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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추억보따리
2020년 12월 08일 14시 30분  조회:691  추천:0  작성자: 로년세계
행복의 추억보따리

박영희



코로나19 사태로 집에 갇혀 한가롭고 무료한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우리 집에 놀러 온 지인이 인터넷으로 직접 편집해서 인쇄한 려행사진첩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말로만 들었던 사진책을 펼쳐보고 있노라니 매 한장의 사진에서 전해지는 행복바이러스를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뒤미처 나도 내 마음과 사랑이 담긴 인터넷사진첩을 만들어 가족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충동이 생겼다. 퇴직후 내가 가볍게 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하고 가장 의미 있는 행복 찾기가 아닐가 라는 짐작이 들었다.
이튿날, 나는 지인이 알려준 방법 대로 인터넷에서 관련 시스템을 다운받아 바로 작업에 들어갔다. 가족에게 보여줄 행복의 추억보따리를 만든다고 생각하니 마냥 즐겁기만 하고 흥분이 쉽게 가셔지지 않았다. 나는 매일 행복한 추억려행을 하는 기분으로 사진첩을 만드는 일에 깊이 매료되여 밤을 지새우면서 나만의 프로젝트를 하나하나 실행해나갔다.
몇달 동안 혼자서 울고 웃으면서 드디여 인터넷사진첩의 인쇄과정까지 모두 마쳤다. 나는 비로소 들뜬 추억 속에서 서서히 현실로 돌아왔다. 나의 심혈이 깃든 세권의 사진첩을 손에 받아쥐고 보니 사진효과부터 맑고 안성맞춤하게 도톰한 종이재질, 무엇보다도 저렴한 인쇄비용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책 세권을 받아드니 지난해 문학상 대상을 받았을 때보다 더 기쁘고 기분이 허공에 붕 뜨는 것 같았다.
책을 만드는 과정은 행복 그 자체였다. 사진을 모으고 사진 한장, 한장에 담긴 추억을 글로 써서 반복적으로 수개하고 편집하는 과정은 인생을 다시한번 체험하는 현장이였다.
첫번째 책 제목은 《사랑의 리레》였다. 주로 근년에 내가 여러 잡지에 발표한 가족사랑을 주제로 한 수필과 수기를 모아 보충, 정리하고 문장에 매치되는 친인들의 사진들을 넣었다. 〈전설처럼 살다 가신 할머니〉, 〈똬리와 할머니〉, 〈한쌍의 베개모에 깃든 할머니의 숨결〉 등 6편중 4편은 작년에 응모상을 받은 글들이였다. 그중 〈전설처럼 살다 가신 할머니〉는 ‘해외동포문학상’ 수기부문 대상을 받은 작품이였다. 이처럼 내 인생에 귀한 사진과 상패, 증서를 감사의 마음과 함께 사진책으로 보존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감격스러웠다.
두번째 책 제목은 《사랑의 뉴대, 행복의 요람》이였다. 우리 가족의 사랑과 행복이 오래오래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나는 이 책에 유독 더 많은 시간과 정력을 쏟아부었다.               
‘나의 가족’이란 주제에는 조부모와 외조부모 그리고 부모님과 시부모님의 가족사진을 위주로 가족의 화목과 효 그리고 그 분들의 로년의 행복한 모습을 주선으로 하였다. ‘나의 가정’, ‘나의 집’의 주제에는 각각 아들과 딸, 남편과 나의 행복한 성장과정을 차례로 배렬하였다. 한장한장의 사진을 펼쳐보노라면 우리 가족이 걸어온 발자취가 일목료연하게 안겨오고 가족의 끈끈한 사랑에 가슴이 설레이고 행복에 흠뻑 도취되여 쉽게 눈길을 뗄 수가 없었다. 
세번째 책 제목은 《생활의 발자취》였다. 주로 내가 퇴직하기 전후 5년간 걸어온 아름다운 발자취를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편집하였다. 이 속에는 기쁜 일이 있을 때나 궂은일이 있을 때나 항상 곁에서 함께 웃고 울면서 힘이 되여준 친구, 지인, 동료들의 얼굴이 있는가 하면 아들과 딸 그리고 남편과 함께 한 사진들 그리고 나의 취미생활의 발자취들이 들어있다.
사진을 통해 내가 최근에 무엇을 하고 있고 무엇에 흠뻑 빠져있고 앞으로 어떤 계획이 있는지를 간접적으로 표현함으로써 긍정적 에너지를 전달하려는 게 나의 최종 목적이였다. 모든 일에 감사해하고 행복해하고 사랑받는 모습으로 파란만장한 인생길에서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매 단계의 큰 대사와 과정을 준비 있게 맞이하려는 메시지이기도 했다. 지난 5년 동안은 크고작은 경조사가 빈번했던 만큼 내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아들 결혼식, 손자의 출생과 돌잔치, 60세 생일파티, 퇴직모임, 시아버지의 장례식 등 경조사가 있을 때마다 진정으로 기뻐해주고 말없이 도와주며 내 곁을 지켜준 친구들이 있었기에 낯설고 물선 타향에서 사람 사는 달고 쓴 맛을 감칠나게 맛 보면서 지금의 사랑이야기를 전할 수 있게 되였다. 
퇴직하던 날의 사진 몇장을 보면서 나는 그 날의 추억려행 속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그 날, 대학교의 조선족친구들이 퇴직하고 떠나는 나를 위하여 깜짝이벤트로 ‘영사모(영희를 사랑하는 모임)’ 모임을 준비했다. 내가 약속장소인 고급레스토랑에 들어서자 꽃보라며 오색줄을 뿌리는 친구들이 있는가 하면 향기로운 꽃다발을 안겨주면서 따뜻하게 포옹해주는 친구들도 있었다. 뭐니뭐니해도 사람마다 직접 써준 편지가 가장 큰 감동으로 와닿았다. 애틋함과 서운함, 추억과 사랑이 엇갈려 눈물을 글썽이게 하는 글들이였다. 이 아름다운 추억들을 책으로 만들어 남길 수 있으니 이보다 더 귀한 보물이 어디 있으랴.
또 잊을 수 없는 일을 꼽는다면 시아버지가 돌아가신 날이다. 시아버지의 갑작스런 운명 소식에 우리 부부는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마침 대학교 교수직을 맡고 있는 친구가 한국 출장중에 우리 시아버지가 중태에 빠졌다는 소식을 접하고 급급히 귀국하여 공항에서 한달음에 병원으로 달려와 나의 남편과 함께 운명한 시아버지의 몸을 닦아드렸고 례의를 갖추어 수의를 입혀드렸다. 조선족의 전통풍습에 따라 처음부터 장례식이 마무리될 때까지 두 발로 뛰여다니며 자기 일처럼 열정적으로 해준 친구에 대한 고마움은 실로 말로 이루 다 형용할 수 없으리만치 고마울 따름이였다. 여러 친구들도 상주로 되여 병원에서 관을 메여 움직이고 끝까지 옆을 지켜주었다. 사진 속의 그 얼굴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노라니 감동으로 목이 메여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젖어났다.
가족 그리고 친구는 인생의 영원한 동반자이고 행복의 원천이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인생이라고 하지만 이 두가지 귀중한 재부 만큼은 꼭 마음에 담아 저 하늘 끝까지 갖고 가고 싶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행복에 흠뻑 젖어들게 해준 이 소중한 행복의 추억보따리를 어루만지면서 힘찬 하루를 시작한다.

《로년세계》2020년 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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