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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송죽선생님께 드리는 글 (2)
2010년 01월 31일 23시 30분  조회:1055  추천:19  작성자: 리광인



          김송죽선생님께 드리는 글
(2)

 

 

선생님의 선의적인 글 사실을 뒤섞지 말자를 보고 느끼는 바가 큽니다. 서로간의 시비는 이렇게 선의적이고, 토론식으로 되여야 서로 마음을 상하지 않을수가 있지요. 또 이런 분위기속에서라야 시비요, 쟁론이요 할 멋이 있다고 보아집니다. 그러면서 저의 글 남대관 권수정 이자들은 누구인가?”를 보시고 재만한족총련합회의 무장투쟁의 선차적인 과업은 공산주의 운동에 대항하기 위해였다, 무정부주의를 표방한 철저한 반일, 반공단체였다, 1929—1931년 사이 동북군벌과 손을 잡고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들을 본격적으로 공격하기 시작했다에 대해 물음을 제기하면서 답을 바랐기에 선생님께 드리는 글(2)로 올려 드립니다.

상기 세가지 관점은 저 개인의 주관결론이 아님을 먼저 말씀드립니다. 여기 관점들은 모두 우리 조선족 력사학계의 견해들이고, 중국조선민족발자취총서 2 --“불씨”(1995 12, 민족출판사 출판) 4부분—“민족주의계렬의 반일투쟁부분 신민부, 한족총련합회 관련 글들에 관통되고 있습니다. 이런 글들은 신민부나 한족총련합회의 력사적역할을 객관적으로 긍정하면서 또, 그들의 공산주의운동 적대시를 묵과하지 않고 있습니다. 비교적 실사구시한 평가들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1929--1931년 사이 동북군벌과 손을 잡고 서술은 김좌진장군 살해후가 주선이 옳습니다. 이것을 김좌진장군의 피살원인에 몰아간것이 아님을 알려 드립니다. 제가 남대관 권수정 이자들은 누구인가?”를 쓰게 된것은 선생님이 먼저 글들에서 리광훈은 독립혁명을 해온 원로급인물인바 우리 모두가 존중해야 한다”, “우리 민족 모두가 경모해야 할 독립운동가”, “독립투사였고 당당한 력사학가등등 평가를 주니까 이에 대비해 한족총련합회의 성원들인 이강훈 등의 반공죄악을 폭로하기 위해 쓴글이였습니다. 이 글에서 이강훈 옹을 중심으로 폭로하진 않았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이강훈 옹은 반일전선에는 나섰다하지만 우리 모두가 존중하고, 경모해야 할 인물이 아니라 환영받지 못할 반공분자임을 알수가 있습니다.

또 하나 알려 드릴것은, 선생님은 이강훈이 김좌진장군 피살현장에 있던 목격자라고 하는데 이것이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한국 관련 학자들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이강훈 옹은  장군 암살 며칠후에야 현지에 이른 사람입니다. 때문에 조공당 만주총국 화요파의 결단으로 공도진 즉 리복림을 통해 집행한 사실을 그가 알수가 없었습니다. 워낙 베일에 가린 사건인데서 더더구나 그러 하지요. 관련도 없는 강경애를, 그 시절 강경애의 행적조차 모르면서 강경애를 끌어들이는 자체가 그의 무지를 남김없이 드러내고 있습니다.

오늘은 상기 세가지 관점에 대해 보다 잘 설명하고저, 선생님이 아직 보시지 못한것 같아 신민부, 한족총련합회가 공산주의운동을 적대시했다는 관련서술을 발자취총서 2에서 뽑아 참조로 보여 드립니다. 한편 중공만주성위의 관련 성토문을 뽑아 보여 드리니 참조하였으면 합니다. 이런 관련서술이나 만주성위 관련 성토문(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극단적인 평가가 보이기도 하지만)을 보면 김좌진장군 피살발생하지 말아야 할 력사비극이 어찌하여 일어났겠는가를 사고하는데 도움을 주리라 믿어집니다.

 

1.    중국조선민족발자취 총서 2 의 관련 서술

 

신민부는 1925 3 10일부터 15일까지 녕안현 성내에서 창립대회를 개최한후 그에 의해 산생된 중앙집행위원회는 신민부의 금후 활동방침을 결정할 때 제3에서 공산주의 침투를 저지한다고 밝히였습니다

 

--- 207페지에서

 

학교운영에 있어서 재정난이 심해지고 선진사상이 날로 침투되자 신민부에서는 학부형들에게 재정부담을 가중시킨 결과 점차 백성들의 불만을 자아냈으며 또 협애한 민족주의로 학교에서의 선진사상의 침투를 반대한 결과 진보적인 청소년들과도 엄중하게 탈리하게 되였다.

