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늙어지면 자연히 죽음에 대하여 생각이 많아지는 모양이다. 젊었을 때에는 죽 음이란 먼 앞날에도 있을것 같지 않더니 고희를 넘기니 어찌 죽음을 당하랴는 걱정과 두려움이 자주 마음을 괴롭힌다. 더구나 죽마고우들이 하나둘 인간세상을 떠나는것을 보면 자신이 고도(孤岛)에 외로이 있는것 같기도 하여 가끔 살아있을 앞날을 10년, 혹은 15년 하며 손꼽아 보기도 한다.
죽더라도 죽음의 공포가 없이 희망을 가지고 이 세상을 떠날수는 없을가?
래세가 없다는 현실적 삶이나 저 세상의 천당을 바라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신앙 적 삶이나 모두 각자 나름의 인생자세겠지만 죽음을 대함에 있어서는 어떤 “주의”보 다 믿음의 영향이 더 크지 않은가싶다. 유물주의자들은 죽음을 피할수 없는 자연법칙 으로 보기에 사상적각오로써 죽음을 대하는것이다. 그러니까 죽음에 대한 사상각오의 정도에 따라 죽음의 공포를 느끼는 정도도 다르다는것이다.
그러나 유심주의자들은 인간령혼의 영구성을 주장하면서 죽음을 래세의 재생으로 믿고있다. 유물주의자인 나는 유심주의자들의 이런 주장을 황당하게 여겨왔고 앞으로 도 그렇게 여길것이라고 믿고 있다. 여기에서 언급하고 싶은것은 죽음을 래세의 재생으로 확고히 믿는다면 죽음의 공포를 전승하지 않을가하는 점이다.
86세에 세상을 뜬 나의 장모는 독실한 기독교신자였다. 년로하셨지만 짬만 있으면 성경을 펼쳐놓고 읽군하였다. 그러던 장모는 언젠가부터 천국에서 자기를 불러달라고 기도를 드리기 시작하였다. 장모님은 현실의 삶을 천국에로 가는 수련과정으로 여기 는듯 했다. 나는 장모님의 이런 소행이 전혀 리해되지 않아 이렇게 물어 보았다.
“어머님은 령혼이라는게 있다고 봅니까?”
“난 령혼이 있다고 보네.”
장모님의 대답은 좀 퉁명스러웠다. 왜냐하면 장모님은 내 물음속에 령혼의 존재를 부정하는 나의 태도가 선명하게 담겨있다는것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처녀시절부터 기독교신앙생활을 해 온 장모님은 그 험한 문화혁명기간에도 자기의 신앙을 버리지 않았다. 그때 장인께서 돌아가셨는데 한밤중에 남몰래 조용히 찬송가 를 부르면서 장인을 천국에로 송별했던것이다.
“이사람 사위, 내가 천국갈때 자네가 찬송가를 불러주겠나? “
“거야 뭐, 못부를게 있겠습니까? 어머님의 소원이라면 불러드리지요. 그런데 어머님 은 세상을 떠나는게 두렵지 않습니까?”
“두렵긴 뭐가 두려워? 자네같은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하는지는 몰라두 난 지금 죽음을 마중하고 있네, 알겠나?”
죽음을 마중하다니, 처음듣는 소리였다. 그러던 장모님은 운명하기 하루전에 몸을 씻어달라고 하여 아주머니와 안해가 몸을 씻어드렸고 또 몇년전에 손수 지어놓은 상복을 입자고 해서 상복까지 입혀드렸다.
“찬..송..가…를…”
반혼미상태에서도 장모님은 곁사람들이 찬송가를 불러주기를 바랐다.
이 세상 작별한 친구들
저 천당 올라가 만날 때
인간의 괴롬이 끝나고
리별의 눈물이 없겠네.
…….
우리가 부르자 장모님의 입술이 움직이였다. 절주있게 움직이는 입술이 우리를 따 라 찬송가를 부르고 있다는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운명하신 장모님의 얼굴은 쉬는듯 한 평화로운 모습이였다. 죽음의 고통을 느낀 흔적이라고는 전혀 찾아 볼수 없었다. 그것은 천국에 가서 재생한다는 굳은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이 점은 내 아들의 죽음에서도 찾아볼수 있었다. 나의 아들은 세살 때 중독성뇌병 후이증으로 하여 24년간이나 걷지도 서지도 못하고 구들에서 구을기만 하다가 결국 저 세상으로 가고 말았다. 나와 안해는 아들애의 병을 치료하려고 갖은 애를 다 썼지만 이름있는 의학교수들마다 현대의 의학으로는 치료할수없다는 결론만 내리는것 이였다.
