가 저물어서야 로인네 집으로 가서 입고 약간 자랑을 할뿐이였다. 그러면 두 로인네는 기뻐서 박수까지 쳐가며 기뻐하였다. 제 친정 부모앞이였으면 언녕 옷을 입고 열번도 더 뛰였을것이다. 로인 량주는 정구를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였다. 영숙이도 말은 없지만 속으로는 언녕 행복에 젖어 잠마저 어디론가 자리를 감추었다. 저녁늦께 까지 이야기를 나누다가 집으로 돌아온 영숙이는 옷을 곱게 걸어서 옷장안에 넣었다. 그리고는 자물쇠까지 잠가 놓았다. 영숙이는 눈길은 자꾸만 옷장을 향하였다. 그날 밤에도 영숙이는 아마 대여섯번은 옷을 입고 거울앞에서 자신의 미를 감상하군 하였다. 그러다가 언제 잠이 들었는지 모른다. 날이 희붐이 밝아왔지만 영숙이는 아직도 꿈속에서 모델을 하고 있는 모양이 였다. 옆집 할머니께서 문을 두드려서야 일어났는데 눈은 약간 부은 모습이였다. <<영숙이, 내가 아침에 수제비를 만들었소. 맛있는지는 모르겠소만 여하튼 뜨거울때 자시오.>>  하시면서 가마목에 놓고는 밖으로 나갔다. 한참후에 로인은 집단을 들고 들어왔다. 그제야 영숙이는 벌떡 일어났다. 로인더러 불을 때게 할수는 없는 일이였다. 그러나 할머니는 기어코 영숙이더러 좀더 자라고 하고는 불을 땠다. 꼭 마치 친정엄마 같은 따뜻한 사랑이 마음에 촉촉히 젖어 왔다. 영숙이는 가마목에 앉아서 수제비를 맛나게 먹었다. 오랜만에 먹어보는 그 맛이 또한 별미 였다. 아침을 먹고 영숙이는 컴퓨터 인터넷 수속을 밟으려고 전신공사로 갔다. 수속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영숙이는 상점에 들려 컴퓨터카메라까지 사들고 왔다. 이제 전문일군들이 와서 안장만 해놓으면 저녁부터 남편하고 서로 보며 이야기를 나눌수있다고 생각하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인터넷 전신공사 일군들은 해가 저물어서야 찾아왔다. 익숙한 솜씨여서 몇분도 안걸려 안장을 끝마치고 돌아갔다. 여러번 영숙이에게 가르쳐주었건만 머리가 그닥 총명하지 못한 영숙이는 반복적인 노력을 들여서야 겨우 카메라를 조절할수 있었다. 스스로 만족하며 눈을 곱게 흘기였다. 이제 토요일이면 남편하고 화면을 보면서 이야기를 나눌수있다는 생각에 언녕 마음은 들뜬 고무풍선이 였다. 온종일 집에 앉아서 혼자 있자니 역시 지겨운 일이 아닐수 없었다. 컴퓨터도 이제 겨우 신수에 불과하니 아직은 많은 학습이 필요했다. 처음에는 대충 재미있는 사이트로 들어가서 보고 싶은 글이나 그림들을 보면서 하루세월을 보내군 하였다. 그런데 가끔 저도몰래 튕겨나오는 섹시한 그림들을 처음에는 신경질적으로 아무런 반응도 없이 꺼버리군 하였지만 언제부턴가 그런 그림들을 보고 싶은 생각이 마음의 쪽문을 살며시 열고 일어서군 하였다. 그럴때마다 스스로 자신을 달래면서 마음을 진정시키군 하였다. 하지만 그런 심정은 순간 뿐이지 어쩐지 머리속을 맴돌면서 떠날념을 않았다. 때로는 컴퓨터에 마주 앉으면 이상하게 가슴부터 뛰는듯한 그런 이상한 느낌에 사로잡히군 하였다. 그럴적마다 남편이 곁에 없는것이 얼마나 안타까운지 몰랐다. 남편이라도 있으면 마음을 달래면서 스스럼없이 시간을 흘러보내련만 온 종일 밖으로도 크게 나들지 않는 영숙이로서는 고역이 아닐수 없었다. 점차 영숙이는 컴속에 자신이 빠져들어감을 이식하게 되였다. 꼭 마치 컴을 떠나면 심심해서 못살것같은 그런 심정이였다. 그때로터 영숙이는 밤낮으로 컴에 매달려 외롭고 고독한 마음을 달래군 하였는데 유일한 방법이 인터넷에서 채팅을 하는 일이 였다. 처음에는 닉네임을 <<사랑스러운 녀자>>라고 달아놓고 시간이 가는줄도 모르고  낯선 남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군 하였다. 금방 채팅을 할적에는 상대방이 남자고보면 어딘가 가슴도 떨려오고 얼굴도 붉어지는 순간들을 겪게 되였다. 하지만 그것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수준이 제고됨에 따라 그 어떤 낯선 남자가 대화방을 요청해도 부끄럼없이 스스로 응낙하군 하였다. 각별히 살갑고 인정스러운 남자들의 <<화언묘어>>(花言巧语)는 영숙이의 마음을 사정없이 흔들어 놓기도 하였다. 가끔 매체들에서 채팅으로 절대로 얼리우지 말라는 권고도 들어왔건만 그 순간이 되면 모든것이 가뭇없이 살아지고 즐거움뿐이였다. 여러 남자들과 채팅을 해왔지만 그가운데서도 <<고독한 갈매기>>라는 닉네임을 가진 남자가 다른 사람들과 달리 영숙이의 외로운 마음을 깡그리 리해해 주었다. 관심과 사랑으로 뒤섞인 그 남자와 대화를 할적마다 영숙이는 언제부턴가 무한한 행복감에 빠져들군 하였다. 밤이 늦도록 서로 아쉬운 마음을 딜래면서 헤여지는 순간에 영숙이는 너무너무 슬프기도 하였다. 어언 남편도 한국으로 간지 3년철을 잡게 되였다. 주말마다 남편과 채팅을 하는것이 처음에는 그토록 신기하고 황홀했지만 요즘은 별로였다. 어쩐지 남편의 말들이 매력이 부족하고 랑만적이 되지 못하다는 생각으로 가끔은 할말도 찾지 못하고 그저 남편의 물음에 대답하는것으로 응하는 경우가 점점 많아졌다. 그러다가도 약속한 남자와의 채팅이 시작되는 날이면 정신이 번쩍 들고 심정도 그렇게 맑을수가 없었다. 한주일에 한번씩 채팅하기로 약속한 그들은 날따라 랑만과 사랑으로 녹아내리는 신경을 건드리는 말들이 스스럼없이 오가기도 하였다. 영숙이도 부끄러움을 모르고 자신의 고독하고 외로운 심정을 그대로 그 남자에게 쏟아버리군 하였다. 그러면 남자쪽에서 달래는 매 한마디의 말들은 실로 영숙이로 하여금 환각에로 사로잡히게 하였다. 시간이 감에 감에 따라 서로 얼굴도 보았고 어지간한 롱담들도 오가게 되였다. 이렇게 서로가 서로를 사모할 정도로 깊숙히 빠지게 되였다. 컴을 끄고 잠자리에 들면 남편의 얼굴이 아닌 그 남자의 얼굴이 그토록 매혹적으로 영숙이의 가슴을 흔들어 놓았다. 이리뒤척 저리뒤척 잠에 설치다가 새벽이 되여서야 일어나는 영숙이는 날로 어딘간 야위여가는 모습이였다. 그저 모든 일이 손에 잡히질 않고 그 남자와의 약속한 시간을 보내는걸로 지루한 하루해를 마치군 하였다. 때로는 자신을 각성해야 겠다고 생각을 해보기도 하지만 그것이 그렇게 쉽지가 않았다. 한번은 큰 마음을 먹고 약속한 시간에 채팅방에 들어가지 않고 그저 커퓨터에서 책들을 읽어보려하였는데 혼이 나간 사람처럼 모든것이 머리속을 파고 헤쳤다. 이렇게 방황 비슷하게 헤매다가 결국 이겨내지 못하고 영숙이는 다시 환각에 사로잡혀 채팅방에 들어간다. 그러면 그 남자가 보내온 말들이 별빛처럼 쏟아져 내리며 영숙이의 여린 마음에 투망을 던진다. 영낙없이 그속에 자신이 갖혀가는 줄을 뻔히 알면서도 영숙이는 그냥 행복하기만 하였다. 결심들도 순간에 스르르 무너지며 다시금 황홀한 꿈속으로 미끄러져 간다. 이렇게 시간이 감에 따라 그 남자로 부터 영숙이와 만나보자는 의향을 여러번 비췄다. 하지만 그것만은 절대 안된다고 고집을 부리며 자신을 달래였다. 하지만 영숙이도 언녕 그 남자와 만나보고 싶은 생각이 불길처럼 일어거기도 하였다. 그래도 어느 정도 텔레비죤에서랑 많은 실례들을 보아 왔기에 어느 정도 자신을 달랠수 있었다. 하지만 외로운 녀자의 아무리 든든한 담일지라도 남자의 노력으로 무너지지 않을수없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그저 자신의 핸드폰 번호를 알려주기로 작심하였다.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실로 너무도 길다는 생각에서 그런 결론을 내렸던것이다. 하여 외롭거나 쓸쓸할때엔 전화로 서로의 마음을 달래주었다. 이렇게 차츰 정이 들면서 영숙이는 그 남자를 만나지 못하면 당장 미칠것만 같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남자앞에서는 속궁리를 보이지 않고 무작정 거절을 하였다. 어쩐지 그 남자의 애간장을 태우는 모습을 지켜보는것도 일종의 향수같은 감수였다. 한편 남편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기도 하였지만 그것은 순간에 지나지 자신을 운전할 능력을 상실한것 같았다. 날이 감에 따라 두 사람은 사랑의 함정에 푹 빠져버렸다. 하루에도 몇번씩 울려오는 전화에 영숙이는 즐겁기만 하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만나고 싶은 생각은 점점 커만 갔다. 