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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편소설] 가시꽃 향기 / 김영강
2023년 01월 16일 15시 37분  조회:806  추천:0  작성자: 설야
[중편소설]
가시꽃 향기

김영강

  오늘도 집을 나섰으나 갈 곳이 없다. 아침을 한술 뜨고 출근하는 것처럼 집을 나서는 것이 이제는 일과가 되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미국에 온 후부터 생긴 버릇이다. 며칠 전에는 세면대 앞에서 속옷 몇 개를 주무르고 있는데 며느리가 목욕탕 문을 어찌나 세게 닫아버리는지 쾅,하는 소리에 너무 놀라 귀청이 떨어질 뻔했다.
  ‘시어미가 눈앞에 어른거리는 것조차도 보기 싫다는 뜻 아닌가?’
  같이 산 지 1년도 채 안 돼 며느리와의 사이에 완연하게 벽이 생긴 것이다. 그 벽은 날이 갈수록 두꺼워지고 있었다. 아무한테도 털어놓을 수 없는 분노와 서러움이 차곡차곡 가슴에 쌓이고 또 쌓였다. 남편이 남기고 간 집을 처분해 그 돈을 큰아들한테 몽땅 준 것이 정말 후회스럽다. 미국에 온 것은 더더욱 후회 막심하다.  
  “아니, 그 돈을 다 아들한테 줘버렸어? 왜 그렇게 돈 아까운 줄을 몰라. 돈, 딱 손에 쥐고 내 살 궁리를 했어야지. 그래, 수중에 한 푼도 안 남겨놓고 몽땅 다 줘버렸어? 똑똑한 줄 알았더니 자네 아주 바보로군 바보야. 늙으면 돈이 있어야 돼. 돈이.... 자식 소용없다고. 돈이 효자야 효자.”
  일찍 미국에 와 노인 아파트에 살고 있는 동서가 한심하다는 듯이 내게 말을 늘어놓았을 때, 나는 동서가 한심해 보였다.
  “형님은 차암····,  왜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아들 힘들 때 도와주고 또 내가 도움을 받아야 될 때는 받고,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고 사는 게 좋잖아요?”
  “말이 좋지. 세상 일이 그렇게 자네가 생각하는 대로 되는 줄 알아? 좀 더 살아봐. 지금은 며느리가 잘해주는지 몰라도 얼마 못 갈 걸.”
  동서가 하는 말이 말 같지도 않아 속으로 코웃음을 쳤는데 지나고 보니 동서 말이 다 맞았다. 동서한테 가볼까 하고 버스를 타려고 막 발걸음을 떼다가 그만 주춤 서버렸다. 동서한테는 아들 며느리가 너무 잘해준다고 늘 입버릇처럼 말했는데 오늘은 자신을 믿을 수가 없다. 그냥 누구한테든 하소연을 하며 실컷 울고 싶은 심정이기 때문이다. 옆집 아낙네와 마주칠까 봐 그것도 싫다.
  ‘뭐 식당 부엌에서 허드렛일을 하라고? 사람을 어떻게 보고 그런 말을 해?’
  생각만 해도 기분 나쁘다. 서운하게 생각하지 말라는 동서의 말이 더 귀에 거슬린다.
  “아무리 서울에서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안방마님 노릇을 했으면 뭘하나? 여기는 미국이라네. 자네가 젊고 건강해 보이니까 저 여편네가 노느니 심심풀이로 자기랑 같이 다니자는 말이야. 아들한테 신세 안지고 용돈 벌어 쓰는 것도 좋은 일 아닌가?”
  젊었을 때부터 동서에게서는 묘한 바람이 불었다. 하지만 나는 그 바람 때문에 가슴이 시려도 참았다. 시아주버니는 하는 일마다 실패를 거듭했고 아이들마저도 잘 풀리지를 않았기 때문이다. 아이들 학비도 남편이 뒷바라지를 했었다. 그럴수록 그녀는 내게 형님 노릇을 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더 기가 막힌 일도 있었다. 하루는 동서가 자꾸 내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자네한테 중매가 들어왔는데 시집갈 의사는 있어?”
  우스워죽겠다는 듯이 조소어린 입술을 씰룩거리는 동서의 말투에는 ‘너도 이제 별 볼일 없는 신세가 되고 말았구나.’ 하는 빈정거림이 잔뜩 묻어 있었다.
  “8층에 사는 웬 영감이 자네한테 반했나봐. 나이는 일흔아홉이고. 1년 전에 상처했다는군. 한데, 나이가 좀 많지? 자네가 불법체류자라면 또 몰라도. 참, 영주권은 언제쯤 나온대? 요새는 꽤 걸린다고 하던데.”  
  영주권까지 들먹이며 동서는 내 속을 긁었다. 말 같잖은 소리는 하지도 말라고 화를 발끈 내면서 나는 동서를 노려보았다.  
  “싫으면 그만이지 왜 그렇게 화를 내고 그래? 알았어. 알았어. 내가 실수했어. 미안해. 미안해. 입김도 안 들어가리라는 자네 성격 잘 알지만 그 영감이 하도 졸라서 내가 한 번 말해본 거야. 한데, 자네가 잘 몰라서 그렇지 요새는 나이 들어 재혼하는 거 흉 아냐. 심지어는 80 난 노인들도 장가를 간다니까.”
  그 후부터 동서가 사는 아파트에는 발길이 뜸해졌다. 영감쟁이 하나가 나를 훔쳐보고 있는 듯해 끈적끈적한 불쾌감에 온몸이 스멀거렸기 때문이다.
  나는 몇 대의 버스를 그냥 떠나보내고 우두커니 서 있었다. 길거리엔 차들이 분주하게 오가고 있었다. 정류장에 있던 사람들도 목적지를 향해 다 떠났다.  갈 곳이 있는 그들이 부러웠다. 가슴에 연기 같은 것이 가득 차오르며 숨을 뿜어내도 시원하게 걷히지가 않고 자꾸 답답했다. 토할 수 없는 시커먼 돌덩어리를 삼킨 듯한 무거움에 가슴이 짓눌렸다. 잿빛 하늘이 얕게 가라앉아 있었다.
  ‘어디로 갈까?’
  유행가 가사 모양 정처 없이 발길 닿는 대로 흘러가는 수밖에 없다.
  1년 전, 남편은 고혈압으로 쓰러져 바로 숨을 거두었다. 그리고 미국 땅에 묻혔다. 두 아들이 미국에 살기 때문이다. 남편은 오래도록 대기업에서 중역으로 몸담고 있다가 정년퇴직을 한 후, 거의 매일 컴퓨터만 들여다보며 주식투자에 매달려 살았다. 한때는 잘 나가던 적도 있었으나 퇴직을 한 다음에는 증권도 바닥을 쳤다. 그런 남편이 보기 싫어 나는 잘도 돌아다녔다. 그러나 지금처럼 쓸쓸하지도 않았고 처량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정이 좋은 부부도 아니었는데 남편이 없는 자신을 돌아보니 꼭 날갯죽지 떨어진 새 같다.
  나는 맞선을 본 다음, 좋다든지 싫다든지 하는 그런 감정을 느끼지도 못하고 아버지의 의사에 따라 결혼을 했다. 그리 옛날도 아니었는데 나는 이조시대 여인처럼 인생을 살았다. 신랑은 서울에서 대학교를 나온 수재라고 했다. 그때 나는 집에서 가사를 돌보고 있었는데 남편 이모를 통해 중매가 들어온 것이었다.
  우리 집안은 대대로부터 부를 쌓아 지방유지로 이름이 나 있었지만 나는 이름뿐인 부잣집 맏딸이었다. 어머니는 계속 병석에 누워계시다가 내가 일곱 살 때 세상을 떠나 아버지는 금세 재혼을 했고, 그 밑으로 일곱 명이나 되는 자녀를 줄줄이 낳아 자랄 때 나는 아버지의 눈길 한번 제대로 못 받았다. 칭찬 한 번 들어본 적도 없다. 부모의 사랑이 뭔지도 모른 채 나의 어린 시절은 슬픔과 눈물의 연속이었다. 동생들 치다꺼리에 내 존재는 완전히 잊고 산 세월이었다. 이런 나를 우리 집을 들락거리면서 일을 도와주던 남편의 이모가 측은하게 여겼는지도 모를 일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집안에서 보낸 세월이 근 10년이나 되었다. 대학 진학을 못한 것이 두고두고 한이 되어 무관심한 아버지를 많이 원망했었다.
  발길 닿는 대로 흘러오고 보니 남편의 산소였다. 입구에서 꽃 한 다발을 샀다. 이른 아침이어서인지 사람 그림자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었다. 남편의 무덤 앞에 앉았다. 마음에 아무런 동요도 없고 그냥 담담하다.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바깥일에 바빠 항상 무심하고 무덤덤했던 남편과의 결혼생활은 한마디로 불만의 세월이었다. 마작에 미쳐 주말에는 으레 외박이었다. 어릴 때부터 참는 데는 이력이 나 그냥 꾹꾹 참고 살았다.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도 그립다거나 보고 싶다거나 그런 감정은 도무지 없었다. 남편이 없으니까 아들 며느리가 무시하는 것 같아 그것이 제일 속상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갑자기 서러움이 복받치며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실컷 울기라도 해버리면 조금은 속이 시원해질 것도 같았다. 가끔씩은 밤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었다. 버스를 타고 먼 산을 바라보다가도 그만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남이 볼까 창피해서 이를 악물며 참은 적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엉엉 소리 내어 울어도 된다. 아무도 없는 적적한 공동묘지, 통곡과는 잘 어울리는 장소다. 어느새 나는 엉엉 소리를 내며 울고 있었다. 슬픈 울음소리는 적막한 공기를 가르며 허공 속에 흩어졌다. 터져버린 눈물샘은 쉴 새 없이 눈물을 쏟아냈다. 정말 대책이 없다. 하루가 막막해 눈을 뜨기조차 두려운 나날이다. 노인 아파트에 들어가려면 자격이 돼도 몇 년씩은 기다려야 한다는데 나는 아직 영주권도 없는 몸이다.
  둘째 아들이 매달 용돈은 보내주지만 그 돈으로 아파트를 얻어 혼자 살지는 못한다. 경영학 박사인 둘째는 지금 뉴욕에 있는 국제은행에서 일하고 있다. 둘째한테 가서 밥이나 해주며 살까 하는 안이 떠올라 한번은 말을 끄집어냈다가 단번에 거절을 당했다.
  “어머니 저, 집에서 밥 통 안 먹어요. 그냥 잠만 자요. 또 거기는 한국 사람이 하나도 없고 젊은 미국 애들만 사는 아파트 단지라 어머니는 감옥살이 해야 됩니다. 더구나 한 달에 반은 외국 출장 나가야 돼, 제가 집에 없는데 어떻게 어머니가 뉴욕에 삽니까? 안 돼요.”
  둘째한테 맘 속에 있는 말을 할 수는 없다. 잘못하다가는 형제끼리 의 상하는 일이 생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사업 확장을 해놓고 쩔쩔매는 큰아들, 여러 가지 상황으로 봐 지금은 참고 사는 수밖에 없다. 목구멍까지 꽉 차 있는 서러움을 밖으로 토해내고 싶다. 그래야 속이 뚫릴 텐데 정말 너무 답답해 숨도 제대로 못 쉴 지경이다. 머지않아 저절로 밖으로 쏟아져 나올 것 같아 나 자신도 두렵다.
  갑자기 인기척이 나서 눈을 돌리니 웬 여자가 나를 보고 서 있었다. 울고 있는 내 모습이 무척이나 처량해 보였던 모양이다. 눈이 마주치자 여자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표정이 얼어붙어 있었다. 30을 갓 넘은 듯한 동양 여자였다. 까만 바지와 블라우스가 바람에 하늘거렸다. 순간적으로 분명히 한국 여자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가 내게 간단히 목례를 하고는 남편 산소와는 한참 떨어진 산등성이로 올라갔다. 아래 도로를 내려다보니 그 여자의 것인 듯한 새까만 차 한 대 가 주차해 있었다. 겨우 울음을 그치고 무덤 앞에 넋 나간 사람처럼 우두커니 앉아 있으면서 그 여자가 언제쯤 내려올까 하고 기다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쓴웃음이 나왔다.
  한참 후에 여자가 내려왔다. 여자를 보고 몸을 일으키다가 나는 그만 휘청거리고 말았다. 여자가 재빨리 부축하지 않았더라면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을 것이다. 나도 모르게 한국말이 나왔다.
  “미안해요. 너무 오래 앉아 있어 그런지 다리에 힘이 빠졌나 봐요.”
  여자는 미소를 지었다. 그때서야 나는 혹시 한국 여자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어색한 표정을 지었는데 정말 다행하게도 여자의 입에서 한국말이 나왔다.
  그녀의 부축을 받으며 등성이를 내려오다가 나는 또다시 중심을 잃고 말았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눈앞이 어지러워 걸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얼른 내 허리를 감싸 안았다. 그녀에게로 몽땅 몸이 실려졌다. 그녀도 비틀거리며 힘겹게 나를 받아 안았다.
  나는 소나무 밑에 있는 벤치를 가리키면서 마음과는 정반대의 말을 했다.
  “바쁘시면 먼저 가세요. 좀 있으면 괜찮아질 거예요.”  
  예상대로 그녀는 내 곁에 앉았고, 우리는 한참 동안을 벤치에 머물렀다. 참으로 고마웠다. 오랜만에 받아보는 다른 사람으로부터의 배려였다. 집이 어느 쪽이냐는 말을 시작으로 우리는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갔다. 무슨 인연인지 집도 같은 윌셔 거리에 있었다. 나는 남편 산소에 왔다고 얘길 한 다음, 혹시 그녀도 남편을 잃었는가 싶어 누구 산소에 왔느냐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녀는 어머니 산소라고 간단하게 대답하고는 화제를 바꾸었다.
  “안색이 안 좋으세요. 많이 우셨나 봐요.”
  콧잔등이 시큰해지며 또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가슴 속에 꽉 차 있는 서러움이 갑자기 치솟아 올랐다. 체면 때문에 아무한테도 못한 이야기가 터져나온 것이다. 우리 집안의 내막을 모르는 여자이니 말을 쏟아놓아도 된다는 계산이 서 있었기 때문이다.
  “영감이 그리워서가 아니라 내 신세가 서글퍼서 자꾸 눈물이 나네요. 아들 며느리가 괄시하는 것 같아 더 그래요.”
  이렇게 시작된 하소연은 계속 이어졌다. 어느새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버스에서 내려 묘지에 들어설 때만 해도 잔뜩 흐린 잿빛 하늘에서 비라도 뿌릴 것 같았는데 언제 개였는지 청명한 하늘에는 조개구름들이 은은히 깔려 있었다. 햇살을 받은 초록의 잎사귀들이 생기를 띠고 반짝반짝 빛을 발하면서 나를 보고 방긋방긋 웃었다. 속이 뻥 뚫리며 후련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오랜만에 실컷 통곡을 하고 가슴 속에 차 있는 서러움을 쏟아냈기 때문일까?’      
  몸도 한껏 가벼워져 얼른 일어났다. 여자는 나를 부축했다.
  “괜찮아요. 어지럼증이 씻은 듯이 싹 가셨어요. 아주 기분이 가뿐해요.”  
  여자는 내 팔을 놓지 않고 여전히 붙들고 있었다. 남의 슬픔을 끝까지 들어주며 같이 슬퍼해주는 그녀의 심성에 감동이 느껴져 가슴이 뭉클했다. 그녀의 가슴에서 훈훈한 정이 내 맘 속으로 스며들었다.
  집에까지 모셔다 드릴 테니 자기 차를 타라고 하면서 여자는 차문까지 열어주고 닫아주며 지극히 자상스럽게 나를 대했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시간이 되면 어디 가서 점심이라도 먹자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여자는 두말 않고 승낙을 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말이 없고 지극히 비사교적인 내가 이 여자한테는 왜 이렇게 술술 말이 잘 나올까?’
  우리는 근처 한국 식당으로 들어갔다. 마주앉아 자세히 얼굴을 들여다보니 그녀는 상당히 미인이었다. 화장을 전혀 안 했는데도 윤곽이 뚜렷했다. 하얀 피부에 갸름한 얼굴이 아주 매력적이고 눈매가 시원했다. 알맞게 오뚝한 코와 입술 모양도 선명하고 예뻤다. 보면 볼수록 자꾸 들여다보고 싶은 그런 얼굴이었다. 물결이 치듯 웨이브가 진 어깨에 닿을락 말락한 머리 모양도 보기가 좋았다. 그녀는 미스 장이라고 자기를 소개했다.
  미스라는 말에 귀가 번쩍 띄었다. 어느새 둘째 아들이 마음 속에 가득 차 있었다. 결혼에 한 번 실패했으나 아이는 딸리지 않았으니 가능성은 있을 것이다. 나이를 물었더니 그녀는 서른이 넘었다고만 했지 정확하게 밝히지는 않았다. 아들은 서른네 살이다.
  점심을 먹으면서도 미스 장은 맛있는 것들을 내 앞으로 밀어주었다. 며느리가 좀 이래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식당 주인이 딸이냐고 물었다. 둘이 닮았다면서 꼭 모녀지간 같다고 해 은근히 기분이 좋았다. 차를 타고 집으로 오는 동안 또 하소연이 터졌다.
  “미안해요. 내가 초면에 너무 실례를 하는 것 같네요.”
  “아녜요. 누구한테든 털어놓고 이야기를 해야지 속에 담아 놓고 있으면 병이 돼요. 앞으로 갈 데 없으시면 언제든지 저희 집에 오세요. 그리고 저한테 얘길 하시고 속을 푸세요. 제가 다 들어 드릴게요.”
  처음엔 듣기만 하고 무척이나 조심스러운 태도였는데 조금씩 시간이 지나면서 그녀도 내게 친근감을 같는 것 같았다. 참 고마웠다. 그 동안 너무 버려져 있어 정에 굶주린 탓인지도 모른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어느 날이었다. 집에 있기도 불편하고 나가기도 불편해 엉거주춤하고 있는데 며느리의 뾰족한 목소리가 가슴을 찔렀다.
  “오늘은 안 나가세요?”
  빨리 나가라는 뜻이다. 우산을 받쳐 들고 정처 없이 집을 나섰다. 비바람이 너무 심하게 몰아쳐 몇 발자국을 걷다가 옆집 처마 밑에 잠깐 서서 어디로 갈까 하고 생각을 했다. 날개 떨어진 새 한 마리가 갈 곳을 잃어 처마 밑에서 비를 맞으며 오들오들 떨고 있는 바로 그 모습이었다. 가슴 속에 흐르는 소나기 같은 눈물과 함께 온몸에 한기가 퍼져 가슴이 벌벌 떨려 턱이 다 흔들렸다. 추운 겨울도 아니었는데 뼛속까지 고드름이 맺히는 것 같았다. 하늘도 무슨 한이 그리 많은지 장대 같은 눈물을 길바닥에 쏟으며 통곡을 하고 있었다. 그때의 심정은 교통사고라도 나서 이대로 빗길에서 콱 죽어버렸으면 싶었다. 그래서 두고두고 며느리의 가슴 한복판에 대못을 박고 싶었다.
  그날, 동서네 아파트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걱정 좀 해보라고 전화도 안 걸었다. 갈 곳이라고는 동서네 집밖에 없는 것을 뻔히 알 텐데도 며느리로부터의 전화는 없었다. 동서한테는 적당히 거짓말로 둘러댔다. 자고 들어온다는 말을 했노라고.
  다음날 저녁에 집엘 들어서니 며느리는 어디서 주무셨냐고 묻지도 않았다. 전화라도 한 통 해주었으면 걱정은 안 했을 것 아니냐고 화라도 내 주기를 바란 내가 바보였다. 며느리는 일체 말이 없었고, 그녀의 표정에서 걱정은커녕 아주 안 들어와 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뭐하러 기어 들어왔냐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갑자기 며느리가 무섭기까지 했다. 퇴근 후 집에 들어온 아들도 별말이 없었다. 집에서 잤는지 말았는지 그것도 모르는 것 같았다. 아들한테서도 완전히 버림받은 기분이 들어 그날 밤 나는 가슴을 앓으며 많이 울었다.

