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창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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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원이라는 그 이름으로
2014년 01월 12일 18시 30분  조회:1987  추천:10  작성자: 리창현


1.    
   어려서부터 오매에도 그려오던 그 꿈-교원이라는 이름자를 걸어온지도 어언 10여년의 문턱을 넘어선다. 그동안 훌훌 털고 해외 진출에 나서는 사람들의 모진 마음을 짚어보면서 자신을 보다 성숙의 단계로 이끌어 가고자 애써온 10여년이기도 하다.누구는 돈을 얼마나 벌어왔다오 하는식의 말들을 귀가에 자주 들어왔지만 아직 내 지금의 교원생활에 한점의 후회나 부끄러움을 가져본적이 없다. 그러니 아마 물질적 욕구에서는 령취급을 받아야만 할것같다. 하지만 그런 위치나 인생태도로 하여 이 내 마음이 더 편하고 몸도 더 거뿐한지 모른다.
하지만 하나의 얄팍한 자존심은 여직 마음의 골짜기에서 목탄처럼 타오른다. 바로 여직껏 그 사람들의 손에서 돈을 빌려본적이 없다는것이다. 실상 돈이 넉넉해서거나 생활이 풍족해서가 아니다. 그저 평범한 삶이지만 그래도 교원 그 이름자 하나만으로도 정신상 만족감을 느끼며 내 삶을 보다 이채롭게 가꾸어가고자 해서이다.
원래 이 세상에 태여날적부터 그런 모진 마음을 가지지 못해서인지 때로는 월급 또한 매우 낮은 교단생활이건만 일단 교단을 떠나기만 하면 당장 죽음의 골짜기로 자신을 밀어넣는 듯한 그런 심정이였다. 그래서 아마 안해도 교원인 나에게 시집왔는지도 모른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아마도 하늘이 맺어준 그런 신성한 연분이여서 보다 아끼고 사랑해야함을 절실히 느끼기도 한다.
비록 사회와는 너무도 동떨어진 그런 자그마한 일터이지만 그속에서 스스로 땀 흘려 정진하는 나의 이삭주이는 너무도 생각밖의 희열를 안겨주군 하였다. 락후생이 점차 학습의 재미를 느끼면서 전변하는 그런 모습들을 지켜보느라면 금방 자신이 어린애로 되여버리 군 한다. 함께 기뻐해주고 함께 뛰여보는 그런 흥분은 아마도 인생에서 몇번 느끼지 못하는 것이리라.
먼지하나 묻지 않은 그런 깨끗한 동심속에서 생활을 수놓아가는 그런 신성한 일이여서 항상 자신을 보다 인간답게 가꾸고자 노력한다. 너무도 공평한 애들의 마음앞에서 가면의 열쇠를 쥐고 흔드는 자신이 얼마나 가소로운지도 모를 일이다. 하여 수시로 자신을 피동에 처넣을때도 한두번이 아니다. 그 순간만큼 부끄럽기는 말로의 형언으로서는 너무도 표현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슬쩍 웃고 넘어가기도 하지만 늘 마음에 꺼려서 소화에도 영향을 줄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언제든 꼭 대범하게 애들앞에서 반성을 해야만 마음이 열리는것도 참으로 이상할 정도이다. 그래야만 애들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피여나기에 오히려 그 그 반성이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모른다.
요즘 애들은 담도 여간만 작지가 않다. 수시로 교원이라는 신성한 이름자에 도전을 걸어온다. 척척 들이대는 너무도 생각밖의 질문에 자신도 말문이 막힌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애들이라지만 선생이 어떻게 생각하든 말든 일단 진리에 어긋나는 일이면 티끌만한 면목도 주지않고 뒤집어 버린다. 그래서 아마 애들앞에서 얄팍한 망신을 한적도 한두번이 아니다.
하지만 그런 망신으로 마음이 상하거나 기분이 잡치지 않았다. 오히려 애들에게 고마운 생각이 더 컸다. 애들의 깨끗한 마음은 자신의 메마른 마음에 생명수같이 보귀한 존재였다. 거짓을 모르는 그들의 말이나 행동은 늘 자신으로 하여금 직책을 다 하도록 수시로 깨우쳐주군 하였다.
