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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20대
2014년 06월 06일 08시 56분  조회:1005  추천:0  작성자: suseonjae


나의 20대
 
 
 
 
 
나의 20대는 늘 우울했다. 하고 싶은 건 많았지만, 가진 것이 없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시절에 가장 우울했던 건 가진 것이 없는
상황을 극복할 만한 긍정적인 사고가 그 시절 나에겐 없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30대로 오면서 뒤를 돌아다보며 깨닫게 된 것이지
20대는 그걸 극복할만한 위안을 어디에서도 찾지 못했다.
그렇다고 다시 20대로 돌아가고 싶냐고 물어본다면 나의 대답은 'No'이다.
좌충우돌, 질풍노도….
이런 단어들과 어울리는 20대는 한 번 경험으로 족하다.

 
 
1998년 겨울은 유난히 추웠던 기억이 있다.
아마 나에게만 추웠을지도 모르겠다.
우리 6명의 식구가 2층 슬래브 집에서 전세를 살던 시절이었는데,
집에 난방이 되질 않았다.
우리 동네는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아 LPG가스로 난방을 하곤 했는데,
가스를 주문할만한 돈이 없어서 난방을 하지 못했다.
날씨가 추워지면 추워질수록 집은 바깥 날씨보다 더 춥게 느껴지곤 했다. 
하는 일마다 되는 것이 없던 아버지는 그해 겨울도 공장 하나를 정리하고는
이곳저곳을 전전하셨지만, 일을 해주고도 돈을 못 받는 상황만 되풀이 되었다.



엄마는 늘 그랬듯이 경제적인 문제로 아버지와 싸우셔서
집안의 냉기를 더욱 부추기곤 했다.
전기장판이 하나 있었지만, 형제가 4명이나 되다보니
서로 엉덩이 붙이고 앉아 있다가 먼저 드러눕는 사람의 차지가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부모님은 한 번도 전기장판을 탐내신 적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난 지금도 추운 것을 끔찍하게 싫어한다.


 
그해 겨울, 뜻하지 않은 기회가 찾아왔다.
학교에서 1년에 4명씩 일본 문부성 추천으로 교환학생을 선발하는데 발탁된 것이다.
교환학생으로 가게 되면 1년간 학비가 면제였고,
매달 8만 엔의 생활비를 지급받아 생활할 수 있었다.
발탁소식을 듣고 처음 든 생각은 ‘아! 이제 추운 집은 벗어나는 구나’ 라는 생각이었다.
나중에 일본에 가서 보니 온돌시스템이 되어 있지 않아 추운 건 마찬가지였다.


 
일본에 갈 준비를 한참 하고 있을 때였다.
학교에서 1년에 4명씩 가게 되므로 먼저 간 선배들이 준비사항이나 여러 가지 정보를
올 사람들에게 미리 전화나 이메일로 전해주었는데
그 준비사항 중에 나를 당황케 한 목록이 있었다.



그것은 일본 갈 때 50만 원의 현금을 들고 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유인즉슨, 우리는 월초에 들어가게 되어있는데
생활비로 나오는 8만 엔은 월말에 주어지므로 그동안 살 수 있는 생활비와,
그곳에서 구입해야 할 필수생활품 등을 구매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하루하루 근근이 생활하는 빈털터리인 나에게 50만 원은 정말 큰돈이었다.


 
‘이 돈을 어디 가서 구한다?’ 하루 종일 머리를 싸매고
고민을 해도 어찌해야 할지를 몰랐다.
부모님한테 이야기하면 어디 가서 돈을 꾸어서라도 보태주시겠지만,
왠지 말할 수가 없었다.
그 돈이 있다면 차라리 난방이 되는 집에서
단 며칠이라도 동생들을 재우는 편이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일본은 가야한다.
아니, 가고 싶다.
돈은 없다.
돈을 마련해야 한다.
어디서 마련하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중 퍼뜩 생각나는 사람이 있었다.
방학 때마다 한 연구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는데,
그 연구소의 한 박사님이 생각났다.



혼자 싱글로 사시면서 가끔씩 아르바이트생들을 모아서
맛난 것을 사주시곤 하던 분이다.
특이한 점은 점심시간마다 명상을 하신다면서
눈을 감고 몇 십 분씩 조용히 계셨고(나는 그것을 잠자는 것이라 생각했었다)
철저하게 채식을 하시는 분이었다는 것이다.
그분이 모 학교의 교수님으로 가셨다는 소문을 접하고 그 학교를 찾아갔다.
그분을 찾아간 이유는 단순했다.
그 당시 아르바이트생들을 모아 맛난 것을 사주셨으니 돈이 많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분한테 50만 원을 꾸어 일본 경비를 마련할 생각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정신이 없었던 것 같다.
친하지도 않으면서, 밥 몇 번 얻어먹은 인연으로
난데없이 전화를 걸어 만나자고 해서 돈을 꿀 생각을 했으니 말이다.
그분 학교로 가는 동안 내가 고민을 했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50만 원을 꾸어달라고 말을 할 때,
그분 얼굴을 보지 못하고 탁자만 멍하니 바라보다
일본 어쩌고저쩌고 앞 뒤 말은 다 빼먹고
50만 원이라는 주제어만 넣어서 어렵게 말을 꺼냈다는 것과
그분의 당혹스런 표정과 첫마디,
그리고 그 후 한참 동안 울었다는 기억밖에는 없다.


