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창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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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정개혁의 맥을 짚어본다 (론문)
2009년 11월 23일 06시 49분  조회:665  추천:14  작성자: 리창현


           과정개혁의
맥을 짚어본다

 

과정개혁이 우리들의 교수에 발을 들여놓은지도 어언 몇년이란 세월이 된것같다. 생소하던데로부터 무엇인가 몽롱하게 륜곽을 보여주는것같기도 하고 반면에 그냥 어렴풋이 남아있는것같기도 하면서 이중성의 교차속에서 나름대로 인식에 인식을 가져보지만 하나같이 느낌의 바줄은 여전히 마음에 확정한 해답을 물어오지 못하고 그냥 그렇게 여렴풋한 모습을 갖추고 있기도 한다. 생각의 끝으머리는 항상 헌전하고 근심의 두께는 날마다 짙어만 간다. 여러모로 고심히 생각의 주머니를 풀어보지만 좀처럼 안타까움만 남겨놓은채 얄미웁게 자리를 감춘다. 이처럼 과정개혁은 우리 교원들에게 하나의 도전으로 다가서면서 시대와 동떨어진 일면들을 하루급히 메워갈것을 요구하고 있다. 하루아침에 자신을 다른 자신으로 탈바꿈을 해야 하니 참으로 어려움에 어려움이 짖눌리는 노릇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길은 사람이 다녀서 생긴것이라는 믿음하나를 손에 꼬옥 쥔채 부지런히 과정개혁의 세파속에서 자신을 련마하고 깨치기에 게을리 하지 않았지만 아직도 몽롱한 존재는 별로 크게 달라지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과정개혁의 실질을 깨치는 과정에서 떠오르던 생각들을 하나하나 정리하면서 이글을 시작한다.

필자처럼 과정개혁의 세파에 부대끼면서 방황하고 있는 일선에서 교수를 연구하는 교원들에게 다소 도움이라도 되였으면 하는 간절한 바램이다.

 첫째: 실천은 과정개혁의 핵심이다.

  과정개혁이 바로 실천속에서 생존하고 발전하게 된다. 과정개혁을 인식함에 있어서 실천은 자못 중요한 수단으로 다가서는것이다. 실천을 떠난 과정개혁이란 근본 될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므로 과정개혁이란 넓은 무대를 바르게 인식하고 깨치려면 반드시 실천을 통하여 모색하고 탐구해야 한다. 개혁이란 바로 실천속에 있는것이다. 다시말하면 실천속에서 개혁이 잉태하고 생존하게 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일부 교원들은 실천속에서 개혁을 홀시하고 무슨 행위속에서 발견하려고 애쓰니 문제가 되는것이다. 특히 교수에서 가르침에 앞서 사생의 실천이 무엇보다 중요한 위치에 놓여있는것이다. 문제해결에서도 무작정 해답을 찾으려는 생각을 버리고 실천이라는 과정을 통하여 문제을 인식하고 깨쳐야 한다. 그러는 과정에 바로 개혁이란 신성한 존재가 머리를 쳐들게 되는것이다. 팽팽한 분위기보다는 편안하고 느슨한 분위기속에서 개혁은 나름대로 물결치며 다가서는것이다. 실천을 홀시하면 과정개혁은 꿈으로 밖에 될수 없다. 실천이 과정개혁의 행심임을 명기해야 한다. 실천과 개혁은 호상 촉진하면서 저애하는 매개물이다. 그러므로 상호관계를 바르고 정확하게 처리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실천이 새로와야 개혁이 새롭게 다가서는 존재임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실천은 개혁의 어머니와 다름없이 중요한 존재이다.

둘째: 옳바른 창신이 바로 과정개혁이다.

  옳바른 창신은 과정개혁의 징겅다리이다. 이처럼 창신의식이 결핍하면 과정개혁이라는 신성한 과제에 발을 붙이기가 너무 힘들다는 말이다. 크든 작든 상관없이 일단 창신성이 보여지면 그건 어디까지나 도움으로 다가서는 존재이기에 우리는 창신의식 배양에 각별히 중시를 돌려야 한다. 실상 창신이란 별것이 아니다. 사유가 다른 사람과 별다를때 우리는 가히 창신이라고 일컬어 말할수 있다. 특히 과당교수에서 애들의 각이한 생각을 존중해야 한다. 무작정 눌러 놓지 말고 사유과정을 들어본후 알맞게 평가를 해주는 과정이 바람직한 노릇이다. 그렇지 않고 무작정 짓밟는다면 과정개혁의 걸음마다에 어려움이 고이게 될것이다. 아무리 허줄한 생각일지라도 교원은 존중해주는 자세에서 긍정과 부정을 해주어야 한다. 일단 애들이 사유의 창을 닫고 교원의 지시에만 응한다면 과정개혁은 근본 망상에 자나는 노릇이 되기가 쉽다. 이로보아 애들의 사유의 곬을 넓혀주고 마음껏 자신의 생각을 풀어 놓을수 있는 그런 과당수업을 조성하는것도 과정개혁의 일부분이 아닐수 없다. 교원은 항상 명석한 대뇌로 아이들의 사유의 불꽃을 지펴주면서 보다 뛰여난 생각을 만들도록 아이들을 고무하고 격려해주어야 한다. 사생의 편안하고 믿음으로 가득찬 과당 분위기속에서 창신의식이 싹을 틔우고 성장하며 과정개혁도 함께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될것이다. 창신은 별것이 아니다. 남과 다른 기발한 생각이라면 모두 창신이라고 자랑스레 말할수 있으며 그속에 과정개혁의 즐거움이 나름대로 움직이고 있다는 믿음을 굳게 가질수 있다. 옳바른 사유가 창신을 불러온다.

