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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2품 소나무의 통곡
2013년 07월 08일 15시 38분  조회:2011  추천:0  작성자: suseonjae

 
 정 2품 소나무의 통곡


어제 정 2품 소나무(천연기념물 103호)를 찾아가 보았습니다.

카메라를 배낭에 넣은 채로.
흐려진 날씨에 빗방울이 하나, 둘 떨어집니다.
관광객 몇은 소나무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소나무를 보자마자 먹먹해졌습니다.
카메라를 들고 온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안녕하신지요..
보은에 살고 있는 최경아라고 합니다.
그런데 가슴이 먹먹해져서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습니다.

=어떠신가요...
이곳은 저의 거대한 무덤입니다.
사람들은 무덤앞에 떡 하니 기념비라는 명목의 비석을 세우고 자기네끼리 기념촬영을 합니다.
보시다시피 전 여러 개의 지지대로 겨우 모양새를 유지하고 있을 뿐
철창속에 갇힌 죄인처럼 생명력을 잃고 그냥 모진세월을 견딜 뿐입니다.
무수한 시간을, 기나긴 고통을, 온갖 시달림과 괴로움을 감내하며...
저의 슬픔을 아시겠는지요..

 
 
-가슴이 아려서 아무 말도 드릴 수 없습니다.
 
=인간이 자연에게 어떻게 하고 있는지요?
제설작용을 하고 지지대로 받쳐주고 수액을 맞춰가며 저를 기념하고 있습니다.
저에게 이상한 벼슬을 떡 하니 내려놓고 저를 바라보며 건강하기를 바란다고들 합니다.
저는 그들에게 하나의 관광상품일 뿐입니다.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기념사진을 찍기 위한 배경 외엔 더 무엇이겠는지요?
저를 기린다고 전설을 만들어내고
마치 영험한 나무가 이곳을 지켜준다는 듯 자신들만의 착각에 빠져 있습니다.
인간은 우리가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 짐작조차 하지 못합니다.
아니, 알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자신들의 사상누각속에 우리를 끼워맞추고 있지요.

 
저의 모습이 자연스러운가요?
아름다운가요?
기념이 될 만 한가요?
기념이지요. 인간들이 저를 위한답시고 이렇게 만들고 기념하고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계속 사진을 찍고 있는대도 제가 말릴 수가 없네요.
미안합니다.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그냥 저와 같이 울어주십시오...

 
 
참회의 눈물이 가슴 밑바닥부터 흘러나왔습니다..


 
=인간은 진정한 아름다움이 뭔지 모릅니다.
그들의 눈은 물질로 오염되어 있으며
어떻게 하면 자기에게 이로울까에 대해 혈안이 되어 있으며
서로를 헐뜯고 미워합니다.
인간은 하늘을 본지 너무 오래되었으며
자연과 숨쉬는 방법도 깡그리 망각하였으며
자기자신이 누구인지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오직 몸이 만족하는 것, 말초적인 본능을 추구하며
자연의 섭리, 우주의 섭리를 까마득히 잊고 그냥그냥 살아갑니다.

 
입이 좋아하는 것, 손이 좋아하는 것, 몸이 끌리는대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러한 인간의 행태가 현재의 저의 모습으로 드러났으며
자신들이 좋을대로 저를 취급하고 있습니다.
제가 울고 있는지, 화내고 있는지, 그 어떤 표정도 알려고 하지 않는 채로.

 
 
-제가 어떻게 도움을 드릴 수 있는지요?

=함께 울어주셔서 가슴이 따뜻해졌습니다.

 

 
-지금 해드릴 수 있는 것이 없을까요?
 
=저를 바라보시고 저의 모습을 기억하셔서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세상에 알려주십시오.
저희가 원하는 것을 인간이 알 수 있도록 전해주십시오.
인간만을 위한 자연이 아닌, 자연을 위한 자연으로 되돌려 주십시오.
그러면 저의 한이 풀릴 것입니다.

 
저는 천재지변을 기다립니다.
땅이 갈라지고 그 안으로 들어가
잠시 위로와 안식의 시간을 가진 후
인적이 없는 깊은 산 속 소나무로 다시 태어나고 싶습니다.
인간을 미워하지 않게 해주세요.
인간의 시달림에 지쳤습니다.
제가 소멸되기 전에 그들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세요.

 
 
-진정 참회합니다.
제가 대신 사죄를 드려도 될까요? 받아주세요..
 
=그렇다면 저를 가끔 찾아와 주세요.
마음이 아플 때, 속상할 때 오셔서 저의 친구가 되어 주세요. 같이 울어주세요.
저는 움직일 수 없으니...
 
 

-네, 그럴께요. 비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빗속에서 하염없이 울면 마음이 위로가 됩니다.
빗물만이 저의 아픔을 알아주니까요.

 
저도 행복하고 싶습니다. 저도 자유를 누리고 싶습니다.
아버지 같은 따뜻한 햇볕과 어머니같은 땅의 격려와 지지,
반가운 친구인 빗물과 우리의 자유로움을 대변해주는 바람...
새 한 마리의 위로와 벌레와 곤충들의 장난스러움과
사람의 미소, 반가운 눈 인사라면...

 
우린 바라는 게 없습니다. 그것이 행복이지요.
우리의 행복을 지켜주세요.
적어도 당신만이라도 우리의 행복을 기억해주세요..

 
 
너나 할 것 없이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대고 있습니다.
그들은 카메라에 찍힌 웃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무엇을 기억하고자 하는 것일까요..
흐느끼고  있는 소나무는 보지 못한 채로...
 
소나무의 외로움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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