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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관 권수정—이자들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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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7월 , 신민부에 이어 조직된 “재만한족총련합회”(在滿韓族總聯合會)는 본부를 해림현 산시에 두고 그 아래에 의사기관과 집행부를 설치하면서 한인들의 지방 “자치조직”을 설립하기 위한 활동, 재만한인 교육활동, 무장활동을 주요한 활동으로 내세웠으나 무장활동의 선차적인 과업은 공산주의운동에 대항하기 위해서였다. 그만큼 원 신민부 군정파와 재만조선무정부주의자련맹 무정부주의자들간의 련합산물인 재만한족총련합회는 무정부주의를 표방한 철저한 반일, 반공단체였다. 1929년—1931년 사이 이들 재만한족총련합회는 자기들의 반일,반공 방침에 따라 동북군벌과 손을 잡고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들을 본격적으로 공격하기 시작했는데 그 진두에 한족총련합회의 주요성원들인 남대관, 권수정, 리강훈 등이 서 있었다.
1930년 5월 연변에서는 천지를 진감하는 “5.30”폭동이 기세드높이 일어났다. 이 운동은 중공동만특별지부가 발기하고 원 조공당 동만지역국 산하 엠엘파, 화요파 등이 호응하여 일어난, 원 조공당 당원들을 투쟁의 시련을 거쳐 중공당에로 받아들이기 위한 대중적 폭동이였다. 이에 피눈이 된 한족총련합회의 주요성원들인 남대관, 권수정 등 수십명 골간들은 전문 “토공대(討共隊)를 조직하고 대지주이고 동북군 돈화 주둔 제7퇀 퇀장인 왕수당과 결탁하여 길림, 연변 더우기 왕청 일대에서 사처로 쏘다니며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들을 마구 학살하기 시작하였다. 5.30폭동이후 원 조공당 각파 당원들이 거의 모두가 투쟁의 시련을 거쳐 개인신분으로 관련수속절차를 거쳐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자 남대관, 권수정 등의 학살대상도 조선족 중공당원과 혁명자들에게 돌려졌다.
1930년 가을 이후 왕청현에 이동한 이자들은 당지 보위단과 야합하여 대흥구, 하마탕, 묘령, 천교령 등지에서 중공왕현위가 지도하는 우리 반일유격대와 혁명자들을 대대적으로 “토벌”하였다. 이해 12월에 중공왕청현위 제1임 서기 김훈은 상기 지대들에서 활동하다가 부득불 현유격대—반일유격대를 이끌고 라자구 일대로 전이할수 밖에 없었는데 겨울나이 준비가 따르지 못한데서 유격대를 잠시 해산해야만 했다.
1931년 정월에 김훈은 동지들과 함께 대흥구, 묘령, 천교령 등지에 숨어들며 적들의 토벌로 하여 파괴된 당조직과 혁명단체를 다시 춰세우는 간거한 사업에 나섰다. 그러던 그달 21일, 김훈이는 천교령의 민간의사 현씨집에서 병치료를 하던중 이들 토벌대에 체포되어 왕청현성 백초구로 끌려갔다. 적들은 김훈이를 유격대 대장인줄로만 알고 갖은 유혹과 구박을 들이대다가 길림성 제4감옥ㅡ연길감옥으로 압송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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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1월, 중공왕청현위 서기 김훈이 불행히 체포되고 갓 성립된 현위는 엄중한 손실을 받았다. 이 긴요한 고비에 중공동만특위(1930년 10월에 건립됨.)에서는 김상화를 중공왕청현위 제2임서기로 위임하였다.
1931년 1월 하순의 어느날(1930년 음력 섣달 보름날) 저녁 김상화는 적들의 대토벌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하여 먼저 북하마탕 영안툰에 있는 녀동생 김순옥의 집으로 갔다. 그는 녀동생의 집 뒤고방에서 저녁을 대충 에때운 후 중공북하마탕 지부서기이며 공청단하마탕구위 서기인 한영호 등과 함께 북하마탕 대방자촌에 가서 해당 회의를 밤새껏 열고 지방혁명자 김득봉의 집안천정에 숨어 있다가 한영호와 함께 체포되고 말았다.
권수정은 웃음주머니가 흔들흔들했다. 이자는 김상화를 불러내더니 빈들거렸다. 《당신이 공산당이지!》
보통키에 앞가슴이 떡 벌어진 김상화는 우습다는듯 머리를 돌리지 않았다. 권수정은 한걸음 다가서면서 능청을 떨었다.
《김선생, 우리는 당신이 어떤 사람이라는 걸 다 알고있소. 외고집만 부리지 말고 실토하시오.》
《나는 당신들의 선생이 아니오.》
《그럴 필요까지야 없지 않을가, 당신이 실토만 한다면 즉각 석방할 뿐만아니라 큰 벼슬자리에 앉히고 한늬 영화와 부귀를 누리게 할 것이요.》
김상화가 아예 입을 꾹 다물어버리자 악에 받친 권수정은 푸들푸들 떨었다. 워낙 다년간 반일진영에서 민족주의를 부르짖던 이 자는 놈들의 개로 전락되어 전문《공산당잡이》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지금 자기에게《큰 고기》가 물렸는데 쉽사리 물러서려 하지 않았다. 권수정은 드디어 야수같이 으르렁거렸다.
