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창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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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여름이면 남자들의 눈이 분주하다 댓글:  조회:981  추천:21  2010-04-18
여름이면 남자들의 눈이 분주하다      아마도 남자라면 거개가 여름을 무척이나 반가워할것이다. 그가운데서도 찌는듯한 여름을 더 기다리기도 할것이다. 여름이면 남자들의 눈은 풍년이들기때문이다. 온 겨울 허기진 마음을 마음껏 풍요롭게 가꿀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한것이다. 꽁꽁 닫겨진 메마른 마음들이 여름의 시작으로 하여 촉촉히 젖어오는 그 순간만큼 행복한 순간은 더 찾아볼수가 없을것이다. 그래서 남자들은 여름의 더위를 싫어하지 않는다. 조금은 덥다할지라도 마음은 늘 부자여서 얼마나 즐거운지 모른다. 잘생긴 남자든 못생긴 남자든 구분이 없이 그처럼 공평하게 베푸는 여름의 너그러움 앞에서 남자들은 풍년의 결실을 마음껏 누리면서 삶에 이채를 돋군다.    여름의 거리는 남자들의 눈길을 사정없이 붙잡아둔다. 여기저기에 꽃같이 피여난 녀성들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남자들의 세계는 너무너무 다채롭다. 그래서 여름의 길가에는 앉아있는 남자들의 모습을 많이 볼수있는것이다. 시원한 그늘아래에서 여름이 그려낸 아름다운 모습들을 흔상하면서 부푸는 마음도 살며시 달래느라면 아마도 잠간사이에 몇년은 젊어지는듯한 기분이기도 할것이다. 가끔은 눈이 두개밖에 없는것으로 안타까움을 느끼기도 할것이다. 여기저기에서 나타나는 아름다운 순간들을 채 흔상하기도 전에 또 다른 대담한 개성의 모습들이 눈앞에 안개처럼 피여오른다. 그러느라면 눈은 언녕 개성이 있는 모습을 선택하느라 여간 분주하지 않다. 여름이면 녀자들은 남자들에게 얼마나 큰 공헌을 하는지 모른다. 알맞게 받쳐입은 옷 만으로도 남자들에게는 얼마나 큰 고마움인지 모른다. 거기에 좀 더 대담하게 로출을 한다면 남자들은 아마도 여름의 계절속에 파묻혀 영영 꿈을 꿀지도 모른다. 아무리 좀은 야하게 옷을 받쳐 입었다 할지라도 남자들이 봐주지 않으면 그 만큼 고통스러운 순간도 없을것이다. 그러니 남자들만 녀자들에게 고마움을 간직할것이 아니라 녀성들도 남성들에게 고마움을 간직해야 한다. 보는 사람이 없으면 미란 근본 산생할수 없는것이기에 그래도 녀성들의 미를 공평하게 평가하는데는 남자들의 눈길이 가장 바람직할것이다. 아마도 녀성들은 남성들의 눈길이 머무는 차수에 따라 자신감도 생겨날것이고 미의 농도도 높아갈것이라는 부질없는 생각을 해본다. 그래서 남자들은 더위를 퍼붓는 여름의 낮을 기다리기도 한다. 조금은 분주하다 할지라도 어쩌면 그것이 인생의 또 다른 멋일지도 모르니깐.    여름의 거리엔 미운 녀자가 따로 없다. 서로 개성이 독특한 옷차림을 하고 거리를 아름답게 장식하는 녀성들의 모습은 어찌보면 이슬을 머금고 금방 피여난 한송이의 꽃과도 흡사하다. 촉촉히 물기어린 그 모습들을 지켜보느라면 녀성의 존재가 인간세상에 주는 고마움을 스스로도 얼마든지 짐작을 할수가 있는것이다. 여름의 길을 걸어가는 남자치고 앞만 보는 남자는  어느 정도 병신취급을 받아야 할것이다. 알맞게 로출시킨 녀성이 자기를 쳐다보지 않는 남자를 아마도 한참은 아니꼽게 생각할것이다. 그러면서 입을 비쭉거리며 <<병시같은 놈!>>하고 속으로 비웃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깐 녀성들은 정성껏 알맞게 로출을 하는것이고 고맙게 그것을 봐주는것이 남자의 몫이라는 견해이다. 눈길 한번 더 줌으로써 녀성들은 신심이 생길것이고 남성들은 즐거움이 물씬거릴것이다.    가끔은 어느것을 봐야할지 선택이 어려운 경우도 없는것은 아니다. 이 쪽도 보고 싶고 저 쪽도 보고 싶은 그런 안타까운 순간들을 많이 겪게 된다. 그래서 이쪽 저쪽 눈길을 돌리느라면 자연 눈은 분주해지기 마련이다. 다행이도 눈은 선택을 아주 묘하게 하다보니 아쉬움은 그래도 없다는 생각이여서 눈에 항상 고마움을 간직한다. 특별히 인물이 고운 녀성이 로출도 대담하게 한 모습을 보느라면 눈은 얼마나 분주한지 모른다. 그냥 보고 또 봐도 그렇게 보고 싶은 심정이여서 마음은 언녕 부자가 되여 행복의 언덕에서 나름대로 물결치군 한다. 가끔 눈길이 마주쳐면 슬쩍 피하는 그 순간도 얄밉지가 않아서 좋은것이다. 자신을 그렇게 열심히 봐주는 남자의 존재로 아마도 녀성은 겉으로는 어쩔는지 몰라도 속으로는 언녕 만족의 포물선을 치마자락에 그을것이다. 그러면서 약간은 부끄러움같은것을 탄 남자의 얼굴을 슬며시 보면서 속으로는 <<내가 그렇게 아름다워?!>>하면서 악의없는 눈길을 던지기도 하는것이다. 그 순간적으로 더 자신있게 걸어가는 뒤모습을 보게 되는것이다. 하지만 가끔은 어느 정도 눈도 마음의 지배를 받으면서 분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작정 분주하다보면 타인에게 불편함을 만들수 있으니 좀은 점잖게 분주한것이 남자의 매력이 아닐가?! 그냥 뚫어지게 보지만 말고 잠간은 쉬여가면서 옳바른 마음가짐으로 분주함을 선택하는것이 자신도 그렇고 타인도 편안한것이다. 여름이면 남자들의 눈은 정말 분주하다. 그만큼 남자들의 눈은 풍년이 든것이다. 남자들에게 풍년을 선물하는 여름이 나는 너무너무 반갑다. 나 뿐만 아니라 하늘 아래 모든 남성들이 다 그토록 반가와 할것이고 즐거워 할것이다. 그러니 녀성들도 어느 정도 로출을 시키면서 불쌍한 남성들에게 다소 순간의 아름다움일지라도 너그럽게 그리고 편안하게 선물해준다면 그 이상 더 고마울게 또 무엇이랴!   오늘도 나는 분주해지는 눈을 달래면서 삶의 향기에 취하고 싶다. 불어오는 여름바람이 그토록 싱그러운줄도 오늘 나는 거리의 한 모퉁이에서 열심히 만끽하고 있다. 부푸는 가슴을 안고 날로 살찌워가는 내 인생에 다시금 희열을 느낀다, 만족을 느낀다, 행운을 느낀다…            흑룡강성 녕안시 동경성진조선족소학교 리창현
44    교육이냐?! 둔갑이냐?! 댓글:  조회:1124  추천:40  2010-02-03
교육이냐?!  둔갑이나?!       며칠전 친구들과 함께 저녁밥을 먹다가 들은 한마디에 가슴이 철렁해남을 피할수가 없었다. 그것도 어느 친구의 술을 마신후의 실수같은 소리라면 다소 인차 잊어지련만 그것도 아니고 말쑥한 정신에 정색해서 하는 한마디여서 그저 스쳐지날 소리가 아님을 절실히 느끼게 되였다. 그 친구의 말을 그대로 옮긴다면 <<요즘 사회적으로 가장 미워하는 직업이 두가지 종류인데 하나는 의사이고 다른 하나는 교원이야! 정말 어찌보면 가장 나쁜 사람이란 말이다.>>이다. 그 친구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옆의 친구가 해석을 하느라고 바삐 돌아쳤다. 거기엔 아무런 해석도 필요가 없었다. 해석을 클수록 어딘가 많이 어색하기만 하였다. 빙 둘러보니 그 술상에는 교원이 나뿐이였다. 어딘가 좀 언짢은 생각이 들어서 왜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나보기가 좀 미안한지 그저 머리만 저을뿐 말이 없었다. 아마 그이도 내가 교원인줄을 모르고 그저 마음속의 말을 그대로 쏟았다는 생각으로 그 말에 대한 호기심은 점점 커가기만 하였다. 그래서 나를 상대로 한 말이 아님을 내가 잘 알고 있으니 미안할것도 없으니 마음속의 생각을 좀 들어보자고 했더니 그제야 얼굴이 돌아서면서 속을 털어놓았다. 내가 의사와는 상관이 없으니 교원에 대하여서만 말을 해달라고 했더니 자신이 직접 겪은 일이라면서 자신있게 입을 열었다. 술상은 어느사이 그 친구의 강좌로 탈바꿈을 하고 모두가 하나같이 귀를 기울이고 듣고 있었다. 문제는 많은 친구들의 그이의 말에 하나같이 동감을 표시하면서 머리를 끄덕이면서 열심히 들어주는것이였다. 빠질데없이 하나 하나 례를 들어가면서 이야기하는것이 실로 부정할수 없는 현실임을 절감하게 되였다. 그의 말을 들으면서 우리 민족의 교원들도 저럴수가 있을가?!하는 생각이 늘 머리속에서 의문스럽게 맴돌이치군 하였다. 더 놀라운것은 그 친구한사람뿐만 아니라 여기저기에서 자신도 그런 경험이 있다면서 함께 손벽을 치는것이였다. 어느덧 허전함이 마음에 풍랑을 일으키면서 자신을 괴롭히기 시작하였다. 그날 술상에서 들은 말들을 대체로 종합하면 아래와 같이 몇가지로 갈라 볼수 있었다. 첫째: 많은 교원들이 돈에 눈이 어두워지기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다시마하면 교육자가 교육학을 연구하는것이 아니라 경제학을 연구하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일부 교원들은 학생들이 숙제를 자기네 집에 와서 할것을 요구한다는것이다. 그래야만 숙제에서 어렵고 힘든 문제를 교원과 함께 해결하면 쉽게 숙제를 완성할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만 그치면 참으로 훌륭한 교원이라고 평판이 가지만 그게 아니라 매달 숙제를 하는데 비용이 근 100원정도에 머문다는것이다. 실상 애가 집에서 숙제를 해도 얼마든지 해낼수 있는데 그렇게 할수가 없다는것이다. 담임선생이 자꾸 전화를 걸어와서 될수록이면 자기네 집에 와서 해라니 울며 겨자먹기 일수밖에 없다는것이다. 후에 알고 보니 절대다수의 학생들이 모두 담임선생네 집에가서 숙제를 한다는것이다. 그러면서 그 틈새에서 자신의 리익의 그릇을 챙기는 셈이다. 정말 꿩먹고 알먹는격이 아닐수 없다. 이 말에 많은 친구들이 술상에서 자신들도 그렇게 방법없이 당하고 있다는것이다. 그런것은 해당 부문의 규률검사위원회에 고발을 하면 즉시로 해결이 된다고 슬쩍 귀띔을 했더니 애가 잘못 걸릴가봐 그러지는 못하고 있다는것이 실로 걱정스럽고 안타까운 일이였다. 슬그머니 수판을 때려보니 로임외에도 수입이 상당한걸로 짐작이 인츰 가는것이였다. 우리 민족 교육에도 이런 문제가 존재하는지는 몰라도 실로 걱정스럽고 민족의 래일이 아타깝기만 하다. 교육가가 경제학을 연구한다면 우리의 교육은 구경 어디로 가야 할가?! 둘째: 많은 교원들이 가면을 뒤집어 쓰고 게바른 말만 한단다.    우리 교원들의 이미지가 언제부터 이렇게 뒤집혀 졌는지는 확실하게 모르지만 참으로 문제가 아닐수 없다. 가끔 교원을 찾아가서 아이의 상황을 알아보려면 결점은 근본 말하지도 않고 그저 좋은 말만 쏟아내는데 리해가 안되고 의심스럽단다. 스스로 자신의 애를 알고도 남음이 있는데 어찌 그렇게 훌륭할가 의심이 선단다. 가장들앞에서 애들을 대하는 태도는 천사보다도 더 살갑고 인정스럽단다. 하지만 애하구 슬그머니 옆구리를 쳐서 물어보면 애가 두눈이 휘둥그래서 어이없어 한단다. 요즘 교원들이 왜 이모양인지 정말 리해가 안간다. 어데서 배운 재주인지 아니면 우리의 교육에 확실히 문제가 생겼는지 안타까운 일이 아닐수 없다. 교원은 가장과 절대로 거짓으로 말해서는 안된다. 가장도 어느정도 알아야 교육이 가능한데 모두 감춰버리고 가면만 들어내고 있으니 구경 무엇을 어쩌자는건지 납득이 안 간다. 실상 교원은 그 누구보다 솔직해야 하는데 그렇지가 못하고 점점 겉과 속이 다른 자신을 만들어 가고 있으니 교육의 진속은 어떻게 될려는지 근심스럽다. 한 친구는 말을 하면서 얼굴까지 벌겋게 상기되여 있었다. 그걸 지켜보는 자신도 얼마나 망신스러운지 몰랐다. 진정 교원들의 형상을 해부해야 할 때가 된것같다. 진정 교원의 속성을 알아보려면 그래도 오늘 같은 이런 자리에서야만 거짓없는 진소리를 들을수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신성한 교육이 가면에 짖눌리운다면 우리의 교육은 구경 어디로 가야 할가?! 셋쨰: 진정 자신을 헌신하는 교원을 점점 찾아보기가 어렵단다.   일부 교원들은 이젠 헌신을 일종의 뭐로 생각하고 될수록이면 자신과 거리를 멀리 하려고 잡도리를 하고 있다는것이다. 그리고 진정 훌륭한 교원들이 자신을 헌신하는 고상한 모습들은 가끔 비웃음을 받는 그런 노릇으로 되기도 한단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현실이기도 하다. 정말 요즘에 자신을 헌신하는 그런 모습을 찾아보기가 너무도 어렵다. 모두가 그저 얼렁뚱당 맞춰가면서 자신의 로임이나 알뜰하게 챙기면 끝나는 줄로 착각하고 있으니 교육은 구경 어떻게 돌아갈려는지 근심스럽다. 몇년전까지만 하여도 자신을 헌신하면서 교육서업에 최선을 다하는 그런 아름다운 풍경들을 교정에서 쉽게 볼수가 있어서 얼마나 마음이 흐뭇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요 근년에 들어서서부턴 그런 모습들을 찾아보기가 참으로 힘들다는 말이다. 교원의 헌신을 떠난 교육은 아무런 성과도 기약할수가 없는것이다. 그저 어찌는척하지말고 좀 자신을 헌신하면서 사업을 열심히 해봤으면 얼마나 좋을가 하는 걱정도 가져본다. 그리고 부질없는 질투같은 더러운 노릇은 그만하고 그저 입으로만 쪼아대지 말고 좀 행동으로 애들에게 뭔가를 알뜰하게 가르치는 그런 모습을 갖췄으면 하는 간절한 바램이다. 해놓은 일은 얼마 안되도 입만 많이 놀리면서 령도들에게 해해거리면 공로가 있는것이 아니다. 교육은 장난이 아니다. 더우기 민족교육은 민족의 생존여부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너무도 자랑스러운 사업이다. 교육이 황페해지면 그 민족의 앞날도 멀지 않음을 암시해주는것이다.  우리 민족교육에는 제발 이런 현상이 존재하지 말았으면 하는 간절한 바램이다. 가령 존재한다면 제발 고쳤으면 하는 기대이다.   참으로 걱정스럽다. 교육이 걱정스럽다. 민족의 래일이 걱정스럽다.
