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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꿈
2014년 10월 08일 09시 49분  조회:1655  추천:0  작성자: suseonjae



아빠의 꿈
 
 
 
 
 
 
“아빤 꿈이 뭐였어요?”
어색한 침묵을 깨기 위해 별 기대 없이 했던 질문이었습니다.
아빠의 어릴 적 꿈은 작은 산을 하나 사서
그곳에 여러 동물들을 풀어놓고 키우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대학 졸업 후, 주 5일제 근무에 좋은 조건의 유명 제약회사에 취직하셨다지요.
그러나 전공인 화학공학도로서의 꿈을 이루기 위해
석유화학기업의 입사시험을 포기할 수 없었던 아버지는 제약회사를 그만두셨지요.
시골에서 대학등록비를 마련하기 위해 온갖 궂은일을 다 하셨던 홀어머니의 기대와
자신의 꿈 사이에서 고민하며 혼자 뒷산에서 울었던 날이 많으셨다는군요.
다행히 원하시던 회사에 입사하여 제품연구에 최선을 다하셨고,
지금도 미련이 없다고 하십니다.
아프시기 직전에는 퇴직한 4-50대 분들이 일할 수 있는 사업체를
운영하는 것이 꿈이셨다네요. 

 
좀 의외였습니다.
아버지에게도 열정이나 꿈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못해봤거든요.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갑자기 눈물이 납니다.
그러고는 한참을 목 놓아 울었습니다.
‘왜 울지?’ 스스로도 어리둥절했습니다.
‘아…’ 스치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고3 수능을 마치고 뚜렷하게 가고 싶은 대학도, 과도 없었던 저였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집에서 통학할 수 없는 곳’이어야 했습니다.
더 이상 아버지와 한 집에서 사는 것이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어릴 때부터 제 기억 속의 아버지는 어머니의 의견을 전혀 존중하지 않으셨고,
주제를 막론하고 자주 큰 소리로 어머니를 혼내셨습니다.
집안의 모든 일은 TV프로그램을 정하는 일부터 큰일까지 아버지 마음대로였습니다.
아버지의 심기가 불편하신 날에는,
그 날 집안 식구들은 모두 숨을 죽이고 지내야 했습니다.

 
달걀형 얼굴에 쌍꺼풀까지 있는 아버지와 달리
저는 넓은 얼굴에 쌍꺼풀이 없습니다.
그런 저에게 아버지는 늘
“지연이는 객관적으로 예쁜 얼굴이 아니야,
지연이는 누굴 닮았지?
엄마를 빼닮았구나.” 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


어릴 때부터 한 번도 ‘예쁘다’는 말이나
‘사랑한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창살 없는 감옥에 사는 것으로 느껴졌습니다.
가출을 생각해 보기도 했지만,
다시 집으로 돌아왔을 때 혼날 일이 무서워 실행에 옮기지 못했지요.


다행히 집에서 멀리 떨어진 대학에 입학하게 되었고,
집에 전화 한 통 할 생각도 하질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 날의 대화 이후,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버지도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소신과 꿈이 있고,
그 꿈을 이루고자 하는 열정과 행동력도 있는,
그런 멋있는 ‘한 사람' 말이지요.

 
맡고 계신 역할 중 하나가 ‘김지연의 아버지’일 뿐,
단점도 있고, 실수도 하는 나와 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니,
점점 죄송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아버지를 '나를 사랑하고 인정해 주어야 하는 사람,
완벽한 모범을 보여 주어야 하는 사람' 이라고 여겼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기대가 채워지지 않으면 분노했던 것이지요.

 
명상을 시작한 후,
나름대로 아버지를 용서하려고 애쓰던 날들이 떠오릅니다.
하지만 저는 용서하는 사람이 아니라
용서 받아야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제 새로운 눈으로 아버지를 바라봅니다.
눈치 없고 철없는 제가
고생 한 번 없이 평탄하게 살아올 수 있도록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주셨고,
한평생 성실하고 반듯하게 살아오셨던 모습의 아버지가 보입니다.


그 사실만으로 저에게 큰 가르침을 주시는 분….
아버지, 계셔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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