가끔은 울고 웃는 그 속에서 삶의 참도리들을 열심히 터득하면서 사람답게 살아가는 그런 무형의 이미지도 마음으로 느껴보기도 하였다. 항상 애들과 허물없이 친구처럼 지내면서 마음의 주머니들을 깡그리 털다보면 내란 놈이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
한번은 애들보고 선생님이 무섭냐고 질문을 들이 댔더니 무섭다는 <<놈>>이 한 <<놈>>도 없었다. 이런 현실앞에서는 자신에 대해 만족을 느끼면서 애들에게도 고마움을 간직하군 한다. 믿음은 두려움을 몰아내기 때문에 무섭지가 않은것이다. 일단 애들이 무섭다고 한다면 이는 아마 나의 교원생활 실패신호이기도 할것이다.
애들은 시킴이 없이 척척 일들을 열심히 잘해간다. 공부도 마찬가지로 열심히 해나간다. 조용히 그 모습들을 지켜보느라면 자연 모든 물직적 욕구가 안개처럼 살아져 버린다. 순간 몸의 여기저기서 생겨나는 힘을 억제할길이 없다. 동시에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만족감으로 전신이 충만한다.여기에 무슨 후회가 있을소냐!
항상 하는일에 만족을 느끼면서 자신에게 맡겨진,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하느라면 마음도 편하고 몸도 거뿐한것이다. 내가 지금 하고있는 일이 크든 작든 위대하든 평범하든 상관없이 오직 마음을 풀어놓고 해나간다면 그 이상 더 큰 보람이 또 있겠는가.항상 교원이라는 그 이름으로 행복을 느끼고 만족을 느끼면서 민족의 미래를 위해 다소 얼마만한 자신의 힘을 기울였다고 생각해보면 여직 부끄러움같은것을 느껴본적은 티끌만치도 없다. 그 신성한 이름자에 자신의 땀방울들이 송골송골 맺힌 모습들을 조용히 마음으로 비춰보느라면 아픔도 피곤도 살그머니 자리를 감춘다. 하고있는 모든 일들이 땀방울을 먹고 자라야만 진정한 가치를 삶의 가치를 느끼게 된다. 가면이나 허영으로 남겨진 흔적들은 오히려 마음에 상처를 주기가 너무도 쉬운것이다.
항상 애들앞에서 거짓을 모르는 그런 깨끗한 인간으로 량심의 기반을 든든히 다진 그런 교원으로 되기 위해 나는 오늘도 열심히 교단에서 뛰고 있다.일단 애들만 믿어준다면 그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고 열심히 뛰고 또 뛸것이다.
머리우를 날으는 애들의 기꺼운 모습을 보면서.

2.
                                                                                   

   힘차게 자라나는 애들의 기꺼운 모습은 교원으로 하여금 무한한 행복과 긍지로 자부감을 느끼게 한다. 자신이 가르친 학생이 어엿한 대학생으로 성장했다는 자체에 얼마나 행운스럽고 고마운지 모른다.
자신을 위해 하고있는 공부라고들 하지만 거기에는 어디까지나 행운의 수치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이를테면 자신을 가르치는 교원이 얄미워서 중퇴하는 학생도 가끔은 있는것이다. 교원의 너무도 지나친 욕심이 때로는 애들의 깨끗한 마음에 어두운 음영을 던져주게도 되여 어린것들이 푸르싱싱 자라나지 못하고 도중에 점차 스러지는 모습들도 가슴아프게 목격하게 된다. 글쎄 주제는 애들을 위한다고 하지만 가끔은 자칫 실수를 저지르기도 하는것이 교원이다.
애들은 자신의 마음에 내키지 않으면 억압적으로 내리 먹여도 그 무슨 일이라도 아예 손대지 않으려한다. 이때에 얼핏 잘못하면 마음을 다치기가 쉬우니 항상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이 늘 마음을 떠날줄을 모른다. 언제나 애들과 함께 하는시간을 늘이면서 서로간의 수많은 무형의 장벽을 무너뜨리면서 사생의 거리를 좁혀가면서 그 무슨 일이라도 시름놓고 털어놓을수있는 장소를 마련하는것이 너무나 필요하고 중요한 교육방식이라고 생각한다. 그 속에서 가끔 애들과 롱담도 하고 어색한 분위기를 하나 또 하나 무너뜨리면서 잊지못할 추억들을 마음의 일기장에 하나 하나 적는 그 재미 또한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 나는 애들이 공부하다가 하기 싫다하면 즉시로 휴식을 선포한다. 그러면 자신도 편하고 애들도 편한 마음이 여서 얼마나 즐거운지 모른다. 하지만 자신의 교수계획같은것은 절대 미루거나 취소하지 않고 어느 틈에라도 물우의 배 밀듯이 자연스럽게 진척시키군 한다.