  미스 장이 계속 머리에서 사라지지가 않았다. 내막을 알아보고 둘째 며느리로 삼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화를 거니 그녀가 나를 반겼다. 목적지를 두고 버스를 타니 기분이 날아갈 듯이 상쾌했다. 미스 장은 버스 정류장까지 나와 나를 맞이했다. 얼른 하아타이 박스를 받아 들고, 이렇게 무거운 걸 어찌 들고 오셨냐고 놀라면서 안쓰러운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았다.
  자그마한 타운 하우스였다. 가구도 별로 없고 까만 가죽 소파만이 거실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직장에 다니느냐고 물었더니 부동산 브로커인데 요즘은 한가해서 집에 있는 시간이 많다고 했다. 결혼도 안 하고 혼자 살아 중매해도 되느냐고 물었더니 그녀는 가타부타 대답을 않고 나이가 들고 보니 마땅한 자리가 없다면서 말을 얼버무렸다. 어딘가 비밀의 베일에 싸인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일어나려고 하는데 이미 점심 준비를 다 해놓았다면서 그녀는 나를 붙잡았다. 따듯한 마음씨가 가슴에 와 닿았다. 파전을 부치고 불고기도 구워서 정말 오래간만에 잘 먹었다. 음식 솜씨도 며느릿감으론 만점이었다. 후식으로 내온 딸기가 달콤한 게 아주 맛이 좋았다. 딸기를 먹다 말고 나는 그만 목이 메었다.
  어느 날이었다. 그날은 아들 며느리랑 손자 녀석들까지 모두 응접실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며 왁자지껄 떠들고 있었다. 나는 방에서 책을 읽고 있었는데 글자는 눈에 들어오지 않고 응접실에만 자꾸 귀가 쏠렸다. 방에서 나가보려고 하다가도 자기네 식구들만 있는데 방해가 될 것 같아 편치 않은 마음으로 앉아 있었다. 갑자기 문이 열리면서 세 살짜리 막내 놈이 이쑤시개에다 딸기 한 알을 콕 찍어 가지고 들어왔다. 녀석이 “할머니 이거 먹어” 하고 딸기 한 알을 코앞에 들이미는데 온몸에 서러움이 홍수처럼 밀려오며 콧잔등이 시큰했다. 할머니 딸기 안 먹는다고 손자 놈 손을 탁 쳐버렸다.
  넋두리는 또 시작되었다. 미스 장도 맞장구를 쳤다. 첫날보다는 말을 많이 하며 스스럼없이 나를 대해 주어 내 마음도 편했다.
  “그건 너무 했네요. 어머니 나오셔서 딸기 드시라고 얘길 하든지 아니면 자기네가 먹기 전에 한 쟁반 담아서 어머니 방에 갖다 드렸어야죠. 그게 다 자식 교육인데····. 그렇게 혼자 속을 끓이지 마시고 아주머님께서 아들 며느리 불러놓고 얘길 하세요.”
  아들 며느리한테 이 마음을 말할 수는 없다. 며느리 성질에 더 역효과를 낼지도 모른다. 그저 참고만 사는 인생이니 영원히 참고 사는 수밖에 없다. 며느리는 남의 자식이니까 그렇다손 치더라도 배 아파 낳은 내 아들이 저러니 더 서럽다.
  남편 장례식이 끝난 후 큰아들은 내 손을 꼭 잡고 눈물을 흘리며 맹세를 했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있더라고 엄마의 여생은 자기가 편히 잘 모시겠다고 했다. 그 맹세는 1년도 못 가 헛것이 돼버리고 말았지만 그때의 아들 마음은 진심이었으리라고 믿고 싶다.
  
