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계렬보도 “두만강은 말한다”(19)
-도문시 량수진 하서촌 유기농재배산업 발전시켜 전국문명촌으로 거듭나
●길림성 첫 유기농합작사 설립 및 유기농산물 브랜드 등록
●신형농민, 현대농업으로의 전환 및 새농촌으로의 전변을 실현
●길림성의 생태문명촌, 흥변부민시범촌, 새농촌건설추진촌 영예 획득
●련속 두기 전국문명촌영예 획득
길림성로력모범, 성급선진당지부 서기, 국가과학기술보급인솔자 등 영예를 한몸에 지닌 도문시 량수진 하서촌 당지부서기 겸 촌민위원회주임 관언영.
“하서춘(河西春)” 하서촌의 “명함장”
도문시량수진하서촌은 유기농재배로 이름난 전국의 문명촌이다.
가끔 과일남새시장에나 슈퍼에서 장보는 이들이“하서춘(河西春)”브랜드를 단 딸기, 참외, 수박, 포도, 도마도 등 과일, 남새를 다투어 사는 광경을 볼수 있다. 요즘엔 “하서춘(河西春)”과일들은“록승농장(绿盛农场)”사이트거나 위챗, 전화로 문전배달까지 가능하다. 한것은“하서춘”표 과일은 맛도 일품이거니와 유기농법으로 재배해 안전하기때문이다.
“하서춘(河西春)”은 하서촌의 유기농업 브랜드이다.
“하서춘”이 연변내외에서 유명세를 타니 하서촌도 그만큼 유명해졌다.
경칩이 지난 이튿날, 기자는 량수진 선전위원 조로명(赵潞铭)의 안내로 하서촌을 찾았다. 하서촌에는 훈훈한 봄기운이 감돌기 시작하였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마침 기자가 하서촌에 당도했을 때 촌 주간도에서는 한 대형 트럭이 강철도관을 부리우고있었는데 그 소리는 온 마을을 들썽케 하고있었다.
하서촌의 관언영(关彦英)서기는 강철도관은 대전인삼재배기지를 건설하는데 사용할것이라고 했다. 그의 말에 의하면 하서촌에서는 올해부터 인삼제품가공을 본격화하기로 한 도문시룡천농공무역유한회사와 2헥타르규모의 인삼재배협의를 체결했다.
기다리던 인삼재배지기건설용 강철자재가 도착했다.
두만강을 사이두고 조선 온성군과 마주하고있는 하서촌은 250여가구에 850여명 인구를 가진 촌이다. 그가운데 60%가 조선족이다. 지난세기까지 하서촌은 밭 300헥타르에 매달려 전통적으로 알곡작물만 재배하다나니 농민들의 생활은 꽃필새 없었다. 그러던 하서촌이 지금은 다각경영 총수입이 1000만원을 넘긴 부유촌으로 탈바꿈했다.
90년대에 촌주임으로 일한 적 있는 하서촌 현임 촌무감독위원회 주임인 최진석로인은 “그때는 별로 내놓을것이 없었지요. 지난해 우리 촌의 인구당 순수입이 1만 1000원에 달해 지금은 하서촌이라 하면 다 알아주지요. 출국했던이들도 돌아와 농사를 지어보겠다고 선뜻이 나서고있답니다. 관서기와 합작사의 공로가 큽니다.”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관언영이 촌당지부 서기를 맡은지 15년에 난다. 지금은 촌민위원회 주임까지 겸직하고있다. 조로명선전위원은 관언영은 선거때 만표로 당선된, “ 하서촌을 ‘스타’촌으로 이끈 량수진의 ‘스타’서기”라고 치하한다.