욕망으로 불타는 간절한 마음은 끊내 무너지고 말았다. 약속한 장소에서 두사람은 미칠듯이 끌어안았다. 그토록 보고 싶던 사람을 만난듯이 절주는 스스럼없이 풀려나갔다. 둘은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고 다음은 호텔로 발길을 옮겼다. 어느 한사람의 요구가 하니다 동시에 돌아가는 절주였다. 오래동안 감춰졌던 영숙이의 하얀 몸매가 쏟아지는 불빛에 눈시릴 정도로 방안을 아늑하게 만들었다. 탐스럽게 솟아오른 젖가슴은 보기만해도 군침을 쏟을 정도였다. 불빛이 꺼지면서 즐거움의 비명인지 후회의 비명인지 분간못할 비명이 방안을 채우며 울려 퍼졌다. 그 남자도 마누라가 한국으로 혼자 사는 신세였다. 상등 미남에는 못가도 중상에는 아쉬울 정도로 잘 생긴 남자였다. 게다가 랑만도 은은히 흐르다보니 영숙이의 마음을 사정없이 사로잡았다. 남자는 현성에 집을 잡고 혼자 있는 중이였다. 고정적인 직업도 없고 그저 안해가 보내주는 돈으로 생활을 해가는 스타의 남자였다. 그들은 매주 일요일마다 처음에는 호텔에서 지내기로 하였는데 나중에는 아예 그 남자네 집으로 자리를 옮기였다.  언제부턴가 영숙이는 고급식 털옷을 입고 밖을 나들기 시작하였다. 남편보기에 어딘가 미안한 생각이 없는것은 아니였지만 그래도 순간이 더 랑만적이였다. 제법 현성의 거리에서 그 남자와 팔장까지 끼고 다니는 모습은 것보기에는 그래도 대단한 행복같았다. 이젠 제법 귀부인의 행세까지 하면서 랑만의 도가니속에 푹 빠지고 말았다. 이젠 남편하고 전화받는 시간도 바뀌였다. 원래는 매주 토요일마다 전화를 하기로 했는데 언제 부턴가 매주 수요일로 바뀌였다. 남편은 실속을 꼭 꼭 지키면서 수요일마다 안해에게 전화를 해주었다. 혼자 외롭게 살아가는 안해가 더없이 불쌍하게 생각되였다 곰고히 따져보니 영숙이에게 보낸 돈이 근 30만원 정도는 잘되고 다음 자기손에 있는 돈까지 합치면 쉬이 40만 정도는 잘되였다. 정구는 이제 년말까지 해가지고 집으로 돌아가기로 작심하였다. 그리고 자신의 의사를 안해에게 엿보였다. 이제 두달만 지나면 집으로 돌아가서 안해와 행복하게 살아갈것을 생각하니 아무리 어려운 일도 힘든줄 몰랐다. 가끔 친구들로부터 아가씨보러 가자는 요구가 들어와도 정구는 언제 한번 그런 어지러운 장소에 발길을 옮기지 않고 열심히 벌고 벌었다. 저녁에 때로는 외롭거나하면 소주한잔으로 달래면서 자신의 행위를 알뜰하게 지켜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영숙이는 그 남자와 남편이 이제 곧 돌아오게 되니 이젠 헤여지자는 의향을 제기하였다. 그랬더니 그 남자는 매우 슬퍼하며 헤여지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기도 하였다. 실로 영숙이는 량손에 쥔 떡이였다. 이것도 놓기 싫고 저것도 놓기가 아쉬웠다. 그 남자는 영숙이의 마음을 꿰뚫기라도 한듯이 아무 말도 없이 꼬옥 그러안았다. 말없이 묵묵하던 그 남자는 조용히 일어나서 밖으로 나갔다. 담배를 한대 물고는 길게 한모금 빨았다. 그리고는 전화를 들고 누구인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얼마후에 낯모를 남자 두사람이 방으로 들어왔다. 그제야 눈치를 챈 영숙이가 밖으로 나가려고 하였으나 때는 이미 늦었었다. 순간 불길한 생각이 영숙이의 뇌리를 스치며 지나갔다. 그뒤로 그 남자는 보이지 않고 흉측하게 생긴 두 남자가 영숙이 곁으로 다가왔다. <<야, 이년아 이젠 그만하고 돈이나 내놔라. 그러면 널 살려주고 그러지 않다간 래일 당장 화장터로 갈줄이나 알아.>> 고 말하고는 날이 퍼렇게 선 칼을 영숙이의 목에 대였다. 영숙이는 그제야 자신이 무서운 올가미에 걸렸음을 알아차리게 되였다. 영숙이는 얼핏 잘못하다가는 목숨마저 잃을것같아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얼마나 달라고 그래요. 저한테는 돈이 얼마 없어요.>>   <<야 이 미친년아 사람을 놀리고 있는거야. 이년이 안되겠네. 오늘저녁 한번 맛을 보여줘야겠다. 그러면서 두 남자가 옷을 벗기 시작하였다. 소름이 끼칠 정도로 영숙이는 무서워났다.  <<좋아요, 그럼 돈을 얼마나 달라는 건데요?>> <<군말 말고 얼마 있으면 어마 내놔. 그러지 않다간 너의 목숨이 여기서 끈날줄 알아라. 들었나 이년아.>>  영숙이는 하늘이 무너지는듯하였다. 남편이 3년동안 땡볕에 그을면서 아껴먹고 아껴모은 돈을 하루저녁에 날려보낼수없다는 생각에 가슴이 찢기는듯하였다. 순간 후회가 뼈를 깎는듯한 아픔을 몰고 찾아 들었다. 하지만 이제 후회해도 아무런 소용히 없음을 잘 알고 있는 영숙이였다. 그들은 침대에 걸터앉아서 영숙이의 대답을 기다렸다. 무섭게 생긴 남자가 옷을 벗고 영숙이의 침대우로 접어 들었다. 죽을것만 같은 무서움이 스쳐지났다.  <<됐어요. 내가 돈을 주기는 주겠는데 만원밖에 없어요. 그러니 저를 놓아주세요.>> 영숙이는 애걸하듯이 빌었다.  <<야, 이 미친년아 우리가 돈 만원이 없어서 너하고 이런짓하는줄 아니? 네가 미쳐도 한심하게 미쳤구나. 안되겠다. 이년을 오늘적녁 좀 죽여줘야지 말을 안듣네.>> <<그럼 도대체 얼마나 달라고 그러는거예요? >> <<군말 말고 통자에 돈이 얼마 있으며 그대로 다 내놔. 그러지 않다간 네 남편도 못보고 여기서 죽을줄 알아>>   영숙이는 당장이라도 미칠것만 같았다. 그래도 별수가 없었다. 영숙이는 우선 그들의 요구에 동의 하는것이 상책이라고 결정하고 동의를 하였다. 장밤 영숙이는 이궁리 저궁리 하면서 방법을 생각했다. 하지만 뾰죽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돈을 그들에게 안주자니 죽을가봐 걱정이고 주자고 생각하니 마음이 찢기는듯하였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영숙이가 집을 나온지도 어언 며칠이 잘 되는것같았다.   이튿날 새벽 세시쯤에 두 남자는 영숙이를 앞세우고 영숙이네 집을 향했다. 영숙이는 기회를 봐서 소리를 칠 잡도리를 하고 있었다. 거의 마을에 들어서자 한 남자가 천으로 영숙이의 입을 꼭 틀어막았다. 영숙이는 영낙없이 돈을 내놔야겠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해 났다. 새벽이다보니 마을의 거리에는 한사람도 없었다. 사람이라도 보이면 발악이라도 해볼 작정을 하고있었다. 집에 이르자 한 남자가 칼로 영숙이의 등을 밀었다. 집문을 떼고 들어서니 따스한 온기가 안겨왔다. 영숙이는 이웃집 할아버지가 더없이 고마웠다. 사람이 없으니 불까지 때준 로인네가 죽도록 고마웠다. 금방 영숙이가 전등을 켜려는데 뒤에서   <<꼼짝 말앗! 움직이면 총을 쏠테다. 머리를 싸쥐고 당장 꿇어앉앗!>>    뒤이어 불이 켜지면서 경찰들이 두 남자에게 수쇠를 잠갔다.  이웃집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영숙이를 보자 붇안고 눈물을 흘렸다. 경찰들은 두 남자를 앞세우고 돌아갔다. 영숙이는 꿈인지 생시인지 분갈못할 정도였다.   <<할머니, 저는 정말 죽는줄로 알고 있었습니다. 엉---엉---….>>  <<영숙이 그만 됐소. 글쎄 며칠동안 아무 말도 없이 영숙이가 보이지 않기에 꼭 무슨일이 생긴줄 알았지. 그래서 어제 경찰들에게 신고를 했더니 여기서 기다리면 꼭 나타날것이라고 믿으라고 하지 않겠소. 정말 다행이지. 그러다가 어데가서 잘못되면 애 아버지한테 우리가 어떻게 말하겠소.>>  로인네는 흐느끼는 영숙이의 등을 다독여주며 안위해주었다. <<아니 배가 고프지.  내가 저녁밥을 해다가 저 가마안에 놓았소. 어서 식사나 빨리 하오.>> 마음씨고운 할아버기자 가마목에서 밥을 차려 주었다.  영숙이는 눈물이 비오듯 쏟아져내렸다. 살을 도려내는 후회의 눈물이 영숙이의 마음을 가르며 사정없이 쏟아져 내렸다.  이튿날 아침 영숙이네 대문앞에 마을사람들이 많이 모였다. 경찰차와 구급차도 와있었다.  이윽고 옆집 할머니의 울음소리가 애처롭게 들려왔다.    <<아이고 영숙아, 이게 도대체 어찌된 일이냐? 아이고 불쌍해라…>>                      녕안시조선족소학교 리창현             
55    조선족의 급선무----가정지키기(리창현) 댓글:  조회:1429  추천:32  2010-12-28