  미스 장을 두 번째 방문한 날이었다. 집엘 가려고 현관문을 나서는데 그녀가 따라나왔다. "나오지 마세요. 저기 나가서 바로 버스 타면 돼요." 하고 미스 장을 돌아보고 말을 하다가 나는 그만 문턱에 왼발이 걸리고 말았다. “어머머” 하고 앞으로 꼬꾸라지려는 찰나 그녀가 나를 잽싸게 붙들었는데, 우린 둘 다 바닥으로 나둥그러지고 말았다. 미스 장의 가녀린 몸이 나를 안고 나자빠진 것이다.
  나는 겨우 일어났다. 그런데 미스 장이 일어서다가 도로 주저앉았다. 왼발을 쭉 뻗고 있었다. 놀래서 다가가니 발목이 삔 모양이었다.  
  “큰일 났어요. 이럴 땐 빨리 침을 맞아야 돼요.”
  “괜찮아요. 좀 있으면 가라앉겠죠. 일단 집으로 들어가야 되겠어요.”
  그녀는 내 손을 붙들고 오른발에 힘을 모으며 겨우 일어섰다. 심하게 절뚝거리는 것을 보니 많이 아픈 모양이었다. 그 와중에도 어디 다친 데 없느냐고 물으면서 미안해서 안절부절못하는 내게 그녀가 도리어 미안해했다.  
  “괜히 번거롭게 해 드리네요. 아주머니는 가셔도 괜찮아요. 좀 있으면 괜찮아질 거예요.”
  “무슨 소리예요. 나 때문에 그리 됐는데, 지금 나랑 같이 가요. 어디 아는 한의원 없어요? 다행히 왼발이니 운전은 할 수 있겠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순식간에 복사뼈가 탁구공 만하게 부풀러 올랐다. 뼈에 금이 갔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한사코 마다하는 그녀를 이끌고 가까운 한의원엘 갔다. 첫 침을 꽂자마자 미스 장이 자지러지는 비명을 질렀다. 갑자기 가슴이 조여들어 온몸이 움칠움칠했다.  
  ‘저렇게 비명을 지를 성격이 아닌데.’
  뾰족한 침 끝이 뼛속을 후비며 파고드는 모양이다. 한의사는 지극히 태연자약한 표정으로 여러 대의 침을 복사뼈에다 계속 꽂았다. 이를 악물고 소리를 삼키는 그녀의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나는 얼른 미스 장의 손을 붙들었다. 그녀는 전신의 힘을 손에다 쏟아부으며 내 손을 움켜쥐었다. 큰아들을 낳을 때 침대 한 끝을 부여잡고 “엄마, 엄마.” 하고 부르며 눈물을 흘리던 때가 생각났다. 갑자기 그녀의 어머니가 된 기분이었다. 드디어 한의사가 아주 느리게 한마디를 했다.
  “잘 참네요. 이제 다 됐어요. 침 맞을 때 제일 아픈 곳이 바로 복사뼙니다.”
   뼈에는 아무 이상이 없어 천만다행이었다. 다음 날부터 거의 매일 그녀의 집을 들랑거렸다. 미스 장이 한사코 마다했으나 나는 설거지도 해주고 청소도 해주었다. 청소래야 쓰레기 버리는 것과 거실의 먼지를 닦아주는 정도였다. 그러다가 나는 문득 며느리 생각이 났다.
  ‘손 하나 까딱 안 하는 시어미가 며느리의 눈에 어떻게 비쳐졌을까?’
  방도 치워주고 싶었으나 방문은 언제나 닫혀 있었다. 뜨거운 수건 찜질이 그녀에게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아 사는 보람까지 느껴졌다. 미스 장이 빨리 낫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매일 그녀의 집에 올 수 있는 명분이 있다는 것이 발걸음을 가볍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은 그냥 저쪽 방에서 자고 싶었다. 방이 두 개이니 방세라도 조금 내고 미스 장 집에서 사는 것이 아들네에 있는 것보다는 마음이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그러나 마음뿐이었다.  
  “아주머니께서 너무 잘해주시니까 도리어 제가 미안해요. 또 자꾸 일을 하시니까 제가 불편해요. 그냥 놀러 오셔서 저하고 친구해 주시면 돼요. 아주머니가 이렇게 자주 오시니까 저도 참 좋아요. 침 맞으러 갈 때도 혼자 가는 것보다 같이 다니니까 더 좋고요.”
  빈말 같지는 않았다. 발목이 다 나은 다음에도 나는 그녀를 도와주고 싶었으나 그녀는 내게 손도 까딱 못하게 했다. 이상할 정도였다. 점심을 먹은 후, 식탁을 훔치려고 해도 기겁을 하고 말렸다. 그러나 나는 내 마음을 좀 편하게 해달라고 사정을 하며 일손을 놓지 않았다.    
  그 후, 우리는 급속도로 친해졌다. 전화를 할 때마다 그녀는 항상  나를 반겨주었다. 그리고 늘 이렇게 말했다.
  “괜찮아요. 오늘은 한가해요. 지금 놀러 오세요.”  
  부동산 중개인치고는 자유 시간이 많은 편이었다. 만나는 횟수가 늘어감에 따라 그녀는 자기 어머니 얘기를 가끔 했다. 젊을 때, 혼자되어 재혼도 안 하고 딸 하나만을 키우면서 고생을 많이 해 어머니 생각만 하면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자기가 어머니 속을 많이 썩였다는 말도 비쳤다.
  “내가 보기엔 미스 장, 어머니한테 무척 효녀였을 것 같은데 이해가 안 되네.”
  “어머니 돌아가신 후에야 정신이 든 거죠. 정말 제가 너무 철이 없었어요.”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는 4년쯤 됐는데 얼마 전에 이장을 했다고 한다. 젊은 애가 보통 정성이 아니었다. 돌아가신 다음에야 뼈저리게 후회되는 일이 많은 모양이었다. 그러나 자세한 내막은 얘기를 하지 않았다.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을 해서 그런지 미스 장은 내게 정말 잘해 주었다. 어떤 땐 미안할 정도였다. 생전 처음 가보는 고급 식당엘 가서 비싼 스테이크를 사주기도 했다.    
  “늙은 사람 만나서 친구해 주는 것도 고마운데 이렇게 돈까지 쓰면 내가 미안해서 안 돼요.”
  “아녜요. 괜찮아요. 저도 한 번쯤은 갚아야죠. 더구나 지난번 아플 때 아주머니께서 제게 너무 잘해주셨잖아요.”
  그녀 집에 갈 때마다 늘 점심을 얻어먹게 되어 간단한 선물을 사가지고 갔더니 그걸 또 고맙게 여기고 있는 것이었다. 나 때문에 다쳤는데도 거꾸로 고맙다고 그러니 그녀의 착한 심성에 감탄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둘째 며느릿감으로 점점 내 맘 속 깊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그 동안에 지켜보아도 남자가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한 번은 애인이 있느냐고 물어보았더니 없다고 잘라 말했다.
  ‘아휴, 다행이군.’
  “미스 장 같은 미인이 남자가 없다니까 이상하네요.”
  “아이, 아주머니도····. 제가 무슨 미인이에요? 저 미인 아니에요.”
  “미스 장은 너무 겸손해서 탈이야. 길을 막고 물어봐요. 다 미인이라고 그럴 테니.”
  앞에 대놓고는 멋쩍어서 남의 칭찬을 잘 못하는 성격인데도 미스 장한테는 마음에 있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아주머니가 예쁘게 봐주셔서 그렇죠. 나이가 너무 많아 마땅한 사람도 없지만 전 이렇게 혼자 사는 게 편하고 좋아요.”
  그리고 미스 장은 서른여섯이라고 나이를 밝혔다. 아들보다 두 살이 많았다. 사실, 나이 좀 많은 것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아들에게 이혼 경험이 있기에 더 그렇다. 보면 볼수록 그녀가 맘에 들었다. 둘째 며느릿감으로 마음을 굳힌 나는 추석날 미스 장이랑 같이 성묘를 가야지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뜻밖에도 며느리가 물었다.
  “어머니, 추석날 성묘 갈 때 애들도 다 데리고 가야 되겠어요. 작년에 애들 안 데리고 간 게 마음에 걸려요.”
  며느리 입에서 성묘 가자는 말이 먼저 나온 것이 나는 놀라웠다. 으레 생각조차 못할 줄 알고 나는 미스 장만 맘에 두고 있었다. 반갑고 고마웠다.
  “애들도 같이 가면 좋지. 그럼 큰애가 학교 갔다 와야 하니까 오후에 가야 되겠네.”
  미스 장과의 시간 약속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한데, 미스 장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감기가 들었다고 하면서 성묘를 못 간다고 했다. 어머니를 그토록 생각하면서 그까짓 감기 때문에 성묘를 못 간다고 해 좀 의아한 맘이 들었다. 며느릿감으로 점을 찍어 놓았으니 이제 슬슬 가족을 만나도 될 것 같은 계산 아래 나는 식구가 다 간다는 말도 했다.
  “애들한테 감기 옮기면 어떡해요?”
  그러면서 기침을 콜록콜록했다. 꼭 같이 가고 싶었으나 할 수 없었다.
  “그럼, 다음에 산소 갈 때 나랑 같이 가요.”
  그 후, 산소 가자는 말이 없어 내가 먼저 물어보았더니 그녀는 혼자 다녀왔다고 했다. 서운한 생각이 들었으나 나는 별 내색 않고 흘려버렸다. 사람은 혼자서 실컷 울고 싶은 때가 있는 법이니 그녀도 그랬을 것 같아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를 부르며 통곡하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떠올라 콧잔등이 시큰했다.
  
  하루는 벼르던 둘째 아들 얘기를 끄집어내고 우선 나이와 이혼한 경험이 있다는 것을 밝혔다. 그리고 그녀의 집을 방문할 때마다 과일 같은 것을 사 가지고 가서 가끔씩은 작은아들이 용돈을 보내왔다는 말을 비치곤 했다. 또 아들한테 미스 장 얘기를 했더니 엄마한테 잘해주어 고마워한다는 말도 했다.
  “제가 뭘 잘해주긴요. 아주머니가 제게 잘해주시죠.”
  고급 핸드백도 선물했다. 아들 문제를 떠나서도 미스 장한테는 뭐든지 해주고 싶은 생각이 저절로 우러났기 때문이다. 핸드백을 보고 깜짝 놀라며 미스 장은 이렇게 좋은 것은 받을 수 없다고 강력히 사양했다.
  “이건 내가 돈 주고 산 게 아니고 옛날에 남편이 외국 출장 가서 사 온 거예요.”
  “그러니까 제가 더 받을 수가 없죠. 이렇게 귀한 건 아주머니께서 오래오래 간직하셔야죠.”
  “이거 말고도 더 있으니까 괜찮아요. 나야 이제 이런 백 들고 갈 데도 없어요.”
  50을 갓 넘겼을 당시, 남편은 출장이 잦았다. 마누라한테 선물이라고는 할 줄 모르던 사람이 웬일인지 출장 다녀올 때마다 선물을 사왔다. 바바리코트도 하나 사왔으며 주로 핸드백을 사왔다. 핸드백은 1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새 것 같다. 반짝반짝하게 윤기가 흐르는 것도 여전하고, 노란 장식도 조금도 변질이 되지 않아 아직도 진짜 금처럼 반짝인다. 디자인도 유행을 타지 않고 언제든지 들 수 있는 그런 모양이다. 사실 나보다는 며느리에게 더 잘 어울려 며느리가 시집오자마자 서너 개는 준 것 같다. 한 번은 조카며느리가 예쁘다고 탄성을 질러 들고 있던 것을 준 적도 있다.
  “왜 마음에 안 들어요? 쓰던 거라서?”
  “아녜요. 제 마음에 꼭 들어요. 너무 비싼 거라서 그러죠.”
  그녀는 핸드백을 만지작거리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지만 내 마음은 기뻤다. 그녀가 내게 베푸는 것에 비하면 핸드백 같은 것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녀는 내게 삶의 활력소를 불어넣어 주었다. 지극히 말을 아끼던 그녀가 말을 많이 하면서 나를 웃기기도 했다. 유머가 아주 풍부했다. 참으로 오랜만에 깔깔대고 웃었다. 부모에게서도 남편에게서도 자식에게서도 받아보지 못한 훈훈한 정을 그녀로부터 느꼈다. 피도 살도 섞이지 않은 그것도 우연히 만난 생면부지의 여자한테 나는 달음박질을 치며 달려갔다. 그녀로부터 쏟아져 나오는 사랑의 빛 때문이다. 시들시들했던 세상이 파릇파릇하게 내 눈에 비쳐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나와 점차 친해지면서 조금씩 조언도 해주었다.
  “이런 거, 저한테 안 해줘도 괜찮아요. 아주머니가 먼저 며느리한테 베풀어 보세요. 백화점에 데리고 가서 옷도 사주시고 또 애들 장난감도 사 주고 그러세요. 이따가 집에 가실 때는 애들 먹을 거라도 사 가지고 들어가세요. 마음이 안 내키시더라도 그냥 눈 딱 감고 그래도 내 자식인데 생각하시고 노력을 하시면 그쪽에서도 마음이 돌아설지도 모르잖아요? 죄송해요. 주제넘게 이런 말씀을 드려서.”
  “아니에요. 미스 장 말이 맞아요.”
  정말 그랬다. 다 맞는 말이었다. 그러고 보니 며느리나 손자 녀석들을 위해 잘한 것이 하나도 없다. 잘하기는커녕 도대체 한 것이 없다. 혼자 나가 이것저것 사 먹고 다니면서도 애들 먹으라고 과자 한 봉지 사 들고 온 적이 없다. 미스 장은 일일이 합당한 말만 했다. 그리고 나는 그녀가 얘길 할 때마다 무릎을 치며 그대로 따라야겠다고 생각했다. 시들시들하던 세상이 파릇파릇하게 변하고 이제는 녹음이 우거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한 번은 “우리 집에 오실 때 애들 데리고 와도 괜찮아요. 저, 애들 참 좋아해요.”  하고 생각지도 못한 말을 했다. 금세 좋은 일이라고 느껴졌다. 애들을 봐주면 그만큼 며느리가 힘을 덜게 될 것이다.
  ‘막내를 한 번 데리고 나와 볼까?’
  위 두 놈한테 치어서 그런지 막내가 좀 순한 편이다. 그리고 나를 제일 따른다.
  ‘그러나 며느리가 허락을 할까?’

  그 며칠 후, 나는 며느리에게 미스 장 이야기를 하고 막내를 데리고 가도 되겠느냐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한데, 며느리가 선뜻 허락을 하며 자기가 데려다주겠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서 어머니 애 안 좋아하시는데 힘드시면 어떡하느냐고 도리어 반문을 했다. 얼굴이 화끈했다. 지 새끼 미워하는 시어미가 어찌 좋을 리 있겠는가?
  막내 놈과 둘째가 거실에서 빙빙 돌다가 마룻바닥에 앉아 있던 나를 향해 엎어진 적이 있었다. 아이들을 받아 안아줘야 마땅한 할미가 그만 무의식적으로 몸을 피해버렸다. 둘째는 바닥에 꽈다당 넘어졌고 막내는 내 오른팔에 머리를 박고 발라당 드러누웠다. 부엌에 있던 며느리가 놀라서 뛰어와서는 “앙” 하고 울음을 터뜨린 둘째는 제쳐놓고 내 오른팔에 안겨 있다시피 한 막내를 얼른 떼놓았다. 그리고 내 눈치를 살피며 괜찮으시냐고 물었다.
  사랑이라고는 한줌도 지니지 못한 할미였고 시어미였다. 아이 셋 데리고 쩔쩔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나 몰라라 하고 맨날 나가 돌아다니기만 했으니 그게 무슨 시어미인가? 남들은 며느리 직장에 내보내고 애 키워주며 살림까지 해준다고들 하는데 나는 그런 생각을 꿈에도 해본 적이 없다. 손자 놈들이 법석을 떨며 시끄럽게 굴 때는 젊은 애가 연년생으로 아들 셋 줄줄이 낳은 것조차도 마음에 안 들었다. 어려운 공부하고도 써먹지 못하고 집구석에 처박혀 애들 치다꺼리하느라 정신없는 며느리가 한심하기도 하고 눈에 거슬리기까지 했다. 며느리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대우만 받으려고 했던 것이다.
  그렇게 시작이 되어 나는 항상 막내를 데리고 다녔다. 막내는 버스 타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나 역시 심심치 않아 좋았다. 녀석도 미스 장을 ‘장 아줌마’라고 부르며 잘 따랐고 그녀 역시 막내를 아주 예뻐했다. 피 한 방울 안 섞인 미스 장도 금세 정을 주는데 나는 내 친손지들을 귀찮아했었다.

