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같은 사람 또 보면 안 되지!
징~ 슈~ 철거덕, 징~ 슈~ 철거덕….
‘어? 기계가 왜 그러지? 설마!!!’
IMF로 회사는 망했다.
입에 풀칠이라도 해야겠기에
덜렁 들고 나온 풍선인쇄기계가 가끔씩 말썽이다.
풍선을 인쇄하는 일은 잔손이 많이 가는 일이다.
풍선은 불면 부피팽창을 많이 하므로 불어서 인쇄를 하지 않으면
불었을 때 글자가 깨지게 된다. 꼭 바람을 불어서 인쇄를 해야 한다.
기계에 풍선을 하나씩 끼워 넣어주면,
한 칸씩 이동되며, 바람이 빵빵하게 들어가고, 인쇄, 추출하는 공정을 반복하게 되는데,
하나씩 넣어주는 단순한 노동이 팔팔한 나이였던 나에겐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기계야 고장이 나면 고치면 되지만,
문제는 납기일에 쫓기고 있을 때 주로 고장이 난다는 것이고,
고장 나서 수리공을 부르려면, 최소 10~20번 전화를 걸어야 하고
밍기적 거리며 자신의 존재가치를 한껏 내세우는 수리공들의 태도가
더 진저리쳐진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바람을 압축시키는 컴프레서가 고장인데,
기존 거래처는 얼마나 바쁘신지 오는 데 3시간,
부품 가져다가 수리하는 데 2시간, 도합 5시간이 걸린단다.
물어물어 알아둔 새로운 곳에 급하니 서둘러 달라며 수리를 부탁하였다.
납기시간을 계산하니 2시간의 여유가 있었다.
수리공이 오면 어떻게든 2시간 안에 고쳐야 하므로,
이 궁리 저 궁리하며 생각해 보건데
정중히 부탁하는 것이 제일일 것 같았다.
그러다가 얕잡아보고 늑장부리면 낭패인데 어쩌지?
이 일을 하고 있으면 참 여러 가지 황당한 경우가 부지기수로 발생한다.
급하다고 하여 밤새워 인쇄해주면 고맙다며 오늘 중으로 송금한다고 하고선 떼어먹고,
어떤 이는 사람을 믿지 못하면 어찌하느냐며 생떼 써서 믿어주면 떼어먹고,
자신은 그런 사람 아니라며 속고만 살았냐며 눈알을 부라려서 내어주면 떼어먹고,
사업하는 사람이 그깟 5만 원 때문에 쫀쫀하게 그러지 말라며 떼어먹고,
자신도 돈을 못 받아서 그러니 받으면 준다고 기다리라고만 하고,
돈은 있는데 차비가 없다며 3만 원만 나중에 준다며 소식 없고,
100만 원 수표 보여주며 90만 원 거슬러 달래서 나중에 현금으로 달라하면 떼어먹고,
처음엔 완결, 점차 일부를 덜 주다가 결국 미수금 떼어먹히고….
그렇더라도 ‘난 단지 믿었을 뿐이고~’
그래도 내가 해야 할 일은 반드시 차질 없게 하려고 노력하는데
그 반대의 경우가 발생할 땐 어찌될지 암담하기만 하였다.
얼마 후 60이 넘어 보이고 평온해 보이는 인상의 아저씨가 와서는 컴프레서를 보자고 한다.
'어휴, 인상은 좋은데 나이도 많고. 믿고 정중하게 부탁할까?
아냐! 일인데 인상과 나이가 무슨 상관이야?
2시간 안에 빨리 고쳐야 하는데'
납품을 못했을 경우를 생각하니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른다.
페널티로 물어 낼 돈도 돈이지만,
줄줄이 빌어야 하는 상황을 생각하니 아찔하다.
"아저씨! 2시간 안에 고칠 수 있어요?"
"해봐야지요."
"무조건 고쳐야 됩니다. 아시겠어요?"
“….”
"물건을 제대로 만들어야지! 이거 툭하면 고장이고.
아저씨들은 고장 나면 돈 벌어서 좋지?
