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당직을 마치고 퇴근하는 길, 8월 한낮의 태양은 아스팔트 위로 아지랑이를 피워 올리며
세상을 모두 녹여버릴 듯 뜨거운 열기를 뿜어대고 있었다.
오늘따라 무슨 차가 이리 막히는지..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차는 차대로 짜증에,
나는 나대로 피곤에 절어 핸들을 잡은 채 졸다가
깨다가 하면서 그렇게 퇴근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절반쯤이나 왔을까?
광명을 목전에 둔 어느 사거리에서 얼른 가서 씻고 자야겠다는 생각으로
신호가 바뀌기만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끼익~하면서 쿵..쾅..쿵..쾅 하는 소리가 연이어 들리더니
급기야 묵직한 그 무언가가 내 차 뒤꽁무니까지 때리고서야 멈춰 섰다.
이거 뭐야 하고 내려서 돌아다보는 순간 숨이 멎는 줄 알았다.
15t 화물트럭이 철제 빔을 가득 싣고 달려오다 신호대기 중이던 차량들을 잇달아 들이받더니
내 차 바로 뒤에서 멈춰선 것이었다.
"어, 어, 어, 어"
쩍 벌어진 입, 흘러내리는 침을 얼른 수습하고 상황파악에 들어갔다.
트럭은 운전석 앞과 옆쪽이 심하게 찌그러져
연료인지 윤활유인지 알 수 없는 기름이 새어 나오는 가운데
팬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해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만 같았고,
이제 곧 영화 속에서 익히 보아왔던 장면이 바로 내 눈앞에서 재현될 참이었다.
내가 트럭 반대쪽으로 몸을 돌리는 순간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내 몸이 공중으로 솟구쳐 오르고
트럭에 실려 있던 철재 빔과 트럭파편들이 옆에 있던 차량과 가게를 덮쳐
2차 3차 연쇄 폭발로 이어지며 도로가 패이고 인근 가게가 박살 나고
여기저기 시체들이 뒹굴며 신음소리와 선홍빛 핏물이 도로를 적시는 등
한마디로 아비규환 상황이 슬로비디오처럼 눈앞에 전개될 판이었다.
아, 난 아직 죽으면 안 되는데..
처자식도 있고 아직 할 일도..음.. 꽤 많을 텐데..
그리고 또.. 또..
논리가 필요 없는 순간,
이것저것 잴 것 없이 냅다 도로 바깥쪽으로 뛰었다.
빛보다 빠른 속도로 현장에서 멀찌감치 빠져 나왔을 때
주위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가 귀에 들어왔다.
"죽었제?""죽었을 끼다. 차가 저리 찌그러졌는데.."
그제서야 트럭 내부를 살펴보니 운전사 한 분이 타고 계신데
휴지조각처럼 찌그러진 운전석 안에서 고통으로 몸부림 치고 있었다.
이를 어째.. 도와줘야 되는데,
도와줘야 되는데 하는 생각만 절실할 뿐,
두 다리는 바닥에 붙어서 조금도 움직여지지 않았다.
주위 사람들도 다들 안타까운 심정으로 지켜보고만 있을 뿐,
아무도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사고여파로 운전석이 반쯤 없어져버린 15톤 트럭은
갈수록 거친 소리와 함께 검은 연기와 기름을 사방으로 뿜어대며
금방이라고 쾅~하고 폭발해버릴 것만 같았다.
아, 어떡해? 지금 저 상황 속으로 뛰어드는 것이 옳을까?
아니면 가슴 졸이며 바라보고만 있어야 할까?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도와주는 게 내가 해야 할 일인데,
내가 지금 직무유기하고 있는 것 아닐까?
아니야, 어제 당직하면서 실컷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 줬고 더군다나 오늘은 비번이잖아?
아, 저 사람을 구해야 되는데 몸은 움직여지지 않고..
아, 나는 누구지?
여긴 어디지?
내 이름은 뭐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지?
얼어붙은 채 꼼짝도 하지 않고 있는 스스로를 납득시킬만한
얄팍하고 그럴듯한 변명거리를 찾느라 머릿속이 분주할 때,
끼익~하고 기적처럼 차문이 열렸다.
