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카모메 식당
얼마 전 선생님의 권유로 카모메 식당이라는 일본영화를 보게 되었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가 딱 취향인 내게,
이런 유의 영화는 참 심심하고 지루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뭔가 얻을 것이 있으리라 기대하며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영화 속 핀란드의 한 항구도시,
일본여자 한 명이 작은 음식점을 경영하고 있다.
손님은 한 명도 없이 텅 빈 가게. 창밖에는 가끔 지나가는 사람들이 힐끔거릴 뿐이고,
뚱뚱한 핀란드 여인 세 사람이 한참을 바라보다 사라진다.
주인공은 아침마다 혼자 이상한 동작을 하며 집 거실을 왕복하는데,
가라데라는 무술의 기본동작이라고 한다.
어릴 때부터 배운 거라 하루도 빼먹지 않고 해오고 있다고.
우연히 서점에서 만난 또 다른 일본여인이 가게에 일손을 돕겠다고 오지만,
여전히 손님은 없다.
어쩌다 들른 핀란드 청년 한 명이 첫손님이자 지금까지 마지막 손님이다.
그것도 첫손님이라고 돈을 받지 않겠다는 주인.
주인공은 그래도 매일 요리준비를 한다.
자신은 일본음식이 이곳 핀란드에도 잘 팔릴 거라고 생각한다고….
장사가 전혀 안 되는데도 조금도 불안한 기색이 없다.
편안하고 맑은 얼굴이다.
주인공은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끊임없는 웃음과 정성으로 대접을 하고,
방문하는 사람들은 서서히 손님으로 또는 함께 일하는 동료로 식구가 되어가고,
그렇게 시간이 흐르며, 어느새 식당은 점점 사람들로 가득하게 된다.
점심시간이면 식당은 시끌벅적하고,
조용한 핀란드 항구도시의 거리 한 모퉁이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카모메 식당. ‘갈매기’라는 이름의 식당.
참 재미없는 영화였지만 보고 난 지 한참이 지나도,
그 이미지는 지워지질 않는다.
몇 년 전부터 일 년에 한 번씩 회사를 옮기고 있다.
처음 회사를 옮길 때면,
이리저리 회사를 변혁시켜보겠다는 의욕을 가지고 시작하지만,
점점 현실의 벽에 부딪히며, 열정은 사그라졌다.
‘여긴 아니야.
내 꿈을 이룰 곳은 다른 데 분명히 있을 거야.
내 능력이 필요한 곳이 꼭 있을 거야’
그리곤, 회사를 옮겨 다시 시작한다.
시간이 흐르고, 장애물을 만나고, 한두 번 실패하고, 실망하고.
그리곤 또 떠난다.
올해로 벌써 네 번째이다.
이번엔 그래도 일 년을 넘겼다.
난 이제 갓 일 년을 넘겼지만,
함께 일하는 동료들은 벌써 몇 해째 반복되는 일에 많이 지친 기색이다.
뭔가 새로운 일을 하겠다며 날 불렀지만,
일 년이 넘도록 여전히 그 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저 하루하루 일상을 넘기고 있을 뿐….
어느새 나의 일상도 지루해지고 있다.
반복되는 스케줄, 희망이 점점 사라져가는 회사 상황,
마치 핀란드의 나른하고 한적한 항구도시처럼.
의욕도 없고, 열정도 사라지고,
책임감과 의무감으로 하루하루를 넘기고 있다.
영화를 본 후, 메시지는 분명했었다.
아무리 희망 없는 열악한 상황이라도 그 상황을 바꾸고,
희망을 만들어내는 것은 한 사람의 힘으로 가능하다는 것.
나도 그런 상황에 처할 수 있다면,
그런 역할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핀란드나 네덜란드 같은 북구의 평화로운 도시에서 그런 식당 하나 열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도 참 재밌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부러워했다.
오늘 새벽, 난 내 옆에 있던 텅 빈 식당 하나를 발견했다.
힐끗거리며 창안을 쳐다보지만, 들어올 엄두도 내지 못하는 소심한 사람들.
희망을 그리고 싶지만, 이젠 삶에 지쳐버려 미래를 그릴 힘도 없는 우울한 사람들.
누군가가 뭔가 해주기를 바랄 뿐, 자신은 뭔가를 만들어갈 여력은 없는 사람들.
그들이 주변에 있었다.
사무실에,
버려진 내 블로그에,
몇 개월째 개점 휴업상태인 내 온라인 카페에….
출근하자마자 이메일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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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 월요일부터 뜻이 있는 분들부터 모여서
우리가 현재 하고 있는 프로젝트를
콘텐츠라는 새로운 관점에서 어떻게 접근할 수 있는지
함께 논의하는 모임을 가지겠습니다.
매주 월요일 오전 11시~12시 (1시간)
인원은 몇 명이 모이든 상관없이 그냥 진행합니다.
아무도 없으면 혼자 공부할 겁니다.^^
관심 있으신 분의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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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아무도 참석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난 매일 그 시간에 회의실에 앉아 있을 것이고,
그 시간에 혼자라도 스터디를 할 것이다.
그러다보면, 우연히 들른 핀란드 청년처럼 한 사람이 와 앉을 것이고,
창밖으로 힐끔거리며 지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매주 난, 같은 시간에 그렇게 내 카모메 식당을 열고,
찾아올 손님을 맞을 준비를 할 것이다.
언젠가는 식당이 넘치게 북적거리며,
내가 준비한 음식을 맛볼 그 날을 그리면서.
딩동! 답장 메일이 왔다.
“이사님, 금요일 11시~12시는 어떠신지요?
아무래도 금요일에는 행사가 적어서 이 시간이 좋을 것 같습니다.”
“네, 저도 금요일을 선호합니다.”
“저도 금요일 좋습니다.”^^
“저도 금요일이요~~”
“예, 알겠습니다. 당연히 해야죠.^^;
저는 요일 상관없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필참!”
벌써, 손님이 이렇게나 많이 오면 안 되는데….
내 삶의 카모메 식당!
바로 여기였다.
*
명상을 시작한 지, 9년째가 되어가지만,
삶의 힘겨움은 여전합니다.
하지만, 며칠 전 명상일기를 적으며,
내 삶의 카모메 식당을 찾았습니다.
주변에 있는 모든 우울한 상황이,
내가 들어가 빛을 내어야 할 카모메 식당이란 걸 깨달았습니다.
처음 시작은 초라하고,
비록 손님이 하나도 없더라도,
나의 꿈을 그리고 키우며,
미래의 손님을 기다리며 꾸준히 준비해 나간다면,
언젠간 북적거리는 날이 올 것이란 걸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모든 불편한 상황들이 날,
영화 속의 주인공이 되게 해주는
감사한 상황이란 것도 알았습니다.
꾸준함만이….
내 삶의 카모메 식당을 가꿀 수 있는 열쇠란 걸
알게 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