         가정만큼 편하고 너그러운 존재는 더 없는줄로 알고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들더라도 가정이라는 안온한 울타리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부터 이상하게 그 분위기가 달라지는 것이다. 비바람인들 두려우랴! 눈보라인들 두려우랴! 이처럼 가정은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무한한 힘과 용기가 되여주고 있는것이다. 가정은 사회를 이끌어가는 원초적인 존재로서 우리는 반드시 서로의 책임을 지켜나가야 하는데 목전 우리 조선족들의 삶의 현장을 두루 살펴보느라면 가정이라는 신성한 이름자가 흔들리고 있는것이 너무도 가슴아픈 일이 아닐수 없다. 언제부터 조선족들은 분에 넘치는 고집들을 잔뜩 만들어가지고 가정에 대한 관심을 소홀히 해나가고 있다. 한 밥상에 빙 둘러앉아 조금은 허술한 반찬일지라도 서로가 웃음으로 가득찬 어제의 모습을 생각하느라면 잔잔한 행복의 물결들이 많이는 메마른 가슴을 촉촉히 적셔온다. 이처럼 아름답고 신성하던 가정의 존재가 요즘은 많이 색바랜 모습으로 다가서고 있다. 가정을 위해서라면 고생도 마다하던 그제날의 풍경들이 하나 둘 시든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가정이 시든다는 그 자체가 바로 민족의 시듬을 암시해주는거나 다름이 없는것이다. 요즘 우리 조선족들의 삶의 현장은 말그대로 엉망이나 다름이 없다. 향수에 물젖은 모습들이 나름대로의 고집을 꺾지 않으려고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부시고 있다는 말이다. 좀은 어리숙한 안해(혹은 남편)의 모습이 언제부터 보기마저 싫은 존재로 다가서면서 큰소리 뻥뻥 쳐대면서 문을 나서는 그 뒤모습에는 근심과 후회의 아픔들이 언녕 자리를 잡기 시작한다. 얄팍한 자존심에 목을 매고 순간의 즐거움에 유혹되여 가정을 무너뜨리는 행위는 참으로 안타깝기만하다. 이제 우리는 반드시 가정을 지키려는 자세를 바르게 세우는것이 급선무로 다가서고 있다. 가정을 버린 사람이 아무리 큰 성공을 이끈다해도 종당에는 남는것이란 허무함외에 아무것도 없다는것을 자각해야 한다. 편안하고 행복한 가정은 우리들의 삶에 무한한 연장선을 그어준다는것도 상식적으로 알아두어야 한다. 너무 쉽게 어지러운 존재에 물들지 말고 나름대로의 생각과 인격을 갖춰야 한다. 참새가 황새걸음을 하면 어딘가도 많이 다치게된다는 말귀들도 어느 정도 마음의 호주머니에 넣고 다녔으면 하는 바램이기도하다. 흉내는 어디까지나 흉내이지 그것이 진정 현실로 자리매김을 하려면 아마도 한 500년 정도는 걸릴것으로 예측이간다. 하나님은 언녕 우리들에게 무한한 용서를 베풀면서 그 어느 사람에게든 그처럼 공평하게 마음을 열어주고 있는것만큼 항상 그 용서에 고마움과 미안함을 담을줄도 알고 신성한 용서앞에서 두번다시라는 막을 내리지 말아야 한다. 번연히 알면서도 실수의 그물을 뜨는것이 또 인간인것이다. 외부의 유혹에 쉽게 넘어가는것도 인간인것이다. 가정을 떠난 제2의 둥지가 존재한다면 그건 오직 순간의 내용물이지 영원한 항구는 아니라는것도 명석하게 인식하는 재주도 갖췄으면 얼마나 좋을지. 이제라도 우리는 마음에 드리운 어지러운 존재들을 말끔히 세척하면서 가정이라는 신성한 존재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가꿔야 한다. 동시에 서로의 존재가 무엇보다 소중함도 겉으로보다는 진정 마음으로 절감하면서 뒤늦은 후회의 포물선을 긋지 말고 매일의 해님을 맞는것도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른다.  조금은 싫어도 이 가정을 위해 헌신의 바줄을 꽁꽁 잡아쥐느라 많이 터실터실해진 마누라의 손목도 잡아주면서 가정이라는 그라프에 소박한 한송이 꽃일지라도 열심히 가꾸려는 그 마음가짐이 무엇보다 소중한것이다. 우리는 늘 자신을 바른 위치에 세우기에 게으름을 피우지 말아야 한다.  만물이 변화속에서 놀라운 모습을 가져온다해도 가정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말고 우리는 가정을 지킬줄 아는 그런 인간으로 다가선다면 우리들의 삶의 현장은 또 하나의 타민족이 질투라도 할듯한 그런 멋진 존재로 민족의 얼에 너무도 소중하고 밝은 빛으로 다가설것이다. 멀지않은 곳에서 민족의 자랑찬 모습이 무지개를 타고 뿌리내릴 곳을 찾는다.                                           
54    가난은 부끄러움이 아니였었다 (리창현) 댓글:  조회:1450  추천:26  2010-12-23
가난은 부끄러움이 아니였었다 여직 살아오면서 째지게 가난했던 시절에 아버지께서 하시던 말씀은 아직도 마음속깊이에 력력히 새겨져있다. 가끔 어렵고 힘들때엔 조용히 밝은 빛으로 다가서면서  삶에 담담한 향기로 안겨온다. 나의 동년은 거의 가난에 뒹굴며 지내오기도 하였다. 동년의 뒤안길을 조용히 살펴보느라면 가난의 흔적들이 유표하다. 철없던 그때에는 가난이 뭔지도 몰랐고 그저 가난이 싫다는 생각하나만을 다 헤진 바지의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군 하였다.  한번은 우리보다 생활이 넉넉한 옆집애가 어른의 주먹만큼한 사과를 먹으면서 우리 집으로 놀러왔다. 그 애의 손에 쥐여진 사과를 보는순간 나는 그만 두 눈이 휘둥그래 지고 말았다. 이어 닭알같은 군침이 목구멍을 훑으면서 요란스레 넘어갔다. 꿈에도 구경못한 사과를 보느라니 신기함도 신기함이거니와 먹고 싶은 생각만 불길처럼 일어섰다.  아마 그 애도 나에게 자랑을 하러 온 모양이 였다. 별로 먹지도 않으면서 요리 굴리고 조리 굴리면서 가난한 내 마음을 아프게만 굴러 놓았다. 얼마후 그 애는 시뚝해서 집으로 돌아갔고 나는 군침으로 가득찬 입을 꼭 다물고 부모님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여직 기억이 생생한것은 그날 그 애가 나보고 사과를 먹어보겠는가하는 말을 하지 않은 것이다. 진작 그 애가 물어본다면 나는 뭐라고 대답할지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곤난한 문제이다. 땅거미가 질 무렵 일밭으로 나가셨던 부모님들이 지친 몸을 끌고 돌아오셨다. 나는 낮에 있었던 일을 말하고 나서 나도 그런 사과를 먹고 싶다고 떼질비슷하게 말하였다. 그날 어머니는 몹시 가슴아파하는 모습이였다. 아버지는 묵묵히 아무 말도 없이 담배를 말아 피우셨다. 얼마후 아버지께서 팔뚝같이 실한 무우 하나를 들고 들어오셨다. 금방 김치움에서 나온 청무우는 생생하기만 하였다. 아버지는 가장 먹음직한 부분을 곱게 베여서 나에게 주면서 조용히 말씀하셨다. <<미안하구나, 실상 이 무우가 사람의 몸에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특히 건강에는 무우가 인삼못지 않게 유리한것이다. 남들이 사과를 먹을 때 우리는 무우를 먹는것도 별스러운 맛이 아니겠니! 시원한 무우를 먹으면서 마음에 묻은 가난에 대한 얄미움을 말끔히 씻어보자꾸나. 모든 가난은 두렵지 않지만 일단 마음이 가난해 지면 너무도 슬픈일이 아니겠니?>> 하시면서 크게 한입을 떼여 시원스레 잡수시는것이였다.  <<사각-사각->> 무우를 씹던 소리가 오늘도 귀전에 생생하게 울려온다. 그것은 무우를 씹는 소리뿐만 아니였다. 마음에 어지럽게 드리운 가난에 대한 두려움들을 보내주는 정다운 발자욱소리같이 내 마음에 조용히 흘러들었다. 그날 나는 무우를 얼마나 많이 먹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아무런 탈도 없이 그냥 즐겁기만 하였다. 그러면서 처음으로 가난앞에서 흐려지는 마음을 말끔히 세탁하는 재주도 키우게 되였다.   그후부터 나는 가난앞에서 자신을 당당하게 세울줄 알게되였으며 가난으로 두 어깨를 낮추지 않고 더 힘주어 세우군 하였다.   30여년이 지난 오늘도 그날 아버지의 그 표정, 그 말씀이  들어도 들어도 그냥 듣고만 싶은 메아리로 다가선다.   오늘  이 순간 아버지의 그 말씀으로부터  거듭 새롭게 다가서는 진리하나가 내 마음에 뜨거운 난류로 흘러든다. 사람이란 마음이 가난해 지면 모든것이 다 가난해진다는 너무도 아름다운 존재앞에서 다시금 커가는 자신을 새롭게 찾아보면서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평생 농민으로 살아오신 너무도 평범한 아버지의 그 말씀에 나는 영영 고마움을 간직하면서 열심히 열심히 살아가려고 오늘도 삶의 터전에서 희망을 줏는다, 기쁨을 줏는다, 행복을 줏는다……  
