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제교육원(IIE)에 따르면 미국 내 한국인 유학생 수(지난해 기준)는 6만3710명으로 전체 유학생의 6.5%를 차지했다. 1위 중국(31.2%), 2위 인도(13.6%)에 이어 세 번째로 많다. 동아일보와 KOTRA가 운영하는 미국 내 한국인 유학생 취업 및 창업 멘토링 프로그램 ‘청년드림 뉴욕캠프’를 취재하면서 유학생들의 고민을 들을 기회가 많았다. 비싼 학비와 생활비를 대 준 부모에 대한 감사함과 미안함, 하루빨리 미국에서 좋은 직장을 구해 은혜에 보답하고 싶어 하는 간절함과 조바심이 느껴졌다. 미국 취업의 꿈을 가로막는 큰 걸림돌은 대학 간판도, 성적도, 영어 실력도 아닌 체류 신분(취업비자)이란 사실도 이때 알게 됐다. 한 재미동포가 “이른바 ‘아메리칸 드림’은 아메리칸(미국 시민)이 됐을 때 실현될 수 있는 것”이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미국 회사 취직이 그렇게 어려우면 한인 회사나 미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이 유학생을 채용해 주면 어떨까. 뉴욕 시에서 중소업체를 운영하는 한인 A 씨(38)는 이런 제안에 고개를 가로젓는다. “10년 전 창업했을 때 시 관계자들은 ‘뭐 도와줄 것 없느냐’고 했다. 그런데 몇 년 전 한국인 유학생을 1명 채용했는데 당국에서 ‘왜 미국인이 아닌 외국인을 뽑았는지를 소명하라’는 요구가 빗발쳤다. 툭하면 조사를 나와서 온갖 트집을 다 잡았다.” 그동안 그들이 A 씨에게 베푼 친절은 ‘미국인에게 일자리를 만들어 준 대가’였던 것이다. 한국 금융기관의 한 뉴욕지점장도 “유학생을 채용했다가 그런 피해를 보는 일이 반복되면서 아예 ‘현지인(미국인)만 뽑으라’는 내부 지침을 만들어 놓은 지점도 꽤 있다”고 귀띔했다. 다른 지점장도 “미 금융 당국은 ‘돈세탁 방지 등을 위해 이런저런 자격을 갖춘 인원을 더 보강하라’는 지시를 자주 내리는데 ‘자기들(미국인) 일자리 만들려고 우리(외국 기업)를 규제하나’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고 털어놨다.
일자리 문제는 미국 실물경제의 밑바닥부터 기준금리 인상 여부, 그리고 대선 경선에까지 막대하고 결정적인 영향력을 발휘한다. 미 언론들은 “공화당의 사실상 대선 후보로 확정된 도널드 트럼프 현상의 저변에도 결국 일자리 문제가 있다”고 분석했다. 트럼프는 주요 유세 때마다 ‘에어컨 제조회사 캐리어의 인디애나폴리스 공장 멕시코 이전 결정’을 언급하며 “이런 식으로 멕시코나 중국에 빼앗긴 일자리를 다시 찾아오겠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디트로이트의 시계 제조업체 시놀라 등이 불러일으킨 ‘메이드 인 USA’ 열풍도 ‘미국산 제품을 사야 미국에 일자리가 생긴다’는 마케팅이 소비자들의 공감을 얻었기 때문이다.
이런 미국과 비교할 때 한국은 일자리를 지키고 만드는 데 얼마나 절실한지 의문이다. 정부나 정치권에선 ‘30대 대기업의 공채 규모가 늘면 일자리가 증가한 것’이라고만 인식해 온 것은 아닌가. 그래서 일자리는 기업 팔만 비틀면 나오는 것으로 여기지 않는지 궁금하다.
1980년 대선에서 공화당 로널드 레이건 후보는 민주당 소속 지미 카터 대통령을 일자리로 공격했다. “불경기는 여러분의 이웃이 실직했을 때, 불황은 여러분이 실직했을 때를 말합니다. 경기 회복은 카터가 일자리(대통령직)를 잃으면 시작됩니다.”
지역 곳곳에서 일자리를 지키고 해외 투자를 유치해 일자리를 창출해 내는 일이 정말 치열하게 이뤄지려면 한국에선 누가 실직해야 할까. 기성세대라면 ‘혹시 나 자신은 아닌지’ 가슴에 한번 손 얹어 볼 일이다.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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