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화
어릴 적 우리 집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저게 너희 집이냐?” 하고 우리 집 뒤뜰을 가리킬 때마다 대답 대신 먼저 수치스럽게 생각되는 물건이 있었다. 바로 뒤뜰에 쌓여 있는 소똥무지였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신근한 로동으로 우리집은 새 벽돌집으로 이사했지만 집 뒤뜰에는 여전히 커다란 소똥무지가 있었다.
그러나 부모님은 소똥을 더럽고 또 수치스럽다고 생각하지 않으셨다. 농사군에게 소똥은 발을 기름지게 하는 좋은 거름이였고 소가 먹고 남긴 것을 다시 밭으로 돌려보내는 순환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그 소똥무지가 더럽고 싫었다. 더우기 여름이 되면 소똥무지 우에는 파리들이 새까맣게 들끓었다. 황소가 기다란 꼬리를 휘휘 저을 때마다 파리떼는 윙윙거리며 흩어졌다가 다시 소똥무지에 내려앉군 했다. 그 시절에는 소를 키우는 집마다 소똥무지가 있는 것이 흔한 풍경이였지만 아직 어린 나에게 그것은 몹시 부끄러운 풍경이였다. 그래서 뒤뜰에 소똥무지가 없는 집, 다시 말해 소가 없는 집이 그렇게도 부러웠다.
황소는 농사군인 우리 부모님에게 없어서는 안 될 보배였다. 봄철 밭갈이부터 시작해 겨울철 땔나무를 실어 나르는 일까지... 소 없이는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해낼 수 없었다. 발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어머니, 아버지가 가장 먼저 하는 일도 하루종일 함께 일한 황소의 먹이를 작두로 써는 일이였다. 황소의 먹이는 계절마다 달랐다. 여름에는 싱싱한 풀을 베여 먹였고 가을철에는 달콤한 옥수수대를 잘라 먹였고 겨울에는 벼짚을 잘게 썰어 사료와 섞어 먹였다. 하루 종일 밭에서 묵묵히 일한 황소는 그 먹이를 맛있게 받아먹었고 부모님은 그런 황소를 바라보며 비로소 하루의 고단한 일과를 마무리하군 했다.
황소와 소똥무지를 동일시하던 내가 다른 눈으로 황소를 보게 된 사건이 있었다. 우리 집에는 밭이 여러 곳에 있는데 허동이라는 곳에도 밭이 있었다. 허동의 땅은 비옥하여 농사가 잘 됐지만 사람들은 그 곳의 밭을 꺼렸다. 리유는 밭이 큰 강 건너에 있기 때문이였다. 강은 깊은 곳과 얕은 곳이 있어 물곬을 잘 찾아 건너면 별문제 없었지만 물곬을 잘못 잡거나 물이 불을 때면 자칫 인명사고까지 생길수있는 위험한 곳이였다.
그날 아버지와 어머니는 허동 강을 건너 후리채를 하고 돌아오는 길이였다. 박달나무 후리채를 가득 실은 소수레에 부모님이 올라탔고 황소는 수레를 끌고 강에 들어섰다. 봄이라 얼음물이 풀리면서 물이 불어난 탓인지 생각보다 훨씬 깊었다. 순식간에 수레가 물에 잠기기 시작했다. 부모님은 급히 수레에서 내려 서로 손을 붙잡고 강을 건넜는데 물은 목까지 차올랐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의지하며 가까스로 강가에 올랐다.
그런데 문제는 소였다.
무거운 짐을 실은 수레를 맨 채 강 한가운데에 빠진 황소는 거센 물살에 휩쓸리며 힘겹게 버티고 있었다. 수레만 벗어났더라면 스스로 헤염쳐 나왔을 텐데 소의 목에는 멍에가 단단히 묶여 있었다. 돌연상황에 놀란 황소는 두려움과 괴로움에 눈을 희번뜩거리면서 부모님이 있는 쪽으로 머리를 흔들었다. 그 모습이 ‘제발 살려 달라’고 애원하는 것 같았다. 그대로 두면 물살에 떠내려가 죽을 수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이였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어머니가 떨리는 목소리로 아버지에게 말했다.
“여보, 우리는 살았지만 저 소는 어떻게 하겠어요. 너무 불쌍해요. 저걸 보세요, 우리를 보고 살려 달라고 저럽니다.”
아버지도 차마 황소를 외면할 수 없었던지 소를 구하기 위해 다시 물속으로 들어갔다. 아버지가 소수레가 있는 곳까지 다달았을 때 어머니는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드는 것 같았다고 후에 말씀하셨다. 겨우 물속에서 목숨을 건져 나온 사람을 다시 죽을수도 있는 세찬 물속으로 들여보냈다는 생각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셨다고 했다.그때 어머니는 자신이 한 말이 후회스럽기 그지없었다고 한다.