43    교육이냐?! 둔갑이냐?! 댓글:  조회:1062  추천:47  2010-02-03
교육이냐?!  둔갑이나?!       며칠전 친구들과 함께 저녁밥을 먹다가 들은 한마디에 가슴이 철렁해남을 피할수가 없었다. 그것도 어느 친구의 술을 마신후의 실수같은 소리라면 다소 인차 잊어지련만 그것도 아니고 말쑥한 정신에 정색해서 하는 한마디여서 그저 스쳐지날 소리가 아님을 절실히 느끼게 되였다. 그 친구의 말을 그대로 옮긴다면 <<요즘 사회적으로 가장 미워하는 직업이 두가지 종류인데 하나는 의사이고 다른 하나는 교원이야! 정말 어찌보면 가장 나쁜 사람이란 말이다.>>이다. 그 친구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옆의 친구가 해석을 하느라고 바삐 돌아쳤다. 거기엔 아무런 해석도 필요가 없었다. 해석을 클수록 어딘가 많이 어색하기만 하였다. 빙 둘러보니 그 술상에는 교원이 나뿐이였다. 어딘가 좀 언짢은 생각이 들어서 왜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나보기가 좀 미안한지 그저 머리만 저을뿐 말이 없었다. 아마 그이도 내가 교원인줄을 모르고 그저 마음속의 말을 그대로 쏟았다는 생각으로 그 말에 대한 호기심은 점점 커가기만 하였다. 그래서 나를 상대로 한 말이 아님을 내가 잘 알고 있으니 미안할것도 없으니 마음속의 생각을 좀 들어보자고 했더니 그제야 얼굴이 돌아서면서 속을 털어놓았다. 내가 의사와는 상관이 없으니 교원에 대하여서만 말을 해달라고 했더니 자신이 직접 겪은 일이라면서 자신있게 입을 열었다. 술상은 어느사이 그 친구의 강좌로 탈바꿈을 하고 모두가 하나같이 귀를 기울이고 듣고 있었다. 문제는 많은 친구들의 그이의 말에 하나같이 동감을 표시하면서 머리를 끄덕이면서 열심히 들어주는것이였다. 빠질데없이 하나 하나 례를 들어가면서 이야기하는것이 실로 부정할수 없는 현실임을 절감하게 되였다. 그의 말을 들으면서 우리 민족의 교원들도 저럴수가 있을가?!하는 생각이 늘 머리속에서 의문스럽게 맴돌이치군 하였다. 더 놀라운것은 그 친구한사람뿐만 아니라 여기저기에서 자신도 그런 경험이 있다면서 함께 손벽을 치는것이였다. 어느덧 허전함이 마음에 풍랑을 일으키면서 자신을 괴롭히기 시작하였다. 그날 술상에서 들은 말들을 대체로 종합하면 아래와 같이 몇가지로 갈라 볼수 있었다. 첫째: 많은 교원들이 돈에 눈이 어두워지기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다시마하면 교육자가 교육학을 연구하는것이 아니라 경제학을 연구하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일부 교원들은 학생들이 숙제를 자기네 집에 와서 할것을 요구한다는것이다. 그래야만 숙제에서 어렵고 힘든 문제를 교원과 함께 해결하면 쉽게 숙제를 완성할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만 그치면 참으로 훌륭한 교원이라고 평판이 가지만 그게 아니라 매달 숙제를 하는데 비용이 근 100원정도에 머문다는것이다. 실상 애가 집에서 숙제를 해도 얼마든지 해낼수 있는데 그렇게 할수가 없다는것이다. 담임선생이 자꾸 전화를 걸어와서 될수록이면 자기네 집에 와서 해라니 울며 겨자먹기 일수밖에 없다는것이다. 후에 알고 보니 절대다수의 학생들이 모두 담임선생네 집에가서 숙제를 한다는것이다. 그러면서 그 틈새에서 자신의 리익의 그릇을 챙기는 셈이다. 정말 꿩먹고 알먹는격이 아닐수 없다. 이 말에 많은 친구들이 술상에서 자신들도 그렇게 방법없이 당하고 있다는것이다. 그런것은 해당 부문의 규률검사위원회에 고발을 하면 즉시로 해결이 된다고 슬쩍 귀띔을 했더니 애가 잘못 걸릴가봐 그러지는 못하고 있다는것이 실로 걱정스럽고 안타까운 일이였다. 슬그머니 수판을 때려보니 로임외에도 수입이 상당한걸로 짐작이 인츰 가는것이였다. 우리 민족 교육에도 이런 문제가 존재하는지는 몰라도 실로 걱정스럽고 민족의 래일이 아타깝기만 하다. 교육가가 경제학을 연구한다면 우리의 교육은 구경 어디로 가야 할가?! 둘째: 많은 교원들이 가면을 뒤집어 쓰고 게바른 말만 한단다.    우리 교원들의 이미지가 언제부터 이렇게 뒤집혀 졌는지는 확실하게 모르지만 참으로 문제가 아닐수 없다. 가끔 교원을 찾아가서 아이의 상황을 알아보려면 결점은 근본 말하지도 않고 그저 좋은 말만 쏟아내는데 리해가 안되고 의심스럽단다. 스스로 자신의 애를 알고도 남음이 있는데 어찌 그렇게 훌륭할가 의심이 선단다. 가장들앞에서 애들을 대하는 태도는 천사보다도 더 살갑고 인정스럽단다. 하지만 애하구 슬그머니 옆구리를 쳐서 물어보면 애가 두눈이 휘둥그래서 어이없어 한단다. 요즘 교원들이 왜 이모양인지 정말 리해가 안간다. 어데서 배운 재주인지 아니면 우리의 교육에 확실히 문제가 생겼는지 안타까운 일이 아닐수 없다. 교원은 가장과 절대로 거짓으로 말해서는 안된다. 가장도 어느정도 알아야 교육이 가능한데 모두 감춰버리고 가면만 들어내고 있으니 구경 무엇을 어쩌자는건지 납득이 안 간다. 실상 교원은 그 누구보다 솔직해야 하는데 그렇지가 못하고 점점 겉과 속이 다른 자신을 만들어 가고 있으니 교육의 진속은 어떻게 될려는지 근심스럽다. 한 친구는 말을 하면서 얼굴까지 벌겋게 상기되여 있었다. 그걸 지켜보는 자신도 얼마나 망신스러운지 몰랐다. 진정 교원들의 형상을 해부해야 할 때가 된것같다. 진정 교원의 속성을 알아보려면 그래도 오늘 같은 이런 자리에서야만 거짓없는 진소리를 들을수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신성한 교육이 가면에 짖눌리운다면 우리의 교육은 구경 어디로 가야 할가?! 셋쨰: 진정 자신을 헌신하는 교원을 점점 찾아보기가 어렵단다.   일부 교원들은 이젠 헌신을 일종의 뭐로 생각하고 될수록이면 자신과 거리를 멀리 하려고 잡도리를 하고 있다는것이다. 그리고 진정 훌륭한 교원들이 자신을 헌신하는 고상한 모습들은 가끔 비웃음을 받는 그런 노릇으로 되기도 한단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현실이기도 하다. 정말 요즘에 자신을 헌신하는 그런 모습을 찾아보기가 너무도 어렵다. 모두가 그저 얼렁뚱당 맞춰가면서 자신의 로임이나 알뜰하게 챙기면 끝나는 줄로 착각하고 있으니 교육은 구경 어떻게 돌아갈려는지 근심스럽다. 몇년전까지만 하여도 자신을 헌신하면서 교육서업에 최선을 다하는 그런 아름다운 풍경들을 교정에서 쉽게 볼수가 있어서 얼마나 마음이 흐뭇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요 근년에 들어서서부턴 그런 모습들을 찾아보기가 참으로 힘들다는 말이다. 교원의 헌신을 떠난 교육은 아무런 성과도 기약할수가 없는것이다. 그저 어찌는척하지말고 좀 자신을 헌신하면서 사업을 열심히 해봤으면 얼마나 좋을가 하는 걱정도 가져본다. 그리고 부질없는 질투같은 더러운 노릇은 그만하고 그저 입으로만 쪼아대지 말고 좀 행동으로 애들에게 뭔가를 알뜰하게 가르치는 그런 모습을 갖췄으면 하는 간절한 바램이다. 해놓은 일은 얼마 안되도 입만 많이 놀리면서 령도들에게 해해거리면 공로가 있는것이 아니다. 교육은 장난이 아니다. 더우기 민족교육은 민족의 생존여부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너무도 자랑스러운 사업이다. 교육이 황페해지면 그 민족의 앞날도 멀지 않음을 암시해주는것이다.  우리 민족교육에는 제발 이런 현상이 존재하지 말았으면 하는 간절한 바램이다. 가령 존재한다면 제발 고쳤으면 하는 기대이다.   참으로 걱정스럽다. 교육이 걱정스럽다. 민족의 래일이 걱정스럽다.
