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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군 장령 – 양림(4)
2007년 11월 29일 12시 32분  조회:3800  추천:55  작성자: 리함

 

 

홍군 장령 양림(4)

            

4

 

 

1931 9.18사변후, 양림은 중공만주성위의 소환령을 받고 안해와 함께 할빈으로 갔다. 이 시기를 적절히 말하면 그해 11~12월사이라 해야 할것이다.

여기에는 이런 연유가 있다.

그해(1931) 11월에 만주성위 선전부에서 양선택이 체포되였다. 그가 성위서기 장응룡, 군위서기 료여원 등 동지들을 말아먹은데서 성위는 파괴되고 중앙대표로 성위에 온 라등현(罗登贤)이 새 만주성위서기로 임명되였다. 이는 11월에 있은 일이다. 잇따라 성위소재지도 심양으로부터 할빈으로 옮겨졌다. 신임성위서기 라등현은 9.18사변후의 동북의 실정과 성위의 사업을 검토한데 비추어 항일유격투쟁을 강화하고저 동만으로 파견된 양림을 불러 그에게 다시 성당위군사위원회 서기책임을 맡기고 동북범위내의 제반 무장투쟁을 지도하게 하였었다. 리추악은 성위부녀위원회에서 사업하게 되였다.

1932년초에 성위서기 라등현은 양림 등 동지들과 함께 당중앙출판물 《홍기보(紅旗報)》에 오호(伍豪)의 이름으로 게재된 주은래동지의 문장을 돌아가며 보았다. 문장의 요점은 동북당의 무장항일문제였다. 양림은 문장의 정신과 라등현서기의 지시에 좇아 《항일구국에서 인민군중을 무장하여 유격전쟁을 진행할 (抗日救国武装人民群众进行游击战争)》데 관한 문건을 작성하였으며 성위에서는 이를 채택하였다. 문건의 요지는, 동북 당, 군대는 인민군중을 대폭 무장시켜 유격전쟁을 펼치며 항일력량을 널리 단결하여 당이 직접 지도하는 무장부대를 창조한다는것이다. 때는 1932 3월 성당위의 한차례 회의에서였다.

회의가 끝난후 양림은 성위순시원의 신분으로 남만에 파견되였다.

남만에서의 중심지대는 반석이였다. 반석일대는 산구에 자리잡은 반석, 이통, 쌍양, 화전, 휘남, 해룡 등 지구를 포괄하고있는데 1930년 하반년에 이미 중공반석현위와 공청단, 농민협회, 반제동맹, 반일회, 부녀회, 아동단 등 군중단체들이 조직되고 1931년말부터 리홍광을 대장으로 하는 적위대—《개잡이대(打狗队)》가 활약하여 혁명투쟁의 기초가 비교적 좋은 곳이였다.

1932 4월초, 남만의 반석현에 이른 양림은 전면적으로 무장하여 항일할데 관한 성당위의 지시를 전달하고 리홍광과 함께 《4.3,5.1,5.7》 농민폭동를 련속 조직지도하였다. 그중에서도 농민들이 대거동원되고 기세가 큰것은 5 7일의 하마하자폭동이였다.

하마하자일대는 당의 력량이 비교적 박약하고 한간특무조직인 보민회활동이 창궐한 지방이였다. 리홍광이 적위대를 거느리고 악명이 높은 보민회 부회장 백가놈을 처단하고 장애물을 가시자 하마하자일대 농민들이 신속히 발동되였다.

1932 5 7, 이날 따라 날씨가 류달리 따뜻하였다. 여러 군중단체를 선두로 한 하마하자일대의 남녀로소들이 망치, 도끼, 날창 등 연장을 들고 반일폭동장소로 물밀듯이 모여들었다.

어느덧 회의장소에는 1000여명의 폭동자들이 집결하였다. 구호소리, 노래소리 울려퍼지는 가운데 리홍광이 《모두가 일떠나 힘을 합쳐 싸워야 한다.》는 요지의 연설을 하였다.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자!,《일제주구를 때려부시자!》는 구호소리가 천지를 진동하였다.