실상 교원들은 자신의 인격을 위해서 사업을 해나가는 경우가 많다. 이를테면 이러저러한 여론이 두려워서 방법이없이? 해나가는 경우도 있는것이다. 이는 어디까지나 욕심이 사업에서의 반영이다. 일단 순수히 자신만을 위한다는 그런 위치라면 이는 역시 생명을 잃은 령혼의 허망한 움직임이나 다름이 없다. 이럴 경우 자신의 생각대로 되지 않으면 제일 먼저 나타나는 신호가 짜증이다.
이렇게 되면 애들은 교원의 눈치를 봐가면서 너무도 힘들게 공부를 하게 된다. 그리고 애들이 제일 두려워하는것이 교원의 짜증인것이다. 어른들도 타인의 짜증만큼 싫은것이 없는데 하물며 한창 자라고있는 애들이사 더 말할것이 있겠는가. 나는짜증이 자신만 다치게 할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그리고 애들은 교원의 가면을 신물이 날 정도로 싫어한다는 것고 알고 있다. 일부 교원들은 정서파동이 너무 심하다보니 애들은 맞추기가 상당히 어려워한다. 오죽했으면 <<오늘 우리선생님이 참 이상합니다. >>하는식의 말들이 나타났을가? 특히 공개교학에서 평심위원들의 보다 좋은 인상을 얻으려고 하는 억지스러운 행동거지는 참으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불편하기 그지없게 만든다.
우리는 한시간의 훌륭한 수업보다도 평시의 교수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는 생각이 절실하다. 우리의 임무는 한시간의 공개교학에 있는것이 아니라 많고 많은 평시교학인것이다. 여기에는 우선 책임감이 무엇보다 앞서야 한다는 생각이다. 교원노릇은 장난이 아니다. 한 인간을 육성하는 그런 신성한 일이건만 일부 교원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그 누구는 머리가 어떻게 둔하다는 둥 하면서 한일보다 탓하는 경우가 더 많아보인다. 애들의 진보와 성장은 절대 다수가 교원의 책임감과 갈라놓고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교원이 하는일이 모르는 애들을 알게 하는것이지 아는 애들을 알게 하는 것은 아니다. 오죽했으면 <<인류령혼의 공정사>>라는 높은 평가를 받았으랴! 그러니 하루를 해도 항상 책임감을 버리지 말고 열심히 해간다면 큰 보람이 스스로 느껴져 힘이 솟아나는 것이다. 이는 하루를 위한것이 아니라 평생을 위한 위대한 작업임을 가슴으로 느껴야한다. 사실상 일부 학생들이 한족학교로 전학해 간데는 우리의 실책으로 인한 원인도 들어 있음을 우리는 부정할수없는 일이다.
항상 애들과의 교수에서 우선 마음이 통해야 한다. 심령의 통함이 있어야만 아무런 장애도 없이 배움의 길이 열리는것이다. 구속스러움은 수업에서 큰 장애가 된다.우리는 애들의 모든 구속을 풀어주면서 마음껏 뛰고 날수있는 공간을 마련해줌으로서 모든 과정을 자연스럽게 만들어 나갈 수 있다.말하자면 교원은 애들과 같은 위치에서 함께 배우고 가르치는 립장에 서야만 효과가 더 좋을것같다는 생각이다.그래서 나는 항상 애들의 생각이나 의견을 존중하면서 열심히 대하는 태도로 자신의 사업을 해나가자고 자주 다짐한다.
그러면서 민족의 령혼인 말과 글을 가르치는 우리가 한순간의 소홀함으로 보다 큰 아픔을 낳지 말고 항상 하는 일에 자신의 모든 정력과 심혈을 기울이면서 열심히 해나가는것이 결국은 민족을 구하는 너무도 성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나는 오늘도 열심히 뛰고 있다.