42    잃어가는 서글픔 다가서는 잔잔한 아픔 댓글:  조회:885  추천:11  2010-02-03
잃어가는 서글픔에 다가서는 잔잔한 아픔     며칠전 웃쪽의 어금이가 아파서 치과의사를 찾아갔더니 간단한 검진을 거친후 별로 필요한 이가 아니니 뽑아버려도 무방하다고 하였다. 좀은 이상한 느낌이 였어도 의사를 찾아온 이상 서로의 배합이 중요하다는 상식쯤은 알고 있는지라 의사의 분부대로 뽑아버리려고 작심을 하였다. 순간 허전함이 밀려오면서 별스럽게 자신을 괴롭히는것이였다. 그래서 의사보고 될수록이면 남겨두면 안되겠는가고 사정비슷하게 한마디 했더니 전혀 필요가 없는 이발이니 아예 뽑아버리면 금후에도 많이 편하다면서 자신의 의견을 굽히려고 하지 않았다. 낯선 사람도 아니고 평소에 꽤나 서로 거래를 하는 사이이다보니 별로 의심이 필요없었다. 그래서 크게 결심을 내리고 뽑아버리기로 작심을 하였다. 좀은 두려움이 다가서기도 하였으나 용기를 내여 참느라고 애를 써봤으나 끝내는 비명비슷한 소리를 저지르고 말았다. 내가 아무리 어떻게 소리를 지르건 말건 의사는 추호의 양보도 없이 무정하게 이발을 뽑기에만 열심히 하는것이였다. 한참동안의 모지름속에서 하아얀 이발이 내 몸에서 떨어져 나왔다. 의사가 버리려는 것을 내가 받아쥐고 열심히 뜯어보았다. 뿌리에 벌건 피가 묻은 이발을 받아쥐고 이리저리 보느라니 이름못할 아픔들이 잔잔히 괴여올랐다. 뿌리의 오른쪽에 큰 구멍 하나가 보기흉하게 뚤려있었다. 내가 이발을 쥐고 망설이는 모습을 지켜보던 의사는 이상한 눈길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면서 평소에 이발을 잘 보호하였더라면 아직도 몇십년은 문제없을 것이라면서 질책비슷하게 말하는것이였다. 그 말을 듣노라니 노여움보다는 고마운 마음이 더 진하게 다가섰다. 허전해하는 나를 지켜보면서 다른 사람들은 아픈이를 뽑아버리면 좋아하는데 당신은 왜서 그렇게 허전해하는가 하면서 리해가 안되는듯이 물어오는것이 였다. 나는 뽑은 이발을 종이에 곱게 포장해가지고 병원을 나섰다. 아픔이 괴여오르며 슬픔의 골짜기로 빠져가는 자신을 속일수 없었다. 순간 사유의 언덕에서 나름대로 머리를 쳐들고 물결치듯 다가서는 질책에 머리를 숙인채 무거운 발걸음을 내 딛는수밖에 없었다. 그렇다! 이발이 생생할적에는 근본 존재의 중요성에 대하여 전혀 모르고 살아온것이다. 이제 내 몸의 중요한 부분을 잃어가는 서글픔앞에서 다시금 자신을 무정하게 바로 세워본다. 사람의 가장 큰 흠이 바로 존재에 대하여 항상 망각하고 살아가는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아프게 허리를 펴면서 일어선다. 그래서 <<있을 때 잘해>>라는 노래도 생겨난것이 아닐가 하는 생각도 가져본다. 자신의 몸뿐만 아니라 지금 내가 소유하고 있는 모든 존재들에 다시금 그 중요성을 절감하면서 소중히 여기고 간직하려는 생각들이 호주머니에 꼬옥똑 채워진다. 우선은 몸의 모든 부분들에 최고의 관심을 돌리면서 될수록이면 그들의 존재에 보다 긴 연장선을 긋는 자세를 갖춰야 겠다. 순간 순간에 항상 몸의 존재들에 고마움을 간직하면서 그들에게 한점의 미안함이 없도록 최선을 다 해야겠다. 그 어느 부분이라도 고장이 생기기전에 미리 열심히 보듬어주는 그런 자세를 가져야 겠다. 건강할때 소중함을 아는 그런 재주도 가꾸고 존재앞에서 항상 고마운 마음을 지녀야겠다. 잃어야 하는 그 순간에 후회의 채찍을 들지 말고 늘 내 몸을 지켜가고 있는 모든 존재들에 미안함이 없도록 게으름을 버려야겠다.  그리고 내가 소유하고 있는 가족의 소중함에 대하여서도 바른 마음을 세워야 겠다. 부보님들의 존재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나의 눈동자처럼 아끼고 소중히 여겨야 겠다. 잃고난후에 가슴을 찢는 그런 고통을 좀이라도 적게 받으면서 살아 있을적에 보다 한점의 효도라도 알뜰하게 올려야겠다. 가끔은 불효를 저지르기도 하지만 이 순간부터는 그런 모습을 보이기싫다. 자식된 도리도 열심히 배우면서 부모님들의 존재하는 그 마지막 한순간까지 효성의 그릇을 열심히 닦으련다. 그리고 형제지간에도 돈보다는 인정을 더욱 돈독히 다져가면서 좀은 가난하더라도 서로의 화목에 게으름을 피우지 말아야겠다. 없으면 없는대로 편하게 살지라도 절대로 형제간에 눈을 마주치거나 마음을 부딪치는 그런 상처를 주고 싶지 않다. 가령 돈이 좀 있다고 허튼소리를 치거나 잘난척하는 형제가 있다하더라도 무작정 미워하거나 배척하지 않고 될수록이면 보다 긴 시간을 주어 스스로 깨치도록 해야겠다. 그리고 자신이 좀 어렵다할지라도 형제들이 도움을 빌리면 절대로 허망하게 행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여 도와주어야겠다. 무엇보다 서로의 존재의 중요성에 대하여 바르게 인식하면서 가문의 화목에 자신의 몫을 열심히 해야겠다. 그리고 부부간에도 서로의 소중함을 간직하면서 보다 건전한 가정을 꾸려나가기에 최선을 쏟아야겠다. 티끌만한 일에 눈을 붉히거나 마음에 상처를 주지않고 보다 너그러운 마음의 자세를 바로 세우고 지구의 축소판인 가정을 열심히 가꿔가야겠다. 서로의 리해에 보다 힘을 부여하면서 절대로 마음에 불필요한 상처같은것을 심지 않도록 노력을 해야겠다. 서로가 서로의 아픔을 보듬어 주는 그런 존재로 다가서면서 항상 편하고 따스한 그런 가족을 꾸미기에 이 순간부터 노력을 해야겠다. 그리고 이웃간에도 불필요한 언성을 만들지 않고 언제든 서로 도우면서 화목한 이웃을 만들어가기에 부지런해야겠다. 서로 돕고 서로 관심하는 그런 다정다감한 이웃을 만들어 삶에 보다 이채를 돋구어가야겠다. 그리고 동료간에도 허줄한 모습을 만들지 말고 항상 리해를 앞에 세우면서 깨끗한 감정의 뚝을 쌓아가야 겠다. 그 누구를 시기하거나 질투하는 따위는 전혀 버리고 항상 믿어주고 받쳐주는 그런 존재를 만들어가야겠다. 서로의 존재에 항상 고마움을 간직하면서 서로 돕고 관심하는 그런 분위기를 조성하여 하는 사업에 보다 큰 힘으로 다가서야겠다. 낯 모를 사람일지라도 도움을 청하면 선뜻이 다가서는 그런 모습을 만들고 싶다.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자그마한 도움이라도 주면서 얼어든 마음을 다소 녹여주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모든 존재에 대하여 항상 고맙게 생각하면서 소중히 여기는 그런 자세를 갖추면서 살아가는 세상에 한점의 아름다움이라도 선물해야겠다. 여직 존재의 중요성에 대하여 가끔 착각하고 살아오긴 하였어도 이 순간부터는 열심히 노력하고 뛰여야겠다. 언제든 미안함이 없도록 그런 인생을 살아야겠다.  그리고 금방 뽑은 이발을 하아얀 종이에 곱게 싸서 잘 간수해야겠다. 항상 나의 곁에서 바르게 인도하는 그런 존재로 남겨야겠다. 그리고 존재의 소중함에 대하여 보다 깊이 절감하고 자신을 바르게 인도하면서 살아가는 길에 보다 아름다운 추억을 깔아두어야겠다……
41    존재의 리유 댓글:  조회:938  추천:43  2010-01-30
존재의 리유   하늘은 우리에게 너무도 성스러운 존재입니다. 하늘은 우리에게 참으로 고마운 존재입니다. 하늘은 우리에게 그야말로 귀중한 존재입니다. 하늘은 우리에게 너무도 많은것을 가르쳐줍니다. 곱고 바른 마음은 살찌워가라고 조용히 타이릅니다. 욕심이나 질투같은것은 미련없이 버리라고 가르칩니다. 착하고 선한 마음은 열심히 가꿔가라고 타이릅니다. 악하고 흉한 모습은 한시급히 버리라고 가르칩니다. 하늘의 뜻을 이어가는 결백하고 순결한 존재로 하늘 향한 이 마음 일편단심 가꿔가련다. 하늘의 고마운 존재앞에서 오늘도 나는 삶의 씨앗을 열심히 뿌리련다…
40    고향을 찾은 아이들 댓글:  조회:747  추천:22  2010-01-29
고향을 찾은 아이들     봄날의 교정은 말 그대로 생기가 흘러넘쳤다. 운동장은 어느새 파아란 새싹들이 고운 잔디를 펼치고 있었고 버드나무에도 봄아씨가 한창 록색물감을 열심히 칠하고있었다. 애들의 몸에도 어느덧 봄날의 생각들이 여기저기에서 뾰족뾰족 머리를 쳐들고 있었다. 저어기 봄아씨가 아지랑이를 몰고 사뿐사뿐 춤을 추며 어디론가 사라진다. <<따르릉- 따르릉->> 상학종소리가 귀맛좋게 봄날의 꿈을 부른다. 운동장은 다시금 들끊기 시작한다. 교실안에만 꽁꽁 갖혀있던 애들이 신나게 모든 두려움을 깡그리 버린채 즐겁게 뛰논다. 영수네 반급 아이들은 저마다 자기가 즐기는 놀음에 정신이 팔려 하냥 즐겁기만 하였다. 하지만 영수는 아무말도 없이 그늘진 구석쪽에 웅크리고 앉아 파아란 하늘만 멍하니 쳐다본다. 어느새 제비 한마리가 영수의 시야에 끼여들었다. 영수는 자유롭게 날아예는 제비를 바라보며 빙그레 웃음을 띄웠다. 그리고 제비가 시야를 벗어날때까지 머리를 돌려가며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얘, 영수야 넌 뭘하고있어? 어서 이리와서 놀음이나 놀렴. >>  딱친구 철남이가 싱글거리며 영수에게로 다가왔다. 영수는 빙그레 웃으며 일어섰다.   << 야, 철남아 이제 어문시간에 배운 <고향>말이야, 너는 무슨 생각이 떠오르나.>> 고 말하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뭐? 아, <고향>말이지. 그래 고향을 사랑하겠다는 생각이 전보다 많이 생겼어.>> 철남이는 시원한 그늘쪽으로 영수를 끌었다. << 얘, 영수야 네 고향은 어디지?>> 문득 철남이가 물어왔다.  <<나도 잘 몰라. 구경 내고향이 어딘지…>> 영수는 끝말도 채 맺지 못하고 부끄러운듯이 고개를 살며시 기울였다.  <<철남아, 그럼 네 고향은 어디니? >>  <<응, 나도 잘모르겠다. 여하튼 무슨 촌이라고 하던데.>>  철남이는 머리를 극적이며 어딘가 쑥스러운 기색이 였다. <<글쎄말이다, 우리가 얼마나 부끄러운 일이니? 자기의 고향도 잘 모르니! 나는 오늘 어문시간에 참으로 얼굴이 뜨겁더구나. 선생님이 나더러 고향에 대해 말해보라고 시킬가봐 얼마나 걱정했는지 몰라. 다행히도 …>>   영수는 어딘가 슬픔의 기색이 소리없이 피여오르고 있었다.  <<야, 영수야 담임선생님께 제기하여 주제 반회를 하는것이 어떻니? >>  철남이는 토끼눈을 해가지고 영수의 대답을 기다리고있었다.  <<좋다! 어서가서 선생님께 제기하자구나!>>  영수와 철남이는 신심에 넘치는 걸음으로 교실로 들어갔다.  마침 담임선생님께서 혼자 계시고 있었다.  <<선생님, 요구하나 제기하려고 합니다.>> 영수가 무작정 주제로 들어갔다.  <<네? 무슨 요구인지 말해보세요.>> 어제나 인자한 담임선생님이여서 항상 편하였다.  영수는 철남이에게 슬쩍 눈치를 하였다.  << 선생님, 오늘 <고향>을 배우고나니 어쩐지 부끄러운 생각이 듭니다. 여직 자기의 고향도 잘 모르고 살아왔다고 생각하니 ….>>  철남이는 끝말도 채 맺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애들의 깨끗한 얘기 앞에서 선생님은 저으기 기쁜 기색이였다. << 참말 좋은 생각을 하였습니다. 고향잊지 않으려고 찾아온 동무들이 너무도 대견스럽습니다. 한 사람으로서 고향을 잊는다는것은 너무도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좋습니다. 그럼 이번 반회시간에 <고향> 을 주제로 활동을 하면 어떨가요?>>  영수와 철남이는 너무도 기뻐서 어린애처럼 퐁퐁 뛰였습니다. 활동은 영수와 철남이가 집행하기로 하였습니다. 먼저 자기의 고향에 대하여 말해보라고 하니 거의 한명도 없었다. 다른 애들도 실상은 자기의 고향을 모르고 있었다. 그저 몇몇 도시애들이 알고 있을뿐 별다른 감정은 없었다. 그저 고향이라는 단어 외에는 아무런 감수가 없었다. 이번에는 철남이가 엄숙한 어조로 <<우리 한번 자기의 고향을 찾아보는것이 어떻습니까?! 오늘 집에 돌아가서 부모님들과 자기의 고향을 알아와야 하겠습니다. >> 애들은 서로 쳐다볼뿐 아무 말도 없었습니다. 이때 옆에 계시던 선생님께서 큰 박수를 보냈다. 애들도 그제야 손바닥이 아플정도로 박수를 쳐댔다. <<철남학생의 생각이 참 좋습니다. 우리는 어데서 살든 언제나 고향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다음주는 부모님들과 함께 자기의 고향을 찾아보기로 하겠습니다. >>  애들은 약속이나 한듯이 큰 박수를 보냈다. 모두들의 얼굴은 그처럼 행복할리가 없었다.   이튿날 애들은 모두 부모님들과 함께 고향으로 향하는 렬차에 몸을 싫었다. 영수와 철남이도 부모님들과 함께 고향길에 올랐다. 담임선생님도 고향길에 몸을 맡겼던것이다. 고향으로 향하는 그 심정은 정말 말로서의 형용이 안되였다. 영수네 고향은 구차한 산골이였다. 이젠 몇호밖에 남지않은 그런 편벽한 농촌이였다. 하지만 영수는 조금도 부끄러움이 없었다. 더우기 자랑스러웠던것이다. 영수는 부모님들과 함께 고향의 산을 오르면서 시원한 공기도 들이켜가며 즐거움과 자랑을 마음속깊이에 심고 있었다. 철남이네도 고향이 더 말할나위도 없는 편벽한 산골이였다. 산 골짜기에 자리잡은 오붓한 농촌이였다. 철남이는 고향의 산과 물을 실컷 맛보면서 잊지 못할 추억들의 차곡차곡 접어두었다. 고향의 품에 안겨보는 그 야릇함에 철남이의 마음속에는 무엇인가 꿈틀거렸다. 아쉬운 마음으로 고향을 떠나는 철남이는 눈물까지 훔치였다. 어느덧 약속한 시간이 지나가고 등교하게 되였다. 애들은 서로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담임선생님도 즐거운 마음으로 교실에 들어섰다. 모두들의 얼굴에는 전혀 볼수없었던 아름다움이 흐르고있었다.  <<자, 이제부턴 한동무씩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모두 고향으로 다녀왔지요? >> 애들은 모두 씩씩하게 대답하였다. 하지만 몇몇 도시에서 살고 있는 애들은 어딘가 좀 슬픈기색이였다. 자랑찬 모습으로 앉아있는 애들을 바라보는 선생님은 저으기 행복하기만 하였다. <<어느 동무 먼저 이야기 해보겠습니까?>> 영수는 엉뎅이를 붙이지 못하고 있었다. 다른 애들도 모두가 흥분을 감추지 못하였다. << 철남학생, 머저 이야기 해보세요!>> 철남이는 자랑찬 모습으로 걸어나왔다. <<저의 고향은 매우 편벽한 농촌이였습니다. 지금은 거의 이사를 가고 몇호밖에 남지 않은 그런 산골이였습니다. 이번의 활동을 통하여 너무도 많은것을 깨닫게 되였습니다. 전에는 고향이 농촌이라면 부끄러워서 그냥 거짓말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마 이번엔 절실히 느끼게 되였습니다. 그리고 부끄러움보다도 자랑스럽습니다. 나는 열심히 공부를 하여 고향마을을 더 아름답게 가꾸려는 생각이 절절합니다. 그리고 이전보다 고향을 더 아끼고 사랑하게 되여서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습니다.>> 저으기 격동되여 철남이는 손까지 저어가며 속생각을 시원스레 털어놓았습니다. 박수갈채가 교실이 떠나갈듯이 울렸습니다. << 이번에는 영수학생이 말해보세요.. 아까부터 마악 급해하던데요!>>  영수는 름름한 모습으로 앞으로 걸어나갔다. <<동무들,  저는 이번에 너무도 큰 수확을 가져왔습니다. 실상 자기의 고향도 모르고 살아온 자신이 얼마나 부끄러운지 몰랐습니다. 이번에 직접 고향을 찾아 고향의 산도 오르고 물도 실컷 마이면서 고향정을 한껏 느꼈습니다. 자신이 태여난 곳이라고 생각하니 부끄러움은 점점 커갔습니다. 여직 고향을 잊고 살아온 자신이 얼마나 죄스러운가를 절실히 느꼈습니다. 만약 선생님의 이런 고마운 활동이 없었더라면 아마 우리는 영원히 고향을 잊고 사는 그런 인간이 되였을것입니다. 선생님, 참 고맙습니다. 동무들, 고향을 사랑합시다! 고향을 위하여 열심히 공부도 합시다!>>  영수는 어느새 눈물까지 흘리고 있었다. 선생님께서도 눈물을 훔치고 계셨다. 또 한번의 우렁우렁한 박수갈채가 교실을 흔들었다. <<선생님, 이번에는 선생님께서 마씀해보세요.>>  애들의 한결같은 요구앞에서 선생님은 조용히 일어섰다. <<동무들, 참으로 고맙습니다. 이번에 철남학생과 영수학생의 건의가 없었더라면 아마 오늘같은 이런 훌륭한 장소가 없을것입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이번에 선생님도 3년만에 처음으로 고향을 찾아보았습니다. 고향은 우리가 태여난 너무도 성스러운 곳입니다. 무릇 어데서 살든 사람은 언제나 고향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고향을 잊는다는것은 어찌보면 고향의 죄인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항상 고향을 마음속에 간직하면서 언제든 고향을 위하여 무슨 일이라도 하려는 장한 생각을 키워야합니다. 고항만큼 너그럽고 인자한 존재가 더 없을것입니다. 고향을 위하여 자신을 보다 훌륭한 사람으로 키우는것이 진정 고향에 대한 가장 깨끗한 보답이라고 생각합니다. 동무들, 고향을 위하여 열심히 공부도 하고 몸도 단련합시다!>>  선생님의 너무도 깨끗한 마음앞에서 학생들은 맘껏 미역을 감는듯한 느낌이 였습니다. 이번에는 애들이 모두 일어서서 선생님께 가장 깨끗한 인사를 올리면서 고마움의 박수갈채를 오래도록 보냈습니다. 교실안은 다시금 생기가 흘러넘쳤습니다. 고향을 아끼듯이 서로 아끼고 사랑하고 관심하려는 눈빛이 어느덧 교실의 구석구석을 꼬옥 채우고 있었습니다.