기자의 시야를 눈부시게 한것은 은백색의 세계를 방불케하는 면적이 20헥타르에 달하는 106채의 비닐하우스기지였다. 기지입구에 “하서채집체험원”간판이 세워져있다. 기지에 들어가면 “딸기따기체험원”, “참외따기체험원”등 패말들이 하우스사이사이에 꽂여있다. 포도, 수박, 추리복숭아(油桃) 등 기지에서 나는 과일종류가 7, 8가지 된다. 육묘온실에서는 묘들이 한창 건실하게 자라고있다. 지난해 이 기지에서 200여만원의 수입을 올렸다고 한다.
이곳의 50%이상의 열매를 체험소비자들이 손수 따간다. 하서의 딸기철은 남과 달리 주로 5월부터 10월까지가 제철이다. 그철에 딸기관광절까지 개최해 그때면 체험원은 그야말로 명절의 분위기로 들끓는다. 관광절기간에는 참외, 포도 등 다른 과일도 함께 맛볼수 있어 이곳은 관광객 및 려행사관광팀들이 즐겨찾는 명소로 되였다. 7, 8년간 이곳의 딸기는 키로그람당 평균 60원아래로 내려간적 없고 제일 좋을 때는 지어 키로그람당 100원이상을 받은적도 있었다고 한다. “술향기 그윽해 깊숙한 골목에도 풍기네(酒香不怕巷子深)”라는 중국속담의 뜻이 더욱 새삼스러워진다.
딸기 등 유기농재배는 하서촌의 첫 적지적작( 因地制宜)산업혁신성과이고 채집체험원경영방식은 채집체험관광절을 담체로 레저관광, 친자연전원체험관광열에 발맞춘 직매, 홍보효과를 톡톡히 본 경영혁신성과였다. “두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은” 격이다.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한다”
두만강하류평원에 자리한 하서촌은 토양이 비옥하고 토양층이 두꺼우며 지세가 평탄한 우세를 갖고있다. 관언영은“지금 하서촌의 그 천혜의 우세가 은을 내고있다. 그러나 우리는 한걸음 한걸음씩 힘차게 걸어왔다.”면서 그 려정을 회억하였다.
2000년도에 하서촌당지부 서기로 부임된 관언영은 값도 싸고 팔기 힘들었던 알곡시장을 분석한후 대담히 재배구조를 개변시켰다. 그는 값이 높고 팔기 쉬운 경제작물을 재배하였으며 먹거리안전 출발점에서 유기남새를 재배하기 시작하였다. 그후 대전재배를 하우스재배로, 남새재배를 과일재배로 전이시켜왔던것이다. 거기에 지난해부터는 흥변부민산업부축자금을 쟁취해 20만주머니규모 되는 검정귀버섯균종생산 및 재배도 시작했다.
“심어 따서 팔아 돈을 보기전에는 농민들한테 안통한다”.
관언영은 채집원을 돌면서 “이 기지의 발전에는 당원간부들의 솔선모범역할이 컸다.”며 감회에 젖는다. 먼저 젊은 당원들을 동원하여 브로콜리, 들깨잎, 방풍초 등 경제작물을 재배하기 시작했고 수출오다를 쟁취해오고 한쪽으로는 토양개량을 진행하면서 경제작물의 “몸값”을 3배, 4배로 올리니 농민들이 따르기 시작했고 유기토양전환면적을 80헥타르로 늘이니 농민들은 머리를 끄덕이였다.
땅은 사람을 속이지 않는다. 2005년에 하서촌에서 재배한 남새는 드디여 국가유기농업인증서를 받아쥐였다. 이와 동시에 촌에서는 타성의 합작사경영모식을 도입해 길림성에서 제일 첫집으로 되는 유기농합작사 “도문하서흠농(鑫农)농부산물합작사”를 설립했고 이듬해엔 합작사에서 생산한 농산물에 “하서춘”이란 브랜드를 등록했다. 합작사는 분산된 경영을 집약화시켜 상품질 및 판매를 파악했고 전통농민으로 하여금 현대농업에 눈뜨게 하여 신형농민으로의 전변을 빨렸다. 남새와 과일, 잡곡까지 “하서춘”표 농산물은 무려 30여가지에 달한다.