   어느 날, 둘째 놈 방이 하도 어질어져 있어 치워주다가 조립해 놓은 성냥갑만한 장난감 차를 망가뜨린 적이 있었다. 녀석이 그냥 발을 뻗대고 앙앙 울면서 할머니 나가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것이 아닌가?
  “할머니 나가. 여긴 우리 집이야. 나가. 나가. 할머니 나가.”
  나는 너무 기가 차서 멍하니 서 있었다. 눈물이 났다. 며느리는 두 눈을 착 내리깔고 차는 다시 조립하면 되니 울지 말라고 아주 차분하게 아이를 타일렀다. 그리고 내게 말했다.
  “괜히 애들 방에 들락거리지 마시고 어머닌 그냥 어머니 방에 가만히 계세요.”
  방구석에 콕 처박혀 나오지 말라는 뜻이다. 눈앞에 보이는 것조차도 싫다는 말이다. 아이를 때려주며 할머니한테 그게 무슨 소리냐고 호통을 쳐도 시원치 않을 판에, 정말 너무 슬퍼 가슴이 저렸다.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슬픔을 어금니로 꽉 물었다. 지어미가 할미를 괄시하니까 애들도 그대로 보고 배우는 것이다. 방으로 들어와 안 될 소리지만 악담을 했다.
  ‘두고 봐라. 너도 이 담에 당해 봐라. 자식을 그 따위로 키우면 너도 그대로 당한다. 너도 훗날 너 같은 며느리한테 당해 봐야 내 맘 알 거다.’
  그 후부터 더 바늘방석에 앉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다··· 더 미웠다. 그런데 미스 장을 알고부터는 굳게 닫혔던 마음의 문이 차츰차츰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철없는 아이니 그럴 수도 있겠지 하고 이해가 되었다. 내가 밉게 구니 며느리도 나를 미워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생각해보니 부끄러운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언젠가는 먹다 남은 순대를 갖고 들어와선 이불을 뒤집어쓰고 먹은 적이 있다. 다들 자는 시간인데도 문이 잘 닫혔나 확인을 하고 그것도 모자라 이불을 뒤집어쓰고 먹었다. 두어 개 먹고 나니 더 이상 목에 넘어가지가 않아 변기에다 쏟아 넣고 쏴 하는 물소리와 함께 씻겨 내려가는 시꺼먼 밥찌꺼기를 지켜보았다. 그리고 나선 도둑이 제발 재려 혹시 변기가 막히면 어쩌나 하고 며칠을 끙끙 속을 앓았다. 그 다음부터 순대만 보면 구역질이 나는 증세가 생겼다.  

  미스 장 말대로 막내 놈도 자주 안아주고 애들 손잡고 집 근처 맥도날드에 가서 햄버거랑 아이스크림도 사 먹었다. 또 며느리가 좋아하는 과일도 한아름 사 가지고 들어왔다. 예전에는 냉장고에 들어 있는 과일 한 알에도 손을 댈 수가 없었는데 이제는 마구 꺼내 먹어도 마음이 편했다.
  왜 그랬을까? 먹을 것이 흔한 미국에서 나는 먹는 것으로 인해 서러울 때가 많았다.
  아들은 오징어 튀김을 좋아했다. 가끔 보면 부엌 한쪽 구석에 마른 오징어를 물에 불려놓을 때가 있었다. 그리고 저녁을 먹은 다음, 밤에 오징어를 튀겨서 먹었다. 어떤 때는 거의 밤마다 냄새를 풍겼다. 그러나 아들 며느리는 어머니가 한지붕 아래에 살고 있다는 것을 완전히 무시한 채 그들만의 삶을 살고 있었다. 밤에 먹는 튀김이 건강에 나쁠 것이라는 염려보다 앞서 나는 그들로부터 외면당하는 것이 더 서러웠다.
  ‘그래서 더 나가 다니며 군것질을 했던가?’
  잔디에 물도 주고 부엌일도 거들어주고 하니까 소일거리가 생겨서 좋았다. 며느리 생일에는 예쁜 카드에다 금일봉을 두둑이 넣어주었다. 둘째 아들이 보내주는 용돈을 참말로 요긴하게 쓰고 있는 것 같아 나 자신이 행복했다. 길을 가다가도 괜히 눈물이 나서 남이 볼까 봐 부끄러웠었는데 이제는 그 눈물도 없어졌다. 집 안에서도 며느리와 정면으로 마주쳤을 때는 가슴이 철렁철렁 내려앉곤 했는데 그 증세도 없어졌다.
  온종일 가도 말 한마디 안하던 며느리가 슬슬 말문을 열었다. 며느리가 한 반찬도 맛있다고 칭찬을 했다. 이것저것 따져보니 며느리에게는 장점이 많았다. 남편 떠받들어, 애들 잘 키워, 살림 잘해, 제일 중요한 것은 다 잘하는 것이다. 또 부부금실이 좋아 시어미가 샘이 날 정도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미스 장 말대로 지네들 잘 사는 것이 가장 큰 효도인 것이다.

  미스 장을 완전히 며느릿감으로 찍어놓았을 즈음 운 좋게도 나는 그녀와 함께 여행을 하게 되었다. 신문을 펼칠 때마다 도배를 해 놓은 여행사 광고가 늘 그림의 떡처럼 느껴져 아쉬운 마음이었는데, 미스 장이 내 맘을 풀어준 것이다. 물론 내가 먼저 제안을 했었다. 지나가는 말로 흘렸는데 눈치 빠른 그녀가 얼른 허락을 한 것이었다.
  끝까지 마다하는 것을 나는 그녀의 비용을 부담해 주었다. 그리고는 마침 둘째 아들이 용돈을 보내왔다는 얘기를 슬쩍 비쳤다. 분위기 봐서 정식으로 얘기를 하려고 둘째 사진 중에서 제일 잘된 것으로 한 장 골라 가방 속에 단단히 잘 넣었다.    
  “자연의 위대함을 보면 인간은 참으로 하루살이에 불과하다는 것을 느끼게 돼요. 남에게 상처를 줘가면서까지 자기 욕심만 부리고 사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는 허다하잖아요. 지나고 보면 다 헛것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겠지요?”  
  이제 겨우 서른 중반에 불과한 미스 장이 그랜드 캐니언을 내려다보며 철학자라도 된 듯이 심각하게 말했다. 바람에 머리를 흩날리며 우수에 잠긴 표정으로 서 있는 모습이 금세 눈물이라도 주르르 쏟아낼 것 같았다. 자신도 그 중의 하나였다고 인정하는 눈빛이었다.
  ‘무슨 슬픈 사연이 있는 것일까?’
  “어머니 생각이 나서 그래요?”
  “네?”
  미스 장은 반문했다. 그러더니 금세 “아아, 네에····.” 하고는 말을 이었다.
  “평생을 나 하나만 바라보고 나 잘 되기만을 바라고 사셨는데 저는 정말로 못된 딸이었어요. 어머니가 지겹고 싫을 때가 많았거든요. 나중에 어머니가 많이 편찮으셨을 당시는 그냥 돌아가시기만을 바랐어요.”
  잠시 말을 끊더니 미스 장은 다시 밝은 얼굴로 탄성을 질렀다.
  “정말 자연의 힘은 정말 위대해요. 저기 저것 좀 보세요. 아휴, 손으로 빚어도 저렇게 멋있게 만들지는 못할 거예요.”
  그날 밤, 밤이 깊었는데도 잠이 안와 나는 두 눈을 말똥말똥 뜨고 있었다. 살며시 일어나 화장실을 향했다. 여행 중이라 그런지 대변을 잘 못 봐, 그냥 한참 동안 앉아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미스 장이 화장실 문 앞에서 나를 불렀다.
  “너무 오래 안 나오시기에. 괜찮으세요?”
  나에게 신경을 써 주는 그녀의 심성이 고마웠다. 침대에 누웠지만 잠은 쉬이 들지 않았다. 그녀도 잠이 안 오는지 뒤척거렸다. 머리맡에 놓인 등불을 켰다. 은은한 불빛이 눈물처럼 방안에 차올랐다.
  “미스 장도 잠이 안 오는 모양이네.”
  그녀가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네. 저도 잠이 안 와요.”
  “무슨 생각했어요? 어머니 생각?”
  “네. 아주머니는요?”
  “죽은 남편 생각이 나네요. 남편이랑 여행을 가본 적이 한 번도 없거든요.”
  갑자기 내가 왜 남편 얘기를 끄집어냈는지 모를 일이다. 여행을 하면서 즐겁기만 했지 남편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 다음에 이어지는 말도 남편 얘기였다.  
  “나는 부부의 정이 뭔지도 모르고 살았다오. 부모 덕 없는 년이 남편 복도 없다 그러더니 옛말이 틀린 게 하나도 없더라고요. 아들 둘을 낳기는 했으나 우리 영감은 나한테는 통 관심이 없는 남자였어요. 마작을 좋아해서 주말이면 으레 외박을 일삼고 날이면 날마다 회사일이 바쁘다며 한밤중에 들어오고, 남편 구경하기도 어려웠어요.”
  며느리 얘기가 나오면 주거니 받거니 얘기가 잘 이어졌는데 남편 얘기를 하니 미스 장으로부터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50대 초반부터 남편과는 각방을 썼다. 내가 먼저 베개를 들고 건넛방으로 와버렸다.  곤히 잠든 그의 숨소리가 내 온몸을 파고들며 살 속을 콕콕 찔러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남편은 옛날부터 여자들을 소 닭 보듯이 했다.
  “이 상무님은 돌부처예요 돌부처. 술자리에서 기생들이 아양을 떨어도 눈 하나 깜짝 안 합니다. 이 사진 좀 보세요. 지난번 연회에서 스냅으로 막 찍은 겁니다.”
  집에서 마작판을 벌이다가 사진을 여러 장 내놓으며 비서실장이 한 말이다. 정말 그랬다. 다른 남자들은 기생들을 끼고 앉아 볼을 비비는 장면이 다 잡혔는데 남편만 진짜 돌부처모양 부동자세였다.    
  각방을 쓰고 보니 그렇게 편하고 홀가분할 수가 없었다. 말 못하던 자존심의 상처도 말짱히 가셨다. 남편 역시 원했던 일이었을 것이다. 그의 자존심도 치유가 됐을 테니까.      
  결혼도 안 한 처녀한테 괜한 주책을 부린 것 같아 무안한 생각이 들어 나는 얼른 화제를 바꾸었다.
  “미스 장은 어머니랑 같이 여행한 적 있어요?”
  “없어요. 어렸을 때부터 저는 못된 애였어요. 고등학교 다닐 적엔 왜 그렇게 공부가 하기 싫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알 수가 없어요. 어머니는 아무 대학이라도 대학 졸업장은 따야 한다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강조를 하셨지만 저는 그까짓 대학은 가서 뭐하느냐고 반항만 했어요.”
  잠깐 얘기를 끊어 나는 얘길 그만하려나 하는 생각이 들어 아쉬웠는데 다행히 얘기는 곧 이어졌다.
  “내 주위의 친구들도 다 그런 애들이었어요.”
  그러더니 또 금세 말을 잇지 않았다. 나는 얘기가 더 듣고 싶었다.
  “그래서 미스 장이 나쁜 데로 빠졌나요?”
  그녀가 놀란 듯이 아니라고 변명을 했다. 그리고는 차분하게 얘기를 계속했다.
  “친구 중에 부잣집 딸이 하나 있었어요. 저는 편모슬하에서 너무 가난하게 살아 빗나갔다고 핑계를 댈 수도 있지만 그 애는 아버지가 회사 사장이고 오빠도 수재만 모이는 일류대학에 다니는 집안의 딸이었어요. 오빠는 굉장히 미남이었는데 걔는 얼굴도 안 예쁘고 공부도 못 했어요. 걔가 항상 그랬어요. 오빠랑 비교당하는 것이 죽을 만큼 싫다고요. 공부로만 사람을 평가하는 집안 분위기 때문에 자기는 사람 취급도 못 받는다고 했어요. 친척들도 항상 오빠만 칭찬을 해, 걔한테는 그게 다 상처로 남았었나 봐요. 그 애 엄마는 나 때문에 친구가 나쁜 데로 빠졌다고 니를 만나지도 못하게 했어요. 그런데 그 중에서도 가장 슬픈 일은 제가 그 애 오빠를 좋아하게 된 거였어요.”
  그녀 역시 독백처럼 천장을 향해 자신의 과거를 풀어내고 있었다. 며느릿감으로서의 점수가 점점 깎여가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도 나는 그녀가 측은했다.
  어머니의 눈물어린 정성도 작용을 했었겠지만 그보다 더 친구 오빠에게 잘 보이고 싶어 미스 장은 겨우 대학 문턱을 넘긴 했었다. 미스 장은 “오빠. 오빠.” 하면서 그를 무척 따랐고 그 역시 그녀를 좋아했다. 그러나 친구 어머니는 멸시의 눈으로 미스 장을 버러지 보듯 했다. 내세울 것 없고 가난하다는 것이 죄는 아니다. 그런데도 친구 어머니는 그녀를 죄인으로 취급하며 친구가 빗나간 것까지 책임을 물으며 자신의 아들까지 망치려 하느냐고 미스 장을 몰아세웠다.
  결국, 오빠는 다른 여자와 함께 미국 유학을 떠나버렸다. 대학 2학년 때였다. 어머니마저 지병인 심장병이 도져 드러누워 계셨다. 미스 장은 다시금 빗나가기 시작했다. 너무나 철이 없었다. 물론 학교도 자퇴를 해버렸다.
  “너무 억울하고 분했어요. 세상이 원망스러웠어요. 그래서 저도 보란 듯이 돈을 벌어 막 쓰고 살고 싶었어요.”
  목청이 높아지며 흥분에 들떠 있다가 잠깐 얘기를 중단하고 그녀는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냉장고 문을 열어 생수를 꺼내더니 한참 동안이나 벌컥벌컥 들이켠 후 내게 물을 권하고는 한쪽 구석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나도 그녀와 마주앉았다.
  “그래서 돈을 벌어서 막 쓰고 살았어요?”
  나는 컵을 받아들고 물 두어 모금으로 목을 축이면서 지나가는 말로 물었다. 그런데 그녀의 반응이 뜻밖이었다. 한참 회상에 젖어 줄거리를 술술 풀어내던 그녀가 나의 질문에 후닥닥 놀랐기 때문이다.
  “네에--?”
  나는 의아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아뇨, 그냥 취직했었어요.”
  조금 전과는 달리 목소리가 기어들어가고 있었다. 표정도 거의 울상이었다. 순간적으로 혹시 술집이나 요정 같은 곳에 들어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언뜻 들었다. 직업 마담들이 여대생들을 상대로 집요하게 미끼를 던진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인물로 보나 나긋나긋한 몸매로 보나 그들의 눈에 금세 띄었을 수 있는 미스 장이다.
  “그럼 그 친구 오빠는 지금 미국에 살아요?”
 한동안은 생각만 해도 가슴이 저렸다. 그리움이 아픔이 되어 뼛속까지 후비며 파고들었다. 그러나 세월이란 참으로 좋은 약이었다. 미스 장은 물 속같이 차분한 얼굴로 말했다.
  “모르겠어요. 아주 옛날에 다 잊었거든요.”
  “그럼 둘이서 깊이 사랑한 게 아니었어요?”
  “그때는 뭐가 뭔지 몰랐는데 지나고 보니 제가 그 사람을 참 많이 사랑했던 것 같아요.”
  암만해도 이번 여행 중에는 둘째와의 결혼 얘기는 안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친구한테 연락해서 만나면 될 텐데····.”
  “친구하고도 연락 두절된 지 오래됐어요. 그 친구도 저를 피하더라고요. 나중에는 저하고 너무 차이가 나버렸거든요. 결국 친구는 마음을 잡아 대학도 졸업하고 결혼도 잘 했어요.”
  “그런데 미스 장은 왜 아직 결혼을 안 했어요?”
  한참 질문을 하다 보니 왠지 쑥스러워졌다. 며느릿감으로의 점수를 다시 매개기 위해 저울질하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점수가 아무리 깎인다 하더라도 미리 따놓은 점수가 워낙 높아 흔들릴 염려는 없다.
  그렇지만 둘째 얘기는 다음으로 미루기로 작정을 했다.
  “제게는 남자 운도 없고 결혼 운도 없나 봐요. 그 후로 어머니 병이 악화되어 많이 편찮으셨거든요. 어머니 약값 대고 그렁저렁 살다보니 몇 년이 후딱 지나버리더라고요. 제가 늦게까지 결혼을 못한 것도 다 어머니 탓 같고, 어머니가 제 앞길을 다 막아버린 것 같아 어머니가 원망스러웠어요. 어머니 말 거역하고 제 멋대로 살아놓고 결국은 그 책임을 어머니한테 돌렸으니 정말 저는 죄인이에요.”
  목소리가 울먹거렸다.
  “어머니는 눈도 못 감으시고 숨을 거두셨어요. 서른이 넘도록 결혼도 못 하고 있는 딸이 목에 걸린 가시처럼 생각되고, 또 이 넓은 세상에 저 하나만 달랑 남겨놓고 떠나려니 차마 발걸음이 안 떨어졌었나 봐요.”
  그녀는 내가 생각하고 있는 미스 장이 아닌 완전히 딴 사람으로 탈바꿈을 하고 있었다.
  “아니, 이렇게 착한 미스 장이 나쁜 딸이었다니 도저히 이해가 안 되네.”
  “착하긴요. 저 착한 사람 아녜요. 죄 많이 지었어요.”
  젖은 목소리와 더불어 그녀의 눈에 물기가 어렸다.
  “너무 죄책감 갖지 말아요. 부모님한테 암만 잘했어도 돌아가시고 나면 후회만 남는 법이에요. 자꾸 잘못한 일만 생각나는 법이거든····.”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돌아가신 어머니를 미국에 이장까지 한 정성을 보더라도 미스 장은 효녀예요. 효녀.”
  “저 효녀 아니에요. 돌아가신 다음에야 어디에 묻히든 그게 무슨 상관이 있겠어요? 땅 속에서 흙으로 돌아가는 건 똑 같은데 뭐 다를 게 있겠어요?”
  훌쩍거리던 그녀가 고개를 묻고 흐느껴 울었다.