39    나는 당신에게 누구인지! 댓글:  조회:876  추천:32  2010-01-29
나는 당신에게 누구인지!       당신이라는 이름자를 부르기에는    아직도 자격이 없는줄로 알고 있지만    그래도 불러야만 직성이 풀리기에    그저 그냥 당신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정 하나에 묶이워 살아가는 우리가    너무도 비좁은 공간에서 가쁜숨을 몰아내며    그래도 그래도 살아야만 했습니다.    살았다는 그 존재가 얼마나 반가운지 모릅니다.    어둠이 인간세상을 통채로 삼켰을 때    우리는 그저 모르고 살아야만 했습니다.     옹이진 매듭 하나를 열심히 풀고나면     또다시 새로운 매듭을 열심히 풀어야하는      그런 고질이 였어도 당신은 늘 인자한 모습이였습니다.     그러다가 지쳐 혼곤히 잠든 당신의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다가 불현듯 들이닥치는      의문 하나에 가슴에 닿는 얼음 한쪼각       갖은 몸부림과 고통으로 녹여진 감동 하나       당신- 하고 쭈욱 그어진  인생그라프       정신을 가다듬고 모든 그라프  눈여겨보건만       존재가 없는 나와 당신        서로가 서로를 뼈아프게 사모할뿐  보이질않는 당신        나는 구경 당신에게 누구입니까!
38    무제 댓글:  조회:883  추천:34  2010-01-28
무제동네 사람들이나를 보고 웃는다.나는 동네 사람들을보고 웃는다.동네 개들은나를 보고슬퍼한다.나는 동네 개들을보면서아파한다.동네 쥐들이나를 보고웃는다나는 동네 쥐들을보면서웃는다.동네 소들은나를 보면반가워 한다나는 동네 소들을 보면서희망을 줏는다.
37    입막음 버튼을 눌러주세요<리창현> 댓글:  조회:1035  추천:20  2010-01-24
                            입막음 버튼을 눌러주세요      가끔 얄팍한 입덕으로 핀잔을 받는 경우들을 어렵잖게 볼수가 있다. 그가운데서도 가장 억울하고 어색하기 그지없는 장면이 바로 내 언제 그랬더냐 하면서 잠꼬댕이라도 하는것같은 그런 변명이다. 그 누가 어쩌지도 않는데 제딴에서 뭐 대단한 정직함이라도 표현하듯이 팔을 저어가면서 자신의 죄행?에 대하여 어색한 표현에 어설픈 언어기교까지 동원해대는 순간을 목격하느라면 저도 모르게 몸이 피곤해나고 마음이 꺼림직해난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나타나는 행동이 도리질이다. 이런 날에는 그 무슨 일미의 안주가 있다치더라도 술맛이 땡- 하고 자리를 감춘다. 실상은 자신과 상관없는 일이건만 어쩐지 마음은 늘 개운치가 않고  무거워난다. 그와 동시에 대방에게 어느정도의 동정심도 생기군한다. 얼마나 힘이들가 하는 그런 불쌍한 여운이 마음의 호수에 잔잔한 파문을 일군다.    쏟아진 물을 담지못하듯이 이미 뱉어낸 말을 이제 주어담으려고 모든 수단을 다하는 그런 사람을 보느라면 마음부터 멀어진다. 그리고 아예 거래하기도 싫다. 이는 미워서가 아니라 오히려 불쌍해서라는 쪽이 더 기우는듯싶다. 사람은 언제나 격동이 되다보면 자신의 입막음버튼이 기능을 잃기가 일쑤이다. 구경 무슨말을 했는지 생각도없이 그저 마악- 나가는 경우가 많다. 글쎄 어느정도 술의 힘을빌어 해보는 이야기라면 가히 리해가 갈수있으련만 고렇게 말똥한 사람이 입막음버튼을 잃는다는 자체가 어딘가 좀 리해가 힘이든것이다. 글쎄 정신없는 사람이 중얼거리듯이 하는 말이거나 그 누구에게도 해가 없는 그런 말이라면 온 하루 한다한들 그 누가 두려우련만 문제는 그런것이 아니니 말이다. 아무리 언어와 사유의 우세를 가진 동물이라 할지라도 가끔은 동물처럼 입막음버튼을 눌러보는것도 해볼만한 장사이다. <<누구의 평판에 누가되는 이야기라면 아예 입밖에 내지말라.>>던 어느 책에서 본 구절이 감명깊게 마음에 안겨온다.     한 어린애가 엄마에게 이렇게 물었다.   <<엄마, 사람은 왜서 손이 두개, 발이 두개, 귀가 두개, 코구멍도 두개인데 입만은 하나인지요?>>    엄마의 대답이 참으로 걸작이다.   <<그건 많이 일하고 많이 움직이면서 힘차게 살아가면서 쓸데없는 말을 적게 하라는것이다.>>   비록 자식의 물음에 대한 엄마의 간단한 대답같지만 실상은 자식의 마음속에 얼마나 큰 의미를 부여하는지 모른다.    사람이 살다보면 해야할말과 하지말아야 할말이 따로 없다. 말은 그 무슨 상표도 없이 그저 나름대로 해보는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도덕적으로는 명백히 표기가 되여있는것이다. 이는 언제까지나 마음으로 분별하는것이지 일시적인 충동으로 해내는것이 아니다. 간단하게 해석해보면 그 누구에게 힘이되는 말이라면 얼마든지 할수있지만 일단 그 누구에게 아픔으로 남는말이라면 아예 입밖에 내지않는 편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말은 어디까지나 서로가 서로를 더 깊이 리해하기위한 일종의 특수한 공구이기도 하다. 그러니 말의 본질을 잊지말고 항상 믿음을 주면서 마음을 씻어주는 그런 아름답고 깨끗한 말로 우리의 생활을 수놓아감이 얼마나 필요한지 모른다. 항상 자신의 입막음 버튼을 령활하게 응용하면서 우리의 삶을 보다 알뜰하게 가꾸는것이 너무도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다.    낱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고 하신 우리선조들의 의미심장한 말씀을 마음속깊이에 명기하면서 누구와 누구가 누구의 평판같은 말은 이젠 그만하고 서로가 마음놓고 편안히 살아갈수있는 그런 삶의 현장을 만드는것이 얼마나 바람직할가!
36    나그 네 고백 <리창현> 댓글:  조회:1078  추천:21  2010-01-24
                                                                                   나그네 고백         가끔 저도몰래 밀려오는 피곤함으로  가슴이 설레이며 이름못할 허전함이 마음속깊이에서  허리를 쭈욱- 펴면서  일어선다.  그 순간만큼 자신이 왜소해보이기는 처음이다. 한두번도 아닌 그런 허전함이 늘 마음속에서 소용돌이를 치면서 떠날념을 안한다. 시대가 안겨주는 무형의 압력인지는 잘 판단이  되지 않지만 여하튼  남자노릇이 점점 힘이들구나 하는 생각만은 절실하게 가슴을 쳐댄다.  가끔 쓰러지는 마음도 열심히 달래면서  해볕에 쪼이느라면  어딘가 약간은 편안함이 뜨겁게 안겨온다. 하지만 모든 수단은 순간을 지울뿐이지 마음속에 드리운 차가운 음영은 쫓지 못한다.   그래도 안해의 한마디 칭찬이야말로  스러진 마음에 생기를 심어준다. 그러느라면 또다시 어린애처럼 해시시해진다.  그래서 남자는 영원히 아이라는 말도 생겨났는지도 모른다.  남자들은 제자신이사 어떻든간에 여하튼 자꾸자꾸 올리추는 여자를 좋아한다.  모든것이 다  최고라는 그런 칭찬에 바지가 벗어지는 줄을 모른다. 이를테면 <<여보, 내가 아무리 살펴봐도 이세상에 당신같은 남자는 참으로 드믈다구요!>>  이런식의 격려는 남자로 하여금 얼마나  행복하게 만드는지 모른다. 그러느라면 헤벌쭉해서  그 누구 댕댕거리지 않아도 집안일을 척척 잘도 찾아한다. 이역시 녀자로서의 예술이라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어찌보면 녀자는 알고도 속히우는것같지만 남자들은 순전히 모르고 속히우는 것이다.  일부 녀자들은 우리 나그네가 전혀 말을 듣지 않는다고 하소연하는것을 보느라면 어쩐지 그런 녀자는 참말로 불쌍해 보인다. 아니 어쩌면 저리도 예술이 차한 녀자도 있느냐하는 의심도 가져보게 된다. 평소에 그렇게도 많던 말들을 잘  정리하여 관건적인 시각에 유효하게 써먹으면 얼마나 좋으랴만하는 안타까움도 없잖아 있다. 그러니 이제라도 좀 예술을 련마하여  생활을 보다 윤택하게 다루는것이  너무도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다. 이는 어디까지나 녀자들에 대한 핀잔이 아님을 다시 한번 짚고 넘어간다.    점점 나이가 들면서  가장 아프게 마음에  돌멩이질을 해대는것이  남자노릇하기가 너무도 힘이 들구나하는 생각이다.  어찌보면 요즘의 가장 매력적인  남자의노릇은 다름이 아니라 돈을 잘 버는것이다.  글쎄 어느 남자 돈을 잘벌어서 가정을 멋지게 꾸려가고 싶은 생각이 없으련만 그것이 생각처럼 되여주지 않으니  남자의 마음도 말이아니다. 그러느라니 자연 직장일이나 착실히 하면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것이다. 글쎄 꿈이 현실로 찾아왔다할지라도 그 역시 꿈처럼 살아지는것이다.  그래서 남자들은 꿈보다 현실에 자신을 립각시키는경우가 더 많은것이다. 하지만 녀자들은 늘 꿈속에서 깨여날줄 모르는것도 큰 흠이라는 생각이다. 언젠가 꿈에 묻힌 자신을 늦게나마 인식하고  꿈속에서 몸부림을 쳐대지 말고  새벽쯤이면 눈을 뜨고 현실에 자신을 맡겨봄이 너무도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다.   일부 녀자들은 남자들에 대한 질책이 너무도 무리하다는 생각도 가져본다. 집살림이 구차한것도 남자때문이고  자식이 출세못한것도 남자때문이라는 너무도 무리한 아양앞에서 남잔들 무슨 방법이 있으랴!  그저 꾹 참고 견디느라니 마음은 재가 되여 어느덧 귀밑머리가 희슥희슥해진다. 남자가 안되면 녀자라도 재간이 있으면 가정의 운명을 돌려세워볼것이지 하는 얄미운 핀잔도 불쑥 일어선다.  한 가정은 남자혼자가 이끌어야 한다는 법적인 규정이 따로없다. 서로가 맏들면서  이끄는것이 가정이지  어느 한쪽만 믿으면 재미가 슬하다는 생각이다.      녀자라면 한번쯤 각도를 바꾸어 생각해보라. 내가 만약 남자라면  어떨가하는 생각과 함께 그리고 지금 이런 말앞에서 남자의 마음속은 어떨가하는 판단도 가져보느라면 자연 미안함 비슷한것이 살며시 고개를 쳐들것이다. 이는 누가 잘하고 못한것에 대한 평판보다도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고 믿어주고 부추켜주면서  한번밖에 올수없는 이처럼 금싸락같이 소중한 순간을 아끼면서 오직 가정을 위한다는 그런 책임감이라면  아무리 큰 어려움이라도 힘차게 이겨나갈수 있을것이다. 남자들은 녀자의 믿음을 아주 중하게 여긴다. 더우기 가정에서 안해의 믿음을 생명같이 여기고 있다.    어찌보면 나그네로서 안해의 믿음은 기둥이나 다름이 없다.  그러니 남자들을 믿어주자! 언젠가는 하늘의 별도 따내는 기적같은 현실을 창조하기도 할것이다. 믿음으로 가꾼 가정이야말로  그 어떤 도전도 두려워하지 않고 이겨낼것이다.  그저 순간적인 기분이나 욕심보다도 멀고먼 앞날의 넓은 삶의 무대를 위해  서로가 서로를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한다면 그 보다 더 큰 재부가 없을것이다!  실상 하나의 화목한 가정은 그 무슨 재부보다도 더 값진것이다. 일단 하나의 온전한 가정만 열심히 가꾼다면  그 이상 더 못해낼일이 그 무엇이랴!     그렇다! 남자들도 신세타령보다는 가정을 위하여  한번이라도 더 열심히 뛴다면 현실을 개변하고 가정의 화목을 지켜갈수있는 든든한  토대를 닦을수있을것이다.  녀자들의 아픈 마음도 어느정도 달래주면서  남자다운 너그러운 흉금과  남자다운 패기를 추켜들고 오늘도 래일도 열심히 열심히 가정을 위하여 힘차게 힘차게 달려보라! 언제가는 아름다운 무지개가 당신의 가정에 깊이 뿌리를 낼릴것이다!