 

--- 211페지에서

 

리백호 등은 빈주현에서 강박적방법으로 군자금을 징수하려다가 도리여 백성들의 불만을 자아냈을뿐만아니라 무고한 백성을 살해하는 류혈사건(빈주사건)까지 빚어내였다. 그리고 훈춘에 파견되였던 신민부 모금대도 일이 뜻대로 되지 않자 군자금징수를 거부하는 무고한 백성을 살해하기도 하였다. 이리하여 신민부는 점차 민중들의 신임과 후원을 잃게 되였으며 민중들과 엄중하게 리탈하였다.

 

--- 213페지에서

 

1928 11 18일 군정파인 리백호가 빈주현에서 당지 주민들에게 군자금과 의무금을 강요하다가 총을 발사하여 무고한 백성을 살해한 빈주사건이 발생하였다.

 

--- 219페지에서

 

 

신민부도 기타 민족주의단체와 마찬가지로 공산주의운동을 적대시하였기때문에 선진청년들의 불만을 자아냈으며 점차 민중들을 엄중히 리탈하게 되였다.

 

--- 217페지에서

 

 

신민부의 지도층은 거의 모두가 량반가문의 출신들이였다. 계급적제한성으로 하여 그들은 공산주의운동을 적대시하였으며 지어는 공산주의자들을 검거, 체포, 학살하기도 하였다. 이리하여 신민부는 인민대중들의 기반을 잃었을뿐만아니라 당시 북만지역에 분포되였던 농민조합, 북만청년회 등 조기공산주의단체들의 공격대상으로 되였다. … 1929 6, 조공당 만주총국위원회에서도 신민부와 같은 부패한 민족단체는 매장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주장하였다.

 

--- 222페지에서

 

군정파에서 활약하던 김종진, 리붕해, 리종주, 리강훈 등 무정부주의자들은 김좌진에게 무정부주의의 조직원리에 좇아 원 신민부 군정파를 개편할것과 이미 작성된 만주에서의 독립운동계획안에 의하여 새롭게 반일투쟁을 전개할것을 요구하였으며 무정부주위로써 공산주의사상의 침투를 방지할것을 주장하였다. 이리하여 신민부시기 이미 대중적기반을 잃었으며 또 계급적국한성으로 하여 공산주의운동을 접수할수 없었던 김좌진을 위수로 한 군정파는 점차 무정부주의에 동감을 표했으며 무정부주의로서 금후 반일투쟁을 조직, 전개하기로 하였다.

 

--- 229페지에서

 

무정부사회의 수립은 무정부주의자들의 최종목적이였고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그들은 우선 일제를 타도하고 공산주의사상의 침투를 방지하여야 한다고 인정하였다. 그러므로 재만조선무정부주의자련맹에서는 상술한 강령을 제정한 동시에 다음과 같은 당면강령도 제정하였다.

(1)    우리는 재만동포의 항일, 반공 사상의 계몽 및 생활개혁의 계몽에 헌신한다.

…………

이상의 당면강령에서 볼수 있는바 재만조선무정부주의자련맹은 항일, 반공 사상의 계몽과 생활개혁을 당면의 주요한 과업으로 내세웠으며

 

--- 230페지에서

 

1929 7월 흑룡강성 해림현 산시에서 조직된 한족총련합회는 원 신민부 군정파와 재만조선무정부주의자련맹의 무정부주의자들간의 련합의 산물이며 무정부주의를 표방한 반일, 반공 단체이다.

 

--- 232페지에서

 

김좌진이 무정부주의를 접수하게 된것은 주로는 무정부주의자들의 힘을 빌어 위기에 처한 신민부조직을 재정돈하고 민정파와의 분렬로 하여 잃었던 교육, 산업 인재들을 보충받고 날따라 고조되고있는 공산주의운동과 공산주의사상의 침투를 방지하기 위한데 그 목적이 있었다고도 볼수 있다. 한마디로 말하면 계급적제약성으로 하여 공산주의운동을 용납할수 없었던 신민부 군정파들은 부득불 반일반공을 당면강령으로 한 재만조선무정부주의자련맹의 정치리념인 무정부주의를 수용할수밖에 없었다.