53    버림은 새로은 생존의 도약이다 댓글:  조회:1406  추천:21  2010-11-23
버림은 새로운 생존의 도약이다   부동한 시대에 부동한 삶의 방식을 선택하는것도 하나의 대담한 개혁이 아닐수 없다. 모두가 급변하는 이때 삶의 방식도 한번쯤 개변시켜보는것도 해볼만한 노릇이 아닐수 없다. 삶이란 우선 영원한 하나의 방정식이 아님을 우리는 반드시 명기해야 한다. 수학의 발전과 더불어 방정식에도 보다 많은 창신적인 해가 존재하는 만큼 우리도 보다 창신적인 삶의 대안을 만들어보는것도 찬성할만한 노릇이라고 인정하고 싶다. 글쎄 농민의 신분으로서 토지를 버린다는것은 하나의 소중한 아쉬움이 아닐수 없지만 그냥 뭔가를 붙잡고 삶의 가치에 도움일 안될때 우리는 과감히 버릴줄도 아는 지혜가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어찌 그냥 한 나무에 매달려 맛없는 과일에 미련을 두고 얼마 안되는 인생을 보람없이 흘러보낼수는 없지 않은가?! 시대가 많이 달라지는 만큼 삶의 방식에 대한 선택도 반드시 따라 탈바꿈을 해야 한다. 한뙈기의 토지에 매달려 한번밖에 없는 인생의 그라프를 어설프게 그리지 말고 과감히 자신의 신분에 맞게 움직여보는것도 대담한 실천이고 삶에 대한 새로운 개척이 아닐수 없다. 그리고 부동한 시대에 태여난 사람들은 모두가 사유가 다른 만큼 그 시대에 걸맞는 자신을 만들어가는 그 자세가 바람직한 노릇이다. 한 생을 토지에 파묻고 살아간다는것도 어찌보면 고역이나 다름이 없는 노릇이다. 요즘 우리 조선족들은 토지에 언녕 미련을 버린채 보다 힘차게 움직이고 있는 모습들을 지켜보느라면 자랑이 물씬거린다. 글쎄 일부 사람들은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부질없는 핀잔의 손가락을 만들어가지만 모두가 소경의 막대질이나 다름이 없다고 본다. 소경도 얼마쯤 시간이 지나면 보다 넓은 삶의 무대를 만들려 하는데 두 눈을 펀히 뜨고 머리도 남보다 총명한 사람이 한자리에서 방아를 찧는다는건 어디까지나 어색한 모습이 아닐수 없다. 사람이 산다는것은 그 누구의 입방아를 위한것이 아니라 내가 하고 있는 모든것은 정확하다는 그 무슨 답안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본다. 토지를 떠나서도 요즘 우리 조선족들은 얼마든지 먹고 살고 있다. 그리고 우리 조서족들은 토지를 버린것이 아니라 선두적으로 새로운 시대에 남이 두려워하는 노릇인즉 토지개혁을 힘차게 시작했을 뿐이다. 어느 조선족이 토지를 버린사람은 거의 없을것이다. 삶에 별로 도움도 안되는 그런 존재를 그냥 얼싸하게 붙잡고 있다는것은 어디까지나 발전이 아니라 퇴보인것이다. 실상 우리 조선족들은 정말 자랑도 많고 담대하다. 남들이 두려워서 벌벌 두다리를 떨때 과감히 그것을 자신의 행동으로 실천을 보여주고 있는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토지를 버리고 떠난 어느조선족이 거지가 되여 밥조차 먹지 못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것만 보아도 우리 조선족들은 돌우에 올려놓아도 얼마든지 남 못지 않게 나름대로 향수를 누리면서 멋지게 살아간다. 글쎄 그속에 얼마만한 어려움이 있다한들 우리는 언제 한번 그런 어려움에 머리를 숙이고 돌아서지 않는것이 역시 우리 조선족이다. 버린다는것과 지금 소유하고 있다는 그 자체에 우리는 만족하고 또 다른 삶의 현장을 만들어가는것은 인류의 영원한 주제이다. 그속에서 우리의 존재가 빛나고 우리의 존재가 가치를 가지는것이 아닐가?! 그리고 우리의 생존에 하나의 또 다른 도전을 물어오기도 하는 너무도 보람찬 선택이라고 자랑스레 말할수 있는것이 아닐가?!  가질줄아는것도 하나의 재주라고 볼때 버릴줄도 아는것은 더 멋진 하나의 재주가 아닐수 없다. 인간세상은 원래 버리고 또 새로운것을 가지기에 최선을 다하는 그런 모습들로 꿰매여진것이 아닐가 하는 긍정을 남몰래 세워본다. 그리고 우리는 너무 어느 한가지에 미련을 둘 필요가 없는 존재임을 반드시 명기해야 한다. 하나를 버린다해서 모든것을 버리는게 아니고 하나를 버릴때 또 다른 새로운 뭔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음을 우리들은 너무도 잘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세상은 하나가 둘을 만들고 둘이 따 다른 뭔가를 열심히 만들어가는 모습이라는것도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사색할 필요가 요즘 우리 민족의 급선무이기도 하다. 남에게 너무 아쉬움을 만들지 말고 시간이 되였다고 생각되면 서슴없이 자리를 물러설줄 아는것도 하나의 자랑스러운 바램이기도 하다. 필경은 시대가 달라지는 만큼 우리는 머리가 앞서야 생존에 도움이 되고 삶의 방식에도 그라프가 생기는 법이다.  버린다는것은 보다 편안하고 질적인 관계물에 대한 새로운 탐색이다. 그 탐색이 아무리 어려울진대 우리는 발을 들여 놓았으면 흐르는 강물처럼 다가서야 한다. 미련은 영원히 움직임에 하나의 큰 장애일뿐 별다른 도움이 없다. 버리고 떠나는 그 뒤모습에도 보다 자랑찬 래일이 꿈꾸며 다가서는 것이다.  그리고 떠나는 조선족들의 그 모습도 정말 어지간한 자랑이 아니다. 과학이 사품치며 흐르는 이 때 아직도 한줌의 흙에 자신을 묻어 두려는 사람은 리상도 꿈도 없이 한생을 그저 그런 존재에 묻어두는 가련한 모습밖에 안된다.  이제 진심으로 민족의 생존이라는 신성한 존재앞에서 두손모아 떠나는 우리 민족의 아름다운 래일에 가는 길마다 꽃잎들을 즈려밟길 진심으로 기원하면서 땅에 묻힌 선조님들의 아쉬움에 용서를 빌고 멀지 않은 래일에 보다 큰 자랑으로 다가설것을  생각하느라니 자랑이 물씬거린다, 행복이 물씬거린다, 기쁨이 물씬거린다.                                       녕안시조선족소학교 리창현  
52    친구 (리창현) 댓글:  조회:2013  추천:46  2010-10-21
친 구   예로부터 친구의 소중함에 대한 설들이 민간을 떠돌면서 보기 좋은 흔적들을 많이 남겨놓기도 하였다. 여하튼 친구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벅차오르고 마음이 부풀기가 일쑤이다. 친구의 존재란 너무도 아름다운 것이다. 친구가 얼마나 중요한 존재였으면 부모다음으로까지 자리를 굳혀 온것만 보아도 더 이상 해석이 필요없이 어느 정도 터득이 가게 될것이다. 이처럼 친구는 마음속에 늘 하나의 밝은 별로 남아서 힘들고 어렵고 아프고 슬프고 쓸쓸할때 소리없이 다가와서 마음의 동반자가 되여주군 한다. 그래서 부모없는 설음은 어느 정도 시간의 문턱을 넘으면 해결이 가능하지만 친구없는 설음은 마음의 언덕에 지울수 없는 하나의 큰 상처로 자리를 만들기가 일쑤이기도 하였다. 그래서 한때는 친구를 사귀는것도 하나의 큰 류행으로 다가서면서 아름다운 추억들을 곱게 곱게 만들어가기도 하였다. 친구의 중요함에 대하여 민간에서는 이런 말귀가 떠돌기까지 하였다. <<집에서는 부모를 의지하고 밖에서는 친구를 의지하라.>> 이처럼 친구는 부모다음으로 소중한 존재로 스스로의 인격을 멋지게 만들어가기도 하였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이처럼 신성한 친구의 이름자에 오염이 기여들기 시작하였다. 리익을 위하여 우선 친구부터 함정에 밀어넣는 가슴아픈 현실들이 제멋대로 살판치면서 친구라는 신성한 이름자에 먹칠을 하기 시작하였으며 그 순간부터 그렇게 하늘처럼 믿어오던 친구가 원쑤로 탈바꿈을 하는 현실들을 어렵잖게 볼수가 있어서 얼마나 마음이 허전했는지 모른다. 리익이라는 헐망한 그릇을 챙기기위해 친구부터 구렁창에 빠지도록 유혹의 손길을 뻣쳐온것도 부정할수 없는 사실이기도 하다. 여하튼 요즘 세월에는 친구라는 이름자가 많이 색바랜 존재로 겨우 목숨을 지탱해가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생각을 가져보게 된다. 