35    교육은 가르침이 아니라 깨우침이다. 댓글:  조회:910  추천:21  2010-01-14
교육은 가르침이 아니라 깨우침이다   교육의 상대는 인간이다. 인간이기에 생명을 잉태하는 그 순간부터 교육을 받을 권리와 자격을 가지게 되는것이다. 교육을 많이 받는가 적게 받는가 하는것은 어디까지나 나름대로의 선택이고 자유이다. 그래서 교육은 항상 신성한 존재로 다가서는것이다. 교육은 불필요한 강요를 배척한다. 다시 말하면 강요는 교육을 진행함에 있어서 부질없는 노릇인것이다. 그저 시간랑비만 될뿐 아무런 소득도 없는것이다. 이로보아 우리는 응당 교육을 일종의 가장 신성한 존재로 인식하면서 매 한점의 교육일지라도 절대로 소홀히 대해서는 안된다. 교육을 밥먹듯이 소홀히 대한다는 그 자체가 바로 교육의 신성함에 어지러운것들을 드리우는거나 다름없는 어리석은 노릇인것이다. 일단 교육이 신성함을 잃는다면 그건 한 인간의 삶에 대한 우롱이기도 하다. 교육에는 말이 크게 필요없다. 말이 많은 교육자는 훌륭한 교육자와는 아직도 거리가 상당히 멀다고 생각한다. 진정 참된 교육은 말을 떠난 마음과 마음의 부대낌에서 울려오는 메아리만으로도 충분한것이다. 그래서 훌륭한 교육자는 항상 말이 적다. 입대신 마음으로 보다 많은 말을 전달하기 때문이다. 이것이야말로 교육자의 매력인것이다. 그러므로 교육의 수단은 입이 아니라 마음인것이다. 마음은 곧 교육의 탄탄대로이다. 즉 마음은 교육의 엄마이기도하다.  교육은 가르침이 아니라 일종의 깨우침이다. 교육을 고집스레 오직 가르침으로만 인식한다면 그건 시대에 동떨어진 노릇이나 다름이 없다. 마치도 막물난 수박밭에서 고집스레 뭔가를 주으려는거나 매 한가지다. 교육자는 힘들고 교육의 상대는 지겨운 그런 헐망한 노릇외에 아무런 수확도 없다는것을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교육을 가르침으로만 착각한 교육자들은 자연 말이 많아지기 마련이다. 가끔은 교원의 가르침이 없이도 얼마든지 해결이 가능하련만 자꾸만 입을 풀어놓으면서 부질없는 노릇이 되기가 일쑤이다. 교육자도 훌륭하겠지만 교육을 받는 상대도 총명하다는점을 항상 명기해야 한다. 그러느라면 자연 말이 적어지게 되는것이다. 교육자가 말을 많이 한다해서 상대가 그걸 알뜰하게 다 들어주는것이 아니다. 자신에게 필요한것외 나머지는 그대로 버릴줄 아는 지혜를 갖추고 있다는 점도 명기해야 한다. 그러므로 교육은 가르침이 아니라 일종의 깨우침으로 다가서야 한다. 교육의 목적은 깨치기 위한것이다. 인간이 교육을 받는 최종목적은 다름이 아니라 삶을 보다 옳바르게 깨치기 위한것이지 부질없는것들을 보다 많이 가지려는것이 아니다. 자신의 삶을 보다 깊이 깨치면서 보람있게 살아가려는것이 바로 인간이 교육을 받는 근본 목적인것이다. 교육의 가장 신성한 존재가 바로 깨우침이다. 다시말하면 교육은 인간을 보다 깊이 깨쳐주기 위해 존재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교육과 깨우침은 쌍둥이나 다름이 없는것이다. 그리고 가르침이 전혀 필요없다는것이 아니라 반드시 가르침도 어느정도 알뜰한 가공을 거친 옳바른 가르침으로 다가설때라야 깨우침이 산생하게 되는것이다. 그저 부질없는 가르침으로 뭔가를 깨우쳐주려는 노릇은 소경의 막대질이나 다름이 없는것이다. 부질없는 가르침으로 인정만 상했지 깨우침에는 티끌만한 도움도 줄수 없다는 말이다.  우리의 교육이 이제는 탈변할 때가 되였다. 탈변을 거절한다면 그건 어디까지나 시대와 동떨어진 노릇이다. 교육은 어디까지나 깨우침이지 가르침이 아님을 명기해야 한다.
34    나의 장례식날 (리창현) 댓글:  조회:1193  추천:20  2010-01-11
나의 장례식날 1.   아침부터 구질구질 비가 내린다   차량들이 줄을 지어 서서히 움직인다   나를 위해 슬퍼하는 사람들이 퍼그나 많았다   나는 가는길이 외롭지가 않았다.          2.   뒤에서 나를 모질게 헐뜯던 사람도 보였다 말없이 묵묵히 하늘만 쳐다보았다 나는 그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그이는 내 눈을 피하느라 몸부림을 쳤다  순간 나는 그이의 눈가에 맺힌 빨알간 이슬을 보았다 나는 그이가 밉지 않았다 고마웠다 나의 가는 마음은 많이 가벼워 졌다.          3.   내가 엄청 미워하던 사람도 보였다 그이는 나를 향해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나는 그이의 눈길을 피하느라 눈을 감았다 차가운 눈물이 귀안을 채웠다 무겁던 마음이 가벼워졌다 나는 가는길이 슬프지 않았다.
33    무제 댓글:  조회:961  추천:16  2010-01-02
무제 ---불행한 자식을 보살피는 엄마의 고상한 마음에 부치여   그릇은 음식을 가릴줄 모른다 음식은 그릇을 가릴줄 모른다 그릇은 음식을 가리려 하지 않는다 음식은 그릇을 가리려 하지 않는다 그릇은 음식을 비우기 위해 존재한다 음식을 그릇을 채우기 위해 존재한다 그릇은 음식을 자신의 전부라고 생각한다 음식은 그릇을 자신의 전부라고 생각한다 그릇앞에는 미운 음식이 따로 없다 음식앞에는 미운 그릇이 따로 없다 그릇은 음식을 가리지 않는다 음식은 그릇을 가리지 않는다.    녕안시 동경성진조선족소학교 리창현
32    언어는 민족의 혈액이다 댓글:  조회:994  추천:16  2009-12-23
언어는 민족의 혈액이다        무릇 어떤 생명체든지 막론하고 모두가 그 생명체의 혈관속을 흐르는 혈액이 그 생명체의 수명을 좌우지 하게 된다. 그처럼 크게 사품치며 흐르던 강도 물이 말라버리면 다시는 그것을 강이라고 불러줄 사람도 없을것이고 두고두고 가슴아프게 여운을 만들어갈 사람도 퍼그나 드물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강을 놓고 말하면 강물은 바로 그 강의 생명에 연장선을 그을수 있는 유일한 요소이기도 한것이다. 다시말하면 강물은 강으로 말하면 그 속을 누비며 흐르는 혈액과 같다는 말이다. 이로보아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들은 모두가 하나같이 자신의 혈관속을 흐르면서 생명에 연장선을 그어주는 그 혈액에 자못 고마운 마음을 간직하면서 열심히 살아갈것이며 한낱 아끼고 소중히 여기면서 나름대로의 삶을 영위해 갈것이다. 사람으로 말해도 밤낮을 쉬지않고 몇십년을 흘러가는 혈관속의 혈액이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지 모른다.  하지만 사람의 가장 큰 흠은 항상 있을때 잘 하지 못하고는 존재를 잃어가는 그 시각에라야 정신을 차리고 후회의 우물을 파는것이다. 어찌보면 후회는 항상 늘 지각생으로 우리들의 삶에 다가서군 하는것이 안타깝기도 하다. 하지만 사람으로서 그것을 각성하지 못한것이 잘못이지 그 무엇을 탓할 리유도 없는것이다. 한 사람으로 놓고 봐도 그 사람의 생명이 얼마나 연장이 될가 하는것은 당연히 그 사람의 혈관속을 흐르는 혈액과 너무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그릇된 습관의 영향으로 말미암아 혈액에 여러가지 잡질들이 많아지면서 혈질이 높아지면 자연 생명에 무서운 영향을 초래하게 될것이다. 그 무서운 영향은 나중에 생명체의 존재를 결정하기도 한다. 이처럼 혈액은 한 생명체의 연장선에 절대적인 작용을 일으키는 중요한 인소이기도 하다.  어찌보면 우리의 언어는 우리 민족의 몸속을 흐르는 혈액과도 같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언어는 한 민족의 생존여부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존재이다. 다시말하면 한 민족이 당당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려면 우선 그 민족의 언어가 당당하게 나설수 있어야 한다. 자기 민족의 언어를 가꾸면서 열심히 지켜간다는것은 실로 가슴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모습이 아닐수 없다. 일단 민족이 언어를 잃어간다면 그건 존재가 시간을 잃어가는거나 다름이 없다. 언어를 잃어가는 인간이 어찌 자신을 그 민족이라고 가슴치며 자부할수 있으랴?! 그건 일종의 소경의 막대질이나 다름이 없는 노릇이기도 하다. 언어는 선조들이 우리들에게 물려준 너무도 귀중한 재부이기도 하다. 그 재부를 아낄줄 모르고 마구 휘두른다면 그건 한 인간으로서 수치이지만 한 민족으로서는 얼마나 큰 치욕인지 모른다. 한 민족이 건강하고 씩씩하게 존재를 지켜가려면 그 민족의 혈관속을 흐르는 혈액같은 존재인 언어를 아끼고 사랑해야 한다. 일단 우리의 언어가 그 무슨 부당한 영향속에서 본질을 잃어간다면 그건 어느 한 개인의 아픔이 아니라 전 민족의 생존에 위기라는 매개물을 심어가는것이나 다름이 없는 너무도 우매한 노릇이 아닐수 없다. 다시말하면 혈관속에 수많은 잡질을 넣어가면서 자신의 혈질의 농도를 높여가면서 삶에 해를 꽂는거나 다름이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 민족의 몸속에는 수만갈래의 혈관이 나름대로 자신의 노릇을 열심히 해나가고 있다. 그 혈관속을 누비면서 흐르는 혈액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모른다. 지구촌의 구석구석마다에서 소리없이 흘러가는 그 혈액들의 흐름소리를 가슴으로 듣는듯하여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모른다. 들어도 들어도 그냥 듣고만 싶은 그 혈액의 흐름소리로 언제 어디서든 당당하게 나설수 있어서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모른다. 그 무슨 폭포수처럼 요란스레 흐르는것도 아니요, 그 무슨 허영에 들떠 머리를 쳐들고 허장성세로 자신을 가꾸는 순간도 아니요, 청천벽력처럼 자연에 무서운 흔들림을 만들어가는 존재는 더욱 아니다. 항상 조용한 모습으로 다가서는 산속에서 흘러나오는 한줄기의 샘물처럼 맑고 시원한 존재요, 엄마의 따스한 손길에서 묻어나는 향기처럼 우리들의 가슴을 녹여주는 봄날의 해볕같이 소중한 존재요, 따스한 봄볕에 해볕물고 씩씩하게 자라는 새싹들의 귀여운 모습같은 존재처럼 우리들에게 늘 자랑과 긍지를 심어주는 너무도 귀중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민족이라는 성스러운 존재가 굳게 자리를 지키려면 우리는 언어를 자신의 눈동자처럼 아끼고 사랑해야 한다. 그 민족의 언어를 모르는 사람들이 아무리 존재를 한다할지라도 그건 어디까지나 아픔이고 슬픔이다. 또 그건 비극으로 밖에 남을수 없다.  언어는 그 민족의 혈액이다. 그 민족의 생명에 연장선을 그을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다. 민족의 혈관속을 흐르는 혈액을 우리는 자신의 혈액처럼 매일 매일 소중히 여기면서 한사람이라도 소홀히 여겨서는 절대로 안되는 노릇이다. 이 순간에도 우리 민족의 혈관속을 누비면서 자랑스레 흘러가는 혈액의 흐름소리를 가슴으로 느끼면서 자랑을 느낀다, 행복을 느낀다, 행운을 느낀다, 영광을 느낀다.  한 조선족의 후손으로 태여난것만으로 나는 자신을 최고의 구원을 받은 존재라도 늘 자부한다. 그리고 자신의 혈액을 아끼듯이 민족의 언어를 아끼고 사랑할뿐만 아니라 후대들에게 우리 언어의 신성함을 남김없이 깨끗이 넘겨줘야 겠다.   언어는 민족의 혈액이다. 지구촌에 당당하게 뿌리를 내릴 성스러운 존재에 빛을 부여할수 있는 너무너무 소중한 혈액이다. 민족의 발전과 전망에 한줄금의 시원한 빛으로 다가설수 있는 너무도 귀중한 존재이다.  다시금 민족의 혈관속을 자랑과 긍지를 안고 쉬임없이 흘러가는 지구촌의 곳곳에서 들려오는 혈액의 흐름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가슴이 부푼다, 행복이 물결친다, 눈시울이 뜨거웁다……                              녕안시 동경성진조선족소학교 리창현      
