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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스포라삶과 그에 대응한 문학
2011년 12월 07일 14시 31분  조회:2826  추천:4  작성자: 류대식
평론

디아스포라삶과 그에 대응한 문학
-1990년대 후 소설문학을 중심으로

류대식


1. 들어가는 말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중국 조선족의 디아스포라삶에 대하여 사회학적으로나 문학적으로 크게 거론되면서 우리문학의 중요한 주제로 되고있다.

디아스포라(diaspora)는 본래 이산(離散)을 의미하는 그리스어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소아시아와 지중해 연안을 정복하고 그곳에 자국민들을 이주시켜 세력을 확장하였는데 이 때 디아스포라라는 말이 이주와 식민지의 건설을 의미하는 단어로 사용되였다. 그후 디아스포라가 유태인의 리산과 관련하여 “이스라엘 밖에 거주하는 유태인들”을 가리키게 되였다. 그런데 최근에 와서는 유태인의 리산뿐만아니라 국제이주, 망명, 난민, 이주노동자, 민족공동체, 문화적차이, 정체성을 아우르는 보편적인 차원에서 리해되고있으며 특히 디아스포라의 형성적특성이 보다 강조되여 디아스포라는 “근대의 노예무역, 식민지배, 지역분쟁 및 세계전쟁, 시장경제 글로벌리즘 등 몇가지 외적인 리유에 의해, 대부분 폭력적으로” 자기가 속해 있던 공동체로부터 리산을 강요당한 사람들 및 그들의 후손을 가리키는 의미로 리해되기도 한다.

개혁개방이후 사상, 문화령역에서의 질곡이 풀리면서 우리 문학도 사실주의적으로 우리의 생활을 반영할수 있게 되여 디아스포라로서의 우리의 당시 삶의 상황을 진실하게 문학화할수 있었지만 중한교류전까지, 특히는 1992년 중한수교전까지는 디아스포라삶에 대해 절실하게 성찰하게 하는 외계적자극이 적었으므로 작가들은 여기에 초점을 맞추어 의도적으로 문학적대응을 하지 않았고 하였다해도 많이는 무의식적이였고 함축적이였으며그 표현방식상에도 완곡적이였다.

하지만 중한수교이후, 중국 조선족의 디아스포라문제는 절실한 사회문제로 터지면서 보편적현안으로 부상하였고 우리 문학의 중요한 주제로 거론되였으며 작가들은 그것을 의식적이고 주저없이 작품에 다루게 되였다.

디아스포라문학에서 공통적으로 주요하게 다루어지는건 경계인이자 이방인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고통스러운 현실에 대한 표현이다. 그런 현실은 향수의식과 고향회귀의식에 기초를 둔 “온전한 자아”를 지향하는 정체성찾기와 dia(~을 넘어)와 spero(뿌리다)로가 어원으로 된 ‘디아스포라’개념이 말해주듯 리산에 대당적으로 존재하게 되는 “정착”의 내용이중심이 되여 이루어진다.

본문에서는 1990년대후의 소설문학을 중심으로 중국조선족의 디아스포라삶와 그에 적극적으로 대응한 우리소설문학의 양상을 두루 살펴보면서 우리 디아스포라문학의 맥락을 나름대로 거칠게나마 정리해보려 한다.

2. 고향회귀와 정체성찾기

인간은 살면서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수많은 고통스런 삶을 마주하게 되는데 그중 가장 고통스런 경험은 “디아스포라”의 체험이라 한다.

중국조선족은 100여년전부터 조선반도에서 중국으로 건너온 이주민 및 그들의 후예들이다. 때문에 중국조선족은 삶의 시작부터 디아스포라적성격이 규정되였다. 추방당한자의 삶, 어쩔수 없이 고향을 등지고 살아야 하는 삶에는 현실에 안주하며 보이는것에만 삶의 목적을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전혀 느끼지 못하는 고통과 그리움이 있으며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수 없는 향수는 디아스포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피할수 없는 영원한 운명이다. 그런 어쩔수 없는 운명적인 삶을 사는 디아스포라들에 있어서 가장 우선으로 가장 강렬하고 영원한 주제로 나서는것은 바로 엑서더스―고향, 고국에 대한 회귀의식이다. 이런 회귀의식은 곧바로 민족정체성찾기로 이어진다.
중국조선족을 놓고볼 때 장시기 민족적정체성의 갈등을 체험해왔으나 사회력사적원인으로 그것을 자유로이 추구하고 표현할수 없었다. 개혁개방후, 사상면에서 문화의식면에서 각종 질곡에서 벗어나게 되면서 1980녀대중기부터 민족성을 과감히 자유롭게 다루면서 민족성확인작업으로부터 시작하여 정체성찾기가 서서히 시작되였고 특히는 1992년 중한수교가 확립된후 현실적으로 그 꿈을 실현할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였다. 때문에 중한교류이전에는 동질성을 지향하는 민족정체성찾기가 봉페적이고 협애하고 정신적이였다면 중한수교이후는 개방적이고 실질적이고 실천적이였다고 할수 있다.