가면의 탈을 시원스레 벗어던지고 가슴을 열고 말하면 친구의 얼림수에 빠져서 자신을 괴롭게 만든 실례는 아마 부지기수 일것이다. 많이는 말없이 침묵으로 시간을 누비였을 따름일것이다. 벙어리 랭가슴 앓듯이 말이다. 그래서 요즘에는 친구가 너무 많이 필요없다고 생각한다. 정말 삶에 꼭 필요한 친구만 있으면 최고라는 말이겠다. 한번은 어느 술상에서 들려오는 한마디 말에 가슴이 얼어들기도 하였다. 설마 그럴수가 하면서 귀담아 들었는데 화자의 태도가 얼마나 강직한지 다시금 사색을 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그 말인즉 요즘 조선족친구들은 술상에서는 의심할바없는 최고의 존재이지만 정작 어려운 일이 생겨서 부르면 이핑게 저핑게 하면서 핑게를 만들기에 분주하다고 하다. 하지만 한족친구들은 그 무슨 일이든 상관없이 언제든 도움을 청하기만하면 무조건 달려온다는 말이였다. 그 뜻인즉 한족친구들이 더 친구답고 믿음직스럽다는 말이겠다. 그래도 모두가 사람나름이라는 얄팍한 견해를 내세우기도 하였지만 자신이 직접 겪어보느라면 그 누구의 해석도 필요없이 절실히 느끼게 될것이라는 긍정까지 붙혀놓는 그 순간은 실로 술결에 한 이야기가 아님을 다시금 절감하게 되였다. 정말 가슴으로 다시금 사색의 노를 깊이 저어야 겠다는 다짐으로 아파오는 자신을 슬픔의 언덕으로 시원스레 밀어보기도 하였다.  그러면서 나는 친구에게 구경 어떤 친구로 위치를 세워가고 있는지 궁금증은 커만가기도 하였다. 반성의 저 언덕으로부터 잔잔한 서글픔들이 마음의 줄기를 향해 흘러오고 있었다. 이 밤에도 자신을 조용히 세척하면서 친구같은 친구로 다가서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노력을 더 몰부어야겠다. 친구의 어려움앞에서 절대로 주춤거리는 자신을 만들지 않고 언제든 친구를 위해서라면 무조건 달려가는 그런 친구가 되기 위해 오늘밤도 많이 흐려진 마음의 하늘에 별을 심어야 겠다. 별로 밝지는 않더라도 한점의 빛으로 다가설수 있는 그런 평범한 별로 자신을 가꾸기에 게을리 하지 않으려고 365일에 다짐을 넣어본다. 순간 텅 비여가는 자신의 머리속으로 별스런 생각들이 나름대로 머리를 쳐들고 변명에 분주스럽기도 하였다. 한점의 달빛이 카텐을 비집고 조용히 흘러든다. 허전해나는 마음의 구석은 채우기가 그토록 어려웠다.  
51    특색으로 세기를 꿈꾸는 민족교육의 요람 댓글:  조회:1378  추천:38  2010-07-22
특색교육으로 세기를 꿈꾸는 민족교육의 요람                                 ------- 녕안시조선족소학교 반세기를 넘어 민족교육의 명맥을 이어오면서 고달픈 로정의 뒤안길에 얼마나 많은 자랑의 비석들이 뿌리를 내렸는지 모릅니다. 민족의 사명감 하나로 아픔도 로고도 받아 않은 그 품에는 자랑도 많고 영광도 컸습니다. 세기를 꿈꾸면서 민족교육의 사철푸른 소나무로 당당하게 뿌리를 굳혀오면서 민족의 얼을 빛내가고 있습니다.  녕안시조선족소학교는 풍경이 수려하기로 지구촌에서도 손을 꼽는 경박호반에, 목단강상류의 옛성으로 높이 불리우는 녕안시 중심거리 35호에 백두의 얼을 기리며 우뚝 솟아있습니다. 름름하고 슬기로운 그 기상 너무도 자랑스럽습니다. 자랑스러운 민족의 글향기 바람에 실려 마음에 살포시 내려 앉으면서 민족의 밝은 미래를 열어가고 있습니다. 흑룡강성 녕안시조선족소학교는 1953년에 고고성을 울리면서 세상에 발을 붙인 이래 6년전일제 조선민족전통학교로 명맥을 이어왔습니다. 건교 50년이래 녕안시조선족소학교는 “학생들에게 희망을, 교사들에게 긍지를, 학부모들에게 믿음을” 이라는 교훈을 받들고 “일심단결, 간고분투” 라는 창업정신을 이어나가면서 “학생들의 개성발전, 교원들의 전업화발전, 학교의 지속적인 발전” 을 위하여 노력에 박차를 가하여 왔습니다. 부지면적이14000평방미터이고 건축면적이 2200평방미터인 이 학교는 4층 교수청사와 500평방미터의 민족유치원으로 아담하게 꾸려졌으며 6개학년에 12개표준학급,  4개유치원  반급으로, 360여명 학생들로 대가족을 이루고 당당한 모습을 지켜가고 있습니다. 39명의 손색이 없는 우수한 교원대오가 민족교육 사업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근몇년래 녕안시조선족소학교는 운영모식, 관리모식과 인성화교육 방면에서 적극적인 탐구를 진행하여 “과학연구로 학교를 진흥시키고 질로 학교를 꾸리며 특색으로 학교를 발전시키”는 학교운영사상을 확립하였고 “학교교육과 인문교육을 결합시키고 문화교육과 민족교육을 결합시키며 지식교육과 정감교육을 결합시켜 학교교육과 가정교육을 결합시키는” 학교관리모식을 형성하였으며 “ 독서향기가 농후한 학습형” 학교를 건설하였다.  보다 과학적이고 선진적으로 꾸며진 다공능실, 컴퓨터실, 어음실, 도서열독실, 무용실, 악대훈련실에서 학생들이 마음껏 재간을 익히고 있습니다. 김련희 교장선생님을 위수로 하나같이 똘똘 뭉친 교사대오가 탄탄한 실력을 다지면서 “일체는 학생의 발전을 위한다” 는 신성한 사명감을 지니고 희망찬 민족교육의 래일을 멋지게 열어가고 있습니다.  똘똘 뭉친 교사대오가 김련희 교장선생님의 정확하고 옳바른 지도하에 맡은 직책을 착실하게 해나가고 있습니다. 새롭게 구성된 학교 지도부성원과 전체교원은 동심일체가 되여 민족의 얼을 빛내가려는 진취심으로 힘차게 내달리고 있습니다. 언제나 앞장에서 어려움도 두려울세라 매일 매일을 수놓아가는 그 모습에서 보다 밝은 민족교육의 미래가 아침의 태양처럼 밝게 비춰옵니다. 헌신을 응당한 일로 간주하고 앞장에서 본보기로 달리는 김련희 교장선생님을 위수로 하는 지도부성원들의 명석하고 옳바른 지도하에 녕안시조서족소학교는 날따라 번영 창성하고 있습니다.  교사대오건설을 학교공작의 지침으로 삶고 항상 앞장에서 씩씩하게 내달리는 창신성교사대오 건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교수질로 생존을 꾀하고 창신으로 진보를 추구하는 녕안시조선족소학교는 부단히 경쟁력을 높임으로써 학생들이 마음에 들어하고 학부형들이 마음을 놓으며 사회에서 만족하는 표준화, 시범화, 민족화, 현대화, 국제화의 특색을 가진 명문학교를 건설하기 위하여 노력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학생들이 점차 자아관리를 할줄알게 하고 적극적으로 교육에 참가하게 할뿐만 아니라 사상과 자질이 높고 엄무능력이 강하며 학력이 높고 교육관념이 새로운 젊은 교원대오를 형성함으로써 여러차례 성과 시에서 조직한 연구토론회, 공개교수, 시범교수를 담당했고 국가와 성, 시의 여러가지 교수시합에서 훌륭한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그리고 교원들이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고 항상 앞장에서 걷도록 관심을 주고 있다.  상급에서 조직하는 각종 교원양성반에 교원들이 수시로 참가하여 자신의 업무능력과 교수자질을 제고시키기에 큰 힘을 기울이고 있다. 무릇 교원의 사업에 도움이 되는 학습이라면 언제나 마음껏 배울수있도록 환경을 마련해주었습니다. 2007년 성 교육학원에서 조직한 골간교원 학습반에도 여려명의 교원이 참가하여 좋은 영향력을 가져오기도 하였다. 교원들의 진보에 대하여 인정해주고 긍정해주면서 보다 멀리 높이 날도록 등을 밀어주면서 민족교육의 신성한 울타리에 보다 큰 영광을 뿌려가고 있습니다. 매 교원마다 능력을 인정해주고 보다 과학적이고 합리한 배치로 교원들의 사업에 무형의 힘으로 다가서고 있습니다. 현재 녕안시조선족소학교에는 탄탄한 실력과 높은 소질을 갖춘 교사대오가 자리를 굳혀가고 있습니다.  6명의 중고급교사, 26명의 소학교고급교사,  9명의 소학교1급교사로 건실한 군체를 이루고 있는 교원들의 학력도달률은 백퍼센트로 당당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국가급 우수실험교원 3명, 성급우수지도교원13명, 목단강시 우수지도교원 18명으로 자랑을 쌓고 있습니다. 녕안시조선족소학교는 실내교수와 실천교수를 결합하는 방식으로 학생들의 전면발전을 돌보고 있습니다. 지식을 능력으로 전환시켜 학생들로 하여금 실천속에서 보다 활약적인 자신을 키워가도록 요구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학교지도부에서는 교원들의 교학수준을 제고시키고저 수시로 상급의 전문가들을 초청하여 교수질을 대폭 제고시키에 중시를 돌리고 있습니다. 