3,
                                                                               

   교원생활을 하다보면 교원의 일거일동이 생각외로 애들에게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애들은 각별히 담임선생님의 일거일동을 자신의 거울로 간주하고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이를테면 걷는 모습, 이야기 할 때의 흉내, 학생을 교육할 때의 틀거지 등등을 애들은 한번쯤 연극해본다. 그러면서 자아감각이 넘넘 좋아서 고무풍선같이 동동 떠있는 모습들을 지켜보느라면 자연 질책보다는 흐믓함이 앞선다. 그러면서 어딘가 두려움같은 느낌도 갈마들기도 한다.
가끔 애들을 앞에 두고 저도 모르게 음성이 높아가고 행동이 거칠어지는 경우도 있다. 큰 도리 작은 도리 몽땅 들춰내여 복잡스레 교육을 한답시고 하지만 효과가 그닥 좋지 않았다. 나중에는 그저 자신의 에네르기만 소모했을뿐 아무런 소득도 없음을 깨닫게 된다.
우리는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이 차한면을 자신의 실책으로 생각하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마음가짐부터 갖춘다면 실상은 후진생교육이 그렇게 어려운 문제는 아니다. 관건은 문제의 본질을 어떻게 분석하고 해결하는가에 있는것이다. 실상 애들도 자신이 잘못을 저지르면 얼마나 후회하는지 모른다. 솔직하게 말해서 교원보다 자신이 더 가슴아프게 후회를 하는것이다. 애들에게 자신을 반성할수있는 공간과 시간을 충분히 주어야 하는데 교원이 너무 급히 서두르다보니 일이 항상 생각과 달리 망가지는 것이다.
몇년전에 내가 가르치던 한 남학생이 있었는데 참으로 대단한 장난꾸러기 였었다. 그러나 그애에게서 가장 우수한 점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였다.그 어떤 나쁜일을 저질렀다 할지라도 솔직하게 승인하는 그 자태가 대견스러웠다. 얼마후에 그 남학생이 담배를 피운다는 <<정보>>가 날아들었다. 아마 그도 어느 정도 눈치를 챘는지 좀 잠잠해졌었다. 그러던 어느날 조용히 불러서 사실의 진상을 알아보았는데 너무도 생각밖으로 언제 어디서 몇대 피웠다는 것마저 솔직하게 탄백하였다. 나는 질책보다 먼저 담배의 해로운 점과 공부의 중요성 그리고 사람의 됨됨이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실상 학생교육도 어느 쪽으로 착수해야만 성공할수 있는가가 상당히 중요하다. 가장 좋기는 애들의 마음을 열수있는 쪽을 선택함이 비교적 타당한것이다. 교원이 아무리 어떻게 교육을 한다지만 일단 학생의 마음의 대문을 열지 못하면 그건 헛수고에 불과한것이다.
가끔 교원의 열 마디보다 한번의 실속있는 행동이 보다 좋은 효과를 가져 올수도 있다. 즉 애들에게 환경위생을 지킬데 대하여 여러모로 강조하고 있지만 그것이 생각처럼 되여주 질 않는다. 애들더러 길을 걷다가 쓰레기가 눈에 띄우면 주어서 쓰레기통에 넣어라고들 하지만 교원들은 왜서! 줏지 않고 애들만 주어라고 하는지 하는 의문이 생기기가 쉽다. 이럴쯤에는 교원도 복도나 층계에 널린 쓰레기를 주어서 쓰레기통에 넣는다면 그 효과가 더 좋지 않을가?
실상 교원이 널려있는 쓰레기를 줏는다하여 애들이 웃는것이 아니다. 그들은 마음속으로 더없이 그런 교원을 존경할것이다. 이런 교원이야말로 학생들을 교육할 자격과 능력이 있는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교원의 행동거지가 학생들에게 중요한 역할을 하고있다해서 너무 그렇게 기계적으로 행동할 필요까지는 없는것이다. 가끔은 유머적인 행동으로 애들의 긴장한 분위기를 풀어주는것도 교원의 매력이기 때문이다. 색바랜 매력들은 훌훌 버리면서 절때로 아까와 하지말면서.

 4.
                                                                          

   애들은 종종 유머적이고 허물없이 롱담이랑 잘하는 선생님을 따르게된다. 문제는 이런 선생님은 그 무슨 어색함이 없이 마치도 친구같은 그런 느낌을 주기때문이다. 바로 사생이라는 그런 무형의 장벽을 뛰여넘어 아무런 불편함도 없이 마음이 하냥 편하기 때문인것이다. 사생지간의 장벽을 허물고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들여다볼수있는 그런 우호적인 관계라야만 수업이든 교육이든 최적화에 도달하는것이다. 어찌보면 교수든 교육이든 모두가 심령의 통함이 너무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것이다. 일단 심령의 통함이 이루어지고보면 그 누구의 시킴도 필여없는것이다.
