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 로앙가 기예의 전승인 고굉길의 이야기
길림시무형문화유산체험관에서 고굉길은 또 동북의 로앙가(老秧歌)를 깊이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는 손수건을 움켜쥐고 부르는 곡조에 따라 몸을 비틀었다. 그의 동작은 느리지만 힘이 있어서 동작마다에 박자를 밟는다.
"앙가는 비트는 것이고 노래로 부르는 것이다." 동북 로앙가의 문화의 뿌리를 찾고저 고굉길은 동북지역의 여러 현성과 향진에서 현지조사를 했다. 그는 이 흑토지의 문예 유전자를 잘 발굴하고 보호하기를 바랐다.
49세의 고굉길은 동북앙가대판(秧歌唱大板)을 노래하는 길림시급 무형문화유산 기예의 전승인이다.
그는 대판이라는 도구와 관련된 창조, 공연 형식은 동북 앙가의 중요한 요소였다고 설명했다. 대판은 타악 리듬 기능을 갖추고 있으며 설화(说口) 반주로 사용되기도 해 음악과 가사가 없이 단독으로 무대에 등장할 수 있다.
동북지역에 큰 북, 태평소(唢呐) 등 악기가 부족했던 시대에 대판을 부르는 것이 앙가대의 리듬을 장악하는 ‘령혼’으로 되였으며 세세세대 전승되였다.
고굉길은 지금의 동북 앙가를 ‘신파앙가’에 비유했다. 신파앙가는 무용, 신체단련체조, 류행음악 등 원소를 융합시켰으며 대판은 앙가 무대에서 물러났다.
“나의 일은 오래된 전통을 유지해가는 것입니다.”
송화강변에서 로앙가를 추고있는 사람들(차영국 찍음)
고굉길은 무형문화유산체험관의 일상관리사업을 책임졌다. 많은 동북앙가 애호가, 관광객이 그에게서 로앙가 대판 기법과 지식을 배웠다.
체험관에 몇명의 앙가 애호가들이 와서 그는 대판을 불렀다. 노래가락이 완곡하고 낮아 이따금 박수를 받았다. 일부 관중들은 근처 앙가팀의 주력성원으로서 그들과 고굉길은 아주 익숙하다.
길림시 도시구역에는 수십개의 앙가대가 활약하고있으며 고굉길은 늘 그들과 함께하고 있다. 흥이 나면 그는 북치기 자리를 차지하고 북 리듬으로 대오를 지휘하기도 한다.
"고선생은 앙가를 위해 많은 심혈을 기울였다." 라고 말하는 장욱은 대형 앙가팀의 책임자로서 늘 고굉길을 초청하여 팀의 활동에 참가하게 했다.
고굉길은 료녕, 흑룡강 등지의 시골에 가서 조사를 한 후 길림지역의 앙가와의 차이에 대해 장욱과 이야기했다.
두사람을 기쁘게 한 것은 동북앙가가 지금도 여전히 왕성한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Z세대’, 중년들이 끊임없이 앙가 대렬에 합류하는데 젊은이들이 인터넷에 익숙하여 생방송, 짧은 동영상 등 형식을 통해 광범히 전파함으로써 끊임없이 그 열기를 올리고 있다.
최근 몇년 동안 전통 문예의 발전과 부흥에 따라 고굉길은 빈번히 초청을 받아 업계 전문가와 학자들과 얼굴을 맞대고 교류할 기회가 있었다.
"내 책임은 동북 앙가의 력사를 잘 발굴하고 보호하는 것이다."라고 고굉길은 말한다.
/송화강넷
编辑:유경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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