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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미 종전선언 급물살]트럼프 처음으로 종전선언 거론
차 타고 떠나는 김영철에 ‘엄지척’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1일(현지 시간) 백악관 집무동 밖까지 걸어 나와 면담을 끝내고 차량에 탑승한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옆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 워싱턴=AP 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일(현지 시간) 백악관에서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을 만난 뒤 그동안 공개적으로 거론한 적 없는 ‘종전선언’을 콕 집어 얘기한 것은 북한이 체제 보장을 담보하는 확실한 ‘안전장치’를 요구한 것에 대한 응답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평화협정 체결로 가는) 문(종전선언) 앞에 섰다”고 밝히며 본격적인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시작을 알렸다는 것이다.
○ 트럼프 “종전을 얘기하고 있는 게 믿어지나?”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종전선언 논의 사실을 밝히며 다소 들뜬 표정이었다. 그는 “(6·25전쟁은) 가장 오래된 전쟁이다. 거의 70년? (회담에서 이와 관련해) 어떤 것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70년’을 두 차례나 반복하며 역사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김성한 고려대 교수(전 외교통상부 2차관)는 “자신이 종전선언 의미를 잘 이해하고, 또 관심이 많다는 걸 종전선언 당사자인 남북 모두에 알리고 싶었던 것 같다”고 했다.
트럼프가 그동안 별로 언급하지 않았던 종전선언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건 북한이 비핵화에 나설 경우 제공 가능한 반대급부 중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은 조치라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종전선언은 조약이 아닌 정치적 합의에 불과하다. 의회 동의가 필요한 평화협정에 앞서 종전선언부터 일단 던진 뒤 북한이 성의 있게 비핵화에 나서는지 지켜보겠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무조건적 일괄 타결에 방점이 찍힌 ‘리비아식 비핵화 모델’과 달리 ‘트럼프 모델’은 단계적·동시적 반대급부를 요구하는 북한 입장을 어느 정도 수용하는 프로세스를 담고 있다. 트럼프가 이날 “12일 회담에서 빅딜이 시작될 것이지만 서명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한 것도 일괄 타결식 비핵화는 실질적 목표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 때문에 종전선언은 북한에 성의 있는 비핵화 조치를 요구하기 위한 트럼프의 또 다른 ‘히든카드’라는 분석도 많다.
트럼프는 종전선언과 관련해 구체적인 타임테이블도 일부 공개했다. “정상회담에 앞서서 (종전선언과 관련해) 논의할 것이다. (정상)회담에서 어떤 것이 나올 수 있다. 문건에 서명하는 것 이상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사전 회담을 통해 종전선언 관련 입장을 정리한 뒤 정상회담 합의문에 관련 내용이 담길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는 종전선언으로 북한의 비핵화를 가속화하겠다는 전략이지만 워싱턴 안팎에선 ‘섣부른 판단’이란 지적도 만만치 않다. 북한이 종전선언을 토대로 미국, 더 나아가 한국에 또 다른 요구를 하기 위한 디딤돌로 삼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워싱턴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인 빅터 차 조지타운대 교수는 월스트리트저널 기고에서 “(트럼프-김영철 회동 이후) 북-미 간 벼랑 끝 회담이 일종의 ‘상견례 회담’으로 성격이 바뀌었다”면서 “북한이 비핵화와 관련해 아직은 중대한 양보를 하지 않은 것 같은데 트럼프 대통령은 ‘최대의 압박’이란 말을 더 쓰지 않겠다고 했다”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스는 “북한은 얄팍하게 합의하고, 느리게 합의를 이행해 제재 완화를 유도했다. 그러면서 최대한 빠른 속도로 핵 개발을 진전시켰다”고 지적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싱가포르를 방문해 종전선언을 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지만 정부는 일단 극도로 조심스러워하고 있다. 정전협정 서명국인 중국의 입장도 배려해야 하는 데다 결국 종전선언은 평화협정 등 항구적 한반도 평화로 가기 위한 출발선 정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청와대는 물밑에서 문 대통령의 싱가포르행을 준비하는 등 기대감이 어느 때보다 높다. 이와 관련해 문 대통령은 8일 또는 9일에 6·13지방선거 사전투표를 할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3일 “사전투표율을 높이기 위한 독려 차원”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지만 최근 한반도를 둘러싼 움직임을 고려할 때 다른 해석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트럼프가 이제야 종전선언을 처음 언급한 만큼 12일 회담에서 이를 구체적으로 발표하긴 어려울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싱가포르 북-미 회담에선 종전선언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수준으로만 합의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 이 때문에 싱가포르에서 남북미가 만나 선언하는 방식보다는 판문점에서 정전협정 체결일(7월 27일)에 논의하거나 뉴욕에서 열리는 제73차 유엔총회(9월)에서 거론할 수 있다는 관측이 더 유력하게 오르내린다.
북한은 트럼프가 종전선언을 밝힌 만큼 평화협정까지의 시차를 기습적으로 줄이는 방안을 모색할 것이란 시선도 있다.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북-미 관계 정상화, 평양에 미국대표부 설치 등이 패키지로 따라오기 때문. 대북 강경파로 분류되는 브루스 클링너 미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최근 본보 인터뷰에서 “김정은은 회담 시작 30분 이내에 평화협정부터 들고나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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