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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창씨가 세 번째로 대선출마선언을 하고 나섰다. 5년 전 대선결과에 승복한다면서 다시는 정치를 하지 않겠다던 대국민과의 약속도 저버린 채 선거막바지에 새치기를 하고 나왔다. 어쩜 송구하고 민망스러워야하건만 오히려 노련하고 천연덕스러워 보는 사람이 민망하다. 유권자가 아닌 해외동포가 왈가불가한다고 할 지 모르지만 5년 전 이회창씨로 인해 가슴을 쓸어내리던 기억이 살아남아서 다시 불안감을 감출 수 없다.
그 때도 선거막바지에 들어서던 2002년 11월, 한국정부의 ‘외국인력제도 보완대책’의 발표로 중국동포들이 심란한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이듬해 3월까지 3년이 넘는 불법체류자들이 본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정책이었다. 3년에 본전 찾고 돈 벌어간다는 것도 거짓말이려니와 IMF여파로 줄곧 불황을 겪으면서 본전도 찾지 못한 동포들이 허다하였다. 그런 시점에서 ‘외국인력제도 보완대책’은 또 한 번 중국동포들을 낭떠러지로 몰아가고 있었다.
때 마침 한 시민운동단체(‘자랑스러운 나라 만들기’)가 나서서 대통령후보들인 이회창 한나라당후보와 노무현 새천년민주당후보로부터 공약을 받아냈다. 그중 중국동포관련부분을 요약하면, 한나라당은 중국동포들이 한국에서 따스한 대접을 받을 수 있는 나라로 만들겠다. 그러나 80%에 달하는 불법체류자를 1%로 줄여 ‘불법체류자의 천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 새천년민주당은 ‘외국인력제도 보완대책’의 수정을 검토하는 한편 중국동포들의 출입국관리를 인도적으로 배려하며 내국인과 동등하게 노동관계법을 적용하는 등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것이었다.
여의도 영산파라다이스 홀에서 공약을 듣고 있던 중국동포들의 눈에서는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한나라당이 불법체류자를 1%로 줄인다는 것은 단기비자를 받고 한국행을 하는 중국동포들에게 더는 취업기회를 주지 않겠다는 말이 된다. 또 현유의 중국동포들이 ‘외국인력제도 보완대책’의 실시로 내년 3월부터 육속 중국으로 돌아가게 되면 ‘이회창 정부’는 명실공이 ‘불법체류자의 천국’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중국동포들은 여기서 물러설 수 없었다. 거액의 수수료를 주고 찾아왔는데 금방 돌아가라니 말도 안 되거니와 다른 나라도 아니고 고국을 찾아왔는데 쫓지 못해 안달을 떠니 배신도 이런 배신이 어디 있느냐는 것이다.
중국동포들은 제발 노무현 후보가 당선되기만을 바랐다. 선거권만 있으면 노무현 후보한테 몰표를 주고 싶었다. 그러나 선거권이 없는 그들로써는 발만 동동 구를 뿐이었다. 결국 그들은 한국인들을 찾아 거리로 나섰다.
“노무현을 찍어주세요.”
“새천년민주당후보를 찍어주세요.”
무작정 인도를 차단하고 나선 중국동포아줌마들도 있었다. 어이없이 바라보는 한국인들을 가벼운 웃음으로 흘러 보내는 아줌마들의 얼굴에는 서글픈 빛이 역역했다. 그렇게 한입두입 건너간 중국동포들의 소원이 몇 장의 노무현지지표로 바뀌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최악의 상황에 몰린 중국동포들이 이회창씨의 공약에 맞서 싸운 사실은 하느님을 감동시키고도 남았다.
선거일인 12월19일, TV를 지켜보는 중국동포들의 초조한 모습은 유권자들을 무색하게 했다. 그들은 제발 기적이 일어나 노무현씨가 당선되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노무현씨의 표는 좀처럼 이회창씨의 표를 앞지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자정이 가까워오면서 기적이 나타났다. 노무현씨의 표가 드디어 이회창씨의 표를 앞지르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중국동포들의 소원대로 노무현씨가 제16대대통령에 당선되었고 이회창씨의 공약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중국동포들은 서로 얼싸안고 “노무현! 노무현!”을 외치며 환호했다.
오늘 다시 이회창씨를 보노라니 서글픈 생각이 든다. 부디 어렵게 나선 경선에서 소원성취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5년 전 불법체류자를 1%로 줄이겠다는 위험천만한 공약으로 중국동포를 괴롭히는 일은 다시없기를 바란다. 오늘 날 한국에서 노무활동을 하고 있는 중국동포들은 더 이상 비난받는 집단이어서는 안 된다. 빠른 노령화사회를 맞고 있는 한국은 응당 중국동포를 포용할 줄 알아야 하며 외국인노동자문제에 있어서 선진국이 되어야 한다. 또 차기정부는 한국의 산업현장에서 오랫동안 성실하게 일한 중국동포들을 인정해 주고 선진국처럼 영주권을 줌으로써 더불어 화목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2007년11월25일 연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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