셋째: 과정개혁은 구호가 아니라 실천이다. 일부 학교들에서는 과정개혁에 대한 리해가 너무도 헐망하다는 생각이다. 그저 한때 웨치다가 말것이라고 얼뜰하게 생각하고 있으니 말이다. 과정개혁을 일종의 구호로 착각하고 실천은 금방 자취를 보이지 않고 있다. 우선은 주관 령도로 부터 과정개혁에 대한 리해가 잘못되여 있고 과정개혁을 한낱 부질없는 것으로 오판하고 있으니 그런 학교의 전망은 실로 위험스럽기만 하다. 우리는 바드시 과정개혁의 실질을 옳바르게 파악하고 착실하게 실천하는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한데 현실은 그렇지가 못하고 과정개혁을 일종의 형식으로 간주하고 있으니 한심하다는 말이다. 일부 령도들은 참으로 말이 아니다. 상급으로 부터 현실적의의에 보다 가치가 높은 차원에서 임무를 실시하면 짜증부터 내고 그저 어찌는척하면서 응부하려는 자세부터 보이고 있으니 걱정이 아닐수 없다. 실천적으로는 아무런 의의도 보이지 않으면서 겉으로는 목이 쉬도록 웨치고 있으니 실로 소경의 막대질이나 다름이 없다. 반드시 착실하게 실천하면서 모색하는 과정에서 교육을 한단계 높은 차원으로 이끌어야 하는데 실천이 움츠리고 있으니 정말로 걱정이다. 그리고 부질없는 웨침은 그만하고 이젠 어느정도 참다운 자세로 탐색하려는 의향이 나서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그냥 낡은 관념에서 몸부림치고 있으니 말이다. 다른 임무는 몰라도 교육만은 언제나 성실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후대를 속이는 일만큼 죄악이 없는줄로 인식해야 하는데 아직도 일부령도들은 과정개혁을 일종의 구호로 간직하고 웨치기만 하면서 실천이 없으니 우리 교육의 발전과 전망은 어느 그릇에 담아야 할지 걱정은 무겁기만 하다. 과정개혁은 절대로 구호가 아니다.

넷째:  과정개혁의 척도는 자전이 아니라 운행이다.

자연의 섭리를 제외한 모든 운동은 자전이 아니라 운행이다. 하지만 일부교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있으니 제고 없는것이다. 과정개혁도 일종의 실천을 통한 운행이지 우주공간의 천체처럼 공전하는것이 아니다. 과정개혁은 반드시 교원들의 부단한 운행이 필요하다. 운행하는 가운데서 뭔가를 깨치고 인식하게 되며 나아가서 과정개혁의 실질을 정확히 파악하고 보다 높은 차원의 교육리념을 탐색하여 후대들의 성장에 도움으로 다가서야 한다. 하지만 일부 교원들은 과정개혁이 언젠가 저절로 이루어지겠지 하고 꿈같은 생각을 하면서 하루하루 뒤떨어진 교수를 하느라고 복잡하기만 하다. 응당은 참다운 자세로 일부 자료들을 뒤적여도 보고 자신의 실천을 동원하여 한시라도 락후한 자신을 발견하고 앞사람을 따르려는 생각을 가져보는것도 교수일선에서 뛰고 있는 교원으로서 자랑스러운 일이건만 앉은 석동으로 제자리만 맴도는 그런 자신을 부단히 갱신하기에 노력과 충전이 필요하다. 과정개혁은 절때로 자전이 아니다. 일종의 신성한 사명감을 지닌 운행이다. 교원의 부단한 노력과 참다운 자세가 안받침된 운행과정이다. 게으르면 언제나 뒤떨어지게 됨을 바르게 깨치고 한시라도 시대의 조류와 동보하면서 교원이면 교원다운 자신을 수립하기에 부지런해야 한다. 잠결에 꿈같은 소리를 이젠 그만하고 명석한 사유로 과정개혁의 물결속에 뛰여들어 부대끼면서 착실하게 실천해야 한다.  과정개혁은 일종의 신성한 운행이다.