31    본능(외1수)리창현 댓글:  조회:880  추천:31  2009-12-05
본능 (외1수)                         나는 너를 모른다 알고 싶지도 않다 너도 나를 모른다 알수도 없는 일이다 나는 너를 모르는게 너무너무 편하다  넌 왜서  나를 알려고 하는지  이상하다 이상하지 않다       장례식날 1.   아침부터 구질구질 비가 내린다   차량들이 줄을 지어 서서히 움직인다   나를 위해 슬퍼하는 사람들이 퍼그나 많았다   나는 가는길이 외롭지가 않았다.          2.   뒤에서 나를 모질게 헐뜯던 사람도 보였다 말없이 묵묵히 하늘만 쳐다보았다 나는 그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그이는 내 눈을 피하느라 몸부림을 쳤다  순간 나는 그이의 눈가에 맺힌 빨알간 이슬을 보았다 나는 그이가 밉지 않았다 고마웠다 나의 가는 마음은 많이 가벼워 졌다.          3.   내가 엄청 미워하던 사람도 보였다 그이는 나를 향해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나는 그이의 눈길을 피하느라 눈을 감았다 차가운 눈물이 귀안을 채웠다 무겁던 마음이 가벼워졌다 나는 가는길이 슬프지 않았다.  흑룡강성 녕안시 동경성진조선족소학교 리창현
30    과정개혁의 맥을 짚어본다 (론문) 댓글:  조회:664  추천:14  2009-11-23
           과정개혁의 맥을 짚어본다   과정개혁이 우리들의 교수에 발을 들여놓은지도 어언 몇년이란 세월이 잘 된것같다. 생소하던데로부터 그 무엇인가 몽롱하게 륜곽을 보여주는것같기도 하고 반면에 그냥 어렴풋이 남아있는것같기도 하면서 이중성의 교차속에서 나름대로 인식에 인식을 가져보지만 하나같이 느낌의 바줄은 여전히 마음에 확정한 해답을 물어오지 못하고 그냥 그렇게 여렴풋한 모습을 갖추고 있기도 한다. 생각의 끝으머리는 항상 헌전하고 근심의 두께는 날마다 짙어만 간다. 여러모로 고심히 생각의 주머니를 풀어보지만 좀처럼 안타까움만 남겨놓은채 얄미웁게 자리를 감춘다. 이처럼 과정개혁은 우리 교원들에게 하나의 도전으로 다가서면서 시대와 동떨어진 일면들을 하루급히 메워갈것을 요구하고 있다. 하루아침에 자신을 또 다른 자신으로 탈바꿈을 해야 하니 참으로 어려움에 어려움이 짖눌리는 노릇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길은 사람이 다녀서 생긴것이라는 믿음하나를 손에 꼬옥 쥔채 부지런히 과정개혁의 세파속에서 자신을 련마하고 깨치기에 게을리 하지 않았지만 아직도 몽롱한 존재는 별로 크게 달라지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과정개혁의 실질을 깨치는 과정에서 떠오르던 생각들을 하나하나 정리하면서 이글을 시작한다. 필자처럼 과정개혁의 세파에 부대끼면서 방황하고 있는 일선에서 교수를 연구하는 교원들에게 다소 도움이라도 되였으면 하는 간절한 바램이다.  첫째: 실천은 과정개혁의 핵심이다.   과정개혁이 바로 실천속에서 생존하고 발전하게 된다. 과정개혁을 인식함에 있어서 실천은 자못 중요한 수단으로 다가서는것이다. 실천을 떠난 과정개혁이란 근본 될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므로 과정개혁이란 넓은 무대를 바르게 인식하고 깨치려면 반드시 실천을 통하여 모색하고 탐구해야 한다. 개혁이란 바로 실천속에 있는것이다. 다시말하면 실천속에서 개혁이 잉태하고 생존하게 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일부 교원들은 늘 실천속에서 개혁을 홀시하고 그 무슨 행위속에서 발견하려고 애쓰니 문제가 되는것이다. 특히 교수에서 가르침에 앞서 사생의 실천이 무엇보다 중요한 위치에 놓여있는것이다. 문제해결에서도 무작정 해답을 찾으려는 생각을 버리고 실천이라는 과정을 통하여 문제을 인식하고 깨쳐야 한다. 그러는 과정에 바로 개혁이란 신성한 존재가 머리를 쳐들게 되는것이다. 팽팽한 분위기보다는 편안하고 느슨한 분위기속에서 개혁은 나름대로 물결치며 다가서는것이다. 실천을 홀시하면 과정개혁은 꿈으로 밖에 될수 없다. 실천이 과정개혁의 행심임을 명기해야 한다. 실천과 개혁은 호상 촉진하면서 저애하는 매개물이다. 그러므로 상호관계를 바르고 정확하게 처리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실천이 새로와야 개혁이 새롭게 다가서는 존재임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실천은 개혁의 어머니와 다름없이 중요한 존재이다. 둘째: 옳바른 창신이 곧 바로 과정개혁이다.   옳바른 창신은 과정개혁의 징겅다리이다. 이처럼 창신의식이 결핍하면 과정개혁이라는 신성한 과제에 발을 붙이기가 너무 힘들다는 말이다. 크든 작든 상관없이 일단 창신성이 보여지면 그건 어디까지나 도움으로 다가서는 존재이기에 우리는 창신의식 배양에 각별히 중시를 돌려야 한다. 실상 창신이란 별것이 아니다. 사유가 다른 사람과 별다를때 우리는 가히 창신이라고 일컬어 말할수 있다. 특히 과당교수에서 애들의 각이한 생각을 존중해야 한다. 무작정 눌러 놓지 말고 그 사유과정을 들어본후 알맞게 평가를 해주는 과정이 바람직한 노릇이다. 그렇지 않고 무작정 짓밟는다면 과정개혁의 걸음마다에 어려움이 고이게 될것이다. 아무리 허줄한 생각일지라도 교원은 존중해주는 자세에서 긍정과 부정을 해주어야 한다. 일단 애들이 사유의 창을 닫고 교원의 지시에만 응한다면 과정개혁은 근본 망상에 자나는 노릇이 되기가 쉽다. 이로보아 애들의 사유의 곬을 넓혀주고 마음껏 자신의 생각을 풀어 놓을수 있는 그런 과당수업을 조성하는것도 과정개혁의 일부분이 아닐수 없다. 교원은 항상 명석한 대뇌로 아이들의 사유의 불꽃을 지펴주면서 보다 뛰여난 생각을 만들도록 아이들을 고무하고 격려해주어야 한다. 사생의 편안하고 믿음으로 가득찬 과당 분위기속에서 창신의식이 싹을 틔우고 성장하며 과정개혁도 함께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될것이다. 창신은 별것이 아니다. 남과 다른 기발한 생각이라면 모두 창신이라고 자랑스레 말할수 있으며 그속에 과정개혁의 즐거움이 나름대로 움직이고 있다는 믿음을 굳게 가질수 있다. 옳바른 사유가 곧 창신을 불러온다. 셋째: 과정개혁은 구호가 아니라 실천이다. 일부 학교들에서는 과정개혁에 대한 리해가 너무도 헐망하다는 생각이다. 그저 한때 웨치다가 말것이라고 얼뜰하게 생각하고 있으니 말이다. 즉 과정개혁을 일종의 구호로 착각하고 실천은 금방 자취를 보이지 않고 있다. 우선은 주관 령도로 부터 과정개혁에 대한 리해가 잘못되여 있고 과정개혁을 한낱 부질없는 것으로 오판하고 있으니 그런 학교의 전망은 실로 위험스럽기만 하다. 우리는 바드시 과정개혁의 실질을 옳바르게 파악하고 착실하게 실천하는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한데 현실은 그렇지가 못하고 과정개혁을 일종의 형식으로 간주하고 있으니 한심하다는 말이다. 일부 령도들은 참으로 말이 아니다. 상급으로 부터 현실적의의에 보다 가치가 높은 차원에서 임무를 실시하면 짜증부터 내고 그저 어찌는척하면서 응부하려는 자세부터 보이고 있으니 걱정이 아닐수 없다. 실천적으로는 아무런 의의도 보이지 않으면서 겉으로는 목이 쉬도록 웨치고 있으니 실로 소경의 막대질이나 다름이 없다. 반드시 착실하게 실천하면서 모색하는 과정에서 교육을 한단계 높은 차원으로 이끌어야 하는데 실천이 움츠리고 있으니 정말로 큰 걱정이다. 그리고 부질없는 웨침은 그만하고 이젠 어느정도 참다운 자세로 탐색하려는 의향이 나서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그냥 낡은 관념에서 몸부림치고 있으니 말이다. 다른 임무는 몰라도 교육만은 언제나 성실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후대를 속이는 일만큼 큰 죄악이 더 없는줄로 인식해야 하는데 아직도 일부령도들은 과정개혁을 일종의 구호로 간직하고 웨치기만 하면서 실천이 없으니 우리 교육의 발전과 전망은 어느 그릇에 담아야 할지 걱정은 무겁기만 하다. 과정개혁은 절대로 구호가 아니다. 넷째:  과정개혁의 척도는 자전이 아니라 운행이다. 자연의 섭리를 제외한 모든 운동은 자전이 아니라 운행이다. 하지만 일부교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있으니 제고 없는것이다. 과정개혁도 일종의 실천을 통한 운행이지 우주공간의 천체처럼 공전하는것이 아니다. 과정개혁은 반드시 교원들의 부단한 운행이 필요하다. 운행하는 가운데서 뭔가를 깨치고 인식하게 되며 더 나아가서 과정개혁의 실질을 정확히 파악하고 보다 높은 차원의 교육리념을 탐색하여 후대들의 성장에 큰 도움으로 다가서야 한다. 하지만 일부 교원들은 과정개혁이 언젠가 저절로 이루어지겠지 하고 꿈같은 생각을 하면서 하루하루 뒤떨어진 교수를 하느라고 복잡하기만 하다. 응당은 참다운 자세로 일부 자료들을 뒤적여도 보고 자신의 실천을 동원하여 한시라도 락후한 자신을 발견하고 앞사람을 따르려는 생각을 가져보는것도 교수일선에서 뛰고 있는 교원으로서 자랑스러운 일이건만 앉은 석동으로 제자리만 맴도는 그런 자신을 부단히 갱신하기에 노력과 충전이 필요하다. 과정개혁은 절때로 자전이 아니다. 일종의 신성한 사명감을 지닌 운행이다. 교원의 부단한 노력과 참다운 자세가 안받침된 운행과정이다. 게으르면 언제나 뒤떨어지게 됨을 바르게 깨치고 한시라도 시대의 조류와 동보하면서 교원이면 교원다운 자신을 수립하기에 부지런해야 한다. 잠결에 꿈같은 소리를 이젠 그만하고 명석한 사유로 과정개혁의 물결속에 뛰여들어 부대끼면서 착실하게 실천해야 한다.  과정개혁은 일종의 신성한 운행이다. 다섯째: 일정한 틀에서 벗어날때라야 개혁이 가능하다.   과정개혁은 일정한 틀을 배척한다. 오직 틀의 제한을 벗어나서 보다 넓은 무대에서 스스로의 개성이 뛰여나게 움직일때 과정개혁이 곧 시작을 보이는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일부 교원들은 시름이 안 놓여 그냥 고정된 틀의 제한을 받으면서 힘겹게 교수를 진행하고 있다. 문제의 해결에는 고정된 틀이 따로 없다. 무릇 어떤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던 상관없이 모두 허용되는것이다. 틀은 언제나 제한성을 갖고 있기에 박전에 늘 저애된다. 우리는 반드시 마음의 틀을 벗어나서 과감히 자신의 능력을 발휘해야 한다. 능력은 언제나 부지런히 탐구하는 자의 몫으로 다가서는것이다. 일단 우리가 고정된 틀에서 벗어나려는 용기와 의지를 산생시킨다면 별로 어려운 과정개혁은 별로 어려운 과제가 아니다. 리론은 실천이 만들듯이 부단한 실천속에서 모색하고 탐색하는것이 곧 과정개혁의 당찬 시작이 아닐수 없다. 우리는 교수에서 항상 자신의 재능보다는 애들의 능력을 발굴하고 키워주는 그런 작업자여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고 있으니 애들의 놀라운 생각들이 해볕을 보지 못하고 어둡속에서 방황하고 있으니 문제가 아닐수 없다. 낡은 시대와 동떨어진 관념으로 고집스레 걷지 말고 가끔은 시원히 틀에서 벗어나 자신의 사유를 살찌워보는것도 교원으로 얼마나 바람직한 노릇인지 모른다. 항상 지붕우를 날아예는 제비가 되지 말고 바다우를 날아예는 갈매기가 되여야 한다. 무엇보다 그런 생각을 가지는것이 중요하다. 