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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돼지의 해…돼지의 진면목
밥 주는 사람, 실험실 연구자 구별…먹이 뺏길까봐 강자 속이는 전략도
고기, 산업 부산물 연구만 하다 간과…“개, 침팬지, 돌고래와 인지능력 비슷”
무언가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어린 돼지. 돼지의 인지능력이 우리가 알던 것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실험 연구결과가 잇따르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돼지가 재발견되고 있다. 고기 생산과 의학·산업 연구는 많았지만, 정작 돼지란 동물 자체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최근 동물행동학과 비교심리학 분야의 연구 성과는 우리가 몰랐던 돼지의 또 다른 모습을 드러낸다. “돼지는 개나 어린아이 비슷한 인지 능력이 있다. 자의식이 있고 창조적 놀이를 즐기며 감정을 겪는다. 우리와 그리 다를 게 없다”는 공감대가 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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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둔하다는 건 편견…똑똑한 장난꾸러기
도시 생활을 마치고 올해부터 경북 봉화에서 자연 양돈을 시작한 김성만 하하농장 대표는 이런 일화를 들려줬다.
“어느 날 임시 축사의 철망 밑으로 돼지 다섯 마리가 빠져나간 것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산이나 남의 밭으로 달아나면 어쩌나’하고. 그런데 막상 가까이 다가가자, 밥 주는 사람 알아보고 개처럼 졸졸 따라오더라.”
그는 “직접 돼지를 기르면서 ‘생각했던 것과 다른 동물이구나’ ‘바라보는 눈빛이 기르는 개와 어쩌면 그렇게 닮았을까’라고 느낀다”고 말했다.
돼지는 가축화하면서도 집단생활을 하던 야생 멧돼지의 형질을 거의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마크 피터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연구자들도 비슷한 경험을 한다. 문홍길 농촌진흥청 양돈과장은 “오랫동안 실험실에서 같이 지낸 돼지는 다가와 주둥이로 찌르고 슬쩍 깨물며 장난을 치는 등 반려견처럼 행동하곤 했다”고 말했다.
늑대는 가축화로 개가 되면서 큰 변화를 겪었다. 사람에게 친화적인 형질을 선택한 결과다. 그러나 약 9000년 전 중국과 중동에서 각각 가축화한 돼지는 빨리 자라고 잘 번식하는 형질 중심으로 육종했다. 그 결과 행동·인지·사회성 등은 야생 멧돼지의 형질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오스트리아 연구진이 돼지가 사람의 얼굴을 알아보는지 실험하고 있다. 돼지는 얼굴과 뒷모습뿐 아니라 입과 눈 등 얼굴의 특징도 알아봤다. 원드락 외 (2018) ‘응용 동물행동학’ 제공.발굽 동물인 돼지의 손 구실을 하는 가장 예민한 감각기관인 코가 그런 예다. 사료를 먹어 필요 없을 것 같지만 돼지는 개보다 냄새를 더 잘 맡는다. 유전체 분석 결과 돼지는 개보다 더 많은 후각수용체 유전자를 보유한 것으로 밝혀졌다. 무리 생활하는 멧돼지와 마찬가지로 돼지는 예민한 후각으로 먹이 찾기는 물론 다른 돼지와 사회적, 성적, 감정적 교류를 하고 위계질서를 형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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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새보다 시각으로 소통
그러나 사람과 소통하는 수단은 냄새보다 시각이다. 마리안 원드락 등 오스트리아 빈대 수의학자들은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 방목해 기르는 돼지 33마리에게 컴퓨터 화면으로 처음 보는 여성 10명의 모습을 보여주고 각각을 구별하는지 알아봤다. 놀랍게도 31마리가 얼굴이나 머리 뒷부분을 보고 사람을 구분했다. 일부는 눈과 입 등 얼굴 특징도 가려냈다. 과학저널 ‘응용 동물행동학’ 최근호에 실린 이 논문은 “돼지가 사람을 알아본다”는 통념을 뒷받침한다.