이같이 하서촌 농민들이 기다리던 봄은 끝내 찾아왔다.
지금 하서촌의 길옆 벽이나 게시판에는 움트는 새싹도안이 동그랗게 새겨져있는데 이것이 바로 “하서춘”브랜드로고이다. 이는 관언영의 걸작이다. 관언영은 “하서의 유기농산업이 봄을 맞은 싹이 우썩우썩 자라듯이 날따라 번영해가기를 기원하는 마음 ”을 담아 도안도 이름도 그렇게 디자인했다며 얼굴에 미소를 짓는다.
경제작물, 유기농재배에서 토양, 기후조건외에 기술이 관건이다. 관언영은 농업전문가를 청해 농민들에게 재배기술을 전수하는데 돈을 아끼지 않았으며 특히 하서의 유기농발전에 뜻을 둔 젊은이들양성에 각별히 신경을 썼다. 결국 고원(高原)이란 젊은이가 해당 시험에 통과돼 길림농업대학에 가서 2년반동안 실용농업기술을 배워왔다. 관서기는 지금 당지부 부서기이며 민병련장인 고원을 “우리촌의 전문가”라 부르면서 그의 신변에는 이미 기술을 함께 배우고 연구하는 젊은 기술대오가 형성되여 있어 촌의 유기농재배기술돌파에는 유력한 보장이 있게 되였다고 한다.
나라의 부축정책이 은을 내다
관언영은 “흥변부민, 빈곤부축개발투자정책이 없었더라면 하우스기지건설은 꿈도 꾸지못했을것이다.”고 하면서 지금까지 하서촌에 투입된 국가부축자금은 2000여만원에 달한다고 했다.
이어 그는“이젠 우리 스스로가 조혈기능을 갖추어 빈곤퇴치를 해야지요. 150여세대의 빈곤호가운데서 아직 50여호가 빈곤에서 해탈되지 못했는데 금후 3년안으로 빈곤퇴치임무를 완수할것입니다.”고 말했다.
촌에서는 몇년간 집체경제수입을 해마다 6자리수씩 올려 촌부 및 촌모건설에 보태여왔고 촌민들에게 의료보험을 실시하였다.
이 토대우에서 50만주머니규모의 검정귀버섯균종생산 및 재배대상 그리고 사료가공공장, 태양에너지발전대상을 신청해놓은 상태, 이 대상들이 차질없이 락착되면 촌민들의 복지와 촌건설은 새로운 차원으로 향상될 전망이다.
인심을 격동시키는 희소식이 하나 더 있었다. 투자액이 1100여만원에 달하는 “하서유기농채집기지대상”이 몇년만에 이미 건설단위의 입찰까지 마친것이다. 올해안으로 공사가 완성되면 하서촌유기농채집기지에는 랭장 저장고, 주차장에 하우스재배기지 ,크고 작은 도로 등 기초시설이 완벽화된다.
한편 하서촌의 20여헥타르되는 부지에 설계된 량수진유기생태관광원구의 내부 원림건설, 10여채의 민속전통가옥장식공사도 올해에 재가동된다.
하서촌에 가면 두만강따라 가볼만한 곳이 한곳 더 있다. 두만강 및 량수진의 명물, 즉 량수진과 조선온성군사이에 남겨진 “단교(断桥)”이다. 이“단교”는 일제가 1937년에 500여메터길이에 6메터너비로 건설했던 다리로서 광복전야에 일제가 특무를 파견해 폭파해버린것이다. “단교”우에 올라 온성군을 바라보면 왕재산기념비의 전모가 안겨온다. 멀지 않은 장래에 하서촌의 관광코스는 채집원과 민속생태원에 이어“단교”에까지 닿게 될 전망이다. 그날을 기약하며 기자는 귀로에 올랐다.
문득 어디선가 강이 풀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분명 두만강이 풀리는 소리였다.
길림신문 글 김영자기자 /사진 김성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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