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주 창립 70년 이래 연길시 도로망 건설은 하루하루 새로운 변화를 가져왔으며 이곳에 거주하는 대중들은 행복의 탄탄대로에서 초요사회를 향해 활기차게 나아가고 있다.
“진창길로부터 아스팔트 길로의 변화를 직접 목격했습니다. 연길의 도로 변화에 칭찬의 한마디를 하고 싶습니다.” 올해 72세인 연길시민 번민은 어릴 때부터 연길에서 생활했다. 그는 자치주 창립 초기 연길시 도로는 개인 날에는 먼지가 날리고 비오는 날에는 흙진창이 되여 제대로 된 길이라 일컬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60년 전의 일이지만 그는 지금도 비내리는 날에 공공화장실에 가려면 장화를 신어야 했던 시절을 잊을 수 없고 시구역에서 조양천진에 있는 친척집에 가는 길이 그렇게도 멀게 느껴졌다고 했다.
사료에 따르면 해방 초기 연길시에는 시구역 중심에 가로세로로 8갈래 작은 바둑판모양의 도로망뿐이였다. 자치주 창립 후 정부에서 도로건설에 큰 중시를 돌려 인민로, 해방로, 광명거리, 삼꽃거리, 태평거리, 진학거리, 하남거리 및 장백산로, 역전앞거리를 포장도로로 부설했으나 그 면적은 고작 5만 8600평방메터뿐이였다. 개혁개방 후 연길시는 선후하여 140여갈래의 도로를 신축, 개조하여 도로의 대규모 확장을 실현했다.
“이 사진은 1984년에 인민로를 처음 확장할 때 찍은 사진입니다. 당시 인민로는 매우 좁았습니다. 지금까지 두세번 확장했습니다.”연길시도시건설서류관에서 31년 사업한 최암이 추억에 젖어 하는 말이다. 그는 사업수요로 지난 세기 90년대 초부터 매일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도시면모를 사진 찍어 사진으로 연길 거리, 골목의 거대한 변화를 기록했었다.
인민로를 확장했을 뿐만 아니라 ‘10.5’기간 연길시는 10여억원을 투입하여 총 길이가 20.53킬로메터에 달하는 61갈래의 도시도로를 신축, 개조했다. 그후 연길시 당위와 정부가 지속적으로 투입을 강화해 로화되고 파손된 도로를 보수함으로써 연길시는 도로가 사방으로 통하는 교통망을 구축하고 도시 공간을 일층 확보했다.
“젊은 시절에 철남에 거주했었는 데 출퇴근할 때면 철길 건널목을 지나야 했습니다. 특히 겨울철 기차가 이 구간을 지나게 될 시간대에는 철길 남북 량측에 인파가 기다랗게 늘어서 추위에 떨면서 기차가 이 구간을 통과하기를 기다려야 했습니다. 지금은 철남 도로망이 원활해져 출행이 한결 편리해졌습니다.”라고 번민은 지난날과 오늘날을 비교하며 말했다.
최근년간 연길시는 여러갈래의 다리를 륙속 건설해 도로망 보완에 지속적으로 힘을 보탰다.
2007년 연길시는 1.2억원을 투입하여 서부에 부르하통하 남북을 가로지르는 천지대교를 건설했다. 천지대교는 2009년에 준공되여 천지로, 장백산로와 연하로를 이어놓으면서 시구역 교통압력을 해소했다.
‘13.5’기간 연길시는 진달래북거리 등 10여갈래 도로와 연천대교 주체공사, 66갈래 골목 개조공사를 완수하여 ‘세개 교량, 네갈래 거리, 아홉갈래 골목’을 건설함으로써 도시 통행능력을 일층 높였다. 최근년간 선후하여 연서교, 대흥교 철거 및 재건공사를 완수하고 국자거리 연장로 개통, 영빈교 철거 및 재건 공사를 통해 도시교통능력을 승격시키고 도시발전공간을 넓혔다. 동시에 립체식 채색 조형으로 록화를 승격하고 부르하통하 량안 건물에 생동감이 넘치는 경관조명을 조성해 도로를 미화하고 량화했으며 도시 곳곳에 록음이 우거지고 아름다운 풍경이 흐르는 도시경관을 형성했다.
“지금의 연길 거리는 거닐기 좋을 뿐만 아니라 경치 또한 아름답습니다.” 남편과 함께 산책하는 것이 가장 즐거운 일이라는 번민은 “ 부르하통하의 다리들은 각이한 양식에 저마다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있고 장백산로 량측에는 꽃나무가 즐비하게 들어섰으며 연하로 연선은 멋들어진 야경으로 눈부십니다. 우리 백성들은 매일매일 행복의 탄탄대로에서 활보하고 있습니다.”라고 기쁜 심정으로 말했다.
소옥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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