다섯째: 일정한 틀에서 벗어날때라야 개혁이 가능하다.

  과정개혁은 일정한 틀을 배척한다. 오직 틀의 제한을 벗어나서 보다 넓은 무대에서 스스로의 개성이 뛰여나게 움직일때 과정개혁이 시작을 보이는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일부 교원들은 시름이 놓여 그냥 고정된 틀의 제한을 받으면서 힘겹게 교수를 진행하고 있다. 문제의 해결에는 고정된 틀이 따로 없다. 무릇 어떤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던 상관없이 모두 허용되는것이다. 틀은 언제나 제한성을 갖고 있기에 박전에 저애된다. 우리는 반드시 마음의 틀을 벗어나서 과감히 자신의 능력을 발휘해야 한다. 능력은 언제나 부지런히 탐구하는 자의 몫으로 다가서는것이다. 일단 우리가 고정된 틀에서 벗어나려는 용기와 의지를 산생시킨다면 별로 어려운 과정개혁은 별로 어려운 과제가 아니다. 리론은 실천이 만들듯이 부단한 실천속에서 모색하고 탐색하는것이 과정개혁의 당찬 시작이 아닐수 없다. 우리는 교수에서 항상 자신의 재능보다는 애들의 능력을 발굴하고 키워주는 그런 작업자여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고 있으니 애들의 놀라운 생각들이 해볕을 보지 못하고 어둡속에서 방황하고 있으니 문제가 아닐수 없다. 낡은 시대와 동떨어진 관념으로 고집스레 걷지 말고 가끔은 시원히 틀에서 벗어나 자신의 사유를 살찌워보는것도 교원으로 얼마나 바람직한 노릇인지 모른다. 항상 지붕우를 날아예는 제비가 되지 말고 바다우를 날아예는 갈매기가 되여야 한다. 무엇보다 그런 생각을 가지는것이 중요하다. 썩아빠진 틀에서 벗어나 활기찬 무대로 자신을 신심 가득히 밀어보라.

여섯째:  성급한 과정개혁이 겉치레를 조성한다.

교원으로 가장 불허가 겉치레이다. 하지만 별수 없는 상황에서는 가끔 겉치레가 보기좋게 자리를 잡군 한다. 특히 과정개혁의 성급함이 겉치레를 조성하기가 일쑤이다. 자신의 모호한 관점으로 결단성이 결핍하다보니 억찌로 라도 교수에서 흉내를 내면서 겉치레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러다보니 교자도 그렇고 그걸 접수하려는 애들도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일부 교원들의 평시교수는 그런대로 솔직하지만 일단 공개교수같은것을 할때면 없는 화작들을 써가면서 교수에 포장을 하는라 분주하다. 공개교수는 언제나 연구성을 띠여야 하는데 가끔은 연극으로 다가서면서 완미함을 추구하는라 여간 다사하기만 하다. 문제없는 교수를 들어봐선 무얼 할까 하는 의문도 가져보지만 인격을 위하면 반드시 그런 과정이 필요한 모양이다. 그리고 그런 교수를 높이 평가하는 령도도 어느 정도 문제가 있다고 본다. 교수는 절때로 연극이 아니다. 더우기는 겉치레가 아니다. 그리고 과정개혁도 어느 정도 시간과 공간을 필요한다. 너무 성급히 다가서다 보면 교수가 령도들의 눈을 가리고 입을 막는 그런 수단으로 다가설수 밖에 없다. 우리는 반드시 성급한 마음을 버리고 착실하게 한걸음 한걸음 내딛는것이 무엇보다 바람직하다. 개혁은 성급할수록 다치기 쉬우니 우리 교원들은 항상 참된 자세로 솔직하게 교수를 이끌어야 하지 절때로 형식에 치우치는 그런 경향을 피면해야 한다. 교수는 언제나 실상의 이미지로 다가서야지 절때로 허상으로 다가서서는 안된다.

일곱번째:  형식에 치우치는 개혁에 애들이 녹는다.