우리 작가들은 이런 우리의 사회현실을 두고 적극적으로 문학적대응을 하였바 이런 민족정체성의 갈등을 예리하게 해부하고 예술적으로 형상화하여 나름대로 해결책을 제시하였고 우리 문학의 새로운 풍경을 형성하면서 세계적인의미를 부여하게 되였다.

이 방면에 보기로 될수 있는 작품은 허련순의 장편소설《바람꽃》(1996년), 《누가 나비의 집을 보았는가》(2004년), 윤림호의 장편소설《명암의 세계》(2000년) 등이다.

허련순의《바람꽃》은 엑서더스가 선명한 주제가 되여 “나는 누구인가?”라는 민족적 아이덴티티에 관한 질문을  끈질기게 던지면서 가장 일찍이 민족정체성찾기를 문학화한 소설이다.    소설의 주인공인은 홍지하라 하는 지성인이다. 한국이 고향인 그의 아버지는 생전에 고향을 한번만 보고 죽어도 원이 없겠다고 늘 외웠고 고향에 가보는것이 평생소원이였건만 끝내 그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다. 아버지의 생전소원을 풀어드리기 위해 홍지하는 아버지의 골회함을 모시고 조상과 혈육을 찾아 한국으로 간다. 하지만 그를 맞아준 친인, 고국은 너무나 차디찼고 고무풍선 같이 부풀었던 그의 꿈은 산산쪼각이 나며 결국 그는 자신의 신원을 승인받지 못하고 “나는 누구인가?” 하는 물음의 해답을 얻지 못한채 다시 자신이 태여난 중국으로 돌아온다.

소설은 그 “바람꽃”이라는 제목 그자체가 상징하는것처럼 이곳에도 속하지 않고 저곳도 귀속이 아닌, “이중 정체성, 부재하는 정체성, 반 정체성”으로서의 디아스포라, 끊임없이 “온전한” 자아로서 살아갈수 있을것을 지향하나 그것은 다만 상상의 유토피아밖에 될수 없는 디아스포라로서 중국 조선족의 아픔과 비극을 절실하게 보여주고있다.

장편소설《누가 나비의 집을 보았는가》는 주제경향에 있어서《바람꽃》과 일맥상통하면서 새로운 차원으로 승화를 이룩한 소설인데 1990년대 중기에 붐이 일어난 조선족들의 한국밀항의 사건을 다루고있다.

밀항선에 오른 주인공들인 연변녀자 안세희와 연변남자 송유섭, 왕청 녀자 말숙이, 쌍희… 이들은 모두 사회의 최하층에서 생활하는 사람들로서 중국사회에서는 약세군체(弱势群体)에 속하는 가장 힘없는 사람들이다. 주인공 안세희는 녀자의 몸으로 가장이 되여 각성받이 두 아들을 키워야 하는데 페트용개보다 못한 생활을 하는 아이들을 위하여 밀항선에 오른것이며 송유섭은 친부모의 버림을 받고 양부모를 찾았으나 결국은 고아의 운명을 가진 사람으로서 가난과 수치를 씻으려 밀항선에 오른것이며 말숙이는 아들이 무리싸움에 불려나갔다가 그만 권세 있는 진장(鎭長)의 아들 대신 억울하게 루명을 쓰고 사형을 당한 녀자로서 밀항에 성공하는것이 “일이원밖에 안되는 라면을 죽기 전에 먹고싶었던” “아들의 한을 풀어 주는것인양 그녀는 밀항에 큰 뜻을 부여”하여 성공할 때까지 밀항을 결심한 사람이며... 여하튼 밀항배에 탄 사람들은 모두 한국행을 통해 자신의 운명을 철저히 개변해보려는 사람들이였다.  