관건은 사생의 믿음이다. 실상 교원과 학생은 일종의 장사에서의 흥정이나 다름이 없는것이다. 교원은 지식이라는 매개물을 팔러 이곳에 온것이고 학생은 지식이라는 매개물을 사려고 이곳에 온것이다. 이런 만큼 서로가 서로를 믿지 않고서는 그 무슨 흥정이든 론할바가 못되는것이다. 믿음의 기초가 성립되고 마음의 통함이 이루어지고 보면 그 누구의 말도 필요가 없는것이다. 스스로 이루어지는것이다.
애들은 각별히 무뚝뚝한 선생님을 싫어한다. 좀 매력이 부족하더라도 너그럽고 애들과 한데 어울리기 좋아하는 그런 선생님을 애들은 무척 좋아한다. 이를테면 애들의 결점은 확대경으로 들여다보고 우점은 축소경으로 들여다보는 그런 식의 교원은 애들의 마음을 살수가 없는것이다. 늘 이런 교원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려하고 마음속의 진짜말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혹간 교원이 기분의 전환이나 량심의 가책을 받아서 갑자기 애들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면 애들은 오히려 더욱 무서워한다. 이러고 보면 자연 힘들어지는것은 교원뿐이다. 교육방법은 연을 띄우는것과 상사한 도리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연줄을 늘 꼭 쥐고 달린다해서 연이 높이 뜨는것도 아니고 늘 놓아준다해서 연이 낮게 뜨는것도 아닌것처럼 애들도 꼼짝 달싹 못하게 엄하게 대한다해서 그들이 훌륭하게 성장하는것이 아니다. 가끔은 연줄을 놓았다가 다시금 살짝 당겨주는 그런 섭리를 교육현장에 구현하면 매우 좋은 효과를 볼 수 있다.
일부 담임교원들은 애들을 너무도 엄하게 단속한다. 그래서 담임선생님만 들어서면 교실안은 쥐죽은듯이 조요해진다. 이에 교원은 만족을 할것이 아니라 자신에 대해 점검 해볼 필요가 있는것이다. 실상 교원앞에서 이처럼 얌전하지만 일단 교원이 자리를 비우면 어떨가하는 생각을 가져봐야 한다는 생각이다.
학생을 믿음에도 무작정 믿음이 아니라 역시 예술이 필요한것이다. 학생의 일상 변화에 따라 믿음도 자리이동을 해야 한다. 번개불식으로 변하는 믿음이 때로는 애들에게 너무도 큰 충격을 주기도 한다. <<왜서 선생님께서 나에 대한 태도가 저럴가? 혹시 내가 어떤 잘못이라도 저지른것이 아닐가?...>>하는 등등의 의문을 가지고 자신을 반성하게 된다. 이럴쯤에는 일정한 시간을 주어 학생으로 하여금 충분히 자신을 비춰볼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도 안되면 조용히 타일러줌이 바람직한것이다. 실상 애들은 자그마한 고마움이라도 마음속에 깊이 간직한다.
대부분 애들은 교원이 일단 자신을 믿어만 주면 있는 노력을 다하여 부지런히 힘쓴다. 그속에서 저도몰래 <<나도 하면 되는구나!>>하는 너무도 큰 신심이 다시 불길처럼 일어서면서 학생의 전변에 큰 도움으로 뿌리를 내린다. 이런 현상은 실상 교원에 대한 크나큰 고무로도 안겨오기에 정말로 바람직한 것이다.
요즘 보면 가끔 애들이 죽음을 선택하는 경향이 존재한다. 여기에 글쎄 대부분은 가정의 압력으로 일이 생긴다 하지만 역시 교원의 사업과도 련관이 없는것이 아니다. 애들은 정신적압력을 이겨내는 힘이 너무도 약하다. 그리고 충동도 심하다보니 너무도 작은 한 마디의 말이나 행동이건만 그것이 너무도 무서운 악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그러니 학생교육에서 아무리 애가타고 괘씸하다 할지라도 절대로 애들의 가슴에 옹이 맺힐 그런 언어나 행위는 피하는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한다. 항상 애들에게 믿음을 주면서 마음속의 아픔을 수시로 녹여주는것도 너무도 성스러운 일이 아닐수없다.