혹심한 고문이 시작되었다. 차마 눈을 뜨고 볼 수가 없었다. 한놈이 눈을 싸매고 뒤에서 머리를 당기는가 하면 두놈은 열손가락을 노끈으로 매고 좌우 량켠에서 당겨댔다. 그리곤 꿇어앉히고 무릎안쪽에 장대기를 가로지르고 네놈이 장대기 량끝에 올라서서 내리 눌렀다. 38식 총알을 열개씩 묶어 가슴팎을 찌르고는 패운 그 자리에 향불과 담배불을 지져댔다. 또 고추물과 냉수를 먹이며 찬물을 마구 온몸에 끼얹었다. 그러고도 성차지 않아 채찍으로 사정없이 후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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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화는 벌써 몇번이나 까무러쳤는지 모른다. 하루 수차의 혹형에 몸은 성한데없이 피투성이건만 한번 닫긴 상화의 입은 도시 열릴 줄 몰랐다. 한영호는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유격대에서 쓰지 못하는 권총은 어디에 있고 누구누구는 무슨 일을 한다고 일부를 누설하였다.
또 새아침이 밝아왔다. 집집마다 자기 친인들께 아침끼니를 갖추어왔다. 금방 아침식사가 끝나자 한영호는 정주칸문턱 한쪽벽에 기대여 앉고 김상화는 가마를 베고 누워버렸다.
이때였다. 한영호가 어디에선가 면도칼을 꺼내들더니 어쩔사이도 없이 자기 목을 썩 베고 쓰러졌다. 김상화가 면도칼을 이어받아 자기목을 베였다. 상화가 쓰러진 사이 한영호가 다시 일어나더니 재차 목을 베고 또 쓰러졌다. 그 자리에 있던 군중들은 끔직한 광경에 기가 막혀 소리도 치지 못하고 묵묵히 한숨만 지을 뿐이였다.
뒤미처 보초놈의 전갈을 받고 권수정이 달아왔다. 이자는 쓰러진 김상화를 보고 주눅이 들었다.
《네가 정말 독한 사람이다. 네가 내 말을 듣는다면 큰 벼슬에 오르겠는데 이렇게 죽었구나!》
김상화와 한영호의《시체》는 짚에 싸여 바닥에 내려졌다. 한참후 김상화가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앉더니 손더듬으로 종이와 연필을 달라고 하였다. 희색이 든 권수정이 종이와 연필을 갖다주자 상화는 한글자한글자씩 써내려갔다.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 여기에 갇힌 사람들은 아무 책임도 없는 애매한 군중들이니 당장 석방하라! 혁명은 꼭 승리할 것이다!》
일루의 희망을 품었던 권수정은 아연해지고 말았다. 죽여달라는 김상화를 보고 어쩌는 수가 없었다. 이윽고 한영호도 정신을 차렸다. 누군가 수건을 목에 감아 주었다. 권수정이 면도칼은 어디서 난 건가고 묻자 영호는 신바닥밑에 감추었던 것이라고 대답했다.
이날 김상화는 수레에 실려 사형장으로 나갔다… 중공왕청현위 제2임서기이며 조선족의 미더운 아들인 김상화는 하마탕에서 장렬한 최후를 마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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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공 왕청현위 제1임서기 김훈과 제2임서기 김상화를 통해 동북군 돈화 제7퇀과 야합한 남대관, 권수정 토공대의 진면모를 알아 보았다. 이는 왕청 일대에서 벌어진 이자들 토벌대의 한 토벌편단이지만 그때 그 시절 왕청현의 지하 당조직은 엄중히 파괴되고, 얼마나 많은 중공당원과 혁명자들이 체포되고 살해되였는지 모른다. 그들 거개가 피끓는 조선족 반일지사들이였는데 당현위 서기 김훈과 중공왕청현위 제1임 부녀위원 김영신, 최선일, 리신옥 등도 왕청에서 활동하다가 상기 토벌대에 의해 1931년 초에 체포되여 연길감옥에 투옥, 리신옥은 오빠 리진(일명 리선재)과 함께 연길감옥에 갇히게 되였다.
리진은 왕청현 대감자 사람으로 알려지는데 어느날 리진은 역한 냄새가 코찌르는 감방과 우중충한 감옥담장을 바라보며 동지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연길감옥에 갇혀 몸은 시드나 혁명정신이야 어찌 시들수 있겠소!》
격정이 넘치고 시맛이 도도한 25살 열혈청년의 말이였다. 그뒤 리진은 이 어구를 살리고 보충하여 7절로 된 《연길감옥가》를 손수 지어냈다. 그는 혁명에 대한 피타는 마음을 그대로 노래에 담았었다.
리진은 그후 악형에 의한 시달림과 장질부사에 모대기다가 옥중에서 병사하였다. 그러나 리진이 지은 《연길감옥가》는 조직선을 통해 온 감방에 퍼지고 외부에 전해져 수많은 혁명자들을 일제놈들과의 투쟁에로 고무하였다.
바람거친 남북만주 광막한 들에
붉은기에 폭탄쥐고 날뛰던 몸이
연길감옥 갇힌 이후 몸은 시드나
혁명에 끓는 피야 언제 식으랴
7절로 된 “연길감옥가”의 제1절, 리진이 짓고 선참 부른 이 노래는 온 감방에 퍼져 수많은 혁명자들을 투쟁에로 고무하고 밖에서 일제놈들과 싸우는 수많은 동지들을 항쟁에로 불렀거니 연길감옥가의 작사작곡자 리진과 김훈, 김영신 등은 남대관, 권수정 등 토벌대에 의해 체포된 왕청현의 반일지사들이였다.
치가 떨린다. 남대관, 권수정 이자들은 누구이냐? 상기와 같이 동북의 항일투쟁에, 조선족인민에게 엄청 피빚을 진 철두철미한 한무리 반공분자, 반역자들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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