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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방기행](6)--두번째 산행지는 울부짖는 산 풍경구
2006년 12월 21일 00시 00분  조회:5550  추천:91  작성자: 리함
【남방기행】(6)

두번째 산행지는 울부짖는 산 풍경구

1

오늘 12월 9일은 절강연우산악회 결성후의 두번째 산행일이다. 시초 란정풍경구를 산행지로 잡았다가 울부짖는 산ㅡ후산(吼山)으로 바꾸어버렸다. 그래도 무조건 따라주는 이곳 연우님들이 고맙기만 했다.

아침 8시 직후 월수외국어대학 북대문에서 35선뻐스를 잡아타니 소흥시내를 빙빙 돌기만 하는 공공뻐스가 스트레스를 떠올리긴 족하다. 그보다 심각한 스트레스는 찬바람이 불어치는 첫추위 날씨라 할까. 소흥 중심 뻐스부에서 후산행 107선뻐스를 기다리는 사이만도 온몸이 오싹오싹해 나는데 오늘의 산행을 성공적으로 마무릴수 있을까가 걱정이다. 연우님들에 비해 옷을 엷게 입은 장국화, 김은복씨는 벌써부터 몸을 움츠려드린다.

다행히 흐린날 첫추위여도 걱정이던 비는 내리질 않는다. 게다가 10여킬로메터를 달려 소흥평원속에 외홀로 솟아오른 후산에 이르니 후산의 령험에서인지 날씨가 퍼그나 누그러져 시름이 한결 덜어만진다.

산아래 자리잡은 후산풍경구 구내에 들어서니 첫 시야에 안겨드는 누워버린 바위에 새겨진 붉은 글씨에 “월궁신견(越宫神犬)” 네글자와 그 옆에 울부짖는 개 조형으로 된 개무리 돌조각상이다. 일행이 뜻하지 않은 월궁신견이요, 개들 돌조각상 앞에 발걸음을 멈출 때 나는 울부짖는 산ㅡ후산은 사실 개산, 견산이였다고 자랑스레 말했다. 하긴 연우님들과 마찬가지로 후산에 처음 오는 내가 알면 무엇을 알겠는가, 다만 해당관광안내를 먼저 보고 눈속에, 마음속에 후산을 미리 익히여 보았을 따름이였다.

2

알고보면 후산은 소흥 성 동쪽 12킬로메터 되는곳에 자리잡은 평원지대의 외진 산, 이런 외진산이 누워있는 개모양, 대가리 들고 멀리 바라보는 개모양 같다하여 개산으로 불리웠다는 얘기다. 2000여년전에 월나라 왕 구천이 대부 범려를 이곳에 보내여 사냥개를 키워 남산의 흰 사슴을 사냥하여 오나라 왕께 바치게 하였다니 일명 견산(犬山)으로 통할만도 했다. 아마도 월나라가 오나라에 패하여 월왕 구천이 3년간 오나라에 가서 노예생활을 하고 돌아온 후의 일인것 같다. 개산, 견산이 다시 짐승이 울부짖는다는 울부짖는 산ㅡ후산으로 된것은 그후 역사속의 일이다.

재미있는것은 장국화씨이다. 나더러 후산의 표징으로 되는 개들 돌조각상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달라며 포즈를 취한다. 멋진 포즈가 고스란히 사진으로 덮히며 성수가 난다. 기이한것은 저기 산기슭에서 뻗어져내린 나지막한 언덕받이 바위들은 먼 옛날에 벌써 채석장이였다는 점이다. 현세에 상상하는 그런 채석장이 아니라 칼로 베어낸듯 규칙적으로 다듬어낸 채석이여서 이를데없는 풍경구를 이루었으니 산기슭 첫 시작이 벌써 우리들의 마음을 끌었다.

깍아지른듯 수직절벽을 이룬 아래 인위적 못이 방생지(放生池)로 나타난다. 수직절벽가에는 아름드리 돌기둥이 일어서 그 사이로 크나큰 동굴모양을 이루어 그야말로 가관이다. 여기 바위들은 지세의 높낮이를 막론하고 전부가 칼로 찍어낸듯 다양하게 채석해낸 자리다.

