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zoglo.net/blog/lnsj 블로그홈 | 로그인
《로년세계》잡지사
<< 11월 2024 >>
     12
3456789
10111213141516
17181920212223
24252627282930

방문자

조글로카테고리 : 블로그 -> 신문잡지/책 -> 대중잡지

나의카테고리 : 천우컵

늘그막 재미
2020년 12월 08일 14시 32분  조회:670  추천:0  작성자: 로년세계
늘그막 재미

서광억 



젊은 시절에는 로인들이 “자식보다 손군이 더 곱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리유를 잘 몰랐다. 하지만 귀여운 손녀가 태여나 할아버지가 되고 보니 그 참뜻을 이제야 알 것 같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귀여운 손녀가 재롱을 부리는 모습을 볼 때마다 그 재미에 푹 빠져 하루해가 어떻게 가는 줄 모른다.
내남없이 어렵게 살았던 젊은 시절에는 일에 빠져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보내다보니 자식이 커가는 모습을 제대로 살필 여유마저 없었다. 하지만 퇴직을 하고 나서 여유가 생긴 후로부터 손녀가 하루하루 커가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니 하루라도 보지 않으면 그 모습이 눈에 삼삼 밟혀오니 어쩔 수가 없다.
요즘 손녀를 키우면서 세월이 참 많이 변했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내 자식은 두돌이 다되여서야 말을 하기 시작한 걸로 기억하고 있는데 손녀는 태교 덕분인지 아니면 태여나서부터 영양을 골고루 잘 섭취해서 그런지 돌이 지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말문이 트이는가 싶더니 음악을 틀어주면 리듬에 맞춰 엉덩이를 덩실거리며 춤을 추고 노래하느라 야단이였다. 늘그막에 손녀라는 ‘선물’에 흠뻑 빠져 우리 량주는 매일매일 손녀의 재롱을 보는 행복에 젖어 하루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른다.
손녀가 우리 집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우리 량주는 매일 적적하고 무료한 나날을 보냈다. 집안에 아들녀석이 둘이나 되는데 맏아들이 장가 들어 시가지에 따로 살림을 차리면서부터 집안이 점차 적적해지는가 싶더니 둘째녀석까지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분가를 한 뒤로 집안 분위기는 그야말로 적막강산이였다. 주변에서는 자식농사를 잘 지어 근심 걱정 없어 참 좋겠다며 부러운 눈길을 보내왔지만 고독함을 부여잡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우리의 고충은 여간한 것이 아니였다.
아무리 사이가 애틋한 부부라도 늘그막에 밤낮없이 얼굴을 맞대고 있으니 서로 지겨워나는 모양이다. 한뉘 밭일로 늙어온 안해는 낮이면 동네에 나가 돌아다니고 밤이 되면 가마목에 꼬부리고 새우잠을 청했다. 나 역시 놀음판과는 아예 담을 쌓고 살다보니 낮에는 신문이나 잡지를 뒤적거리고 저녁이면 텔레비죤을 보다가 잠자리에 들군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손녀가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까지만 돌봐줄 수 없겠느냐며 큰아들 내외가 청들었다. 적적함에 메말라있던 우리 량주의 가슴을 촉촉하게 적셔주는 급시우 같이 반가운 소식이였다. 손녀가 집에 도착한 날, 안해는 손녀를 안고 입이 함박 만해졌고 나도 덩달아 벙글거렸다. 손녀는 그야말로 보고만 있어도 웃음이 절로 나오는 복덩어리 같은 천사였다.
그런데 정작 손녀를 돌보려니 손이 어지간히 가는 게 아니였다. 우리 시대의 육아리념 대로 하려고 들었더니 그건 시대에 떨어진 교육이라고 아들 내외가 우리 량주를 나무람했다. 예전에야 자식이 많다보니 울면 손에 누룽지를 쥐여주고 콜록거리면 포대기를 덮어주면 그만이였는데 요즘은 집집마다 자식을 하나만 키우니 진짜 금지옥엽, 보물단지가 따로 없었다. 육아리념이 많이 달라져 예전의 굳어진 습관부터 하나하나 고쳐야 했다.
지금도 아들내외가 아이를 보러 우리 집에 왔을 때의 일이 기억에 생생하다. 평소 대로 저녁을 마치고 나서 자리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는데 내 무릎에 앉아있던 손녀가 담배연기에 사레가 들렸는지 콜록콜록 기침을 하는 것이였다. 그러자 옆에 있던 며느리가 다급히 애를 안아가더니 입을 열었다.
“아버님, 애가 있을 땐 담배를 피우지 마세요. 애들에게 담배연기가 그렇게 해롭답디다.”
아이에게 해롭다는 말에 나는 게면쩍게 웃으며 제꺽 담배불을 꺼버렸다. 나의 무안함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눈치가 무딘 안해가 손녀애의 먹성이 좋다며 자랑 삼아 늘어놓았다.
“에구, 요놈 계집애 어찌나 잘 먹는지 하루에 똥을 세번씩이나 눈다네…”
“어머니, 어른이나 아이나 대변은 하루에 한번 정도 보는 게 가장 좋다고 합니다. 어머니도 건강을 위하여 이 《건강상식》 책을 한번 보세요.”
로친의 자랑은 건강상식을 환히 꿰고 있는 며느리 앞에서 본전도 못 찾고 말았다.
그 날 이후, 우리 량주는 손녀 ‘덕분’에 예전과는 판이한 생활을 이어가게 되였다. 나는 40여년 피워온 담배를 끊었고 안해는 고중을 졸업한 후로부터 한번도 만져본 적 없던 책을 몇십년 만에 다시 집어들었다. 남편이 그래도 아마츄어작가라고 책 한페지라도 더 보게 하겠노라고 집안일을 전부 혼자 떠맡았던 안해가 요즘은 손녀를 위해 나의 돋보기를 척 걸고 열독 삼매경에 빠졌다. 나 또한 손녀가 오면서부터 한뉘 못해본 화장실청소에까지 팔소매를 걷고 나섰으니 이 정도면 우리 집에서 손녀의 무게를 가히 짚어볼 수 있지 않겠는가?
처음에는 며느리가 추천해준 책이라 그냥 그런가 하며 들여다봤는데 책을 정독하고 나서 우리 량주의 생활에는 천지개벽의 변화가 일어났다. 책을 통해 아이의 성장발달에 유익하다는 수면 시간대를 장악하고 나서 그 시간에 맞춰 잠을 재웠고 아이의 지력발달을 위해 음악을 틀어놓고 사지를 제멋대로 놀려가며 손녀와 률동하면서 놀아주었다. 춤을 추고 있는 서로의 모습이 하도 해괴망측하여 웃음보를 터뜨린 적도 있었다.
시간이 류수처럼 흘러가는 동안 애지중지 키워온 손녀도 어느덧 우수한 성적으로 연변1중을 졸업하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련리공대학의 어엿한 대학생이 되였다. 그 사이 나랑 수십년간 동거동락을 해온 안해는 나 먼저 저세상으로 가버렸다. 그런데 여태껏 재롱 부리던 손녀마저 외지로 떠나버린다니 마음 한구석이 텅 비는 같아 마음은 산란하기 그지없었다.
‘이제는 무슨 락으로 살지?’라는 고민에 빠져있던 찰나 갑자기 머리에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대학입학통지서를 안고 찾아온 손녀와 아들내외를 불러놓고 아래와 같이 선포했다.
“우리 손녀가 좋은 대학에 붙었으니 앞으로 4년 동안의 학비와 생활비는 모두 이 할아버지가 지원하겠다!” 혹시 거절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손녀가 제꺽 좋다며 찬성하였다.
“할아버지, 저는 대학을 졸업하고 연구생공부까지 할 겁니다. 아니 박사공부까지 할지도 모르니 할아버지 적어도 한 10년은 나의 학비를 지원해주셔야 합니다.”
그 말에 며느리가 대뜸 당황해하며 “얘가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할아버지 월급은 할아버지가 용돈으로 쓰셔야지. 아버님, 나영이 학비는 우리가 얼마든지 댈 수 있으니 걱정 마세요.”라며 손녀를 말렸다.
바로 그 때 손녀가 “할아버지가 저의 학비를 지원하는 락이라도 있어야 오래 앉을 수 있는 거 아니예요.”라며 혀를 홀랑 내밀며 익살궂은 표정을 지었다.
“그래, 니 말이 맞다. 우리 손녀한테 도움이 된다면 기꺼이 90살까지 살아보련다!”
“아니, 할아버지, 90살이라뇨. 100세까지는 앉으셔야죠!”라고 말하며 손녀는 내 품에 와락 안겼다.
귀엽고 야무진 손녀 떡분에 나는 오늘도 늘그막에 열심히 운동하고 좋아하는 글을 쓰는 재미에 푹 빠져 하루하루를 보람차게 보내고 있다.

