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선재 터줏대감
날짜 : 1999년 4월 3일 토요일 맑음
장소 : 수선재
날씨 : 꾸물꾸물한 회색빛 하늘. 한줄기 봄비가 기다려진다.
수선재에는 터줏대감이 계시다.
처음 가니 벽에 출석부가 붙어있는데 어떤 이름 하나가 눈에 띄었다.
그 이름은 ‘이도해’. 하루도 빼놓지 않고 동그라미가 쳐져있는 이름이었다.
아직 사람들이 낯설어서 이름은 알 수 없었지만 상상을 해볼 순 있었다.
한복차림에 벙거지 모자의 기이해 보이는 분.
수련장에 들어가면 늘 앞쪽에서 대자로 누워있는 분이었다.
오늘은 선생님 수련이 있는 날. 일찌감치 도착하니 그분이 혼자 계셨다.
한 귀퉁이에 아기자기 꾸며놓은 차 마시는 곳.
늘 지나면서 ‘아, 참 예쁘다’고 생각했던 곳.
거기 앉아 계시다가 나를 부르셨다.
...
“차 한 잔 하세요.”
능숙한 자세로 차를 우려낸다.
손에 쏙 들어오는 예쁜 도기잔에 차를 따라준다.
그분의 이름은 역시 내가 상상했던 대로였다.
어, 그런데 차 색깔이 이상해. 붉은 색... 쇳물보다는 맑은데 이거 차 맞아?
차 하면 녹차밖에 모르던 나였다.
“이게 무슨 차예요?”
“보이차라고 합니다.
자주 마시면 소화가 잘 되고, 이완이 되면서 기운을 아래로 내려줍니다.“
(‘기운이 아래로 내려가는 게 좋은 건가?’ 하고 속으로 생각함.
나중에 알고 보니 기운은 단전으로 내려야 하고 상기되는 것은 아주 괴로운 것이었다.)
“네에...”
맛은? 의외로 좋았다.
왠지 따뜻한 느낌의 차. 붉은 색이어서?
아님, 사람이 푸근해서...
뭐 하시는 분이냐고 해도 대답을 안 하고 그냥 웃는다.
도대체 어떤 분이시기에 저런 복장으로 이 대낮에 여기서 차를 마시고 있는 걸까?
나이는 한 30대 중반쯤...?
그런데 오늘 선생님께서 이분에 대한 말씀을 하실 줄이야...
노점상 도사
이도해 수사! 요즘 철야수련 시간에 많이 존다며?
소문 다 났더라.(웃음)
(바로 그분이었다.)
안 졸아요. 철야수련 시간만 되면 눈이 번쩍번쩍 하면서 잠이 안 와요.
(맨날 조시나보다. 후후... 꽤나 고수같이 보였는데 졸다니!)
선생님, 이도해 수사님은 맨날 조는 것 같은데
본인은 삼매에 들어갔었다고 그러시거든요. 사실인가요?
조는 겁니다.(웃음)
전에 한번은 본성이 빛처럼 보인다고 했더니
수련중에 빛을 보았다면서 ‘제가 견성한 게 아닐까요?’ 그러더군요.
우리 이도해 수사가 수선재 대주천 1호인데, 참 명물이죠.
이 분이 처음에 『선계를 가고 싶다』책을 대학로 육교에서 팔았습니다.
원래 남한테 얼굴 내놓고 장사하고 그러는 걸 죽기보다 싫어하는 사람이거든요.
모자 푹 눌러쓰고 다니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낮에 그것도 육교에서 『선계를 가고 싶다』를 파는 거예요.
제가 뭐 책을 얼마나 많이 팔겠다고 그 일을 시키겠습니까?
사실 책으로 보면 길거리에서 팔 책이 아니지요.
그러나 본인이 그렇게 하겠다는 건 공부를 좀 해보고 싶다는 거잖아요?
무슨 일도 할 수 있다는 거. 그래서 그러라고 했죠.
그랬더니 겨울에 빵떡 모자에다가 머플러를 몇 겹 두르고 거기 딱 서서 파는데
하루에 열 권 정도는 꼭 팔고 들어와요.
길에 따악 버티고 서 있으니까 기운의 힘으로 사람들이 가다가 한번 쳐다보는 거예요.
괜히 보게 되면서 기운이 가고 책을 사는데 그게 열 명은 되는 거예요.
그 다음에 또 ‘허수아비’라고 길거리 노점상을 했잖습니까?
그것도 다 저한테 등 떠밀려서 한 거지요.
이 사람이 날아다니는 사람이에요.
땅에 뿌리를 안 내려요.
땅에 뿌리를 내려야 굳건해지는데 황당한 거예요.
생각이 날아다니니 오죽하겠어요?
수련하고 앉아있어도 가만히 있지 않고 돌아다녀요.
이 별에 갔다가 저 별에 갔다가 자기 마음대로 막 돌아다니고, 역마살이 있나봐요.
그래서 땅에 뿌리를 내리는 공부를 해야 돼서 노점상을 한 겁니다.
거기 가봤는데 손님이 참 많더군요.
그거 할 때 제가 지나가면서 보면요,
그 기장(氣場)이 사방으로 넓게 뻗쳐 있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괜히 쳐다보고 오는데,
사람 끌어들이는 힘이 아주 탁월하죠.