이 소설은 사실주의수법을 위주로 하여 진실하고 긴장한 이야기를 엮고있는데 깊은 의미를 담을수 있는 장치들을 잘 선택하여 주제를 표현하는데 적절한 상징의 내용들을 음페시키고있다. 이런 상징요소들은 대표적인 디아스포라문학으로서 이 소설의 예술적완성도를 높이는데 결정적역할을 놀고있다.

우선은 소설의 주요환경은 망망 바다에 떠있는 밀항선이다. 떳떳하게 항행을 하지 못하고 시시각각 긴장을 늦추지 못하며 목을 옥죄는 보이지 않는 그물을 피해다녀야만 하는 밀항선, 이런 밀항선은 중국조선족이라는 군체를 상징한다 할수 있으며 밀항선에 탄 밀항자들은 중국이라는 거주국과 고국 사이에서 약자로 끼여 항상 불안한 마음으로 우왕좌왕하며 방황하고 무서운 모험을 해야 하는 디아스포라로서 중국조선족의 처지와 다를바가 없는것이다.

소설은 이밖에도 적지 않은 상징요소들이 있는데 주요한것들로는 “나비”와 “집”이다. 나비는 집이 없는 생물이다. 이런 의미에서 나비는 진정한 귀속처가 없는 디아스포라인 조선족을 상징한다 할수 있고 “집” 또한 민족 혹은 국가와 상호 류추관계가 성립될수 있기에 집의 상실은 민족과 국가의 상실을 상징한다고 할수 있는것이다.

디아스포라로서의 중국조선족은 고토와 거주국의 중간위치에 살고있기에 나비처럼 진정한 “집”이 없다. 조선반도를 떠나 중국으로 건너온 한세기 남짓한 동안에 중국조선족은 중국이라는 거주국에서 피와 땀의 노력을 하였건만 철저한 중국의 일분자로 될수 없었다. 물론 여기에는 조선족이 자기의 민족정체성을 고집한데 근본 원인이 있었겠지만 그렇다하여 고국의 철저한 일원으로도 되지 못하고있다. 즉 “이곳”은 비록 나를 길들였으나 나의 소속이 아니며 그렇다하여 “그곳”도 귀속되 못하는, 고국과 거주국 사이에서 어느 한쪽에도 속하지 않는 “변연군체”로서 디아스포라의 정체성의 갈등을 형상적으로 보여주고있다.

소설은 결국 미칠 사람은 미치고 죽을 사람은 죽고 하면서 비극으로 막을 내리는데 현실을 지나치게 암울하게 과장하여 표현한 제한성도 없지 않으나 디아스포라들의 본질적인 운명-비극성을 역(逆)적으로 전률하게 전하여주었다는데 현실적가치와 보편적의의를 증강하고있다.

윤림호의 “명암의 세계”는 중국 조선족이 한국사회에 더욱 실질적인 생활을 하면서 새로운 정체성갈등을 경험고 정체성찾기를 시도하고 실천하는 과정을 보여준 작품이다. 이 소설은 작가가 직접 한국에 체류하면서 경험하고 느낀바를 소설화한것이다.

한국과의 교류의 물고가 트인 처음의 중국조선족들의 한국행은 순수한 엑서더스였다. 후에는 그 목적성이 복잡해져 중국보다 발달한 한국에서 돈을 많이 벌어 잘살고 꿈을 실현하려는것이 직접적인 동기가 되였다. 문제는 왜 다른 나라를 선택하지 않고 한국에 그렇게 쓸어가는냐 여기에 있다. 그것은 바로 한국이 조상의 나라이고 “물보다 피가 진하다”는 말처럼 혈연관계로 얼기설기 엉킨 같은 피가 흐르는 동포나라이기때문이다. 중국조선족들의 마음기저에는 거주국보다 잘사는 한국에서 돈을 벌고 자신의 위치를 찾고 리상을 실현하는것은 당연지사이고 응당 동정을 받고 관심받아야 하며 덕을 입어야 되고 응석을 부려야 한다는 믿음이 깔려있는것이다. 이런 마음이 바로 모체회귀의식이고 정체성지향의 내재적본질이다.

소설은 부동한 계층의 인물들의 한국에서의 생활을 쓰고있는데 모두가 큰 희망을 품고 한국에 왔으나 현실은 그들의 아름다운 상상과는 많이 달랐으며 중국교포라는 신분 때문에 응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있고 그들이 아무리 노력을 하여도 그 어떤 보이지 않는 간벽 때문에 주류사회에 따돌림을 당하며 용해되지 못한다.

