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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보문화와 나의 마지막 인생 (정인갑)
2010년 08월 05일 15시 28분  조회:6565  추천:61  작성자: 정인갑

족보문화와 나의 마지막 인생


정인갑



최근 본인은 한국 인천 송도 국제도시에 황하문화원
(黃河文化院)을 설립하였다. 문화원 업무중 족보의 정리와 번역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어떤 친구는 이해하지 못하며 말한다.
“당신 같은 능자가 족보를 하다니?”
“다 찌그러져가는 족보에 미련을 가질 필요가 있는가?”

필자가 족보에 발을 들여놓은 데는 그 연유가 있다. 1982년의 어느날 필자는 본인이 근무하는 기관 옆에 사는 북경인 김계월(金桂月)이라는 사람의 집을 방문한 적이 있다. 필자가 조선족이라는 소문을 듣고 특별히 초청하였던 것이다. 그는 필자에게 말하였다.

“나는 비록 만족(滿族)으로 돼 있지만 사실은 조선족이다. 문혁 때 없어진 우리집 족보에 ‘사르호 김씨, 원래는 조선 정주인이다(薩爾湖金氏, 其先朝鮮定州人也)’라고 씌어져 있었다”

사르호는 현 요녕성 무순(撫順)시에서 동쪽으로 약 20킬로, 후금(後金, 청나라의 전신)의 수도 신빈(新賓)에서 서쪽으로 약 20킬로 떨어진 마을인데 원래 조선족이 많이 살았으나 지금은 저수지에 잠겨 없어졌다. 그의 조상이 병자호란 때 무순으로 끌려와 살며 본관을 사르호로 고친 모양이다. 그는 눈물을 머금으며 말하였다.

“만약 족보가 남아 있으면 대대손손 우리 가족의 뿌리를 전하련만…”

그때 필자도 같이 서운해 하였다.

또 한번은 성이 박씨인 북경 모 대학의 학생을 만난 적이 있는데 본관이 북경이며 조선족이 아니라고 우겼다. 필자가 “필연 조선족일 것이다. 할아버지가 살아 계신다니 물어보아라”라고 하였다. 며칠 후 그는 필자에게 말하였다.

“과연 조선족이더라. 우리 가족은 북경에 산지 몇백년 되고 증조부까지 대대손손 향산(香山)의 문직이를 하였다.”

“할아버지와 잘 의논하여 간단한 족보라도 하나 만들어 봐라. 한 개 가족이 자기의 뿌리도 몰라서 될소냐”라고 하니 그는 막연해 하였다. 필자도 그를 도와주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웠다.

유사한 일이 필자의 가정에도 들이닥쳤다. 한번은 필자의 처가 아들의 학부모 회의에 참석하였다. 중국어에 약한 처가 아들과 한국말을 하였고 그 때마다 아들은 이마살을 찌프리고 엄마의 허벅다리를 꼬집으며 한국말을 못하게 하였으며 저녁에 돌아와 엄마와 대판 싸웠다.

“아마 내일부터는 반 학생들이 ‘너의 엄마는 주절주절 새소리(鳥語)를 하더라’라며 놀릴 것이다. 절대 조선말을 하지 말 것, 조선말을 하려면 학교에 나타나지 말 것…”
그날 밤 우리 내외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저놈들이 우리가 살아 있을 때도 저러니 죽은 후에는 아예 조선족이 아니라며 심지어 이력서에 ‘한족(漢族)’이라 적을 것이 아닌가. 무슨 수를 써야겠다.”

어느 해인가 필자는 서안(西安)에 출장갔다가 베개만한 옥돌 하나를 사왔다.

“여기에다 족보를 색여놓고 죽어야지. 이놈들이 이 옥돌은 아까워서 버리지는 않을 터이고, 그러면 우리 가족의 뿌리를 대대손손 알거야.”

몇 년 전 중국과학원의 이춘성(李春成) 교수가 연안이씨(延安李氏)의 족보를 주며 가승(家乘)을 하나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다. 이춘성의 형 이봉덕(李奉德)은 미국 LA에 살며 이춘성의 자식들도 모두 미국으로 이민간지 오래되었다.

“우리 형제의 손자들은 다 한국말을 모른다. 아마 우리 가문은 손자세대 부터는 미국인 행세를 할 것 같다. 그러나 조상의 뿌리는 알아야지.”

필자는 이춘성 교수의 처사를 대견하게 보았으며 기꺼이 가승을 만들어 100부 정도 인쇄해 드렸다. 그 가승의 맺는 말에 이런 말을 적어넣었다.

“우리들이 한일합방의 화에 쫓겨 조국을 떠난지 어언 100년이 되온다. 손자 세대부터는 우리말을 모르는 미국인으로 될 듯하다. 인생을 하직하기 전 이 일을 생각하면 허전한 마음과 슬픈 심정을 금하지 못할 때도 많다.…방랑 자체가 인류의 본성이며 그저 나는 지구촌의 사람이다라고 생각하면 그뿐이 아닌가라며 자신을 위로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디에 살든, 어느 나라의 국민이든 우리 가문의 원 뿌리는 한국이고 이 몸에 흐르는 피의 원천은 한민족이라는 것만은 후손들이 알아야 할 것이 아닌가! 이런 의미에서 본 가승을 만들어 남기는 바이다. 후손들이 대대로 이 가승을 간직하며 물려주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금년은 한일합방 100주년이다. 중국 조선족의 경우 100년이면 4세며, 5세가 시작되었다. 집집마다 가승정도는 만들어 후세에 물려주어야 한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이보다 더 중요한 재산이 있겠는가? 구 소련의 경우도 중국과 비슷하다. 일본과 미국의 동포는 조금 늦지만 역시 후손들에게 민족의 뿌리 의식을 심어주어야 할 관건적 시각에 이르렀다고 본다.

2001년 한국의 종묘문화가 유네스코의 인류문화재로 등록되었다. 종친 문화는 우리민족 문화의 귀중한 자산이다. 그것을 잘 정리하면 우리민족의 문화를 보전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인류문화에 대한 공헌이기도 하다. 그러나 남아있는 족보는 모두 한문으로 씌어져 있으며 현재 사람들이 터득하기 어렵다.

필자는 북경대 중문학과 한문학 전공을 졸업하였고 중화서국(中華書局)에서 평생 고서정리를 하였으며 청화대학 중문학과 교수로도 있었다. 족보를 정리, 연구, 번역할 능력이 충분하고도 남음이 있다. 나의 지식과 능력으로 모국에 기여할 무엇이 없겠는가 고민하던 끝에 족보문화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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