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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송죽선생님께 드리는 글 (1)
2010년 01월 25일 14시 18분  조회:1134  추천:33  작성자: 리광인


          김송죽선생님께 드리는 글
(1)

 

 

조글로를 통해서 김선생님의 세편의 글을 모두 보았습니다. 선생님이 첫편의  글을 올려서 한두시간이 지나지 않아 보았드랬지요. 저는 정말 놀랐습니다. 생각 같아서는 즉각 반격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다가 올해 2010년에 저의 행동좌우명으로 내세운 삼사이후행”(三思而后行)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한걸음 물러서서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의 견해는 철통같이 굳어 있었습니다.

립장을 바꿔 생각하면 선생님의 견해, 선생님의 립장이 리해도 됩니다. 김좌진장군의 딸이라는 분한테서 들은 얘기고, 전 한국광복회 이강훈회장의 견해니 그럴수밖에 없겠지요. 견해를 돌리기란 정말 쉽지만은 않으니까. 이 점을 리해한다는 얘기입니다.

솔직히 저의 생각을 터놓고 픕니다. 력사를 연구하고 력사 글을 쓰는 분들은 어느  한 력사인물, 어느 한 력사사건에 대하여 흥취를 가지면 그 인물, 그 사건과 관련되는 이런저런 자료들을 다 들여다 보아야 한다고 봅니다. 그렇지 않다가, 깊은 연구를 하지 않으며 여기저기서 베껴내고 자기의 연구성과처럼  자처하다가는 골탕을 먹게 됩니다. 앞뒤를 모르고 하다가 무엇으로 들이치면 당할수밖에 없지요. 선생님의 경우 김강석과 이강훈회장의 말이 귀에 박혀 다른 사람의 견해에 풀쩍 뛰고있으니 어른님다운 풍격이 아니라고 보아집니다.

먼저 2005 1-2월 사이 문화산맥에서 벌어진 강경애 시시비비 사이버토론 글들을 잘 보시고 남들은 어찌하여 경경애가 김좌진장군 암살 동거녀가 아니고, 김좌진장군 암살은 조공당 만주총국의 집단획책이라고 하는가, 이 력사사실을 잘 보며 사색하여야 할것입니다. 그래도 내가 옳다면 어떻게 옳다고 조리있게 견해를 밝히면서 도리로 대방을 설득시켜야 하겠지요. 그러나 선생님은 선생님의 글 댓글에 진실이라는 아이디 글이 나타나니 뛰고있습니다.

저는 2005 1-2월사이 강경애시시비비에서 주장으로 뛴 리광인입니다. 제가 알아보니 그 시시비비 주력들인 조성일회장님, 북경의 장춘식씨도 진실님이 아닙니다. 그러니 우리 주력팀들이 선생님과의 설전에 나서지 않았습니다. 시비는 도리로 나눌 필요가 있겠지만 나먹은 문인들이 길길이 뛰며 싸울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온화한 태도로 조글로 저의 코너에 그 시절 시시비비 몇편의 글을  금시 올렸고, 장춘식씨는 앞서 그 시절 글과 강경애 문장을 몇편 올리였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력사진실을 잘 모르는 분들이 진짜 우리 강경애 녀류작가를 오해할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저희들도 진실님이 누구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진실님의 댓글을 보면 박식하고 력사지식이 대단히 풍부하고 김좌진장군 암살전후를 잘 알고있는 분으로 알리더군요. 이제 저는 진실님을 찾아 교류할것이지만, 특히 진실님이 지적한,  암살자 공도진이 바로 리복림이고 최동범이고 박상실이라는 점에 류의하시기 바랍니다. 이는 모두가 공도진 한사람입니다. 박상실이 바로 공도진이라는 점은 력사와 씨름하는 저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사실 김좌진장군 암살자는 공도진으로 나타나지만 그 조직획책자는 그 개인이 아닌 조공당 만주총국(화요파)이였습니다. 한편 우리 녀류작가 강경애는 그시절 그사건의  녀인이 아니며 그 시절 녀류작가로서의 우리 작가 강경애는 조선 황해도 장연에서 룡정행에 오르지도 않은 시절이였습니다. 이미 글 한편을 썼으니 제가 쓴 1931년 전후 강경애 행적을 보면 선생님도 수긍이 갈것입니다.

한걸음 물러서서 다시다시 력사공부를 진지하게 하면서 잘 검토해 보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후배가 선배님께 드리는 진지한 진언입니다. 그러면서 더는 조공당을 모독하며 이강훈회장을 올리추는 글들을 쓰지 말았으면 좋겠구요.