일부 교원들은 과정개혁을 일종의 형식으로 착각하고 있는데 문제가 아닐수 없다. 개혁은 무슨 개혁이냐 가르치던 방법대로 가르쳐도 애들이 공부를 잘하는데 하면서 꿈같은 소리를 하고 있다. 이런 교원이 가르친 학생들은 시험에서는 가히 성적을 높이 맞을수 있으나 능력으로 아마 상당한 락후자로 다가서기 쉽다. 교수 일선에서 교수를 담당하고 있는 교원들이 과정개혁을 일종의 형식으로 인식한다면 너무도 위험한 신호이다. 과정개혁은 절대로 형식이 아니라 더우기 흉내가 아님을 인식해야 한다. 특히 교수에서 애들이 토론하는 장면을 보느라면 어색하기 그지없다. 그건 시간만 랑비할뿐 아무런 소득도 없는 노릇이다. 토론은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기 위한 가장 옳바른 방법을 모색하는 과정인데 그것을 일종의 형식으로 입을 막기 위한 고명한 수단으로 내세우니 걱정이 아닐수 없다. 일부 문제들은 애들의 토론이 없이도 쉽게 해결을 가져올수 있건만 무작정 토론에 취급하는 교원도 상당히 멀쩡하다. 과당의 교수는 애들에게 지식을 전수하는 동시에 능력을 배양하는 너무도 소중한 순간이건만 형식이 앞에서 춤추고 있으니 보기가 실로 민망스럽다. 그런 현실 앞에서 흐뭇해하는 교원의 모습은 허수아비나 다름이 없다. 이러다보니 애들은 과당에서 소득보다는 놀음을 목적으로 하면서 부질없는 행위들이 스스럼없이 그림자를 남기게 된다. 교원들의 얼뜰한 형식구상으로 녹아나는것은 불쌍한 애들이다. 과정개혁은 형식이 아니라 참다운 실천이다.

여덟째:  과정개혁은 수박의 핥기가 아니다.

갑자기 들이닥친 과정개혁이라는 묵직한 과제 앞에서 일부 교원들은 수박의 겉핥기식으로 서두르기 시작하였다. 어느곳으로 어떻게 가야 할지 방향의 운전이 없었고 그저 발길이 가는데로 생각을 몰아가기도 하였다. 사과를 먹는데는 어는 쪽부터 먹어야 한다는 결정이 딸로 없다. 상한 부분을 제외한 기타 부분은 마음대로 먹으면 되는것이다. 과정개혁도 사과를 먹듯이 열심히 한발 한발 대딛는것이 실현되는 과정이다. 걷다 보면 뭔가 깨칠수도 있으니 우선은 대담히 내딛고 다음에 어느쪽으로 걸으면 가깝고 바르게 목적지에 도착할것인가를 열심히 모색하는 과정이 바로 과정개혁이 아닐가 하는 생각을 가져 본다. 과정개혁의 실천에는 정해진 길이 따로 없고 정해진 사로가 없다. 천차만별의 사유가 존재하듯이 오직 자신의 사유대로 저급적인 착오를 범하지 말고 참다운 자세로 걷는다면 과정개혁의 신성한 속성을 파악하게 될것이고 나름대로의 틀이 잡히면서 인식이 가볍게 다가설것이다. 부동한 학생을 상대로 부동한 가르침도 중요하지만 보다도 학생의 원유의 능력에서 한층 높은 능력을 배양하는것이다. 학교는 인간을 인간다운 인간으로 만드는 동시에 인간이 생존하는 능력과 법칙을 가르치는 곳이여야 한다. 그리고 시대와 함께 하면서 수시로 개혁의 시대성 요구를 접수하고 운행하는 자세가 무엇보다 바람직한 일이다. 과정개혁은 수박의 겉할기가 아님을 명기해야 한다. 속이 썩은 수박을 붙잡고 꿈같은 생각을 접어둘때가 되였다.

그럼 구경 과정개혁이란 무엇인가?

  과정개혁은 곧바로 지식의 개혁, 능력의 개혁, 사유의 개혁, 인식의 개혁이다. 학생들이 스스로 발전하려는 욕망을 가지고 힘차게 움직이는 그런 과정이다. 지붕우를 날던 제비들이 이젠 바다우를 날려는 웅심을 갖고 열심히 자신의 재주를 높여가는 즐거운 과정이다. 교원의 가르침이 크게 필요없이도 능히 지식을 접수하고 벌전하는 과정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과정개혁은 일정한 시간과 교원의 연박한 지식과 명석한 대뇌가 안받침 되여야 하며 드높은 사업열정과 헌신정신이 보기 좋게 깔려있어야 한다. 그리고 개혁은 결과보다 과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개혁이 개혁답게 실현되려면 보다 많은 물질적 투자가 필요하고 골간교원대오 건설이 급선무이다. 대담히 창신하고 도전하는 젊은 교원들의 무대가 되여야 한다. 좋은 교수설비가 갖춰져야만 과정혁이 가능한것이 아님을 명심하고 부질없는 투정들을 버릴줄도 알고 낡은 사유를 붙잡으려는 고집스러운 행위도 이젠 사라져야 한다. 맑은 하늘이든 흐린 하늘이든 상관없이 열심히 날아보려는 자세가 바람직하다.

 과정개혁은 인식이고 실천이다. 교원이 교원다운 자세를 갖췄을때라야 개혁이 가능하고 실현이 가능하다. 교원의 소질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인식해야한다.


       
흑룡강성 녕안시 동경성진조선족소학교 리창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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