애들을 믿어주자, 애들을 껴안아주자, 항상 제 자식처럼 사랑해주자! 배우려고 찾아온 애들의 마음속에 즐거움을 심어주지 못할망정 아픔같은것은 아예 주지를 말자! 믿음속에서 또 하나의 아름다운 행복을 마음으로 느끼면서 항상 홀가분한 심정으로 교원이라는 이름자에 깨끗한 면사포를 선물하면서 자신의 삶에 만족을 느껴보자.

  5.
                                                                          

  사생은 서로의 교류속에서 호상 진보하게 된다. 서로가 서로의 거울이 되여 아낌없이 주고 받으면서 무형의 분위기를 만들어간다. 교원으로서는 훌륭한 본보기가 되여 텅빈 애들의 마음속에 아름다운 잔디밭을 만들고 학생으로서는 깨끗한 동심으로 교원의 메마른 가슴속에 생명수를 부여한다. 그 어떤 보수도 바램이 없이 그저 아낌을 모르면서 삶에 이채를 돋군다. 가끔은 실수 앞에서 조용히 웃을뿐 질책이나 성난 눈길은 아예 보이질 않는다.  이렇게 보다 넓은 마음으로 잘못이나 실수를 받아들이기에 성장에 큰 도움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교원으로서 애들의 건강이나 안전에 대하여서는 1초도 늦춤이 없어야한다.  순간의 실수로 애들의 건강에 무서운 후과를 싫어온다면 그 이상 더 큰 실책이 없는줄로 알고있다. 애들은 불편함앞에서 절대로 가면을 모른다. 교원의 등안함으로  무서운 후과에 목을 동이는 일이 없이 수시로 애들의 건강상황에 중시를 돌려면서 최선을 다 함이 너무도 바람직하다. 수십년을 무사히 넘기다가 한 순간에 걸리고 보면 녹아나는것은 자신뿐이다.
때문에 학습도 학습이거니와 애들의 건강이나 안전에 신경을 늦추지 말아야함이 교원으로서의 사명감이 아닐수없다. 더우기 한 가정에서 자녀를 하나씩 키우는 현실에 비추어 생각한다면 그 책임이 얼마나 큰가를 다시금 인식하게 된다. 글쎄 그누구의 책임을 벗어나서 교원은 량심이라는 저울대를 가늠하면서 항상 고도의 책임감으로 사업을 해나감이 얼마나 바람직한지 모른다. 애들의 건강을 자신의 건강처럼 아끼면서 맡은 사업을 착실하게 해나감이 우리민족의 생존과 전망에 밝은 빛으로 안겨오지 않을가?!
 6.

                                                                           

   신성한 이름자를 지니기도 어렵지만 그 보다도 그 이름에 빛을 가해간다는 그 자체가 상당히 힘든일이 아닐수없다. 그것은 순간의 형상으로 이루어지는것이 아니라 세월의 흐름속에서 불변의 정성으로 쌓고 또 쌓는 무형의 탑이기도 하기때문이다. 더우기 인류문명의 발전에 절대적인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 교원으로서는 그 의미가 더욱 감개무량하다. 더우기 흔들림의 진통을  겪고있는 우리 민족교육으로서는 그 가치의 함금량이 상당한걸로 근심은 마음속을 떠날줄 모른다.
