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함
http://www.zoglo.net/blog/liguangren 블로그홈 | 로그인
<< 1월 2025 >>
   1234
567891011
12131415161718
19202122232425
262728293031 

방문자

조글로카테고리 : 블로그문서카테고리

나의카테고리 : 칼럼/단상/수필/기행

【90돐특집】(35) 종성—윤동주 증조부 살았던 력사의 고장(2)
2007년 12월 23일 08시 59분  조회:4082  추천:82  작성자: 리함

90돐특집(35)

 

종성윤동주 증조부 살았던 력사의 고장(2)

 

 

수항루와 종성거리거리를 인상깊게 일별한후 나는 발길을 두만강가 신흥촌 사적지쪽으로 돌리였다. 사적지는 수항루에서 곧추 북으로 통한 연장선에 위치했는데 수항루를 지나 종성--온성 구간 철길을 넘으니 사적지, 사이섬구역이였다. 구역은 또한 일찍 김일성장군께서 력사적인 금산봉회의와 지하혁명조직의 사업을 지도하기 위하여 1931 5월과 1933 5월에 선후 두차례나 두만강을 건너오신곳이여서 혁명사적지로 이름높은 구역이기도 했다.

두만강가 신흥촌의 모습이다. 김일성장군의 항일혁명력사로 꾸며진 혁명사적지 구간을 지나 나무숲속으로 뻗은 길을 따라 두만강쪽으로 나가면 대형화강암 돌비석과 함께 모조품 나루배가 늪가 정한 지붕아래 놓여져있는것을 볼수 있다. 김일성장군은 1931 5 14 새벽 여기 비밀나루에서 배로 두만강을 건너 종성, 온성지구에 진출했고 1933 5 28일에는 또다시 종성지구에  진출하였다가 5 29 이곳나루를 거쳐 두만강을 건너 갔던것이다.

두만강가 사이섬 답사로 나를 흥분시킨것은 바로 구간에서였다. 김일성장군께서 지난 세기 30년대초반에 선후 두번이나 이곳 나루를 거치였다는것은 여기가 두만강사이섬 나루터라는것을 알려주고도 남음이 있었다. 내가 신흥촌사적지를 소개하는것도 이곳이 두만강사이섬의 연장부분이고 사이섬 나루터의 옛터였기때문이다.

나의 흥분은 절정에 달하였다. 나는 지금 조선측 그제날 사이섬나루터에 서고 있었다. 그때에야 주위를 자세히 둘러보니 신흥촌 혁명사적지 동쪽과 북쪽구간은 온통 늪세계였다. 늪들은 어디나 《부등매》식물이 무성히 자라고있었는데 어린 시절 부등매를 따서는 꺽어서 호호 불던 때가 금시런듯 했다. 시절 민간에서 부등매로 불렀기에 그대로 적어보는데   식물의 고유이름이 뭔지는 알지 못한다.

아는것만큼 보인다고 사이섬 늪에 대한 시야는 넓어만 갔다. 뒤미처 지금의 혁명사적지가 자리잡은 곳도 많이는 늪자리였다고 하니 나는 더욱 놀랐다. 지난 80년대초이전까지만 해도 일대는 늪이 대단히 많은 모양이였다. 그러던것을 혁명사적지로 꾸리면서 온성군의 젊은이들을 위수로 하는 청년돌격대 8~9 중대가 조직되여 옹근 2년만에 걸쳐 사적지를 건설했다는 이야기다. 사적지 수요로 적잖은 늪을 메우고 구뎅이를 메우고 높은데를 깎아내렸으니 토방량이 이만저만이 아니였던 모양이다. 그래서 사적지에 일어선 여러 화강암비석들에는 시간이 모두 1985 5 28일이라고 새겨졌는데 이는 사적지의 대외개방시간을 가리키기도 한다.

하다면 두만강가 이곳의 늪들은 천연적인 소산물일가, 다가 그런것이 아니였다. 중국측 사이섬과 일대만 보아도 그러하다.

지난 50년대까지만 해도 중국 연길현 개산툰구간 두만강은 광개향 선구촌구간에서 두곬으로 흐르다가 합수되면서 길이가 꽤나 되는 섬을 이루었다. 섬이 조선족이주의 력사, 북간도의 유래를 보여주는 사이섬이다. 력사자료를 보면 선구, 광소와 조선 종성사이로 흐르는 중국측 두만강안에 길이 10, 너비 1리가 되는 2000여무의 복새험이 있었고 복새험은 그제날 광제욕에 잇대여있는 륙지였다. 1881년에 청나라에서 연변지구의 봉금제를 사실상 페지한데서 조선사람들이 월경하여 광제욕 앞을 개간하느라고 물길을 뺐다고 하는데 그후부터 복새험으로 불리운 이곳땅이 강물에 둘러싸인 섬으로 변하고말았다.

처음 조선사람들은 날농사를 하면서 이곳 땅을 사이섬이라고 불렀다. 이것이 번지여 두만강북안은 조선사람들에 의해 북간도로, 압록강 북안은 서간도로 불리여졌다. 1885년에 봉금제가 정식 페지된후에는 더욱 그러했다고 알려진다.