뒤이어 폭동대오는 양림과 리홍광의 지도하에 시위행진을 하면서 호호탕탕하게 나아갔다. 시위대렬은 이르는 곳마다에서 일제놈들과 그 주구놈들의 피비린 만행을 규탄하고 근 하루동안에 50여명의 일제주구를 체포하였다. 한간지주놈들의 식량을 몰수하여 가난한 농민들에게 나누어준것만 해도 천여섬이나 된다.

하마하자폭동의 기세는 료원의 불길처럼 이통, 쌍양, 반석 지역으로 급속히 파급되여갔다. 폭동대오는 시초의 1000여명으로부터 4000여명으로 늘어났다.

이에 따라 일제놈들이 철도로 군대를 실어올수 있음을 막아야 했다. 폭동군중들은 《중국철도에 일제의 기차가 통하지 못한다!》고 웨치면서  로령일대의 10여리 구간 레루를 뒤집어놓았다. 그래도 성차지 않아 침목과 전선대를 불사르고 철교마저 모두 파괴해버렸다.

이때 1000여명의 위만군놈들이 기관총을 가지고 폭동대오를 탄압하려고 서둘렀다. 양림의 지시에 따라 리홍광은 녀성선전대를 내세워 위만군에 정치공세를 들이댔다. 지방당조직들에서도 위만군내부에 사람을 파견하여 벗을 사귀고 친척을 찾는 방법으로 와해공작을 내밀었다. 중국사람은 중국사람에게 총을 쏘지 않는다는 도리앞에서 위만군은 어쩌지 못하고 물러서고말았다.

양림은 리홍광 등 동지들과 함께 토의한 뒤 즉각 군중대회를 열고 체포한 50여명의 친일주구놈들을 처단하였다. 폭동참가자들은 구호를 웨치고 노래를 부르면서 하마하자폭동의 승리를 경축하였다.

하마하자 5.7농민폭돌은 남만항일투쟁의 새로운 발단이고 반석유격대발전의 힘찬 추진점이였다.

5.7폭동후 반석일대 반일회회원들이 유격대에 가담하고 위만군 로7련도 기의하여 반석유격대와 합세하니 유격대는 신속히 100여명의 대오로 늘어났다. 양림은 이 대오를 인차 《반석로농의용군(磐石工农义勇军)》으로 발전시켰다. 7월에 반석로농의용군은 4개 중대를 가진 대오로 확충되였는데 이 대오가 후에 발전된 남만유격대와 동북항일련군 제1군의 전신이다. 양림은 명실공히 이 무장대오의 주요창시자로서 남만일대의 항일유격투쟁의 시원을 열어놓았다.

양림은 남만의 항일무장을 조직한 뒤 동만 4개 현의 항일유격투쟁에 대한 지도도 늦추지 않았다. 1932년 봄과 여름사이 그는 동만특위와 4개 현 군사부를 통하여 분산된 각지 지방유격대를 통일된 현유격대로 발전하도록 이끌었다. 이어 동만 4개 현들인 화룡, 연길, 왕청, 훈춘의 산구들에 항일유격근거지가 세워지고 현 유격대들이 조직되여 활동하였다. 이런 현유격대들은 그후 조직된 동북항일련군 제2군의 기초력량들이였다.

양림은 9.18사변이후 성위서기 라등현, 주보중 등과 더불어 동북항일무장투쟁의 토대를 마련하고 발전시킨 창시자이고 조직자였다.

 

 

5

 

 

1932년 가을에 양림은 중공중앙국 서기이며 중앙쏘베트 로전(劳战)위원회 주임인 주은래의 지시를 받고 동북을 떠나 상해를 거쳐 강서 중앙쏘베트구역에 들어갔다.

중화쏘베트 중앙집행위원회 산하 로동및전쟁위원회(략칭 로전위원회)는 중앙쏘베트정부내 경제, 군사, 로동 면에서의 모든 동원사업을 관리하여 전쟁동원에 관한 정부의 각 부와 위원회, 군구, 지방정부에 대한 지휘권을 행사할수 있는 전문위원회였다. 중국로농홍군 총정치위원 주은래가 로전위원회 주임을 겸하고 그이의 수하에서 양림이 로전위원회 참모장을 맡았다. 이에앞서 양림은 중앙쏘베트지역에서 선후로 강서군구 회창,심오,안원 군분구 사령원,홍군 23군 군장,월감군구 사령원,홍군 제1방면군 1군단 참모장 등을 력임했었다.

