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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 여행】(40) -서전서숙이 뿌리내린 고장
2007년 01월 07일 00시 00분  조회:3586  추천:115  작성자: 리함
서전서숙이 뿌리내린 고장


지금까지 1906년에 륙도구에 세워진 서전서숙이 연변의 첫 조선족근대학교로 알려졌다. 1904년에 세워졌다는 훈춘현 동광학교가 나타남에 따라 서전서숙은 첫 조선족근대학교의 월계관을 고스란히 내놓아야 했지만 조선족근대학교운동에서 일으킨 서전서숙의 역할은 여전히 막대했다. 그래서 필자는 룡드레우물에 이어 용정시안의 관광명소로 발돋음한 서전서숙옛터로 답사의 발길을 돌리였다.

서전서숙옛터 기념자리는 용정시 문화로 91번지—오늘의 용정시실험소학교운동장 왼쪽가에 자리잡고있었다. 운동장에 들어서자 선참 눈길을 끄는것은 운동장왼쪽가에 소소리 솟은 아름드리 비술나무였다. 비술나무밑에 이르니 나무에는 《서전서숙기념나무》라는 패쪽이 걸려있었는데 패쪽의 패문은 이러했다.


반일민족지사 리상설은 조선족의 후대교육을 위하여 1906년에 자기의 재산을 내놓아 이곳에 서전서숙을 세웠다. 서전서숙은 조선족의 재래의 구학서당교육으로부터 신식학교교육에로 첫걸음을 떼였는데 반일민족교육의 선봉이였다. 조선족신학교육의 시작과 함께 이곳에 뿌리내린 이 나무는 역사의 견증으로 리상설의 업적을 후세에 길이 전해가고있다.


그러니 이 비술나무를 인격화한다면 비술나무는 진짜 역사의 견증인으로서 세월속에 묻힌 서전서숙의 유래를 그대로 말해주는듯싶었다.

비술나무 왼쪽가에는 커다란 옹근돌로 된 석비가 세워졌는데 석비에는 한자로 《서전서숙(瑞甸书塾)》이란 네글자가 검은 글씨로 새겨져있고 《옛터》 두 글자는 조선문으로 되여있었다. 석비옆에는 또 하나의 작은 석비를 두어 서전서숙옛터비문을 새기였다.


1906년 10월 애국지사 리상설은 이곳에 연변 최초의 조선족근대학교요 민족교육의 요람인 서전서숙을 개숙하였다.
1995년 4월 15일
용정 3.13기념사업회


서전서숙 옛터 돌비석 오른쪽가, 아름드리 비술나무 뒤에는 《리상설정》, 즉 6각정자가 세워져 어린이들의 휴식장소로 알맞춤했다. 천진하게 뛰노는 어린이들은 배경으로 사진한장을 찍어보았는데 정자안 천정에 모셔진 리상설(화상)선생이 그제날 서전서숙교사의 배경속에서 어린이들을 내려다보며 방불히 미소를 짓고있었다.

관광명소—서전서숙 옛터를 답사하는 필자는 용정시실험소학교 신형의 교사한쪽켠에 일어선 옛터기념물들을 두고 환희고무되기도 한고 마음이 착잡하기도 하였다. 옛터자리라고 서전서숙기념나무패쪽, 리상설정자, 우람진 돌비석을 일떠세운 용정3.13기념사업회 등 해당부문의 로고에 환희고무된다면 돌비석비문부터 엇갈려나가니 마음이 착잡할수밖에 없었다.

선참 맘에 걸리는것은 서전서숙을 세운 시간문제였다. 서전서숙설립시간은 일반적으로 1906년 8월이나 10월 등으로 알려지는데 존재한 시간은 8개월로 밝혀진다. 헌데 1906년 10월에 세워져서 1907년 9월경에 페교라면 1년이 거의 맞먹는 시간이다. 하기에 연구학자에 따라 서전서숙을 론할 때 설립일과 페교일을 준확히 밝히지 않고 두루뭉실 지나쳐버리기가 일쑤다. 이러함에도 용정3.13기념사업회에서는 1906년 10월로 설립일을 잡아 일대 용기를 보여주었다. 유감스럽게도 페교일은 밝히지 못하였다. 그럴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시간문제에 이어 서전서숙을 연변 최초의 조선족근대학교라고 지적한것이 또 맘에 걸린다. 1904년의 훈춘현 동광학교가 나타나지 않은 시점에서 세운 돌비석(1995년 4월 15일 세운것으로 되여있음.)이라 할 때 리해가 가긴 하나 계속 그대로 묵새겨 두는것은 어떻게 하여도 리해가 가질 않는다. 이것이 결론이라면 1904년의 훈춘현 동광학교는 어떻게 보아야 할가, 적절한 평가가 수요된다.

이밖에 서전서숙의 페교를 두고 무작정 조선통감부간도파출소의 간섭과 저애, 핍박으로만 몰아가는것은 무리라고 생각된다. 여하하든 이것도 이 글에서 시야비야 할것이 못된다. 이글—용정향토순례에서 보여주자는것은 역사유적지, 관광명소로서의 서전서숙 옛터이니 말이다. 부대적으로 이모저모의 시비를 지적하는것은 관광명소로 떠오른 서전서숙옛터에도 이런 시비문제를 안고있다는것을 환기시키려는것뿐이다.

필자는 서전서숙 옛터에 폭 잠기여 이윽토록 귀로의 발길을 떼지 못하였다. 여름날의 잔잔한 비가 옷을 적시여도 리상설과 그가 세운 서전서숙이 진한 감동으로 마음에 흘러들었다. 한번쯤은 발길을 돌려야 할 서전서숙 옛터, 그속에서 뛰노는 실험소학교 어린이들이 부럽기만 하였다.

(2004년 9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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