  날이 갈수록 미스 장에게 빠져들어 어떻게 해서라도 꼭 둘째 며느리로 삼고 싶었다. 여행 중에 잠깐이라도 실망을 한 내가 이상했다. 서른여섯이나 되는 여자한테 그만한 과거도 없다면 그게 도리어 비정상이다. 둘째는 결혼을 한 경력이 있으니 그까짓 과거쯤이야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둘째한테는 이미 뜸을 들여놓은 상태라 휴가 맡아서 다음 달에 오게 돼 있다.
  날씬하고 얼굴이 예뻐야 한다는 것을 결혼 조건의 우선순위에 올려놓는 둘째이다. 거기다가 똑똑하고 마음씨도 고우니 아들이 홀딱 반할 것이 분명하다. 신이 났다. 둘째는 늘 그랬다. 첫 번 결혼은 실패했으나 재혼을 하면 어머니는 자기가 모실 테니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했다. 미스 장이라면 정말 딸같이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밖에는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바람도 제법 불었다. 단단히 채비를 하고 우산을 들고 나서는데 며느리가 따라나오며 물었다.
  “날씨도 안 좋은데 어딜 가시려고 하세요?”  
  언젠가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날이 생각나면서 며느리의 한마디가 고마움으로 가슴에 닿았다. 금세 다녀올 데가 있다고 말을 하고는 바삐 나가는데 며느리가 내 뒤통수에다 대고 큰 소리로 말했다.
  “어머니, 제가 모셔다 드릴까요?”
  괜찮다고 손을 저으며 뒤를 돌아다보니 며느리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서 있었다. 이제는 버스 타는 선수가 되었기에 날씨가 어떻든 간에 내게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마침 버스도 금세 와 한걸음에 달려갔더니 그녀가 막 문을 나서려는 참이었다. 조금만 늦었더라도 허탕을 칠 뻔했다. 마음이 급해 전화를 않고 온 것이 불찰이었다.

  “요 앞에서 잠깐 누굴 만나기로 했어요. 이것만 전해주면 돼요.”
  미스 장은 바쁘지 않으시면 집에서 기다리라고 하면서 도로 들어가 손에 집히는 대로 비디오테이프를 하나 꺼내서 넣어주고 황급히 나갔다.  
  시간이 남아돌아가 주체할 수 없는 처지이니 나야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는 몸이다. 아니, 오늘은 꼭 기다려야 한다. 10분쯤 지났을까? 일이 30분 정도 지연되니 좀 더 기다려달라는 전화가 왔다. 비디오는 계속 돌아가고 있었다. 사제지간이 연애하는 판에 박은 줄거리이라 별 흥미가 없었다.
  갑자기 안방에 들어가 보고 싶은 출동을 느꼈다. 곧 며느리가 될 테니 자는 방도 들여다보고 싶었다. 손잡이를 살며시 돌리니 문이 열렸다.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아주 심플한 연한 밤색의 헤드보드를 머리에 이고 벽 한쪽에 작은 침대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같은 디자인의 화장대가 침대 발치에 놓여 있었다. 그 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썰렁한 분위기였다. 잠깐 망설이다가 용기를 내어 옷장 문을 열었다. 방 분위기에 비해 옷장은 화사했다. 밝은 빛깔의 옷은 별로 입지 않는 미스 장인데 화려한 옷들이 많았다. 다들 고급스러워 보였다.
  위 선반에는 핸드백들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첫눈에 무지하게 많다고 느껴져 세어 보았더니 무려 열네 개나 되었다. 그런데 내가 준 핸드백 바로 옆에 신기하게도 장식이랑 손잡이도 똑같은 핸드백 하나가 놓여 있었다. 까만색으로 색깔만 달랐다. 하도 신기해서 꺼내서 비교를 해보고는 얼른 올려놓았다. 다른 핸드백들도 내 것과 비슷했다.
  구두도 무지하게 많았다. 신발장 안에 있어야 할 구두들이 옷장 안에 있어 이상했다. 핸드백이 놓여 있는 선반 바로 아래에 선반이 또 하나 있었고, 그 위에 구두들이 즐비하게 놓여 있었다. 모양이나 색깔이 핸드백과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옷과 마찬가지로 다 고급품들이었다. 가난하게 살았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그녀의 과거가 베일에 감춰져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또다시 들었다.
  오른쪽으로는 서랍장이 자리 잡고 있었다. 서랍을 위에서부터 차례차례로 열어보았다. 스타킹이니 양말, 그리고 팬티들이 차곡차곡 개켜져 있었고 서랍 세 개는 텅 비어 있었다. 얼른 옷장 문을 닫고 화장대 서랍에 손을 댔다. 텅 빈 서랍 속에 뜻밖에도 사친첩이 한 권 들어 있었다. 바짝 호기심이 동했다.
  사진첩을 펼쳤다. 어머니인 듯한 아주 미인인 여자의 얼굴이 맨 첫 장에서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친구들이랑 찍은 미스 장의 교복 입은 사진을 대충 보고는 빠르게 사진첩을 넘기니, 중간쯤에는 대학생 차림의 미스 장이 지금과 똑같은 얼굴을 하고 여기저기에서 우수에 젖은 표정으로 매력을 풍겼다.
  혹시 친구 오빠라는 사람의 사진이 있나 하고 눈여겨보았으나 남자 사진은 어디에도 없었다. 몇 장을 넘기도록 남자 사진이라고는 한 장도 없었다. 이상할 정도였다. 아버지 사진도 눈에 뜨이지 않았다. 아버지 사진은 꼭 있으리라 생각하고 계속 장수를 넘겼다. 중간 정도쯤이었다.
  드디어 남자 사진이 등장했는데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눈앞에 뿌예지며 남자의 얼굴이 작아졌다 커져다 하면서 빙빙 돌았다. 밑바닥이 보이지 않는 낭떠러지 아래로 굴러떨어지는 것같이 정신이 혼미해졌다. 나는 고개를 한 번 세차게 흔든 다음, 눈을 질근 감았다가 떴다. 그리고 숨을 한 번 훅 내쉬고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시선을 집중시켰다. 이십대의 미스 장이 아버지뻘로 보이는 어떤 남자의 팔짱을 끼고 찍은 사진이었다. 그 남자에게로 몸을 기대다시피 바짝 붙이고 그녀는 활짝 웃고 있었다. 은은한 미소를 얼굴 전면에 띄고 있는 남자의 표정에는 행복감이 충만해 있었다. 그러나 그 남자가 그녀의 아버지는 아니었다. 나는 내가 잘못 봤나 하고 눈을 닦고 또 닦으며 몇 번이고 다시 보아도 그 남자는 미스 장의 아버지가 아니었다.  
  그 남자는 바로 내 남편이었다. 눈이 익은 회색 양복에 빗금이 그어진 빨간 넥타이를 맨 남자, 보고 또 보아도 분명히 남편이었다. 그러나  남편이 짓고 있는 행복감이 충만한 그 미소는 낯이 설었다. 남편 사진이 또 있나 하고 재빨리 뒷장을 넘겼다. 거기엔 그림이나 책에서 본 바 있는 외국의 풍경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풍경 속에는 미스 장이 남편의 팔짱을 꼭 낀 채 활짝 웃고 있었다.
  나는 사진첩을 서랍에 도로 넣고 얼른 방을 나왔다. 가슴이 심하게 뛰고 눈앞이 어질어질했다. 겨우 거실로 나와 소파에 드러누웠다.
  하나의 사건이 주마등처럼 머리에 떠올랐다. 작은아들이 유학을 떠난 그해였으니 만 10년 전의 일이다.

  어느 날 아침, 괴상망측한 한 통의 전화를 받고 나는 부리나케 대문을 나섰다. 마구 뛰는 가슴을 진정하며 택시를 불러 타고 전화의 목소리가 일러준 곳으로 득달같이 달려갔다. 문 앞에 서 있겠다던 아이가 보이지 않았다. 어느 집인지를 몰라 서성이고 있는데 한참 만에 열 서넛쯤 돼 보이는 계집아이가 두려운 얼굴을 하고 나타났다.

  계집아이는 문 앞에 선 채로 놀라운 이야기를 일러주었다. 남편한테 젊은 첩이 있다는 것이다. 그 여자는 바로 이 집의 주인이며 자기는 식모살이를 하고 있는데, 내일 시골로 내려간다고 했다. 그래서 돈이 필요했고, 또 이 사실을 아주머니한테 얘기해야 될 것 같아 전화번호부를 보고 남편의 이름을 찾아 전화를 걸었다는 것이다. 남편의 회사와 직책까지 일치했다. 주인 여자는 일이 있어 인천엘 갔는데 내일 새벽에 돌아온다고 했다.
  정신없이 집으로 달려와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급한 일이 생겼으니 당장 집으로 오라고 했다. 너무나 흥분해 부들부들 떨려 말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남편은 지극히 침착하게 무슨 큰일이 났냐면서 지금 바빠 자리를 비울 수가 없으니 퇴근 후에 보자고 했다.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리며 소리를 질렀다.
  “당장 와요. 당장. 안 오면 내가 회사로 간다구요오····. 회사에서 망신당하게 전에 당장 와요. 지금 당장 오라고요.”
  계집아이가 내일 시골로 간다니까 가기 전에 삼자대면을 해야 한다는 작정이 서 있었다. 남편을 기다리고 있노라니 흥분이 조금은 가라앉았다. 슬슬 후회스런 감정이 밀려왔다. 침착하게 대책을 세운 다음 전화를 걸 걸, 바로 전화를 걸어 그냥 울어버린 것이 뭔가 잘못된 것 같았기 때문이다. 감정을 억제하고 참는 데는 선수인 내가 왜 그런 경솔한 행동을 했는지 나 자신도 이상했다.
  내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음인지 남편은 직접 차를 몰고 한 시간쯤 지난 후에 집으로 왔다. 나는 앞뒤 말을 다 잘라먹고 그 집으로 가자고 했다. 남편은 참말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야?” 하고 반문했다.

  “그 집이라니 도대체 누구 집인데 그래?”
  “당신이 매일 가는 집인데 왜 나한테 물어요? 빨리 가자고요.”
  나는 남편의 옷소매를 잡아끌었다. 무슨 일이 생겼는지 자초지종 알아듣게 얘기를 해 보라면서 남편은 정말 모르는 얼굴을 했다.
  “그렇게 시침 뗀다고 내가 속아 넘어갈 줄 알아요? 그 동안 속고 산 것도 분한데 이제는 더 안 속아요. 빨리 차 몰아요.”
  “도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남편은 버럭 화를 내면서 무서운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순간, 나는 정말 아닌가 하고 잠깐 헷갈렸다.
  “그러면 내가 일러줄 테니 운전이나 하세요.”
  그 계집아이랑 맞대면을 하면 더 이상 잡아떼지는 못하겠지.
  “그래. 가자구.”