날이 가고 달이 가서 아들애도 20살을 넘기게 되였다. 좋다는 약은 다 써보아도 아들애의 병은 점점 더 악화되기만 했다.
장모는 그런 외손자를 보며 언젠가 이렇게 말하는것이였다.
“이사람아, 아들애에게 믿음을 주어야 하네.”
처음에 나는 아들애에게 믿음을 주라는 장모의 말뜻을 건강이 회복될수 있다는 믿음을 주라는 뜻으로 리해를 하였다.그러던 언젠가 내가 방안에서 책을 보고 있는데 우리 집에 놀러오셨던 장모님이 정주칸에서 아들애와 이런 말을 나누고 있었다.
“문파(아들애의 이름)야, 사람이 죽으면 어디로 가는지 아니?”
“어디로 가겠소? 화장터에 가져다 태워버리지, 그럼 재가 되재이우?”
“아니란다. 사람이 죽으면 착한 사람은 천당으로 가구, 악한 사람은 지옥으로 간단 다. 알겠니?”
이렇게 말을 시작한 장모님은 신앙에 대하여, 그리고 선과 악에 대하여 차근차근 설명을 해주었다. 아들애는 눈이 동그래서 장모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고 있었다. 순간 나는 아들애에게 믿음을 주라던 장모님의 말씀이 머리에 떠올랐다. 장모님의 말씀은 결코 아들애에게 건강이 회복될수 있다는 믿음을 주라는것은 이니였다. 죽은후 천국 에 가서 재생한다는 믿음을 주라는것이였다. 곰곰히 생각해 보니 장모님은 일리가 있는 말씀을 나한테 한것이였다.
아들애는 오래 살수도 없고 또 병도 치료할수 없다는것도 명백한 사실이였다. 발육장애와 운동기관의 활동장애로 아들애가 26살이 되였을 때 건강은 말이 아니였 다. 아들애가 금방 병에 걸렸을 때 의사들은 10살을 넘기지 못할것이라고 예견하였다
풍전등화마냥 언제 꺼져버릴지 모를 허약한 신체에도 불구하고 아들애는 날마다 록음기를 틀어놓고 한국가수들의 노래를 듣군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둘째아들한테서 편지가 왔다. 예술학원 졸업학년인 둘째아들이 미혼 처를 데리고 집에 오겠다는것이였다. 우리는 기뻤다.
“문파야, 문원이 색시를 데리고 온단다.”
그런데 기뻐할줄 알았던 아들애가 벽쪽으로 돌아눕더니 묵묵무답이였다. 그날 아들 애는 하루종일 벽쪽으로 돌아누워서 그토록 즐겨듣던 노래도 듣지 않았다.
“얘, 문파야, 문원이 색시를 데려오는게 나쁘니?”
“아니,”
“그럼 어째서 하루종일 말두 안하니?”
“문원이 새기 오면 내 병신이라구 뭐라하겠소? 문원이두 얼마나 부끄럽겠소? 아부 지, 외아매 그러는게 천당이 영 좋다합데. 아부지, 내 죽겠소!.”
그 소리를 듣는 나와 안해는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 아, 사람이 살다가 이럴 수가 있을가! 아들애는 죽기로 결심을 내렸던것이다. 그날부터 아들애는 밥을 먹으려 하지 않았다.
“문원이한테 편지를 했다. 색시를 데려오지 말라구. 그러니 어서 밥을 먹어라…..”
이렇게 달래면서 갖은 방법을 다 썼건만 죽기로 결심한 아들애의 마음을 돌려세울 수는 없었다. 아들애의 건강은 날마다 달라갔다. 때마다 얼려서 요행 밥을 먹이긴 해도 며칠가지 않아 정신을 잃기까지 했다. 의사가 와서 주사를 놓겠다고 해도 광기를 부렸고 먹을것을 입에 가져가도 입을 다물고 머리를 저을뿐이였다. 그러던 어느날 아들애는 정신이 올똘하여 나를 올려다 보았다.
“아부지, 정말 천당이라는게 있소?”
“있지않구.”
“나는 지금 자꾸 천당에 가는 꿈을 꾸오.”
“그래? 꿈에 천당에 가보니 어떻더니?”
“영 좋습데. 천안문같은 기와집이랑 잔뜩하구.”
“그래, 거기가서 뭘했니?”
아들애는 시무룩이 웃으며 대답이 없었다. 내가 재차 물어서야 겨우 대답을 했다.
“훨훨 날아다녔소…..그리구…장…..장가두 들구…”
대답을 하고 아들애는 또 흐믓하게 웃었다. 그 웃음속에서 나는 꿈속에서나마 이성 과의 감미로움을 체험한 아들애의 만족된 느낌을 감촉할수 있었다. 어떠하다고 말할 수 없는 눈물이 속에서 흘렀다.