《로년세계》2020년 12호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58
번호 제목 날자 추천 조회
58 글짓기에 묻혀살았던 그 세월 2021-03-30 0 1098
57 륙십 청춘의 초상 2021-03-30 0 679
56 샘물터에서 맺은 인연 2021-03-30 0 690
55 할머니가 홀제 그리워난다. 2021-03-30 0 604
54 나는 소녀가장 2021-03-30 2 879
53 시아버지의 유산 2021-03-30 0 671
52 송편에 깃든 엄마사랑 2021-03-30 0 571
51 아버지는 강한 사나이였다 2021-02-04 0 681
50 가을 들녘 2021-02-04 0 653
49 학부모회의 2021-02-04 0 788
48 아버지 2021-02-04 0 657
47 춤으로 배우는 인생 2021-02-04 0 664
46 이순지년의 천륜지락 2021-02-04 0 666
45 꿈의 기도 2021-02-04 0 676
44 첫눈 2021-02-04 0 607
43 그대도 누군가에게 한줄기 빛이였기를 2021-02-04 0 723
42 외할머니가 가신 길은... 2020-12-29 0 894
41 아버지의 축복 2020-12-29 0 854
40 여울치는 사랑 2020-12-29 0 883
39 아, 기약 없는 황혼육아여! 2020-12-29 0 900
‹처음  이전 1 2 3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