  남편은 자신만만하게 대답을 하며 내가 일러주는 대로 방향을 잡아 운전을 했다. 정말 깜깜하게 모르는 길을 가는 것 같았다. 나는 또 헷갈렸다. 정말 아닌가 하고.
  아니다. 이름, 직책, 회사까지 다 맞는데 그 계집아이가 거짓말을 한 것은 절대 아니다.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의 무게가 나를 사정없이 내려 눌러 짓뭉개는 것 같아 한숨을 크게 내쉬는데 갑자기 남편이 명령조로 말했다.
  “무슨 일 때문에 내가 당신한테 닥달을 당해야 하는지 얘길 해 봐. 나도 알아야 될 거 아냐?”      
  차는 이미 그 집 앞에 도착되어 있었다. 나는 “차 세우라”고 동문서답을 한 후에 초인종을 눌렀다. 한참 동안 아무 기척이 없었다. 나는 신경질적으로 초인종을 계속 눌러댔다. 초조했다. 계집아이가 놀라서 뛰어나왔다. 계집아이와 남편의 눈이 마주쳤다. 남편의 표정은 지극히 담담했다. 한데, 여자애의 입에서 튀어나온 뜻밖의 말에 나는 또다시 헷갈렸다.
  “아녜요. 이 아저씨가 아녜요. 제가 전화를 잘못 걸었나 봐요.”
  아이는 정말로 미안해 죽겠다는 듯이 안절부절못하며 쩔쩔 맸다. 삼양물산의 이경수 상무라고 분명히 말하지 않았느냐고 내가 되물었더니 아이의 대답이 혼선을 빚었다.
  “삼양물산인지 삼영물산인지 잘 모르겠어요. 그냥 주인 언니가 전화하는 소리만 들었거든요. 분명히 이 아저씨는 아니에요. 잘못했어요. 아줌마, 아저씨, 정말, 정말로 미안해요.”  
  두 손을 싹싹 비비면서 아이가 울상을 지었다. 머리 좋은 그가 사건의 상황을 금세 파악하고 전화 한 통으로 짜고 치는 고스톱이 연출되고 있는지도 몰랐다. 남편은 아주 태연하게 아이를 타일렀다.
  “확실하게 알지도 못하면서 그런 전화를 하면 어떡하니? 앞으로는 조심해라.”
  나를 바라보는 아이의 눈을 외면한 채 나는 아무 말 않고 돌아섰다.

  시계를 보니 겨우 10분도 지나지 않았었다. 나는 손으로 가슴을 훑어내리며 마음을 진정하려고 애를 썼다. 전신에 맥이 다 빠져버려 일어나 앉을 기운조차 없었다. 갑자기 하얀 벽들이 뱅뱅 돌면서 속이 메슥메슥했다. 눈을 감았다. 그리고 숨을 몰아쉬면서 한참을 그대로 누워 있었다. 겨우 정신을 가다듬었다.
  남편이 투자했던 주식이 한창 날개가 돋쳐 회사까지 그만두려고 망설일 때 그 사건이 터졌으니 경제적으로는 가장 전성기였다. 나이를 꼽아 봐도 딱 들어맞는다. 그때 계집아이가 주인 언니의 나이가 스물여섯이라고 했다. 그 스물여섯이라는 숫자가 뇌리에 박혀 지금도 지워지지 않고 선명하게 남아 있다.  
  ‘몇 년이나 살았을까? 사건이 터진 그 훨씬 이전부터였겠지? 각방을 쓰기 시작한 50대부터라고 치면 미스 장은 그때 겨우 스물이 넘었을 적이 아닌가?’
  맨 처음에 붙어 있는 사진은 남편이 주식으로 돈을 벌었던 50대 초반 같고, 미스 장도 앳돼 보이니 사건이 터지기 훨씬 전에 찍은 사진이 틀림없다. 뒤에 보이는 높은 빌딩도 증권회사 같다.
  ‘증권 회사의 직원이었을까? 아니면 증권을 하다가 만나 증권 박사인 남편에게 조언을 구하다가 정이 들은 것일까?’
  여자애의 말을 종합해 봐도 삼양물산의 여직원은 아니다. 더구나 남편이 회사의 직원을 첩으로 삼을 사람은 아니다.  
  ‘혹시 요정의 기생이었을까?’
  그랜드 캐니언에 여행 갔을 때의 일이 뇌리를 스쳤다. 그 때, 그녀가 회상에 젖어 옛날이야기를 했었다. 실연을 당한 후, 대학을 중퇴하고 돈을 벌어 막 쓰고 싶어 취직을 했다고 했다. 그 ‘취직’을 한 곳이 증권회사일 수도 있고 삼양물산일 수도 있으나, 둘 다 아니라는 생각이 강하게 고개를 치켜들었다. 분명히 요정 같다. 철이 없었다고 눈물을 흘리며 후회한 것을 보면 직업 마담의 미끼에 걸려든 것이 분명하다. 그 당시 어머니가 많이 아팠다고 하니 미스 장이 보수가 많은 생활전선에 뛰어들었을 것이다. 친구 오빠한테 버림 받은 심리도 작용했을지 모른다.
  회사일 때문에 요정 출입이 잦았던 남편이다. 기생인 미스 장을 만나 첩으로 삼은 게 틀림없다. 어머니를 거역하고 제 멋대로 산 것이 후회스러워 눈물을 흘린 것을 보면 그 ‘취직’을 한 직장이 분명히 요정이다.
  남편과의 관계도 어머니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만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관계는 지속되었고 어머니는 더 많은 눈물을 흘리다가 돌아가셨다. 물론 돈이 첫째 이유였겠지만 남편의 외모와 인격을 종합해 보면 그는 젊은 여자가 따를 만한 매력을 지닌 남자다.
  ‘그래서 미스 장이 존경하게 되어 좋아한 것일까? 과거를 고백한 것도 남편의 첩이 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합리화하기 위함이었을까? 아무것도 모르는 나였을지라도 내게 그런 고백을 함으로써 자신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위로하기 위함이었을까?’        
  그날 호텔 방에서 미스 장은 나를 잠깐 바라보다가 시선을 떨어뜨리면서 이렇게 말했다.
  “착하긴요. 저 착한 사람 아니에요. 죄 많이 지었어요.”
  흐린 불 아래였지만 그녀의 울먹이는 음성과 더불어 눈에 물기가 어리는 것을 나는 분명히 보았다. 그리고 미스 장은 얼굴을 묻고 흐느껴 울었었다.
  ‘쏴아쏴아’ 하는  바람소리가 물결처럼 귓가에 밀려왔다. 창밖을 스치고 간 바람이 나뭇가지 위에 걸려 서럽게 울었다. 으스스 몸이 떨렸다.  내의를 입었는데도 가죽 소파의 차가운 기운에 온몸이 시려왔다. 싸늘한 냉기가 등덜미를 훑어내렸다. 나는 겨우 몸을 일으켜 바닥으로 내려와 양탄자 위에 누웠다. 한결 나았다. 이런저런 줄거리를 연결시켜 보니 모든 게 다 들어맞는다. 완전히 사기를 당한 기분이다.
  그녀와 얼굴을 맞대기조차도 고역스러울 것 같아 그냥 가버릴까 하고 잠시 망설였다.
  ‘아니지. 그냥 가면 안 되지. 둘째 아들 얘기를 하면서 어떤 식으로 거절을 하나 심중을 떠봐야지. 절대로 좋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인간의 탈을 뒤집어썼다 하더라도 그럴 수는 없을 티니까.’
  비디오는 계속 돌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가물가물한 정신으로도 줄거리는 눈에 들어왔다. 본마누라와 첩이 ‘형님 동생’ 하며 한 집에서 살고 있었다. 드라마에서는 남편이 버젓이 살아 있었다. 동생은 형님에 비하면 딸 같은 나이였다. 생긴 것도 형님은 고생에 찌들어 빠진 아낙네이고, 동생은 좀 천하긴 하나 화장까지 곱게 하고 있었다.  
  동생이 형님의 손을 붙들고 서럽게 울고 있었다.  
  “형님, 제가 잘못했어요. 제가 죄를 너무 많이 지었어요. 용서해주세요. 형님이 그렇게 고생하시는 것도 모르고 형님 미워하고 또 아픈 가슴에 상처만 줬으니 제가 죽일 년이에요. 어어엉--엉엉...”
  동생은 눈물 콧물 범벅이 된 얼굴로 큰 소리로 엉엉 울었다. 형님은 더 서럽게 울었다.
  “아니다. 아니다. 내가 잘못했다. 미워한 걸로 치면 네가 나만 했겠냐? 우리 앞으로는 서로 의좋게 지내자.”
  두 여배우가 울음바다를 이루었는데 나는 아무런 감동이 없었다. 신문에 난 기사를 보고도 잘 우는 울보인 내가 눈물은커녕 찡하는 기미도 없었다. 반듯이 누워 고개만 모로 돌리고 있었더니 목이 뻐근해 텔레비전을 향해 돌아누웠다. 그래도 줄거리가 어떻게 전개되나 궁금했기 때문이다. 장면이 바뀌어 형님 동생이 김치를 담그고 있었다.
  “형님, 힘드신데 왜 무채를 썰려고 하세요. 채칼 이리 주세요. 형님은 저기 불려놓은 마늘이나 까세요”
  동생은 형님 형님을 입에 달고 극진히도 형님을 위했다. 갑자기 열 살 쯤 돼 보이는 사내아이가 나타나면서 “큰엄마” 하고 형님 품에 안겼다. 동생은 뭐가 그리 신이 나는지 어깨를 들썩거리며 무채를 밀면서 아이를 쳐다보지도 않고 건성으로 말했다.
  “큰엄마 힘들게 하지 말고 나가서 놀아.”
  그러나 형님은 아이를 예뻐 죽겠다는 듯이 품에 꼭 안았다.
  “아이고 내 새끼, 배고프지?”
  조금 후, 장면이 다시 바뀌었다. 동생이 형님에게 화장품을 내밀면서 말했다.
  “형님도 좀 가꾸세요. 아이고, 손이 이게 뭐예요. 거북이 등처럼 터져가지고····.”
  안쓰러워 죽겠다는 얼굴을 하고 동생은 형님의 손등에 로션을 발라주고는 막 문질러댔다. 그리고 형님의 얼굴을 어루만지면서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세상에...,  피부가 너무 거칠어 수세미 같아요. 형님, 이거는 스킨이라고 맨 먼저 바르는 거구요. 또 이거는 그 다음에 바르는 료숀, 이거는 그 다음에 바르는 언더메이컵.”
  동생이 화장하는 순서를 가르쳐주고 있었다.
  “이 립스틱은 제가 딱 한 번밖에 안 발랐으니 새 거나 똑 같아요.” 하면서 화장품들을 줄줄이 늘어놓았는데 마지막 한마디가 가슴을 찔렀다.

  “형님이 이렇게 구질구질하게 하고 있으니까 호경이 아빠가 만날 저만 찾잖아요.”    
  ‘나도 그렇게 구질구질했었나?’
  그랬다. 나도 멋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너무너무 검소했다. 남편한데 아양 떨 줄도 몰랐고 알뜰살뜰하게 남편을 위할 줄도 몰랐다. 그냥 세월 따라 그렁저렁 살았다.
  큰아들이 결혼할 때였다. 동서가 나를 보고 한심하다면서 혀를 끌끌 찼다.  
  “내일이 상견례인데 그래도 다이아몬드 한 캐럿 정도는 끼고 나가야지····.  그쪽 집도 만만찮은데. 자네는 맘만 먹으면 다 할 수 있잖아. 욕심이 없는 거야, 바보야? 도대체 자네 속은 알다가도 모르겠어. 남편 몰래 뒷주머니도 좀 차고 그래봐. 그렇게 바보같이 살지 말고.”
  시장바닥에서 콩나물을 사도 값을 깎는 동서다. 하루 벌어 하루를 연명하는 듯한 핏기 없는 아낙의 얼굴을 보며 나는 곁에 서 있기조차도 창피했다. 그런데도 동서에게는 다이아몬드 반지도 있고 밍크코트도 있다. 내 눈에는 동서가 한심해 보였다.
  “아참, 자네 시집올 때 돈 싸들고 온 거, 설마 다 내놓은 건 아닐 테니 뒷주머니는 차고 있겠네.”
  동서하고 말을 하다보면 상처를 받을 때가 많았다. 그때마다 나는 그녀의 자격지심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그대로 넘기곤 했으나 가끔씩은 ‘내가 바보인가’ 하고 스스로 반문하기도 한다.  
  