“문파야, 너처럼 인간세상에 왔다가 걷지도 못하고 학교문앞에도 못가본 애들은 모두 천당에 가서 제일 좋은 곳에서 산단다. 거기 가서 하고 싶은 일을 다 하고 보고 싶은것도 훨훨 날아다니며 다 본단다. 그래 너는 뭘하고 싶니?”
“그럼 난 제일 먼저 kbs에 가서 리미자랑 현철이랑 노래하는거 보구 나두 가수가 되겠소.”
아들애의 흥취는 노래였다. 그래서 평시에도 늘 록음기를 틀어놓고 한국가수들의 노래를 듣군했던것이다.
“문파야, 이다음에 아버지두 어머니두 죽으면 모두 천당으로 간단다. 거기 가서 우리 온 식구는 다시 만나 행복하게 살아간다.”
“아, 그랬으면 얼마나 좋겠소!”
아들애는 이 마지막 말을 남기고 혼미상태에 빠졌다. 그리고 그길로 영영 우리 곁을 떠났다…….
나는 본의 아니게 아들애에게 천국에 가는 믿음을 주었다. 결국 그 믿음이 아들애 로하여금 죽음을 달갑게 맞으면서 이 세상을 떠나게 하였다. 아들애는 갔다. 믿음을 가지고 저 세상으로 갔다.
믿음이란 희망이 아니겠는가, 희망이 있었기에 아들애는 스믈여섯의 젊디젊은 나이에 저 세상으로 가면서도 죽음의 공포를 느끼지 않았다. 아니, 천국에 가서 영원히 복을 누릴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죽음을 맞이하여 간것이다.
아들애가 우리 곁을 떠난지도 17년세월이 흘렀다.
부모가 세상을 뜨면 장례를 지내고 화장터에 가져다 화장을 하거나 산에 가져다 묻으면 그것으로 일이 마무리 지어 지지만 자식이 죽으면 부모는 그 죽은 자식을 가슴속에 묻고 산다. 그래서 내리사랑은 있어도 올리사랑은 없다고 하는 모양이다. 나는 자신의 체험으로 이 점을 증명하고 싶다.
나는 어언 고희를 넘겼으나 먼저 보낸 아들애의 무덤은 그냥 가슴속에 있다.
아, 과연 천국에 가서 아들애를 만날수 있다면 그 믿음이 때가 되여 가는 걸음을 웃으며 가게 하련만!
이 수필을 쓴 후 편집부에 들고 가니 교를 신앙하는 작품이라면서 채용할수 없다는것이였다. 그래서 정식간행물이 아닌 연길시생태문화예술협회에서 꾸리는 “모아산”3 기에 발표했다. 분명히 말해 둘것은 필자는 교의 선전을 위하여 이 작품을 쓴것이 아님을 독자들께 알리고 싶다. 사실이 그렇게 되였으니 필자는 수필로서의 사실을 외곡하여 쓸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철저한 유물주의자라 하더라도 죽음을 앞둔 아들에게 그토록 믿고 있는 천당의 세계는 교회의 거짓설교라고 할수는 없었다. 세상에 이런 경우에도 자기의 신앙을 지켜 자식에게 죽음의 공포를 줄 부모는 없다. 필자는 결코 이런 면에서마저 엄숙하게 정치를 론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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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 5 ]
5 작성자 : 김송죽
날자:2014-10-02 19:21:57
<<결코 이런 면에서마저 엄숙하게 정치를 론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과연 옳은말이고 맞는 말이다.
4 작성자 : 동정
날자:2013-06-28 07:52:08
너무도 가슴이 아픈 글입니다. 추천 한표 드립니다.
3 작성자 : 성원
날자:2013-05-29 18:00:55
가슴이 저려나는 이야기입니다. 신앙의 빈궁에 처한 우리민족의 실상이 그대로 보여지고요, 아직도 의식형태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한 안타까움도 있습니다, 서양교의 천당신앙, 도교의 장생불로신앙, 불교의 육도륜회신앙, 그리고 죽으면 왔던곳으로 돌아가 조상들을 만난다는 우리민족의 유교 신앙이 어떻게 다른가? 공동점은 무엇인가? 사색하게 됩니다.
2 작성자 : 리해
날자:2013-05-07 12:01:18
정말 깊은 리해가 갑니다.눈동자에 비벼넣어도 아푸지 않은것이 자식아라 하지 않습니까?진한 모성애로 인한 부모의 자식사랑 어디에비기겠습니까?꼭 생전에 복 많이 받으시고건강하시기를 바람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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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옳은말이고 맞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