 
“저… 저, 50만 원만 꿔주세요.”
그분은 몇 분 정도 망설이다 어렵게 말을 떼셨다.
“음. 어쩌지? 나 돈 없어….
생각보다 가난한 사람이야. 이걸 어쩌지?”
그분도 너무 당황스런 나머지 단어로만 이루어진 대답을 하셨다.


 
“네…, 괜찮습니다.” 라고 말했지만,
이미 내 눈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그 눈물의 의미는 미안함과 뒤늦게 느껴지는 창피함,
그리고 이젠 어쩌지… 하는 당혹감이 뒤엉켜 나오는 눈물이었다.
내 눈물을 보시던 그분은 더 당혹해하셨다.


 
“잠시만 기다려봐….”
그분이 잠시 나가시더니 손에 봉투 같은 걸 하나 들고 오셨다.
“50만 원은 못해주겠지만,
얼마 안 되는 용돈은 줄 수 있을 것 같다.
이 돈은 내가 그냥 주는 거야.” 
그러면서 봉투 하나를 내미셨다.
나는 그 봉투를 거절하지 않고 받았다. 
그분 방에서 나오면서 눈물이 너무 나서 화장실로 바로 달려갔다.
화장실 한쪽을 차지하고 앉아서 하염없이 울고 또 울었다.
그냥 창피하고, 또 미안하고, 그리고 너무 고맙고….
그런 감정들이 눈물과 콧물로 범벅되어 흘러나왔다. 


 
한참을 울고 나서 봉투를 열어보니 20만 원이 들어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분은 그 달에 번 돈을 모두 쓰는 분이었다.
즉 있으면 쓰고 베풀고 해서 잉여재산이 없는 분이셨던 것이다.
아마도 현금서비스를 받으셨거나 옆방 교수님께 빌리신 듯 보였다. 


 
나머지 돈은 부모님이 융통을 해주셨다.
그렇게 50만 원을 마련하고 일본으로 날아갔다.
그날의 그 경험이 있어서인지 얼굴에 철판을 까는 용기가 더욱 강해졌다.
동네 소바 집에 들어가 일본어를 더 많이 경험해보고 싶어서 그러니
아르바이트를 달라고 당당히 말해 일주일에 두 번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고,
한국어 과외를 해서 교환학생 치고는 나름 풍요로운 생활을 하기도 했다. 


 
교환학생에서 돌아온 이후 그분께 한 학기 등록금 후원을 받았다.
교환학생에서 돌아온 첫해에 장학금을 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아는 지인을 통해서 그분이 내 상황을 알고 먼저 연락을 해오셨다.
그냥 주면 빚이 된다면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받아가라고 하셨다.
나중에 보니 아르바이트라기보다는 그냥 주는 돈이나 다름없는 아르바이트거리였지만,
그분이 내 자존심을 지켜주기 위한 배려였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10년도 넘은 기억이지만, 그때의 그 경험으로 나는 좀 더 달라졌다.
좀 더 세상을 알게 되었고,
어려운 사람들의 처지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지금은 나름대로 직장을 잡고 안정적으로 생활을 하고 있으며,
작은 평수지만 두 다리를 뻗고 잘 수 있는 따뜻한 집이 생겼다.
지금 나는 소득의 일정부분을 아동후원과 몇몇 단체에 기부하고 있다.
그것이 그분이 나에게 베푼 친절을 갚는 한 방법이라고 생각한 것이 시발점이었는데,
베풀면서 내가 더 많이 얻는다는 것을 오히려 배웠다.
그러고 보니 인생은 배움의 연속인 것 같다.


 
몇 년을 기부해도 그 20만 원은 절대 갚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소득의 일정부분을 떼어 주는 것이지만,
그분은 바닥을 박박 긁어서 주신 돈이 아니었던가.
그리고 돈을 주실 때는 “이건 그냥 주는 거야.” 내지는
“대가를 치르고 가져가는 거야….” 라고 하시는 말씀들.
돈을 주신 고마움과 함께 나를 배려해주신
그분의 마음이 느껴져 고개가 숙여진다.
고마운 그분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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