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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해 (외 5수)
리성비
동산에서 기지개 펴던 호랑이가
옛 마을이 살아 숨쉬는
골짜기를 뛰여넘어
서산 언덕에 앉아 똥을 누고
아무도 몰래 눈속깊이 묻어버린다
그리곤 갑자기 서산너머로 펄쩍 넘어선다
언땅을 뚜지던 짐승들이
갑자기 사방으로 흩어진다
어느 짐승의 진붉은 피가
흰눈 덮인 수풀 사이로 뚝뚝 떨어지며
한폭의 수묵화 같은 산야를 붉게 물들인다
가 족
사람 살던 초가에
사람 같은 황소가 살다 갔다
사계절 입던 누런 털가죽 벗고 떠나갔다
날이면 날마다 한집에서
식사도 같이 하고 잠도 같이 자다가
자식 농사도 밭농사도 같이 하다가
때론 전통명절이나 한가할 땐
마당에서 뛰여노는 송아지와 애들 모습
이웃집 맘씨 착한 벙어리 아저씨처럼
그렇게 빙그레 웃으며 바라보다가 갔다
긴긴 세월 대를 있던
숙명 같은 운명의 멍에를 벗고
어느날 떠나갈 때
형수 같고 형님 같은 주인집 마누라는
황소의 정강이뼈를 장독깊이 묻어두었다
초 혼
복(復) 복(復) 복(復)
흰 속적삼이 초가집 처마우에서 펄럭인다
푸우 푸우 마지막 숨을 내쉬는 사람
산꽃 같은 아씨를 떠올리다가
달님 같은 어머니를 떠올리다가
별빛 같은 새끼들을 떠올리다가
가슴속에 망울진 사투리 유언 한송이
흰꽃으로 피우지 못하고 떠나간다
그 옛날, 할아버지 등에 엎혀
일제의 강제이주 행렬에 끼여 북간도에 온 사람
송아지 같은 가냘픈 어깨에 멍에를 메고
엄매 엄매 황소처럼 살으시다 떠나간다
시도때도 없이 농부가 부르시다 떠나간다
복(復) 복(復) 복(復)
북두칠성
밤중에 깨여 눈덮힌 초가지붕아래서
별빛이 쏟아지는 하늘을 멍하니 바라다본다
문뜩 까치우는 소리에 귀가 놀란다
검은 장막 가르는 일곱마리 까치새
긴긴 세월
고인돌 뚜껑돌에 내려앉아
어둠 밝히는 일곱마리 까치새
봄 여름 가을 겨울
초저녁에 한밤중에 새벽녘에
방향과 자리를 바꾸며
끝없는 생사의 길
오늘 밤도 한쪽발을 헛디디며 날아간다
겨울뻐꾸기
나와 동갑인 갑오년 말띠생 친구
내가 갖고 간 술을 마시며 운다
우리 집 창턱에서
설날에도 청명에도 추석에도
그리고 내 생일날에도
수도물처럼 슴슴하던 술을 마시며 운다
나와 동갑인 갑오년 말띠생 친구
집안에 차고에 마당에 그리고 김치움에
정성 가득 쌓아두였던 고향 자랑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려놓고서
바위돌 같은 어깨를 들먹이며 돌아앉아 운다
한여름 뻐꾸기 울듯 목메여 운다
겨울호수
얼어붙는 호수에다 낚시를 던진다
그 누가 흘리는 값진 눈물인가
지난 밤 추위에도 얼어붙지 않은
해살이 여울대는 글썽임이여
한겨울에도 눈을 감지 못하는
서러운 민요 같은 회한을 느끼는 지금
나는 과연 풀떡이는 추억의 기쁨을 낚을수 있을것인가
연변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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