그게 기운의 힘이에요.
그런데 마음이 허수아비에 없고 수선재에 있어서 장사를 허당으로 해서 문제였죠.
그런 것이 다 기운으로 되는 거니까 장사를 잘 되게 하려면,
점포 가지고 장사하시는 분들 잘 들으세요,
본인들의 기운이 장하고 거기에 뿌리를 내리고 있어야 돼요.
대개 장사 안 되는 집들은 안 된다, 안 된다 해서 보면
주인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느냐 하면 이거 팔고 빨리 떠야지,
딴 데 가야지 그래요. 그런 사람들 절대 장사 안 되지요.
주인의 마음이 떠있으니 오던 사람도 쫓게 생겼는데
가는 사람 붙들게 되지 않죠.
돈 벌고 싶으면 자기가 따악 좌정하고 앉아서
기운으로 하면 사람들이 자꾸 꼬여요.
저도 어디 가면 그래요. 음식점에 가면 사람들이 막 들어오기 시작해서 바빠지고
뭐 사러 가게에 가면 갑자기 사람들이 몰려들고 그렇거든요.
그게 기운 때문에 그래요.
저 집에 갈 것도 이 집으로 와요.
사람들이 끌려오는 거예요.
기운을 익힌다는 표현이 있지 않습니까?
내 기운으로 익히는 것,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 필요해서요.
항상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으면서 자신의 마음이 확실하면 사람들이 꼬입니다.
다 기운이에요. 기운의 힘으로 사람들이 오는 거거든요.
기운을 좌악 받으면서 서있으면 오다가다 한번씩 시선이 가요.
괜히 쳐다보게 되는 거예요.
있으면 먹고 없으면 굶고
이 수련을 하기 위한 세 가지 준비조건이 있죠. 다들 아시나요?
정서적인 준비, 경제적인 준비, 신체적인 준비라고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정서적인 준비란 정서적으로 남에게 혹은 신이나 기타 다른 대상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을 말하고, 경제적인 준비란 경제적으로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말합니다.
신체적인 준비란 수련을 하기 위한 기본조건인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능력을
스스로 갖추는 것을 말합니다.
그 중에서도 경제적인 부분이 해결되지 않으면 수련을 할 수가 없습니다.
수련하려고 앉아서 ‘어떻게 먹고사나’ 걱정하고 있으면 무슨 수련이 되겠어요?
남한테 얹혀있는 한, 공부는 안 됩니다. 자립을 해야 됩니다.
하지만 옛날 선인들은 수련하실 때 돈이 필요 없이
산에서 솔잎 따먹으며 수련하시지 않았습니까?
도인은 돈을 멀리해야 되는 거 아닌가요?
도공부하는 사람들은 돈이 필요 없다,
돈을 돌같이 봐야 한다 이런 얘기를 너무 많이 들어서
‘돈을 외면하는 것이 도인이다’ 라고 생각하는데,
과거에는 그랬을 수 있어요.
그건 열매라든가 풀이라도 따먹을 수 있었을 때 얘기고,
지금은 생존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그런 생각으로는 안 됩니다.
우리가 하는 수련은 그렇게 하는 수련이 아니에요.
수련뿐 아니라 사회에서도 자기 분야에서 능력을 발휘하여 일가를 이루어보는 것이
수련의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합니다.
선계수련은 반쪽짜리 도인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전인(全人)을 만드는 수련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이도해 수사가 제일 좋아하는 말이 뭔 줄 아세요?
...?
‘있으면 먹고 없으면 굶고’ 랍니다.(웃음)
‘모름지기 도인은 그래야 된다’ 하는 옛날 책을 하도 많이 봐서 그러는데
도공부 하는 사람은 버는 방법도 한두 가지는 알아야 됩니다.
여차하면 돈을 벌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해요.
돈을 벌 줄 몰라서 못 버는 것하고 벌 줄 아는데
안 버는 것하고는 차원이 다른 얘기거든요.
선생님, 돈을 추구하면 수련에 방해가 될 것 같은데요.
도닦는 사람이 돈을 많이 벌어도 되나요?
그래요. 돈을 얼마나 벌어야 하는가?
우선 너무 가난해서 옆 사람들에게 신세지면서 살면 안 되고,
나와 내 가족 먹고사는 것 외에 주변의 어려운 사람을 도와 줄 수 있을 정도의
경제력은 있어야 마음놓고, 업을 짓지 않고 수련을 할 수 있습니다.
여기 어떤 분이 수련하러 와서는 밥값 내야 된다고 그랬더니
‘나는 밥값 낼 능력은 없고 금식으로 버티겠다’ 그러더래요.
그래서는 안 됩니다.
어디 가면 거기서 하는 방식대로 할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은 가지고 수련을 시작해야 합니다.
‘있으면 먹고 없으면 굶고’ 라는 것에는 다분히 남에게 얹혀있겠다는 심리가 있는 거예요.
자기 밥값은 자기가 낼 수 있어야 되고, 또 옆 사람 사 줄 수도 있을 정도는 되어야죠.
이도해 수사 지금은 안 그러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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