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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날답사 동산재기로 이어간다 (2)
2010년 01월 06일 14시 52분  조회:1691  추천:18  작성자: 리광인


【강남기행】


       새해 첫날답사 동산재기로 이어간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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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안이 중년의 나이 40대의 문턱에 오르매 동진나라의 운명이 험악하기만 하다. 세인들이 사안의 출마를 기대하고 사대부들이 사안이면 이그러지는 나라를 구할수가 있다고 믿는다. 이때 사안의 나이 40, 사안은 더는 보고만 있을수가 없어 승평 4, 즉 기원 360년에 동진 명제의 사위 정서대장군 환온의 청을 받아 들이고 형주로 가니 환온 대장군의 사마(司馬), 환온이 죽은 후에는 선후로 상서부사(尙書訃射), 통령리부(統領吏部), 후장군으로 활동한다. 조정에서는 또 사안더러 중서(中書)사무를 총괄하게 한다.

동진의 황제 간문제가 별세한후 사안은 황제의 림종유언에 좇아 나어린 효문제를 충성으로 보좌하여 나선다. 효문제가 친정한 후 효문제는 황제를 대표하여 령을 내리는 상징인 ”()을 사안에게 넘겨 책임지도록 하기에 이른다. 사안은 조정에서 선후로 리부상서(吏部尙書), 총중서(總中書), 사도(司徒), 태보(太保), 태부(太傅) 중요요직과 양주, 서주, 광주, 청주 등 15개 주 군사를 통솔하는 중임을 떠멘다. 동진 조정에서의 15, 사안은 위기에 처한 동진을 만구하면서 개혁을 단행하고 사회모순을 완화시키고 정국을 온정시키는 능력을 남김없이 보여주었다.

태원 7, 기원 382년에 전진(前秦)이 중국 북방을 통일하였다. 그때 전진과 대치할수 있는 나라는 동진 뿐이지만 전진 황제 부견(符堅)은 동진을 눈에 차하지도 않았다. 태원 8(383) 9월에는 한족과 기타 소수민족을 포괄하는 90만 대군을 이끌고 대거남하하여 동진과의 결전에 총궐기하였다. 그때 동진에는 저항할수 있는 군사라야 10만에 미치지 못하고 그 주력이 사안이 조직한 북부병(北府兵)일 뿐이다. 강대한 적의 침공앞에서 사안은 태연한 자세로 나라인심을 안정시키면서 회북사람들을 회남으로 이주시키고, 견벽청야(堅壁淸野)로 적들의 보급래원을 끊어버리는 전략전술을 취했다.

전진군의 30만 대군이 회남의 중진인 수양(壽陽, 오늘의 안휘 수현)을 함락하였다. 사안이 급파한 정예한 수군 5000명이 미처 수양에 이르지 못한 형편, 허나 이 군사들은 사안의 명에 의해 지혜를 모아 북부병 5000병력으로 전진군의 1 5000여명의 병력을 소멸하는 엄청난 전과를 올린다. 동진을 깔보기만 하던 전진황제 부견은 수양성루에서 겁이 더럭 났다. 긴장과 무서움에 눈까지 착란이 오니 부견의 눈에는 수양성외 팔공산(八公山)우의 초목들이 동진군사로 비쳐들었다지. 력사상 유명한 초목개병”(草木皆兵)의 성구는 이렇게 세상에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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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전진의 군사는 오늘의 안휘  비수 대안에 진을 친데서 동진군은 신속히 비수를 건너 전진군을 격파할수 없었다. 전진군의 주력이 다닥치면 동진군은 극히 불리하게 된다. 이에 동진군은 사자를 적진에 보내 전진군이 조금만 후퇴한다면 동진군이 비수를 건너가 결전에 나설것임을 알리였다. 승리감에 도취된 부견은 동진군이 비수를 건널 때 일망타진하려고 동진군의 요구에 응하게 된다.

