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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춘천마라톤에서 풀코스 완주에 처음 도전한 배종훈씨가 근육이완증을 앓는 아들 재국이가 탄 휠체어를 밀며 달리고 있다(왼쪽). 4시간 30분을 목표로 출발한 배씨와 재국이의 풀코스 완주 기록은 5시간 5분이었다. 힘겨운 완주를 끝낸 재국이와 아버지는 껴안고 눈물을 흘렸다(오른쪽). /성형주 기자·박상기 기자 |
[희망의 마라톤 첫 완주 성공한 배종훈·재국 父子]
앉아있기도 힘든 재국이에게 넓은 세상 보여주고 싶어서 2007년부터 국토 종단 대장정
80㎏ 무게 이기며 달린 아버지… 완주한 뒤 아들 품에서 눈물 "포기하는 모습 보이기 싫었죠"
아들 재국(17)이가 앉아 있는 휠체어를 두 팔로 밀며 달리는 아버지 배종훈(47)씨의 거친 숨소리가 점점 더 커졌다. 27일 오전 11시 50분 춘천마라톤 풀코스 22㎞ 지점. 온몸을 4개의 안전띠로 꽁꽁 동여맨 채 아버지가 밀어주는 휠체어에 앉아 있는 재국이 역시 몸을 꼿꼿이 버티고 있는 것만으로도 힘겨워 보였다. 재국이는 근육이 점점 퇴화하고 굳어가는 희귀 난치병인 근육이완증을 앓는다. 혼자서는 걸을 수도 뛸 수도 없다.
"뒤에서 아빠가 힘들어하는 숨소리가 들릴 때마다 저는 딱 한 가지 생각만 해요. 빨리 나아서 아빠와 나란히 뛰고 싶다는 거요." 이날 춘천마라톤은 희망을 포기할 수 없는 부자(父子)가 처음으로 도전한 마라톤 풀코스 레이스였다.
재국이와 아버지가 함께 달리기 시작한 건 2007년부터였다. 스스로 몸을 가누지 못하면서도 집에만 있는 것을 답답해하던 재국이를 데리고 아버지는 국토 종단을 시작했다. 아버지는 "학교 운동회 때 한쪽 구석에서 물끄러미 친구들을 구경하는 재국이를 보니 마음이 아팠다"며 "재국이에게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가슴에 '희망'이라는 문구를 새긴 재국이와 휠체어를 미는 아버지는 가는 곳마다 화제가 됐다. 근육병 환자들의 어려움을 알리는 역할도 했다. 근육에 힘이 없기 때문에 재국이는 휠체어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다리가 저려오고 척추에 통증이 생긴다. 그러나 국토 종단을 하는 동안 재국이는 한 번도 중도에 포기한 적이 없었다.
재국이가 타는 휠체어의 무게는 25㎏. 재국이의 몸무게까지 더해 80㎏이나 나가는 휠체어를 밀며 전국을 누비는 동안 아버지는 온몸에 근육이 가득한 '몸짱'이 됐다. 하지만 휠체어를 밀며 수십㎞를 달리는 힘은 사실 '근육'이 아니라 '미안함'에서 나온다. "재국이가 여덟 살이 될 때까지도 무슨 병인지 제대로 알지 못해서 엉뚱한 치료를 받았어요. 더 일찍 병을 알아차렸다면 지금쯤 재국이 몸 상태가 더 좋았을지도 모르는데…."
재국이와 아버지가 마라톤이라는 새로운 도전에 나선 것은 '미국 대륙 횡단'이라는 새로운 꿈이 생겼기 때문이다. 재국이는 "큰 나라인 미국에 가서 멋진 그랜드캐니언도 보고 세상에서 가장 큰 도시라는 뉴욕에도 가보고 싶다"며 "미국을 횡단하면 우리나라 사람들도 근육병에 걸린 친구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가질 것 같다"고 했다. 거리로 5000㎞가 넘는 미 대륙 횡단을 하려면 하루 50㎞씩 100일 이상 달려야 한다.
재국이에게 남은 시간은 많지 않다. 선천적으로 근육병을 갖고 태어난 아이들의 평균 수명은 20세 전후다. 여러 단체·개인의 후원 계획이 무산되면서 재국이의 꿈을 언제 이룰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부자는 포기하지 않고 마라톤을 통해 꾸준히 훈련을 이어가고 있다.
재국이와 아버지는 매주 2~3번씩 대전의 집 근처 하천변을 20㎞씩 뛴다. 곁을 지나는 주민들이 '파이팅'을 외쳐줄 정도로 재국이는 유명 인사다. 아들에게 지쳐 포기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아버지는 춘천마라톤을 한 달 앞두고부터 매일 오전 홀로 20㎞씩을 더 뛰었다.
27일 오후 2시 37분. 5시간5분 만에 재국이의 휠체어가 결승점에 들어섰다. 힘겨운 완주를 끝낸 아버지는 재국이의 품에 얼굴을 묻은 채 눈물을 흘렸다. 재국이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버지 배씨는 "무엇보다도 완주하겠다는 아들과의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서 다행"이라며 "힘들었지만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재국이랑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춘천=박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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