 사랑을 모르는 교원은 그 성스러움을 운운하기가 상당히 어렵다고 생각한다. 애생(爱生)은 교원으로서 반드시 갖추어야 할 미덕이다. 사랑을 떠난 교육은 교육이 아니라 억압이나 착취에 불과하다. 더욱 명기할것은 교육이 여직 수많은 력사의 발자취를 남겨왔지만 그 순간순간에는 사랑이 너무도 놀랍게 숨쉬고 있는것이다. 교육이 발전할수록 학생의 주체적 직위가 상승하게 되는것이다. 락후한 교육에는 항상 교원이 주체가 되여 애들을 쥐락펴락하는라고 힘은 곱으로 들지만 효과는 항상 급제에도 오르기가 힘들다는 생각이다. 그러니 교육과 사랑은 반드시 동존해야 함을 다시금 인식해야 한다는 생각이 절실히 가슴에 맞혀온다. 이러고 보면 사랑은 교육의 어머니나 다름이 없는것이다. 모성애를 떠난 자식의 삶이란 얼마나 고달픈지 가히 짐작을 해볼수가 있다. 실상 우리들도 늘 겪고 있지만 가르침에 힘이 들다보면 자연 저도몰래 음성이 높아가고 행동이 거칠어짐을 피할수 없다. 하지만 그렇게 가르치고 난 지식치고는 애들이 알뜰하게 장악한 정도가 거의 령취급을 받게 된다. 상술한 현상들은 실상 교원도 애들에게 하나라도 더 가르치려는 고상한 마음과 애들이 지식을 장악하지 못할가봐 걱정스러운 그런 안타까움에서 생겨나는 욕심의 산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가 착각하고 있는것은 교원의 욕심이 너무 지나치면 애들의 마음의 문이 스스로 잠겨지면서 현실을 리탈하려는 또 다른 생각이 산생하는것이다. 실상 애들도 교원의 안타까운 마음을 모르는것이 아니라 자신이  너무도 힘들기에 잠시라도 피곤을 풀려는 그런 간단한 생각이다. 그러니 우리교원들은 교육이나 교수에서 너무 성급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과일도 때가 되여야 진정한 제 맛을 드러내는거나 다름이 없는줄로 안다. 급한 마음 잠시 눌러놓고 사랑이라는 두 글자를 떠올리느라면 자신도 편하고 애들도 얼마나 편한지 모른다. 그렇다 해서 사랑을 늘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허줄한 장사를 하라는 말은 아니다. 마음속 깊이에 간직하면서  재치있게 필요할때만 살짝 줘보라는것이다.
그러느라면 주는멋도 참 멋지지만 그 보다도 받아 가지는 그 순간에 애들은 얼마나 기뻐하는지 모른다. 순간 신심같은것도 마음속을 비집고 애들의 생각을 깨끗이 려과시키기도 한다. 실상 애들의 전변은 오랜시간이 필요한것이 아니라 순간적인 영향이 절대적인 작용을 하게된다. 날마다 꾸지람을 받는 애의 마음을 각도를 바꾸어 생각해보라. 만약 교원이 매일 령도들한테 핀잔을 당한다면 그 순간의 마음은 어떠할가?! 애들이나 교원이나 다를바가 없는것이다. 사랑앞에, 칭찬앞에는 년령의 제한이 필요없는것이다. 그러니 교원은 교수도 열심히 연구해야지만 그 보다도 사랑의 연습이 더욱 필요한것이다. 실상 애들에게 사랑을 주는데는 그 무슨 물직적인 투자도 필요가없다. 그저 교원의 표정에 대한 투자와 고마운 몇마디 언어투자면 ok가 아닐가?! 필자가 사업하고 있는 학교의 유치원과 학전반 교원은 년세가 비교적 많은 로교원이다. 솔직하게 말해서 이제 곧 할머니자격을 가질 그런 분들이다. 이것은 얼마나 명석한 선택인지 모른다. 필경은 로교원은 젊은 교원보다 사랑의 질적인 함금량이 상당히 높은것이다. 이 두교원은 애들이 큰 실수를 하여 속옷까지 더렵혔다할지라도 항상 깨끗하게 뒤처리를 해주군 한다. 그것이 꼭 마치 자신의 사업상의 실책처럼 여기고 참답게 맡은 상업을 열심히 해나간다. 이것이야말로 사랑의 산물이 아닐가?! 문제는 그 누구든 한두번은 자신을 희생할수 있지만 경상적으로 자신을 희생한다는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애들하고 너무 다사스러운 그런 사랑은 필요없다. 오히려 애들을 힘들게 만들뿐 아무런 소득도 없는것이다. 그러니 애들에게 허줄한 사랑보다도 진정 마음속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그런 값진 사랑이 너무도 필요한것이다. 실상 우리 교원들속에는 진정 학생들을 자신의 눈동자같이 아끼고 사랑하는 분들이 많고도 많다. 반면에 그럭저럭 중이 종을 치듯이 하루하루 보내는 교원들도 적지않다. 우선은 반성이다. 자신을 교원이라는 그 신성한 이름자의 천평우에 올려놓고 저울질해봄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지나친 자신에 대한 질책보다는 새롭게 자신을 세워봄이 너무도 바람직하다. 교원은 우선은 사랑의 샘으로 자리매김을하고 다음 교육의 선구자로 나서야 한다. 모든것을 떠나서 애들에게 질책보다는 다 자그마한 한점의 사랑이라도 전해주자!  사랑으로 이어진 교육의 구름다리야말로 진정 조국과 인민에게 한점의 부끄러움도 묻지 않은 그런 교원의 이름자앞에 설수있지 않을가?!