썩아빠진 틀에서 벗어나 활기찬 새 무대로 자신을 신심 가득히 밀어보라. 여섯째:  성급한 과정개혁이 겉치레를 조성한다. 교원으로 가장 불허가 겉치레이다. 하지만 별수 없는 상황에서는 가끔 겉치레가 보기좋게 자리를 잡군 한다. 특히 과정개혁의 성급함이 겉치레를 조성하기가 일쑤이다. 자신의 모호한 관점으로 결단성이 결핍하다보니 억찌로 라도 교수에서 흉내를 내면서 겉치레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러다보니 교자도 그렇고 그걸 접수하려는 애들도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일부 교원들의 평시교수는 그런대로 솔직하지만 일단 공개교수같은것을 할때면 없는 화작들을 써가면서 교수에 포장을 하는라 분주하다. 공개교수는 언제나 연구성을 띠여야 하는데 가끔은 연극으로 다가서면서 완미함을 추구하는라 여간 다사하기만 하다. 문제없는 교수를 들어봐선 무얼 할까 하는 의문도 가져보지만 인격을 위하면 반드시 그런 과정이 필요한 모양이다. 그리고 그런 교수를 높이 평가하는 령도도 어느 정도 문제가 있다고 본다. 교수는 절때로 연극이 아니다. 더우기는 겉치레가 아니다. 그리고 과정개혁도 어느 정도 시간과 공간을 필요한다. 너무 성급히 다가서다 보면 교수가 령도들의 눈을 가리고 입을 막는 그런 수단으로 다가설수 밖에 없다. 우리는 반드시 성급한 마음을 버리고 착실하게 한걸음 한걸음 내딛는것이 무엇보다 바람직하다. 개혁은 성급할수록 다치기 쉬우니 우리 교원들은 항상 참된 자세로 솔직하게 교수를 이끌어야 하지 절때로 형식에 치우치는 그런 경향을 피면해야 한다. 교수는 언제나 실상의 이미지로 다가서야지 절때로 허상으로 다가서서는 안된다. 일곱번째:  형식에 치우치는 개혁에 애들이 녹는다. 일부 교원들은 과정개혁을 일종의 형식으로 착각하고 있는데 문제가 아닐수 없다. 개혁은 무슨 개혁이냐 가르치던 방법대로 가르쳐도 애들이 공부를 잘하는데 하면서 꿈같은 소리를 하고 있다. 이런 교원이 가르친 학생들은 시험에서는 가히 성적을 높이 맞을수 있으나 능력으로 아마 상당한 락후자로 다가서기 쉽다. 교수 일선에서 교수를 담당하고 있는 교원들이 과정개혁을 일종의 형식으로 인식한다면 너무도 위험한 신호이다. 과정개혁은 절대로 형식이 아니라 더우기 흉내가 아님을 인식해야 한다. 특히 교수에서 애들이 토론하는 장면을 보느라면 어색하기 그지없다. 그건 시간만 랑비할뿐 아무런 소득도 없는 노릇이다. 토론은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기 위한 가장 옳바른 방법을 모색하는 과정인데 그것을 일종의 형식으로 입을 막기 위한 고명한 수단으로 내세우니 걱정이 아닐수 없다. 일부 문제들은 애들의 토론이 없이도 쉽게 해결을 가져올수 있건만 무작정 토론에 취급하는 교원도 상당히 멀쩡하다. 매 과당의 교수는 애들에게 지식을 전수하는 동시에 능력을 배양하는 너무도 소중한 순간이건만 늘 형식이 앞에서 춤추고 있으니 보기가 실로 민망스럽다. 그런 현실 앞에서 흐뭇해하는 교원의 모습은 허수아비나 다름이 없다. 이러다보니 애들은 과당에서 소득보다는 놀음을 목적으로 하면서 부질없는 행위들이 스스럼없이 그림자를 남기게 된다. 교원들의 얼뜰한 형식구상으로 녹아나는것은 불쌍한 애들이다. 과정개혁은 형식이 아니라 참다운 실천이다. 여덟째:  과정개혁은 수박의 겉 핥기가 아니다. 갑자기 들이닥친 과정개혁이라는 묵직한 과제 앞에서 일부 교원들은 수박의 겉핥기식으로 서두르기 시작하였다. 어느곳으로 어떻게 가야 할지 방향의 운전이 없었고 그저 발길이 가는데로 생각을 몰아가기도 하였다. 사과를 먹는데는 어는 쪽부터 먹어야 한다는 결정이 딸로 없다. 상한 부분을 제외한 기타 부분은 마음대로 먹으면 되는것이다. 과정개혁도 사과를 먹듯이 열심히 한발 한발 대딛는것이 곧 실현되는 과정이다. 걷다 보면 뭔가 깨칠수도 있으니 우선은 대담히 내딛고 다음에 어느쪽으로 걸으면 더 가깝고 바르게 목적지에 도착할것인가를 열심히 모색하는 과정이 바로 과정개혁이 아닐가 하는 생각을 가져 본다. 과정개혁의 실천에는 정해진 길이 따로 없고 정해진 사로가 없다. 천차만별의 사유가 존재하듯이 오직 자신의 사유대로 저급적인 착오를 범하지 말고 참다운 자세로 걷는다면 과정개혁의 신성한 속성을 파악하게 될것이고 나름대로의 틀이 잡히면서 인식이 가볍게 다가설것이다. 부동한 학생을 상대로 부동한 가르침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도 학생의 원유의 능력에서 한층 높은 능력을 배양하는것이다. 학교는 인간을 인간다운 인간으로 만드는 동시에 인간이 생존하는 능력과 법칙을 가르치는 곳이여야 한다. 그리고 시대와 함께 하면서 수시로 개혁의 시대성 요구를 접수하고 운행하는 자세가 무엇보다 바람직한 일이다. 과정개혁은 수박의 겉할기가 아님을 명기해야 한다. 속이 썩은 수박을 붙잡고 꿈같은 생각을 접어둘때가 되였다. 그럼 구경 과정개혁이란 무엇인가?   과정개혁은 곧바로 지식의 개혁, 능력의 개혁, 사유의 개혁, 인식의 개혁이다. 학생들이 스스로 발전하려는 욕망을 가지고 힘차게 움직이는 그런 과정이다. 지붕우를 날던 제비들이 이젠 바다우를 날려는 웅심을 갖고 열심히 자신의 재주를 높여가는 즐거운 과정이다. 교원의 가르침이 크게 필요없이도 능히 지식을 접수하고 벌전하는 과정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과정개혁은 일정한 시간과 교원의 연박한 지식과 명석한 대뇌가 안받침 되여야 하며 드높은 사업열정과 헌신정신이 보기 좋게 깔려있어야 한다. 그리고 개혁은 결과보다 그 과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개혁이 개혁답게 실현되려면 보다 많은 물질적 투자가 필요하고 골간교원대오 건설이 급선무이다. 대담히 창신하고 도전하는 젊은 교원들의 무대가 되여야 한다. 좋은 교수설비가 갖춰져야만 과정혁이 가능한것이 아님을 명심하고 부질없는 투정들을 버릴줄도 알고 낡은 사유를 붙잡으려는 고집스러운 행위도 이젠 사라져야 한다. 맑은 하늘이든 흐린 하늘이든 상관없이 열심히 날아보려는 자세가 바람직하다.  과정개혁은 곧 인식이고 실천이다. 교원이 교원다운 자세를 갖췄을때라야 개혁이 가능하고 실현이 가능하다. 교원의 소질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인식해야한다.       흑룡강성 녕안시 동경성진조선족소학교 리창현
29    가난은 부끄러움이 아니였었다 댓글:  조회:793  추천:29  2009-11-18
             가난은 부끄러움이 아니였었다                     여직 살아오면서 째지게 가난했던 시절에 아버지께서 하시던 말씀은 아직도 마음속깊이에 력력히 새겨져있다. 가끔 어렵고 힘들때엔 조용히 밝은 빛으로 다가서면서  삶에 담담한 향기로 안겨온다. 나의 동년은 거의 가난에 뒹굴며 지내오기도 하였다. 동년의 뒤안길을 조용히 살펴보느라면 가난의 흔적들이 유표하다. 철없던 그때에는 가난이 뭔지도 몰랐고 그저 가난이 싫다는 생각하나만을 다 헤진 바지의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군 하였다.  한번은 우리보다 생활이 넉넉한 옆집애가 어른의 주먹만큼한 사과를 먹으면서 우리 집으로 놀러왔다. 그 애의 손에 쥐여진 사과를 보는순간 나는 그만 두 눈이 휘둥그래 지고 말았다. 이어 닭알같은 군침이 목구멍을 훑으면서 요란스레 넘어갔다. 꿈에도 구경못한 사과를 보느라니 신기함도 신기함이거니와 먹고 싶은 생각만 불길처럼 일어섰다.  아마 그 애도 나에게 자랑을 하러 온 모양이 였다. 별로 먹지도 않으면서 요리 굴리고 조리 굴리면서 가난한 내 마음을 아프게만 굴러 놓았다. 얼마후 그 애는 시뚝해서 집으로 돌아갔고 나는 군침으로 가득찬 입을 꼭 다물고 부모님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여직 기억이 생생한것은 그날 그 애가 나보고 사과를 먹어보겠는가하는 말을 하지 않은 것이다. 진작 그 애가 물어본다면 나는 뭐라고 대답할지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곤난한 문제이다. 땅거미가 질 무렵 일밭으로 나가셨던 부모님들이 지친 몸을 끌고 돌아오셨다. 나는 낮에 있었던 일을 말하고 나서 나도 그런 사과를 먹고 싶다고 떼질비슷하게 말하였다. 그날 어머니는 몹시 가슴아파하는 모습이였다. 아버지는 묵묵히 아무 말도 없이 담배를 말아 피우셨다. 얼마후 아버지께서 팔뚝같이 실한 무우 하나를 들고 들어오셨다. 금방 김치움에서 나온 청무우는 생생하기만 하였다. 아버지는 가장 먹음직한 부분을 곱게 베여서 나에게 주면서 조용히 말씀하셨다. <<미안하구나, 실상 이 무우가 사람의 몸에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특히 건강에는 무우가 인삼못지 않게 유리한것이다. 남들이 사과를 먹을 때 우리는 무우를 먹는것도 별스러운 맛이 아니겠니! 시원한 무우를 먹으면서 마음에 묻은 가난에 대한 얄미움을 말끔히 씻어보자꾸나. 모든 가난은 두렵지 않지만 일단 마음이 가난해 지면 너무도 슬픈일이 안니겠니?>> 하시면서 크게 한입을 떼여 시원스레 잡수시는것이였다. <<사각-사각->> 하는 소리가 오늘도 귀전에 생생하게 울려온다. 그것은 무우를 씹는 소리뿐만 아니였다. 마음에 어지럽게 드리운 가난에 대한 두려움들을 보내주는 정다운 발자욱소리같이 내 마음에 조용히 흘러들었다. 그날 나는 무우를 얼마나 많이 먹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아무런 탈도 없이 그냥 즐겁기만 하였다. 그러면서 처음으로 가난앞에서 흐려지는 마음을 말끔히 세탁하는 재주도 키우게 되였다.   그후부터 나는 가난앞에서 자신을 당당하게 세울줄 알게되였으며 가난으로 두 어깨를 낮추지 않고 더 힘주어 세우군 하였다.   30여년이 지난 오늘도 그날 아버지의 그 표정, 그 말씀이  들어도 들어도 그냥 듣고만 싶은 메아리로 다가선다.   오늘  이 순간 아버지의 그 말씀으로부터  거듭 새롭게 다가서는 진리하나가 내 마음에 뜨거운 난류로 흘러든다. 사람이란 마음이 가난해 지면 모든것이 다 가난해진다는 너무도 아름다운 존재앞에서 다시금 커가는 자신을 새롭게 찾아보면서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평생 농민으로 살아오신 너무도 평범한 아버지의 그 말씀에 나는 영영 고마움을 간직하면서 열심히 열심히 살아가려고 오늘도 삶의 터전에서 희망을 줏는다, 기쁨을 줏는다, 행복을 줏는다……                       녕안시 동경성진조선족소학교 리창현                       
28    사람다운 교원이 되라 댓글:  조회:822  추천:34  2009-11-17
