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난 바보야
아침 식사를 마치고 봄방학이라 느긋한 오전,
따르릉 한 통의 전화가 울렸다.
“동서, 나야.”
전화를 받으면서 나는 속으로 피식 웃는다.
‘우린 동서지간이 아닌지가 오래되었거든요’ 그러면서도,
“예, 형님.” 하면서 대꾸를 시작한다.
자궁암 초기 진단을 받은 지 몇 개월이 지났건만 아직도 수술도 하지 않고,
별다른 조치 없이 그냥 생활하고 있는 아이들의 큰 엄마이다.
떠날 때를 대비하는 것인지, 친정 식구를 곁으로 오고 싶은 것인지,
떠나면 남을 두 아이들을 아이들의 이모들에게 맡기고 싶은 마음인지,
이 모든 혹은 내가 짐작하지 못하는 다른 이유 때문인지 모르지만
양산에서 친정 식구들이 있는 계룡산 부근으로 이사를 한 것이 거의 전부이다.
암 진단을 받고는 아등바등 살려고 노력하던 삶의 터전을 홀연히 정리하고,
계룡산 부근에서 몸이 불편하신 친정어머니를 모시고 살며
모든 것을 놓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고 하는 분이다.
나보다 조금 늦게 결혼을 했지만 나보다 조금 나이 많은,
참 특이한 시가(媤家)의 삶에
오로지 둘만이 나눌 수 있는 얘기들로 함께 밤을 새울 수 있는 분.
그렇게 서로의 상처의 한 부분을 어루만져 줄 수 있는 분.
너무 길게 하지 않으려 애를 썼건만 한 시간은 통화를 한 것 같다.
본인이 원하는 것과 너무도 차이가 나 버린
결혼 후의 생활에 대한 어려움을 이렇게나마 풀어내면
조금은 위안이 되는 모양이다.
대화 중간에는 또 아이들 아빠 이야기가 꼭 들어간다.
납득하기 어려운 일 처리 방식에 내 편을 들어주다가
못내 속이 상하는지 꼭 하는 말이 있다.
“동서, 바보야?
다 들어주고, 하고 싶은 대로 다 해 주니까 그러는 것 아니야!”
“전 남기고 싶지 않은 걸요.
제 마음에 걸림이 없도록 하고 싶은 걸요.
그래요, 전 어쩜 바보일지도 몰라요.
그냥 아이 아빠가 원하는 대로 다 해 주는 것이
제 마음이 제일 편안해서.
아이 아빠에게 바라는 게 없고,
그냥 아이 아빠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며칠 전 아이 아빠가 와서 이틀을 머물다 갔다.
고등학생인 큰 아이에게 본인이 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되는 부분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였다.
몇 년 전보다 많이 안정되어 보였다.
아이에게 해 주는 말을 들으며 늘어난 흰 머리를 보았다.
겉으로는 그래도 그 속은 얼마나 또 편하지 않은 부분이 있을까?
측은한 마음에 밥상도 정성으로 차려주고,
거실이나마 잠자리도 마련해 주었다.
그런데 갑작스레 언니가 집을 방문하게 되었다.
아이 아빠의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지만 둘은 마주치고 말았다.
그 순간은 평온한 듯 지나갔지만 결국 다음 날 전화로 온갖 소리를 들어야했다.
“너 참 이상하다.
살림 차렸다면서 어떻게 이 집에 들어오게 할 수 있니?”
이야기인 즉, 결국 내가 바보라는 거다.
어쩌면 들어오지도 못하게 하는 것이 옳은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에게 이렇게 가르친다.
어떤 경우에도 너희들의 아빠라는 것은 변함이 없다는 것.
아이들에게 나름 변명을 하며 내 편을 만들어야 하는 게 좋을지도 모르는데
난 도무지 그런 것을 할 줄 모른다.
아빠도 힘드실 거라고.
아빠는 너희들을 사랑하고,
아빠가 잘 지내야 너희들도 좋은 거라고 말한다.
어쩌면 이것도 바보인지 모르겠다.
가끔 애들 아빠한테 이런 충고도 듣는다.
명상이나 수련에 관심을 가진 적이 없던 그가
어떤 수련원에서 며칠간 머물렀었는데
직장 동료 때문에 가게 되었다며
그 동료가 나보다 훨씬 낫다고 한다.
당신도 그렇게 여유 있고 활기차게 살고, 열심히 일 하라고.
그런 말을 들어도 이상하게 난 하나도 언짢지가 않았다.
아이 아빠도 나름대로 자신의 세계를 넓혀가는구나.
그런 과정 중에 배움이 있겠지.
아~ 난 정말 바보인가 보다.
아이들 큰 아빠와 통화를 했다.
좀 답답하신 모양이다.
삶의 터전을 정리하고 가족들을 따라 처가댁 근처로 오고 나니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으신가 보다.
어릴 때 밖에 나갔다 오면
누군가에게 잠바를 벗어주고 오곤 해서 혼이 나기도 하셨다는 분.
마음 바탕이 선해서 가족들 모두에게 인정을 받지만
현실적인 능력 때문에 겪어야 하는 어려움이 있으신 분.
그 어려움을 조금은 알고 있는 나.
그래서인지 가끔 전화가 오곤 한다.
그래도 자신의 마음을 이해해주는 사람이 있어
통화하고 나면 답답한 마음이 조금은 시원해진다고 하시면서.
그런 와중에도 긴 방학 동안 사촌인 아이들끼리
함께 놀 시간을 마련해주지 못함에 대한 아쉬움을 전해주신다.
나 혼자 아이들과 어려움이 많을 텐데 도움 주지 못한다고
능력이 부족한 자신에 대한 자책감을 담은 미안함도 함께 전해 주신다.
지난번에 우편으로 받은 명상 책을 읽고 참 좋다고
언젠가 좀 여유가 생기면 함께 하고 싶다는 말씀도 해 주신다.
20년 가까이 아이 아빠로 인해 맺어진 관계.
지금은 아이 아빠는 빠지고
우리끼리 친구처럼 되어버린 나와 아이들의 큰 아빠, 큰 엄마.
어쩌면 바보라서~
내가 바보라서~
앞이 캄캄하다고 느낄 때마다
내게 전화해서 때론 걱정하고 위로받으면서
서로를 격려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난 또 바보로 살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난 바보인 내가 고마운지도 모르겠다.
그래. 난 정말 바보인가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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