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눈이 오네.”
아침에 일어나 창밖을 내다보니 작은 눈송이들이 꽃잎같이 흩날리고 있었다. 테라스의 화분우에, 란간에... 점점이 떨어지는 눈송이들을 보노라니 4월의 강기슭에 하늘하늘 떨어지던 사쿠라 꽃잎같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작년에는 흩날리며 지는 하얀 꽃잎을 보면서 “눈송이처럼 날리네.”하고 생각했었는데…
“새해 첫 눈이다!” 그렇게 혼자말을 하고 보니 아직 음력설날이 안 왔으니 새해라고 해도 되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근 30년동안 음력설이 없는 나라에서 살다보니 ‘음력설’이라든가 ‘춘절’이라든가 하는 개념들이 점점 희미해져 가고있다.
언제부터인가 음력설날은 친구들과 지인들이 보내오는 신년축하메시지에서 알게 되는, 반가우면서도 어딘가 다른 차원에서 벌어지는 일같이 멀게 느껴지는 그런 날이 되였다. 달력에도 표시되지 않고 정상출근을 해야 하는 일상의 날이 되다 보니 신년축하메시지 답장도 학교에 가는 전철이나 지하철안에서 하기가 십상이였다. 이번에도 원고 청탁을 받지 않았다면 음력 설날 같은 것에 신경도 쓰지 않았을 것이다. 신문사로부터 설날에 관한 글을 부탁해 왔기에 언제까지 쓰면 되는지 하고 문의했더니 설전에 보내달라는 답장을 받았다. 양력설은 이미 지났으니 음력 설이라는 말인데 나는 날자를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인터넷에 들어가서 찾아 보았더니 올해는 음력설이 2월 10일이였다.
생각해보면 나에게 있어서 음력설날은 시집식구들과 함께 하는 명절이라는 이미지로 기억되였다. 상을 서너 개 차려야 할 정도로 많은 친척들이 모여서 맛있는 설음식을 만들어 먹는 북적북적하고 화목한 분위기가 넘치는 그런 날이였다. 좀 피곤하고 힘들지만 마음이 따뜻해지는 가족의 날이였다. 아마 늘 조용한 우리 집에 비해서는 색다른 분위기라서 그랬던 것 같다.
어린 시절의 나에게는 음력설날에 대한 별다른 기억이 없고 오히려 년말을 많이 기다렸던 것 같다. 해외에 있는 언니 오빠에게서 밤이나 쵸콜렛 같은 귀한 선물들과 예쁜 년하장이 오는 시기라서 그랬을 것이다. 우리 부모님도 전반생은 외국에서 사신 분들이라 음력 설날을 특별히 챙기시지 않으셨다.
그런 나에게 음력 설날의 즐거움을 알려준 것은 남편이였다. 가족이 모이는 날이고 부모님에게 효도하는 날이라는 것을 알려줬다. 그러고 보니 이제는 돌아가신 시부모님들 환갑 잔치도, 막내 시동생의 결혼식도 음력 설련휴 기간이였다. 지금도 남편은 섣달그믐날이 되면 멀리 있는 형제들에게 쭉 전화를 돌린다. 오랜만에 듣는 가족의 목소리로 그리움에 메말랐던 마음을 적시는 것 같다. 매일매일 틱톡(TikTok)으로 중국 동영상을 돌려보는 남편의 중국사랑, 남편은 아마 귀에 익은 말소리, 눈에 익은 풍경으로 이제는 쉽게 가족과 친우들을 만나지 못하는 그 허한 마음을 채우는 것이리라.
설 행사 하면 성묘가 중요한데 머나먼 이국 땅에서 사는 몸이라 부모님 산소에도 쉽게 찾아가지 못한다. 넘치도록 나를 사랑해주신 부모님 산소에 제사 밥 한술, 술 한잔 올리지도 못한다. 아무리 비행기를 타면 하루 만에 갈 수 있는 곳이라 해도 쉽게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 또한 현실이니 불효라면 이렇게 멀리 와서 사는 그 자체가 불효일 것이다.