그래 남 고통이 아저씨들에겐 기쁨이라니까!
2시간 넘을 거면 아예 손도 대지 마세요!"
아무 말 없이 얼마 정도 비용이 나온다며 바삐 손을 움직인다.
심하다 싶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고,
10분 정도 간격으로 들락거리며 무언의 압력을 가한다.
1시간 정도 시간이 지나자 전기를 넣어 보란다.
스위치를 올리자 컴프레서가 돌며 공기의 압력을 기계 쪽으로 보낸다.
성공이다!
'오! 주여, 오! 하나님, 오! 부처님, 감사합니다!'
속으론 만세를 연발했지만 겉으론
‘수고 했습니다’ 소리도 안하고 퉁명스럽게 다음에 또 보자고 하였다.
"나 같은 사람을 또 보면 안 되지!"
"뭐라고? 이 아저씨가 일 잘 하고선?"
그때 아저씨와 눈을 마주쳤는데 순간 그 마음이 ‘진심’이라는 걸 느껴졌다.
눈물이 핑 돌아 고개를 돌리곤 부끄러워 아저씨를 바로 볼 수 없었다.
그 말 속에는 자신을 무시하여 화를 낸 것도,
돈 때문에 이런 일 하는 것도 아닌,
부디 기계를 잘 다루어 자신과 같은 A/S 기사를 부르지 말라는 염려와 당부,
젊은 나이에 열심히 사는 모습이 예쁘다는 칭찬과 정이 들어 있었다.
말도 못하고 고개만 숙이고 있는 내가 안타까웠는지 이것저것 묻더니,
기계에 대해 설명해주며 또 볼 수 있는 거라며 오해하지 말란다.
자기는 컴프레서만 보면 그 집 상황을 다 안다고.
자네보다 더한 경우도 있다며 괜찮다고 위로를 해준다.
그 후에도 가끔씩 정기적으로 기사를 보내어 컴프레서를 점검하여 주고,
미리 조치를 취해주셔서 그 후 컴프레서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주저앉고 싶을 정도로 지친 시기에 내 가슴을 울려준 고마운 한마디였다.
나의 잣대에 세상이 맞춰지기를 바라던 시기였다.
나의 무지가 깨지고 두들겨지는 만만치 않은 세상공부 중이었던 때였다.
하루하루를 넘기는 게 힘든 시기였지만,
나를 알아주는 한 사람을 만난 것이다.
그 후에도 상황은 계속되었지만 비슷한 것은 있어도,
똑같은 것은 없는지 예상하고 준비한 일일지라도
막상 나의 일로 닥치면 새롭고 당황스러운 것이 삶인가 보다.
수많은 경우의 수를 대입하며 선택의 기로에 설 때는 늘 외로울 뿐이다.
한 번의 실수가 하나의 경우의 수를 더하고,
경우의 수가 더해짐에 따라 나는 노회해진다.
열정이 식어야 주위가 보이는데, 다들 그러고 살고 있다.
그래도 내가 제일 잘났다는 자기 포만감과
내일은 오늘보다 나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 하나를 갖고선 그냥들 산다.
8년이 지난 재작년에서야 그 아저씨 소식을 들었다.
몇 년 전에 술이나 한잔 하자고 하더니 소식이 끊겼었는데
그 사이 암으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전부터 배가 좀 아프다고 하면서도 그렇게 술을 찾더니만
병원에 가보니 암이셨단다.
자기는 병원에 입원해야하니 이제 진짜로 자주 보기 힘들겠다고 하시기에
걱정 말고 병원 가서 치료 잘 받으시라고 한 것이 마지막 인사였다.
"알았다. 열심히 일 잘해라!" 하며 껄껄 웃으시더니
일주일 만에 돌아 가셨단다.
징~ 슈~ 철거덕, 징~ 슈~ 철거덕.
멈출 줄 모르고 요란하게 돌아가고 있는 컴프레서를 보고 있자니
그날 그분이 '나 같은 사람 또 보면 안 되지!' 하시며 웃으시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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