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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의 결혼식
2014년 08월 25일 08시 48분  조회:1749  추천:0  작성자: suseonjae


딸의 결혼식
 
 
 
 
"엄마, 이분은 누구야?"
"응. 엄마의 이모, 그러니까 주영이에겐 이모할머니가 되겠네.
왜 한두 번 뵈었잖아."
 
"아~ 김해 할머니!
부산할아버지는 지금보다 훨씬 젊으셨네. 히히.
근데, 엄마! 외할머니는 어디 계셔?
안보이시네?"
 
"음…."
 
엄마 아빠의 결혼 앨범을 들여다보는 아이는
신기한 듯 종알종알 갖가지 질문들을 쏟아낸다.
예쁜 새신부의 모습을 하고 있는 자신을 일견 뿌듯해하면서
이러쿵저러쿵 신나게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아이의 마지막 질문에 나는 멍하니 할 말을 잊었다.
하던 말을 멈추고 쓰린 가슴을 쓸어안으며
나는 7년 전 그때로 다시 돌아갔다.

 
 
"니 결혼식 못가, 아니 안 갈 거야.
스님이 무슨 딸 결혼식이냐. 됐다….
절에서 결혼식 무사히 잘 끝나도록 염불이나 실컷 하련다.
결혼식 때 사고 많이 난다더라.
걱정 마.
엄마가 우리 정은이 잘 살라고 부처님께 기도도 많이 드렸어.
어린 것이 그동안 고생 많았지.
좋은 신랑 만났으니 이제 호강하면서 잘 살아야지.
그래, 둘 다 가진 것은 없어도
공무원이니 찬찬히 아껴서 잘 살면 그럭저럭 괜찮을 거야.
암 그렇고말고.
그나저나 엄마가 해줄게 없어서 낯이 안 선다.
그 놈의 돈!
어째 그리 나한테는 안 붙어 있는지 모르것다.
으이구!"

 
새하얀 걸레로 불전을 정성스럽게 닦으시며
엄마의 넋두리는 끝이 없었다. 
 
"걱정 마, 엄마.
내가 다 알아서 할께.
그리고 나 잘 살 테니 염려 마.
결혼식도 다 잘 될 거야.
주무세요.
저 가요…."
 
매번 이런 대화를 마치고 자취집으로 향할 때마다
나는 별을 보며 울었다.
나의 가난이 싫었고 일찍 가족을 떠난 아빠가 그리웠고
평범하지 않은 엄마, 그래서 딸의 결혼식에조차도 올 수 없는 엄마,
떠맡아야 하는 어린 동생, 삶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 현기증을 느꼈다.
모든 것을 혼자 끌어안고 내 가슴은 점점 피멍이 들어갔다.
그래서 난 떠나고 싶었다.
도망치고 싶었다. 
 
훌훌 털어버리고 나만 혼자 쏙 빠져나와
근사한 경찰 신랑이랑 보란 듯이 행복하게
‘딴딴딴~’ 잘 살고 싶었다.
그 한 가지 생각으로 똘똘 뭉친 나는 혼신의 힘으로 결혼식을 준비했다.
이모, 외삼촌들, 큰아버지를 비롯한 친가에 결혼을 알리고 도움을 요청했다.

고생바가지로 살던 나 유정은이 시집을 가니
이번에 확실하게 기부하시는 분에게는
그동안 우리 세 가족을 무시하며 살아온 세월에 대하여
면죄부를 주겠노라고.
그러니 동참하시라고 은근히 협박 아닌 협박을 하였다.
 
이모와 외삼촌들은 엄마를 대신하여
가구와 전자제품들을 책임져주셨고
친가에서는 몇 백 만원의 돈을 마련해주셨다.

'아, 드디어 가긴 가는구나!'
 
그러던 어느 날, 시어머니로부터 연락이 왔다.
결혼식 날 이모와 이모부가 부모 좌석에 앉을 거면
굳이 사람들에게 그 사실을 밝히지 말고
친 부모인 것처럼 연기를 제대로 하자는 거였다.
시어머니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되었다.
나도 원하는 바였다.

30분이면 끝날 결혼식.
남들에게 구태여 불쌍하게, 가련하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정말 그랬다. 
 
결혼식 전날,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 괜찮아?
내일이네.
무지 떨린다.
결혼식 마치고 저녁 비행기 타고 서울로 가요.
신혼여행은 그 다음날이니까 서울 도착하면 바로 달려갈게.
참, 준우한테 비디오 녹화하라고 확실히 얘기해 두었으니까 걱정 마세요.
생생하게 찍어서 보여드릴게.
엄마! 딸 시집가니까 좋지?
나 잘 살 거야.
걱정 마.
얼른 주무세요.
끊어요."
 
딸은 엄마에게 그래도 결혼식장에 오지 않겠느냐고 말 한마디 건네지 않는다.
엄마가 꼭 있었으면 좋겠다고.
가발을 쓰지 않아도 그 모습 그대로 너무 예쁘고 자랑스럽다고….
빈 말 한마디 남기지 않는다.

 
결혼식 당일,
시작부터 끝까지 나의 가슴은 쉼 없이 울렁거렸고 긴장되어 있었다.
슬플 겨를이 없었다.
누가 알까 두려워 결혼식이 어서 끝나기만을 기도했다.
 
쫓기는 마음으로 치룬 나의 결혼식.
모든 일정을 마치고 서울행 비행기에 탑승한 나는
텅 빈 마음, 씁쓸한 마음을 어떻게 달래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결혼식은 완벽하게 잘 끝났지만 내 마음은 왜 이렇게 아프기만 한지….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로 검은빛 하늘을 보니 오로지 엄마의 얼굴만이 떠올랐다.
 
신혼집에 도착한 나는 짐만 내려놓고 무조건 뛰었다.
엄마에게로.
너무나도 오랜만에 엄마 손을 잡고
우리는 오랫동안 아주 오랫동안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되어 엉엉 울었다. 
 
‘미안하다.
고맙다.
사랑한다…’
고 되뇌면서 말이다.
 
나보다 더 슬프고 외로웠을 엄마는
초대받지 못한 그날,
하나뿐인 딸의 결혼식 날 얼마나 가슴 아프셨을까….
지금도 나의 후회는 끝나지 않았다.
 
태어남의 기쁨을 주시고 진한 경험과 수확을 주시고,
사랑과 따뜻함을 알게 해주신 어머니께
이 자리를 빌어 가슴 깊이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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