  사랑을 만들자! 사랑을 연습하자! 사랑을 전해주자! 갇혔던 사랑의 주머니를 이제라도 확 풀어놓고 단 하루라도 그 이름자에 미안함이 없는 교원으로.

7.
                                                                                 

   사회와는 너무도 동떨어진 비록은 하잘것없는 울타리속에서 거의 반복적인 삶의 연속을 빚고 있지만 그것이 너무도 매혹적이여서 아예 미련을 남긴채 발목을 묶이운 교원들도 적지않다. 정 하나에 자신을 서슴없이 헌신하고있는 우리 교원들의 그림자마다에는 성스러움이 그대로 숨쉬고있다. 아마도 얄팍한 봉금에 매혹되여 삶을 지향한 교원은 거의 없을것으로 짐작이 간다. 별스럽게도 그 신성한 이름자 앞에서는 어쩐지 마음이 모질게 변색할줄을 모른다. 그래서인지 해도해도 싫지가 않은지도 모른다. 시장경제의 세찬 부대낌속에서 흔들림도 겪어보았지만 다행히도 움직임은 없었으니 다소 미안함은 누를만도하다. 하지만 부끄러움은 늘 마음의 덕대에서 떠날줄을 모른다.
편식은 한 사람의 성장에 자못 중요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그래서 아이적부터 편식의 엄중성에대하여 부모님들로부터 많이도 들어왔다. 아마도 엄중한 편식은 심지어 사형에까지 몰아넣을 가능성도 있을것이다.
 그럼 교육에서는 편애가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지 모른다. 실상 애들은 지식적으로도 배가 불러야하지만 사랑적으로 마음이 불러야 한다. 하지만 일부 교원들은 편애를 일종의 교육수단으로 간주하고있는데 이는 너무도 큰 실수가 아닐수없다. 지금 학생들이 자퇴하거나 심지어 자살까지 하는 현상들이 여기저기에서 머리를 쳐들고 교원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고있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거개가 교원의 엄격한 질책도 질책이거니와 절대다수가 교원의 편애가 빚은 무서운 비극이 아닐수없다. 특히 애들은 심리가 건전하게 발육을 하지 않은 상태여서 자그마한 상처라도 회복이 상당히 힘든것이다. 글쎄 한두번의 편애는 떠나서 경상적인 편애와 멸시는 교원으로서의 죄악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생들이 빚은 무서운 비극앞에서 시야비야가 소용돌이 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업에 대한 무책임이지 찬성할바가 못된다고 생각한다. 실상 현실속에 이런 교원이 존재하고 있는것은 부정할수가 없다. 이 세상에는 지식을 떠난 소중한것들이 너무도 많고도 많음을 자각해야한다. 일단 교원이 오직 지식전수라는 울타리에만 갖힌다면 그것은 교원으로서의 참으로 슬픈 실패나 다름이없다. 교원의 서리발같은 편애앞에서 일부 애들은 도리머리질이다. 한가지 명기할것은 교원이 어느 애가 미워지기 시작한다면 그 순간이 바로 교원으로서는 실패의 신호나 다름이없다. 아무리 학생이 애들 먹인다해도 언제든 그것이 마음속의 가시로 꽂혀 짜증을 늘 호주머니속에 넣어가지고 다니면서 시도때도 없이 풀어 놓는다면 자신만 잃을뿐 기타는 령으로 취급을 받게된다. 애들을 가르침에 있어서는 너무도 명석한 자신이 자신을 가르침에 있어서는 너무도 까아만 현실앞에서 근심만 높아간다. 그러므로 교원으로서는 우선 편애라는 개념을 완전히 포개버리고 자연의 섭리속에서 부단히 자신을 승화시키면서 미운것도 각도를 바꾸어 곱게 본다면 그러법도 생기는것이 아닐가!
아예 미움이라는 낱말같은것은 훌 집어던지고 항상 자신의 신성한 이름자에 황관같은것은 선물하지못할망정 한점의 따스함이나 빛이라도 부여함이 얼마나 바람직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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