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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이엄마가 전화를 걸어왔다.
"민이 엄마가 크게 아프다고 하는군요. 협회에서 한번 위문하러 가야 되지않는지요?"
"그래요? 크게 아프다니 어떻게 아프대요?"
"아마 병원에 가서 수술을 받았는가 봅니다."
"그럼 장학부 리군부장에게 정황을 반영하고 공지를 내어 함께 위문을 가면 좋을것 같아요.”
나는 인차 장학부부장 리군에게 전화를 했다.
"금방 은이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민이 엄마가 많이 아프대요. 사람들을 조직해서 위문가면 어떨가요?”."
"알았습니다."
...
그러다 다시 민이엄마를 만난것은 10월 정모에서 였다.
나는 문득 민이엄마의 병세가 생각나서 물었다.
"아프다고 들었는데요 그사이 병문안 간다던것이 사정으로 차일피일 미루다보니 행하지 못했습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병세는 호전을 가져왔는지요?"
"아니요. 암이랍니다."
나는 머리속이 하얘짐을 느꼈다.
나는 재차 물었다.
"뭐라구요? 무슨 병이라고요?"
"암입니다. 악성 종류입니다."
민이엄마는 대수롭지 않게 얘기했다.
나는 가슴이 무너지는것 같았다.
후사모 장학생들 가정 대부분은 불우한 사연이 있다. 그중 민이네 집은 대표적이라 할 수있다. 당시 후사모 연우산악회 회원들은 신변에 경제적 어려움때문에 학업을 제대로 할수 없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는 정황을 료해하고 자발적으로 경제적으로 어렵고 학습성적이 훌륭하며 성품이 훌륭한 어린이를 장학생으로 키우자는 리념으로 2009년 후사모를 운영하자는데 의견을 일치했다.
당시 나는 남은 인생을 후사모문화를 만드는데 진력하리라 다짐했던 터라 인차 발벗고 나섰다. 그때 2008년총결연회를 치르고 남은500원을 종자돈으로 회원들이 돈을 기부한 돈에다 부족한 부분을 내가 보태서 5000원 장학기금을 마련했다. 후사모의 장학기금은 이렇게 형성되었다.
민이는 후사모의 2번 장학생이다.
당시 민이를 추천한 회원은 민의 가정상황을 이렇게 소개했다.
"신흥소학교에 아주 훌륭한 학생이 있는데, 공부도 잘하고 성품도 훌륭합니다. 다만 아버지가 사업실패로로 큰 빚을 졋는데 설상가상 사고로 돌아갔습니다. 어머니는 너무 큰 충격을 받고 집을 나갔는데 행방이 묘연합니다. 민이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살고 있는데 두분이 모두 편찮으십니다. 이 학생을 후사모장학생으로 추천 할수 없을까요?"
그렇게 민이는 후사모장학생으로 되었다.
내가 민이 엄마를 만난난것은 썩 후의 일이다. 자식을 버린 어머니라는 이미지 때문에 거부감이 생겼다. 하여 별반 련계를 하지 않았다. 그사이 장학부에서 장학생을 관리하고 나는 협회의 다른 일로 바삐 돌아치다보니 민이네 집에 자주 발길을 돌리지 못했다.
다시 민이네 집을 방문했을 때는 민이가 이미 키도 훨씬 크고 집도 10중부근으로 옮긴 뒤였다.
그렇게 민이엄마를 처음 만났는데, 너무 예절밝고 자상한 모습이여서 마음의 의혹도 어느 정도 사라졌다.
그제서야 민이엄마가가 빚때문에 한국에 가 몸을 혹사하면서 빚을 갚은 사연과 빚쟁이들의 성화 때문에 가족을 속이게 된 고충을 알게 되였다.
이제 더이상 아이를 홀로 둘 수 없어서 민이엄마는 집에 돌아온것이다.
그사이 건강이 안 좋았지만, 그래도 열심히 일해서 빚을 갚았다. 지금은 빚도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한다. 여러해동안 몸을 혹사하면서 원래 변변하지 못한 건강이 더욱 악화되면서 신체상황이 여러모로 좋지 않았다. 하여 귀국후 약병을 달고 다녔다. 나는 민이엄마의 강인한 성격에 저도몰래 감복되였다. 몇십만의 빚을 허약한 여자의 몸으로 갚았다는것이 정말 믿기지 않았다. 게다가 주변에서 아이를 버린 여자, 가족을 버린 여자, 빚을 가득 진 여자 등 험담을 할 때면 마음 고생이 더 심했을것이다. 그럼에도 삶의 의욕을 상실하지 않고 억세게 살아왔던 것이다.
그녀는 늘 자기가 없는 동안 민이를 돌봐준 후사모에 감사해 했고 후사모 정모에도 꼬박꼬박 나왔다.
그러던 와중 어느날부터인가 후사모 정모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그러다가 은이엄마가 전화를 걸어왔던것이다. 그때만도 악성종류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마음이 무거워났났다.
나는 민이엄마에게 물었다.
"확진이 났습니까? 확실합니까?"
"네, 연변병원에서는 확진이 났습니다."
"그래도 한국에 가서 한번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으세요."
나는 담담한 표정으로 병세의 위중함을 감추는 민이엄마의 모습에 숙연해졌고 감복되였다.
한평생 남편과 자식을 위해 살아 온 그녀!
죽음 앞에서도 태연자약한 그녀!
오해를 다 뒤집어써도 변명 한번 하지 않은 그녀!
나는 모성애의 위대함을 다시 한번 느낌과 동시에 걱정이 짙어만 갔다.
우리사는 세상,이런 일 저런 일 다 부딪치게 되는 것이지만,신변에 이런 일이 일어나고 보니 안타까움만 더 할 뿐이다.
이제 우리 민이는 또 어떻게 살아야 할가?...
후사모의 책임감이 다시 무겁게 내 어깨를 누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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