이들 가운데서 특히 주목되는건 청삼이란 인물이다. 그는 “침구의술도 괞찮고 한때는 영화배우도 찔금거려보았던” 꽤나 인물인 사람이다. 그는 우연한 기회에 숙자라는, 얼굴이 얽고 고정직업도 없는 한국녀자를 알게 되고 사랑을 나누게 된다. 그러나 그들의 사랑이 그 어떤 결과를 목적했을 때 숙자는 “...만약 한국인이라면 이야기가 달리 조직되여갈수도 있겠지만 교포 아니예요? 교포의 운명은 역시 그럴수밖에 없는거겠지요.” 하며 청삼을 매정하게 버린다. 결국 청삼은 자기의 꿈을 실현못하고 고국땅에서 비명횡사하고 만다.

청삼의 비극적 운명은 바로 디아스포라로서의 중국조선족의 그어떤 결과도 이룩할수 없는, 영원한 이방인으로 방황할수밖에 없는 현실모순과 아픔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있는것이다.   

3. 민족화합과 공존의 세계

디아스포라들에 있어서 또 하나의 심각한 문제는 어떻게 복수(复数)타자와의 관계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며 살아가야 하는가 하는 현실적인 문제이다. 디아스포라의 본질이 리산이라 하지만 디아스포라인들이 항상 떠도는 것은 아니며 어디든지 정착하여 “그” 국가나 문화에 속하게 된다. 그런 정착과정중 주체 복수와의 갈등과 모순, 타협은 불가피적으로 나타나게 된다.

우리 중국조선족을 놓고볼 때는 중국이라는 이 대국의 소수민족일원인 동시에 세계조선민족의 일원이라는 이중 신분을 어떻게 잘 조화하며 살아가야 하는가 하는 중요하고 현실문제가 나지고있다. 이런 민족정체성의 지킴과 화합의 갈등을 형상화한 대표적인 소설은 조성희의 단편소설《동년》(1997년), 리여천의 중편소설 “누나를 알기까지”(2003년), 박옥남의 중편소설《마이허》( 2006년) 등을 들수 있겠다.

《동년》은 “그”라는 소년의 시각으로 한 마을의 “석국이형”이라는 조선족총각이 웃마을에 사는 “얜”이라는 왕씨네 미모처녀와 도적련애를 하는것을 묘사하고있는데 신수는 멀쩡하나 실속은 건달인 조선족총각이 일등 한족처녀와 련애하는것에 강샘을 한 한족마을총각들이 어느날 “석국이형”을 늘씬하게 두드려주고 한족처녀는 결국 다른데로 시집을 가게 된다. 그런데 이와 선명하게 대조되는것은 한족마을의 검정수캐는 “그”네 재빛암캐와 짝짓기를 하고 그러다 어느날, 검정수캐는 조선마을의 뭇개들에게 물려죽는다. 그런데 희안한 일은 조선마을의 암캐가 새끼를 낳았는데 세마리는 검정강아지요 세마리는 재빛에 검은 점이 얼룩진 강아지였다. 소설은 이렇게 인간세계와 동물세계를 이항대조적구조(二项对照结构)를 조성하여 그리면서 디아스포라들이 불가피적으로 겪는 주체민족과의 갈등과 반목 및 숙명적인 융합과 공존의 현실을 암시적으로 보여주고있다.

《동년》에서 민족간의 갈등을 보다 비극적으로 그렸다면《마이허》에서는 문화적이질성과 갈등을 보여주면서도 숙명적인 화합과 공존의 적극적인 메시지를 전해주고있다. 소설은 “마이허” 즉 개미허리처럼 생긴 강을 사이에 두고 있는 두마을―물남 마을인 조선족동네와 강북 한족마을인 상수리동네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엮고있는데 소설은 한폭의 민속화처럼 상호 다른 두민족의 풍속습관, 인정세태를 그리고있다. 강에 빨래하러 나오는것을 보면 상수리녀인들은 빨래를 옆구리에 끼고 나오지만 물남녀인들은 머리에 이고 나오고, 상수리녀인들은 남편을 개떡같이 여기는 습관이 있으나 물남녀인들은 남편의 말을 성지처럼 받아들인다... 하여튼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두 마을은 완연 다른 생활양상을 갖추고있다. 이런 문화의 이질성과 갈등은 결국 상수리마을의 두부집 아들과 물남마을의 도술의 딸의 사랑을 비극으로 매듭을 짖게 한다.