양림은 주은래의 직접적인 지도하에서 군대와 인민군중을 동원하여 중앙쏘베트구역에 대한 국민당의 제4차《포위토벌》을 분쇄하기 위하여 불철주야로 사업하였다.

국민당의 《포위토벌》에 대비해 중화쏘베트 중앙집행위원회에서는 《무릇 주력홍군을 확대하기 위하여 보내는 로농전사에 대해서는 부대를 정돈하여 전방으로 보내는데 편토를 하기 위해 모두 보충퇀의 집중훈련을 거쳐야 한다.》고 로전위원회에 지령을 내리였다. 양림은 이 지령에 좇아 짧은 기간내에 10개 보충퇀을 조직하고 직접훈련을 책임졌다. 이미 한패 또 한패의 로농전사들이 보충사의 집중훈련을 거쳐 주력홍군에 수송되였다.

로전위원회의 일은 끝이 없었다. 양림은 또 쏘베트구역의 각급 정부를 지도하여 군중을 불러일으켜 길닦이를 하고 다리를 놓고 반《토위토벌》에 쓸 단기비용 60여만원을 모았다.

1933 3월 장개석국민당의 제4차 《포위토벌》을 짓부신후 중앙군위에서는 로전위원회를 총병참부로 개칭하였다. 총병참부는 홍군의 총사령부, 총정치부, 총참모부와 더불어 중앙군위의 직속단위였다. 양림은 계속 총병참부 참모장으로 뛰였다.1933 10월에 중앙홍군대학이 설립되였는데 이듬해 양림이 홍군대학 군사총교관을 맡기도 하였다.지금도 강서성 서금시 사주패진 대포촌 대와마을 부근에 가면 홍군대 옛터를 답사할수 있다.

1934 1 21, 강서 서금에서 중화쏘베트공화국 제2차 전국쏘베트대표대회가 열리였다. 그번 대회에 양림은 모택동동지와 주은래동지의 배려로 조선민족대료로 참가하여 대회주석단의 한 사람으로 선출되였다. 그는 대회기간 형제민족대표들과 함께 중화쏘베트공화국의 대사를 토론하고 쏘베트공화국정부 지도자를 선거하였으며 중화쏘베트공화국 중앙집행위원회 집행위원으로 당선되였다. 회의기간에 모택동과 주은래는 양림에게 깊은 사랑과 배려를 돌리였다. 모택동은 친히 양림의 안해 리추악을 동북에서 중앙쏘베트지역에 전근시키도록 지시를 주었다.

리추악은 워낙 중공만주성위 부녀부에서 사업하다가 남편이 중앙쏘베트근거지로 떠난후 자진하여 지방에 내려가 중공 주하중심현위 부녀부 책임을 맡고 사업하였다. 주하중심현위에서 부근 여러개 현의 항일투쟁을 조직지도하여야 하는데다가 번중한 사업으로 하여 리추악은 낳은지 얼마 안되는 아들애를 한 농가에 맡겨 기르게 했는데 그나마 돌도 차지 않은 어린애는 병으로 숨을 거두었다.

그무렵에 중공만주성위 순시원 풍중운이 주하에 가서 리추악을 찾아 희소식을 전하였다.

 

《모택동동지께서는 서금에서 소집한 중앙쏘베트구역 제2차대표대회에서 만주성위 대표인 하성상보고 동무의 형편을 물으시고는 동무를 중앙쏘베트구역에 전근시켜 양림동무와 함께 사업하도록 하라고 말씀하셨다오…》

 

뜻밖의 희소식이였다. 리추악은 너무도 기뻐 이렇게 거듭 되뇌이였다.

《당에 감사를 드립니다. 모택동동지께 감사를 드립니다.

 

 

김호웅 강순화 주필, 중국에서 활동한 조선한국명인연구에 게재,

연변인민출판사,20077월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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