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지난 20일 오후 서울역에 정차한 KTX-013 열차에서 셰프와 일반인 등 4명으로 구성된 시식단이 서울역에서 판매하는 기차도시락의 맛을 평가하고 있다. 왼쪽부터 대학생 정이든씨, 전업주부 최영순씨, 회사원 배종수씨, 채낙영 셰프. [조문규 기자]
“창밖에 쏟아지는 햇살 따라/어두운 내 작은 방을 나서면/기차에 설레는 내 마음을 싣고….” 1990년대 그룹 전람회가 ‘여행’에서 경쾌하게 노래했듯 어릴 적 기차여행은 설렘 그 자체였다. 빌딩 숲 에 자리 잡은 서울역에 들어가 열차에 몸을 싣고 차창 밖을 바라보다 보면 어느새 파란 하늘과 맞닿은 새로운 세상. 창밖 속 풍경이 지루해질 때쯤 덜컹거리며 지나가는 간식 카트에서 삶은 계란과 사이다를 사 먹는 건 빼놓을 수 없는 재미였다.
최근에는 기차여행에 한 가지 즐거움이 더해졌다. 식은 밥과 냉동 반찬이 전부였던 기차도시락이 매력적인 한 끼 식사로 변모한 덕분이다. 2013년 6월 서울역 기차 승강장 입구에 들어선 8곳의 도시락 매장은 다양한 식재료를 활용한 요리를 도시락에 담아 과거 ‘한 끼 때우기용’으로 불렸던 기차도시락의 오명을 씻었다. 여행자들 사이에선 비행기에서 먹는 기내식에 빗대 ‘기차식’이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인기다. ‘맛있는 월요일’은 이번 가을 기차 여행을 준비 중인 이들을 위한 ‘도시락 안내서’를 준비했다. 언양 불고기, 마약김밥, 팟타이 등 가짓수도 많고 가격도 천차만별인 서울역 도시락을 어떻게 골라야 하는지에 대한 가이드다. ‘올리브쇼2015’에 출연 중인 스타 셰프 채낙영(30)씨와 연령·성별이 다른 일반인 시식단 3인이 20일 오후 서울역에 모여 직접 기차식을 맛보고 유형별로 적절한 메뉴를 추천했다.
◆간편한 한 끼를 원한다면=옆 좌석 승객의 눈치를 보기 싫어하는 이들을 위한 추천이다. 공씨네주먹밥의 ‘주먹밥 A세트’는 맛이 다른 네 종류의 주먹밥으로 구성돼 있다. 주먹밥 속에 참치김치·양념갈비 등 재료를 채우고 겉에 김 가루를 붙였다. 채 셰프는 “모양이 특이한 데다 맛도 괜찮아 어린아이들에게 인기가 좋을 것 같다”고 평했다. 꼬꼬마김밥의 대표 메뉴 ‘꼬꼬마김밥’은 겉보기엔 평범하지만 하루 800개 이상 팔리는 인기 메뉴다. 한입 크기로 만든 김밥을 겨자 소스에 찍어 먹으면 광장시장의 명물 ‘마약김밥’ 맛이 난다. 대학생 정이든(24)씨는 “저렴한 가격에 가볍게 끼니를 해결하기 좋다”고 말했다.
◆기차에서도 제대로 된 식사=기차 안이라고 식사를 대충 때우는 걸 용납할 수 없는 이들을 위한 메뉴다. 다미연의 ‘언양식 불고기 도시락’은 시식단으로부터 가장 많은 찬사를 받았다. 불고기에서 느껴지는 풍미가 식욕을 제대로 자극시킨다는 평가다. 회사원 배종수(59)씨는 “불맛이 제대로 살아 있다”며 “밥도 푸짐하고 다른 반찬도 구성이 좋다”고 설명했다. 바비박스의 ‘서울역도시락’은 정사각형의 도시락 상자에 떡갈비와 해물가스, 달걀프라이까지 담았다. 전업주부 최영순(48)씨는 “맛은 괜찮은데 세트로 먹으면 1만원이 넘는 가격이 흠”이라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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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식 독특한 도시락=기차식의 원조는 일본이다. ‘에키벤’으로 불리며 역마다 특색 있는 도시락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서울역에서도 에키벤을 맛볼 수 있다. 일본에서 연간 3억 개의 도시락을 판매하는 브랜드 호토모토 매장이 서울역에 입점해 있어서다. ‘호토모토 특선’은 연어, 닭 가라아게(튀김) 등 다양한 일식 반찬을 갖춰 화려한 모양새를 자랑한다. 다만 밥 위에 올려진 연어의 비린 맛으로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민치까스’는 다진 고기에 양파를 섞어 크로켓 모양으로 튀겨 내 이색적인 느낌을 준다.
◆저열량 건강식 추구한다면=여행의 즐거움은 식도락에 있다지만 다이어트로 고열량 음식을 먹기가 부담스럽다면 저열량 건강식을 택하면 된다. 슬런치는 기름에 튀기거나 볶지 않고 굽는 방식으로 조리한다. ‘소불고기 덮밥’은 고기와 싱싱한 샐러드까지 곁들여 먹을 수 있다. 면 요리를 좋아한다면 누들박스의 ‘팟타이’를 추천한다. 태국식 볶음 쌀국수를 박스에 담아 준다. 채 셰프는 “색다른 태국식 면 요리인데 가볍게 먹기엔 최고”라고 설명했다.
◆시간이 없을 경우=서울역 도시락 매장들은 주문 즉시 도시락을 조리해 판매한다. 5분 이내에 나오지만 기차 시간에 쫓긴다면 부담스럽다. 이럴 땐 기차 안에서 판매하는 도시락 레일락을 택하면 된다. 레일락의 ‘제육불고기’와 ‘청매실떡갈비’는 누구나 무난하게 즐길 수 있는 맛이다. 회사원 배씨는 “가장 도시락다운 느낌의 메뉴로 구성돼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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