다행히 아버지는 수레에 있던 도끼를 더듬어 찾아 황소의 목바줄을 끊어 주었다. 멍에에서 풀려난 황소는 물살을 따라 한참 떠내려가다가 스스로 강가로 헤염쳐 나와 목숨을 건졌다.
아버지가 무사히 강가로 돌아오기까지 어머니는 가슴을 졸이며 차마 눈을 뜨지 못했다고 한다.
놀라고 지친 황소는 집에 돌아오자 축 늘어져 있었다. 어머니는 좁쌀죽 한바게쯔를 쑤어서 황소에게 먹였다. 평소에는 쉽게 먹일 수 없었던 귀한 먹이였다. 황소는 좁쌀죽을 허겁지겁 먹고 난 뒤 기운을 차리더니 정다운 눈빛으로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그런 황소의 잔등을 쓰다듬어주면서 어머니는 말했다.
“오늘 정말 수고 많았다. 그런데 아직 물에 잠겨 있는 수레를 어찌겠니, 아무래도 래일 네가 또 물에 들어가서 건져 와야겠구나.”
다행히 수레는 물살에 밀려 낮은 곳에 걸려 있었다. 강물에 빠져 혼이 난 황소는 물에 들어서기를 몇 번이나 거부하더니 어머니가 잔등을 다독이며 구슬려서야 겨우 물속으로 들어갔다. 아버지가 마을사람 세 명을 불러 고무바지를 입고 물에 들어가 뒤집어진 수레를 바로 세운 뒤 황소에게 다시 메워 강가로 끌어 올렸다. 그 일이 있은 뒤에도 아버지와 어머니는 강물 때문에 여러 번 고생하셨다. 한 번은 허동 밭에 콩파종 하려고 강을 건너다가 물곬을 잘못 잡아 또 한 번의 생사 고비를 넘겼다. 집에 돌아와 밥상을 마주한 아버지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살았으면 됐소. 살았으면 됐소.”이번에는 소가 아니라 어머니가 물살에 떠밀려갔던 것이다. 그때 나는 위험을 무릅쓰고 돈도 되지 않는 고달픈 농사일을 이어가는 부모님이 안쓰러웠다.
그런 일들이 있은 뒤 나는 부모님이 왜서 황소를 그토록 아끼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부모님에게 황소는 단순히 밭을 갈아 주는 집승이 아니였다. 고된 농사일을 함께 견디고 삶과 죽음의 고비마저 함께 헤쳐온 고마운 존재였던 것이다. 어느 날 학교에서 늦게 돌아오니 아버지와 어머니는 소수레에 쌀마대를 싣고있었다.
“밤중에 어디로 가자고 그럽니까?”
“방아 찧으러 가자구 그런다. 빨리 찧어서 쌀 시세가 좋을 때 팔아야지.”
문을 떼고 집에 들어서려는 내게 어머니가 말했다.
“소가 아까부터 갈증이 난 모양이다. 물을 한바게쯔쯤 떠다 먹여라.”
아버지와 어머니는 부지런히 벼마대를 메여 나르느라고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 쓰고 싶은 심정인 것 같았다.
황소는 갈증이 나면 물을 많이 먹었다. 후루록 후루록 몇 번만 들이켜도 한바게쯔 물은 인차 거덜이 났다. 그래서 우리 집에는 소에게 물을 주는 큰 바게쯔가 따로 있었다. 집에 들어가 보니 바닥에 구정물 바게쯔와 소에게 물을 주는 바게쯔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마침 구정물 바게쯔도 비워져 있었는데 두 바게쯔를 비교해 보니 구정물 바게쯔가 훨씬 작아 보였다. 나는 별생각 없이 구정물 바게쯔에 물을 듬뿍 담아 소앞으로 가져갔다. 그런데 소가 바게쯔에 입을 가져다 대더니 곧 머리를 돌려버리는 것이였다.
“소가 물 안 먹습니다.”
“너 구정물 바게쯔에다 물을 주면 어찌니, 소는 비린내 나는 걸 안 먹는다. 소 물주는 바게쯔에 다시 쥐라.”
‘비린내’라는 말에 문득 솥에 있는 소고기국이 떠올랐다. ‘가마솥 안에서 끓고 있는 소고기국도 한때는 저렇게 묵묵히 일하던 한 마리의 소였겠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나는 크고 맑은 황소의 눈과 마주쳤다.
황소의 눈에 물기가 반짝였다. 눈굽에 맺힌 물방울이 천천히 흘러내렸다. 황소가 울고 있는 것 같았다. 나도 속으로 함께 울었다.
어린 나는 고기를 먹지 않으면서 고기가 되는 황소, 풀만 먹으며 묵묵히 일만 하는 황소가 너무 미안하고 안쓰러워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날 나는 ‘황소가 울었다’는 내용의 일기를 썼다.
작문지도 선생님은 그 글을 읽고 참 잘 썼다고 칭찬해 주셨다.

박경화 프로필
1979년 왕청현 백초구에서 출생
아동문학 작가
연변작가협회 아동문학창작위원회 회원
编辑:안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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