부견은 오산하였다. 전진군의 허다한 군사들이 강박에 의해 끌려온 사람들이여서 후퇴의 명령이 전해지자 후퇴는 패배로, 도망으로 번저져 군심은 수습할수 없는 사태로 이어졌다. 이때 동진군이 비수를 건너 적들을 질풍노도같이 무찌르니 적군 인마 서로 밟기까지  하여 적들의 시체는 산과 들을 덮었다. 부견도 혼전에서 화살에 중상을 당했다. 전진군은 대패하여 락양까지 물러가니 군사는 겨우 10여만이 가랑가랑.

비수의 싸움(淝水之戰)은 동진왕조가 존재하느냐, 망하느냐 하는 사활적이고 결정적인 전역이였다. 이 싸움은 중국 고대전쟁사에서, 중국력사상에서 약한 군사로 강한  군사를 싸워 이긴 빛나는 전례(戰例)로서 사안은 비수의 싸움에서 군사통수로서의 지휘재능과 탁월한 재능을 남김없이 보여주었다.

태원 10(385)8 22 (양력 10 12) 사안이 별세하자 동진황제는 3일간 대전(大殿)에서 애도하며 사안을 태부(太溥)로 봉하고 시호를 문정”(文靖)으로 내린다. 장례도  대사마 환온의 상사때처럼 특수한 방식으로 치른다. , 전진군 평정에 탁월하여 봉호를 바꾸고 려릉군공”(廬陵郡公)으로 추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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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구 동산재기로 보는, 중국 동진력사로 보는 동산재기의 주인공 사안이다. 이런 력사의 위인이 지금 절강 소흥 상우시 남부에 위치한 상포진 동산에 고이 모셔져 있다. 동산은 동진시절의 탁월한 정치가이고 군사가인 사안이 은거하였던 곳으로서 산아래는  옛날 효녀 조아의 이름으로 된 조아강이 유유히 흐르고 산에는 대나무들이 우거져 풍경이 자못 수려하다. 이런 고장에 내가 아직 답사하지 못한 사안의 옛집이 있고, 상우에서는 지금 동산사찰을 세우면서 관광지로 꾸리고있다.

안휘는 또 어떤가, 안휘 지도를 보면 안휘의 중심부를 이루는 성소재지 합비에서 회남쪽으로 올리보면 수현(동진 때 수양)이요, 사가집구(謝家集區), 팔공산구요, 비수강이요~한눈에 알아 볼수가 있다. 그 옛날 전진군과 동진군의 비수의 싸움으로 이름난 력사의 강이 아니더냐, 동진군 통수로서의 사안의 탁월한 지휘재능이 그대로 발산된 비수지전이 아니더냐.

나는 시선을 다시 절강으로 돌리고 소흥으로 돌려 본다. 소흥시 소흥현 란정진 경내에는 동진 대서예가 왕희지를 기리는 란정풍경구가 있는데 이 란정풍경구에는 인공으로 만들어놓은 곡수류상”(曲水流觴)이 있어 자못 인상적이다. 동진 목제시절인 기원 353년 어느날, 왕희지는 동산의 사안,  손작 등 42명의 명사들을 불러 란정의 곡수류상에서 조용히 흐르는 물에 술을 부은 술잔을 띄워놓고 시를 주고받으며 즐긴다. 천고의 미담으로 남은 옛 이야기, 그날의 시들이 시집으로 묶어지고 시집에 왕희지가 서언, 즉 이름난 란정집서”(蘭亭集序)를 일필휘지한다.

이 왕희지가 동산 은거중인 사안의 절친한 친구로 알려진다. 사안이 동산재기하여 동진 조정에서 조정을 보좌하는 높은 벼슬에 있을 때 왕희지와 더불어 한 성루에 올라 담소하며 상상의 나래를 멀리멀리까지 펴간다. 그런 사안이 지금 상우 상포의 동산에 누워 1600여년 후에   찾아온 6000리 밖의 북방손님을 반기여 주는듯 싶다.

(동진시기 사안은 정말 그시절 동진 황제를 보좌하며 동진을 지켜낸 대단한 인물이구나!)

나는 경탄을 금치 못하였다. 동산재기후에도 소흥 상우 상포진의 동산에 요란함이 없이 조용히 누워있는 력사의 위인 사안에게 존경의 마음이 가기만 한다.

 

2010 1 3, 강남땅 두앵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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