 

--- 233—234페지에서

 

한족총련합회는 무장투쟁보다도 교육 및 농촌지방 자치조직의 건설 등에 정력을 기울였기때문에 정규적인 무장부대를 가지지 못하였다. 지방의 치안을 담보하기 위한 별동대는 있었으나 그것도 근근히 간부들의 신변보호와 소규모의 일제주구청산 등 역할밖에 놀수 없었다. 하지만 공산주의리념과 무정부주의리념의 갈등으로 하여 한족총련합회와 공산주의 각 단체들간의 모순이 점차 악회되여가자 총련합회에서는 선차적으로 공산주의운동에 대항하기 위한 무장부대를 설립하였다.

--- 239페지에서

 

한족총련합회에서는 자기들의 계급적리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장학량의 동북군벌들과 손을 잡고 공산주의자들을 본격적으로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1930 5월 연변일대에서 공산당의 령도하에 붉은5월투쟁이 전개되자 한족총련합회 성원인 남대관, 백남준 등 10여명은 권수정을 통하여 공비토벌대대장인 길림성 군법처 왕과장 등과 련합하여 길림, 연변 등지에 가서 공산주의자들을 학살하기 시작하였으며 지어는 선량한 조선인을 압박, 체포, 김금, 략탈하는 등 극도의 횡포까지 부렸던것이다.”

 

--- 239페지에서

 

 

 

2. 신민부, 한족연합회 등에 관한 만주성위의 관련 문건 (리함 번역)

           

《성위 소수민족운동위원회 재만 한국로농군중운동에 관한 중공만주성위 결의안 초안》에서

(1930 5 24)

 

(2) 대일본제국주의, 중국통치계급 및 한국반동단체(국민부, 신민주) 등 겹띄운 압박하의 한국 농민 및 모든 로고군중의 생활은 극히 잔혹하다… 일본제국주의의 세력이 미치지 못한 각 오지(奧地)에 이르기까지 일본제국주의 및 중일지주자본가의 주구가 되기를 달갑게 여기는 반혁명적 이른바 《독립군》—국민부 한국총련합회 및 일본정탐조직으로 《독립》을 표방하는 신민부 등이 출몰하고 있다…

                                                  914--915

 

(6) …지금 국민부, 한족(韓族) 총련합회와 농민동맹반동파(1929년 제3차 대회결의안을 반대하여 물러선 집기간군 정미업자), 최근 중국국민당 경현(京縣)정부의 양해하에 조직된 이른바 조선혁명당 등에 이르기까지 모두 신민부, 정의부의 정통이다. 지금도 의연히 계속 반공(反共)을 다그치고 공산주의자학살을 다그치고 군중조직을 파괴하며 중일통치계급의 간접적 혹은 직접적 주구로 되었다…

                                                  916--917

 

《재만주 고려인문제에 관한 중공만주성위의 제안》에서

                   (1930 6)

 

…이런 열정은 모두 국민부, 한족회(韓族會) 등 봉건통치식단체에 쏠리였다. 재만고려인 통치기관으로 자처하고 고려농민들에게 갖가지 세금을 강요하였다. 만약 불복하거나 반대자가 있으면 원시식 사형(私刑)을 가하거나 심지어 총살과 언어도단(言語途斷)의 학정을 감행하였다… 국민부, 한족회 등은… 재만 중국군벌의 주구로 변하여 혁명분자의 체포나 직접적체포를 도와주고 중국군벌 및 일본제국주의에 넘기였다. 하여 계급관계가 극단적으로 첨예화되고 허다한 지방의 교통이 막히고 총과 총이 대치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926--927

 

…군벌과 야합한 주구단체— 국민부, 한족회를 속히 타도하고…

                                                 928

 

 

《중공만주성위, 공청단만주성위 군중들에게 알리는 글》

(1931 9 20)

 

…중국의 혁명적 로농병형제들과 련합하여 중국혁명에 직접 참가하자!… 국민부, 한족련합회, 한족자치회 등 반혁명기관을 소멸하자!

                                                  1092

 

(역자주: 이상 문건절록은 《동만지구혁명역사문헌회편(匯編)(하책)에 의하였음. 이책은 《중공연변주위 당사연구실》에서 2000 9월에 편집, 인쇄한 내부간물.

 

2010131일 강남땅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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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 1 ]

1   작성자 : 애독자
날자:2010-02-01 07:3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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