운전사는 안간힘을 쓰며 운전석에 끼인 오른발을 힘껏 잡아당겨 뽑아내었으나
이미 오른발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만큼 심하게 다쳐 보였다.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하여 운전석을 벗어나려 밖으로 몸을 던졌으나
미처 빼내지 못한 왼발이 찌그러진 문틈에 끼여
온몸이 허공에 거꾸로 매달린 모습으로 대롱거리게 되고 말았다.
으스러진 왼 발목에 온몸의 체중이 실렸고 쉴 새 없이 피가 흘러내렸다.
" 으..아~"
들릴 듯 말듯 작은 소리지만
이루 말할 수 없는 극심한 고통을 표현하는 단말마의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심장이 쪼그라드는 느낌..
끔찍해서 차마 눈뜨고 볼 수가 없었다.
도와줘야 되는데 도와줘야 되는데 생각하면서도 도저히 접근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모두들 안타까운 심정으로 발만 동동 구르고 있을 바로 그 때,
옆에서 나와 함께 지켜보고 있던 한 아저씨가 멈칫 멈칫 하더니
이내 자석에 끌리듯 트럭 옆으로 다가가
허공에 거꾸로 매달린 그 운전사의 어깨를 자신의 등으로 받쳐주는 것이었다.
운전사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는
그 아저씨의 새하얀 상의를 금새 붉게 물들이고 얼굴에까지 타고 흘러내렸다.
"쫌만 참으세요. 이제 곧 119가 올 거예요"
"으.. 으.."
"자녀분들을.. 생각해서라도 의식을 놓으시면 안돼요"
"......"
그리고는 두 분 다 말이 없었다.
사고 난 차들과 빠져나가려는 차,
계속 밀려오는 차들로 도로는 금새 엉망진창이 되었고,
그 사이를 어렵게 헤집고 구급차가 도착할 때까지의 30여분이
내게만 지옥처럼 느껴지진 않았을 게다.
왜 그렇게 시간이 더디게 흐르던지..
이미 형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진 다리이지만
고통을 느끼는 세포는 그대로였을 테고,
허공에 매달린 자신을 받쳐주는 다른 사람의 등에서 느껴지는
든든함과 고마움은 극심한 고통 속에서 더욱 크게 다가왔을 게다.
짧은 순간이지만 운전사의 얼굴을 스치던 안도감..
더 이상 운전사의 신음소리도,
차들의 경적소리도 없었다.
지켜보던 모든 이들도 숙연함을 느낀 듯 수군거림이 일순간 딱 멎었다.
세상의 모든 흐름이 멈추고 온갖 잡음이 정지한 듯한
무언의 공간 속에서 그 두 사람간에는
짧지만 영원을 함께 한 진한 전우애가 피어났을 게다.
내 평생 많은 사고현장을 목격했고
교통사고나 안전사고로 인한 사망자들도 많이 봐 왔으나
이렇게 직접 내 눈앞에서 일어나는 사고를 목격하기는 처음이었고
또한 이렇게 감동적인 장면은 없었다.
위기 때 그 사람의 진가가 나타난다고 했던가?
일촉즉발의 순간,
몸도 마음도 나와 정반대로 움직인
저 허름하고 후줄근한 옷차림의 아저씨가 그렇게 위대해 보일 수 없었고,
온갖 고상한 관념과 범생이 콤플렉스를 자랑 삼아 두르고 있던 스스로가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머릿속에 수만 가지 아름다운 가치와 지고한 의식들을 담고 있으면 뭐하나?
위기의 순간 내민 손길 하나에 여지없이 증발해 버리고 말 하찮은 것들이라면..
지금 저 분의 등을 받치고 있는 사람이 나였어야 했다고 스스로를 자책하며,
언제나 실천이 아쉬운 초라한 나를 느끼며,
씁쓸한 마음으로 현장을 물러날 수 밖에 없었다.
그 날 따가운 8월 한낮의 아스팔트 위에서 이름 모를 어느 아저씨가 보여주었던
용기에 한없는 감사와 존경을 올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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