  얼마 전 일이다. 며느리 친구가 친정엄마라는 여자랑 잠깐 집에 들른 적이 있다. 그날은 웬일인지 방안에 처박혀 있는 나를 며느리가 불러내어 아주 상냥하게 인사를 시켰다. 나하고 동갑이라는 그 친정엄마가 너무 젊어 나는 깜짝 놀랐다. 처음에 나는 조금 나이가 더 먹은 친구인 줄 알았다. 화장을 곱게 했었는데 눈 화장이 아주 선명했다. 지금도 그 여자의 모습이 내 머리에 그대로 남아 있다. 굽슬굽슬하게 웨이브가 져 있는 갈색 머리 결이 반짝반짝했다. 뭘 발랐는지 얼굴도 반짝반짝했다. 피부에도 검은 티 하나 없었다. 까만색으로 정장을 했었는데 옷감은 니트였다. 재킷 가장자리에는 노란 금줄이 눈이 부시도록 화려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둥근 모양으로 달려 있는 단추는 진짜 금을 연상시켰고 노란 단추의 가장자리에는 까만 선이 둘러져 있었다.
  그날 저녁, 나는 거울을 앞에 놓고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거뭇거뭇한 저승꽃들이 내게 손짓을 했다. 손등을 내려다보았다. 제법 큰 반점들이 어느새 하나 둘씩 늘어가고 있었다. 흰머리도 많이 늘었다. 머리를 자르러 갈 때마다 미용사가 염색을 권했으나 한 번도 염색을 해본 적은 없다. 좀 충격을 받긴 했으나 그때뿐이었다. 주어진 환경에서 그냥 생긴 대로 사는 것이 내 인생이다. 이제 나는 완전히 할머니 티를 내며 살고 있다.
  드디어 인기척이 났다. 달깍거리는 열쇠 소리에 또다시 숨이 가빠 왔다. 한 줌의 바람이 가슴을 비집고 들어왔다. 온몸이 얼어붙는 듯 움칠했다. 싸늘한 냉기가 다시금 등덜미를 쓸어내리며 다리가 뻣뻣해졌다. 나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마음을 진정시키면서 편안한 표정을 지으려고 노력했다.
  미스 장은 너무나 놀라 들고 있던 가방을 팽개치고 내게로 달려왔다. 실내인데도 바바리코트 자락이 심하게 펄럭였다. 나갈 때는 몰랐는데 디자인이 눈에 익다.
  ‘내 앞에서 어쩌자고 저 바바리코트를? 아니지. 내가 올 줄을 모르고 문을 나서다가 만났으니 그럴 수 있지.’
  늘 즐겨 입으면서도 더구나 비가 내리는데도 그 바바리를 입고 오지 않은 내가 이상했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수화기를 들고 앰뷸런스를 부르려고 했다. 내가 말렸다. 내 병은 내가 알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가 서너 번 이런 증상이 나타났었다. 금세 심장이 멎어버릴 것 같아 숨을 헐떡거린 적도 있었으나 가슴을 쓸어내리고 주먹으로 치고 하면 괜찮았었다.
  “괜찮아요. 내가 가끔 이래요. 좀 있으면 금세 나아요.”
  “안돼요. 병원에 가야 돼요. 안색이 너무 창백해요. 숨도 가쁘잖아요. 아주머니도 심장이 나쁜가 봐요. 저의 어머니가 심장병으로 고생을 하셔서 제가 잘 알아요.”
  어머니 심장병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말이 귀에서 튕겨나갔다. 영문을 모르는 그녀는 수화기를 놓지 않았다. 도리어 내가 그녀를 진정시키느라 애썼다. 수화기를 내려놓은 미스 장은 민첩하게 또 침착하게 행동했다. 우선 따뜻한 물과 청심환으로 나의 정신을 가다듬게 한 다음 포근한 담요를 가져와 내게 덮어주고는 다리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따뜻한 물이 발끝에서부터 서서히 차오르는 것처럼 팔다리가 편안하게 풀려가는 느낌이 들었다. 다리를 주무르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경험에 의한 익숙한 손놀림이다.
  반듯이 누운 남편의 다리를 미스 장이 주무르고 있다. 남편의 뜨거운 눈빛에 반사된 그녀의 얼굴이 발그레하니 열기를 띠었다. 깨물고 싶도록 예쁘다. 서른여섯이 아니고 스물여섯 같다. 그녀의 열 손가락이 종아리에서부터 허벅지로, 그리고 점점 더 위로 올라가고 있다. 갑자기 오물을 뒤집어쓴 듯한 더러운 기분이 전신을 휩쌌다. 목구멍으로 헉,하고 뜨거운 김이 치솟아오르며 숨이 막혔다. 뜨거운 불덩어리가 핏줄을 타고 마구 돌아다녔다. 얼굴이 화끈했다. 애써 마음을 꾹꾹 누르고는 최대한으로 태연을 가장하면서 숨을 한 번 크게 들어마셨다가 후우, 하고 내쉬었다.
  미스 장은 어쩌다가 그런 증세가 왔는지를 물었다. 나는 시침을 뚝 떼고 거짓말을 했다.
  “소파에 누워 비디오를 보다가 깜빡 잠이 들었었는데, 가죽소파에서 찬기가 몸에 스며들었나 봐요."
  비디오는 여전히 돌아가고 있었다. 형님과 동생은 화면에서 사라지고 사제지간인 젊은 남녀가 사랑을 속삭이고 있었다. 그제야 미스 장은 비디오를 껐다. 나는 애써 태연을 가장하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참 웃기는 얘기도 다 있네. 본마누라와 첩이 어떻게 한집에서 살아?”  
  완전 무방비 상태인 그녀의 가슴에 나는 비수를 날렸다. 그리고 입귀를 칼끝처럼 다물면서 어금니를 꽉 물었다. 턱이 아프도록 꽉 문 어금니 사이에서 뱉어내지 못한 말들이 파랗게 갈려 부서지고 있었다.
  ‘그래, 너는 본마누라와 첩이 형님, 동생하며 한집에서 의좋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하니? 불가능한 일이겠지? 만일 남편이 죽고 없다면 그럴 수 있을 것 같아? 어디 네 생각이 어떤지 한 번 들어보자.’
   마음을 가다듬으려고 최대의 노력을 하며 숨을 한 번 크게 내쉬고는 누워있으라는 그녀의 만류를 뿌리치고 일어나 앉았다. 나 역시 아주 침착하게 다음 행동을 개시하기 위함이었다. 나는 미스 장의 눈을 뚫어지라고 빤히 들여다보며 본론으로 들어갔다.
  “오늘은 내가 굉장히 중요한 얘기를 하려고 왔어요. 우리 둘째 아들한테 미스 장 얘기를 했더니 아주 좋아했어요. 다음 달에 여기로 온다니까 한 번 만나보세요. 아까운 나이인데, 미스 장도 얼른 결혼을 해야지요.”
  사진을 꺼내들고 그녀 앞으로 내밀었다. 둘째는 남편과 판에 박은 닮은 꼴이다. 갑자기 그녀의 얼굴이 백짓장처럼 하얘졌다. 입술이 잠시 파르르 떨리는 것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이제는 미스 장이 청심환을 먹어야 할 차례다. 그녀는 할 말을 잃어버린 듯 아니, 못 들은 척 입을 꼭 다물고 고개를 푹 숙이고는 나의 다리를 계속 주물렀다.  
  ‘그렇지, 네가 내 눈빛을 바로 받지는 못할 거다.’
  “왜 마음에 안 들어요? 우리 아들이 이혼해서 그래?”
  그녀는 바닥에 시선을 떨어뜨린 채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아, 아뇨.” 하고 말했다. 나는 그녀의 표정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몽땅 잡아내려고 작심을 하며 그녀의 수그린 얼굴에 시선을 박아놓고 있었다. 뒷말을 잇는 미스 장의 음성이 떨려나왔다.
  “아드님은 공부도 많이 했는데 저는 대학을 졸업도 못 했잖아요. 또 나이도 더 많고요.”
  “그까짓 두 살 더 많은 게 뭐 어때서 그래. 내가 다 얘기했는데 우리 아들이 아무 상관없다고 그랬어.”
  ‘이혼이니 학벌이니 나이니 그런 건 물론 이유가 되지 않지. 이유는 딴 데 있겠지.’
  그녀는 계속 고개를 숙이고 내 다리를 열심히 주물렀다. 아들이 곧 온다고 했으니 한 번 보기라도 하라고 나는 그녀의 가슴에 계속 화살을 쏘아댔다. 안 되겠다 싶었던지 미스 장은 진짜 피할 수 있는 핑계를 내세웠다.
  “실은 저한테 남자가 있어요.”
  ‘남자는 죽고 없는데, 남자는 무슨 남자야.’
  “분명히 남자가 없다고 나한테 얘기해놓고 그게 무슨 소리야?”
  나는 그녀를 낭떠러지를 향해 잔인하게 밀어붙이면서 화를 냈다. 미스 장이 놀래서 고개를 들고 나를 바라보았다. 내 목소리가 너무 컸었나 보다. 나는 아차, 했다. 태연한 척하려고 최대의 노력을 했는데도 잠시 이성을 잃은 것이다. 더 이상 앉아 있다가는 무슨 말이 튀어나올지 몰라 겁이 났다.
  마침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미스 장은 구세주라도 만난 듯이 재빨리 휴대폰을 집어들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문을 닫았다. 무슨 흔적이라고 남겨놓은 것 같아 속이 떨렸다. 손잡이에 묻은 지문이라도 감지할 것 같아 발이 저렸다. 무슨 전화인지 미스 장은 한참 동안이나 방에서 나오지를 않았다.
  ‘설마 화장대 서랍을 열어 사진첩의 위치를 점검하지는 않겠지. 분명, 내 말을 어떻게 막나 하고 연구 중일 거다.’
  사기를 당한 기분이 다시금 엄습하며 속을 떠보고 있는 내 자신이 우스꽝스러워졌다.
  ‘뭐 핸드백이 꼭 마음에 들어? 니가 고른 것이니 네 맘에 들 수밖에.’
  그때, 남편은 의아해하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시큰둥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었다.
  “내가 뭘 아나? 같이 간 비서실장이 챙겨준 거야.”
  미스 장이 방에서 나오면서 변명을 늘어놓았다. 높은 목청이 떨리고 있었다.  
  “죄송해요. 론 브로커가 일을 느리게 하는 바람에 다된 계약이 깨지게 생겼어요. 화를 좀 냈더니 열이 나네요.”
  나는 일어섰다. 그리고 미소까지 띄는 여유를 보이면서 그녀를 괴롭혔다.  
  “오늘은 내가 말할 기운이 딸리네요. 다음에 또 얘기하기로 하지요. 나는 그간에 미스 장을 내 둘째 며느리가 다 된 것처럼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러니까 긍정적인 방향으로 잘 생각해 보세요.”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그녀는 안절부절못하면서 나를 부축했다. 가녀린 몸매가 수양버들처럼 흐느적거리며 감겨들었다. 뭇 사내들의 혼을 몽땅 앗아버릴 만한 요염한 자태다.
  어쩔 수 없이 미스 장의 차를 타는 수밖에 없었다. 맘 같아선 며느리를 부르고 싶었다. 빗줄기는 올 때보다 더 굵어져 차창을 마구 때리면서 울부짖었다. 바람도 몹시 불어 가로수들이 몸을 떨며 잎사귀를 털어내고 있었다. 빗소리, 바람소리와 함께 공중에 흩날리는 잎사귀들이 몸부림을 치며 아우성을 쳤다.
  ‘우리는 어디로 가는 거지? 어디로 가는 거냐고····.’
  내 가슴 속에서도 삭막한 바람이 불어닥쳤다. 나를 홀로 남겨두고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쓸어가버릴 것 같은 세찬 바람이었다.
  거리엔 차가 줄줄이 밀렸다. 웬 신호등이 그렇게 많은지 차는 가다가 서고 가다가 서고 하며 거북이 걸음을 했다. 나는 의자에 깊숙이 파묻혀 꼼짝을 안했다. 입을 꼭 다물고 침묵했다. 침묵의 무게에 눌려 차가 짜부러져 전신이 짓이겨질 것 같아 가슴이 답답했다. 가느다란 작대기 두 개가 앞유리에 쏟아져내리는 빗물을 부지런히 닦아내며 빠른 속도로 좌우로 왔다갔다하는 모양이 숨이 차 보였다. 미스 장도 보통 때보다는 갈팡질팡하며 숨가쁘게 운전을 했다.      
  “어마나, 출퇴근 시간도 아닌데 웬 차가 이리 많아요? 비가 오니까 교통이 더 혼잡하네요.”
  무슨 말이라도 해서 침묵을 깨야겠다고 느꼈음인지 미스 장은 뻔한 소리를 하며 목청을 돋우었다. 안정감 없는 소리가 붕 떴다가 흩어졌다. 앞차의 뒤꽁무니라도 들이박을 것 같아 불안했다.  
  집 앞에 차가 멎자마자 며느리가 우산을 받쳐 들고 쫓아 나왔다. 차문을 열어주다가 며느리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깜짝 놀란 얼굴을 했다.
  “어머니, 어디 편찮으세요? 안색이 너무 창백해요.”
  나는 얼른 며느리의 팔을 잡으며 우산 속으로 들어갔다. 며느리는 미스 장에게 가벼운 목례를 했다. 내가 암말 않고 며느리를 떠밀다시피 하면서 발걸음을 떼놓았기 때문이다. 며느리는 자꾸 뒤를 돌아다보았다. 붕,하고 그녀의 차가 떠나는 소리가 들렸다. 뒤통수가 자꾸 뒤로 잡아끌리고 발길이 닿은 땅이 흐물흐물했다.
  “어머니, 지금 병원에 바로 가셔야 되겠어요.”
  집 안으로 들어온 며느리는 얼른 수화기를 들었다.  
  “아냐, 괜찮아. 내 병은 내가 알아. 좀 누워 있으면 괜찮아질 거야. 전기담요나 꺼내서 좀 깔아줘.”
  며느리도 미스 장처럼 우기는 것을 겨우 말렸다. 전기담요를 꺼내 침대 위에 깔고 스위치를 조정하면서 며느리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어머니, 저 여자가 미스 장이죠. 근데, 어디서 본 여자 같아요. 낯이 익어요.”
  낯이 익다는 며느리의 한마디가 나의 귓전을 후려쳤다.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잠시 후, 며느리가 생각난 듯 "아, 바로 그 여자예요." 하고는 말을 시작했다. 가슴이 덜커덩 하고 내려앉는 충격이 왔다.
  “아버님 장례식에서 본 바로 그 여자예요. 까만 바바리코트를 입은 모습과 그리고 얼굴이 너무 예뻐서 들어올 때부터 인상에 남았었거든요. 모르는 여자라, 아마 아버지 회사 계실 때 직원인가 했어요. 그날 제가 입구에서 손님들에게 인사했잖아요. 그리고 장례식 시작할 때가 되어 안으로 들어와서 앞줄로 가는데 그 여자가 또 눈에 띄었어요. 한쪽 구석에 앉아서 아주 서럽게 울고 있더라고요. 지금도 제 기억에 아주 선명해요. 나가면서 유가족에게 인사할 때는 못 봤어요. 그래서 장례식 끝난 다음에 두리번거리며 찾아보았는데 일찍 갔는지 보이지가 않았어요. 분명해요.”    
  