하지만 소설의 끝부분에서 연해도시진출과 외국나들이로 물남마을이 점점 황페화되고 처녀씨가 마르게 되자 물남마을의 총각은 상수리동네처녀에게 장가를 가게 되는데 이것은 민족화합과 공존의 숙명적이고 적극적인 메시지가 아닐수 없다.

우의 두소설에 비해 리여천의 “누나를 알기까지”는 민족화합과 숙명적인 공존의 삶의 현실을 디아스포라의 수난의 력사와 결부시키면서 더욱 절실하게 전형적으로 보여준 소설이다. 이 소설은 작가가 자신의 가족사를 바탕으로해서 쓴 실화소설로써 이야기와 인물들의 진실성으로 깊은 감명을 주고있다.

소설의 주인공인 “나의 누나”는 조선전쟁때 부모를 따라 압록강을 거너오다가 비행기의 폭격에 놀란것이 쩍하면 까무러쳐넘어가는 병을 얻게 된다. 게다가 가정 또한 때시걱도 이어나가기 어려운 형편이라 방법없이 자식이 없는 한족집에 “누나”를 주게 된다. 처음에는 한족집으로 사랑으로 그럭저럭 배를 곯지 않고 살수가 있었으나 생각밖으로 그 한족집에서 자식을 보게 되자 천대꾸러기 “하녀”로 굴러떨어져 갖은 고생을 하게 되며 이어 민며느리로 다른 한족집에 팔려가게 되고 10살에 소위 시집이라는것을 가게 된다. 하지만 어려서 너무 고생한 탓인지 습관성류산으로 자식하나 못보게 된다. 허나 불행중 다행으로 “누나”의 남편은 좋은 사람이여서 “누나”를 사랑해주고 부모찾기에 열성을 아끼지 않았고 수소문 끝에 부모를 찾아 부모형제들과 상봉하게 되였다. 하지만 그때의 “누나”는 민족만 조선족이지 완전히 한족화된 “한족”이였다. “나”의 가정은 이렇게 “한족” 친누이가 있게 됐고 한족 친매부가 있게 되며 서로 의지하면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하지만 자식하나 없는 누나는 남편을 교통사고로 잃고 쓸쓸하고 고통스런 만년을 보내면 결국 비참하게 생을 종말짓는다.

이와 같이 “누나”의 형상에는 중국 디아스포라들의 피눈물나는 이민사와 간거한 정착과정의 상처가 응집되여있고 “나”의 가정사에는 류이민으로서 디아스포라가 겪는 피할수 없는 민족적갈등과 어쩔수 없는 숙명적공존과 화합의 운명이 전형적으로 체현되고있다.
우의 소설들에서 보여주고있는바와 같이 정착과정중에서의 민족적 화합과 공존은 어쩔수 없는 디아스포라의 혼종성(Hybridity)도 보여주고있는데 자칫하면 문화적변이를 일으켜 본래면모를 잃고 동화되기 쉬운 위험도 존재한다. 하지만 “찬란한 변두리”란 말이 있듯이 디아스포라의 삶은 “모체에서 찢겨나간자의 상처”인 동시에 “일종의 특권이며 다시 얻을수 없는 우세”로 부동한 문화의 합수목에서 보다 우수한 민족으로 거듭나고 보다 특출한 문화를 창출할수 있는 가능성도 열려있는것이다.

4. 나오는 말

1990년대 이후, 조선족의 디아스포라삶을 예민하게 성찰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한 문학은 사회적효능적으로도 적시적이고 세계조류와도 어울린다.

요즘 와서 디아스포라문학이 크게 거론되는건 전지구적으로 가속화되고있는 세계화와 갈라 놓을수 없겠다. 글로벌화로 인한 외부여건과 문명충돌은 약소민족이나 그 개체로 하여금 가장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을수 없게 하며 동시에 인류가 보편적으로 “자기가 추방, 망명의 몸이라는것을 싫어도 생각하게” 하는 디아스포라의 본질적특성을 체험하고있기때문이다. 디아스포라 문학이 세계문학의 가능성을 보여 주고 있다고 말할수 있는것도 바로 인류의 이런 보편적 아픔에 대응하고있기때문이다.

디아스포라문학의 이런 의미는 우리들에게 현재 우리문학의 위치와 새로운 방향에 대해 잘 이야기해 주고있다.

디아스포라로서 중국 조선족들의 과거와 현재, 미래는 앞으로도 우리의 문학이 계속 디아스포라글쓰기로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하고 풀어나가야 할 중요하고 큰 숙제임이 틀림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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