창신성교수를 제창하면서 창의력을 갖춘 인재를 양성하기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최고의 교학질량을 추구하면서 참다운 자세로 실천속에서 한걸음 한걸음 제고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과정개혁과 동보하면서 교원마다 참답게 새로운 과정개혁의 리념으로 교수를 연구하면서 기초지식을 틀어쥐고 개성이 있고 실력이 있는 인재를 양성하기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교원들의 교수자질을 제고시키고저 수시로 여러가지 형식의 교수경연을 조직하기에 노력을 아끼지 않습니다. 개학초마다 목단강시 교육학원의 전문가들을 요청하여 교수를 참관하고 평가를 하면서 매 교원마다 보다 높은 제고를 가져올수있는 소중한 기회를 마련해주고 있습니다. 근 몇년간의 노력을 거쳐 교원마다 현저한 진보를 가져오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학교의 연구과제를 명확히 설정하고 교원마다 참여하는 모습을 지켜가고있습니다. 성 교육과학 “11.5” 중점과제 “개방식교학연구모식실천연구”, 국가 “11.5” 중점과제 “조선족소학교 민족례의 연구와 탐색”등 중대한 과제를 틀어쥐고 보다 과학적이고 선진적으로 학교공작을 멋지게 열어가고 있다. 이상의 중대한 연구과제는 상급 령도들의 긍정적인 지지와 인정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학교지도부와 전체 교원들의 노력으로 많으 교원들이 국가, 성, 시 각항 교수경연에서 기꺼운 성과를 따오는 영예를 지니기도 하였습니다. 민족유치원의 건립은 사회 각계의 찬사를 받았으며 그 경험은 각 매체를 통하여 널리 선전되기도 하였습니다. 흑룡강신문, 료녕일보, 길림일보들에서 앞다투어 보도를 하였고 한국교육계 각 매체들에서도 대량적으로 선전보도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유치원에서는 례의범절, 3중언어, 민족예절 등 특색교육을 틀어쥐고 한걸음 한걸음 실속있는 래일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이러다보니 한국어린이들도 구름처럼 몰려들고 한족어린이들도 고기가 물을 찾아 오듯이 찾아 들고있습니다. 연변대학에서 열린 백년조선족발전연구회에서 민족유치원 건립에 대한 경험소개는 전형적인 사료로 전문가들의 절찬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교수연구에 조예가 깊은 김련희 교장선생님은 교원마다 교수에서 빈틈이 없도록 엄격한 요구를 제기하는 한편 학생마다 장기가 있고 전면발전한 인재로 성장하도록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선진적인 교육리념과 경험을 교류하려는 취지에서  한국 청주시 교육청 로재전 청장님을 비롯한 유명인사들을 초청하여 뜻깊은 교류의 창을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학교에서는 대폭적으로 각항 대형활동을 전개하여 스스로의 특색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모든 운영은 혼자의 힘으로는 어렵다는 명석한 지도하에 가장들의 대폭적인 지지와 방조를 받기도 하였습니다. 뿐만아니라 전반 사회의 따뜻한 관심과 배려도 갈라놓을수 없습니다. 가장들의 열정적인 지지, 사회의 배려하에 녕안시조선족소학교는 날마다 멋지게 자신을 가꿔가고 있습니다. 민족의 얼을 높이 받들면서.  학교소선대에서는 여려가지 형식으로 각항 활동을 활발히 전개해 나가고 있습니다. 해마다 청명절이 다가오면 어김없이 혁명렬사묘지를 찾아 그이들의 고상한 정신을 빛내이면서 학생마다 행복한 오늘의 소중함을 마음으로 느끼면서 어려서부터 웅대한 리상을 품고 씩씩한 기상으로 매일을 이어가려는 마음을 갖도록 하였습니다.  녕안시조선족소학교는 “인재시교, 특색있는 학교”의 방침으로 소질교육과 교본교재교육을 결합하여 학생들의 심신건강에 리로운 활동을 대량적으로 전개하고 있습니다. 조선민족례의, 례절, 전통풍속과 춤과 노래에 능한 특점을 살리면서 학생마다 특장을 갖추고 있습니다. 학교에서는 무용써클, 악대, 미술써클, 민족풍속례의써클, 축구팀, 배구팀, 속도스케이트팀을 조직하여 학생들의 전면발전에 튼튼한 토대를 마련하였습니다. 학교무용대는 성, 시 각항 경색에서 많은 영예를 따오기도 하였습니다. 학교 축구, 배구팀은 련속 4년 전시 조선족중소학교 운동회의에서 1등의 보좌를 지켜왔으며 속도스케이트팀은 련속 2년 전시 동기운동회의에서 단체 1등의 영예를 안아오기도 하였습니다. 녕안시조선족소학교는 “가장 선진적인 교육리념”, “훌륭한 교수설비”, “최고의 교수질”, “최적화의 학교관리”를 지침으로 조선민족의 인재를 배양하는 요람으로, 전체교직원들이 하나 같이 똘똘 뭉친 힘으로 세기를 꿈꾸면서 힘차게 내달리고 있습니다.  근 몇년간 녕안시조선족소학교는 성민족사무위원회, 성 교육청, 시교육국, 시민족사무위원회 등 상급의 관심과 배려속에서 많은 전변을 가져오기도 하였습니다. 김련희 교장선생님이 부임된 이래 많은 설비들을 개선하였습니다. 이를테면 층계를 오르는 손잡이, 반급의 출입문, 낡은 창문들을 모두 플라스틱창문으로, 학교의 벽들을 새롭게 장식하였고, 실내위생실을 건설하였으며 반급과 복도의 모든 족자들을 보다 창의적인것으로 바꾸었습니다. 새롭게 건설된 학교의 모습은 상급령도들의 절대적인 자랑과 긍지를 안아오기도 하였다. 2010년 3월 녕안시조선족소학교에서는 상급령도들의 따뜻한 관심과 배려속에서 전교 학생들의 책걸상을 보다 고급적이고 선진적인것으로 바꾸었습니다. 학생마다 보다 현대화한 환경에서 마음껏 공부를 하도록 환경을 창조해주었습니다. 상급령도들의 관심과 배려하에 녕안시조선족소학교는 날따라 번영 창성하고 있습니다. 어려운 순간이 지나면 행복의 물결이 밀려오는것입니다. 몇년간 거둔 묵직한 성과들도 적지 않습니다.    김련희 교장선생님의 명확한 지도와 지도부 성원들의 적극적인 지지하에 너무도 아름찬 성과들을 거두기도 하였습니다.   흑룡강성 표준화학교,  흑룡강성 “군중체육” 선진학교, 흑룡강성 일류학교, 목단강시 문명단위, 목단강시 교육선진단위, 목단강시 교육연구선진단위, 목단강시 “안전, 화목한 교정”, 성 겨울철운동 선진집체, 녕안시 양광체육활동선진집체, 녕안시 규볌화건설 선진단위등 자랑찬 영예와 기꺼운 성과들을 거두기도하였습니다.     민족교육의 사철푸른 소나무---- 녕안시조선족소학교는 인재가 되기전에 먼저 인간이 되라는 인성교육에 중시를 돌리면서 민족의 얼에 또 하나의 밝은 빛으로 다가서기에 손색이 없습니다. 세기를 꿈꾸면서 민족교육의 성지로 그 이름 길이 길이 빛날것입니다. 물이 깊으면 고기가 모이듯이 숲이 우거지면 새들이 날아들듯이 날따가 번영할 우리네 녕안시조선족소학교!     녕안시조선족소학교---- 천추에 빛날 그 이름! 영광이 있으라, 영광이 있으라!                       흑룡강성 녕안시조선족소학교 리창현          
50    교육 (리창현) 댓글:  조회:1320  추천:32  2010-07-13