3

정문앞 구간을 지나고 대면적의 귤나무 밭을 지나니 산기슭에 접어드는데 산기슭 첫 구간이 또 인위적 높은 수직절벽아래 맑은 물이 넓게 고인 못이다. 그다음 구간이 후산의 상징으로 되는 기반석(棋盘石). 기반석은 말 그대로 장기판 바위라는 말인데 하늘에 치솟은 웅장한 바위기둥우에, 그것도 30여메터를 이룬 높이우에 3개의 천연바위가 놓여있다면 운석이라는 이름을 가진 가까이 바위기둥은 더욱 높이 솟아있는데 우는 실하고 아래는 가늘며 정수리에 또 버섯모양의 거대한 돌갓을 쓰고 있어 그 모습에 입만 딱 벌어진다. 내가 그젯날 왕이라는 인물들은 일신의 향락을 위해서 천연바위를 깍아 놀이터를 만들었다고 개탄하니 박교장으로 통하는 박동석 ㅡ전임 연변재무학교 교장은 그랬기에 오늘날 풍경구를 이루지 않았는가고 유머를 터뜨린다.

유쾌한 유머속에 추위도 주춤하고 나와 김은복씨는 사진찍기에 여념없다. 그 한장한장의 사진속에 박교장부부가 다정히 들어오고 서재학선생과 박교장, 김성숙선생과 윤경옥선생, 김덕모선생, 장국화, 김은복 처녀선생들이 자리를 잡아간다.

이채로운것은 기반석아래 평평한 곳에 돌로 만들어놓은 장기돌들이다. 서재학, 박동석 선생 등이 하나의 장기돌을 들수 있을가고 모양을 낼 때 20대 중반의 장국화씨는 자기가 들어보겠다며 하나의 장기돌을 온 힘을 다해 들어올린다. 김은복, 윤경옥 50대 분들도 장기돌을 움직여본다. 김은복씨는 아름찬 장훈돌을 안아본다. 그 모습들이 사진기속에 비껴들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늘을 떠인 웅장한 기반석에 그 아래 하나하나의 장기돌들이 무척이나 이채롭기만 하다.

기반석 구간을 에돌면 허궁 세멘트계단길이 산의 정상에로 이어진다. 산의 정상부에는 수녕선사라 불리우는 불교사원이 자리하고있다. 거대한 불교사원은 아니나 천왕전, 대웅보전, 장경루 등을 가지고 있고 대웅보전에 석가모니를 모시기까지 하여 불교사원의 모습을 갖추고있었다. 워낙 남송시기 애국시인 륙유의 선조들이 산의 동산에 절당절반, 가옥절반식으로 만적암으로 불리웠다는데 최근년간에 후산풍경구내에 옮기여 새로 일떠세웠다고 한다.

4

불교사원정문앞은 경사진 차밭으로 펼쳐졌다. 윤경옥선생의 차밭을 가까이에서 처음본다면서 기념사진을 찍으란다. 김성숙선생도, 장국화선생도 나도나도다. 그 모습들이 사진으로 찍히여질 때 부근의 대나무밭에서는 또 장국화, 김은복, 김성숙선생이 기념사진을 남긴다. 대나무에 매달리기라도 하는 김은복씨의 모습은 천진한 소녀를 방불케 한다.

그런속에 두어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아쉬운대로 후산풍경구를 내려야 하는데 평지에 나서니 동북의 한겨울을 련상시키는 찬바람이 또 일신을 강타한다. 한시간나마 밖에서 107선 뻐스를 기다리노라니 저저마다 첫추위에 톡톡히 당해야 했다. 그래도 뜻하지않게 후산풍경구를 산행하며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만은 후더워났다.

그저 스칠 후산ㅡ울부짖는 산이 아니였다. 지난해 중앙텔레비를 위시하여 인위적 창조물로 된 후산풍경구에서 30집 텔레비드라마 “월왕구천”을 성공적으로 찍었다면 “서유기”의 속편 등 10여부 드라마가 후산풍경구를 배경으로 하였다니 유구한 력사를 가진 소흥 후산풍경구를 산행답사한 우린 행복했다.

다시 107선 뻐스에 올라 귀로에 오를 때는 오후 1시를 앞에 둔 시점이였다. 두번째 산행지ㅡ후산, 울부짖는 산 풍경구는 갈수록 시야에서 멀어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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