근 반생을 일본에서 살고 있는데 나는 오랫동안 공중에 붕 뜬 느낌이였다. 모든 것이 편하고 삶이 힘든 것도 아닌데 뭔가 어디에도 발을 붙이지 못한 느낌,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 그런 공허함 때문에 마음에 휑하니 구멍이 났다. 마치 양력설과 음력설 사이의 이 새해도, 묵은해도 아닌 기간처럼 어중간한 위치에 선 느낌이였다.
20여년간 일본 학회에 다니면서 많은 론문을 발표하고 그랬지만 나는 완전히 그들과 같은 사람이 될 수 없었고 중국의 잡지나 신문에 시나브로 글을 발표했지만 어딘가 뒤쫓아가는 느낌이였다.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던 그 공허감이 동인들과 함께 재일본조선족작가협회를 세우고 전일본중국조선족련합회라는 커뮤니티에 소속되면서 사라졌고 마음의 구멍이 메워 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내가 설 자리에 선 것같은 그런 안정감이 생기였다. 마음이 안정되니 글도 잘 써지였고 ‘나’가 누구인지, 무엇을 해야 할지도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태양의 운동을 기반으로 하는 양력설과 달의 운행을 바탕으로 하는 음력설 사이의 중간지역, 그것이 바로 내가 서 있는 곳이다. 양력설이 되면서 새해를 시작하고, 그렇게 새로운 기분으로 일년계획을 세우고 준비를 하면서 춘절(春節)-음력설날을 향해 가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시공간, 생각해보니 의미가 깊다.
더구나 올해는 립춘(立春)이 정월과 섣달에 거듭 드는 ‘재봉춘’(再逢春)이라고 한다. 립춘은24절기 가운데 첫 절기로, 이날부터 새해의 봄이 시작된다. 그 립춘이 올해는 2월 3일에, 양력설과 음력설 사이에 들었으니 벌써 봄기운이 느껴지는 기분이다. 마침 그날이 도쿄에서 련합회 리사회 총회가 있는 날이라 친구는 새봄이 시작되는 첫날 함께 할 일을 알려주며 행복한 기운을 전해준다.
올해 따라 일본은 양력 설날에 노토반도 지진이 일어났고 이튿날에 비행기 착륙 접촉사고가 일어났다. 많은 사람들이 가족을 잃고 삶의 터전을 잃었다. 하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다시 하나하나 복구를 해가며 한발한발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어쩌면 이럴 때 아직 음력설이 앞에 있고 립춘이 거듭 든다는 것이 희망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재봉춘’은 어려운 처지에 빠진 사람이나 상황이 봄을 맞은 듯 새 기운을 얻어 회복된다는 의미를 가지기도 한다고 하니까. 아직 힘든 시기이지만 립춘이 되여 새봄이 되고 음력 설날이 오며 새롭게 해가 시작된다면 지나간 상처를 보듬으며 새롭게 시작할 희망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큰 소리로 말해줬다. “음력 설날이 와야 진짜로 새해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힘든 묵은해는 곧 지날 것이고 새해에는 좋은 일이 많이 생길 것입니다. 힘내세요!” 이는 어쩌면 내가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새해이면서도 새해를 준비하는 중간지역, 그런 시간, 그런 공간에 있다는 것이 어찌 좋지 않다고 할 수 있겠는가. 가장 희망에 넘치고 삶의 생기가 넘치는 시간이 이때가 아니겠는가. 그렇게 생각하니 새해에 대한 기대에 마음이 벅차 오른다.
잠간 내리던 눈이 어느 사이에 그쳤다. 구름 사이로 해살이 비스듬히 내비친다. 원래 일년에 한두 번밖에 눈이 안 오는 곳이니까 당연하지 하면서도 어딘가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내 고향은 눈이 많이 내리는 곳이였는데…
눈을 감으니 마음속에 눈이 내리고 있었다. 지난 상처를 보듬는 듯 하얀 눈이 소복소복 내린다.
/엄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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