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차[우크라이나]=연합뉴스) 현혜란 특파원 = 아침을 일찍 먹었다면 슬슬 허기가 질 무렵인 13일(현지시간) 오전 11시. 꾹꾹 접은 비닐봉지를 움켜쥔 사람들이 건물 앞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정오가 넘어서니 바퀴 달린 장바구니까지 끌고 와 기다리는 이로 장사진을 이뤘다.
앞쪽에서 갑자기 고성이 터져 나왔다.
"내가 지난주에 분명히 신청했는데 왜 음식을 주지 않는 거냐", "당신 순서는 아직 오지 않았다. 음식을 못 받은 사람은 당신만이 아니다. 차례를 기다려야 한다."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달아오른 한 남성이 삿대질하면서 유니폼을 입은 사람에게 거칠게 항의하자 차분하게 응대하던 이 사람도 성이 났는지 언성을 높였다.
이날은 자선단체 월드센트럴키친(WCK)이 부차에서 무료 배식을 하는 날이다.
전쟁은 사람의 마음을 쪼그라들게 한다. 아무리 인심이 넉넉했던 이도 총소리, 포소리를 직접 듣게 되면 야박해지게 마련일 테다.
WCK 부차 사무소는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빵, 쌀, 밀가루, 스파게티, 채소, 과일 등 식량을 담은 봉지를 주민에게 나눠준다. 집에 아이가 있으면 기저귀, 장난감 등도 함께 준다.
어느 정도 형태를 갖췄던 줄은 배급이 시작되자 서로 앞으로 몰려들면서 흐트러져 버렸다. 뒤쪽으로 밀려난 이들은 혹시라도 자기 차례가 오지 않을까 목을 빼고 남은 배급 봉지 개수를 초조한 눈으로 셌다.
쇼핑센터의 경비원으로 일했던 알렉(62) 씨는 쇼핑센터가 러시아군 폭격으로 박살 나면서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었다.
그도 이날 식량 배급을 받으려고 일찌감치 배급소에 왔다. 배급을 받아도 알렉 씨의 세 식구가 사흘을 버티기에 빠듯하다.
언제 자신의 이름을 부를지 몰라 건물 앞을 떠나지 못하고 주변을 서성거리며 담배만 뻑뻑 피우던 알렉 씨는 연금 8만3천원으로 한 달을 살아야 한다.
직업이 없는 아내와 아들까지 먹여 살리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돈이다. 더구나 식품, 연료 가격은 전쟁 뒤 몇 배로 뛰었다. 음식을 살 돈이 부족하기에 이렇게라도 얻은 음식을 아끼고 아껴 먹는 수밖에 없다.
생활고에 지칠 대로 지쳤을 알렉 씨는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나, 생활고를 충분히 해결해주지 못하는 우크라이나 정부 그 누구도 탓할 힘조차 없을 것처럼 무기력해 보였다.
WCK 관계자는 "월요일에 배급을 신청하면 목요일에, 목요일에 신청하면 다음 주 월요일에 음식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지만 최근 신청자가 계속 늘면서 순번이 계속 밀리고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군이 부차에서 물러난 4월 초 WCK가 문을 열었을 때만 해도 이곳을 찾는 주민은 300명 수준이었는데, 지금은 아무리 적게 6∼7배 늘었다고 한다.
전직 축구강사였던 WCK 자원봉사자 바그단(29) 씨는 "러시아군이 점령했을 때 마을에 남았던 주민들에게 음식을 주고 싶은데 돌아온 사람이 많아지면서 쉽지 않은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WCK 부차 사무소는 한 가구에 일주일에서 열흘에 한 번꼴로는 음식을 나눠준다고 했지만 전쟁 뒤 모든 게 결핍해진 주민들은 한 달에 한 번꼴로 배급을 받는 느낌이라고 입을 모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부차 주민들에게는 WCK 외에도 음식을 나눠주는 교회 등 3곳을 돌며 매일같이 '출석 도장'을 찍는 게 일상이 됐다.
이날 WCK 부차 사무소 앞에 모인 사람 중 식자재를 받아 간 사람은 150명 안팎. 나머지는 다음에 음식을 받을 수 있게끔 이름과 연락처를 남기고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사흘 뒤에 오면 음식을 받을 수 있을까. 아마 어려울 것이다.
자원봉사자도, 주민도 모두 이런 현실을 알고 있겠지만 넘치는 화를 주체하지 못해 어디에라도 분출하고 싶어 애먼 자원봉사자에게라도 소리를 지른 게 아니었을까.
부차에서 러시아군은 두 달 전 물러났지만 남은 주민들에겐 기약없는 또다른 전쟁이 막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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