돼지는 돌고래나 침팬지처럼 특정 사물을 가리키는 제스처나 말을 알아듣는다.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 심리학자들은 돼지에게 공, 프리스비, 아령 등 3가지 물체와 가져와, 앉아, 뛰어 등 3가지 행동을 가리키는 말을 들려주며 훈련했다. 돼지는 이들 각각을 구분해 알아들었을뿐더러 “공 가져와”처럼 이들이 결합한 말도 알아들었다.
돼지가 우둔하다는 편견을 깨는 행동도 관찰됐다. 침팬지나 까마귀는 동료에게 먹이를 빼앗길 것 같은 상황에서는 먹이가 숨겨진 곳을 알면서도 짐짓 엉뚱한 곳으로 상대를 유인하는 ‘속임수’를 쓴다. 돼지도 이런 전략적 행동을 한다는 사실이 일련의 연구로 드러났다. 먹이 정보를 사전에 아는 돼지는 처음 온 강자가 가까이 있으면 일부러 먹이로부터 먼 곳으로 방향을 바꾸는 경향이 있다. 지배적 돼지도 무작위로 먹이를 찾는 게 아니라 정보가 있는 돼지를 따라다니다 결정적 순간에 빼앗는 손쉬운 전략을 펴기 때문이다.
이처럼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 능력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실험에서도 확인됐다. 개보다 영리한 침팬지가 이 능력에서는 개에 못 미친다. 사람이 무엇을 손가락으로 가리킬 때 침팬지는 손가락 끝을 보지만 개는 주인의 의도를 눈치채고 물체를 본다. 돼지는 개처럼 손가락이 가리키는 물체에 주목했다.
동물이 자의식이 있는지 알아보는 유명한 ‘거울 실험’이 있다. 거울에 비친 모습이 자신인지 알아보는 이 실험을 통과한 동물은 침팬지, 오랑우탄, 돌고래, 아시아코끼리, 큰돌고래, 범고래, 까치 등이다.
도널드 브룸 영국 케임브리지대 연구자의 실험에서 돼지는 일단 이 실험을 통과하지 못했지만, 거울에 비친 상을 이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돼지 8마리 가운데 7마리가 벽 뒤에 있어 눈에 보이지 않지만 거울에는 비치는 먹이통을, 거울 반대쪽으로 가 찾았다. 한 마리만이 거울 뒤에 밥그릇이 있나 기웃거렸다.
조이스틱을 조작해 컴퓨터 화면의 커서를 움직이는 능력에서 돼지는 개보다 윗길이다. 셰리 퍼거슨 미국 식품의약청 과학자 등 연구자들은 돼지가 손잡이를 일정 시간 발굽으로 누르면 먹이를 보상으로 주는 실험을 했다. 발굽이 자꾸 미끄러지자 돼지들은 주둥이를 대신 사용해 손잡이를 눌렀다. 돼지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제대로 이해했고, 난관을 유연하게 돌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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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대비하는 시간관념까지
돼지의 인지능력을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는 이밖에도 많다. 장기 기억력이 있고 시간관념이 있어 미래를 대비한다. 새로운 것을 모색하고 호기심이 많으며 다양한 놀이를 즐긴다. 다른 돼지의 감정 상태를 느껴 공감하고 저마다 개성이 있다. 2015년 ‘국제 비교심리학 저널’에 유명한 ‘생각하는 돼지’ 논문을 쓴 신경과학자이자 공장식 축산 돼지의 피난 센터 사업을 벌이는 로리 마리노 박사는 이렇게 말한다. “돼지는 개, 침팬지, 코끼리, 돌고래, 그리고 심지어 사람 같은 고도의 지적인 동물과 인지능력의 많은 부분이 비슷하다. 우리가 돼지와의 총체적 관계를 다시 생각할 과학적 증거는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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