, 조공당을 모독한다는 자체가 력사를 잘 모르는 무지를 나타내게 됩니다. 조공당의 절대다수 사람들은 견실한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 항일지사들로서 1930년 동북 “5.30”폭동전후 개인신분으로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여 동북의 가렬처절한 항일무장투쟁에서, 적후투쟁에서 피흘려 싸운 견실한 항일지사들입니다. 아닙니까? 조선의 립장에서는 김일성장군 계렬이 아닌 그 먼저라고 조선서 홀대하고, 중국공산당 계렬이 아니라하여 (1930.5.30폭동이전)력사평가가 부진하고, 한국의 정통 독립운동사가 아니라하여 한국에서 홀대하고 그러면 그들은 누구입니까?! 제일 옳바르게 평가를 주어야 할 우리 중국조선족들이 그들의 투쟁을 리해하지 못하고 무시한다면 뭐가 되여요? 그들을 무시한다는것은 우리 중국조선족의 피어린 력사, 피어린 항일투쟁사를 무시하는 결과를 자초하게 됩니다.

오늘은 이만큼 쓰겠습니다. 선의적인 글이니 선생님도 리해가 가리라고 믿습니다. 그때 강경애시시비비 글들과 진실님의 댓글을 잘 보셨으면 합니다. 요즘 리광인 저의 문학코너와 장춘식씨 문학코너의 글들이 그때 글들중의 일부이니 줄거리는 주어집니다.

새해 안녕하시고, 하시는 일들이 잘 되여가시기를 진심으로 축복합니다 !!!

 

2010 1 25 , 리광인 강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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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 4 ]