교육   교육은 실천이다 교육을 통하여 실천의 힘을 만들어가는것이다.   교육은 운전이다 교육을 통하여 자신을 운전하는 능력을 만들어가는것이다   교육은 움직임이다 교육을 통하여 바르게 움직이는 재주를 키워가는것이다   교육은 감화이다 교육을 통하여 생각하는 힘을 키우고 살찌우는것이다.   교육은 자전이다 교육을 통하여 운행리치를 익히면서 인생을 정리해나가는것이다.   교육은 물이다 교육을 통하여 어지럽구 어설픈것들을 지워버릴줄아는 지혜를 만들어가는것이다.   교육은 이슬이다 교육을 통하여 자신을 바르게 인식하는 량심을 가꿔가는것이다.   교육은 빛이다 교육을 통하여 어둡고 추운 곳들을 말끔히 정리해가는것이다.   교육은 침묵이다 교육을 통하여 할줄아는 말도 어느 정도 줄이는 인내심을 키워가는 과정인것이다.   교육은 뿌리이다 교육을 통하여 영원한 삶을 이끌어가는것이다.   교육은 자습이다 교육을 통하여 옳고 그름을 스스로 깨치는 과정인것이다.   교육은 보건품이다 교육을 통하여 스스로의 삶을 보다 질적으로 이끌어가는것이다.   교육은 깨우침이다 교육을 통하여 옳바른 자신을 바르게 세워가는 과정인것이다.   교육은 약이다 교육을 통하여 마음이 아프거나 령혼이 아픈것들을 말끔히 해독하는 과정인것이다.   교육은 바람이다 교육을 통하여 침침하고 답답한것들을 말끔히 세척하는과정인것이다.   교육은 량심의 반사이다 교육을 통하여 보다 인간다운 인간으로 성장시켜가는것이다.   교육은 힘이다 교육을 통하여 비리에 맞서는 용기와 지혜를 만들어가는것이다. 교육은 칼이다 교육을 통하여 병든 곳들을 사정없이 다스려가는것이다   교육은 보람이다 교육을 통하여 보람있게 살고 값있게 죽는 신성한 과정을 만들어가는것이다.   교육은 도전이다 교육을 통하여 내가 내를 전승하는 도전의 과정을 만들어가는것이다.   교육은 거울이다 교육을 통하여 자신보다 타인을 비춰보는 령혼의 거울을 만들어가는것이다.   교육은 산소이다 교육을 통하여 병든 몸과 마음에 생 이어가는 과정인것이다.   교육은 정신이다 교육을 통하여 두려움과 어려움에 용감히 맞서는 지혜롭고 씩씩한 과정을 만들어가는것이다.   교육은 능력이다 교육은 발견이다 교육은 사랑이다 교육은 창조이다 교육은 개성이다 교육은 발굴이다 교육은 영원한 의문이다 녕안시조선족소학교 리창현
49    교육은 일종의 특수한 봉사업이다 (리창현) 댓글:  조회:1535  추천:34  2010-07-13
교육은 일종의 특수한 봉사업이다    교육의 근본 목적은 바로 애들의 잠재력을 발굴시켜 보다 놀라운 힘을 만들어 자신의 목적에 도달할수 있도록 인도해주는 일종의 신성한 사명감을 지닌 복무이기도 하다. 동시에 교육은 일종의 특수한 봉사업으로서 그 무슨 리익을 위하는 묘한 수단이 아님을 교원으로서 반드시 명기해야 한다. 하지만 요즘에 가만히 우리의 교육현장을 살펴보느라면 이상한 느낌을 받을때가 한두번이 아님을 절감하게 된다. 교원으로서는 응당은 그러지 말아야 하는데 하는 생각을 굴려보느라니 어딘가 얼굴이 많이 뜨겁기도 하다. 교육은 일종의 봉사이다. 전반 사회를 위해 자신을 헌신하는 일종의 특수한 봉사업이다. 다시말하면 나라의 동량을 키워내는 너무도 중요한 사명이기도 하다. 그런데 일부 교원들은 교육사업을 일종의 자신의 리익을 챙기는 그릇으로 간주하고 있으니 이 어찌 말이라고 할수 있으랴?!    여섯살난 어린애가 개학이 다가오자 엄마와 하는 말이 참으로 놀라운 풍자를 담고있었다. <<엄마, 이젠 개학도 다가오는데 선생님한테 돈을 한 200원 정도라도 가져다 줘야지. 그러면 혹시 내가 반장이라도 될수있을지 모릅니다.>> 비록은 유치원에 다니는 애의 지나가는 소리같지만 그속에는 교원에 대한 일종의 풍자가 물씬거리고 있는것이다. 어린애의 깨끗한 마음에 이처럼 무서운 생각이 꿈틀거리고 있다는 그 자체에 우리는 정신을 바르게 세워야 한다. 이제 세상물정을 알기 시작한 어린애가 우리 교원에 대한 인식이 이처럼 허줄하다면 구경 우리들이 서야 할자리가 어딘지 정말 근심스럽다. 이러다가 우리들이 서야 할 자리마저 잃는다면 그건 비애이고 비통일수밖에 없다. 이제라도 우리는 정신을 차려야 한다. 나라에서 봉급을 하루도 지체하지 않고 알뜰하게 밀어주는데 뭐가 모자라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참으로 안타깝다. 고금동서로 교원은 절대로 부자가 될수 없다는 말도 민간에서 떠돈지가 력사에 흔적으로 남기도 하였다. 교육사업을 일종의 리익을 챙기는 그릇으로 간주하려거든 아예 직업을 바꿔보는쪽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저 봉급에 만족하면서 하는 사업에 최선을 다하는 그런 자세가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교원으로서 반드시 명기해야 한다.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사업은 일종의 특수한 사명감을 지닌 봉사업이라는것을 말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헌신이 반드시 밑거름으로 다가서야만 우리들의 령혼에 밝은 빛으로 다가설것이다. 교육사업은 어디까지나 사회를 위해 복무하는 하늘아래 가장 신성한 봉사업이면서도 수시로 사회의 감독을 받아야 할 절대로 지체해서는 안되는 중요한 일임을 명기해야 한다.                                        녕안시조선족소학교 리창현
48    바람에게는 길이 필요없다 댓글:  조회:1419  추천:30  2010-06-16
  바람에게는 길이 필요없다   만물이 고욕속에서 울적이는   이 밤   황홀한 불빛마저 싫어지는   이 밤   나는 나대로 내 삶에   바람을 재운다   오는길도 어렴풋하고   가는길마저도 멀쩡한   이 밤에   꿈같은 이야기처럼 생소한   이 밤에   갈길을 찾아 헤매는   멀쩡한 인간들에게   나는 바람의 소중함을   선물하려고   마음의  장독을 뚜진다   분명한 방황이건만   고집을 물고 늘어지는 우리들에게   바람은 조용히 다가서면서   무거운 입을 풀어놓는다   나에게는 길이 필요없다고   갈곳은 너무너무 많다고   그래서 되려 길이 필요없다고   조용히 다가서는 바람의   꼬리를 붙잡고   방황에 빠지는 인간들      순간   저들의 존재를 잃은듯   두눈은 휑하니 커만 진다   바람에게는 근본   길이 필요없다   가는곳마다 길인데   길을 해선 뭘 하랴.      녕안시조선족소학교 리창현
47    사랑하는 너희들에게 드리는 선물바구니 댓글:  조회:856  추천:29  2010-06-01
  사랑하는 너희들에게 드리는 선물바구니     하루하루 너무도 장하게   커가는 너희들의 모습을   지켜보느라니   내 마음에도   보동보동 살이 쪄오는구나   너희들이 있어서   우리 민족은 자랑으로 넘친다   너희들이 있어서   우리는 미래가 보이는거야!   우리 말 우리 글을   야무지게 익혀가는   너희들이 바로   우리의 자랑이고 긍지인거야!   우리의 믿음이고 희망인거야!   하지만 너희들은   많은것을 잃어가고 있다는것을   착각하고 있는것같아서   이렇게 안타까움을 손에 움켜쥐고   너희들의 깨끗한 마음에   최고의 선물을 드리고 싶구나.   모르는건 어디까지나   죄가 아니거든   모르면 알기 위해 노력하면   별문제가 아니지만   아픈건 알면서도   잃어가는 서글픔을   묻어버리는 그 자세인거지.   실상 너희들은   아직도 모르고   살다보니   잘못은 우리네 몫이지    너희들 보기가 얼마나    민망스러운지 모르겠구나    이제    하나하나    가르쳐줄테니    가슴에 깊이 새겨두자꾸나.    우선 너희들은 백의민족의 후손이야    지구촌이 모두     하나같이 우러러보고     존경하는 그런 민족의 후손이란     말이야!     이런 너희들이     부질없는 질책을 받으면     그건 해님보기마저     부끄러운 일이지     않그래?!     여직 얄팍한 행동이     있었다손 치더라도     자책의 무더미에 묻히지 말고    힘찬 너희들의    모습을 되찾아야지    민족의 얼에    한점의 빛이라도    선물하지 못할망정    착한 너희들의    마음가짐으로    굽은길은 걷지 말아야지     않그래?!     우리들은 너희들마저    잃는다면    그건 하늘에 닿는     설음이고    비애이고   슬픔인거야!   너희들이 있어서   우리는   날마다 날마다   힘차게 살아가는거야    너희들은 너 혼자의 존재가 아니야    너희들은 민족의 존재이고    민족의 미래인거야    조금은 아플지라도    씩씩하게 걸어가보자꾸나.    너희들의  부모님들은    얼마나 자랑스러운지도 알아야지   허리띠를 졸라매면서도   너희들을 출세시키려고   얼마나 많은 고생의 언덕을   넘어왔는지  너희들은 모르고 있을거야   예나 지금이나  너희들의 부모님들은   그냥 그토록  자랑스럽고 존경스러운거야   오늘날에   비록은 너희들의 곁을 떠나   타향에서 아픔도 설음도 고생도 그리움도 ...... 