  그 후, 나는 근 한 달 동안을 호되게 앓았다. 배가 쌀쌀 아프기 시작하더니 목구멍이 따끔따끔하고 기침이 났다. 목이 잠겨 소리도 제대로 낼 수가 없었다. 아랫배가 뻐근해 소변보기도 힘이 들었다. 어지간하면 그냥 견디는 성격이었지만 열이 내리지 않아 할 수 없이 며느리를 따라 병원에 갔었다.
  “신우염, 방광염에 몸살감기까지 겹쳤습니다. 진작에 병원에 왔었어야지요. 이렇게 병을 키우다가는 정말 큰일 납니다.”  
  의사는 당장 입원이라도 해야 될 것처럼 겁을 주었다. 그러고 보니 미국에 온 1년 동안 병원이라고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간에 가끔씩 몸이 나른해지며 가슴이 답답하고 배가 살살 아플 때가 있었지만 혼자서 삭이면서 지나쳤다. 몸 상태가 아주 안 좋으니 건강검진을 꼭 받아야 한다고 의사가 강조를 했다.
  그날, 집에 오면서 며느리가 “어머니, 얼굴이 많이 상했어요.” 하고는 내 손을 꼭 붙잡았다. 가슴이 뭉클했다.

  거울 속에 웬 80대의 노인이 후줄근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내 얼굴이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는다. 살갗은 바람 빠진 풍선모양 축축 늘어져 있고 조막만한 얼굴에는 두 눈만 뻥 뚫려 있다. 어찌나 목이 말라 비틀어졌는지 머리를 지탱하기조차도 힘에 겨워 보인다. 흰머리도 어느새 그렇게 많이 늘었는지 아주 반백이 되었다. 폭삭 늙어버린 내 모습을 들여다보며 생각했다.
  인생은 이렇게 가고 있는 것이라고. 강물이 흘러흘러 바다로 가듯이 인생도 그렇게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계절이 바뀌어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오듯이 내 인생 뒤에는 또다른 인생이 오고··· ···. 인생은 그저 왔다가 가는 것이다.  
  그날 본 비디오 생각이 자꾸 났다.
  ‘만일 미스 장한테 아이가 있었으면 어찌 되었을까? 그랬다면 아이를 데리고 나타났을까? 여자아이라고 가정을 하는 것이 우리 집안에 더 잘 어울릴 것 같다. 아버지 같은 두 아들을 ‘오빠, 오빠.’ 하고 부르겠지? 아들들은 그 애를 귀여워해 줬을까? 아니면 본척 만척 했을까?‘
  미스 장을 꼭 닮은 예쁘장한 계집아이가 눈앞에 떠오른다. 레이스가 달린 하얀 원피스를 입은 모습이 꼭 백설공주 같다. 머리를 양갈래로 가지런히 땋아내리고 나를 보고는 환히 웃는다. 그리고 "큰엄마" 하고 부르면서 내게로 달려온다.
  ‘그러면 나는 "아이구, 내 새끼" 하고 그 아이를 껴안아 줄 수 있을까?’
  한참 소설을 쓰고 있던 나는 갑자기 하나의 궁금증이 머리를 세차게 쳐 현실로 돌아왔다. 아버지에 대한 아들들의 평가다. 두 아들은 어릴 때부터 ‘우리 아버지는 최고’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자랐다. 큰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아버지는 무슨 일이든지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에 아버지가 든든하게 뒤에 버티고 있는 한 그들에겐 아무 걱정이 없었다. 아버지를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두 아들은 열심히 노력했고 원하는 학교에 척척 잘 붙어주었다. 가정적인 면이라고는 손톱만치도 없는 남편이었지만 아이들 학교문제에는 늘 과민반응을 보였었다. 올 에이를 받아온 둘째가 “나는 아버지 때문에 공부해. 이건 내 성적표가 아니고 아버지 성적표라니까.” 하고 말한 적이 있다. 둘 다 미국유학까지 시켜 명문대학을 나왔으니 어마어마한 돈을 교육비에 쏟아부었다. 그리고 남편은 두 아들의 대학졸업 논문까지도 봐 줄만큼 박식했었다. 지금도 두 아들의 가슴 속에는 존경스러운 아버지가 새겨져 있을 것이다.
  ‘만일 미스 장과의 일을 안다면 그들은 아버지를 어떻게 재조명할까? 그리고 미스 장을 만난다면 그녀를 어떻게 대할까?’
  
  그날 밤이었다. 나는 이상한 꿈을 꾸었다. 비디오의 스토리가 그대로 재현되고 있었다. 미스 장이 내 손을 붙들고 잘못했다면서 머리를 조아리며 흐느껴 울었다. 그런데 그녀가 내게 붙인 호칭이 형님도 아니고 아주머니도 아닌 어머니였다. “어머니, 어머니····.” 하고 부르며 통곡을 하는 것이었다.
  ‘미스 장이 다 털어놓을 모양인가?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그러나 그 며칠 후, 미스 장이 아닌 며느리로부터 나는 진짜 꿈같은 말을 들었다. 꿈을 잘 꾸지도 않고 꾸어도 생전 들어맞은 적이 없는 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번 꿈을 들어맞았다. 나를 어머니라고 부르는 여자는 이 세상에 며느리밖에 없다.
  “어머니, 그 동안 제가 어머니한테 너무 무심했어요. 제가 잘못했어요. 용서해주세요 어머니, 제가 정말 잘못했어요. 어머니이---. ”
  내 손을 붙들고 며느리는 울었다. 순간적으로 온몸에 전류가 흐르듯이 가슴이 찌릿찌릿했다. 나도 울고 있었다.
  “아니다. 내가 잘못했다. 내가 잘못한 게 너무 많다. 용서해다오.”
  어찌나 며느리가 흐느껴 우는지 내 눈에서도 쉴 새 없이 눈물이 흘렀다. 온 방안이 순식간에 눈물바다가 되어 감동의 파도가 출렁이고 있었다.
  의사가 처방해준 약을 잘 챙겨 먹는데도 며느리는 시간 맞춰 물을 떠받들고 내 방으로 들어왔다. 끼니때마다 다른 종류의 죽을 정성스럽게 끓여주었다. 흰죽. 야채죽, 전복죽 그리고 깨죽까지 끓여 내 입맛을 돋우려고 노력을 했다. 아들도 퇴근 후엔 내 방을 들여다봤다. 혼인은 깨졌다는 말을 듣고도 그 사이에 둘째 아들이 다녀갔다. 그리고 병원비에 보태라면서 돈을 내놓았다. 아무런 보험 혜택을 받을 수가 없어 혼자 고민을 했는데 하늘을 나를 듯이 마음이 가벼워졌다.

  열도 완전히 떨어지고 거의 회복이 되어가는 어느 날이었다. 하루는 막내 놈이 장 아줌마한테 가자고 졸랐다.  
  “어머니가 편찮으신 거 미스 장이 몰라요? 어머니가 못 가시니까 저의 집으로 오라고 하세요. 아버님 옛날 부하직원이고 또 어머니하고 친하니까 저도 미스 장하고 친구하면 좋잖아요.”
   부하직원이라는 며느리의 말에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사실, 난 그 동안 하루도 미스 장 생각을 안 해본 날이 없었다. 그녀가 내게 전화를 한 적은 한 번도 없었건만 전화통에 신경을 쓰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는 쓴 웃음을 짓기도 했다. 나의 건강을 핑계로 한 번쯤은 연락이 올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가져봤으나 두어 달이 지나도록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막내가 계속 성화를 하고 또 며느리가 전화를 걸어보겠다고 하기에 나는 번호를 건네주었다. 가슴이 뛰었다. 수화기를 들고 있던 며느리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상해요. 전화가 디스커넥트가 됐대네요. 새 번호도 안 나오고요.”
  며칠 후, 며느리가 다시 미스 장 얘기를 끄집어냈다.
  “어머니, 제가 한번 그 집에 가볼까요?”  
  나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나 어느 날 이른 아침, 나는 미스 장 집 근처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집 앞에서 눈길도 한 번 안 주고 돌려보낸지, 거의 두 달쯤 됐을 때였다. 나는 한참 동안이나 현관문을 바라만 보며 한쪽 구석에 서 있었다. 10년 전 그 집 근처에서 서성이던 생각이 문득 떠올라 쓴웃음을 짓고 있는데 갑자기 문이 열렸다. 무의식 중에 길모퉁이로 몸을 숨겼다. 미스 장이 아닌 웬 중년의 미국 여자가 황급히 문을 나섰다.  
  며느리와 둘이서 부엌 식탁에 앉아 콩나물을 다듬고 있는 중이었다. 깔끔한 며느리는 콩나물을 무쳐도 항상 꼬랑지를 딴다. 며느리가 나를 바라보다가 잠시 측은한 표정을 지었다.
  “어머니, 흰머리가 너무 많네요. 머리도 많이 길었어요.”
  내 몰골이 흉측하게 비쳤나 보다. 그러고 보니 고무줄로 묶어도 될 만큼 머리가 길어 있었다.
  다음 날, 나는 며느리와 같이 미장원엘 갔다. 그리고 며느리가 시키는 대로 또 미용사가 해주는 대로 그대로 따랐다. 커트를 하고 파마도 했다. 생전 처음 염색도 하고 하이라이트라는 것을 몇 가닥 넣었다. 미용사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불로우드라이어를 하고 고데로 머리 모양을 창조해냈다.

  “어머니, 10년을 젊어 보이세요. 정말 너무 멋있어요.”
  미용사도 만족한 미소를 띠었다. 내가 봐도 놀랄 만큼 완전 딴 여자가 되어 있었다. 머리 모양이 이렇게도 사람을 달리 보이게 한다는 것에 나는 놀랐다. 언젠가 본 며느리 친구의 친정엄마라는 여자가 생각났다. 상쾌한 기분으로 미장원을 나와 우리는 바로 옆에 있는 화장품 가게에도 들르고 옷가게에도 들렀다.
  “이 바바리코트, 옛날에 아버님이 영국 출장 가셔서 사 오신 거죠? 아버님이 안목이 높으셨나 봐요. 그런데 너무 오래 이것만 애용해서 많이 낡았어요. 이제 날씨도 제법 춥고 하니 코트 하나 새로 사셔야 되겠어요.”
  그때서야 나는 입고 있는 바바리코트에 눈이 갔다. 거의 사철 내내 이 바바리코트를 즐겨 입었다. 폭신폭신한 카시미어로 된 안감에 지퍼가 달려 있어 비 오는 여름철에도 또 바람 부는 겨울철에도 안성맞춤이었다. 오늘도 무의식중에 이 코트를 걸치고 나왔다.  
  “어머니도 이제 좀 가꾸고 젊게 사세요. 화장품 가게에서 가르쳐준 대로 하면 피부도 고와지고 주름살도 줄어들 거예요. 저도 오늘 많이 배웠어요. 이제 저녁마다 저랑 둘이서 젊어지기 시합하세요.”
  며느리가 신이 나서 깔깔 웃었다.    
  
  그 며칠 후, 며느리와 같이 병원엘 갔다 오는 길에 산소엘 들렀다. 아무 이상이 없다는 종합 진단 결과에 며느리가 진심으로 기뻐하며 아버님한테 가자고 제안을 했기 때문이다. 아마 걱정을 많이 한 모양이다. 나 역시 혹시 심장에 무슨 이상이 있으면 어쩌나 하고 은근히 염려를 했었다.
  “아까 의사가 깜짝 놀라는 거 보셨죠? 어머니 오늘 너무 이쁘세요. 아버지도 깜짝 놀라실 거예요.”
  며느리는 깜짝깜짝을 연발하면서 신이 나서 손뼉이라도 칠 것같이 좋아했다. 며느리의 팔짱을 끼고 등성이를 올라가다가 저쪽 소나무 밑에 놓여있는 긴 의자에 시선이 갔다. 빈 의자가 무척이나 쓸쓸해 보였다.
  순간, 한줄기 바람 같은 것이 등줄기를 훑고 지나가면서 뭔가 알 수 없는 감정이 쏴아아~ 하고 가슴 속에서 소용돌이 쳤다. 그리고 슬픈 얼굴을 한 미스 장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졌다.
  어디에선가 아주 먼 곳에서 어머니···· 하고 나를 부르는 그녀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나는 깜짝 놀라 사방을 둘러보았다. 꿈에서 내 손을 붙들고 어머니라고 부르며 목놓아 울던 미스 장, 그녀가 나를 또 다시 어머니라고 부르고 있었다.
  눈물을 흥건히 머금은 그 소리의 여운은 점점 멀어져갔고, 그녀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네가 가시꽃이었다 하더라도, 그 향기로 내게 진 빚은 이미 다 갚았잖느냐? 그렇게 사라지지 않고 너와 나의 실마리를 풀 수는 없었을까?’
  요즘은 손자 녀석들이 시끄럽게 굴어도 밉지가 않고 예쁘기만 하다. 며느리하고 도란도란 얘기도 자주 주고받는다. 밥도 한상에서 먹고 출근하는 아들을 바라보며 운전 조심하라는 말까지 덧붙인다. 아들네는 항상 별개의 식구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이제는 나도 아들네와 한 식구라가 되었다는 소속감이 생겼다.
  그중에서도 제일 값진 것은 매일 아침 출근하듯 집을 나서는 버릇이 없어진 것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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