4   작성자 : 두만강
날자:2010-01-27 20:09:24
진실님의 그때 그 시절 연박한 력사지식에 탄복합니다. 리복림이 박상실이라는 것은 저도 처음 듣습니다. 이에 대한 글을 쓰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김책 연구를 다고있다니 대단히 고무됩니다. 김책 화룡 동성 시절에 대해서 저도 좀 알고 있습니다. 김책은 정말이지 존경이 가는 겨레의 위인입니다. 피어린 항쟁의 그 나날, 우리 겨레로서 중공북만성위 서기로 뛰였다는것이 얼마나 우러러 보입니까. 잘 써내기를 축복합니다. 저는 지금 우리 양림장군, 무정장군 평전에 나섰습니다. 서로 교류를 기대합니다~~~
3   작성자 : 보충-계속하여
날자:2010-01-26 01:24:42
注-1 김책과 박봉남의 관계에 대하여서는 연변의 조선족 작가 류순호가 저술한 -조상지 전기-를 참조하면 됩니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출옥한후 바로 두만강을 건너 화룡현 동성의 박봉남의 집에 도착한 김책은 박봉남의 아버지가 한달동안 보살혔고 집에 있던 송아지까지 잡았다고 나와있습니다. 그때 박봉남은 이미 밀산현위에서 사업하고 있었고 아내가 시부모님을 모시고 화룡에 었습니다. 注-2 조선공산당 화요파 출신 무장대원 리복림 (박상실-공도진-최동범-김일성) 은 후에 조상지와 함께 주하동북반일유격대를 이끌고 있을 때도 화요파 무장대원 시절의 모습을 드러냈던 기록이 있습니다. 바로 조상지와 북만의 의용군 부대의 하나였던 구강부대와 마찰이 생겼을 때의 일입니다. 유격대의 정치위원이였던 리복림은 구강부대의 수령인 우구강의 가족을 납치하는 일도 하였습니다. 이 일로 공산당의 부대가 의용군수령의 가족까지 납치한다는 일로 조상지가 비판받았지만, 후에 생존자들은 그게 조상지가 한 일이 아니고 조상지의 정치위원이였던 리복림이 한짓을 조상지가 대신 덮어썼다고 회고했습니다. 후에 구강부대는 역시 한인이였던 허형식에 의해 소멸되였습니다. 허형식은 조상지를 대신하여 후에 항일련군 제3군 군장까지 되는 사람입니다... 이런 보충을 더 하는 것은-력사란 이렇게 김송죽씨처럼 기가 좋아하는 사람 한둘의 회고담에만 매진하고 남의 말을 듣지 않으려고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때 살았고 또 발생했던 역사사건과 관련 인물들의 행적과 시간 등을 대조하면서 서로 련관성을 짓고 그라프를 그려가면서 분석하고 추리하여야 합니다. 이상...
2   작성자 : 보충
날자:2010-01-26 01:00:31
注: 여기서 김책은 광복후 북한에 돌아가 부수상이 되였던 그 김책입니다.
1   작성자 : 진실
날자:2010-01-25 22:23:51
댓글 몇마디 달다가 여기까지 왔군요. 마지막으로 하나 더 달고 가리다. 당시 신문에 박상실이 호로군사령부에 잡혀 사형을 맞았다는 기사가 실렸던 적도 있습니다. 이런 자료들의 한국에서 강경애의 동거남 사살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제공하는 자료들에 자주 등장합니다.,, 그때 신분 기사 복사본을 구하기도 어렵지 않습니다. 제가 아는 -박상실의 호로군사령부에 의한 사형집행설은 조금만이라도 그때 인물들의 다른 행적에 대하여 연구를 진행한다면 어렵지 않게 밝혀질수 있습니다. 제가 최근에 김책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면서 김책을 아주 잘아는 -전 흑룡강성 밀산현위 제1서기 였던 박봉남의 안해와 그의 딸이 해방후 장춘시에서 살았는데,장춘시 관성구 병원에서 사업하였습니다. 박봉남의 안해가 김책에 대하여 자세하게 소개하였는데, 김책이 영안에서 1930년 (김좌진이 피살당한 그해) 10월에 영안현 쏘베트림시정부 주석으로 선출되고 이듬해 할빈으로 회의하러 오는 길에 기차에서 호로군사령부에 의해 체포되였습니다. 여기서 호로군사령부는 정확히 동청철도호로군사령부이며, 그들은 바로 김좌진으로부터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조선청년들의 정보룰 제공받군 했던 것입니다. 김좌진이 사살당하자 호로군사령부는 눈에 쌍심지를 켜고 공산주의 전력을 가진 사회주의 조선인들을 수색하게 되었는데. 이때 영안에서 할빈으로 오고있었던 김책도 붙잡혔습니다. 이제부터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박상실이라는 이름이 그때 거론됩니다. 호로군사령부는 김좌진의 사람들로부터 화요파의 박상실이라는 무장대원이 김좌진을 기습했다는 정보룰 제공했습니다. 그리하여 붙잡아들였던 조선인들에게 거의 모두 박상실이 아닌가고 의심을 덮어씌웠습니다. 김책도 호로군사령부에 잡혀 역시 박상실로 의심받았으나 그는 간도공산당사건으로 당시 신문에도 보도된바 있었고 서대문감옥에서 옥살이를 하였던 -김홍계 그 당사자라는 사실이 확인되였습니다. 그러나 이때 진짜 박상실이 바로 호로군사령부에 나포되였습니다. 그가 바로 리복립이였던 것입니다. 그게 1931년입니다. 리복림이 박상실이라는 가명을 사용하는 당사자였다는 사실을 확인하였으나, 그가 같은 조선사람끼리 김좌진을 사살한 장본인보다는, 그 당시 호로군이 김좌진사살사건보다 훨씬 더 엄중한 1930년 5월1일 할빈 반일시위 주모자의 한사람이라는것을 발견한것입니다. 이때 동청철도 호로군사령부에서는 김좌진보다 훨씬 더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고 있었던 중국공산당 만주성위원회 책임자였던 장호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었던 리복림에 대하여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하여 리복림을 즉각 봉천으로 압송하는데, 이때 김책도 리복림과 함께 봉천으로 압송되였습니다. 두 사람은 봉천에서 감옥살이도 함께 하였습니다... (이상 기록은 역사서에서 확인이 가능합니다) 당시 리복림은 김책보다 더 높은 직위에 있었습니다. 만주성위원회 책임자 장호 (바로 임중단)가 화요파와 엠엘마의 조선인 출신 공산당원들을 중국공산당원으로 포섭하는데서 가장 주요한 연계자가 바로 리복림이였습니다. 때문에 김책과 리복림이 봉천감옥에서 석방될 때 김책은 빈현 당서기로 파견되지만 리복림은 만주성위 순시원이 됩니다. 호로군사령부와 친하게 지냈던 김좌진의 사람들이, 그들이 박상실로 알고 있었던 리복림을 자기들의 손에 넘겨달라고 요청했을때 호로군사령부에서는 리복림이 중국공산당 만주성위를 파괴할수 있는 주요인물로 간주하고 봉천으로 압송해버렸습니다. 그리고 당시 신문이 박상실은 호로군사령부에 의해 처형되였다고 오보하였던 것이 아니였을가요? 이것은 물론 -진실-이라는 아이디를 사용하는 나의 추측일 따름입니다. 김송죽씨가 자꾸 박상실 박상실 하는데 박상실이 바로 리복림이라는 사실을 모르니 모든게 다 빗나가고 맙니다. 저는 여기까지만 댓글을 달아드리겠습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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