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아이들을 아파트 창문 밖으로 던졌다. 그들은 '내 아이를 꼭 살려주세요'라고 소리쳤다. 생지옥이 따로 없었다."
14일 오전(현지 시각) 영국 런던 서부의 24층 아파트 '그렌펠 타워' 화재 현장의 목격자 타마라씨는 몸서리를 쳤다. 타마라씨는 "순식간에 불길에 휩싸인 건물 곳곳에서 살려 달라는 비명이 들렸지만 우린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했다. 사미라 람라니씨는 "9층인가, 10층에서 한 엄마가 아이를 던졌고, 밑에서 한 남자가 그 아이를 받았다"고 했다. 또 다른 목격자 조디 마틴씨는 "건물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빨리 나오라'고 소리쳤지만 안에 갇힌 사람들은 '복도에 연기가 가득 차 나갈 수 없다'고 했다"고 말했다.
불이 난 건물은 1974년에 지어진 지방자치단체 소유의 방 1~2개짜리 서민형 임대 아파트로, 런던 시내 하이드파크에서 북서쪽으로 1.8㎞ 정도 떨어진 랭커스터 웨스트 에스테이트 지역에 있다. 영국 언론들은 화재가 이날 오전 0시 54분쯤 발생했다고 했다. 가디언은 "2층에서 난 불이 아주 빠른 속도로 지은 지 43년 된 노후 건물 전체로 번졌다"고 했다. 건물에는 주로 젊은 부부와 자녀들이 살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BBC는 "건물에는 120여 가구가 살고 있었다"며 "불이 났을 때 최대 600명 정도가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대중지 더선은 "이 지역은 모로코 등 북아프리카계 이민자가 대거 몰려 사는 곳"이라고 했다.
소방 당국은 소방차 40여대와 소방관 200여명을 출동시켜 불 끄기에 나섰지만 거대한 불길이 건물 전체를 집어삼키는 것을 막지 못했다. 진입로가 좁아 소방차들이 현장에 접근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었다. 인근 주민 사이먼 레더만씨는 "소방차 물은 겨우 10층 정도밖에 도달하지 못했다"며 "그보다 높은 곳의 불길은 손을 쓸 수 없었다"고 했다. 불은 오전 5시쯤 잡히는 듯했으나 고층 쪽에서 다시 화염이 치솟았다. 불은 14시간이 지난 이날 오후 3시까지도 계속됐다.
가까스로 빠져나온 아파트 주민들과 목격자들은 "화염과 연기 때문에 건물 안에 갇힌 사람이 많았다"고 했다. 경찰은 이날 오전 4시에도 "입주민이 계속 대피하고 있다"고 했고, 일부 목격자는 오전 6시 이후에도 "사람들이 남아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소방 당국은 화재가 난 지 12시간 만에 70대 남성 등을 구조했다.
화재가 사람들이 잠자리에 든 한밤중에 발생한 것도 악재다. 화재 발생 직후 건물 안에서 비명과 "도와 달라"는 절박한 외침이 이어졌고, 창문 밖으로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는 증언들이 이어졌다. 해이딜 앨러밀리씨는 "한 남자가 꼭대기 층에서 뛰어내리는 걸 봤다"며 "온몸에 불이 붙은 채 아래로 몸을 던졌다"고 했다. "꼭대기 바로 아래층에서 비명을 지르던 4명이 연기와 불꽃 속에 사라졌다"는 증언도 나왔다.
이번 화재가 인재(人災)라는 비난도 제기되고 있다. 17층 주민 메스롭씨는 "오전 1시 15분쯤 불이 난 걸 알고 1층까지 걸어 내려왔다"며 "그 15분 동안 전체 건물이 불에 휩싸였다"고 말했다. 입주민과 전문가들은 "지난해 건물 관리 업체 측이 보수·외장 공사를 하면서 불에 잘 타는 싸구려 알루미늄 합성 피복 마감재를 사용한 것이 피해를 더 키웠다"고 지적하고 있다. "겉만 번지르르 화장한 꼴"이라는 말도 나왔다. 이 싸구려 마감재 때문에 외벽을 타고 순식간에 불이 건물 전체로 번졌다는 주장이다.
또 이 건물에는 스프링클러도 없었고, 화재경보기도 제대로 울리지 않았다는 주장도 나왔다. 런던엔 스크링클러가 없는 아파트 건물이 4000여곳에 달한다. 한 입주민은 "불이 나면 집에 들어가 있으라는 말을 들었다"며 이 아파트의 잘못된 대피 매뉴얼 문제를 지적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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