               사람다운 교원이 되라   우리 말에 <<다와야 아름답다.>>는 좋은 말이 있다. 이처럼 뭐든 무엇이 다와야 아름답다는 말이다. 자연이면 자연다와야 아름답고 사람이면 사람다와야 아름답다는 말이다. 겨울이 겨울다울때 우리는 아름다움을 느낄수 있듯이 교원이 교원다와야 아름다움을 보아낼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요즘에 우리 교원들속에 교원답지 못한 교원들이 날로 늘어나고 있다는 생각을 가져본지가 한두번이 아니다. 교원이 교원답지 못할때 그건 사람취급에 넣기마저 어려운 일이다. 헌데 웬 일인지 이처럼 교원답지 못한 그림자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점이 통 리해가 가지 않는다. 여기까지 읽으면 일부 교원답지 못한 교원들이 <<픽- >>하면서 네가 얼마나 교원답길래 교원에 대하여 왈가왈부 하느냐며 코방귀를 뀔지도 모르지만 최저한 자신은 교원다운 교원으로 다가서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그리고 교원답지 못한 일면을 만들었다가 할지라도 스스로 반성의 주머니를 풀어놓고 시원스레 자신을 깨치기에 게으름을 피우지 않는다. 그러니 어느정도 격정의 심리가 생긴다 할지라도 조금은 눅잦히고 글을 마저 읽고 다시 변명을 하라고 권장하면서 고집스레 이글을 쓴다. 요즘에 우리 교원들의 이미지가 참으로 말이 많이 흐려지고 있다. 그것도 어느 정도 감췄으면 보기라도 좋으련만 그런 재능도 감추지 못했으니 헐망해도 너무 헐망하다는 말이다. 일부 교원들의 헐망한 모습을 뒤집어 본다면 자신의 교원답지 못한 그런 행위를 일종의 능력이나 실력 아니면 매력으로 착각하고 있으니 너무도 한심하다는 말이다. 잔뜩 코대를 세워가지고 뭐가 남보다 뛰여나게 훌륭한 일면도 갖추지 못했건만 세상을 어지럽히는 그런 꼴을 상상하느라면 우리 교육의 미래가 근심스럽고 그런 교원답지 못한 교원의 손아래에서 교육을 받는 애들이 걱정스럽다. 애들에게 어느 정도의 인간도리를 가르칠가 궁금하기만 하다. 이런 교원들의 가장 큰 흠이 바로 겉치레와 가면이다. 겉으로는 그 누구보다 도덕이 있고 함양을 갖춘것같지만 속은 언녕 썩고 있다는 말이다. 어쩌면 둔갑하는 재주가 그렇게 고명한지도 모른다. 그건 실상 고명한것이 아니라 안둔한것이다. 실상 곁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지만 그저 말이 없을뿐인데 그것도 모르고 그냥 착각에 매달려 흥분하고 있으니 얼뜰해도 말이 아니라는 말이다. 앞에서는 그렇게 입을 닿도록 좋은 말을 하다가도 돌아서면 보기 흉한 꼴을 드러내는 교원들을 마주하느라면 등골에 언녕 식은땀이 흐른다. 그 누구앞에서는 무엇보다 더 간사하지만 그 누구 뒤에서는 뭐 보다도 못한 노릇을 하면서도 그래도 자신이 하늘 가장 교원다운 교원이라고 머리를 쳐들고 있으니 근심스럽다. 그래도 일부 령도들은 이런 교원에 대해 평가가 상당히 높다나?!  이러고서야 우리의 민족교육이 발전하면 얼마나 발전할가? 의심스럽다. 근심스럽다… 이런 교원이 가르치고 있는 학생과 어느 정도 교원에 대하여 묻는다면 아마 첫번째 반응은 도리머리질이고 다음은 허구픈 웃음일것이다. 그만하면 더 묻지 않아도 파악이 갈것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안타까운것은 진정 교원다운 일부 교원들은 어떤 구석에서 설음을 당하고 이런 쓰레기같은 교원들이 머리를 쳐들고 학교의 운명을 가슴아프게 걱정하는척하며 둔갑을 하고 있다면 이런 학교는 아마 멸망외에 아무런 의의도 존재하지 않을것이다.  요즘 사회적으로 우리 교원들에 대한 평가가 얼마나 헐망한지 모른다. 다른 분야는 나와 상관이 없고 필자가 교원이니 이점만 이야기 하는것이다. 이제라도 제발 사람다운 교원이 되기 위해 그 보기 싫은 가면의 탈을 벗겨라. 허장성세로 무사람들의 환심을 사려고만 하려는 얼뜰한 생각을 집어치우고 보슬비처럼 조용한 모습으로 해야 할 일을 착실하게 하기에 좀 신경을 도사리라. 그리고 쉬파리 같은 존재로 사람다운 교원들에게 해를 주지 말고 조금이라도 인간다운 교원이 되기에 노력을 좀 해보라. 그리고 뒤집어쓴 가면의 탈도 벗겨라. 교육은 절대로 겉치레와 가면이 불허이다. 그리고 사람다운 교원은 항상 겸손하고 말이 적다. 종래로 잘난척하면서 머리를 잔뜩 쳐들고 거들먹거리지 않는다. 언제나 조용한 모습으로 참다운 자세로 티끌만한 가면도 모르고 하는 일에 정력을 몰붓지 부질없는 질투를 하지 않는다.  보기 싫은 꼴은 이젠 그만 접어두고 좀 사람다운 교원이 되여보라.                       녕안시 동경성진조선족소학교 리창현
27    이런 생각 해보았습니까 댓글:  조회:925  추천:18  2009-11-11
이런 생각 해보았습니까?   인간으로 태여났기에 구원을 받은것이라고 여직 없었다면 이 순간에라도 한번쯤 곰곰히 생각을 가져보라구요 항상 구원을 받으려고만 말고 구원을 받을 만큼의 노력이 필요하다고요 구원은 베푼것이기에 아낌이 바람직하지요 하지만 일부 사람들은 그렇지가 못해서 얼마나 걱정스러운지 모릅니다 진정은 모조리 사슬로 묶어놓고 가면을 들고 다니면서 세상을 어지럽히는 이들이 있다구요 그가운데서도 가장 무서운 이들이 남의 뒤에서 사정없이 헐뜯는 이들이지요 앞에서는 그처럼 가면을 발라가다가도 일단 돌아만 서면 더러운 몰골을 드러내고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다구요 이런 소인들은 구원을 언젠가 빼앗기게 되고 홀로서 삶의 구렁창에서 방황하게 될것이라고요 한번쯤 손을 가슴에 얹고 생각해보라구요 그때가서 아양을 떨면서 구원을 될돌려달라구 자신만 괴롭히지 말고요 구원은 자신이 쌓아온 선한 마음과 정비례한다구요 이제라도 늦지가 않을테니 닫겨진 가슴을 활짝 열어제끼고 선한 마음에 길을 닦으라구요 악한 마음의 길은 닦을수록 어둡지만 선한 마음의 길은 닦을수록 빛이난답니다 어지러운 생각들은 저 태평양 바다속에 깡그리 처넣고 스스로 자신에게 구원의 테를 선물하라구요 그 누구의 구원보다도 스스로의 구원이 가장 값진 구원이라고 이렇게 생각해본적이 있습니까? 여직 없었다면 정말 가련하게 살았다고 봅니다 그러니 이제라도 말끔히 깨친다면 당신들의 삶은 새롭게 탈바꿈을 할것이라고 굳게 믿어보십시오 종이로 불을 살수 없듯이 가면으로 깨끗한 세상을 어지럽히려는 얼뜰한 생각들을 이젠 접어두라구요 세상은 리치의 가르침이라고 생각해보았습니까? 세상만큼 공평한 존재가 더 없다고 말입니다 세상의 리치와 맞서는 노릇은 사람의 노릇이 아니라고 말입니다 사람이면 사람답게 살아가는 리치에 맞게 자신을 옳바르게 세워보라구요 스스로 받아온 구원앞에서 자신을 바르게 깨쳐야 한다구요 당신이 만약 구원을 받지 못해서 사람이 아닌 다른 무엇으로 태여났다면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 일이 아닙니까 사람이기에 생각이 필요한것입니다 가슴을 헹구는 그런 생각 마음을 헹구는 그런 생각 령혼을 헹구는 그런 생각 육체를 헹구는 그런 생각 우리는 살아가는 길에 너무도 많은 생각이 필요합니다 생각은 우리에게 구원을 선물하는 지름길입니다 생각은 우리에게 구원을 만들어주는 신성한 존재입니다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까? 나도 인간의 울타리에 떳떳하게 발을 들여놓을수 있다고 나도 인간속에서 어울리면서 타인들에게 구원을 주어야겠다고 나를 인간의 천평우에 올려놓으면 그 값은 구경 어느정도에 가늠이 될는지 마음이 깨끗하면 생각도 그 만큼 깨끗합니다 하지만 마음이 어지러우면 생각도 그저 그렇습니다 그러니 구원은 마음에서 오는것이라고요 이제라도 스스로에게 구원의 손길을 뻗쳐갑시다 마음에 보기 싫게 가리운 여러겹의 탈들을 시원스레 벗어던지라구요 그러면 당신의 삶은 금방 밝아올것이라구요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까? 나도 인 간 이 라 고흑룡강성녕안시 동경성진조선족소학교 리창현  
26    훌륭한 언어환경 만들어주기 댓글:  조회:942  추천:38  2009-07-03
요즘 조선족애들이 조선말보다 한족말을 더 빠르고 쉽게 터득하는 현실을 목격하고 느낀바가 크다. 조선어문 교수를 하다보면 애들이 단어의 뜻을 리해함에 있어서 한어로 해석하면 더 잘 리해하는데 참으로 가슴아픈 일이 아닐수 없다. 최선을 다해 교수를 하는 교사에게 문제가 있는것이 아니라 애들이 생활하는 언어환경의 영향과 갈라놓을수 없다. 하지만 우리 학부모들은 이 점을 모르고 무작정 교사를 탓하는데 그것은 그릇된 평가이다. 요즘 조선족학부모들은 그저 자식이 절로 잘될것만 바라지 애들의 성장에 큰 영향을 끼치는 자신의 문제점을 반성할줄 모른다.위인들의 성장환경을 살펴보면 거개가 부모의 좋은 영향을 많이 받았다. 특히 자식들이 옳바르게 성장할수 있는 훌륭한 환경을 창조하기 위하여 부모들은  많은 심혈을 기울였다. 이로보아 부모들의 정확한 인식과 명석한 일처리가 애의 성장에 미치는 영향을 엿볼수 있다. 멋진 아파트에서 고급적인 책상에 앉아서 공부한다고 해서 다 명인이 되는것도 아니며 아무리 헐망한 초가집에서 밥상에 마주앉아 공부한다고 해서 다 무능한 사람으로 된다는 도리도 없는것이다.전반 사회가 우리민족의 발전과 전망에 대하여 관심을 갖고 하루 급히 민족의 얼을 지켜갈수 있는 훌륭한 언어환경을 창조하기에 노력을 몰부어야 한다. 첫째: 의식적으로 우리말 언어 환경 마련해야 요즘 애들을 조용히 지켜보면 한어수준이 조선어문 수준을 웃돌고 있다. 조선말로 말하라면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지만 일단 한어로 말할라치면 청산류수와 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글쎄 여기에 한어교사들이 잘 가르친것도 있겠지만 그보다도 애들이 살아가는 언어환경의 영향이 더 크다는 생각이다. 그러므로 학교에서는 애들이 한어시간을 제외한 기타 시간에는 일률로 조선말로 대화를 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무릇 그런 언어환경이 마련되고보면 애들은 자연 조선말로 대화를 하기에 노력할것이다. 그러는 가운데서 점차 조선어수준이 제고되고 나중에는 류창한 조선어로 대화하는 자랑찬 모습이 보여질것이 아닐가?일부 조선어문교사들은 교수중에서 애들이 리해가 힘들어하니 자연 일부 어휘들을 한어로 번역하여 교수를 하는데 이는 찬성할바가 못된다.그리고 가정영향도 많이 받는다. 요즘 조선족들은 생활수준이  높아지다보니 대부분 시내에서 살고 있는데 친구나 주변환경이 모두 한어대화 환경이여서 조선어의 제고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것이다. 그러니깐 가정에서 애들에게 언어의 제고에 유리한 환경을 만들어주는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일단 애가 집에 들어서면 가정에서는 무조건 조선말로 교류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애들로 하여금 어려서부터 민족언어의 중요성과 민족언어를 아끼고 사랑하려는 마음을 키워주는것도 무엇보다 중요하다. 둘째: 민족언어에 대한 자부심을 키워주어야민족언어를 홀시하는 애들의 인식을 바로 잡아주고 민족언어를 제대로 모르면 수치스럽다는 생각을 마음속에 심어주어 어려서부터 민족언어를 자랑하고 빛내가려는 민족언어에 대한 자부심을 심어주어야 한다. 여기서 어른들이 애들의 그릇된 언어사용을 바로잡아주는것이 무엇보다 중요한것이다. 이를테면 요즘 우리 민족언어가 점차 우세를 차지하면서 타민족의 부러움을 만들어가는 자랑찬 모습을 애들에게 알려주면서 애들로 하여금 민족언어를 류창하게 하는것이야말로 자랑스러운 일이라는 개념을 주어야 한다. 학교에서는 최선을 다하여 애들의 언어수준 제고에 리로운 활동을 전개하여 애들에게 자신의 언어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그런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가장 좋기는 전문  \'우리 말하기\'시간을 정해놓고 경기형식으로 준비한 내용들을 조선말로 구사하도록 요구하면 애들의 말하기 수준 제고는 물로 글짓기 제고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가 생각한다. 하여튼 우리는 애들에게 우리말을 가르치는 모든 기회를 동원하여 하나의 단어라도 애들에게 장악시켜주기에 노력해야 한다.                             2008/07/28 흑룡강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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