다시 선구촌으로 돌아오면 선구촌의 이름은 사이섬으로서 선구촌의 1--5촌민소조 구역이 머리섬이고 천평벌 말단의 선구촌 6촌민소조구역이 꼬리섬으로 불리운다. 그러던것이 이곳에 나루터가 앉으면서 나루터가 번지여 선구(船口) 되고 선구가 꼬리섬의 지명으로 되여버렸다. 이에 따라 광복전 강량안에 종성세관과 선구해관이 서고 우리측에 세무소, 파출소, 학교, 상점, 료리집들이 흥기하면서 나루터마을은 제법 흥성흥성한 동네로 알려졌다.

그제날 나루터마을이다. 선구 머리섬에서부터 섬을 이루며 흐르던 두줄기 강이 이곳 꼬리섬나루터에서 합수되면서 강폭이 아주 컸다고 하지만  지난50년대부터는 사정이 달라졌다. 당지에서 강을 한곬으로 몰아넣으며 제방뚝을 쌓기 시작한데서 강뚝이 앞으로 나아가고 나루터는 뚝밖으로 밀려났다. 지금도 선구 6촌민소조 앞구간 논밭머리 쑥대속에 가면 시절의 자그마한 콩크리트땜을 볼수 있다. 나루터의 흔적이라 하겠다.

이것이 중국측 상황이라면 조선측에서 어느때부터인지는 몰라도 두만강가 종성구간에 제방뚝을 높이 쌓으며 강물을 지금의 물곬으로 흐르게 하니 강곬에 숱한 늪들이 생겨날수밖에 없었다. 우리측에서 강을 한곬으로 몰아넣은것이 50년대부터라고 하니 조선측도 그때부터의 일로 보는것이 옳을것 같다. 광복전에는 강폭도 넓고 서로 나루배가 오갔다고 하니 두말이면 잔소리다.

했으나 조선측 늪들이나 사적지가 바로 길이가 길고 높은 제방뚝 남안에 있어 우리측 두만강 남안이나 선구 6 뒤산에서도 볼수가 없다. 이런고로 허다한 이주사연구관련자들은 사이섬건너 조선측 사정에 대해서 밝지가 못하게 된다. 이런 사정에서 필자는 1991 8--9월간에 조선땅에서 두만강, 압록강 사적지들과 전적지들을 두루 답사하는 기회를 가졌음에도, 종성의 수항루나 두만강가 신흥촌 사적지를 돌아보았음에도 시절엔 조선측 늪들에 주의를 돌리지 못하였던것이다.

감개가 무량했다. 그런속에서 답사의 하루가 어떻게 흐른지도 알지 못한다. 조선측 두만강 뚝우에 오르지 못한것이 다소 유감스럽기도 했지만 1991년에 이어 종내, 뜻대로 종성구간을 답사하고야 말았다는것은 없는 마음상 위안으로 되였다. 마음에 걸림은 조선 종성에 와서도 윤동주의 증조부 윤재옥씨가 살았다는 종성군 동풍면 상장포를 찾을수 없음이라지만 종성거리를 거닐어보고 수항루에 오르고 우리 이주사 눈물의 사이섬을 답사한 것만으로도 위안을 느껴야 했다.

조선측 종성 두만강가에서의 나날은 살같이 흘러갔다. 정말이지 두만강 남안으로 답사의 한걸음을 내디딘다는것은 여간 쉬운일이 아니였다.

 

 

 

 

 

 

 

파일 [ 3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91
번호 제목 날자 추천 조회
291 【기행】남경의 우화대를 거닐며 2008-12-03 68 4604
290 【스케치】소흥의 로신 옛집을 찾은 이들 2008-11-17 65 4885
289 【인생소감】차한필 부장과의 인연 2008-10-19 68 4248
288 【겨레발자취】(20) 해서 묘소서 오함선생을 떠올리며 2008-10-07 48 4298
287 【겨레발자취】(19) 해남 해구에 해서 옛집이 있어 2008-10-02 72 4292
286 【겨레발자취】(18) 누르하치ㅡ우리 겨레와 관련되는 일대 위인 2008-09-30 53 5249
285 【단상】부조문화에 대한 일가견 2008-09-25 56 4034
284 【겨레발자취】(17) 심양북릉에 다시 들어서다 2008-09-21 69 4689
283 【겨레발자취】(16) 심양 고궁을 세번째로 찾아 2008-09-20 81 5729
282 【겨레발자취】(15) 24년만에 다시 찾은 심양 9.18사변지 2008-09-18 69 3976
281 (전일 계속) 장보고의 발자취—적산법화원 2008-08-19 80 5035
280 【겨레발자취】(14) 산동 영성시엔 장보고 관련 적산법화원이 있어 2008-08-17 70 5010
279 【겨레발자취】(13) 보타산 신라초기념비와 나의 가족 2008-08-07 67 4621
278 【겨레발자취】(12) 오늘의 항주고려사 옛터자리 아니였네 2008-05-18 108 4198
277 【겨레발자취】(11) 항주고려사에 의천 대사님 동상 모셔져 2008-05-15 96 4662
276 【겨레발자취】(10) 광주봉기렬사릉원 다시 찾아서 2008-05-11 89 5055
275 【겨레발자취】(9) 옛날 심청 주산군도에 시집 와 2008-05-09 96 5158
274 녕파 월호가의 옛 고려사관(2) 2008-05-07 112 4247
273 【겨레발자취】(8) 녕파 월호가의 옛 고려사관(1) 2008-05-06 86 4554
272 【순국72돐기념】 단재 신채호 (5) 2008-04-22 103 4142
‹처음  이전 1 2 3 4 5 6 7 8 9 10 11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