두려움없이 삼키면서 살아가는것이 오직 너희들을 위한거라는걸  너희들은 한번쯤 가슴으로  절실히 느껴보는것이 너무너무 바람직한거지  너희들은 부모님들에 대한 리해가  종이장보다도 얇은거지  그저 한국에 가면  돈이 허망에서 떨어지는줄로 알고   돈이 아까운줄도 모르고  그저 얄팍한 허영에 들떠  가벼운 순간을 만들지 말아야지  너희들의 부모님들은  설음을 누르고  고통을 참고  아픔을 삼키고  비애를 털어버리고  피로를 한잔의 커피에  묻어버리려고 모지름을  써가면서  오늘에 래일을 이어가는거야  저녁밥은 한컵의 라면으로  대충 에우고  곧바로 그 자리에서  피곤에 쓰러지는  모습을 너희들은  상상이나 해보았는지  그래도 해뜨는 아침이면  먼곳에서 웃는 너희들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또 하루의 피곤을 풀어가고있는거야  그것도 모르고  어쩌다 걸려오는 한통의 전화에   부질없는 욕심만 뿌려놓았지   그 순간   부모의 심정은 어떠했을지   너희들은 한번쯤   가슴에 손을 얹고   곰곰이 생각의 바줄을    풀어보자꾸나   하지만 절대로   눈물만은 흘리지 말아야지   눈물은 랑비이니깐.   이제부터 너희들은   눈물과 리별식을 하고   하루하루 보다 강한   모습을 만들어가야지   절대로 쉽게 흔들리는   그런 허줄한 모습을   만들어서는 안된다는것도   가슴 깊숙이 박아두자꾸나    후---   너희들은 너무너무   자랑스러운 존재야   그리고   너무너무 소중한 존재이지   너희들이 있어서   백의민족은 빛을 내는거고    너희들이 있어서     민족의 래일은      휘영청 밝아오는거야      오늘 이렇게      너희들에게      하고싶은 말을 선물이라는       바구니에 곱게 포장하여      드리고 싶구나       언제 어디서든      항상 너희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존재로      늘     너희들의 곁을      지켜가고 싶구나      힘들고 어려울때면      너희들에게       따스함을 꼭 선물할게       그리고       아프고 서러울때엔       꼭 나를 찾아주렴.           항상 너희들의 곁에서            너희들의 성장을 지켜보는             리창현 선생님으로부터                 2010년 6월 1일 이른새벽에
46    어제와 오늘 그리고 래일 댓글:  조회:1266  추천:25  2010-05-11
어제 오늘 그리고 래일    가끔 자신이 걸어온 삶의 토막들을 열심히 절리하면서 비여진 구석들에 뭔가를 채워보는것도 얼마나 즐거운 순간인지 모른다. 구겨진 곳들을 곱게 다림질도 하고 고인 아픔들이 이상한 악취를 풍기는 구석들은 깨끗이 청결도 하면서 자신의 삶의 비석을 겉치레보다는 실속있게, 가면보다는 진실적으로, 감춤보다는 드러냄으로 언제든 편안하게 세상을 마주하면서 해님보기에 한점의 미안함이 없도록 살아가는 자세로 삶의 쪼각들에 한점의 아름다움을 수놓아가려는 자세거 너무도 소중한것이 아닐가?!                               어제의 아침   마악 찌그러가는 헐망한 초가에서 리씨가문의 장손으로 고고성을 울렸다. 째지는 가난임에도 부모님들은 그래도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단다. 대를 이어가 줄기를 달고 온것만으로도 가문에는 최고의 경사였다고 한다. 기쁨의 파문이 크게 일지도 못하였는데 걱정이 불쑥 내 몸에서 튕겨나왔다고 한다. 비들비들 앓기 시작하면서 병원문앞을 제집 나들듯 했단다. 여하튼 강남의 모 병원의 의사들은 우리 부모님을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이만하면 병원은 내 삶을 이어줄수있는 또 다른 곳으로 되기시작한것이다. 여하튼 나는 병원의 물을 얼마나 먹었는지 모른단다. 오죽했으면 어느 의사가 나를 보기만 하여도 그 곱던 얼굴도 헝클어졌다고 한다. 여하튼 어제의 아침은 병원이 되려 나의 집으로 자리매김을 하였던것이다. 그래도 부모님들은 아이적에 많이 앓으면 커서 앓지 않는다는 저들만의 너무도 소박한 신몀 하나로 나에게 어제의 아침의 문을 열어주시느라 얼마나 고생을 하셨는지 짐작이 간다. 부모님보기에 너무너무 미안하다…                             어제의 점심   아침의 문이 닫기고 점심의 문이 빠끔히 열리면서부터 해님이 집안을 비추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나도 그렇게 애를 몰아오던 사람같지 않게 변하기 시작했단다. 부모님들의 얼굴에도 점차 그늘이 지워지고 웃음이 피여오르기 시작하였단다. 찌들던 초가에도 가끔 보람이 날아들기도 하였단다. 무엇보다도 스스로 열심히 공부에 집념하는 모습이 너무너무 자랑스럽다고 부모님들께서 먼 후에 옛말처럼 들려주셨다. 책읽기를 그렇게 좋아하는 저를 보면서 부모님들은 그 무슨 고생도 두렵지 않더란다. 그래서 없는 살림에도 옷견지보다는 책들을 많이 챙겨주었다고 하신다. 도깨비 기와장 번지듯이 읽은 책들이 언젠가는 나에게 큰 도움이 될거라면서 부모님들은 만족해 하셨단다. 뛰여난 총명이 아니다보니 노력은 나에게 운명적으로 다다서야만 한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어제의 점심은 집안의 가난을 돌려보내고 웃음이 남실거리며 다가서던 너무너무 소중했던 순간이기도 하였다. 비록 째지는 가난때문에 하고 싶은 공부를 끝까지 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언제나 부모님에 대한 고마움의 흔적은 유표하기만 하다. 당당한 인민교원으로 자랑스레 걸어가고 있으니깐.                                 어제의 저녁    어둠이 깔리는 저녁은 언제나 두려움을 실어오는 존재인가보다. 너무너무 힘들고 어려운 순간이 불청객처럼 문턱을 넘어섰다. 가는 곳마다에는 두려움과 설음이 머리를 쳐들고 나를 향해 활시위를 당기는듯하였다. 질투의 눈길속에서, 모종의 음모에 짖눌리우면서 방황비슷하게 어제의 저녁을 사로잡아야만 했다. 모든 차거움이 나를 위해 다가서는것만 같았다. 그리고 믿음도 꿈같은 존재로 나에게는 설음만 잔뜩 몰아오군 하였다. 지지리도 긴 어제의 저녁에는 눈물도 많이 쏟았다. 사람이 사람을 잡는 험악한 세상이라는 말의 함의를 체험하는듯한 순간이여서 얼마나 힘이 들고 아팠는지 모른다. 둔갑에 배척을 당하고 가면에 빠져들기도 하면서 힘든 어제의 저녁의 문을 닫는 순간 기쁨보다는 서글픔이 내 마음에 폭우처럼 쏟아져 내렸다. 맨 끝에 곱게 드리운 무지개가 나에게 최고의 안위로 다가서면서 고마운 분들의 부추김으로 나는 또 다시 보다 성숙된 자신을 만들게 되였다. 처음으로 하나님께 기도를 해보기도 하였다. 그 순간 하나님의 존재를 실감하는듯 하였다. 멀지 않은 곳에서 오늘의 아침이 나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반갑게 맞아주었다. 어지러운 꿈자리들을 시원스레 털어버리고 나는 성큼 오늘의 아침을 노크해본다.                                오늘의 아침    아침 해님마저 여느때와 달리 따스하게 느껴진다. 오랜만에 해님의 자애로움을 실감해보는것 같았다. 모든 사람들이 모두가 그렇게 고마웁고 모든 존재가 나를 위해 힘을 주었고 기쁨을 선물해주는듯하였다. 가는곳마다에는 믿음이 샘물처럼 퐁퐁 소수치면서 나를 위해 박수를 쳐준다. 얼어붙었던 마음이 어느 순간엔가 봄눈처럼 녹아버리면서 얼룩진 흔적들을 하나 둘 뜯어버린다. 가벼워지는 마음을 달래면서 나는 또다시 새롭게 오늘의 아침과 함께 오매에도 가고싶던 마음의 천국의 계단을 볿게 되였다. 모든 낯선 사람들이건만 하나같이 미소를 심어주면서 도움의 손길을 말없이 보내주는 순간이여서 고마움은 날로 짙어만 갔다. 비록 생소한 곳이기는 하였지만 믿음이 녹아내리고 인정이 흐르는 곳이여서 조금도 타향같은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마음은 또 다시 윤기가 흐르고 발걸음도 한결 가벼워진다. 오늘의 아침을 선물한 고마운 분들께 절이라도 올리고 싶은 심정으로 나는 오늘도 평범한 자신을 열심히 갈구면서 삶의 터전에 씨앗을 뿌린다. 오늘의 아침에 한점의 부끄럼이 없도록, 오늘의 아침 해님보기에 한점의 미안함이 없도록 열심히 살련다.                                               녕안시조선족소학교 리창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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